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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로맨스, 그 찌질함에 관하여
작가 : 열해
작품등록일 : 2022.1.2

찌질한 과거를 청산하고 다시금 사랑을 시작하려던 나.
찌질함은 결코 벗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12화
작성일 : 22-01-24 00:03     조회 : 207     추천 : 0     분량 : 5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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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예전처럼 자체 발광하던 그녀가 아니었다. 뿜어져 나오는 건 빛이 아니라 짙은 어둠이었다. 그 어둠은 차갑고, 고통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녀가 갑작스레 복직하게 된 건, 아이의 죽음 때문이었다. 아이는 날 때부터 희귀질환을 앓았다고 했다. 출산 후 계속해서 아이를 돌보던 그녀였지만, 이제 휴직의 명분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아이가 없으니, 육아 휴직은 불가능했고 그녀의 자리로 돌아와야만 했다.

  아이를 잃은 상실감과 더불어, 결혼한 남편과의 사이도 틀어졌다고 했다. 바라보기만 해도 상처가 떠오르는 부부 사이가 원만할 리 없었을 것이다. 항간엔 남편과 별거 중이라는 이야기도 돌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를 괴롭히는 건 아이와 남편 문제만이 아니었다. 위로도 아니고 관심도 아닌, 그저 가십거리의 대상으로 여기는 따가운 시선들이 그녀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몇몇 여선생님들이 그녀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그저 형식적인 행동일 뿐이었다. 그녀는 세상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행동했고, 미소가 사라진 그녀를 보는 일은 나에게도 역시 힘든 일이었다.

  며칠 동안 그녀 주변의 공기는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탁한 기운이 가득했다. 누구도 그녀 근처에 머물고자 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른 집단과 달리 화목함을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여기는 국어 교사 모임에서, 그녀의 빠른 적응을 도와준답시고 회식을 열기로 했다. 오랜 휴직에서 돌아온 그녀를 환영해준다는 명목에서였다. 사실 난 탐탁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자식을 잃은 엄마에게 웃음을 강요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술자리에 절대 올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고 또 오지 않길 바라기도 했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참석했다. 그래도 자신을 위해 마련된 자리인데 억지로라도 얼굴을 비추고자 했던 것 같았다. 사회생활의 쓴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다행히 식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정말 잠시만 있다가 급한 일이 있다며 자리를 뜨기는 했지만, 억지 미소 뒤에 감춰진 그녀의 고통이 고스란히 보였다. 마음이 아팠다. 그녀가 돌아온 후 며칠이나 지났지만, 그녀와 난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그녀가 날 피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 회식자리가 기회라 생각했지만 그녀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고 난 후엔 그 마음이 사라졌다. 괜히 나라는 골칫거리를 더 얹어주고 싶지 않았다. 국어 선생님들은 그녀가 자리에서 떠난 후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이나 나누었다. 술자리의 안줏거리마냥 그녀의 이름이 테이블 위를 왔다갔다 했다.

 

  “최 선생 말야. 적응하기 힘들겠지?”

  “그러게요. 얼굴도 많이 상한 것 같죠? 참 예쁜 사람이었는데 말이에요.”

  “아이 낳고, 또 키우고, 또 맘고생하고……. 뭔가 세월의 폭탄을 맞은 사람 같아. 안타까워, 정말.”

 

  난 홀로 잔을 비우며 생각했다. 슬픔이 가득한 얼굴이긴 하지만, 그녀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라고. 잠시 그늘 아래 있다고 해서 그녀가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 모두들 그녀가 늙어버렸다며 안쓰러워했지만, 내 시야에 담긴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예뻤다. 상처가 아물면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내가 그녀의 미소를 되찾아주고 싶다는 생각, 아니 다짐을 했다. 내가 그녀를 다시 웃게 만들리라.

  며칠 그녀와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한 방법들을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메시지로 슬그머니 연락하긴 싫었다. 철없던 어린 시절의 내가 아님을 보여주고 싶었다. 진짜 어른이 된, 남자가 된 내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주려면 찌질한 예전의 모습은 최대한 감추어야 했다. 하지만 그 본성이 어딜 가겠는가. 난 찌질한 애송이에 불과했으니……. 그렇게 몇 주가 흘러버렸다.

