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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드라큘라와의 조우
작가 : 명별
작품등록일 : 2022.1.23

드라큘라로 상징되는 현시대에 굴복해 가는 인간군상들을 그려나 볼까나 ㅋㅋ

 
명함이라도 받아둘 걸 1부
작성일 : 22-01-23 06:39     조회 : 270     추천 : 0     분량 : 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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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가 왔다. 나는 윗옷을 벗고 그를 향해 목을 내민다. 알아서 목을 내미는 내가 기특한지 그는 한쪽 눈을 다정하게 찡긋거린다. 그의 입이 나의 목을 향해 다가온다. 날카로운 그의 엄지손톱이 한 쪽 어깨를 짓누른다. 긴장한 맥박이 빨라진다. 그는 나의 경동맥을 향해 예리한 송곳니를 찔러 넣는다.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에게 목을 맡긴다. 나의 피가 그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의 심장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혈액이 그의 위장으로 넘어간다. 혈액으로 연결된 그와 나는 한 몸이 된다. 짜릿하다. 나는 알 수 없는 황홀경에 빠져든다. 내 몸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그가 한껏 빨아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그는 자제를 한다. 다음 달에도, 그 다음 달에도, 계속해서 그는 나의 피를 빨아야 한다. 그가 나의 피를 보다 잘 빨 수 있도록 나는 적극적으로 그를 향해 목을 기울인 채 눈을 감는다. 흡혈을 마친 그가 송곳니를 뽑아내자 밀린 청구서들을 청산해내듯 개운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 느낌을 그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 그와 나의 관계는 대등해야 한다.

 

 “알리신 향이 미약하게 나는군? 내가 마늘 먹지 말라고 했나, 안했나?”

 

 “그게, 일부러 먹은 건 아니고… 한국음식이 그렇잖아요. 다른 음식에 양념으로…”

 

 “됐고! 2번째 경고다. 먹는 것에 좀 더 신경 쓰기 바란다. 자, 청구한 SDX-90폰.”

 

  흡혈을 끝마친 그는 손수건으로 입을 닦더니, 침대 위에 SDX-90 스트레쳐블 폰 박스를 던져 놓고 사라졌다. 그가 던져 놓고 간 SDX-90 스트레쳐블 폰은 3일 뒤에나 시중에 판매될 예정인 최신 폰이다. 대체 이런 걸 어디서 구하는 걸까? 최면 따위를 걸어 공짜로 피를 빨아먹는 드라큘라는 아니니, 참 양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양심을 넘어서서 내게는 아주 감사한 드라큘라다. 한동안 멍하니 의자에 앉아있다 목 주위를 만져본다. 상처는 흔적도 없이 아물었다. 고맙습니다. 고객님! 자리를 옮겨 침대에 걸터앉는다. 문구용 칼로 스트레쳐블 폰 박스에 발린 테이프를 가른다. 고급스러운 스트레쳐블 폰의 몸체가 드러난다. SDX-90 스트레쳐블 폰은 세손전자의 차세대 주력 상품으로 메가 히트를 친 전작 SDX-80 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스펙을 자랑한다. 당연히 시중의 관심도가 무척 높은 제품이다. 오늘자 인터넷 기사만 보더라도 벌써부터 세손전자 매장 앞에 SDX-90을 사기위한 대기텐트가 20동이나 쳐져있다고 한다. SDX-90을 누구보다 빠르고 손쉽게 구한 나는 엄청난 특권을 움켜 쥔 듯 뿌듯해진다. 드라큘라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면서.

