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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몬스터헌터: 괴물의 시선
작가 : 유툽작성TV
작품등록일 : 2021.12.27

인간, 엘프, 드워프, 오크 등 여러 종족과 마법이 공존하는 정통 판타지.

용병을 중심으로 풀어 나가는 현실 판타지.

 
4.1 소문의 기사
작성일 : 22-01-20 00:25     조회 : 178     추천 : 0     분량 : 8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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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남자의 얼굴에 묻어난 조급함이 절망으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무구의 무게를 둘째쳐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물건인지 목걸이를 꼭 쥔 어린 여성이 자신보다 반절은 더 어려보이는 남아와 중년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 펼쳐 보인 손에도 갈루마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보이는 용기와 자신의 무력함은 식은땀으로 흐를 뿐, 없는 힘을 쥐어짜내진 못했다.

 

 “안 돼! 차라리 엎드려!”

 

 “매직 미사일!”

 

 펑!

 

 힘껏 달려 몸을 날린 갈루마는 어떤 힘의 반작용으로 다시 남자에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공중에 떠오른 갈루마의 표정만큼이나 놀라긴 마찬가지여서 제자리에 멈춰버린 그였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거리를 재고 한 번의 심호흡 뒤에 검을 크게 휘둘렀다.

 

 방향과 거리를 재고 감당 못할 충격을 줄이기 위해 반보 물러나면서 휘둘렀음에도 검 끝에서 전해진 충격은 손목을 그대로 때렸다.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였지만 고통 앞에 한숨 돌릴 시간은 없었다. 남자는 땅에 떨어진 갈루마에게 재빨리 달려들어 검을 박아 넣었다.

 

 주변의 어린애들에게 충격을 심어줄 악랄한 의도는 없지만 서도 확실히 숨통을 끊기 위해 여러 차례 검을 쑤셨다. 어느덧 피로 물든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를 보던 모두가 몸을 움츠릴 정도였다.

 

 뒤늦게 숨을 몰아쉰 남자는 검을 거꾸로 쥐고 앞으로 갔다.

 

 “마법사이신 줄 몰랐습니다. 덕분에 추가 피해를 막았어요. 바로스 콜렛입니다.”

 

 “베이시 레비엘라예요. 오히려 기사님 덕분에 살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

 

 펜던트를 쥐고 있던 베이시를 본 바로스는 그녀의 어깨너머 중년 여성에게 눈길을 넘겼다. 중년여성은 남아를 끌어 와 고개를 숙이게 했다. 예를 표하기보다 시야를 가리기 위한 행동 같았다. 바로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저분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겁니다. 하마터면 정말 위험할 뻔했어요. 펜던트가 아티팩트인가 보군요.”

 

 손을 뗀 펜던트에는 엄지 한 마디쯤 돼 보이는 푸른 보석이 빛을 잃은 채였다. 필시 마나를 흡수하는 보석이었을 터다.

 

 “네. 방금처럼 위급한 순간에 도움 될 정도는 되죠.”

 

 “혹시 스트레아드에서 증원 오신 분인가요?”

 

 “네? 아니요. 스트레아드 소속은 맞는데 증원 온 건 아니에요. 우연히 지나다 온 거죠.”

 

 “그렇군요.”

 

 바로스는 고개를 돌렸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경비병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충이나마 대화를 살폈던 그는 바로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머지 한 마리를 찾아보겠습니다.”

 

 “찾을 필요 없다. 방금 수렵했으니까. 잔인하게도 죽였군.”

 

 목소리는 뒤편, 갈루마가 쓰러진 쪽 골목길에서 나왔다. 몸을 돌려 목소리를 찾은 바로스는 잠시 굳은 얼굴이 되었다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도륙된 갈루마의 주검을 발로 건드리며 주검에 남은 잔인함을 말하고 있었다.

 

 “다행이군요. 로아드 베일 경. 혹 인명 피해가 있었습니까?”

