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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흡혈 퇴마사
작가 : 제이드Q
작품등록일 : 2022.1.2

빙하 속 바이러스, 우주로 부터 날아든 괴물질에 의해 초토화된 지구.
흡혈귀 출신 파로크는 지구 정화를 위해 인간으로 환생한다.
숨어 있는 사악한 영혼들을 퇴마하는 임무를 맡고 내려온 파로크의 앞날은..

 
천사의 심장 1
작성일 : 22-01-12 14:41     조회 : 175     추천 : 0     분량 : 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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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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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오는 굳었던 몸에서 힘을 뺐다.

 

 이불을 꽉 움켜잡고 있던 손가락이 스르륵 풀렸다.

 

 창백한 안색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뭔가 억울하고 분하고 슬프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한 복잡한 감정은 그대로였지만.

 

 그래도 파로크가 나가고 혼자 있게 되자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젖은 채 뺨 위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소리 내어 울고 싶었지만, 초보퇴마사에게 그런 꼴을 내보일 순 없었다.

 

 그리고... 딱히 울 만한 상황이 아니란 생각도 들고.

 

 차츰 정신을 차린 그녀가 욕실로 향하던 조금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샤워기 물을 틀던 찰나 갑자기 숨이 턱 막혔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헉, 소리가 튀어나왔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순간, 벽 구석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스스슥!

 

 힘겹게 고개를 돌리자마자 몸이 그대로 굳어 버렸고, 짙은 회색 연기 덩어리 같은 게 몸을 덮쳤다.

 

 그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무시무시한 힘에 지배당해 괴로워하며 신음했다.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의식을 간신히 부여잡은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단 하나였다.

 

 초보퇴마사, 파로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단 거였다.

 

 바닥에 자빠져서 헉헉거리며 간신히 숨만 내쉰 채, 눈을 까뒤집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을 비롯해 팔과 다리, 온 몸이 마비가 돼서 도움을 청하기란 불가능했다.

 

 삭막한 지구에 굴러떨어진 지, 얼마 안 돼 벌어진 황당한 일에 에오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어떻게 영혼 따위가 그것도 떠돌아다니는 저급 영 따위가 강제로 몸속을 뚫고 들어올 수 있는지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파로크가 없었더라면 어찌 됐을까’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렸고,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자신이 빙의가 됐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고, 주위에 떠도는 영혼들을 얕잡아 보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짜증이 난다고 해야 할까. 멀쩡히 눈 뜨고 뒤통수 얻어맞은 꼴이었다.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니고 욕실에서 그런 일을 당했다는 자체도 황당했다.

 

 이딴 식으로 공격이 들어온다면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할까. 잠을 자고 있을 땐 완전히 무방비일텐데 말이다.

 

 ‘이게 무슨 망신이야, 대체.’

 

 그녀가 얼굴을 찌푸렸다.

 

 어질거리던 정신이 되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단 몇 분이면 족했다.

 

 그러자 갑자기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두 눈 멀쩡히 뜨고 있는 순간에도 귀접이란 걸 당할 위험이 있다는 걸 미리 알려 줬어야 했는데. 아무도 그녀에게 그런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무기라곤 그저 채찍 하나만 덜렁 내어 준 게 다였다.

 

 생각해보니 채찍으로 영혼들을 소멸시킨다는 거 자체가 의심스러웠다. 그저 겁을 주거나 아주 잠깐의 시간만 벌어줄 뿐. 어쩌면 그조차도 안 먹힐지 모른다.

 

 ‘혹시 무기를 잘못 내준 거 아니야?’

 

 인간들처럼 명계나 천계에서도 실수는 있었다. 인간, 영혼, 상위존재들 모두 완벽하진 않으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녀의 눈에서 불똥이 튀어 올랐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으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떴지만, 쉽사리 화를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초보 퇴마사가 이번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거였다. 비웃음을 날리거나 실력이 고작 그것뿐이냐고 비아냥거리거나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된다는 잔소리 따위를 늘어놓지도 않았다.

 

 상황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법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조금...’

