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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92. 원인 모를 고통
작성일 : 22-01-27 13:47     조회 : 181     추천 : 0     분량 : 8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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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소지역이 아주 크게 발전하고 있나이다.”

 “전해 들었소. 참으로 기쁘오. 이는 화성을 계획한 약용의 지혜가 큰 역할을 하였다 생각하오. 약용에게 큰 상을 내리려하는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모두가 동의하는 바이옵니다. 그리하소서.”

 

 구준이 죽은 이후, 정국은 안정되는 듯 보였다. 더는 외척이 판을 치지 않았고, 평민보다 더 천하게 여겨졌던 서얼들이 등용되어 제 능력을 펼쳐보였다. 어전회의가 끝나고 나오는 대신들의 말에서 세상이 변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외척이 없으니, 세상 편할세.”

 “대비는 아직까지 별궁에 있다던가?”

 “소문에는 아주 미쳤다던데?”

 “난 대비보다 혜빈이 더 염려된단 말이지. 세자를 끼고 돌잖아.”

 “중전의 친정에 힘이 좀 있었으면 달랐을까?”

 “예끼! 이 사람. 또 외척이 판치는 꼴을 보고 싶은 겐가?”

 “중전께서 예전 어린 그 분이 아니야. 혜빈도 이제 꼼짝을 못하신다지.”

 “아직 몰라. 그 고고한 분이 중전 앞이라고 고개를 숙이겠나?”

 

 중궁전. 유아는 들뜬 얼굴로 처소 밖을 나섰다.

 

 “마마. 천천히.”

 “알겠네.”

 

 뒤를 따르는 연실도 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서두르세.”

 

 유아는 가마에 올랐다. 그리고 가마가 향하는 곳은 배가 들어오는 선착장이었다. 가마에서 내린 유아의 앞에 이미 큰 배가 도착해 있었다.

 

 “벌써 간 것인가?”

 “가긴요? 어딜?”

 

 유아의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 온갖 특이한 장신구와 비단으로 휘감고는 누가 봐도 여행자의 모습을 한 박지원이었다.

 

 “선생님!”

 “중전마마!”

 “하하하하하하!”

 “그리 반가우십니까?”

 “마마께선 반갑지 않으십니까?”

 “반갑지요. 그러니 이리 왔지요.”

 “중전마마께오서 직접 마중을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나저나, 너무 궁금해 참을 수가 없어서요. 그거.”

 

 유아가 속삭이며 은밀히 전한 ‘그것’은 무엇일까? 지원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겼다. 유아의 가마가 지원의 말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그리고 지원은 자신의 집에 도착했다. 지원의 사랑채. 자신을 반기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유아와 지원은 방으로 들어가 은밀한 대화를 시작했다.

 

 “기행일지는 어찌 되셨습니까?”

 “완성 단계입니다.”

 “대단하십니다. 어찌 그곳에서 책을 쓸 생각을 하셨습니까?”

 “조선 사람들이 살면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무엇인데요?”

 “금강산 봉우리가 몇 개인지 다 세어보는 것입니다.”

 “선생께선 청국으로 가시질 않으셨습니까?”

 “금강산 가는 것도 꿈인데, 청국은 오죽하겠습니까? 그 넓은 땅덩어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조정대신들이라고 알겠습니까? 조선팔도 모르는 지식 없다는 전하께서도 청국 여행은 해보지 못하셨습니다. 허니, 이 기행문이 아주 잘 팔릴 것이라는 거지요.”

 “제 스승님께는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고맙습니다, 마마.”

 “허면... 출판되기 전에 제가 먼저 읽어봐도 될는지요?”

 “좋습니다! 마마께서 미리 읽어주시면, 수정할 부분도 잘 보이겠지요. 책이라면 마마께서도 빠지지 않으시니.”

 “고맙습니다.”

 

 지원은 품 깊숙이 있던 것을 꺼내 건넸다. 비단에 꽁꽁 싸맨 책이었다.

 

 “그리고 부탁하신 이거.”

 “그거요?”

