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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로맨스, 그 찌질함에 관하여
작가 : 열해
작품등록일 : 2022.1.2

찌질한 과거를 청산하고 다시금 사랑을 시작하려던 나.
찌질함은 결코 벗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10화
작성일 : 22-01-20 00:08     조회 : 198     추천 : 0     분량 : 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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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무언가에 홀린 듯 정신없이 원서를 작성했다.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고 돌아 시험 정보를 알아냈고, 체계적인 채용 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1차 시험은 임용시험 수준의 객관식 시험이었는데, 사립 채용을 준비하는 이들 중에는 나보다 성적이 나은 사람은 없을 거라 확신했다. 성적이 좋으면 임용시험을 치르지, 굳이 사립으로 빠질 이유가 없으니까. 1차를 통과하면 2차 면접시험, 3차 모의 수업 시연까지 치르는 시스템이었다. 3차 시험까지 통과하면 서류 점수와 지난 시험들의 총점을 더해 최종 한 명을 선발하는, 치열한 경쟁이었다. 보통 사립학교에선 정년 퇴직을 하지 않는 한 쉽게 자리가 나지 않기 때문에 연말이 되면 한 사람이 원서를 서른 개에서, 많게는 마흔 개까지도 집어넣는다는 정보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난 단 한 군데의 원서만을 썼고, 모든 것을 쏟아붓기로 했다.

  1차 시험과 수업 시연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 시험이야 공부하면 되는 것이고, 수업은 일 년 내내 중딩들에게 시달려가며 나름 노하우가 많이 쌓였으니까. 문제는 면접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정보에 의하면, 내 모교에선 면접에 열 명 남짓한 교사들이 면접관으로 참여한다고 했다. 난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서 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 찌질하기까지 했다. 조언을 구할 주변 사람이 없는 외톨이였던 난, 그저 막막해할 뿐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괜히 책꽂이만 들춰보고 있었다. 억지로 공부하려는 수험생들이 주로 하는, 그런 행동이었다. 책꽂이엔 대학 시절 공부했던 임용 자료도 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 고등학생 때 사용했던 교과서나 노트들도 있었다. 이것들을 왜 안 버리고 가지고 있었던 걸까. 한심해하면서도, 추억에 잠겨 꽤 오랜 시간 그것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공부했던 노트도 있었다. 망설이다가, 슬그머니 펼쳐보았다. 몇 년이나 지났음에도, 그녀의 목소리가 생생했다. 열정적이었던 그녀의 목소리도, 다 들리는 듯했다. 더불어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주고받았던 메시지들, 함께 나눴던 대화들, 그리고 마지막 술자리까지도. 김칫국을 마시는 것이긴 하지만, 그녀가 있는 곳에 돌아간다는 게 정말 옳은 일인 것인지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렇게 노트를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내용이 있었다. 그녀에게 국어 선생님이 되는 방법을 물어봤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 내용들이 고스란히 메모가 되어 있었다.

  책 읽기나 국어 공부법뿐만 아니라, 나중에 대학에 가서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미래 계획들까지도 그녀는 세세히 알려주었던 것. 그리고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메모 끝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실전에 돌입하기 전에 최대한 많이 부딪혀볼 것!’

 

  난 또다시 무언가에 홀린 듯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집 근처는 물론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모든 사립학교의 공고문을 모조리 뒤졌고, 거의 스무 곳이 넘는 학교의 채용원서를 작성했다. 모교에서 치러지는 시험 날짜와 비교해가며 철저하게 준비했다. 최종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연습이라 생각하고, 떨어지든 말든 부딪혀 볼 생각이었다. 그녀의 8년 전 한 마디가 다시금 날 일깨워준 것.

  너무도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 갔던 한두 학교에선 거의 입도 못 뗄 수준이었지만, 갈수록 질문을 빠르게 이해하고 생각을 정리하여 그걸 내뱉는 과정이 체계적으로 갖춰지기 시작했다. 면접은, 역시나 실전이었다. 난 자신감을 가지고 모교 면접시험에 참여했다.

