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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귀향 (세르반테스를 만난 조선인)
작가 : 윤준식 YOON
작품등록일 : 2022.1.23

[연재를 시작하며] (연재는 1-44장까지 이어집니다.)

‘제 책이 빨리 출판되기를 원하는 사람 중에는 중국의 황제가 계십니다. 한 달 전쯤 일입니다. 황제께서는 친히 중국어로 편지를 쓴 후, 사신을 보내 저의 [돈키호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황제께서는 학교를 세워 스페인어를 가르치겠다고 하셨으며, [돈키호테]를 교과서로 쓰겠다는 것과 제가 그 학교의 학장이 되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돈키호테] II, ‘레모스 백작님께 올리는 헌사’ 중)

한 사람의 ​간절한 소망은 수 백년을 뛰어넘는 것일까?

세르반테스의 펜을 움직여 [돈키호테]에 남겨진 한 영혼의 흔적!

400년 넘게 기다려왔고,

너무나 애절했기에 또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한반도 남쪽의 한 마을로 이어진 무지개!

그 허구같은, 그러나 역사적 실체의 다리를 건너본다!

(본 이야기는 [돈키호테]라는 소설 속 한 귀절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작품 [돈키호테]는 물론, 당시 세계를 누볐던 스페인의 역사와 동시대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조선, 중국, 일본, 필리핀, 마카오) 등의 역사를 통합할 수 있는 문학과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내용을 구성하게 된다. 15년 간의 자료 수집을 통해 내놓는 역사 이야기이자 소설로, 몇 가지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히며, 특히 임진왜란 이후 전개된 1600년대 초 스페인과 조선 간의 관계를 이어줄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다.)

 
22. 바르셀로나 (Barcelona)
작성일 : 22-01-24 21:31     조회 : 190     추천 : 0     분량 : 4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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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바르셀로나

 

 일행은 마드리드에서 예상보다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약 9개월 정도 머물면서 스페인 왕실의 특별한 관심에 따라 공식 행사도 많았으며, 가장 실권자인 레르마 공작을 비롯해서 교황청에서 보낸 대사 등 스페인의 많은 고위인사들과도 만났다.

 

 쓰네나가는 마드리드 왕궁 가까이에 있는 왕실 전용 사냥터인 까사 델 깜뽀에서 펠리뻬 왕과 사냥을 하는 등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한편, 사절단의 일행으로 온 루이스 신부는 물론, 현재 일본에 있는 선교사들의 많은 수가 스페인 사람들이다 보니, 일일이 그들의 가족들과 만나는 일도 중요했다. 가족들은 마치 자신의 아들이 집에 온 것처럼 반겼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전달해달라고 편지도 써줬다. 아무리 신에게 자식을 바쳤다 해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먼 땅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자식의 안위 만을 바라고, 한 시도 쉼없이 기도한다고도 했다.

 

 로마 방문에 대한 교황청으로부터의 공식 승인도 늦게 났다. 인편을 통해 소식을 전하고 받아야 하는 물리적인 시간도 그렇지만, 교황청 내부의 절차에 따라 답을 내는 데에도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한다.

 

 일행은 이 시간을 이용해 마드리드 주변을 구경했다. 방문한 곳 중에서, 석희에게 가장 인상적인 곳은 엘 에스꼬리알 궁전이었다. 왕실에서 운영하는 여러 개 궁전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는데, 산 위에 드러난 건물의 위용은 참으로 웅장했다.

 

 마드리드에서 말을 타고 빨리 달리면 한나절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펠레뻬 2세가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베르사이유 궁전보다 더 큰 궁전을 짓겠다는 야심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파리까지 진격하여, 프랑스 왕으로부터 신교로 전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그는, 궁전을 짓는 동안 불편한 다리에도 불구하고 수 없이 오가면서 직접 지휘를 했다고 하니, 이 건물에는 스페인의 영광과 자부심이 담겨있다.

