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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로맨스, 그 찌질함에 관하여
작가 : 열해
작품등록일 : 2022.1.2

찌질한 과거를 청산하고 다시금 사랑을 시작하려던 나.
찌질함은 결코 벗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11화
작성일 : 22-01-22 00:04     조회 : 194     추천 : 0     분량 : 5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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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화>

 

 

  박혜민. 흔한 이름이었다. 안경은 쓰기도 하고 안 쓰기도 하고. 자세히 보면 예쁘장한데 또 지극히 모범생 같은 이미지도 가지고 있었고. 다만 분명한 건 수업 시간 내내 날 뚫어지게 쳐다본다는 점이었다. 내 학창 시절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녀석에게 난 조심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내가 했던 행동들을 그대로 따라하길 바라기라도 한 걸까? 내 속을, 나도 알 수 없었다.

  한 주가 지나가고, 월요일 점심시간부터 박혜민이 찾아왔다. 어디서 찾은 건지 접이식 의자도 챙겨왔다. 미리 준비라도 해뒀어야 했나 미안해하던 찰나 박혜민이 말도 없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는 노트를 펴고, 메모할 자세를 취했다.

 

  “아, 혜민이?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긴요. 제가 말했잖아요. 저 국어 선생님 되고 싶다고요. 이것저것 여쭤보러 왔죠.”

  “그랬지, 참. 그나저나……. 국어 선생님은 왜 되고 싶은 거야?”

 

  내가 국어 교사란 직업을 가지고 싶었던 이유는 오직 단 한 가지였다. 그녀와 대화하고 싶어서. 난 혼자 김칫국을 마셨다. 박혜민이 나에게 ‘선생님을 좋아한다’라며 고백이라도 하면,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다행히 녀석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제가요, 공부하다가 시조를 한 편 읽었거든요? 그런데, 황진이! 황진이 알죠? 아, 진짜 너무 멋있는 거예요. 청산리 벽계수야……. 그거 보고 완전 반해서, 국어에 꽂혔어요!”

 

  청춘 소설도 아니고 시조라니. 이게 정말인지 본인의 마음을 숨기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분명한 건 내 마음이 녀석에게 순식간에 열려버렸단 것이다.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반가웠고, 뭐 하나라도 더 전해주고픈 심정이었다. 난 박혜민을 붙잡고 국어 교사가 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물론 효율적인 학습 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교무실에서의 첫 만남이 인상 깊었는지 박혜민은 틈만 나면 문제집을 들고 교무실로 찾아왔다. 내가 그녀에게 찾아갔던 때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박혜민은 캔 커피나 사탕 같은 요기 거리를 챙겨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박혜민은 국어 공부에 진심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빠져 미친 듯이 국어 성적을 올리려 애썼던 것처럼, 박혜민도 그러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근데 있잖아, 국어를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왜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은 거야?”

 

  난 아마도, ‘선생님이 좋아서요.’라는 답을 기다렸던 것 같다.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 의도적인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하지만 박혜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저도 알아봤었는데요, 국어랑 관련있는 직업 중에선 그래도 선생님이 젤 매력 있더라고요. 뭔가 보람도 있을 것 같고…….”

  “그래도, 뭔가 특별한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뭐, 선생님을 좋아했다던가…….”

  “음……. 그런 것도 있을 수 있겠네요. 1학년 때 담임쌤 국어 선생님이셨어요. 그땐 막 국어 선생님 되고 싶다, 이런 생각까진 안 했었는데. 그래도 엄청 잘 챙겨주고 그러시긴 했죠.”

  “혹시, 공부하다 힘들면 언제든 찾아와. 그리고……. 선생님 휴대폰 번호 알려줄 테니까, 학교 끝나고 혼자 공부할 때도 모르는 것 생기면 연락해도 되고. 알겠지?”

  “정말요? 감사해요, 쌤.”

 

  그날 이후 난 내 행동의 특이점을 발견했다. 날 좋아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실제 문장으로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분명, 행동이나 녀석을 대하는 태도로 표출되고 있던 것이다. 이유 없이 박혜민의 학급 교실 근처를 서성이기도 하고, 퇴근 후엔 휴대폰을 손에서 놓치지 않는 것 따위의 행동들. 그렇다고 내가 박혜민을 이성적으로, 연애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내 행동이 이해되질 않았다. 이해되질 않는 상태를 이해하려 않은 채로, 난 박혜민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내버렸다.

 

  ‘혜민아, 공부 잘하고 있어?’