 “예. 아주 힘겹게 구했습니다. 함께 간 대신 누구도 이걸 구할 생각을 하지 않더군요.”

 “대국에 대한 실례라 생각했을 테니까요.”

 “전하께 전하실 생각이십니까?”

 

 유아는 지원에게 책을 건네받았다.

 

 “좋아하실 겁니다.”

 “청국에서는 금서라 하더군요. 목숨 걸고 구했습니다.”

 “한족들이 보던 책이라 그렇겠지요. 황제에게도 비판적인 내용도 있고.”

 “다른 것은 구하지 못했습니다. 책 하나로 수백의 목숨이 죽었다더군요.”

 “청 황제는 시와 그림에 조예가 깊다지요?”

 “예. 먼발치에서 봤지만, 황제의 곁엔 언제나 음악과 그림, 시가 함께 하더군요.”

 

 유아는 지원에게서 받은 책들을 가마에 싣고는 다시 궐로 떠났다. 그녀가 돌아오는 길. 궐에서는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나... 갑자기 잠이 와...”

 “어머, 영미야!”

 

 궁녀들끼리 모여 밥을 먹던 중, 귀한 오리고기를 먼저 먹으려던 나인 하나가 쓰러진 것이었다. 편안하게 잠들어버린 것 같은 나인의 얼굴 구멍마다 피가 흘러내렸다.

 

 “꺄악!!”

 

 영미라는 이름의 나인은 조용히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러나 궁은 떠들썩해지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그들은 조용히 식사를 끝내고 사건을 묻었다. 단, 최고상궁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다. 최고상궁은 유아가 돌아오는 즉시 이 일을 조용히 알렸다.

 

 “감찰부로 하여금 이 일을 조사하게 하라. 보고는 오로지 나에게만 하라.”

 

 유아의 명령으로 죽은 궁녀의 부검이 시작되었다. 은밀히 검험관(*부검의)이 늦은 밤 궐로 들어와 독살 여부를 확인했다.

 

 “독극물입니다. 헌데...”

 “헌데?”

 “무슨 독인지를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검험관은 말 대신 은 막대를 감찰상궁에게 보여주었다. 시신의 입 안에 넣었던 은 막대의 색은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 독이라?”

 “조선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독인 것 같습니다.”

 “무슨 독인지 알 방법은 없소?”

 “이런 독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만, 그 분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알 만한 사람이 있단 말인가?”

 “예. 헌데, 자취를 감춘 지 오래입니다.”

 “누군가?”

 “오연상이라는 이름의 검험관입니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 지 알 수 없고요.”

 “그 자가 누구인데?”

 

 검험관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자 찾아온 최고상궁이 그 이름에 멈칫했다.

 

 “정녕 그 독이란 말인가?”

 

 최고상궁의 등장에 검험관이 고개를 숙였다.

 

 “그 독뿐이겠는가?”

 “예. 증상이 같습니다.”

 “알겠네. 감찰부는 이제 이 시신을 시구문 밖으로 내보내게.”

 “예?”

 “어서!”

 “예. 마마.”

 

 최고상궁은 중궁전으로 향했다. 유아라 한들, 알 턱이 없는 과거의 일. 그 일의 중심에 있던 원인 모를 독극물. 최고상궁은 오랜 시간 묻혀있던, 허조대왕때부터 평생을 함구하라 했던 그 일을 자신의 입으로 꺼내야 할지를 고민했다.

 

 “검험은 어찌 되었는가?”

 “독이옵니다.”

 “누가?!”

 “잘은 모르겠사오나, 오리고기에 있던 독인 듯하옵니다. 다행히 가장 먼저 먹은 터라, 다른 궁인들은 입을 대지 않았사옵니다.”

 “대전의 궁녀가 아니었던가?”

 “예. 그러하옵니다.”

 “허면, 전하의 수라에도 오른 것이렸다.”

 “예.”

 “기미를 누가 하였는가?”

 “기미상궁은 멀쩡하옵니다.”

 “김상궁은 페데르의원을 모셔오게.”

 

 유아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최고상궁은 연실이 자리를 비우자, 조금씩 용기가 생겼다.

