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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흡혈 퇴마사
작가 : 제이드Q
작품등록일 : 2022.1.2

빙하 속 바이러스, 우주로 부터 날아든 괴물질에 의해 초토화된 지구.
흡혈귀 출신 파로크는 지구 정화를 위해 인간으로 환생한다.
숨어 있는 사악한 영혼들을 퇴마하는 임무를 맡고 내려온 파로크의 앞날은..

 
이상한 놈 1
작성일 : 22-01-26 06:31     조회 : 180     추천 : 0     분량 : 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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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로부터 1시간쯤 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저 살찐 분홍 새, 둥그런 털 뭉치 같은 살찐 파파의 본 모습이 천사란 사실이다.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죄로 인해 지구에 떨어진 에오와는 달리 파파는 잘 나가는 천사였다. 악마 새끼들에게 맞서 싸우기보단 주로 행성 주민들의 삶을 돌보며 지내는 게 주특기.

 

 때문에 소멸 될 염려는 거의 없었고, 매일 같이 악마 놈들과 죽기 살기로 싸우는 다른 천사들과는 달리 나름 한가한 편이다.

 

 그런 파파가 이곳에 온 건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바로 에오와의 친분. 대충 파고들자면 오래전 파파가 지옥에 떨어질 만큼 큰 실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녀가 적극적으로 파파를 대변해 줬다는 거다.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으니까.

 

 동료 하나가 더 생겼으니, 내 입장에선 당연히 기분이 좋아야 했고, 녀석을 반겨야 했다.

 

 그런데 기분이 묘했다.

 

 마음에 들기는커녕 앞으로 골치 아픈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란 막연한 불안, 짜증, 질투심까지 느껴졌다.

 

 “와, 이게 다 네가 한 거라고?”

 

 “파파!”

 

 부엌 식탁 위엔 먹음직스럽게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구운 빵과 스테이크, 치즈 케잌, 과일과 쥬스, 와인까지. 몽땅 파파가 가진 힘으로 생겨난 것들이었다.

 

 “이런 능력은 대체 어디서 얻은 거야?”

 

 믿기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천사들에게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파파의 훌륭한 솜씨지.”

 

 에오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파파파!”

 

 “일단 먹자.”

 

 떨떠름한 얼굴로 식탁 의자에 앉았다.

 

 파파는 에오 무릎에 척 올라타 앉았다. 날개를 마구 움직이면서.

 

 깃털이 떨어지지 않는 게 신기할 지경. 웃을 때 눈매가 가늘어지는 것도 완전 신기했다.

 

 아무리 봐도 에오와 스킨십을 하는 것처럼 보여서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같은 천사라니까. 그리고 천사가 설마 이상한 짓을 할 리가 있나, 생각하며 포크를 집어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녀석은 쉴새 없이 파파, 란 말을 내뱉었고, 에오는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둘의 즐거운 분위기를 깰 수가 없던 난 묵묵히 먹는 일에만 열중했다.

 

 

 지루한 아침 식사 시간이 끝났다.

 

 빈 접시와 포크, 컵 따위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식탁 위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 파파가 노란 부리를 움직였다.

 

 “쟈쟈쟈쟈!”

 

 어? 이번엔 말이 바뀌었다. 파파에서 쟈쟈로.

 

 역시나 에오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뭘 하려구? 허공으로 부웅, 떠올라 있던 파파의 몸에서 푸른 빛이 새어 나오더니 빠르게 주위로 펴져 나갔다.

 

 ‘설마 저 뚱땡이가 마법이라도 쓰는 건가?’

 

 설마 그렇기야 하겠어? 라고 반신반의하며 서 있자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식탁 위에 있던 접시와 포크가 몽땅 사라져 버렸다.

 

 아무런 소리도 냄새도 촉감도 없이.

 

 -헉

 

 뭐지, 저 녀석? 슬그머니 나를 의식하는 파파의 표정.

 

 대놓고 자랑하지만 않을 뿐. 나 잘났다, 라고 하는 얼굴이다.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는 나와는 달리 에오는 꺅!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면서 파파를 붙잡고 얼굴을 마구 비벼댔다.

 

 -헉스...

 

 아무리 같은 천사라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파파란 녀석은 남자가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음흉한 눈빛을 드러낼 리 없었다.

 

 개빡침이 몰려들었지만. 꾹 참았다.

 

 저놈을 잡아다 기름에 튀겨 버려? 아니면 케첩 뿌린 치킨?

 

 “어때? 파로크? 내 친구 진짜 대단하지?”

 

 “어.”

