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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미남전생 美男傳生
작가 : 모시티사라매
작품등록일 : 2022.1.18

마계대전의 마침표를 찍은 역전의 용사 발타르. 하지만 추한 외모를 투구로 가리고 다녀야 하는 운명이다. 공적을 기리기 위해 왕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공주와의 결혼을 대가로 요구하고 마침내 벌어진 약혼식에서 모종의 이유로 마력재해가 벌어지며 죽음을 맞고 깨어난 것은 지방 자작가의 미공자 요한의 몸이다.

 
미남전생 2화
작성일 : 22-01-18 03:18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1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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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발타르는 바닥에 엎어진 은쟁반 위로 손을 뻗었다.

 

 볼품없이 앙상하긴 했지만 뽀얗고 가는 손은 고생의 흔적을 느낄 수 없었다.

 

 여전히 살집이 남은 손바닥 안쪽은 마치 아기처럼 보드랍다. 쟁반에 비친 얼굴도 낯설긴 마찬가지였다.

 

 ‘계집애처럼 곱군.’

 

 파랗고 커다란 눈을 깜빡대는 청년의 얼굴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영양상태가 좋지 못한지 혈색은 창백하고 양쪽 볼과 눈 밑이 푹 꺼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아름다운 얼굴이다.

 

 이마는 반듯하고 코는 오뚝하며 입술은 적당히 도톰하다.

 

 신께서 심혈을 기울인 듯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 이목구비는

 지금의 위치에서 좁쌀만큼이라도 벗어나선 안 될 것처럼 느껴졌다.

 

 여성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선이 곱고 고혹적이다.

 

 혹시나 해서 자신의 성별이 여전히 남자인지 확인까지 해보았다.

 

 믿기지 않는 듯 손으로 뺨을 만져보며 발타르는 중얼거렸다.

 

 “저주에 걸린 것인가?”

 

 이 모든 것이 누군가 저주를 걸어 보여주는 환영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일시적으로 자신의 몸을 미청년으로 보이게 마술을 건 것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누가, 대체 언제?’

 

 여전히 발타르는 침대에서 눈을 뜨기 직전의 기억이 흐릿했다.

 

 그가 생각에 잠긴 사이, 열려있는 문 너머 복도에서 다시 방정맞은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누군가 주춤 방 안을 살피듯 고개를 들이 밀더니 그와 눈이 마주쳤다.

 

 조금 전, 쟁반을 떨어트린 채 사라졌던 수인 메이드였다.

 

 “아이고, 도련님 어째서 바닥에 계신 겁니까요?”

 

 그를 확인한 메이드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더니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서둘러 그를 부축해 일으키려 했다.

 

 그 사이 또 다른 인물이 뒤따라 방으로 들어서더니 깊게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나, 정말이구나.”

 

 발타르의 모습을 보더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대며 문간에 기대어 선 사람은 귀티가 나는 여성이었다.

 

 풍만한 몸집에 하얀 피부의 여자는 쟁반 속 그의 모습을 닮은 듯 했다.

 

 “그렇다니까요, 마님. 제가 허튼 소리를 여쭈었겠습니까요.”

 

 메이드는 발타르를 침대까지 부축해 도로 뉘이면서 중년의 여성에게 말했다.

 

 발타르는 그런 둘의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아들, 어미를 알아보겠니? 나는 네가 영영 깨어나지 못하는 줄 알았단다.”

 

 아름다운 귀부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며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아들이라고?’

 

 발타르는 귀를 의심했다.

 

 금발의 귀부인은 아무리 많이 쳐도 마흔 언저리 정도로 보인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어린 나이의 여자가 대뜸 아들이라고 부르니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양손을 뻗어 그의 뺨을 어루만지는 귀부인의 눈가에 어느 새 눈물이 맺혔다.

 

 “뭐라고 말 좀 해보렴. 아들 목소리가 듣고 싶구나.”

 “그래요, 도련님. 이게 얼마만입니까요?”

 

 역시나 기대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손을 맞잡고 바라보는 메이드였다.

 

 하지만 발타르로선 그들에게 하고픈 말은 한가지뿐이었다.