 

 “마마. 주위를 모두 물러주시옵소서.”

 “김상궁은 나가면서 궁인들 모두를 물리라.”

 “예, 마마.”

 

 중궁전엔 유아와 최고상궁 둘 뿐이었다.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는가? 내 곁도 위험한가?”

 “그 독을 몇 십년 전에 본 적이 있나이다.”

 “궐에서 이런 일이 또 있었단 말인가?”

 “궐 안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궐을 나가야했으니까요.”

 

 이 순간 유아는 왠지 피할 수 없는 소용돌이로 달려드는 느낌이 들었다.

 

 ***

 

 대전. 성은 유아가 전달한 서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하. 재미있으시옵니까?”

 “읽을 만하군.”

 

 성은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봉수는 성의 눈치를 보았다. 봉수는 알고 있었다. 오늘 궐에서 일어났던 독살사건을. 그러나 굳이 말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유아가 조사를 하고 있는 와중에 초를 칠 이유는 없으니까.

 

 “후...”

 

 성은 가슴이 답답한 듯 계속해서 숨을 내쉬었다.

 

 “전하. 불편하신 곳이 있사옵니까?”

 “좀 답답하구나.”

 “창을 좀 열겠나이다.”

 

 봉수는 방 안의 창문을 모두 열었다.

 

 “후~...”

 

 그럼에도 성의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전하. 어의를 부를까요?”

 “아니다.”

 

 그때, 페데르가 대전에 도착했다.

 

 “전하. 페데르의원이 왔습니다.”

 “페데르가? 들라하라.”

 

 페데르는 성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전하.”

 “올 시간이 아니질 않은가?”

 “중전마마께서 부르셨습니다. 옥체를 면밀히 살피라고.”

 “갑자기?”

 

 페데르는 성의 상태를 살폈다. 진맥을 하던 페데르의 표정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전하. 혹, 답답함을 느끼신 지가 얼마나 되셨는지요?”

 “이틀 정도 된 것 같네.”

 “탕약을 올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소량의 독에 중독이 되신 것 같습니다.”

 “뭐라? 독?”

 “적은 양이라 해독이 가능합니다.”

 “알겠네.”

 

 봉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조사를 명하겠습니다. 운검도 따르세.”

 “아니다.”

 “전하!”

 “중전께서 연락했다 하였느냐?”

 “예, 전하.”

 “중전이 알아서 할 모양이다. 상선은 함구하라.”

 

 페데르는 성의 진맥을 끝난 후에, 종이에 탕약의 재료를 써내려갔다. 그리고 종이를 봉수에게 알렸다.

 

 “탕약에 들어가는 약재입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한 번씩 올리십시오.”

 “알겠네.”

 

 ***

 

 중궁전. 유아는 심각한 얼굴로 연실에게 가마를 대령하라 명했다. 유아의 가마 앞에는 최고상궁과 감찰상궁이 서 있었다. 유아는 가마의 창문을 열어 상궁들에게 명했다.

 

 “최고상궁은 전하의 수라상을 확인할 때, 기미상궁 외에 기미할 젊은 나인을 하나 더 두어 기미하게 하라. 탕약은 반드시 전하께서 드시기 직전에 기미하라. 대전의 물건 하나하나 빼놓지 말고 독을 확인하라. 방법은 곧 김상궁이 알려줄 것이다.”

 “예, 중전마마.”

 “혹, 독이 발견되었을 시엔 나에게만 보고하여야 할 것이다.”

 

 가마의 창문이 닫혔다. 가마에 올라 이동하는 유아의 행선지는 대비인 성희가 있는 별궁이었다. 늦은 밤, 가마가 별궁 마당에 도착했다. 굳은 얼굴의 유아가 가마에서 내려 성희와 마주했다.

 

 “이 시간에 중전이 무슨 일인가?”

 “정말 미친 겁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역적이라 지금 잡아도 문제없을 것 같은데.”

 “역적이라니. 난 김구준과 달라!”