 

 “기물 파손은 있었지. 물론 갈루마에 의한. 증원 요청을 보냈는데도 도움이라곤 코빼기도 안 보인 데에 비하면 잘 해결했네.”

 

 경비병의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곁눈질로 그를 본 바로스는 다시 로아드 베일을 마주했다.

 

 “글쎄요. 마을로 내려온 갈루마가 세 마리라고 들었습니다. 그중 두 마리를 잡을 동안 기존 순찰 병력들은 한데 모여 한 마리만 붙잡고 있었나 봅니다. 마을 중심에서 갈루마가 난동 부릴 동안에도 말이죠.”

 

 바로스는 로아드 베일의 검집을 눈짓했다. 검은 검집에 잘 들어가 있었다. 워낙에 검집부터 깨끗한 터라 뽑았는지도 의문이었다.

 

 “검은 그새 깨끗이 닦았나 봅니다. 두 마리 행방도 미처 못 찾던 중 같은데. 그래도 베일 경 아니었으면 증원 요청한 기존 인력들이 어디서 뭘 했는지 오히려 알 턱이 없을 뻔했는데, 잘 종결됐다니 다행입니다.”

 

 ‘거지 같은 떨거지 새끼가.’

 

 이번엔 로아드 베일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그 험악한 표정과 다르게 흐르는 말투는 다소 차분했다.

 

 “...그런가. 꼴을 보니 애 깨나 쓴 모양이군. 인명피해는 이곳에 있었던 것 같은데. 보고는 내가 할 테니 자넨 주변 정리나 마저 하고 가 봐.”

 

 굳건히 마주한 그들 사이로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들 모두 굳은 얼굴이었고 주눅 들어있다 굳은 건 경비병 또한 마찬가지였다.

 

 경비병은 그들 사이에서 등이 터지지 않기 위해 한 발짝 뒤로 몸을 뺐다. 워낙에 타이밍 좋은 발걸음이었던 지라 다음 번 갈루마를 만날 땐 지금처럼 움직여 보는 게 어떨까 싶을 정도였다.

 

 이만큼 딴 생각을 하고 싶을 정도로 불편한 기류 앞에서 다행히 로아드 베일이 먼저 발길을 돌리는 듯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은 그를 향해 성큼 다가오지 못했다.

 

 “근데 자넨 왜 여기 있는 거지? 순찰 병력에도 안 들어가 있던데. 뿌리 없는 기사라 그런가, 뭘 하고 다니는 지도 모르겠군. 애초에 관심 주는 인사가 없으니 멋대로 업무태만인건가?”

 

 “업무태만이었다면 진즉에 기사 작위랑 검 모두 몰수당했겠죠. 그랬다면 지금처럼 검에 피를 묻힐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럼 지금 베일 경 발길은 보고가 아니라 책임을 지러 가는 길이 됐을 테니 우리 모두 다행이지 않겠습니까.”

 

 “이런 건방진 새끼가.”

 

 “가던 길이나 그대로 가시죠. 나도 마침 궁에 보고를 가야 하는데, 내가 먼저 가면 이 일도 같이 담게 되지 않겠습니까. 시의 사안인데 입 다물고 있는 거야말로 업무태만일 테니까. 근데 아셨다시피 전 이곳 정리를 먼저 좀 해야 될 거 같아서요. 코빼기도 안 보인 순찰대 핑계 댈 생각은 없지만 인명 피해가 생겼으니 좀 살펴야 될 것 같습니다.”

 

 내뱉고 싶은 숨을 다시 들이켜다 딸꾹질이 날 뻔한 기분이었다. 당최 무슨 일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드는 짐작이라면 눈앞에 자신을 도왔던 남자가 바로스 콜렛이라는 점이었다.