 

 “여긴 어디죠? 그리고 당신들은 누굽니까?”

 

 그의 질문에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뒤이어 수인 메이드는 침대 위로 혼절해 쓰러진 주인마님을 모시고서 다시금 방을 나서야만 했다.

 

 ***

 

 발타르는 갑갑한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낯선 방에서 깨어난 지도 꼬박 하루가 지났다.

 

 하지만 그의 외모는 변하지 않은 채 여전히 낯설기만 했다.

 

 아무래도 환술이나 마법에 걸린 것도, 해괴한 꿈을 꾸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숨이 나오는 건 제 쪽입니다요.”

 

 침대 옆에 선 메이드가 한숨 소리를 들었는지 쀼루퉁한 얼굴로 구시렁댄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물빛을 띤 피부, 역시나 푸른 기운이 섞인 검은색 머리카락.

 

 콧잔등과 목덜미 손목 등 곳곳에는 두터운 비늘이 붙어있다.

 

 그 외엔 인간과 그리 다르지 않은 용모.

 

 발타르로서도 얘기로만 들었지 직접 보기는 처음인 거북이 수인(獸人)이다.

 

 옷에 가려 보이진 않지만, 등 쪽은 훨씬 두터운 비늘로 덮여있을 터이다.

 

 깨어난 이후로 계속 옆을 지키고 있는 그녀는 자신을 ‘도련님의 전속 메이드’라고 소개했었다.

 

 “토르나라고 했던가?”

 

 그의 질문에 거북이 수인은 갑갑하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더니 대꾸했다.

 

 “예, 그렇습니다요. 그리고 도련님 이름은?”

 

 되묻는 상대의 말에 그는 역시나 그녀에게 앞서 전해들은 이름을 떠올렸다.

 

 “요한 하스베르크……였지?”

 “정말 아무것도 기억 못하시는 겁니까요?”

 

 그랬다. 아무래도 토르나를 비롯한 이 집안의 사람들은 그를 요한이라는 사내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발타르는 그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은 요한이 아니라고 설득하는 것도 요원해 보였다.

 

 결국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핑계를 둘러대고 토르나에게 요한에 관한 것들을 알려달라고 했다.

 

 요한 하스베르크, 그것이 이 아름다운 외모의 청년이 가진 이름이었다.

 

 하스베르크 가문의 외동아들. 올해 나이 17세.

 

 아버지인 ‘미하일 하스베르크’는 과거 지역에서 이름을 날린 탐험가였다.

 

 탐험의 과정에서 숨겨진 미스릴 광산을 발견하고

 이를 국가에 봉헌한 공로로 자작 작위와 영지를 하사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요한은 자수성가한 신흥 귀족 2세인 것이다.

 

 “내가 얼마나 누워 지낸 거지?”

 

 발타르는 스스로 가누는 것도 벅찰 만금 앙상한 팔과 몸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 얘기 말인뎁쇼. 너무 충격 받지 마십시요.”

 “괜찮으니까, 사실대로 말해 줘.”

 

 존칭과 사투리가 뒤섞인 토르나의 말투와 십대로 보이는 그녀의 외모가

 엇박자를 이루는 것이 재밌다 생각하며 발타르는 답을 재촉했다.

 

 “3년입니다! 3년 전에 어떤 사건 이후로 의식을 잃고 여태 깨어나지 못하신 채 누워만 계셨습죠.”

 

 금세 심각한 표정이 된 토르나는 손가락 셋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어떤 사건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대재난이 있었지요.”

 “대재난?”

 “예, 정체 모를 거대한 마력폭발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고요.”

 

 ‘마력폭발’이란 말을 듣곤 발타르는 일순 표정이 변했다.

 

 “마력재해가 일어났다는 거야? 그것도 전 세계 규모의?”

 

 대량의 마력이 한 지점에 응집되다 임계점을 넘게 되는 순간,

 수 천 배의 힘으로 폭발하는 것을 마력폭발 또는 마력재해라고 칭한다.

 

 천 년의 왕국 역사에서 단 두 차례 기록이 있었을 정도로 매우 희귀한 경우.