 

 한 가지 걸리는 사실이 있었다.

 

 몸에 원피스형 잠옷을 걸치고 있다는 사실이 께름칙하긴 했다. 그녀가 의식을 잃고 있었을 때 파로크가 한 행위였다.

 

 흥분을 가라앉히던 그녀의 볼이 갑자기 빨개졌다.

 

 “내가 왜 얼굴을 붉혀? 짜증이야, 진짜.”

 

 에오는 입술을 꽉 깨물며 힘껏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쓸데없이 휘몰아치는 감정과 어이없음과 이상한 상상들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갑자기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꺅! 싫어!”

 

 소리를 지른 그녀가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숨을 몰아쉬고 있는 에오의 얼굴은 한참 동안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이마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고, 심장은 쿵쿵 뛰었다.

 

 ‘아무래도 나 병에 걸린 것 같아.’

 

 그녀는 자꾸만 치밀어 오르는 이해하지 못할 감정들을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이건 부작용이야. 영혼에 빙의 된 인간은 모두 이런 후유증을 겪을 거야. 그러니까 이건 정상적인 현상이라구.’

 

 그녀는 스스로를 향해 최면을 걸었다.

 

 이 모든 현상은, 그러니까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현상은 초보퇴마사 때문이 아니라 못된 영혼들 때문에 그런 거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사라져 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중얼중얼.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진정시켰다.

 

 어느 정도 기분이 나아졌다고 느끼자, 재빨리 침대 밖으로 빠져나왔다.

 

 방 한가운데로 걸어가 바닥에 구겨져 있는 젖은 드레스를 집어 들었다.

 

 “이건 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인데...”

 

 속이 상했다. 아니 쓰렸다. 마음도 아팠다.

 

 어느새 그녀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에 맺혔다.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 험악하고 빙의령 따위가 들끓고 있는 이런 곳에서 1000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1000년은 고사하고 1000일도 못가 강한 힘을 가진 못된 영혼에게 빙의 당해 절벽 아래로 다이빙을 해 버리고 말 것 같았다.

 

 “끝내주는 곳이야.”

 

 그녀는 다시금 자신을 이곳으로 내동댕이친 허여멀건 살찐 만두 같은 놈을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또르르.

 

 눈물이 방울져 그녀의 뺨 위로 흘러내렸다.

 

 에오는 얼른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다른 것도 아니고, 겨우 드레스 하나 때문에 질질 짜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를 분노케 했다.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야! 이 ... 개...발... 놈아!’

 

 들리지 않게, 하지만 분노와 증오를 가득히 담아 살찐 만두 놈의 면상을 향해 던져주었다.

 

 ‘돌아가기만 해봐라’

 

 만일 그녀가 천사였다면 옷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것이다. 드레스보단 날개 치장에 더 집중했을 테니까. 모두가 부러워할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의 날개는 눈부시게 하얗고 신성한 빛을 품고 있었으며, 움직일 때마다 라일락 향이 진동했다.

 

 “하...”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육체가 생긴 이상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옷이었다.

 

 단순히 개인의 취향에서부터 보호 기능, 심리적 안정, 미적인 완성 등등. 나열하려 들자면 수도 없이 많았다.

 

 에오가 인상을 찡그리자 하얀 이마에 주름이 갔다.

 

 드레스는 이미 엉망으로 변해버렸지만, 그렇다고 쓰레기통에 홱, 쳐박아 버릴 수는 없었다.

 

 잘만하면 처음처럼 완벽하진 않아도 그럭저럭 껴입을 수 있을지 모른다.

 

 “구겨진 곳을 좀 펴고... 얼룩진 데를 좀 비벼 문지르고.. 휴.”

 

 그녀가 물에 젖어 축축한 드레스를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고개를 내려 자신의 발밑을 응시했다.

 

 발목을 간질이는 원피스 잠옷은 얼른 벗어버리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편하긴 했지만, 자세히 보니 안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천이 너무 얇았다.

 

 더더욱 맘에 안 드는 또 다른 이유는.

 

 “쌀 포대 자루 같아.”