  매끈한 신상품 박스를 개봉하다 문득 유튜브에 언박싱(unboxing) 콘텐츠를 올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유리를 따라 초보 유튜버가 된 나는 개인채널을 개설한지 얼마 되지 않아 구독자 수, 조회 수 모두 형편없다. 만일 출시되기 전 SDX-90 폰 언박싱 콘텐츠를 올리면 엄청난 조회 수와 구독자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민을 접고 그만 두기로 한다. 드라큘라와의 계약상 비밀유지의무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다 판매되기도 전의 스트레쳐블 폰을 공개해 버리면 피곤해 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드라큘라가 어디서, 어떤 경로로 SDX-90 폰을 구해온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28일 뒤 그가 다시 찾아 올 때, 입수 경로를 확인한 후 콘텐츠를 올리기로 마음을 바꾼다. 그러고 보니 28일 뒤 드라큘라가 다시 찾아올는지 그것도 확실치 않다. 어쩌면 그는 평소보다 이틀에서 삼일정도 일찍 오거나, 늦게 올 수도 있다. 그는 내 혈액에서 마늘향이 난다고 불만을 토로 했다. 그는 스트레스에 민감하다.

 

  드라큘라를 만나기 전 나는 구직을 포기하고 근 1년여를 아무런 목표 없이 방안에서 게임만 하며 지냈다. 현실은 무미건조했고, 앞날은 불투명했다. 막막한 미래에 짓눌려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당연히 생활은 엉망이 되어갔다. 유리와의 관계도 금이 간 창문 마냥 언제 깨질지 몰랐다. 드라큘라와 계약하기 하루전날, 나는 유리랑 대판 싸우고 원룸으로 돌아와 술을 마셨다. 그리고 잠들었다. 다음날 인기척에 놀라 눈을 떠보니 머리 위에서 드라큘라가 나를 내려 보고 있었다. 그는 하얀 계약서를 흔들면서 다짜고짜 나에게 계약서에 서명부터 하라고 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내게 그는 오랫동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학교에 입학했을 때, 군대에 입대하고 제대했을 때,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에 실패했을 때, 상품을 구매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고, 특정 정당에 투표를 하고, 섹스를 하고, 밥을 먹는 그 모든 순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내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 볼 수 있다고 했다. 식은땀을 흘리는 내 앞에서 그는 나보다 더 자세히 나의 스펙을 줄줄이 읊어대기 시작했다.

  소름이 끼쳤다. 그는 자신에게 관음증이 있어서 나를 지켜 본 것은 아니라고 했다. 특별히 내게 애정이나 관심 따위가 있어서 지켜 본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했다. 그는 “수천만, 수억만의 인간들에 대한 빅 데이터가 내게 있는데 너만 콕 집어 지켜봤을 거라 생각하나?”라고 되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를 지켜보게 만든 것은 오히려 나 자신이라고 했다. 그를 알지도 못했던 나로서는 무척이나 황당한 이야기였다. 나는 숙취를 참아가며 그가 건네준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A4지 상단에 흡혈계약이라는 문구가 굵은 궁서체로 인쇄 되어있었다. 사표를 내기 전 이직을 위해 입사 지원서를 제출했던 회사가 떠올랐다. 그가 드라큘라라는 사실이 좀처럼 믿겨지지 않아 그에게 물어보았다.

 

  “저기요, 제가 혹시 예전에 입사지원서나 경력증명서를 제출한 회사의 인사팀 직원은 아닌가요? 지금 이 시간에 남의 집에 이렇게 입사 제의를 하러 왔다는 것은 범죄에 가까울 정도로 지나치게 열심히 일한다는 뜻이에요. 더군다나 당신이 주거침입의 죄를 저지를 만큼 난 훌륭한 인재도 못 되고요.”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을 보자 또 다시 전신에 소름이 돋아났다. 평범한 그의 웃음 속에는 어딘지 모르게 사람의 것 같지 않은 금속성의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었다. 그의 웃음을 보는 순간 수백 개의 면도날이 내 전신을 긁고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헛웃음을 터뜨리던 그가 갑자기 정색을 하자 나는 마법에라도 걸린 듯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졌다. 호흡곤란을 느끼며 살려달라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살아야한다.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의심하지 말자. 세상은 보기보다 물컹하고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곳이니까.’

