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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개를 족쳐라
작가 : 날씨가덥네요
작품등록일 : 2021.12.29

조선 제일의 투견 판매처 경산.
노비 개똥은 오늘 이 지옥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개만도 못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추격극이 시작된다.

 
5. 불개
작성일 : 22-01-08 14:50     조회 : 178     추천 : 0     분량 : 4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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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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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하게 차가운 새벽의 공기를 맞이하며 개똥의 하루가 시작됐다.

 

  심야의 강렬한 각오도 날이 지나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 데친 숙주처럼 힘이 시들해지는 법이었다.

 

  대개의 각오는 훌훌 털어버리고 잊어버린 채로 살아갔다만, 어제의 각오는 뭔가 달랐다.

 

  경산을 떠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소망.

 

  그 막막한 소망이 새벽녘부터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어제 내 말 들었지?”

 

  침울한 얼굴로 사료 더미를 집어 드는 개똥에가 다가온 방석이 입을 열었다.

 

  다른 아이들을 피한 은밀한 대화였다.

 

  “들었어. 무슨 일인데? 어제는, 미처 대답 못했어.”

 

  새벽 일이 끝나면 잠깐 만나자는 방석의 제안.

 

  그 제안이 무엇일지 개똥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우리가 처음 만나서 이 경산에 들어왔을 때, 기억 나? 다른 아이들은 형의 그 능력을 믿지 않지만, 나는 믿어. 정말로 형이 짐승들과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걸.”

 

  개똥을 따라 무거운 사료 더미를 어깨에 이고 방석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처음 마귀를 만나 시험에 들었을 때, 형이 그랬지.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고.”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개똥은 그때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확한 대사까지 기억하다니, 방석은 역시 두뇌가 뛰어났다.

 

  “살다 보니 느꼈어. 어쩌면 정말 운명이라는 게 있는지 모른다고. 그런데, 정말 운명이나 팔자라는 게 있다면 그게 잠자코 살면 된다는 이유가 되지는 않아. 정말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길만 따라가다 죽을 운명이라면, 이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겠지.”

 

  방석의 눈동자에 각오가 보였다.

 

  무언가를 결심한 건 개똥만이 아닌 듯했다.

 

  함께 경산에 발을 디딘 방석 역시 어떤 생각이 있었다. 그 생각은 계획적이고 치밀했으며, 수 년 전부터 마음 속에 품어오던 소망이었다.

 

  “나도 탈출할 거야, 이 지긋지긋한 지옥을. 형의 도움이 필요해. 자세한 계획을 말해줄 테니까, 끝나면 창고 뒤에서 봐.”

 

  대뜸 말을 남기고 방석은 사료를 이고 왼편으로 사라졌다.

 

  사라지는 방석의 뒷모습을 보며 개똥은 잠시 넋을 잃었다.

 

  “형! 뭐해! 빨리 가야지! 불개 담당 형이잖아!”

 

  몇 초 정도 생각에 잠긴 개똥을 움직인 건, 조금 멀리서 들려오는 철수의 목소리였다.

 

  철수는 새로 입고된 개들의 상태를 살피는 중이었다.

 

  새벽녘부터 경산의 일과는 체계적으로 가동됐다.

 

  누군가가 제대로 일을 수행하지 못하면, 그것은 곧 다른 동료의 노동 증가로 이어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맡은 바 임무를 시간 내에 제대로 완수해야 했다.

 

  “알았어! 지금 출발할게!”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릴 만큼 개똥의 직책은 한가하지 못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철수에게 한 마디 건네주고는, 즉각 몸을 움직였다.

 

  개똥은 오른 편으로 이어진 거대한 막사로 걸음을 바삐했다.

 

  웬만한 도사견을 몇 십 마리 정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막사.

 

  이런 막사가 경산 내에는 총 세 개 정도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거대하고 견고히 설비가 된 것이 개똥이 입장하는 막사였다.

 

  그 이유는 수 십의 도사견보다도 위험한 녀석들이 이 막사 안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막사 입구의 문을 열었을 뿐인데도, 으르렁대는 흉포한 울음이 새어나왔다.

 

  입구를 열면 꽉 막힌 철창이 있고, 그 철창을 열고 한 번 더 울타리를 넘어야 직접 녀석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딱 다섯 마리.

 

  수 십의 도사견보다도 흉포하고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경산의 다섯 마리 개.

 

  이 개들을 세간에서는 소위 불개라고 불렀다.

 

  마귀의 불개.

 

  불개는 투견, 사냥, 호위 뭐든 가능한 훈련된 무기였다.

 

  이 살아있는 무기를 완벽히 다룰 수 있는 주인은 오직 마귀 뿐이었다.

 

  때문에 이 불개들을 탐했던 갑부나 귀족들도 불개들의 흉포한 성질에 고개를 젓고 포기했다.

 

  녹이, 적이, 청이, 황이, 흑이.

 

  총 다섯 마리의 불개 중 우두머리의 이름은 녹이.

 

  다른 네 마리의 불개와는 달리 개똥과 그 뿌리부터 함께했던 사연 깊은 녀석이었다.

 

  경산에 처음 발을 들이기 이전, 마귀가 시험에 들게 했던 바로 그 개.

 

  이리보다 거대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그 맹수는 개똥과 함께 경산에 들어와 온갖 훈련과 고난을 거쳐 마귀의 불개가 되었다.

 

  ‘이제야 왔나? 배가 곯아 신경이 예민해. 그 다리를 뜯기고 싶지 않다면 가까이 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마지막 철창을 열고 들어간 개똥을 맞이하는 건 불개의 대장, 녹이였다.

