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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댕댕이인줄 알았는데, 늑대라니!
작가 : 블랙다이아몬드
작품등록일 : 2021.12.26

# 여주.
- 홍임수(여, 35살, H 푸드의 대리)
“동생 대신 내가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물에 빠진 동생을 구하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팥쥐가 된 철벽녀.


# 남주
-지국장(남, 30살 H 푸드의 낙하산 인턴.)
“외로워서가 아니라, 누나를 사랑해서. 누나의 가족이 되고 싶은 거야!”
교통사고로 가족은 잃은 그에게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준 그녀를 위해, 세상 밖으로 나온 순정남.

#서브 남
-최재현(남, 37살 H 푸드의 본부장)
“무서운 꼬맹이, 겁쟁이 오빠한테 시집와라.”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기에 대세를 따르는 실속파.

#서브 녀.
김희주(여, 30살, H 푸드의 이사)

“쫓겨난 주제에, 뭐가 그렇게 당당해! 그래서 더 짓밟고 싶어.”
열등감에 모든 걸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가식적인 콩쥐.

 
제9화-반갑다. 꼬맹아!
작성일 : 22-01-09 13:07     조회 : 264     추천 : 0     분량 : 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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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의 압박에도 꿋꿋하게 메뉴판을 정독하던 그 남자가 넉살 좋게 말했다.

 

 “물론 소개팅 자리에서, 식사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알면서 왜 이래!’

 

 “무리한 부탁인 거 알지만! 오늘 한 끼도 먹지 못한 놈. 살려준다고 생각하시고. 너그럽게 밥 한 끼만! 함께 먹어주세요. 임수 씨.”

 

 문어 부장 새끼가 지랄 떨 거, 생각하니. 벌써 뒷골이 당겼다.

 

 “네.”

 

 못 이기는 척, 메뉴를 골랐다.

 

 “저는 크림파스타 먹을게요.”

 

 재현은 세상 다 얻은 표정으로 메뉴를 추천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임수 씨, 그럼, 샐러드도 추가하세요.”

 

 “아니요. 이걸로 충분합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많이 먹는다고, 부디 욕만 하지 말아주세요. 다 맛있어 보인다. 뭐 시키지.”

 

 재현은 배고픈 표정으로 벨을 눌러 주문했다.

 

 “이분은 크림파스타. 저는 피자 레귤러와 해물 리조토 그렇게 주시고요. 음료는 저는 콜라. 임수 씨는?”

 

 “그냥, 물 주세요.”

 

 “아! 탄산을 싫어하시는구나.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주세요. 죄송하지만, 최대한 빨리 주세요. 배고파서요. 감사합니다.”

 

 재현의 노골적인 호감에 눈길을 애써 모른 척, 물만 마셨다.

 

 재현은 자신의 시신을 외면하는 임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설마 하고 나왔는데. 진짜 꼬맹이네. 여전히 이쁘네. 반갑다. 꼬맹이!’

 

 그윽한 눈빛으로 임수를 바라보던 재현은 어느새 옛 추억에 잠겼다.

 

 "꼬맹이! 뭐해? 땅에 사탕이라도 떨어졌어? 왜 땅만 쳐다보고 있어?"

 

 귀찮다는 표정으로 재현을 올려다보던 꼬맹이 임수가 혀를 찼다.

 

 “쯧쯧쯧. 오빠. 그럴 땐, 사탕이 아니라 동전! 아니면, 돈이라고 해야지.”

 

 “벌써, 돈타령이야. 꼬맹이가! 요즘 애들은 동심이 없네. 동심이. 그렇다간 산타한테 선물 못 받는다.”

 

 “동심이 많은 오빠나, 산타가 떨어뜨린 사탕이나, 주워서 먹어. 난 됐으니까. 그리고, 산타 선물은 엄마가 주는 거야. 쯧쯧쯧.”

 

 당돌한 꼬맹이 응수에 할 말 잃은 재현은 유치하게 대꾸했다.

 

 “그래. 동심이 철철 흐르는 이 오빠는 산타 할아버지가 땅에 던지고 간, 어마어마하게 큰 사탕을 받아먹을 거다. 어쩔래! 이 꼬맹아.”

 

 “뭘 어째. 더럽게 땅에 떨어진 걸, 주워서 먹겠다는데. 놔둬야지.”

 

 “칫! 난 더럽게 먹는다. 이 동심 파괴자야.”

 

 “잘 가. 나잇값도 못 하는 오빠야.”

 

 “한마디를 안 지지. 잘 가라. 꼬맹아.”

 

 주문한 크림파스타가 나오자, 재현은 그제야 추억 여행에서 돌아왔다.

 

 비록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임수의 도도한 매력아 내심 반가웠다.

 

 먼저 나온 크림파스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임수가 입을 뗐다.

 

 “배고프신데 안타깝게도, 제 파스타가 먼저 나왔네요. 잠시만요.”