  역시나 면접관은 열 명이었다. 대부분은 낯선 얼굴이었지만 그중 한 명, 정 가운데 앉아있는 한 명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고삼 시절 나의 담임이었던 그 사람. 흐뭇하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었는데, 여태껏 학교에 남아있었다니. 그것도 교장으로 승진한 채 말이다.

  1차 시험 점수도 상위권이었고, 게다가 모교 출신이라는 점, 심지어 학창 시절 학급 반장으로 활동했다는 점까지 모든 면접관이 긍정적으로 여기는 듯했다. 질문들은 어렵지 않았고, 무난하게 답변도 해냈다. 그리고 결정적 한 방을 강력하게 날려줌으로써 정점을 찍어버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십니까?”

  “저는 참 평범하고 모자른 학생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고삼 시절 담임 선생님께서 바꿔주셨습니다. 그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전 절대 이 자리에 있지 못할 겁니다. 저도, 저의 선생님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반드시 보여드리겠습니다.”

 

  곱씹어서 생각해봐도, 꽤 괜찮은 마지막 멘트였다. 살면서 유튜브 덕을 딱 두 번 봤는데, 고삼 때의 반장 선거,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며칠 뒤 수업 시연까지 완벽하게 치러낸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심적 여유가 없었다. 다만 기다리는 동안 학교 홈페이지에서 이것저것 정보들을 찾아보았다. 그녀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을까 해서. 그런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녀의 이름이 없었다. 의아했다. 사립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전근을 가는 경우가 없으니까 말이다. 설마, 그만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합격 전화가 왔다. 부모님은 집안의 경사라며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니셨다.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아버지 직장에 떡을 돌리기도 하셨다. 판사, 검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사’자 라며 동급으로 여기시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난 한껏 부담을 느껴야만 했다. 심지어 아버지는 당신은 시장에서 구입한 싸구려 양복을 입고 다니면서, 자랑스런 아들이라며 대형백화점의 정장 매장을 데려가셨다. 거기서 수십만 원짜리 정장을 두 세트나 맞춰주셨다.

  아들은 여자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그런 속도 모르고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죄책감을 들게 했다. 더 문제는 그 죄책감보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더 강했다는 것이다. 한동안 잊고 지냈었는데……. 아니 어쩌면 단 한 순간도 잊지 못한 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난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았다. 날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떠난 그녀를 왜 잊지 못하는지. 그냥, 보고싶을 뿐이었다.

  2월의 마지막 주부터 새 학교이자 익숙한 학교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익숙했지만 또 낯설기도 했다. 몇 년 사이 많은 것이 변해있었으니까. 공식적인 회의가 열렸고 그 자리에서 모든 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신규 교사가 나밖에 없다며 다들 관심을 가졌다. 허나 어디에도, 그녀가 보이질 않았다. 그제야 난 확신했다. 그녀는 내가 모르는 사이 학교를 그만두고 떠난 것이라고. 새로운 환경에서의 설렘 가득한 시작이었어야 했지만, 나의 신경은 온통 좌절감 뿐이었다. 그 좌절감 따윈 신경 쓰일 리 없는 담임, 아니 이제 교장이 날 불렀다.

 

  “백성현이! 아니, 이제 백 선생이구먼. 아주 기특하다니까.”

  “감, 감사합니다. 교장 선생님.”

  “내가 말이야, 당신 붙여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몰라. 알아두라고!”

 

  으레 형식적인 꼰대들의 말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듣다 보니, 꽤 논리적이었다.

 

  “국어과 여선생 한 명이 육아 휴직을 해서 대신 계약직 선생이 있었단 말야. 그 선생이 이번에 자네랑 시험을 같이 봤어. 면접 때 봤으려나? 여하튼 그 선생이 일을 기가 막히게 잘했거든. 면접 들어갔던 선생들이 다 만점을 줬더라고. 점수만 따지면 그쪽이 더 높았어! 다 내가 어, 힘썼으니까 가능했던 거야. 백 선생, 절대 까먹으면 안 돼!”