 

 스페인이 기독교 세계의 중심이면서 자신은 그 수호자가 되겠다는 펠리뻬 2세의 선언은, 종교 수호를 위해 유럽의 여기저기에서 일어난 신교 뿐 아니라, 터키와도 전쟁을 했으며, 이 궁전을 지으면서 세계 여러 곳에서, 성경과 기독교와 관련된 많은 물건, 즉 성물들을 비롯해, 수 많은 유골 등 귀한 것들을 이곳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한편,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오는 수많은 금과 은은 전쟁을 위해, 그리고 대규모 공사에 소모되었다. 엘 에스꼬리알은 궁전이면서 수도원이고, 학교이면서 거기에 왕실의 무덤, 즉 판테온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미 까를로스 1세 및 펠리뻬 2세 등을 비롯, 이후의 왕들의 무덤이 들어갈 공간을 미리 마련해놨다.

 

 루이스 신부와 쓰네나가의 입장에서는 일본에서 여기까지 온 임무와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을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다림은 너무나 지쳤지만, 마드리드 주변의 수많은 볼거리들은 그들의 초조와 불안을 잠시나마 잊게 해줬다.

 

 그러던 중, 로마로부터 전갈이 도착했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1615년 8월 15일 마드리드를 출발했다.

 

 첫 번째 기착지는 세르반테스의 고향이라는 알깔라 데 에나레스였다.

 

 마드리드에서는 하루를 가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이고 앞으로의 일정이 촉박하였기에, 수도원에서 단 하룻밤을 보낸 후 바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러나 석희는 그날 오후 특별히 부탁하여, 수도원 가까이에 자리잡은 대학교를 방문했다. 세르반테스가 말했던 것처럼 학교는 대단한 규모를 자랑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건물 안쪽으로 정사각형의 중앙 정원이 있었다. 정원을 중심으로 사무실과 강의실이 사방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안쪽 중앙 계단을 올라가 2층에서 다시 왼쪽으로 돌아서면 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에는 엄청난 수의 책들이 소장되어 있었다.

 

 조선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의 책들이 아주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오는 도서들이 여기에 보관된다고 했다. 학생들이 쉽게 이런 책들을 읽을 수 있다고 하니, 참으로 많은 정보와 지식이 대중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스페인에 국한되지 않고, 자신들이 찾아낸 세계의 이곳 저곳을 아우르고 있는 그런 자료들이었다.

 

 스페인의 각지는 물론,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이곳으로 유학을 온다고 했다. 특히, 그리스나 이태리에서 오는 학생들도 많다고 한다. 과거 스페인의 학생들이 이태리로 갔던 것과 다르게, 이제는 스페인에 외국 학생들이 모인다는 것이다. 스페인이 정치, 경제, 그리고 문화, 예술과 학문의 중심지라는 의미였다.

 

 세르반테스를 만났을 때, 자신의 집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기에, 안내원에게 부탁하여 중앙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세르반테스의 생가를 찾아갔다.

 

 사실, 세르반테스에게 이곳에 있는 집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그가 태어난 곳은 맞지만, 가족이 이 집을 떠난 지는 아주 오래 전이고,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어, 그의 자취가 전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르반테스가 이 집에 살면서,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집을 나와 다시 중앙광장으로 가는 길 양쪽에는 건물이 나란히 서있고, 그 밑으로 자연스럽게 회랑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회랑에서는 상설로 시장이 선다. 가게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석희는 그늘이 필요한 스페인에서 이런 형태의 가옥 구조가 매우 쓸모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도시가 세르반테스에게 안겨준 큰 선물은 신교의 등장과 함께 불붙은 종교적 논쟁이었다. 신교의 등장과 함께 구교, 그러니까 기독교에서는 반성과 개혁은 물론, 더욱 더 기독교를 보호하려는 경향도 대두되었는데, 트렌트 종교회의 등을 통해, 여러가지 강령을 확인하고, 정치적으로는 종교재판을 강화하는 정책을 폈다.