 

 때문에 실재 여부에도 논란이 있는 개념이었다.

 

 그것이 실재로 벌어졌었고 그것이 요한이란 청년이 반죽음의 상태에 빠진 이유였다니

 그로서도 대경할 일이었던 것이다.

 

 “마력재해에 대해서 알고 계셨습니까요?”

 

 놀라긴 토르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눈을 더욱 크게 치켜뜨는 모습에 발타르는 아차 싶었다.

 

 ‘지금 나이가 열일곱이라고 했지, 3년 전이라면 열네 살. 그런 어린애라면 마력재해 같은 걸 보통은 알고 있었을 리 없지.’

 

 그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응, 아마도 어디선가 읽었었나 봐.”

 “그렇겠지요. 그래도 신기합니다요. 이름조차 깜빡하신 분이 그런 것은 용케 기억을 하고 계시다니…….”

 

 슬쩍 의구심을 내비치는 그녀의 반응에 발타르는 서둘러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마력재해의 원인은 뭐였지?”

 “저도 모릅니다요.”

 “모른다고?”

 

 의아함에 발타르는 반문했다.

 

 그녀 말로는 사건이 벌어진 지도 3년이 흘렀다. 국가에서 분명 조사가 있었을 것이다.

 

 “폭발이 왕도에서 일어났다는 건만 압니다요. 높으신 어른들이라면 이후의 조사 결과에 대해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저 같은 아랫것이야 뭘 알겠습니까요.”

 

 토르나의 답을 듣고 발타르는 다시금 놀랐다.

 

 “왕도에서? 그럼 왕궁은? 국왕 전하는?”

 “궁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요. 전하께서도 그날 사고로 승하하셨굽쇼.”

 “왕께서……. 군터 전하께서 서거하셨다는 거냐?”

 “예, 그렇습니다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재차 확인하는 도련님의 모습에 토르나는 잔뜩 긴장하며 답했다.

 

 “맙소사, 그런 일이…….”

 “왕실 분들은 물론이고 높으신 귀족 분들께서 여럿 왕도에 모였을 적에 벌어진 일이라 피해가 컸다고 들었습니다요. 경사스런 날에 그런 사건이 벌어졌다고 다들 안타까워하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요.”

 “경사스런 날?”

 “예, 기억나는 게 없으십니까요? 우리 마을에도 큰 행사가 있어 구경 나가셨다가 도련님도 마력에 휘말리지 않으셨습니까요.”

 “전혀 떠오르는 게 없어. 무슨 경사였는데?”

 

 궁금증에 발타르는 되물었다. 그리고 이어진 토르나의 대답은 다시금 발타르의 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마왕을 물리친 용사님과 공주마마께서 약혼식을 올리던 날이었습죠.”

 

 ***

 

 전쟁터에서의 밤은 언제나 긴장으로 가득했다.

 

 마계에서 넘어온 존재들은 어둠에 더욱 익숙했기에 항시 적의 야습에 대비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적진 깊숙이 들어가면 긴장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다 새벽녘에야 겨우 선잠을 자기 일쑤였다.

 

 ‘찌르륵, 찌르르르.’

 

 반쯤 열린 창문 밖으로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휘영청 밝은 달이 떠서 풍경은 온통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발타르는 요한의 비척한 몸을 어렵사리 움직여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곳, 하스베르크 영지의 밤은 평화롭기만하다.

 

 마계대전이나 마력재해의 흔적은 3년이란 시간 때문인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꿈이 아니었다는 거지?”

 

 창문을 통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마왕을 처치하고 왕궁으로 귀환하여 작위를 받은 것도

 그리고 국왕에게 율리아나 공주와 결혼하고 싶다 전했던 것도 모두 사실이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보니 그때의 기억이 조금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분명 자신의 입으로 국왕 앞에서 말했었다.

 

 - 공주님을 제 아내로 맞고 싶습니다.

 

 무슨 맘으로 그랬던 건지도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애초에 왕가와 혼약 따위 생각조차 없었다.

 

 작위나 영토, 훈장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마왕을 물리치고 평화롭던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된다면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도 바뀌리라 생각했다.

