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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당신의 밤을 가질 때
작가 : sat0523
작품등록일 : 2022.1.18

구미호와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난 희귀 혼혈인 해나는 능력이 발현되지 않아
평범한 인간들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중 납치당한 실험실 안에서
불완전한 구미호로 강제 각성을 겪으며 제어할 수 없는 폭주에 시달리게 된다.

마녀를 사랑한 죄로 루만으로부터 추방당한 왕자,
유진을 유일하게 받아 준 한국에서의 첫날 밤.

유진은 자신의 방에 침입한 해나를 제압하지만 폭주로 인한
페로몬에 노출되고 그녀와의 밤을 보내게 되는데.

 
04 어젯밤 일은
작성일 : 22-01-20 14:44     조회 : 207     추천 : 0     분량 : 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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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다급함에 유리창을 깨부수려 주먹을 쥐었던 해나가 잠시 망설이며 엄지 손가락을 잘근 깨문다. 섣불리 그를 돕는답시고 창을 깨고 들어갔다가 침입자로 몰린다면, 옥상에서 뛰어내렸다가 외벽을 타고 올라온 자신의 동선이 밝혀지는 순간 정체를 감출 수도 없거니와 그 즉시 인간들에게 잡혀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역시 돌아가야해. 지금이라도...'

 

 

 

 

 울렁.

 

 

 

 

 순식간에 시야 속의 세상이 노래지며 온통 파도치듯 일렁거리는 순간 폭주의 징후임을 깨달은 해나가 이를 악물고서 주먹을 힘껏 내려쳤다.

 

 

 

 

 침입이고 자시고 이 상태에서 의식이라도 잃는다면 저 밑으로의 추락이 이 생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쩍소리와 함께 금이 간 창문을 다시 한 번 내려치려던 해나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비틀거린다. 다시 찾아온 징후의 통증에 딛고 있던 경계의 틈 위에서 미끄러지며 맥없이 떨어져내리려는 순간 객실 안에서 튀어 나온 손아귀가 허공에 떠있던 해나의 주먹 쥔 손 목을 낚아 챘다.

 

 

 

 

 아슬아슬하게 떨어질 뻔한 해나를 가까스로 들어 올렸지만 창백하기 그지없는 얼굴에 식은 땀을 가득 흘리고 있던 유진은 한 눈에도 온전치 못한 상태로 쿨럭이고 있었다.

 

 

 

 

 "...가... ㅈ...발..."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며 무어라 말하고 있는 해나를 향해 두 무릎이 꺾인 채 주저 앉은 유진이 기어가 그녀의 입가에 자신의 귀를 가져다 대었다.

 

 

 

 

 독에 중독 된 것은 아닐까.

 

 갑자기 밀려온 현기증과 동시에 터져나온 각혈로 유진은 자신의 증세를 독으로 인한 것이라 여겼고 그 순간 다시 나타난 해나를 발견했기에 버닝테일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노린 것이었음을 직감했다.

 

 

 

 

 분하지만 적이 공존하고 있는 타국이었음에도 방심했던 자신의 탓이었고 꽤나 치명적인 독을 제법 치사량에 가깝게 섭취를 하고 만 것인지 의식을 붙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 유진은 겨우 몸을 숨기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얕은 숨을 쉴 새없이 몰아쉬고 있는 소리 위로 유리창을 내려치는 소음이 덧씌워지던 순간 침입자라 여겼던 그녀가 의식을 잃었는지 다시 자신의 눈 앞에서 추락하려했고 이번만큼은 장난같았던 그녀와의 첫번째 만남과는 달랐음에 유진은 남아있던 힘을 쥐어 짜내 그녀를 구했다. 그리고 그녀의 옅은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워진 순간.

 

 

 

 

 "당신 위험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마치 최면이라도 건 것처럼 너무도 달콤하게 귀를 타고 흘러내린다. 뜨거운 열기에 녹아내리는 바닐라 아이스크림만 같이 당장 핥지않으면 안 될것만 같은 부드러운 해나의 입술을 핥으며 유진이 그녀의 허리를 안아 들었다.

 

 

 

 

 유진의 이성은 더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

 

 

 

 

 유진의 입술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온 몸은 바닥이 깨져버린 모래시계만 같아서 기운이랄 것들이 온통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순간 기억조차 남기질 않는 또하나의 자신은 멋대로 눈 앞의 왕자를 유린하고 살해하고 말 것이다.

 

 

 

 

 거칠어진 숨소리가 귀 맡에서 전해진다. 이미 짙은 페로몬에 이성을 잃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유진의 두 눈을 들여다보는 해나의 눈동자에 풀려버린 그의 동공이 비쳤다. 텅비어버린채 본능만을 쫒고 있는 그의 시선을 피할 길이 없다. 몸에 닿아 오는 그의 손길이 데일듯이 화끈거려 움찔거리면서도 해나는 아득히 밀려오는 졸음을 견딜수가 없다.