 

 크림파스타 위에 피클 붓고, 그 피클 접시에 크림파스타를 덜어, 재현에게 건넸다.

 

 “우선 이거라도 드세요. 저는 보기보다 양이 적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자의 내숭이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드세요.”

 

 미운 놈 파스타 한 가닥 더 준다는 심정으로 내 파스타를 덜어줬다. 딱히 배고프지도 않고, 먹으면 체기에 얹힐 거 같기에.

 

 피클 접시를 건네받은 재현은 감동 어린 눈망울로 날 쳐다봤다.

 

 ‘여전히, 돌려 말하는 법이 없지. 역시 재미있는 꼬맹이야. 그래서 그런가? 종종 네 생각이 나더라.’

 

 임수가 건네준 크림파스타를 돌돌 말아, 입안 가득 넣은 재현은 설레는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버릇이 무섭다고. 행복한 얼굴로 먹는 재현을 보자, 나도 모르게 댕댕이를 챙기는 습관이 나와버렸다.

 

 남은 내 크림파스타를 탈탈 털어 덜어줬다.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다. 밥까지 먹었는데. 설마, 박 부장에게 뒷말은 하지 않겠지. 우리 댕댕이도 파스타 좋아하는데. 저녁에 크림파스타나 만들어 줄까?’

 

 설레는 추억을 간직한 재현은 이 공간을 박제하고 싶었지만.

 

 임수는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갈 생각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동상이몽 소개팅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별말 없이 서로가 편한 식사를 했다.

 

 임수는 소개팅이라는 미명아래. 무례한 호구조사와 자랑질을 주절이 듣지 않아서 편했다.

 

 재현은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어 포근했다.

 

 핸드백이 전해지는 진동에 임수는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현 씨, 잠깐, 화장실 좀…….”

 

 “네. 다녀오세요.”

 

 핸드백을 들고 화장실로 가는 임수의 뒷모습에서 재현은 책가방 메고, 쫄래쫄래 나가는 꼬맹이로 겹쳐 보였다.

 

 

 ****

 

 "밥 먹었어?"

 

 핸드폰 너머로 지국장의 목소리가 퉁명스럽게 들렸다.

 

 [어디야? 왜 안 와?]

 

 “갑자기, 점심 약속이 생겼어. 문자 해잖아. 설마? 내 도시락 기다린다고, 아직도 밥 안 먹었어?”

 

 [당연히 안 먹었지. 누나도 없는데]

 

 “네가 애야! 알아서 챙겨 먹어. 끊는다.”

 

 [누구랑 약속인데?]

 

 “그냥 거래처 사람. 할 말 없으면, 끊어.”

 

 [음~요즘은 거래처 사람이랑, 크림파스타도 먹는구나. 분위기 좋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누구는 도시락이 없어, 온종일 굶었는데]

 

 ‘설마? 여기에? 댕댕이 코빼기도 안 보였는데. 설마?’

 

 화장실에서 뛰쳐나와 레스토랑 홀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잠깐! 내가 바람을 피우다가 걸린 사람 같잖아. 댕댕이 찾아서 뭐하게? 애인도 아니고. 만사 귀찮다. 집에나 가자.’

 

 피곤한 표정을 갈무리하고,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웃으며 반기는 재현을 바라보며, 내 입술을 움직였다.

 

 “맛있게 식사하셨어요?”

 

 “네. 임수 씨, 덕분에요. 푸짐하고, 맛있게 먹었네요.”

 

 “다행이네요. 그럼,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취적인 임수 씨라서, 떨리네요.”

 

 너스레를 떠는 재현 본부장에게 사무적인 말투로 차갑게 말했다.

 

 “경험상, 할 말은 빨리 끝내는 게, 서로에게 좋더라고요. 특히, 감정적인 문제는.”

 

 싱글거리던 재현의 입꼬리가 천천히 내려왔다.

 

 “알겠습니다. 임수 씨가 하고 싶은 이야기, 마저 듣겠습니다.”

 

 “제 나이, 알고 계시죠.”

 

 “네. 저도 임수 씨. 못지않게 37살입니다. 그러니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나이 이야기는 넘어가죠. 하하하.”

 

 “네. 그럼, 다른 문제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재현 씨.”

 

 재현은 씁쓸한 미소로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임수 씨, 제가 마음에 안 드시는군요. 평범하게 생겨서, 그럴 수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제 말을 오해하신 것 같은데. 재현 씨가 마음에 안 들고, 들고 문제가 아닙니다. 오로지, 제가 마음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재현 씨.”

 

 재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반문했다.

 

 “마음이 없다?…무슨 마음이오?”

 

 “비혼주의자입니다. 그래서 제가 누굴 좋아하거나. 만나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는 소리입니다.”

 

 “아…비혼주의자도, 연애는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외로운 것보다, 귀찮은 연애가 더 싫습니다.”