 

 추한 외모보다 그의 업적으로 먼저 평가받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바람을 이룬 그 순간에 공주와 마주치고 말았다.

 

 억지를 부려 투구를 벗게 만들고 용사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녀가 보였던 반응.

 

 익숙하다면 익숙한 모습이지만 어째선지 그 순간 발타르의 안에서 무엇인가 뒤틀리고 말았다.

 

 공주는 온실 같은 왕궁 안에서 화초처럼 자랐을 터였다.

 

 그가 마왕을 처치하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도 모르는 여자였다.

 

 그리고 왕국이 무너질 위기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준 장본인을 앞에 두고

 그 여자가 보인 행동은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이었다.

 

 공주가 가시 돋친 일갈과 함께 차갑게 등을 돌린 순간 발타르가 떠올린 복수의 방법은 청혼이었다.

 

 괴물이라며 경멸하던 얼굴을 평생 곁에 두고 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을 마주한 공주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발타르의 기억은 거기서 끝이었다. 이후의 일들은 떠오르는 것이 전혀 없었다.

 

 ‘약혼식이라니.’

 

 그렇다는 건 자신의 청을 국왕이 받아들였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찰나에 왕궁에서 마력재해가 일어났고

 여파에 휘말린 요한이라는 소년의 몸에 발타르의 정신이 깃들고 말았다.

 

 어떤 원리와 연유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재해가 발산한 에너지가 원인일 터였다.

 

 더군다나 토르나의 얘기에 의하면 용사 발타르 일행 역시 사고 이후 행적이 묘연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아니 내 몸은 그때에 죽었다는 건가?”

 

 얼굴처럼 곱고 가녀린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보며 발타르는 중얼거렸다.

 

 여전히 믿기지 않지만, 모든 것은 현실인 것 같았다.

 

 그렇게나 저주스럽던, 그래서 언제나 투구로 감추고 다녔던 얼굴 대신 이렇게나 아름다운 외모를 갖게 됐다.

 

 하지만 마음은 생각처럼 기쁘지 않았다.

 

 ‘찌르르, 찌릇, 찌르르르.’

 

 다시금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왠지 서글프게 다가온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허약한 자신의 몸을 다시금 내려다보며 청년은 중얼거렸다.

 

 “지금부턴……. 요한으로 살아야 한다는 건가.”

 

 

 (2)

 

 발타르는 바닥에 엎어진 은쟁반 위로 손을 뻗었다.

 

 볼품없이 앙상하긴 했지만 뽀얗고 가는 손은 고생의 흔적을 느낄 수 없었다.

 

 여전히 살집이 남은 손바닥 안쪽은 마치 아기처럼 보드랍다. 쟁반에 비친 얼굴도 낯설긴 마찬가지였다.

 

 ‘계집애처럼 곱군.’

 

 파랗고 커다란 눈을 깜빡대는 청년의 얼굴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영양상태가 좋지 못한지 혈색은 창백하고 양쪽 볼과 눈 밑이 푹 꺼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아름다운 얼굴이다.

 

 이마는 반듯하고 코는 오뚝하며 입술은 적당히 도톰하다.

 

 신께서 심혈을 기울인 듯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 이목구비는

 지금의 위치에서 좁쌀만큼이라도 벗어나선 안 될 것처럼 느껴졌다.

 

 여성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선이 곱고 고혹적이다.

 

 혹시나 해서 자신의 성별이 여전히 남자인지 확인까지 해보았다.

 

 믿기지 않는 듯 손으로 뺨을 만져보며 발타르는 중얼거렸다.

 

 “저주에 걸린 것인가?”

 

 이 모든 것이 누군가 저주를 걸어 보여주는 환영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일시적으로 자신의 몸을 미청년으로 보이게 마술을 건 것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누가, 대체 언제?’

 

 여전히 발타르는 침대에서 눈을 뜨기 직전의 기억이 흐릿했다.

 

 그가 생각에 잠긴 사이, 열려있는 문 너머 복도에서 다시 방정맞은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누군가 주춤 방 안을 살피듯 고개를 들이 밀더니 그와 눈이 마주쳤다.

