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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로맨스, 그 찌질함에 관하여
작가 : 열해
작품등록일 : 2022.1.2

찌질한 과거를 청산하고 다시금 사랑을 시작하려던 나.
찌질함은 결코 벗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13화
작성일 : 22-01-26 00:14     조회 : 192     추천 : 0     분량 : 5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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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3화>

 

 

  재빨리 버스에 탑승했다. 타자마자 자리에 앉아 몸을 숙였다. 그녀가 박혜민에게 내 얘길 했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역시나 난 또 바람피우는 남친이라도 된 듯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약속 장소에서 그녀를 기다리며 다리까지 떨며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들어왔다.

 

  “선생님, 여기에요!”

  “많이 기다렸지, 미안. 학생이랑 얘기 좀 하느라.”

  “학생이요? 누구요?”

 

  난 그녀가 채 자리에 앉기도 전에 물었다. 그녀는 묘한 눈초리로 날 보더니,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까 낮에 너랑 같이 있던 그 친구 있잖아, 박혜민?”

  “아…….”

  “오늘 원래 저녁 먹기로 했다며?”

  “네? 아, 그걸 어떻게…….”

  “걔가 먼저 얘기 하더라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았어. 괜히 나랑 만난다고 얘기하면 서로 뻘쭘하잖아.”

 

  놀라웠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녀는 모든 근심을 덜어내 주었다. 난 아까 그녀와 박혜민이 나란히 걸어오던 모습을 떠올렸다. 박혜민은 참 예쁜 아이였다. 학생으로서 하는 짓이 모범적이고 예쁘다는 것도 있었지만, 여자로서도 꽤 미인이었다. 내가 아직 학생이었다면, 분명 쫓아다니며 고백이라도 했을 것 같은. 아마 박혜민이 공부 때문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겠지만, 주변에 귀찮게 하는 남학생들도 많을 것이 분명했다. 반면 그녀는, 예전의 풋풋함을 많이 잃은 상태였다. 원래 여자들은 출산한 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많은 것들을 잃게 된다고들 하던데, 아마 그녀도 피해 가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건 객관적인 시선에 의한 표현일 뿐이고, 나에겐 여전히 세상 누구보다 예쁜 사람이었다. 박혜민이 옆에 있어도, 난 분명 그녀에게서 풍기는 아름다움이 훨씬 뛰어나다고, 그렇게 믿었다.

 

  “오랜만이네. 진작 만나서 대화도 하고 그랬어야 하는데 말야.”

  “아녜요. 선생님 그간 정신없으셨을 텐데…….”

  “참, 늦었지만 선생님 된 거 축하해. 성현이 말대로 정신이 없어서, 선물을 준비 못 했네. 대신 오늘은 내가 왕창 쏠 테니까, 맘껏 먹자.”

 

  완전 짙은 어둠으로 자신의 주변을 덮어놓았던 그녀가, 조금씩 빛을 찾아 구멍을 뚫어놓은 것 같았다. 완벽히는 아니지만, 조금은 밝아진 모습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한 잔, 두 잔 술잔을 부딪치며 스승과 제자가 아닌, 어른과 어른으로 우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처음 술자리를 같이할 때 그녀는 두 잔 이상 마시지 않았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술이 늘어서인지, 세월이 쌓여서인지 그녀는 나보다 훨씬 술을 편하게 넘겼다. 취기가 조금 올라왔을 때 조심스런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선생님, 그럼 요샌……. 집에 혼자 계신 거예요?”

  “나? 그렇지, 뭐. 참 신기한 게, 어떻게 사람들은 내가 말도 안 꺼냈는데 나한테 일어나는 일들을 다 알고 있는 걸까?”

  “아, 죄송해요. 저도 어디서 들은 얘기이긴 한데…….”

  “아냐, 죄송하긴. 남편이랑 사이가 안 좋은 것 맞아. 자꾸 얼굴 마주치면 마음이 힘들더라고. 그래서 잠시 떨어져 있기로 한 거야.”

  “제가, 힘들 때 위로해드리고 많이 웃겨드릴 테니까 언제든 콜 하세요!”

  “나야 좋지. 언제까지 꽁해 있을 수는 없겠더라고. 사람들이랑도 어울리고 해야지 나도. 적응 잘 할 수 있게 많이 도와줘 성현쌤이.”

 

  그녀와의 관계가 급속도로 개선되었음을 느꼈다. 난 어린 시절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제 더는 찌질하게 굴지 않아야겠다고, 그녀의 상황이 어떠하든 그저 내 감정에 충실하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다.