 

 

 

 

 그의 입술이 목덜미를 파고드는 순간 해나는 마지막 남은 모래알을 잃고 말았다. 다시 마주할 그의 모습이 참담할지라도 해나는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수렁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

 

 

 

 

 딩동-

 

 

 

 

 언젠가 저 초인종을 뜯어내고 말겠다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해나가 배게를 머리에 뒤집어쓰며 이불 속에서 몸을 뒤집었다.

 

 

 

 

 딩동딩동-

 

 

 

 

 "제발... 그만 좀 해..."

 

 

 

 

 침대 속에서 연신 축늘어진 몸을 비틀어대며 해나가 울상을 짓고 만다. 아직도 노곤한 몸은 포근하고 안락한 침대 위를 원했으며 나른한 정신 또한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자신의 머리에 파묻힌 누군가의 입으로부터 얕은 신음이 터져나오기 전까진.

 

 

 

 

 "하아..."

 

 

 

 

 긴가민가할 새도 없이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선명한 입김과 함께 부정할 수 없이 똑똑히 귓 속으로 들려온 그 소리에 부릅 떠진 해나의 두 눈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고정 된 시야 속을 굴리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익숙한 초인종 소리도 아니거니와 애초에 초인종을 누를만한 상식적인 자들이 해나의 지인 중에는 존재치 않았다.

 

 

 

 

 새하얗고 포근한 침구에 감긴 채로 맨살이 훤히 드러나 있는 자신의 쭉 뻗은 팔을 본 순간 온 몸을 감싸고 있어야 할 옷가지들이 느껴지질 않고 낯선 침실 안에 전라로 누군가와 한 이불 아래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해나의 얼굴이 삽시간에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한다.

 

 

 

 

 잔뜩 어질러진 기억들을 맞춰야만 한다.

 

 

 

 

 해윤의 잔소리가 먼저였다. 녀석의 잔소리에 학을 떼며 사라진 팔찌를 찾아나섰고 호텔로 돌아가 외벽을 살피던 중 피를 토하던 왕자를 발견했...

 

 

 

 

 붉어진 얼굴로 자신에게 입맞춰오던 왕자의 얼굴을 떠올리자마자 해나의 얼굴 역시 터질 듯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틀림없다면 왕자는 지금쯤 분명 가슴이 찢기고 간이 파혜쳐져 더이상 숨이 붙어있을 수 없는 송장이 되어있어야 했지만 해나는 계속해서 귓가로 들려오는 숨소리와 자신의 몸을 끌어안은 탓에 등에서 전해지는 심장박동으로 인해 혼란만 더욱 가중되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

 

 

 

 

 답답한 마음에 이불을 끌어안으며 상체를 일으킨 해나의 시야에 밤새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온갖 집기들과 장식품들이 쏟아지고 잔뜩 어질러진 침실의 광경이 들어왔다. 이어 잔뜩 구겨지고 말려있는 침대 시트와 이불 위로 아직 의식을 되찾진 못했지만 배꼽 위로 훤히 드러나있는 그의 상체는 창백한 얼굴만큼이나 결점 하나 없이 투명한 살갗으로 아주 온전한 상태기만 했다. 그의 가슴을 자신도 모르게 매만지던 해나의 입에서 의지와 상관없이 육성이 터져나왔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말 소리에 깬 걸까. 아직 잠에 빠져있던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다 살짝 들어올려지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해나의 시선과 겹쳐지고 만다.

 

 

 

 

 다시 이어지는 초인종 소리에 멍한 그의 시선에 점차 초점이 맺히고 있었다.

 

 

 

 

 

  "으악!... 으악!!"

 

 

 

 

 눈 앞의 해나를 인식하자마자 유진이 터뜨린 비명에 이어 서로 전라의 상태로 한 침대에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다시 한번 비명과 함께 그가 침대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지금 소리지르고 싶은게 누군데!"

 

 

 

 

 맨몸으로 굴러 떨어진 유진을 향해 베개를 집어던진 해나가 소리를 꽥지르며 이불 위로 엎드린 채 얼굴을 파묻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의 간이 파먹히지 않은 것은 시체를 마주하지 않게되어 다행이었지만 중간에 끊긴 기억일지라도 아직까지 생생한 그 입술의 감촉과 현재의 상황은 부정할 수 없이 그와 격정적인 하룻밤을 보낸 것이 분명했다.

 

 

 

 

 "꿈인 줄 알았어. 꿈이 아니면 어젯밤은 우리... 갑자기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잖아."

 

 "어제 일... 기억나?"

 

 

 

 

 여전히 얼굴을 파묻은 채 묻는 해나의 질문에 유진은 잠시 뜸을 들이며 고민하다 바닥 위에서 자세를 바로하며 대답했다.

 

 

 

 

 "응..."

 

 "기억이 난다고?"

 

 "그래. 기억이 난다고. 널 구하려 했던 것 뿐이었는데..."

 

 

 

 

 말 끝을 흐리자 해나가 고개를 빼꼼히 들고 침대 맡에 앉아 어제 일을 떠올리는 듯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유진을 바라본다. 점점 그라데이션처럼 붉어지는 그의 얼굴을 보아하니 말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인지 알 것만 같다.