 

 맘에 들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센스있는 천사였다. 때문에 미를 추구하는 인간들을 보이지 않게 도운 적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드레스와 화장, 향수, 머리 스타일, 신발과 가방까지. 몸에 바르는 향료까지도 관심이 많았다.

 

 그런 그녀에게 쌀 포대 자루 같은 잠옷은 아무리 봐도 좋게 봐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라도 그렇지. 이따위 거적 대기를 걸쳐 놓는 실수를 하다니. 초보퇴마사의 안목이 의심스러웠다.

 

 벽에 붙어 있는 커다란 옷장 문을 열었다.

 

 이곳에 살고 있던 인간의 취향이 우아하고 고급스럽기를 바랐다.

 

 보랏빛 눈동자가 옷장 안을 빠르게 훑었다.

 

 “.......”

 

 온통 무채색 천지.

 

 그녀가 좋아하는 원색 계열은 보이지 않았다.

 

 뾰족한 손톱이 달린 손가락이 좌르륵, 칙칙한 빛깔을 가진 옷들을 하나하나 젖혀 나갔다.

 

 그녀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마침내 손가락이 옷걸이 맨 끝부분에 이르렀고, 그녀는 취향 저격의 드레스 따위는 없다는 걸 알아챘다.

 

 힘없이 팔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죄다 칙칙하고 거무죽죽하고. 왜 이런 것들 밖에 없느냐구!”

 

 흥분한 탓에 그녀의 가슴팍이 위아래로 오르내렸다.

 

 물기가 스며들어 축축한 긴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쓸어 넘겼다.

 

 입술을 질끈 깨물며 다시 한번 옷들을 훑어보았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거칠게 옷장 문을 닫았다.

 

 -쾅!

 

 울상이 된 얼굴로 멍하니 서 있던 그녀가 천천히 몸을 돌려 방문을 나섰다.

 

 몇 걸음 걷던 그녀가 우뚝 그 자리에 멈춰섰다.

 

 휘둥그레진 두 눈동자.

 

 깔끔해 보이던 거실이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다.

 

 빗물이 흘러들어온 바닥은 물과 흙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이건 지옥이야.”

 

 그녀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눈동자가 창밖으로 향했다.

 

 -저벅저벅.

 

 흙탕물을 튀기며 걸어오는 파로크와 두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꼈고, 진정되었다고 여겼던 가슴이 마구 뛰었다.

 

 ‘망했어!’

 

 에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바보야, 그런다고 정신이 들겠니?’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방안으로 도망칠 것만 같았다.

 

 파로크는 어두운 밖에 머물러 있었다.

 

 비도 내리고 있었고. 심심찮게 천둥도 그르렁거렸다.

 

 ‘알아채지 못했을 거야. 지금이라도 얼른 포커페이스를 ...’

 

 에오는 죽을 힘을 다해 도도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어느새 주먹까지 꽉 쥔 채로 눈에 힘을 빡 주고. 그렇게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릴렉스 하자. 릴렉스, 제발. 명색이 전직 천사인데, 겨우 남의 피나 빨고 다니던 흡혈귀 전생을 가진 인간 녀석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되겠냐구!’

 

 그녀는 정말로 죽을 힘을 다해 평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 사이 유리문 가까이 다가온 파로크.

 

 머리칼에서 빗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이마와 두 뺨, 구렛나루 까지 몽땅 물에 젖어 번들거렸고, 온몸도 마찬가지였다.

 

 떡 벌어진 어깨와 단단해 보이는 가슴 근육, 그리고 미친 비율을 자랑하는 긴 다리.

 

 “후아, 후아.”

 

 결국 에오는 거친 숨을 토해내고 말았다. 현기증이 일었고, 다리에 힘까지 풀려버렸다.

 

 ‘인간이 저렇게 완벽하게 생겨 먹을 수 있어?.’

 

 빗속에 서 있는 파로크의 모습은 거칠고 당당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몽환적인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특히, 심장을 찌를 듯한 강렬한 적갈색 눈동자엔 마력이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에오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 몰라. 될 대로 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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