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월 되기 일주일전
감금당하고 대체 몇 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날짜를 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디어져만 갔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곳에서 버텨야 할지도 모르겠다.
터벅터벅
그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형 밥먹을 시간이야.”
그가 밥이 말아져 있는 국밥과 깍두기를 나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는 최창살 문 바로 앞에 있는 의자에 앉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형, 불편한 건 없어?”
수 없이 많다.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전등 빛에 의지해 살아가보라며 말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옆의 여자분은…?”
나는 십년이 넘게 이 곳에서 지냈더니 이제는 적응했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나는 그의 잘못으로 잡혀 온 그녀가 걱정되었다.
“지금은 자고 있어. 조금 있다가 밥 갖다 주려고. 너무 걱정하지마.”
그는 잠시 말하기를 멈추더니 헛소리를 지껄였다.
“형, 기다려. 이제 곧 끝나.”
기다리라는 그의 말을 수없이 많이 들어왔다. 나는 순간 미쳐버릴 것만 같은 감정이 밀려왔다.
“딱 일주일만 기다려. 그 때, 꺼내 줄게.”
그 순간 나는 놀란 눈을 하며 그를 쳐다봤다. 그가 확정된 약속을 말한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나에게 헛된 희망이라는 감정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 형은 아주 유명해질거야. 아니지, 유명해지는 정도가 아니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알게 될걸? 역사속에서는 형을 위대한 사람으로 기록하게 될 거야.”
그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에 의문심이 생겼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지금까지 했던 일들 모두 다 형이 했다고 할 거야. 그리고 곧 있을 마지막 집행까지. 나는 집행이 끝나자마자 자살할 예정이고. 뭐, 어차피 시한부 선고를 받아서 결국에는 죽겠지만… 어쨌든, 그러면 그 때 형이 나를 대신해서 나서는 거야. 어때? 완벽하지 않아? 박형식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모든 일들은 박형원이라는 한 사람이 악을 집행하는 집행자로서 그리고 구원자로써…! 모든 사람들이 박수 쳐 줄거야!”
그는 마치 어린이가 학예발표회를 할 때의 초롱한 눈빛을 하며 재롱을 부리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이놈은 단단히 미쳤다. 아주 미친놈이다. 이 자식은 일이 끝나면 다른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자살하는 동안 난 교도소에 끌려가겠지. 그리고 나는 평생을 교도소에서 살거나… 아니 무조건 사형이다.
나의 하나뿐인 동생, 아니, 이 미친놈을 위해 대신해 죄를 받을 생각은 전혀 없다. 그가 했던 일들은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있다. 그는 작은 일이라도 여기로 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말들을 나의 일기에 적어 놨었다. 그리고 할 일이 없는 이 공간안에서 내가 쓴 일기들을 수도 없이 읽었었다. 그래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부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살인을 내가 하지도 않았는데 내 일이 된다고 생각하니 진심으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이 놈을 이기고 싶다. 지금까지 자신이 집행자니, 구원자니 하면서 우월감에 빠져 나를 도와준다는 핑계로 살인을 한 이 자식에게 크게 한 방 먹여주고 싶었다.
“형식아…”
“응? 뭐 필요한 거 있어?”
“형식아. 넌 목표를 이루지 못 할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형이 이렇게 살아있고, 내가 다 준비해놨는데…”
그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급히 호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만… 형, 기다려. 그러지마! 제발!”
나는 그가 없는 시간이면 바닥 타일을 들어내 땅바닥의 돌을 캤었다. 그리고 그 돌을 날카롭게 깎아냈었고 결과적으로 그 돌은 꽤나 날카로운 흉기가 되어있었다. 그가 문에 열쇠를 꽂고 들어 올려는 순간, 나는 품 안에 있던 날카로운 돌을 꺼내 내 심장을 향해 찔렀다. 처음 사람을 찔러봤다. 하지만 그 대상이 나 자신이 될 줄은 몰랐다. 처음 사람을 찔러봐서 그다지 깊숙이 찔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가 나에게 달려들기 직전에 총 3번, 내 가슴을 있는 힘껏 찔렀다.
가슴이 아려온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 겪어 보는 고통은 왠지 모르게 편안함을 주었다. 모든 족쇄가 풀려 자유의 감정을 느끼기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쓰러져 있는 나를 껴안으며 어린아이같이 눈물을 흐르고 있는 그를 보고 있으니 옛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목표를 세우고 행동에 옮겼다. 비록 잘못된 방법들이었지만 지금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말 그대로 순수한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형식아… 미안하다. 형이 미안해…”
그가 나를 더 세게 껴안으며 더욱더 거세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의 뜻대로 위대한 사람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니야…”
“형…”
“넌 결국 네 삶을 산 거야. 나를 위한 삶이었다면… 그 아이를 데려온 날. 그 때라도 멈췄어야 해…”
아… 눈이 감기고 있다…
나는 이제 자유로워진다…
“난 형을 위한 삶이 아닌 내 삶을 살아간 거야. 하지만 그 삶이 형이었고 나는 그것을 원했던 거야. 그러니까… 결국에는 내 삶이라는 거지… “
“형이 겉과는 다르게 속으로는 형도 원하고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형이 없어도 형이 남긴 형의 이름을 사용해서 세상속에 기록되게 할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편안히 누워…”
눈이 완전히 감겼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그를 순수한 어린아이로 비춰본 그 순간을 후회했다.
너는 내가 간신히 푼 족쇄를 다시 묶어 버렸구나.
…
그가 죽인 인원은 총 53명. 53중에 하나가 되지 못한 기록.
난 죽지 않고 살아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