 

 사실 그는 성에서 근무하는 이라면 제아무리 말단에 가문 이름 없는 평민일지라도 한 번쯤은 들었을 소문의 기사였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가문의 세에도 유일하게 굳건히 성에 남은 외톨이 기사. 실은 그마저도 좋은 표현이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직위가 떨어지고 목이 떨어지는 윗님들 세상에서 홀로 성을 떠도는 떠돌이 개쯤이 같은 기사들의 시선이란 소문은 지금에서 보니 별로 와전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성에서 일하는 객식구들이라면 첫째 왕자님은 어떻고 누군 어쩌네 하는 그들의 심심풀이 뒷담만큼이나 자주 오가는 소재의 주인공이었다.

 

 경비병 또한 오늘 처음 마주했다 뿐, 오다가다 멀찍이서 본 적이 여러 번이라 얼굴을 모르진 않았다.

 

 “어이, 바로스 경. 왜 맨날 혼자 똥 씹은 똥개 표정인지 모르겠는데, 진짜 똥개마냥 기어오를 곳 구분 못하고 바짓가랑이 물어뜯는 날엔-.”

 

 로아드 베일이 한걸음 앞으로 나오는 바람에 경비병은 저도 모르게 주춤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갈루마보다 더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순간에서 경비병의 시선이 로아드 베일을 따랐다. 그의 시선은 바로스 뒤 베이시에게로 옮겨가 머물렀다.

 

 “레비엘라 양. 이 친구한테 가려져 못 알아 뵀습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베일 경. 안녕하세요.”

 

 로아드 베일이 말하던 똥 씹은 표정이 그대로 그에게로 가 묻은 듯했다. 그는 서둘러 더럽게 뱉은 말을 치웠다.

 

 “이만 실례하지. 상황이 상황이었던 지라 언사가 좋지 못했네. 피차 마찬가지였던 것 같은데, 나중에 보지.”

 

 어줍게 깨진 분위기에 경비병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눈치를 살피던 차였는데 저 멀리 보고하러 달려오는 신병이 보였다. 내심 이리도 반가울 수가 없었다.

 

 “주변 정리 끝냈어!?”

 

 “예! 사체는 어떻게 할까요?”

 

 좋은 핑계거리였다. 지금 분위기에 증원을 요청한 로아드 베일을 그대로 따라가자니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염려스러웠고, 이곳에 남아있기에도 딱히 할 게 없을뿐더러, 마찬가지로 똥 묻은 기사에게 찍혀 업무태만이니 뭐니 감당 못할 후환이 걱정될 선택이었다.

 

 경비병은 그들의 거리가 더 멀어지기 전에 로아드 베일에게 사체 처리를 도맡고 복귀하겠다는 명을 소리 내어 받은 뒤 바로스에게 가벼운 목례를 끝으로 중간에서 빠졌다.

 

 “저도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바로스 역시 불편한 정적을 혼자 머금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인사를 받은 그 또한 베이시에게 목례를 전하고 벽에 기댄 남성에게 걸어갔다. 갈루마에게 상처 입고 그의 방패를 건네받았던 중년남성이었다.

 

 “헤럴드, 괜찮습니까?”

 

 “안부 인사가 너무 늦은 거 아닙니까. 바로스 경.”

 

 중년의 남성은 미소와 찡그림을 동시에 담아내는 노련함으로 차분한 농담을 던졌다. 앞선 분위기에 숨죽인 덕에 잊고 있던 고통이 뒤늦은 신음을 불렀다. 그의 오른쪽 다리는 천이 찢어진 허벅지를 시작으로 출혈 흔적이 심했다.

 

 “그래도 방금 전 기 싸움 덕에 상처도 놀란 모양입니다. 잠깐이지만 피 흘리는 것도 잊었나 봐요.”

 

 “그런 것 치곤 꽤 많이 흘렸는데요. 치료부터 해야겠습니다.”

 

 벽에 검을 기대어둔 그는 헤럴드의 상처를 살폈다.

 

 “저 같은 놈이 치료받을 곳이 있겠습니까. 붕대 덮고 재워주면 알아서 나을 겁니다.”

