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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드라큘라와의 조우
작가 : 명별
작품등록일 : 2022.1.23

드라큘라로 상징되는 현시대에 굴복해 가는 인간군상들을 그려나 볼까나 ㅋㅋ

 
명함이라도 받아둘 걸 4부
작성일 : 22-01-27 08:34     조회 : 170     추천 : 0     분량 : 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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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나타났다. 나는 웃옷을 벗고 의자에 얌전히 앉았다. 눈을 감고 목을 기울인 채 그의 송곳니가 나의 경동맥에 꽂히기를 기다렸다. 매달 겪는 일이지만 드라큘라 옆에서 목을 기울이고 눈을 감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내게도 고전적 조건형성이 이루어진 모양이었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조건형성자인 드라큘라의 옆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경건하게 앉았다. 내 곁에 서서 경동맥의 맥박이 빨라지기를 기다리던 드라큘라는 흡혈을 시작했다. ‘드르륵.’ 갑자기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뜨고 문 쪽을 바라봤다. 유리가 도시락과 셀카봉을 들고 문 앞에 서있었다.

  유리도, 나도, 드라큘라도, 모두 놀랐다. 멍하니 서있던 유리는 사과모양 도시락을 떨어뜨리고 뒤돌아서 달려 나갔다. 사과 도시락 뚜껑이 열리면서 새우볶음밥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유리는 셀카봉을 향해 “아, 여러분 잠시 방송사고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잠시 뒤 방송을 다시 하겠습니다.”라고 얘기했다.

  내 곁에서 피를 빨던 드라큘라도 사라졌다. 어지러웠다. 시야가 하얘지며 사방에 반짝이는 별들이 흘러 내렸다. 아무도 없었다. 이곳에는 드라큘라와 나, 단 둘뿐이었다. 나는 분명 사무실 문을 잠가 놓았다. 그런데…. 내가 드라큘라에게 흡혈 당하는 모습을 유리가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무실에서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나와 원룸으로 갔다. 엘이디전등 아래 주인을 잃은 유리의 물건들만 창백하게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밤새 유리에게 메시지를 넣어 보고,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유리가 살던 유리의 빈집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려 보았다. 거기에도 유리는 없었다. 원룸으로 돌아와 한손에 SDX-90 폰을 들고 침대에 누웠다. 유리에게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우선, 너에게 얘기하지 않고 사무실로 찾아간 것은 미안해. 하지만 이번 동영상의 콘셉트가 남자친구 모르게, 남자친구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가, 정성들여 만든 도시락을 전달하는 것이었어. 남자친구가 깜짝 놀란 뒤 감동스런 도시락을 먹는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방송을 하였고. 그래도 네가 당황해 할까봐 분명히 너를 위한 콘텐츠를 준비한다고 미리 얘기도 했어. 함께 새우 볶음밥을 만들면서 내가 너에게 찾아가리라는 정도는 네가 알아서 눈치 채고 있을 줄 알았고. 그런데 넌 눈치 채지 못했나 보더라. 방송의 현장감을 포기하고, 너에게 직접적으로 얘기 하지 못한 내 잘못이 크겠지만 나는 거짓방송을 할 수는 없었어. 그동안 네가 나에게 너의 성적 정체성을 속여 왔던 것처럼 말이야. 나는 지금 너와 함께 했던 시간 내내 너에게 농락당한 기분이 들어. 너와 함께한 내 몸이 더럽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 미안하지만 너의 원룸에 남겨 놓은 내 소지품들을 택배로 보내주었으면 해. 주소는 다음에 보내줄게. 우리 서로에게 아름다운 이별을 맺도록 하자.』

 

  내게서 유리도, 드라큘라도, 모두 떠나갔다. 유리가 소지품을 붙여달라고 보낸 주소로 찾아도 가보았지만, 그곳은 대여용 창고 주소였다. 유리에게 해명하고자 ‘그날 내 옆에 서서 목을 빨고 있던 남자는 인간이 아니라 드라큘라였어.’라고 메시지를 넣었다. 유리에게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누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허튼소리쯤으로 여겨질 것은 당연했다.

  유리가 떠나고 한달이 넘도록 연락이 닿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지나치게 단호한 유리의 태도가 갑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성적정체성이 그렇게도 중요한 일인가? 나는 유리가 나를 이용만하고 버려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드라큘라가 사라진 후 생활비 또한 바닥을 드러냈다. 드라큘라를 만나는 동안 씀씀이가 커져 여기저기 목돈의 카드 값을 메꿔야 했다. 급한 대로 나는 근처 택배 물류창고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집하트럭이 오면 물건을 분류하여 다시 배송트럭에 싣는 일이었다. 물건들을 하역하던 중 사무실 건물 관리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월세가 밀렸다는 전화였다. 이번 주 일요일에 짐을 빼고 열쇠를 반납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무실에 있던 짐을 원룸으로 옮겼다. 드라큘라에게 받았던 물품들을 박스 안으로 옮겨 담았다. 사무실 곳곳에는 혼자 즐겼던 취미생활의 흔적들이 씁쓸하게 남아 있었다. 짐정리를 마치고 빠뜨린 물건이 없나 점검하였다. 서랍 문을 여니 드라큘라와 작성한 계약서 한 부가 놓여 있었다. 쓰린 마음으로 계약서를 훑어봤다.

 

 제32조(비밀유지의무) ② 갑과 을은 상대방의 명시적인 서면 동의 없이 어느 누구에게도 갑과 을의 거래관계에 관한 정보를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불특정인 또는 특정인에게, 공개적 또는 비공개적으로, 유출하거나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단, 이 경우 과실, 무과실을 불문한다.