 

 알깔라 데 에나레스와 같은 대학은 결국, 인문주의적 학문을 가르치는데 전념하게 되었으니, 단속을 강화하려는 구교와 가까울 수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신교와 가까울 수도 없는 미묘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이런 모호한 상황은 기독교적 인문주의라는 단어로 설명되었다. 신에 의한 예정론과 함께, 인간의 자유의지가 동시에 강조되었으니, 모순적이지만, 예정론 속에 자유의지를 넣음으로써 둘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석희는 이런 구체적이고 심화된 내용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 했지만, 알깔라 데 에나레스 대학이 세르반테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대략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 날, 도시를 나온 사절단은 다로까를 지나, 서북쪽으로 계속 이동하여, 며칠 후 사라고사에 닿았다.

 

 세르반테스는 이 도시에 대해 애착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돈키호테] 1권에서 사라고사에 갔다고 예고했지만, 위작에서는 사라고사에 돈키호테가 간 사건을 크게 다루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 도시에 들어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석희에게는 이 도시가 마드리드와 똘레도를 혼합해놓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라고사를 나와 프라가를 지나 레이다에 도착, 다시 이구알라다를 지났고, 드디어 바르셀로나에 닿았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기 전에 일행을 놀라게 한 것은, 몬세랏이라는 산이었다.

 

 기암괴석이 끊임없이 펼쳐졌는데, 모양도 다양하지만, 그 규모도 어마어마했다. 유람도 할 겸, 일부러 이 산을 통과하기로 했으나, 산을 넘기는 참으로 위험했다. 큰 기암괴석들이 낭떠러지를 이루고, 길을 막았다. 길도 험했지만, 산적들도 많다고 했기에 특별히 조심스러웠다.

 

 산속 위험한 곳에 만들어진 수도원은,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조선의 산에 있는 대사찰도 나름 웅장하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석희는 생각했다. 일본인들도 감탄을 연발했다. 일본 각 지역의 큰 성들도 크고 정교했지만, 몬세랏의 수도원에 비할 게 못 되었기 때문이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일행은 다시 배를 탈 때까지 며칠을 기다려야만 했다. 스페인에서 만난 도시 중에서 가장 크고 번화했다. 건축 양식이나 사람들의 말도 마드리드와는 많이 달랐다. 지중해의 여러 도시들과 교류를 하면서, 스페인 내에서는 가장 앞선 도시라고 했다.

 

 여기의 아라곤 왕국은 까스띠야 왕국과 결합하면서 스페인의 통일을 이뤘지만, 결국 지중해의 해상권은 바로 아라곤 왕국을 중심으로 통제되었으니, 바르셀로나에서 유럽의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항로가 많이 열려있다고 했다.

 

 따라서, 도시 곳곳에는 유럽인들 뿐 아니라, 아랍인들, 아프리카인들 등 사람들이 다양했고, 그 복장도 특이했다. 시장에서 파는 물건들도 다양했고, 모든 면에서 대단히 개방적이었다.

 

 말하자면, 바르셀로나는 이미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췄으니, 사절단에게는 기존에 접했던 세계와는 또 다른 차원의 발전된 유럽을 보게 된 것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로마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제노바를 가야했다. 일행은 드디어, 배3척에 나눠탔다. 그러나, 중간에 악천후를 만나 항로에서 벗어나게 되고, 프랑스의 상 트로페즈라는 곳에 기착했다.

 

 사무라이들은 변발에다가 모자를 썼으며, 무사의 복장에 짧은 칼과 긴 칼을 쌍으로 차고 있었으니, 무섭기도 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신기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풍랑으로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사람들을 보고, 이곳의 한 사람이 쓴, [일본의 오수지역 왕 마사무네가 교황에게 보낸 대사, 펠리뻬 프란시스꼬 쓰네나가]라는 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이들은 음식을 전혀 손으로 건드리지 않고 단지 작은 막대기 두 개로 집어 먹었는데, 세 손가락 사이로 잡고 움직였다.

 

 한편, 손바닥 만한 크기의 비단 종이 같은 것으로 코를 풀었는데, 한 번 풀고는 그냥 땅바닥에 버리곤 했다.

 

 주변에 모여든 우리를 보고 대단히 즐거워하며 다가오기도 했다.

 

 칼을 차고 있었는데, 칼은 얇은 실 위에 부드러운 종이를 올려놓고도 그것을 자를 정도로 날카로웠으며, 종이를 자를 때 칼 소리가 날 정도로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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