 

 “조상 중에 트롤 핏줄이라도 있으십니까? 저보다 젊으신 줄은 알겠지만 재워준다고 잘 나을 것 같진 않은데요.”

 

 퍽 살갑게 주고받는 농담 속에 옷감이라도 뜯어보려고 갑옷을 들추던 그의 뒤로 베이시가 끼어들었다.

 

 “잠깐 비켜 봐요. 제가 좀 볼게요.”

 

 가볍게 그를 밀고 자리 잡은 베이시는 헤럴드가 들고 있던 방패부터 거뒀다.

 

 쿵!

 

 “억!”

 

 “풉!”

 

 꽤나 정겨운 정적이 감돌던 순간, 바로스는 최대한 빠르게 표정을 지웠다. 그녀가 옆에 들어올 때 날린 분홍빛 향기만치 발갛게 올라온 홍조는 눈앞의 남성이 흘린 피보다 무서운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라는 미친 소리는 다행히 딸꾹질 대신 삼킬 수 있었다.

 

 아까보다도 숨 막힐 만한 기류가 흐를 뻔한 걸 막아준 건 역시 노련한 중년의 잘 비집고 들어온 재치 덕분이었다.

 

 “발가락까지 날아갈 뻔했소.”

 

 비록 그녀의 얼굴은 더 빨개졌지만 피보다 무서운 어떤 것은 아니었다.

 

 “이 무거운 걸 계속 들고 계셨던 기력을 보니 걱정은 덜겠네요. 편하게 기대앉아보세요.”

 

 헤럴드는 벽에 기댄 상태로 신음을 누르며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베이시는 찢어진 옷감을 벌려 상처를 확인했다.

 

 “치료 마법 같은 거라도 있습니까?”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전 사제가 아니에요. 일단, 급한 대로 응급처치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물론 포션이 있다면 그마저도 필요 없을 텐데, 혹시 포션 가진 거 있으세요?”

 

 “아뇨, 없습니다.”

 

 “난 그런 비싼 놈 사 키울 형편이 못됩니다. 아가씨. 대충 지혈만 해줘도 충분할 게요.”

 

 “죄송해요. 면목이 없네요.”

 

 “아가씨가 그런 걸 왜 챙깁니까. 면목은 제가 없는걸요. 귀족 분께 살점 드러내놓고 도움을 구하게 됐으니까요.”

 

 “도움 구하신 적 없잖아요. 제 발로 온 거예요.”

 

 “그럼 전 신세 진 적 없는 겁니다?”

 

 가볍게 웃던 그녀는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손끝에 집중했다. 그러고는 검지와 중지를 모아 신중하게 상처 부위를 쓸었다. 손가락 끝에선 하얗고 푸른 마나의 기운이 그녀의 손동작만치 섬세하게 발산되었다.

 

 “속성 마법사시군요.”

 

 지켜보던 바로스가 감탄사를 대신했다.

 

 “아직 어줍은 실력이에요. 정식 등록도 마치지 않았어요.”

 

 “아무렴 중요합니까.”

 

 “그런가요. 괜한 제 자격지심을 고백해버렸네요.”

 

 이윽고 찾아온 잠깐의 정적은 집중을 요하는 분위기 때문이었지 불편한 감정이 드러나서 생긴 것은 아니었다.

 

 신중한 손짓이 끝난 베이시는 가볍게 맺힌 땀방울을 쓸었다.

 

 “그래도 임시방편이에요. 출혈도 심했고 흉터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어요.”

 

 “흉터가 하나 생기면 평생 갈 무용담이 하나 느는 법이오. 우리 같은 놈들에겐 귀족 분들 명예만큼이나 훌륭한 훈장이죠.”

 

 “유쾌한 분이시군요. 베이시 레비엘라라고 합니다.”

 

 “헤럴드라 합니다. 도와줘서 고맙군요. 레비엘라 양.”

 

 “천만에요. 신경 쓴다고는 썼는데, 이대로 두면 결국 악화될 거예요. 출혈을 막기 위한 응급조치였으니까 댁에 가는대로 따뜻하게 온찜질 하고 벌어지는 상처는 다시 꿰매야 할 거예요.”