 “대비라는 것 뒤에 얼마나 숨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정말 미친 게 아니고서야, 감히 대전에 독을 들입니까?”

 

 성희는 피식 웃었다. 유아는 그 모습에 모든 장기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피가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내 아이 셋도 모자라, 이제 전하까지.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은 덜 아프게 마련이야.”

 “내 아이를 죽인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겁니까?”

 “업보라고 생각 해. 네가 중전이어서 얻을 수밖에 없는 업보야.”

 

 업보라니. 유아는 이해할 수 없는 말만을 늘여놓는 성희를 노려볼 뿐이었다.

 

 “각오해. 난 당신 죽이지도 않을 거야. 죽으려면 살리고, 또 살려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맛보게 해 줄 테니까.”

 

 유아는 성희에게 경고를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홍윤희를 너무 내버려 두지 마. 나보다 그쪽이 더 위험하니까.”

 

 유아는 더는 반격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은 덜 아프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

 

 유아의 명령에 아침부터 궁녀들은 분주했다. 음식 하나하나를 신경 썼고, 기미는 두 번에 나누어 했다. 성이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때면 물건마다 독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유아는 운검인 수도 따로 불렀다.

 

 “왕실 서고에 있는 책들을 모두 확인해야 합니다. 장용영을 시켜 모두 확인해주세요.”

 “네.”

 

 수는 장용영에 일러 왕실 서고의 책들을 모두 확인했다. 페데르가 독을 확인할 수 있는 막대를 따로 만들어 장용영의 군사들에게 건넸다. 군사들은 책 하나하나를 확인했다.

 

 “대, 대장!”

 

 유아는 수에게 신신당부했다.

 

 “만약 발견된다면, 그 보고는 오직 나에게만 하는 겁니다.”

 

 서고에서도 독이 발견되었다. 대전에서도, 음식에도, 밖에서 들여오는 수레의 물건들에서도 독이 발견되었다. 그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유아는 더 불안해졌다. 더는 참을 수 없어 성을 찾아갔다.

 

 “중전.”

 “전하. 긴히 고할 것이 있습니다.”

 “무슨?”

 “대비를 이대로 둘 수 없습니다.”

 “해서 별궁에 두지 않았소?”

 “폐비.”

 “중전!”

 “궁녀 하나가 죽었습니다.”

 “뭐라고?”

 “음식에 독을 넣었습니다. 전하의 음식에도 독을 넣었겠지요. 조금씩 양을 늘여가며 어느 정도를 넣어야 죽나, 그걸 실험했겠지요.”

 “그게 대비가 한 일이라 어찌 장담하오?”

 “스스로 인정했으니까요.”

 

 성은 눈을 감았다.

 

 “그 궁녀뿐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죽인 사람이 궐 안과 밖에 넘쳐날 지경입니다. 대비라는 이유로 사람을 죽인 죄까지 숨겨줘야 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귀한 백성의 목숨을 장난처럼 여기는 대비를 언제까지 보호할 생각입니까?”

 “나도 폐군이 되는 길이오.”

 “어째서요?!”

 “폐모. 광해군이 축출된 이유가 폐모살제였소. 이 나라는 성리학의 나라요. 부모를 벌하는 자식은 세상에 없어. 그게 이 나라니까.”

 “허면, 저대로 두어야 합니까? 전하의 목숨마저 노리는데요!”

 

 성은 유아의 어깨를 잡았다.

 

 “부인. 내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소?”

 “없습니다.”

 

 성은 유아의 눈을 보았다. 무언가 숨기는 바가 있음에도, 유아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절대, 말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성은 유아의 어깨에서 손을 스르르 내렸다.

 

 “폐모가 둘이어야 한다면, 진정 폐군이 되겠군요. 역사에 길이 남을.”

 “둘이라니?”

 “궐 안에 홍영목이 있습니다. 제가 늦은 밤 은밀히 불러들였지요. 말해 줄 겁니다. 홍빈의 죽음을. 죽인자의 이름을.”

 

 성은 그나마 평안하기 시작했다고 여긴 궐이 다시 답답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과거의 압박감이 자신을 짓누르리라. 두려웠다. 모두 자신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런 어린 시절이었다.