 

 “연애가 귀찮을 수가 있나? 이래서 제가 연애를 못 하는 가봅니다. 호기심 차원이니까,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하하.”

 

 “외로움보다 그 사람을 위해서 시간을 내고, 나조차도 모르는 내 감정까지 공유하는 자체가! 피곤해요. 일보다 더 지쳐요. 연애가.”

 

 미간을 살짝 구긴 재현은 생각이 많은 표정으로 백분 토론하듯 반론했다.

 

 “피곤하다. 지칠 수도…그럴 수 있죠. 연애는 상대적인 거니까요. 그럼, 상대적인 집중도가 높은 저랑 연애하시면 어떨까요?”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와 연애론을 토론하는 자체가 코미디지만. 두고두고 박 부장에게 시달리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재현 씨는 그럴 수 있어도, 제가 그렇게 못합니다. 만약, 제가 재현 씨 앞에서 제가 갑자기 울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재현은 반짝이는 눈으로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임수 씨?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나한테 말해봐요. 울린 놈, 데려와요. 혼 내줄 테니까. 이 정도로 물어보겠죠.”

 

 정답인 양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의 표정을 보고 있잖니, 이질감에 불편했다.

 

 “그게. 일반적인 반응이죠. 그런데, 저는 위로할 줄도 모르고, 위로받을 줄도 몰라요. 그래서 그냥 모른 척해요. 한마디로 방임하죠.”

 

 “아! 그 방법도 좋은데요. 섣불리, 상처 건드리는 것보다, 더 좋은데요. 임수 씨.”

 

 “몇 번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사귈수록 섭섭하다, 변했다 등등으로 현실은 싸움이 시작되죠.”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턱을 괸 재현은 갑자기 고백했다.

 

 “성향이 무뚝뚝 하시는구나. 저도 무덤덤해서, 괜찮은 궁합이 예상됩니다. 그런 의미로, 일단 사귀죠. 우리.”

 

 밑도 끝도 없이 사귀자고 하는 재현의 자신감에 보통 여자들이라면, 설레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사회성 없다 못해, 메마른 나한테는 이런 분류의 남자야말로 쥐약이었다.

 

 {다른 여자처럼 애교가 있기를 해, 그렇다고 돈이 많아?}

 

 {불쌍해서 사귀어줬더니. 침대에서 고고한 척은 존나 해대고. 불감증 주제에!}

 

 {너는 여자도 아니야!}

 

 악몽 같았던 연애의 기억들이 어지럽게 몰려와 가슴이 답답하고 불쾌했다.

 

 “재현 씨는 좋은 사람이라,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별하는 것조차 지겹습니다. 혼자가 제일 편하고, 좋아요.”

 

 “…….”

 

 단칼에 거절당한 재현은 씁쓸한 표정으로 시선을 커피잔으로 옮겼다.

 

 임수의 단호함에 재현은 가슴 한편에 묻어뒀던 케케묵은 서글픔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도, 꼬맹이도 변했는데. 아직도, 미련스럽게 붙잡고 있네. 많이 컸네. 꼬맹이.’

 

 같은 장소에 다른 시공간이 있는 괴리감에 서둘러 임수는 이별을 고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제가 나이가 많아서, 차이는 쪽으로 하겠습니다.”

 

 재현은 멋쩍은 미소로 갑작스레 고해성사하듯 말했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임수 씨. 저도 파혼당했습니다. 잘난 거, 없다고요. 저에 대해서 확실히 아시고 가셔야, 공평할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네.”

 

 담백하다 못해, 영혼 없는 내 대답에 재현은 박장대소했다.

 

 “그게, 다예요. 반응이?”

 

 솔직히 왜 웃는지 모르겠지만. 궁금하지도 않고, 귀찮아서 그냥 웃게 놔뒀다.

 

 무례함을 무릅쓰고, 냉정하게 일어났다.

 

 결제를 기다리는 재현을 놔두고, 답답한 레스토랑에서 빠져나왔다.

 

 신용카드를 내미는 재현에게 매니저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경우는 매니저 되고 나서, 처음 보는 광경입니다. 저 숙녀께서 미리 계산하고 나가셨습니다. 센스 있게.”

 

 재현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매니저에게 재차 확인했다.

 

 “네? 언제요?”

 

 매니저는 달콤한 로맨스 영화를 관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화장실 가실 때, 이미 계산하셨습니다. 축하드려요. 고객님. 소개팅 성공하신 것 같네요.”

 

 재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읊조렸다.

 

 “김칫국 잘 마셨습니다.”

 

 

 ***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현은 레스토랑 밖으로 뛰쳐나갔다.

 

 “임수 씨~잠시만요. 임수 씨!”

 

 저 멀리 가버린 그녀를 애타게 불러봤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들렸다.

 

 

 

 

 

 
작가의 말
 

 오늘도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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