 

 조금 전, 쟁반을 떨어트린 채 사라졌던 수인 메이드였다.

 

 “아이고, 도련님 어째서 바닥에 계신 겁니까요?”

 

 그를 확인한 메이드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더니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서둘러 그를 부축해 일으키려 했다.

 

 그 사이 또 다른 인물이 뒤따라 방으로 들어서더니 깊게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나, 정말이구나.”

 

 발타르의 모습을 보더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대며 문간에 기대어 선 사람은 귀티가 나는 여성이었다.

 

 풍만한 몸집에 하얀 피부의 여자는 쟁반 속 그의 모습을 닮은 듯 했다.

 

 “그렇다니까요, 마님. 제가 허튼 소리를 여쭈었겠습니까요.”

 

 메이드는 발타르를 침대까지 부축해 도로 뉘이면서 중년의 여성에게 말했다.

 

 발타르는 그런 둘의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아들, 어미를 알아보겠니? 나는 네가 영영 깨어나지 못하는 줄 알았단다.”

 

 아름다운 귀부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며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아들이라고?’

 

 발타르는 귀를 의심했다.

 

 금발의 귀부인은 아무리 많이 쳐도 마흔 언저리 정도로 보인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어린 나이의 여자가 대뜸 아들이라고 부르니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양손을 뻗어 그의 뺨을 어루만지는 귀부인의 눈가에 어느 새 눈물이 맺혔다.

 

 “뭐라고 말 좀 해보렴. 아들 목소리가 듣고 싶구나.”

 “그래요, 도련님. 이게 얼마만입니까요?”

 

 역시나 기대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손을 맞잡고 바라보는 메이드였다.

 

 하지만 발타르로선 그들에게 하고픈 말은 한가지뿐이었다.

 

 “여긴 어디죠? 그리고 당신들은 누굽니까?”

 

 그의 질문에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뒤이어 수인 메이드는 침대 위로 혼절해 쓰러진 주인마님을 모시고서 다시금 방을 나서야만 했다.

 

 ***

 

 발타르는 갑갑한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낯선 방에서 깨어난 지도 꼬박 하루가 지났다.

 

 하지만 그의 외모는 변하지 않은 채 여전히 낯설기만 했다.

 

 아무래도 환술이나 마법에 걸린 것도, 해괴한 꿈을 꾸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숨이 나오는 건 제 쪽입니다요.”

 

 침대 옆에 선 메이드가 한숨 소리를 들었는지 쀼루퉁한 얼굴로 구시렁댄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물빛을 띤 피부, 역시나 푸른 기운이 섞인 검은색 머리카락.

 

 콧잔등과 목덜미 손목 등 곳곳에는 두터운 비늘이 붙어있다.

 

 그 외엔 인간과 그리 다르지 않은 용모.

 

 발타르로서도 얘기로만 들었지 직접 보기는 처음인 거북이 수인(獸人)이다.

 

 옷에 가려 보이진 않지만, 등 쪽은 훨씬 두터운 비늘로 덮여있을 터이다.

 

 깨어난 이후로 계속 옆을 지키고 있는 그녀는 자신을 ‘도련님의 전속 메이드’라고 소개했었다.

 

 “토르나라고 했던가?”

 

 그의 질문에 거북이 수인은 갑갑하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더니 대꾸했다.

 

 “예, 그렇습니다요. 그리고 도련님 이름은?”

 

 되묻는 상대의 말에 그는 역시나 그녀에게 앞서 전해들은 이름을 떠올렸다.

 

 “요한 하스베르크……였지?”

 “정말 아무것도 기억 못하시는 겁니까요?”

 

 그랬다. 아무래도 토르나를 비롯한 이 집안의 사람들은 그를 요한이라는 사내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발타르는 그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은 요한이 아니라고 설득하는 것도 요원해 보였다.

 

 결국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핑계를 둘러대고 토르나에게 요한에 관한 것들을 알려달라고 했다.

 

 요한 하스베르크, 그것이 이 아름다운 외모의 청년이 가진 이름이었다.