  학교의 연중행사는 매년 틀에 박힌 듯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이맘때쯤 되면 무엇을 해야 하는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행사를 하겠구나’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정확히 2주 뒤는 새 학기에 부임한 뒤 처음 맞이하게 되는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중학교와 달리 고등학교는 시험 문제 출제가 굉장히 까다로웠다. 성적이 대입에 영향을 주다 보니 아무래도 학생들은 민감하게 굴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래서 각 교과 선생님들은 서로 출제 후 시험지를 교환하여 점검을 몇 번씩 반복한다. 최대한 오류를 줄이기 위해. 난 내 시험 문제를 출제하기도 벅찬데 다른 선생님들의 시험지까지 검토한다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밤을 새워서라도 해야 할 일이었다. 미친 듯이 문제와 씨름을 하고 있던 점심시간, 나를 향해 풍겨오는 소리가 있었다. 익숙한 듯 낯설고, 낯설지만 다정하고 따스한 발소리였다. 그녀였다.

 

  “백 선생님. 나 좀 도와줄래요?”

 

  다시 만난 이후 그녀가 내게 처음 뱉은 말,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난 순간 그녀가 그녀의 삶 속에서 자신을 구출해달라는 줄 알았다. 구렁텅이에 빠진 후 높이 손을 뻗어 내게 내민 것만 같은 그런 느낌.

 

  “백 선생님, 바빠요?”

  “아, 아뇨.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라니. 뭐 딱히 다른 말을 할 만한 것도 없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정신을 차리고 바라본 그녀는 내게 자신의 시험지를 내밀었다. 검토해달라는 의미였다.

 

  “내 시험지 좀 꼼꼼하게 봐줄 사람이 필요해서. 나 휴직을 오래 해서 감이 많이 떨어졌거든. 백 선생님이면 그래 줄 수 있을 것 같고. 선생님도 부탁할 거 있음 말해요.”

 

  그녀의 말투는 어색함 그 자체였다. 존댓말도 반말도 아닌. 날 교사로 대해야 할지 제자로 대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난 교사도, 제자도 아닌 남자로서 그녀에게 말했다.

 

  “저, 부탁드릴 것 있어요.”

  “응?”

  “시험지 봐 드릴 테니까, 저녁에 식사라도…….”

 

  그녀는 당황스러워했지만 난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들뜬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말았다. 주변의 힐끔거리는 시선도 인지하지 못 한 채 하고 싶었던 말만 계속 떠들어댄 것이다.

 

  “제가 대접해드릴게요! 뭐 드시고 싶은 것 없으세요? 말씀만 하시면…….”

 

  난 끝까지 나의 철없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제어장치가 매우 자연스럽게 발동했다. 박혜민이 찾아왔다.

 

  “성현쌤. 질문이 있어서 왔는데……. 다시 올까요?”

  “아냐, 와서 이야기 나눠. 그럼 선생님, 시험지 부탁 좀 드려요!”

 

  그녀는 도망치듯 가버렸고, 난 그녀 대신 내 시야를 차지한 박혜민을 데리고 교무실 밖으로 나왔다. 시험 문제 출제 기간에 학생들을 교무실에 둘 수 없었으므로. 결과적으로 저녁 약속을 성사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밖으로 나오면서 자꾸 뒤를 돌아다보았다. 낙심한 채 다시 제자리를 찾은 시선 속에는 내 속을 알 리 없는 박혜민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 문제집을 펼쳐 든 박혜민을 보며 난 마치 바람을 피우다 걸린 남자친구라도 된 것처럼 안절부절하고 말았다. 쓸데없이 당황해하고 있는 날 보며 박혜민은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쌤, 무슨 일 있어요? 바쁜 데 찾아온 건가.”

  “아냐. 어디서 막힌 건지 먼저 설명해볼래?”

 

  차근차근 자신이 어려움을 겪었던 문제를 설명하는 박혜민을 보며, 난 다시 한번 내가 박혜민에 대해 느끼고 있는 감정의 답을 찾고자 애썼다. 그냥 보고 있으면 참 기특하고, 귀엽고……. 볼수록 헷갈렸다. 사랑은 아닌 것 같은데 분명…….