 

 “그만하시오.”

 “전하의 벗이 말할 것입니다. 혜빈의 죄를.”

 

 ‘정훈세자도 그런 모습으로 돌아가셨다는 걸 듣고 난 후, 더 조바심이 났습니다. 난 당신을 그렇게 보내지 않을 겁니다.’

 

 유아는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세자가 혜빈의 처소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즉시 달려갔다.

 

 “어마마마.”

 “세자는 동궁전으로 돌아가세요.”

 “예.”

 

 윤희는 유아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스러웠다.

 

 “아니, 중전. 세자의 공부가 아직-”

 “세자에게는 스승들이 있습니다. 또한, 글공부를 하려면 제가 함께해도 될 일입니다. 마마보단 제가 더 나을 테니까요. 허니, 어미인 저의 짐을 덜어주시려 하는 것이라면 참으로 황송하오나, 이제 그러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시간이 없어도 짜내어서라도 세자를 잘 키워낼 생각이니.”

 

 유아는 등을 돌려 나가려했다. 그때 등 뒤에서 윤희가 말했다.

 

 “변하셨습니다, 중전.”

 

 유아는 등을 돌려 윤희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모성애가 그런 것인가 봅니다.”

 

 그리고는 휙 나가버렸다.

 

 “모성애라? 애도 낳아본 적 없는 것이.”

 

 ***

 

 운종가. 백선생의 책방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자, 자! 새치기 말고.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오늘은 딱 오십 권만 있소. 열하일기는 오직 내 책방에서만 판매를 하는 것이니, 혹여 엄한 놈이 필사를 하려거든 내게 신고하시오. 내가 책값에 열배를 드리리다.”

 “참이오?”

 “그럼! 나리가 오직 나에게만 글을 필사해 달라 부탁하였소. 이를 거기면 경을 칠 것이라고.”

 

 책의 독점. 지원의 청국 유람기는 입소문을 타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지원은 책을 판돈의 절반을 돌려받았고, 백선생은 덕분에 더욱 부를 쌓을 수 있었다. 책을 필사해 파는 법은 백선생이 시작해 상거래의 규율을 만들어갔다. 때문에 필사의 독점권을 따내고 오직 그 책방에서만 파는 책이 생겨나기 시작할 정도였다. 청국 유람기가 재미있다는 소식에 도성에 책이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했고, 관리들도 책을 사서 읽었다.

 

 “열하일기 읽어 봤나?”

 “참으로 재미나던데? 나도 청국 구경 한 번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네.”

 “이 양반은 글을 어찌도 이렇게 차지게 잘 썼는지 몰라.”

 “그러게. 술술 읽혀.”

 “헌데, 조정을 비판하는 내용도 있던데 괜찮을까?”

 “뭐, 어때? 다 읽는데. 다 잡아들일 건감? 그리고 전하께선 마음이 넓은 분 아닌가.”

 “그렇겠지?”

 

 그리고 그 책은 곧 성에게도 전달되었다.

 

 “전하. 열하일기라는 청국 유람기가 백성들에게 널리 퍼지고 있나이다.”

 “열하일기?”

 

 유아는 그 책은 이미 읽어보았고, 심지어 책 발매 전 조언도 해 준 상태였다. 이를 알 리가 만무한 성은 책을 읽어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이런 기괴한 문체는 내 처음 본다. 이런 책을 백성들이 죄다 읽고 있단 말인가?”

 “예, 전하. 큰 인기를 끌고 있-”

 

 봉수는 성의 눈빛에 말을 멈췄다.

 

 “이 책을 백선생이 독점하여 판다고?”

 “예. 전하. 중전마마께서는 책 발매 전 감수까지 하셨다 하옵니다.”

 “중전이? 이런!”

 

 성은 경악했다. 한편, 유아도 경악하고 있었다. 별궁으로 가 다시 대비를 만나는 자리였다.

 

 “거짓말.”

 “그 독약은 내가 처음 쓴 것이 아니야. 나도 알았어. 정훈세자가 죽은 후에야.”