 

 하스베르크 가문의 외동아들. 올해 나이 17세.

 

 아버지인 ‘미하일 하스베르크’는 과거 지역에서 이름을 날린 탐험가였다.

 

 탐험의 과정에서 숨겨진 미스릴 광산을 발견하고

 이를 국가에 봉헌한 공로로 자작 작위와 영지를 하사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요한은 자수성가한 신흥 귀족 2세인 것이다.

 

 “내가 얼마나 누워 지낸 거지?”

 

 발타르는 스스로 가누는 것도 벅찰 만금 앙상한 팔과 몸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 얘기 말인뎁쇼. 너무 충격 받지 마십시요.”

 “괜찮으니까, 사실대로 말해 줘.”

 

 존칭과 사투리가 뒤섞인 토르나의 말투와 십대로 보이는 그녀의 외모가

 엇박자를 이루는 것이 재밌다 생각하며 발타르는 답을 재촉했다.

 

 “3년입니다! 3년 전에 어떤 사건 이후로 의식을 잃고 여태 깨어나지 못하신 채 누워만 계셨습죠.”

 

 금세 심각한 표정이 된 토르나는 손가락 셋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어떤 사건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대재난이 있었지요.”

 “대재난?”

 “예, 정체 모를 거대한 마력폭발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고요.”

 

 ‘마력폭발’이란 말을 듣곤 발타르는 일순 표정이 변했다.

 

 “마력재해가 일어났다는 거야? 그것도 전 세계 규모의?”

 

 대량의 마력이 한 지점에 응집되다 임계점을 넘게 되는 순간,

 수 천 배의 힘으로 폭발하는 것을 마력폭발 또는 마력재해라고 칭한다.

 

 천 년의 왕국 역사에서 단 두 차례 기록이 있었을 정도로 매우 희귀한 경우.

 

 때문에 실재 여부에도 논란이 있는 개념이었다.

 

 그것이 실재로 벌어졌었고 그것이 요한이란 청년이 반죽음의 상태에 빠진 이유였다니

 그로서도 대경할 일이었던 것이다.

 

 “마력재해에 대해서 알고 계셨습니까요?”

 

 놀라긴 토르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눈을 더욱 크게 치켜뜨는 모습에 발타르는 아차 싶었다.

 

 ‘지금 나이가 열일곱이라고 했지, 3년 전이라면 열네 살. 그런 어린애라면 마력재해 같은 걸 보통은 알고 있었을 리 없지.’

 

 그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응, 아마도 어디선가 읽었었나 봐.”

 “그렇겠지요. 그래도 신기합니다요. 이름조차 깜빡하신 분이 그런 것은 용케 기억을 하고 계시다니…….”

 

 슬쩍 의구심을 내비치는 그녀의 반응에 발타르는 서둘러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마력재해의 원인은 뭐였지?”

 “저도 모릅니다요.”

 “모른다고?”

 

 의아함에 발타르는 반문했다.

 

 그녀 말로는 사건이 벌어진 지도 3년이 흘렀다. 국가에서 분명 조사가 있었을 것이다.

 

 “폭발이 왕도에서 일어났다는 건만 압니다요. 높으신 어른들이라면 이후의 조사 결과에 대해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저 같은 아랫것이야 뭘 알겠습니까요.”

 

 토르나의 답을 듣고 발타르는 다시금 놀랐다.

 

 “왕도에서? 그럼 왕궁은? 국왕 전하는?”

 “궁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요. 전하께서도 그날 사고로 승하하셨굽쇼.”

 “왕께서……. 군터 전하께서 서거하셨다는 거냐?”

 “예, 그렇습니다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재차 확인하는 도련님의 모습에 토르나는 잔뜩 긴장하며 답했다.

 

 “맙소사, 그런 일이…….”

 “왕실 분들은 물론이고 높으신 귀족 분들께서 여럿 왕도에 모였을 적에 벌어진 일이라 피해가 컸다고 들었습니다요. 경사스런 날에 그런 사건이 벌어졌다고 다들 안타까워하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요.”

 “경사스런 날?”