 

 제105조(계약의 해지) ③ 갑과을 중 어느 일방이 위 제32조를 위반하였을 경우 본 계약은 통보 없이 즉시 해지된다.

 

  나는 드라큘라에게 비밀유지의무를 어겼다. 내게 드라큘라와의 추억으로 남은 것은 이 쓸모없어진 흡혈계약서 한 부뿐이었다.

 

 *

 

  택배 물류창고는 정신없이 바쁜 곳이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작업을 하다 휴식알람을 듣고 작업을 멈췄다. 휴게실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는 사이 작업팀장이 들어왔다.

 

 “오늘은 본사에서 감사가 나올 거야. 소장님하고 본사 사장님하고 친한 거 다들 알지? 작업복, 안전화 챙겨 신고, 오늘 작업은 특별히 원칙대로. 원칙!”

 

  작업팀장은 여전히 거만했다. 이 일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3개월여가 되어갔다. 이제는 어느 정도 상, 하차 일이 몸에 익어 한결 수월해 졌다. 처음 한 달 동안은 허리도 숙이질 못할 정도로 고생했다. 힘든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요령’이라는 것이 생기니 어느 정도 버틸만해졌다. 휴식시간을 마치고 작업을 시작했다. 창고에 있는 물건들을 정신없이 지역별로 분류를 하고 있으니 집하트럭이 창고마당으로 들어왔다. 함께 분류작업을 하던 상수 형이 지게차를 몰고 집하트럭 쪽으로 갔다. 11톤 트럭의 윙이 열리고 상수 형이 집하물건들을 내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상수 형이 운전을 하고 지게차가 내리는 것이지만. 상수 형과 지게차는 절대로 동격이 아니다.

  택배 상, 하차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배송트럭들이 빠르게 출발할 수 있도록 신속하게 물건을 분류하고, 트럭에 실어 줘야했다. 나는 자리에 남아 끝나지 않은 분류 작업을 마저 했다. ‘쿵, 슉, 쨍그랑.’ 마당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상수 형이 지게차로 하차작업을 하다 3톤짜리 모래 부대를 엎어버렸다. 11톤 트럭 옆으로 조금한 모래언덕과 초록색 맥주박스가 어지럽게 쏟아져 있었다. 나는 지게차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아, 상수 형’이라고 불렀다. 상수 형은 지게차에서 내려 쏟아진 모래와 맥주박스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상수 형이 쏟아놓은 모래와 초록색 맥주박스를 보니 기시감이 들었다.

  드라큘라를 만나기 전 보았던 모래언덕 위의 초록거북이가 떠올랐다. 순간, 드라큘라는 어쩌면 내 곁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큘라가 모습을 바꿔, 지금 일하는 택배 물류창고 사업장으로 변신한 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현장을 보며 공상에 빠져있는 사이 작업팀장에게서 사무실로 들어오라는 메시지가 왔다.

  안전화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 문을 열고 작업팀장을 바라봤다. 어딘가 작업팀장의 얼굴이 드라큘라와 비슷해 보였다. 팀장은 나를 보고 소장실로 가라고 했다. 소장실문을 노크하고 들어가니 소장은 임원의자에 앉아 벽면 한가득 박혀있는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소장은 내가 들어왔는데도 계속해서 모니터만 보고 있었다.

  헛기침을 했다. 인기척을 느낀 소장이 임원의자를 돌려 나를 향해 앉았다. 소장의 얼굴을 보자 나는 숨이 ‘턱’ 막혀왔다. 그때 복도에서부터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서 있는 문을 밀치고 작업팀장이 누군가를 안내하며 소장실로 들어왔다. 공손해진 작업팀장의 어깨선을 따라 그가 데려 온 사람의 얼굴을 바라봤다.

 

 “본사 사장님 오셨습니다. 소장님.”

 

  작업팀장이 말하는 사장의 얼굴을 보자 막힌 숨에 모래를 뿌려 놓은 것처럼 호흡곤란이 오기 시작했다.

  임원의자에 앉아있던 드라큘라가 일어서면서 작업팀장이 데려 온 드라큘라에게 허리를 굽히며 악수를 청했다. 그들에게 나는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드라큘라들이 서로 반갑게 악수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얼이 빠져버렸다. 나는 떨리는 발걸음으로 작업장 뒷마당으로 뛰쳐나갔다.

 

 뒷마당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 유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 아이를 가졌다. 아이의 아빠이니까 너에게 알려주는 거다. 더 늦기 전에 너와 만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 빠른 연락 바란다.』

 

  혼란스러웠다. 가슴이 뛰어왔다. 알 수 없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려왔다. 빨리 유리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를 만나 그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려준다면, …어쩌면, 내말을 믿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나, 상수 형이나 드라큘라의 정체를 모르고 있어서,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것뿐이다. 그런데 유리를 만나면 유리에게 결혼을 하자고 해야 하나?

  솔직히 나는 유리랑 결혼을 해서 돌멩이처럼 깨지지 않는 단단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었다. 비록 지금 나의 여건으로 아이에게 풍족한 환경을 제공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마음만은 따듯하고, 착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나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아 갈 나이가 되면 어떻게 하지? 암담해 졌다. 갑자기 사위가 어두워지면서, 송곳니를 둘러싸고 있는 잇몸이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드라큘라가 사라지기 전에 미리 명함이라도 받아둘 걸…. 벌써부터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공중에서 나를 내려 보고 웃는 드라큘라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작가의 말
 

 작가의말은 드라마 찍고 죽었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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