 

 

 

 

 "어느새 널 안고싶다는 생각이 날 지배했던 것 같아."

 

 

 

 

 의지와 상관없었기 때문일까. 얼굴을 붉히면서도 아무렇지않게 말하는 그를 보며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자신은 원망과 비난을 해야할지 사과를 해야할 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선뜻 고를 수가 없었다.

 

 

 

 

 "다시 날 찾아온 이유가 뭐야?"

 

 

 

 

 다시 초인종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문을 두들기며 당장이라도 뛰어들듯이 위협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잃어버린 걸 찾으러 왔었어."

 

 "뭘 잃어버렸는데?"

 

 "팔찌... 루비같은 작고 빨간 보석이 달려있는 매듭팔찌야. 어제 당신과 마주쳤을 때 잃어버린 것 같아."

 

 "그런건 본 적 없어."

 

 "잘 생각해봐! 내겐 정말 중요한거란 말이야!"

 

 

 

 

 해나의 말에 곰곰히 기억을 되짚어보려해도 존재조차 지금에서야 알게 된 물건에 대한 기억이 존재할 리 없었다.

 

 

 

 

 "날 죽이려 다시 돌아온 게 아니고?"

 

 "그게 무슨... 내가 당신을 왜 죽여?"

 

 "내게 음독을 시도할 자들이 너희들 말고 누가있겠어?"

 

 

 

 

 황당한 유진의 말이 억울하기만 했지만 그의 의심이 이곳의 상황에서 억지는 아니었기에 해나는 감정을 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정말 팔찌를 찾으러 왔을 뿐이야. 그러다 피를 토하고 있던 당신을 발견한 것 뿐이..."

 

 

 

 

 "왕자님! 실례하겠습니다!"

 

 

 

 

 벌컥 열리는 문 소리와 함께 눈이 두배는 커진 듯한 해나를 향해 바닥에 널부러져있던 망토를 던진 유진이 욕실에 비치 된 타올을 허리에 두르고서 빠르게 침실을 빠져나갔다.

 

 

 

 

 유진을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수행비서의 당혹스런 시선이 지난 밤부터 깨져있던 거실의 창문으로 향한다. 이미 한차례 호텔 내 스위트룸의 창문을 파손해 고액의 변상을 한 뒤였다. 그럼에도...

 

 

 

 

 "왕자님 벌써 두번째인 건 알고 계십니까?"

 

 "그게..."

 

 "혹 침입자라도 있었던 겁니까?"

 

 

 

 

 급히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든 그가 사방을 경계하며 유진의 곁으로 바짝 다가선채 은연중에 그가 의식하고 있는 침실을 향해 수행비서의 시선도 그곳을 향해 움직인다.

 

 

 

 

 침실 안에서 망토를 뒤집어 쓴 채 웅크리고 있던 해나에게도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들킬지모를 불안감에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한다.

 

 

 

 

 "그런건 없었고... 미안합니다. 타국에서의 첫날밤이라 긴장을 많이하여..."

 

 "예?"

 

 

 

 

 어색한 얼굴로 멋쩍게 웃으며 얼버무리려는 왕자에게 그가 감추려드는 것이 무엇인지 더는 파헤칠 수 없지만 그의 어깨너머로 언뜻 보이는 침대 위 가녀린 실루엣을 발견하곤 모른 척 총을 내린다.

 

 

 

 

 "정오가 지나도록 연락이 닿질 않아 오전 일정은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오후 일정이 시작되기 전에..."

 

 "미안하지만 옷을 갖춰 입은 후에 다시 이어 들어도 되겠습니까?"

 

 

 

 

 타올을 두르고 있을지라도 유진은 헐벗은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뒤로 물러나고 유진은 서둘러 침실로 돌아와 문을 잠근 뒤에 아직도 위기감 없이 침대 위에 웅크리고 있는 해나를 일으켜 앉혔다.

 

 

 

 

 "아직도 여기 있으면 어떡해? 눈치껏 달아나야할 것 아냐?"

 

 "못 가. 당신 옆에 있어야 해."

 

 

 

 

 행여 들릴새라 잠긴 문 너머의 그를 경계하며 해나를 번갈아보던 유진이 황당한 그녀의 말에 작게 실소를 터뜨리고 만다.

 

 

 

 

 "뭐? 뭐라고?"

 

 "아니 안가. 밤을 함께 보내고도 그 숨이 붙어있는건 당신이 처음이거든."

 

 "너 진짜."

 

 

 

 

 자꾸만 황당한 소리만 해대는 해나를 향해 언성을 높일뻔한 유진이 숨을 고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난 인간의 편에 섰기 때문에 너희들의 적이야. 우리 어젯밤 있었던 일은..."

 

 "폭주 중인 나를 안고도 목숨 부지 중인 거 당신이 처음이라고. 기억하지? 우리 입맞추고 당신이 내 옷을 벗기고 내..."

 

 "그...그만."

 

 "그 팔찌 내 폭주를 막아주는 제어기 같은거야. 당신조차 날 안지않곤 못배겼잖아. 팔찌 없인... 못 돌아가. 더는 시체들의 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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