 “당신은 정훈세자도 죽이려 했다지.”

 “아니. 단지 미워했을 뿐이야. 날 포기했던 사내에 대한 미움이랄까.”

 “사내?”

 “지금 최고상궁은 알 테지. 내가 삼간택을 할 때 날 보필했던 상궁이었으니까. 그 간택은 내가 세자의 후궁이 되느냐, 난 그렇게 알았어. 그게 늙어빠진 왕의 후처라는 걸 알았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었어.”

 “그래서 복수라도 하려고?”

 “혜빈한테? 그런 걸로 복수를 해? 더불어 되기도 하겠지만 아니야. 난 조선을 무너뜨릴 거야. 지긋지긋한 사내들과 사대부며 성리학 운운하는 것들을 한번에. 싸악-!”

 

 유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서 내 아이들을 죽였나?”

 “내가 말 했잖아. 업보라고. 하필 네가 그 자리에 앉았을 뿐이야. 누구라도 난 그랬을 거야. 헌데, 박귀인이 기어코 아이를 낳아버렸네? 혜빈의 꾐에 넘어가서.”

 “혜빈께서 이 모든 일을 알고 있단 말이야?”

 “다는 모를 거야. 자신이 세자를 죽이던 순간에 내가 있었다는 것 까지는.”

 “!!!”

 

 유아의 주먹이 순식간에 풀려버렸다.

 

 “... 뭐?”

 “그 독약 어찌 알았냐고? 혜빈 덕이지. 죽은 혜빈의 아비가 세자를 죽이고 세손을 택해야 한다면서 그 손에 쥐어줬거든. 난 그 새벽에 말을 달려 정훈세자의 품에 달려갔는데, 멍청한 놈. 사랑하는 여인이 준 거라고 그걸 받아먹더라고.”

 “자결을 했다고?”

 “이 세상에 나만 아는 일이었는데, 이제 너도 알게 되었으니, 어때? 나와 함께 조선을 무너뜨리지 않으련?”

 “미쳤어.”

 “미쳤지. 조선은 이미 미친 지 오래야. 그러니 다 무너뜨리자고. 누구든 다시 세우겠지. 새 나라를. 똑똑한 주상이 세우려나?”

 

 ‘아픈 이유를 알아버렸다는 건, 그만큼 고통도 오래, 강하게 온다는 뜻입니다. 해서, 그 고통을 씻어낼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 그것이 당신의 품인지, 사랑인지, 눈물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 고통을 평생 안으며 살아갈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만은 알리고 싶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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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87. 노래가 없어 2022 / 1 / 27 185 0 7182   
86 86. 옥좌를 노리는 여인 2022 / 1 / 27 184 0 6369   
85 85. 너는 어디에 있는가 2022 / 1 / 27 190 0 5311   
84 84. 피 묻은 적삼이여(2) 2022 / 1 / 27 190 0 5514   
83 83. 피 묻은 적삼이여(1) 2022 / 1 / 27 189 0 6858   
82 82. 추락에도 날개는 있다 2022 / 1 / 27 185 0 7682   
81 81. 미친 사람들의 세상 2022 / 1 / 27 189 0 7442   
80 80. 당신의 그 사람 2022 / 1 / 27 174 0 5712   
79 79. 괘씸죄 2022 / 1 / 27 199 0 8520   
78 78. 적과 아군 그 사이 2022 / 1 / 27 196 0 6977   
77 77. 두 얼굴의 왕 2022 / 1 / 27 192 0 6712   
76 76. 지킴의 무게에 대하여 2022 / 1 / 27 186 0 6566   
75 75. 젊은 날의 슬픔 2022 / 1 / 27 184 0 9694   
74 74. 돌고 돌아 겨우 만났는데 2022 / 1 / 27 183 0 11072   
73 73. 한 뼘만 더 2022 / 1 / 27 185 0 9327   
72 72. 이별한 그 날 2022 / 1 / 27 177 0 7058   
71 71. 신의 장난인가 2022 / 1 / 27 187 0 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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