 

 “충분합니다. 피 철철 흘리면서 들어가면 아내가 거품 물까 걱정했는데 고맙소.”

 

 “이미 오줌만치 적신 핏자국 보면 걱정은 계속 하셔야 될 것 같은데요. 부축해줄 테니 일어나요. 헤럴드. 나도 포션 사줄 형편은 안 되지만, 성에서 위스키 한 잔 정도 빼돌려 드리리다.”

 

 바로스는 허릴 숙여 헤럴드를 부축했다. 부축을 받아 일어난 그는 신음을 삼키고 너스레를 뱉었다.

 

 “어휴, 그거 중범죄 아니오? 들키거든 내 이름은 빼주시오.”

 

 베이시는 둘의 모습에 퍽 유쾌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떤 단란한 가정의 단편을 보는 기분이었다.

 

 “여기 무구들 버리고 갈 생각이면 차라리 이것들 팔아서 사는 건 어때요? 합법적으로.”

 

 “아, 그것 좀 쥐어줄 수 있겠습니까. 레비엘라 양?”

 

 피 묻은 검을 들어 올린 그녀는 반대편 방패를 보고 멈칫했다. 바로스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방패는 내가 들게요. 실례가 안 된다면 그 검만 좀 들어줄 수 있을까요?”

 

 고민은 할 것도 없었다.

 

 “네. 검이라면 얼마든지.”

 

 “지저분한 검인데 미안합니다.”

 

 “아직 졸업 못한 견습생이지만 저도 엄연히 왕국 마법기관 소속 마법사에요. 몬스터 피가 더럽다니 무섭다니 했으면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근래 들어 멋진 여성분을 뵙게 된 것 같소. 귀족께서 저 같은 놈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제가 사람을 대하는 기준은 귀천이 아니라 성품이거든요. 다들 문 닫고 숨죽일 때 홀로 갈루마를 상대하시는 걸 봤어요.”

 

 “어쭙잖게 덤비다 짐만 된 걸 보셨단 말이군요. 그건 좀 창피한데.”

 

 “아이를 위해 몸 던진 영웅을 봤죠.”

 

 “영웅은 이 분 같은 기사들한테 어울리는 칭호고, 나는 저 핼버드 같은 무구 팔아 밥 사먹는 대장장이일 뿐이오. 해서 말인데, 나보다 저 놈 먼저 주워주겠소. 바로스 경? 내 자식 같은 벗이오. 팔려고 만든 건데 제값 받기 힘들겠고만.”

 

 한 손에 방패를 챙긴 바로스는 저 앞에 떨어진 핼버드를 주워 헤럴드 손에 쥐어주었다.

 

 “자식이고 벗인데 파는 무기라구요? 제값 못 받아도 비쌀 것 같은데요?”

 

 “내 벗이 돈 많은 기사 분들 손에서 제 할 일 하게 되면 기쁜 일 아니겠소. 그리고 내 자식도 칼잡이지만 비싼 몸값 받는 놈은 아니라오.”

 

 “용병이라던 자제 분 말이군요.”

 

 다시금 그를 부축한 바로스는 그의 집으로 걸었다. 부축하느라 비좁은 골목을 들어설 수 없으니 조금 돌아가야 했다.

 

 “출가한 아들놈 생사도 모르는 중에 가장부터 이 꼴이니 안 사람 울분 받아낼 면목도 없겠소.”

 

 “핼버드라도 잘 챙겨가야 덜 혼나시겠군요. 꼴이 이런데 밥줄마저 버리고 왔다하면, 전 얼른 모셔드리고 도망 나와야겠습니다.”

 

 “무슨 말을 그리 서운케 하시오, 바로스 경. 같이 있어줘야 내가 덜 혼날 거 아니외까.”

 

 “위스키 한 병 훔쳐다 드린다지 않습니까. 몸 상태가 이러시니 맥주보단 도움이 될 겁니다.”