 

  여전히 그 위협적인 거구와 송곳니는 늘 사료를 배급하며 마주치는 것인데도 숨을 막히게 만들었다.

 

  ‘조금 늦어서 미안하지만, 어제 특식이 있었던 것 다 알아. 특별히 더 줄 수는 없으니까 그런 줄 알고 먹어.’

 

  장난 반 살기 반이 섞인 말인 줄 알면서도, 개똥은 진지하게 녀석의 말에 답했다.

 

  광장과도 같은 불개들의 우리에 처음 들어서면 늘 녹이가 입구에 몸을 웅크린 채로 먼저 말을 건넸다.

 

  개똥이 사료 포대를 뜯어 바닥에 뿌리기 시작하면, 그제야 뿔뿔이 흩어져있던 다른 불개들도 한 자리로 모이기 시작했다.

 

  ‘뭐야? 밥이야? 배고파! 배고파!’

 

  불개들 중 가장 후각이 뛰어난 흑이가 재빠르게 녹이 곁으로 달려왔다.

 

  바닥에 흩어지는 특제 사료를 바라보며 침을 뚝뚝 흘렸지만, 녹이의 허가가 있기 전까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귀가 없는 곳에서, 불개들의 서열을 정리하는 건 오직 녹이뿐이었다.

 

  ‘쯧, 도대체 왜 구역질 나는 천한 것이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담당하는 지 그 이유를 장군께 묻고 싶군.’

 

  청이 다음은 적이였다.

 

  날카로운 눈과 쫑긋 선 귀를 지닌 적이는 불개들 사이에서 가장 흉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마귀를 장군이라 칭하며 그 외에 인간은 모두 자신의 밑으로 여겼고, 실제로 인간을 살해한 전적도 있는 위험한 녀석이었다.

 

  오히려 그런 위험한 점이 마음에 든다며 마귀가 직접 경산에 입양하여 길들였다. 때문에, 녹이의 명령을 위반하는 일도 빈번히 있는 불개들 사이의 2인자였다.

 

  ‘순서를 기다려. 또 깝죽대다가 당하고 싶지 않으면.’

 

  ‘새벽부터 힘을 뺄 생각은 다도 없어, 늙은이. 네 녀석이 더 늙어서 힘이 빠지면 그때 그 목덜미에는 내 송곳니가 꽂혀있을 것을 명심해.’

 

  새벽부터 신경전이 대단했다.

 

 녹이와 적이는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더니, 적이가 녹이의 뒤편으로 줄을 서는 것으로 신경전이 끝났다.

 

  뒤이어 기척을 숨기는 것에 능한 청이가 알게 모르게 뒤에 섰고, 검은 줄무늬가 눈에 띄는 황이가 끝에 섰다.

 

  각각 불개 사이에서 가장 사냥에 능한 것이 청이였고, 투견에 능한 것이 황이였다.

 

  마귀가 청이를 끌고 사냥에 나선 날은 수레에 적재할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사냥감이 쌓였고, 황이와 투견장에서 시합에 붙은 개는 교묘하게 급소만을 공략당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걸레짝이 되기로 유명했다.

 

  두 녀석 모두 말은 별로 없는 음침한 녀석들이었지만, 그 무서움은 개똥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경산을 탈출한다면, 이 녀석들로부터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게걸스럽게 사료를 먹기 시작한 불개들을 바라보며 개똥은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무슨 근심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군.’

 

  어두운 얼굴의 개똥을 바라보며 녹이가 말을 걸었다.

 

  사나운 불개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대화를 먼저 거는 쪽은 녹이였다.

 

  ‘알 바 없잖아.’

 

  상대의 물음에 개똥은 퉁명스럽네 대처했다.

 

  유일하게 대화가 통하는 녀석이라고 해도, 결국은 마귀의 도구일 뿐이었다.

 

  처음 경산에 몸을 들이고 반항을 일삼던 녀석은 마귀의 길들임 끝에 녹이라는 이름을 가진 충실한 도구가 되었다.

 

  마귀가 찢으라고 명령하면 그것이 제 어미일지라도 발톱을 휘갈길 것이다. 그 만큼 마귀의 훈련은 혹독하고 처절한 세뇌 교육이

 었다.

 

  ‘같잖은 생각이라도 하고 있나 보군. 내가 두렵나? 그렇다면 두려울 짓을 하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고작 공포 하나 못 이겨내는

  꼴이 나약해 보여서 밥맛이 떨어져.’

 

  거대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녹이가 한 발자국 개똥 가까이 다가왔다.

 

  꺼지라는 뜻이다.

 

  이 흉포한 개를 상대할 만큼의 무력과 배짱이 개똥에겐 없었다.

 

  개똥은 순순히 빈 사료 포대를 가지고 막사를 다시 나갔다.

 

  만약 경산을 탈출한다면, 그것이 마귀에게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저 무지막지한 맹수 다섯이 자신을 추격해 갈갈이 찢어발길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상상을 뿌리칠 수 없었다.

 

  개똥은 포대를 버리고, 막사 근처를 청소했다.

 

  고된 노동을 하는 와중에도 근심을 놓칠 수 없었다.

 

  그리고 새벽일이 끝났을 즈음, 개똥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창고 쪽으로 향했다.

 

  방석과 약속했던 시각과 장소.

 

  과연 방석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개똥은 걱정되는 마음 반 기대되는 마음 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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