  1년여 동안 방구석에 처박혀 게임만하며 지내다 느낀 점은, 시간이 갈수록 확고부동했던 이 세상은 물컹하고, 잘 휘어지고, 그래서 알 수 없는 것들로 변해갔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세상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된 것 만큼, 그가 진짜 드라큘라일 확률도 높았다. 그의 말을 미심쩍어하던 나는 살기위해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숨이 막혀 괴로워하는 나를 지켜보던 그가 손짓을 하자 나는 금세 숨을 쉴 수 있게 되어졌다. 한 손에 계약서를 들고 급하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나에게 그는 두려워하지 말라며 인간이면 누구나 자신에게 노출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며 자신에게 선택된 것을 영광으로 여겨야한다고 했다. 내가 만일 그의 계약서에 서명을 한다면 그와 나의 관계는 공급과 수요, 고용과 노동의 관계를 넘어 상속을 받을 수 있는 부모와 자식관계 이상으로 끈끈하게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겁을 먹고 있는 나에게 자신의 등장이 우연으로 느껴져 두려운 것뿐이라고 했다. 우연? 사실 많은 일들이 우연에서 발생하기는 했다. 그는 겁에 질린 내게 계약서에 서명을 한다면 자신과의 계약을 통해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만일 그와의 계약을 거절한다면 사회면 귀퉁이에 나에 대한 기사가 조금하게 실리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자신과의 계약을 맺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그의 말이 위로인지, 유혹인지, 협박인지 헷갈렸다. 정신을 차리고 손에 쥐고 있던 계약서를 살펴보았다. 흡혈계약이라는 제목 밑에 깨알 같은 글씨로 총108개의 조항이 적혀 있었다.

 

 제1조(계약의 목적), 제2조(갑의 권리와 의무), 제3조(을의 권리와 의무)…

 

 나는 드라큘라의 기다란 손톱을 보며 다음 장을 넘겨보았다.

 

 …제32조(비밀유지의무), 제56조(급여의 지급) … 제88조(흡혈량) ‘갑’의 ‘을’에 대한 흡혈량은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의 채혈권고기준에 따른다. 단, ‘갑’의 사정변경에 의한 정당한 요구 시 ‘을’은 ‘갑’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 제96조(식이조절의무), 제100조(건강관리), 제105조(계약의 해지), 제106조(손해배상액의 예정), 제107조(관할).

 

  ‘뭐? 드라큘라에게 관할?’ 그에 대한 믿음이 급격히 쪼그라들기 시작했지만 계약서를 끝까지 읽어보았다. 제108조를 끝으로 계약서 말미에는 계약일자 란과 갑과 을의 서명 란이 각각 있었다. 생명보험사 약관처럼 ‘갑’란에는 드라큘라의 서명이 미리 사인되어있었고, ‘을’란은 공 란으로 되어있었다. 계약서에 서명을 한다면 아마도 내가 ‘을’이 될 듯하였다.

 

 “이런 계약서는 처음 보는데요. 아니 그 보단 우리 집에는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당신 같으면 남의 집에 무단침입 해, 술에 덜 깬 사람 앞에 나타나, 이렇게 갑자기 자기가 드라큘라라면서 계약을 맺자면 믿겠어요?”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물어보았다.

 

 “아직도 내가 드라큘라라는 걸 믿지 않는군. 뭐 믿지 않아도 상관없지. 계약서에 서명만 하면 돼. 그럼 자연히 알게 될 테니까. 네 앞에 내가 나타난 것에 대해서는 내 탓을 하지 말거라. 아직 네가 깨닫지 못한 것뿐이니까. 진실을 말해 주자면, 너는 나와의 계약을 맺기 위해 지금까지 스펙을 쌓아오며 살아온 거야. 너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너는 알게 모르게, 내게 지원도 했었고. 나는 네가 보낸 지원서를 보고 너를 선택한 것뿐이란 말이지. 머리가 달렸으니 차츰 이해가 될 거야. 나의 선택이 너에게 얼마나 커다란 행운인지 아직 실감이 들지 않겠지만 말이다.”

 

 “내가 무슨 지원서를 제출했다는 말인가요? 구직을 포기한 지는 이미 1년이 넘었단 말입니다.”

 
작가의 말
 

 작가의 말은 경주 중 부상으로 요부염좌에 걸려 잘 못달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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