  다음 날부터 계속 그녀 근처에서 머물렀다. 아침에 가장 먼저 출근해서 그녀 책상 위에 따뜻한 커피를 올려놓았다. 그녀의 하루가 좀 더 달콤하게 시작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틈틈이 메시지를 보내 기분이 어떠한지도 확인하곤 했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엔 함께 휴게실에서 수다를 떨기도 했고, 또 수업 연구도 함께 했다. 분명 내가 학생이던 때와는 달랐다. 우리의 관계는, 부단히 발전하고 있었다.

  시험 기간이 다가왔다. 학생들은 시험이 끝난 후 독서실이나 학원으로 향하지만, 우리 교사들은 이 시험 기간이 꿀맛 같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기회 같은 시간이 되었다. 오후 수업이 없기 때문에, 적지 않은 교사들은 조퇴를 신청하고 일찍 퇴근을 했다. 시험 기간은 3일. 이 3일을 어떻게 보내야 후회 없이 보낼 수 있을지 한참이나 고민을 했다. 당연히 그녀와 함께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하필, 시험 마지막 날에 전체 교사 회식이 잡혔다. 재단 이사장의 특별 보너스가 지급되었다고 했다. 주변 선생님들은 원래 이맘때쯤 이사장이 한 번씩 학교에 들르는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래서 일부러 일정도 따로 잡지 않는다고 했다. 난 더러운 사회생활의 악습을 한탄하며 나머지 이틀 동안은 제발 아무 일정도 생기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녀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선생님, 시험 기간엔 뭐 하세요?’

 

  답장이 오는 데에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분명 긍정적이었다. 아니, 다소 놀라운 답이기도 했다.

 

  ‘첫날 끝나고 영화 한 편 같이 볼래?’

 

  영화! 그녀가 내게 영화를 보자고 했다. 영화는 처음이었고, 난 영화는 연인 사이인 남녀만이 즐길 수 있는 데이트라 생각하고 있었다. 설렘을 억지로 억누르며 침착하게 답장을 보냈다.

 

  ‘혹시 보고 싶은 영화 있으세요?’

  ‘그런 건 없고, 그냥 영화 한 편 보고 싶어서. 성현쌤이 찾아봐 줄래? 난 뭐든 좋아.’

 

  어쩔 수 없었다. 난 실로 오랜만에 인터넷 검색을 했다. ‘첫 데이트 때 영화’라고. 첫 데이트는 아니었지만 마치 처음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동안은 주로 퇴근 후, 저녁 시간에만 만날 수 있었는데 점심부터 저녁까지, 정말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날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겐 특별하게 느껴졌다. 대부분 검색 결과는 공포 영화로 향하고 있었다. 심지어 공포 영화를 함께 볼 때의 심리상태를 인지분석적 차원에서 연구한 자료도 나왔다. 어이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난 꼼꼼하게 읽었다. 그런데 검색창 구석 즈음에 솔깃한 내용이 있었다. 공포 영화를 보라는 것은 스킨십을 유도하려는 행위이며, 진정으로 상대와 사랑의 감정이 싹트길 원한다면 로맨스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라는 것이었다. 와닿는 내용이었다. 난 당장 영화관 홈페이지 접속해 영화들을 찾아보았다. 정확히는 영화들을 분석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각 영화들의 장르와 배우, 대략적인 이야기 전개 등을 면밀히 파악했고, 후보가 될만한 영화들을 골랐다. 그리고 그녀에게 두 영화의 선택권을 주었고, 우린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시험 첫날, 난 시험 감독이 이토록 지루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처음 알았다. 자습 감독을 할 땐 노트북으로 이것저것 업무를 하느라 시간이 훌쩍 잘 갔었는데, 시험 감독은 아이들 모두가 예민한 상태라 모든 소리를 죽인 채로 가만히 서 있어야 했다. 답안 카드를 바꿔 달라거나 질문이 있다고 손을 번쩍 드는 학생이 있는 게 반가울 정도였다. 그렇게 오전 내내 가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가고, 그녀와의 데이트를 맞이했다.

  그녀와 난 함께 버스를 타고 번화가로 나섰다. 두 시간 넘게 검색해 알아낸 분위기 좋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두 시간을 투자한 보람이 있었다. 그녀가 만족해했기에. 그리고 영화관에서, 우린 나란히 앉아 달달한 로맨스에 적절한 웃음까지 가미된 영화를 보았다. 그런데 내가 볼 땐 영화가 썩 나쁘지 않았는데, 옆에 앉은 그녀가 자꾸만 하품을 했다. 지루해서인지, 그냥 피곤해서인지 자꾸 궁금하고 신경이 쓰였다. 난 큰맘 먹고 그녀에게 속삭였다.