 

  답장이 오는 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딱 적당한 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앗, 쌤! 안 그래도 공부 안 돼서 폰 하고 있었어요!’

 ‘공부 안 될 땐 얘기 하라니까^^’

 ‘그러게요. 연락할 걸 그랬네요. 근데 쌤 어쩐 일?’

 

  그랬다. 나도 대체 왜 연락한 것인지 이유를 말할 수가 없었다. 정말 한참 만에야 답장을 보냈다.

 

 ‘아니, 그냥 갑자기 혜민이 공부 잘하고 있나 궁금했어. 나중에 밥이라도 사줘야겠단 생각도 들고... 내가 늘 응원하고 있다!!^^’

 ‘오! 밥!!! 알겠어요. 꼭 말씀드릴게요! 뭐든 다 사주시는 거죠?’

 ‘그럼. 언제든 이야기해^^ 공부 열심히 하고!’

 

  다행히 박혜민과의 연락은 별문제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먼저 보내놓고도 이게 잘하는 짓인가 고민이 생겼다. 뭔지 모를 찝찝함에 휩싸이면서, 내 찝찝함의 근원인 의심과 의문을 확실하게 해결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박혜민은 왜 나에게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 거지?’

 

  난 확신하고 있었다. 좋아하는지 안 하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좋아하는데 왜 표현을 안 하는 것인지를 궁금해했던 것이다. 도대체 난,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확신을 해 버렸던 걸까.

  일주일도 채 안 돼서 박혜민은 저녁을 사달라고 했다. 우린 학교가 끝나고 정류장에서 만났고 난, 녀석을 피자 가게로 데려갔다. 그녀가 내게 처음 저녁을 사줬던 그곳이었다.

 

  “피자 좋아하니?”

  “피자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완전 좋아하죠!”

  “다행이다. 먹고 싶은 만큼 먹고, 포장해가도 되고.”

  “에이, 피자만 먹고 살 순 없잖아요. 어쨌든,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한 조각 피자를 들고 오물오물 베어먹는 박혜민의 모습을 보며 난 뿌듯함이 들었다. 분명 뿌듯함이었다.

 

  “아, 맞다. 쌤! 제 친구 예진이 아시죠? 저랑 같은 반.”

  “알지. 예진이가 성이 좀 특이했던 것 같은데…….”

  “맞아요! 곽씨예요, 곽예진!”

  “근데, 예진이가 왜?”

  “아, 곽예진 걔도 국어 선생님 되고 싶다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 찾아가라고 말해도 되나 여쭤보려고요.”

  “예진이가?”

 

  예진이도 참 예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말을 듣고선 혜민이에게 그랬듯 예진이도 잘 챙겨줘야겠단 생각을 했다.

 

  “예진이도 그럼 나중에 밥 한 끼 사줘야겠네. 한 번 데리고 와.”

 

  조그마한 피자 한 판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박혜민은 나에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우린 꽤 즐겁게, 그리고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나 뿌듯했고, 수험생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 없어서 우린 기분 좋게 헤어졌다. 평범한 저녁을 보내고 잠자리에 들어서야, 내가 가진 감정의 정체에 대해 다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난 누워서 한참이나 박혜민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설마, 혹시, 진짜, 박혜민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는 건가? 왜 난 자꾸 박혜민 입에서 내가 원하는 말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던 걸까? 심지어 연락도 내가 먼저 연락했던 것 같은데……. 뉴스에선가 사춘기 다음 오춘기라는 게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내가 딱 그런 꼴이었다. 난 한동안 혼돈 속에 빠져 허우적거려야 했다.

  박혜민이 곽예진을 교무실로 데리고 와 소개해주었지만, 이 둘을 데리고 저녁을 먹이는 건 한동안은 불가능했다. 며칠 쉬는가 했더니 선배 교사들의 호출이 다시금 발동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호출은 물론 공식적인 회식 자리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학년별, 부서별 회식에다 교직원 전체 회식, 심지어 남교사 모임까지 술로 채워지는 삶이었다. 그래도 버틸만 했던 시간은 국어 교사 모임 회식이었다. 아무래도 같은 교과를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보니 통하는 게 많았고, 한 가지 소재로 다양한 생각이 뻗어나가는 꽤 흥미로운 모임이었다. 남교사 모임에서 하필 말 많은 수학 선생님 옆에 앉았다가 회식 자리 3시간 동안 수학의 우수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기절할 뻔 했던 걸 생각하면, 국어 교사 모임은 완전 천국이었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긴 했다. 나와 같이 정교사 채용 시험을 치렀던 그 계약직 선생님과는 아무래도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자리를 가로채 간 나쁜 사람으로 여길 것이라는 마음이 들어서인지, 내가 먼저 말을 걸며 다가가질 못했었다. 그래도 국어 교사 모임은 이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이, 꽤 즐거웠다. 한창 술이 올라와서 알딸딸한 상태가 되었을 때, 그 계약직 선생님이 날 밖으로 불러냈다.