  “저, 교장 선생님. 육아 휴직이라면…….”

  “아, 최단비라고. 자네 있을 때 그 선생이 있었나? 여하튼 자네랑 자리 겹치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되고, 뭐 애 다 키우면 오겠지.”

 

  교장실에서 나오며 내 감정은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상태가 되었다. 그녀가 아직 이 학교의 교사라는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다른 사람의 여자가 된 것도 모자라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것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의문점이 사라져서인지, 마음이 편했다. 어차피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조용히 학교생활이나 잘하자고 마음먹었다.

  학교에선 적응 기간이라며 담임 배정도 해주지 않았고, 그냥 수업이나 하며 일 년을 보내라고 했다. 대신 수업은 3학년이었다. 아무래도 입시에 대한 부담이 있어서인지 나이가 많은 교사들을 꺼려하는 듯했다. 수업은 그래도 업무가 거의 없어서 편했다. 업무도 업무지만 모교 출신이라는 사실도 꽤 긍정적이었다. 다들 나를 예뻐해 주었다. 나와의 경쟁에서 밀린 같은 국어과 계약직 교사도 남아있었는데, 속내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겉으로 티 나게 불편함을 드러내진 않았다.

  다만 역효과가 있긴 했는데, 다들 날 너무 심하게 예뻐했다는 점이었다. 매일 다른 얼굴들이 다가와 저녁 시간을 비워두라 이야기했다. 대한민국 사회는 도대체 왜 이런 것인지, 뉴페이스가 나타나면 꼭 술을 먹인다. 그래야 자신들이 젊은 혈기를 얻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숙취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 역시 뉴페이스라며 좋아해주는 덕에 마음이 지칠 겨를은 없었다. 난 모든 교실에 들어가 이렇게 날 소개했다.

 

  “선생님 이름은 백, 성현이야. 백성, 현이 아니라 백, 성현. 물론 우리 귀한 고삼 여러분을 왕처럼 모실 생각은 있는데, 그렇다고 너희까지 날 백성 취급하면 안 돼. 알겠지?”

 

  난 이 멘트가 전혀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여학생 학급에선 교실이 떠나가라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신기하고, 궁금했다. 그저 새 얼굴이어서인지, 정말 내 말이 재밌어서인지, 아버지가 사준 정장이 잘 어울려서인지, 그저 선생에 대한 예의인 것인지……. 웃음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물론 그 웃음이 지속해서 계속되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고삼이었던 시절과 다르지 않게, 눈앞에 있는 십 대의 끝자락을 살고있는 이 녀석들 역시도 하루가 다르게 삶에 지쳐가고 있었다. 수업에 들어가면 깨어 있는 녀석이 몇 명 되지 않을 정도로. 금요일 5교시, 점심을 먹고 난 직후의 남학생 학급엔 누구도 깨어 있지 않았다. 겨우겨우 소리를 질러가며 눈을 뜨게 해놔도 5분도 안 되어 다들 잠들기 일쑤였다. 덩달아 나도 지쳐야 했다. 진이 빠진 채로 다음 시간 연달아 짜인 수업도 해야했다. 다행히 6교시는 여학생 반. 그래도 남학생 교실보다는 나은 편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깨어 있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정확히는 한 명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여학생에게 이런 말을 뱉었다.

 

  “넌 왜 안 자니?”

 

  굉장히 똘망똘망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였다. 그리고, 내 질문에 대한 답은 내 심장이 덜컹 내려앉게 만들었다.

 

  “저는, 국어가 너무 좋아요!”

 

  이건……. 언젠가 내가 그녀에게 했던 말과 다르지 않았다. 순간 모든 주변이 어두워지고, 이 아이와 나만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세계가 펼쳐지는 듯했다. 그리고 이 아이는, 내가 면접관들에게 그러했듯 강력한 마지막 한 방을 날려주었다.

 

  “그래서, 국어 선생님 되고 싶어요! 나중에 선생님 찾아가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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