 

  ‘졸려요?’

 

  그녀는 고개를 저으면서 또 하품을 했다. 난 내 몸속에 있는 모든 용기란 용기는 다 끌어모아 그녀에게 다시 한번 속삭였다.

 

  ‘여기 기대도 돼요.’

 

  난 내 어깨를 툭툭 두 번 두드리며 말했고,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 화면만 응시했다. 그녀에게 편히 고민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 3초 아니 5초쯤 지났을까? 그녀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때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내 어깨는 딱딱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영화 뒤 내용은 보지도 못했다. 그녀에게 내 모든 신경이 향해 있었으니까.

  영화가 끝나고 그녀는 고맙다고 말한 후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사실 저녁을 함께 할 장소도 검색해놓았었는데, 아쉽게도 그녀를 보내야만 했다. 대신 그녀가 ‘연락할게’라는 말을 남겨주어서, 아쉬움은 금세 사라졌다.

  시험 마지막 날, 전 교사들은 학교 근처 식당에 모였다. 메뉴는 참 다양했다. 오리백숙, 닭백숙, 보신탕. 취향껏 골라서 앉으라는 이사장의 배려였다. 물론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막내 주제에 골라서 앉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녀 옆에 앉고 싶었으나 여자 선생님들이 끼리끼리 모여 앉아 있었기에 눈치없이 내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난 어쩔 수 없이 빈 자리, 오리백숙 테이블과 보신탕 테이블 중간 즈음에 앉아야 했다.

  불판에 고기를 굽는 곳이 아니어서 편하기는 했다. 보통 막내가 고기를 구워야 하니까. 마침 내가 앉은 자리가 애매해서 국자로 먹을 만큼 덜어달라느니 하는 요구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난 조용히 먹고 마시고를 반복했다. 함께 앉은 테이블 멤버들도 썩 나쁘지 않았다. 학교에서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소위 ‘아싸’ 선생님들이었다. 술을 즐기지 않았고, 나에게 강요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들 중 두 명이 엄청난 골초였다. 앉은 자리에서 몇 번이나 담배를 피우러 밖을 드나들었다. 나도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바람도 쐬고 싶어서 한 번은 따라나섰다.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어? 백 선생, 담배 피우게?”

  “아, 아닙니다. 안에만 있으니까 좀 답답해서요. 바람 좀 쐬려고요.”

  “그래, 그럼.”

 

  함께 나온 두 선생님은 영어과 배남건 선생님과 사회과 장은철 선생님이었는데, 나에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도 따라 나왔는데 민망하지 않게 말이라도 걸어줄 법했지만, 그들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둘이 굉장히 친하고 가까운 사이인 듯 했다. 계속 웃으면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장은철 선생이 내게 말했다.

 

  “백 선생. 여자친구 있어?”

  “네?”

  “아니, 그냥. 여기 여자 선생님들 많잖아. 어때?”

  “어, 어떻냐고요?”

 

  둘은 나와 삼각형 대형으로 서서는, 재미있는지 키득거리면서 계속 나에게 물었다. 뭔가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다.

 

  “솔직히 한번 말해봐. 우리 학교 여선생들, 좀 괜찮지 않아? 외모는 좀 빠지는데, 몸매가 아주……. 백 선생이 보기엔 어때?”

  “글쎄요. 전 그런 것 잘 몰라서…….”

  “이 사람 완전 숙맥이네.”

 

  금세 관심이 식었는지 다시 둘끼리 대화를 했다. 듣기에 매우 거북했지만, 참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담배는 또 어찌 그리 많이 피우는지, 한 대를 다 피우고 또 한 대를 꺼내 물었다. 계속 대화 주제는 여선생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배남건 선생이 그녀를 언급했다.

 

  “근데 말야, 최단비 있지? 이번에 복직한.”

  “아, 걔? 걔 완전 인생 꼬였더구먼. 쯧쯧”

  “어떡하긴 뭘 어떡해? 남편이랑 별거 중이라는 거 들었어?”

 

  대화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난 고개를 바짝 들고 대화에 집중했다.

 

  “옛날부터 최단비 선생이 외모는 괜찮았잖아. 결혼해서 아쉬웠는데, 이제 곧 이혼하고 그러지 않겠어?”

  “그래서, 뭐 어떻게 해보려고?”

  “내가 오늘 한 번 꼬셔볼까 하는데, 어때?”

 

  이들이 왜 학교 안에서 아싸, 그러니까 왜 동료 교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나의 그녀를 장난삼아 언급한다는 것 자체로 너무 화가 났다. 감정 제어장치가 또 고장이 나버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아이, 씨발 진짜. 작작 좀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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