 

  “혹시 담배 태우세요?”

  “네? 아뇨. 담배는, 안 핍니다.”

  “그러시구나. 그냥, 우리 얘기도 한 번 제대로 못 해 보기도 했고 그래서, 그래서 나오자고 했어요. 어떻게, 적응은 잘 하셨고?”

 

  예상외로 먼저 살갑게 대해주어서, 난 편하게 말문을 틀 수 있었다. 이것저것 잡다한 이야기도 나누고, 웃으면서 친해짐을 느꼈다. 그의 담배 연기가 짙어질수록 나의 마음도 점점 그에게 열리는 것만 같았다. 물론 잠깐의 오해이긴 했지만.

 

  “참, 요즘 선생님한테 박혜민이 자주 찾아가더라고요?”

  “아, 혜민이요? 국어 선생님 된다고,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그러더라고요.”

  “혜민이, 참 예쁘죠?”

  “네? 아, 예쁘죠. 성실하고, 뭐든 열심히 잘하던데요.”

  “혹시……. 혜민이랑 따로 연락하거나……. 그러시나요?”

  “뭐 문제집 풀다 모르는 거 생기면 연락이 오곤 하죠. 왜요?”

  “아, 그냥 궁금해서요. 저도 혜민이 수업했던 적이 있는데, 참 예뻐했거든요.”

  “그러셨구나.”

  “그리고, 혹시요……. 혜민이 데리고 밥 사준 적 있으세요?”

  “얼마 전에 저녁 사준 적 있어요. 그건 왜…….”

  “아니, 그냥 뭐. 아이고, 우리 너무 오래 나와 있었는데요? 다들 기다리시겠네. 들어가죠!”

 

  뭔가 꺼림칙했다. 취조당하는 기분이었달까. 너무 있는 그대로를 다 이야기한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교감 선생님의 호출이 있었다. 교감은 날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아무래도 기존에 있던 계약직 선생님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다. 게다가 교장이 내 담임이었으며, 날 유독 이뻐하는 모습에 괜시리 괴롭히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찾아갔더니, 교감은 말을 돌려하는 것도 아닌 아주 돌직구 스타일로 내게 추궁을 하기 시작했다.

 

  “백 선생님. 박혜민 학생이랑 무슨 사이십니까?”

  “네?”

  “백 선생 학생이랑 연애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이거 맞는 얘기에요?”

 

  난 거대한 바윗덩이가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제대로 한방 먹었던 것이다. 난 살아오며 이런 난처한 상황이 생기면 제대로 대처한 적이 없었다. 잘 빠져나가지 못하고 당하기 일쑤였달까. 대표적인 일이 김준수와 김진희 남매로 인해 대학 생활이 망가졌던 것이었다. 이번에도 엄청난, 위기감이 느껴졌다.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나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교감 선생님, 그게 말입니다…….”

  “제대로! 똑바로! 있는 그대로 말 좀 해 보세요!”

  “학생이랑 연애라뇨! 그 친구가 꿈이 교사에요, 교사! 국어 교사요. 저 보십시오. 우리 학교 선생님들께 좋은 영향 받아서 저도 지금 선생님 소리 듣지 않습니까? 저도 우리 학생이자, 제 모교 후배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또 교사라는 꿈 이뤄줄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겁니다.”

 

  이건 변명이 아니었다.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그래서인지 말은 술술 나왔고, 교감은 더는 추궁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내게 사과했다. 분노감이 치솟았다. 계약직 선생님이 범인이란 건 누가 봐도 뻔한 일이었고, 난 이걸 어떻게 복수해야 할 것인지 고민했다. 정말 며칠간 머리를 싸매고 완벽한 시나리오를 짜냈다.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을 줄 작정이었다. 그런데, 복수의 칼을 꺼내기도 전에, 그는 사라져버렸다. 아무리 계약직이라고 해도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는데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옆자리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가 사라진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육아 휴직의 대체자였고, 휴직자가 복귀하면 그의 자리는 자연스레 없어지게 된다는 것. 그 말의 다른 의미는 이랬다.

 

  그녀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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