 

  “어렵다…….”

  “그쵸! 이 문제 너무 어려워요. 진짜 한 시간은 붙잡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 그게 아니라……. 설명해줄게!”

 

  난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해맑은 박혜민의 미소를 확인하고는 녀석을 돌려보냈다. 덕분에 나도 한결 마음이 나아졌다. 그리고선 나도 모르게 갑자기 부리나케 박혜민을 다시 쫓아갔다.

 

  “혜민아!”

  “어? 쌤! 왜요? 문제가 이상했나요?”

  “아니, 그게…….”

  “전에 얘기했던, 예진이 말야.”

  “예진이요?”

  “예진이도 응원해줄 겸 우리…….”

  “응원이요?”

  “저녁이나 먹으러 갈까?”

  “네? 예진이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그래. 물어보고 알려줄래? 예진이 안 되면 둘이 가도 되고.”

 

  이는 사전에 계획은커녕 조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박혜민과의 저녁 식사. 사실 오히려 피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교감에게 불려가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으니 말이다. 괜한 오해를 사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최대한 오해의 소지를 주지 말아야 하는데, 난 박혜민에게 달려갔고, 저녁을 먹자고 말했다.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 따윈 중요치 않았다. 나에겐 꽤나 시급한 문제가 있었으니. 박혜민에 대한 내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싶었다. 상대가 학생이라서, 도덕적인 문제 때문에 억지로 부정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래서 확인이 하고 싶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때쯤, 박혜민에게 메시지가 왔다.

 

  ‘쌤. 예진이 학원 땜에 안 된다는데, 어쩌죠?’

  ‘그래? 그럼 뭐 둘이 가자^^’

  ‘쌤, 무리하지 않으셔도 되는데ㅋ 전 담에 가도 돼요!’

  ‘아냐^^ 그럼 방과 후에 정류장에서 만나!’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진이 핑계로 만남을 제안하긴 했지만, 사실 박혜민과 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으니까. 하루에 몇 번씩이나 들뜨는 것인지, 붕붕 떠서 우주로 날아갔어야 했는데……. 오후 내내 설레는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를 고민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방법? 메뉴도 고민했다. 피자를 먹었으니 파스타? 아니면 그냥 무난하게 한식? 그녀가 부탁했던 시험지 검토는 까맣게 잊은 채, 난 박혜민과의 만남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일과가 종료됨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천천히 짐을 싸고 밖으로 나섰다. 방과 후의 학교만큼 활기찬 순간은 없다. 지루한 학교에서의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가벼운 발길. 학생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교사인 나에게도, 퇴근 시간만큼 행복한 시간은 없었다. 정류장에 박혜민은 없었다. 그날그날 공지 사항이 길어지면 늦게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러려니 하며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메시지를 열었는데, 박혜민이 아니었다. 그녀의 메시지였다.

 

  ‘저녁, 오늘 사줄래?’

 

  아까 당황해하며 날 피하던 그녀가, 나에게 먼저 연락한 것이었다. 난 망설임도 없이 답장을 보냈다.

 

  ‘좋아요! 어디서 볼까요? 선생님 편하신 시간, 장소로 제가 갈게요!’

  ‘얼마 전 국어 선생님들 회식했던 곳 있지? 거기서 볼래?’

  ‘네, 그럼 정류장에서 만날까요?’

  ‘아냐. 먼저 가 있어. 늦지 않게 갈게.’

 

  난 뭔가 해냈다는 듯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실 내가 능동적으로 해냈다고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긴 했지만, 기다렸던 시간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기뻤다. 물론 동시에 박혜민과의 약속이 떠올라 망설이고 있었는데, 딱히 방법은 없었다. 부랴부랴 메시지를 보내 급한 일이 생겼으니 나중에 보자는 메시지를 남겼다. 다행히 박혜민은 괜찮다는 답을 금방 보내주었다.

  모든 게 맞아떨어졌고, 기분 좋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류장의 안내 기계에선 날 그녀와의 데이트 장소로 안내해줄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먼저 가라고 했던 그녀가 학교 정문 쪽에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번 버스를 보내고 함께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학생 한 명과 함께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정류장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옆 학생은, 박혜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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