 

 “이깟 상처쯤 입 다물고 참는 건 안 사람 잔소리에 비하면 일도 아니외다.”

 

 “그 상처 말고 좀 이따 등짝에 날 상처 생각해서 드린다는 건데요?”

 

 “아, 그렇군. 그거 참으려면 확실히 필요하겠소. 그럼 검일랑 두고 가시오. 위스키 값은 못 되도 새것처럼 갈아드릴 테니.”

 

 “도망 못 가게 잡아둘 심산이신 거 다 보입니다.”

 

 “배우신 분이라 그런가, 눈치가 빠르구료.”

 

 유쾌하게 오가는 남자들의 대화를 즐기던 베이시가 끼어들었다.

 

 “두 분 사이가 퍽 좋아 보이네요. 알고 지낸 지 오래 되셨나 봐요.”

 

 “헤럴드 제련 솜씨가 꽤 훌륭하거든요. 무구 수리도 그렇고. 많은 이들이 성 내 대장간을 이용하는데, 사실 헤럴드의 대장간이 아는 이들만 아는 숨은 명소지요.”

 

 “값이 싸서 애용한다는 말을 퍽 고상하게 하시오.”

 

 “솜씨가 좋은데 값까지 싸니 곱절로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대충 궁금한 것도 해결 했으니 이젠 이 재미난 대화를 계속 음미할 생각이었다. 피 묻은 검을 들고 걸으면서 이미 옷에 묻어버린 탓에 베이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잡아들었다.

 

 “근데 말이오. 어차피 뭐하나 빼돌릴 생각이면 생명의 물이나 포션이나 다를 거 없지 않소? 그럼 차라리 포션이 좋을 텐데.”

 

 “포션이야 말로 빼돌렸다간 내 밥줄이 잘려나갈 겁니다. 그거야 말로 공식적으로 등록된 국가 자산이거든요. 헤럴드.”

 

 “그럼 목숨 줄도 같이 잘리지 않겠소?”

 

 “그래서 못 훔친다구요.”

 

 “생명의 물은 괜찮고?”

 

 “그건 이름만 번지르르하지, 사실 귀족들끼리 독식하는 술일뿐이에요.”

 

 “그렇구료. 근데 그 야심찬 범행계획을 옆에 귀족 분도 다 들으셨는데, 목격자는 어떻게 할 겝니까.”

 

 “그래서 말인데, 제 검이랑 같이 묶어 두는 건 어떻겠습니까.”

 

 슬쩍 눈치 본 바로스는 머쓱하게 말을 보탰다.

 

 “농담입니다. 레비엘라 양. 바쁘실 텐데 동행해 줘서 고맙습니다. 여기 모퉁이만 돌면 금방이니 조금만 더 부탁합니다.”

 

 “괜찮아요. 그리고 저도 위스키 훔쳐본 경험이 여러 번이라 당당하게 신고를 못하겠네요. 걱정 마세요.”

 

 평소에 겪지 않는 상황 속 낯선 대화들인데도 그새 적응한 베이시였다. 헤럴드가 그녀의 농담을 받았다.

 

 “이거 나만 모범시민이었구료. 어디 괜찮은 작업 있으면 나도 하나 소개시켜 주시오. 본업만으로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지 않소.”

 

 “일단 아내 분 마음부터 훔쳐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꽤 어려운 작업일 텐데,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스는 헤럴드를 골려줄 생각에 번지는 미소를 닦지 못하고 말했다. 갈루마를 소탕했다는 소문이 벌써 돈 것인지 저 멀리 보이는 대장간 앞으로 낯익은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상처 때문인지 곧 닥쳐올 미래 때문인지 헤럴드의 입에선 한숨 같은 신음이 흘렀다.

 

 “다시 생각해 봤는데 난 뭘 훔치는 재주가 없는 사람인 것 같소. 그냥 하던 망치질이나 계속해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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