 

 짧게 대꾸했다.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잘못하면 살찐 저 녀석에게 에오를 빼앗겨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몸속의 피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전신에 살기가 폴폴 넘쳐 흘렀다. 적갈색 눈동자는 냉혹하게 변했다.

 

 사나운 포식자가 먹이를 사냥하기 직전처럼 온몸의 신경이 녀석에게 집중됐다.

 

 “이제 후식 먹자. 뭐가 좋을까? 파로크?”

 

 “.......”

 

 스킨십을 끝마친 에오가 내게 물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횅하니 밖으로 나가 버리고 싶었다.

 

 그래, 니들끼리 잘 먹고 잘 살라고 소리치면서.

 

 하지만 이런 일로 속 좁게, 게다가 상대는 인간도 아니고, 천사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만큼 뚱뚱하고 못생긴 새였다.

 

 파파, 규규, 쟈쟈. 라고 떠드는 것도 맘에 안 들었다.

 

 지구에 내려왔으면 지구인 말을 해야 알아듣지.

 

 지금 뭐하자는 거냐.

 

 “파로크?”

 

 “근데 우리 이제 퇴마해야 돼.”

 

 마지못해 내가 대답했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착 가라앉아 버렸다.

 

 시무룩해 보이는 파파의 모습에 속으로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참에 녀석을 짓밟아 버리자.

 

 “파파? 여기 온 목적이 뭐야?”

 

 “파파...”

 

 내가 에오의 얼굴을 쳐다보자, 그녀가 파파를 대신해 대답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데.”

 

 “그럼 언제?”

 

 “후식 먹고 하자는데?”

 

 “하루종일 처먹, 아니 배부른데 뭘 또 먹냐고 물어봐 줘.”

 

 “파파...”

 

 “그렇게 심하게 닦달 하지마. 우린 여기 엄청 오래 있어야 하잖아. 100년도 아니고 500년도 아니고, 무려 1000년이나 있어야 된단 말이야. 후식을 먹을 시간을 가질 권리가 충분해.”

 

 “배부르면 빨리 못 뛰어.”

 

 에오의 눈을 빤히 응시하며 대꾸했다.

 

 파파는 대놓고 시무룩한 티를 냈다.

 

 그러더니 이내 그녀의 무릎 위로 내려앉아,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저, 저 자식이! 지금 어디에 앉는 거야.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군.

 

 이건 단순한 질투심이 아니다. 그냥 저 예의 없는 녀석에게 화가 난 것일 뿐.

 

 끓어오르는 가슴을 억누르며 그렇게 서 있을 무렵, 파파인지 파쪼가린지 하는 녀석이 그녀에게 노란 부리를 갖다 댔다.

 

 볼, 이마도 아닌 붉고 도톰한 입술에 부리를 처박았다.

 

 “파파!”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에오와 파파 모두 놀라 날 쳐다봤다.

 

 대충 아무말이나 내뱉으려 입을 열었다.

 

 “이리와.”

 

 “파파?”

 

 “좀 떨어 지라구. 니들 무척 더워 보여.”

 

 “파파...”

 

 굳이 에오가 해석을 안 해줘도 녀석의 대답을 알 수 있었다.

 

 파파는 껌딱지처럼 그녀에게 꼭 붙어 있었다.

 

 천사는 무슨. 음흉한 놈 같으니.

 

 긴 팔을 불쑥 뻗어 파파를 홱 낚아챘다. 동그란 눈동자를 움직여 날 쳐다보는 파파를 향해 말했다.

 

 “이제부턴 산책 시간이야.”

 

 파파를 겨드랑이 사이에 끼웠다.

 

 “웁! 파파!”

 

 꿈틀거림이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시원한 바람, 둥근 태양, 하얀 구름덩어리들이 머리 위를 날고 있었다.

 

 “아 좋다. 그치 파파? 큭큭!”

 

 오랜만에 좋아진 기분. 대놓고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 같아선 팔에 힘을 준 채, 건방진 녀석을 팟! 터뜨려 없애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 이렇게 참기만 하면 병들어 죽을텐데.

 

 흡혈귀건, 인간이건 간에 풀건 풀고 살아야 하는데.

 

 어째 점점 더 시궁창 속으로 빠져드는 이 엿같은 기분은 뭘까.

 

 

 오후가 되기도 전에 파파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속에 시커먼 구렁이가 드글거리고 있는 녀석은 떠도는 영혼들을 흡수해 지옥과 명계, 천계 등으로 보내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단 거다.

 

 그래서 배가 저렇게 뚱뚱한가. 부적을 이용하는 나와는 달리 알아서 갈 곳으로 보내버린다니. 그것도 그냥 흡입 한번 만으로. 거기에 더해 영혼 숫자는 별로 중요치 않다고 한다.