 “예, 기억나는 게 없으십니까요? 우리 마을에도 큰 행사가 있어 구경 나가셨다가 도련님도 마력에 휘말리지 않으셨습니까요.”

 “전혀 떠오르는 게 없어. 무슨 경사였는데?”

 

 궁금증에 발타르는 되물었다. 그리고 이어진 토르나의 대답은 다시금 발타르의 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마왕을 물리친 용사님과 공주마마께서 약혼식을 올리던 날이었습죠.”

 

 ***

 

 전쟁터에서의 밤은 언제나 긴장으로 가득했다.

 

 마계에서 넘어온 존재들은 어둠에 더욱 익숙했기에 항시 적의 야습에 대비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적진 깊숙이 들어가면 긴장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다 새벽녘에야 겨우 선잠을 자기 일쑤였다.

 

 ‘찌르륵, 찌르르르.’

 

 반쯤 열린 창문 밖으로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휘영청 밝은 달이 떠서 풍경은 온통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발타르는 요한의 비척한 몸을 어렵사리 움직여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곳, 하스베르크 영지의 밤은 평화롭기만하다.

 

 마계대전이나 마력재해의 흔적은 3년이란 시간 때문인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꿈이 아니었다는 거지?”

 

 창문을 통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마왕을 처치하고 왕궁으로 귀환하여 작위를 받은 것도

 그리고 국왕에게 율리아나 공주와 결혼하고 싶다 전했던 것도 모두 사실이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보니 그때의 기억이 조금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분명 자신의 입으로 국왕 앞에서 말했었다.

 

 - 공주님을 제 아내로 맞고 싶습니다.

 

 무슨 맘으로 그랬던 건지도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애초에 왕가와 혼약 따위 생각조차 없었다.

 

 작위나 영토, 훈장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마왕을 물리치고 평화롭던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된다면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도 바뀌리라 생각했다.

 

 추한 외모보다 그의 업적으로 먼저 평가받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바람을 이룬 그 순간에 공주와 마주치고 말았다.

 

 억지를 부려 투구를 벗게 만들고 용사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녀가 보였던 반응.

 

 익숙하다면 익숙한 모습이지만 어째선지 그 순간 발타르의 안에서 무엇인가 뒤틀리고 말았다.

 

 공주는 온실 같은 왕궁 안에서 화초처럼 자랐을 터였다.

 

 그가 마왕을 처치하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도 모르는 여자였다.

 

 그리고 왕국이 무너질 위기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준 장본인을 앞에 두고

 그 여자가 보인 행동은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이었다.

 

 공주가 가시 돋친 일갈과 함께 차갑게 등을 돌린 순간 발타르가 떠올린 복수의 방법은 청혼이었다.

 

 괴물이라며 경멸하던 얼굴을 평생 곁에 두고 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을 마주한 공주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발타르의 기억은 거기서 끝이었다. 이후의 일들은 떠오르는 것이 전혀 없었다.

 

 ‘약혼식이라니.’

 

 그렇다는 건 자신의 청을 국왕이 받아들였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찰나에 왕궁에서 마력재해가 일어났고

 여파에 휘말린 요한이라는 소년의 몸에 발타르의 정신이 깃들고 말았다.

 

 어떤 원리와 연유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재해가 발산한 에너지가 원인일 터였다.

 

 더군다나 토르나의 얘기에 의하면 용사 발타르 일행 역시 사고 이후 행적이 묘연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아니 내 몸은 그때에 죽었다는 건가?”

 

 얼굴처럼 곱고 가녀린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보며 발타르는 중얼거렸다.

 

 여전히 믿기지 않지만, 모든 것은 현실인 것 같았다.

 

 그렇게나 저주스럽던, 그래서 언제나 투구로 감추고 다녔던 얼굴 대신 이렇게나 아름다운 외모를 갖게 됐다.

 

 하지만 마음은 생각처럼 기쁘지 않았다.

 

 ‘찌르르, 찌릇, 찌르르르.’

 

 다시금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왠지 서글프게 다가온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허약한 자신의 몸을 다시금 내려다보며 청년은 중얼거렸다.

 

 “지금부턴……. 요한으로 살아야 한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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