 

 한 번에 수백, 수천도 가능하다고 말하며 눈을 가늘게 뜨는 파파.

 

 분명 저 녀석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분명했다.

 

 아.. 가슴이 찌릿찌릿. 삼각관계에 빠져들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뒤로 한 채.

 

 본격적인 지구 정화 활동을 시작했다.

 

 어젠 중구난방, 그냥 보이는 놈만 해결했지만. 오늘부턴 뭔가 계획적으로 움직일 필요성을 느꼈다.

 

 -촤라락.

 

 돌돌 말려 있는 지도를 펼쳤다. 파파가 건네줬단 사실만 빼면 아주 좋은 물건이다.

 

 싫든 좋든 저 녀석은 짜증날 정도로 많은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무슨 말만 하면 척척 필요한 걸 알아서 갖다 주냐.

 

 그래도 더 이상 에오에게 치근덕거리는 꼴을 보긴 싫다고 생각하며.

 

 눈동자를 움직였다.

 

 “여기가 우리 위치니까. 이 구역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난 다음. 이동한다.”

 

 말을 마쳤다. 파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오가 입을 열었다.

 

 “그런 거 말고 지휘를 하란 말이야. 넌 대장이고 우린 병사들이잖아.”

 

 “지휘... ”

 

 기가 막혔다. 한 놈은 파파, 라고 떠들어 대는 살찐 새, 또 다른 동료는 천둥소리에도 놀라 자빠져 버리는데.

 

 군대 용어 쓰면 뭔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할 거면서.

 

 베이비? 그런 건 내가 다 알아서 해요? 음?

 

 “저쪽에 엄청 많아. 일단 저기부터 털자.”

 

 말을 마친 내가 몸을 움직였다.

 

 “파파?”

 

 “내 눈엔 아무것도 안 보여. 아 이제 보이네? 같이 가.”

 

 뒤쪽에서 허둥지둥 다가오는 에오와 파파.

 

 “다리 아파! 천천히 좀 가!”

 

 “파파파!”

 

 뭐라는 거냐, 쟤들.

 

 앞으로 무진장 피곤할 것 같은 서늘한 예감.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우주천신마제압소멸부.”

 

 말이 끝내기도 전에 허공에 크고 작은 부적이 생겨났다. 붉은색, 구부러지고 휘어진, 뜻을 알 수 없는 글자가 박힌 부적이 곧장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드러난 영혼들은 셀 수 없이 많았고, 크기나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사람 얼굴처럼 생겼거나 짐승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는 것들, 흩어지는 구름처럼 이리저리 쉴 새 없이 형체를 변형시키는 것들까지 다양했다.

 

 대충 눈으로 놈들을 세어보다가 이내 포기해 버렸다.

 

 겹겹이 포개어져 있는 놈들이 많아서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

 

 -파파팍!

 

 머릿속으로 타락영혼들의 생전 모습, 경험, 생각과 느낌들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왔다.

 

 헉, 소리가 났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감정이 다양했던가.

 

 어금니를 깨물며 타락 영혼들의 고통과 신음을 맞받아쳤다.

 

 날아오른 부적들이 타락 영혼들에게 부딪히자 화르륵, 불꽃이 튀어 올랐다. 귀를 찢는 울부짖음, 광인의 웃음소리들이 메아리쳤다.

 

 -꺄르르르륵!

 

 -꾸오오오오악!

 

 얼핏 들으면 이게 사람 소리인지 짐승 소리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 하긴, 인간의 육신을 벗었으니 이젠 더이상 인간이 아닌 것인가?

 

 걔 중엔 애걸복걸하며 내게 사정하는 놈들도 있었다.

 

 무시하고 연달아 부적을 날렸다. 어차피 지구에 떠도는 영혼들 대부분은 명계로 건너가기 힘들 만큼 탁했다.

 

 물론 구원해 줘야 할 존재들도 있긴 했지만. 그런 존재는 부적을 날리는 순간 알아서 자동 전송되기 때문에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휘리릭!

 

 “너희들은 몽땅 소멸행이다! 우주천신마제압소멸부!”

 

 적갈색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고, 굳건히 버티고 서있는 다리는 강철처럼 단단했다.

 

 애원이 먹히지 않자 타락 영혼들은 본격적으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강력한 놈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파파!”

 

 또 다른 부적을 날리려던 참이었는데.

 

 이미 맡은 구역을 쓸어버린 파파가 불쑥 끼어들었다.

 

 살찐 파파는 자신에게 맡기라는 듯, 비장한 얼굴로 허공으로 부웅, 떠올랐다.

 

 “그 자식들은 내가 처리할 거야.”

 

 하지만 파파는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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