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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흡혈 퇴마사
작가 : 제이드Q
작품등록일 : 2022.1.2

빙하 속 바이러스, 우주로 부터 날아든 괴물질에 의해 초토화된 지구.
흡혈귀 출신 파로크는 지구 정화를 위해 인간으로 환생한다.
숨어 있는 사악한 영혼들을 퇴마하는 임무를 맡고 내려온 파로크의 앞날은..

 
초보 퇴마사 1
작성일 : 22-01-08 13:26     조회 : 173     추천 : 0     분량 : 5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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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에오가 다급히 몸의 중심을 잡으려 했지만. 이내 그것이 불가능하단 걸 알아차렸다.

 

 -기우뚱.

 

 그녀의 몸이 뒤로 넘어지려던 순간이었다.

 

 다급히 울리는 발자국 소리.

 

 “레이디!”

 

 굵은 남자의 음성이 귀를 찔렀지만, 이미 바닥으로 쳐 박히고 있던 그녀에게 고개를 돌릴 틈 따윈 없었다.

 

 눈앞에 버티고 있던 짙은 회색 빛깔을 가진 부유령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에오의 엉덩이가 바닥에 닿으려는 찰나, 뭔가가 그녀의 몸을 잡았다.

 

 “...?”

 

 휘둥그레진 그녀의 눈. 딱딱한 바닥이 아닌 뜨거운 감촉이 등과 허벅지에 와닿았다.

 

 그 이유가 뭔지 알아채기도 전에 중저음의 음성이 그녀의 귀를 파고들었다.

 

 “괜찮아?”

 

 숨이 멎을 만큼 강렬한 적갈색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훅, 하고 숨을 내뱉으면 곧장 에오의 얼굴을 덮칠 정도로 그들의 몸은 가깝게 밀착 되 있었다.

 

 -콩닥콩닥

 

 “,,, 꺄악!”

 

 자신의 몸이 낯선 남자에게 안겨있음을 알아챈 그녀가 다짜고짜 비명을 내질렀다.

 

 칼날처럼 예리한 그녀의 목소리에 주위에 머물러 있던 부유령들이 잽싸게 허공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정작 놀란 건 파로크였다.

 

 바닥에 넘어지려는 걸 구해줬으니, 당연히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볼에 뽀뽀는 못 해 줄망정.

 

 딥키스는 바라지도 않았다.

 

 팔에 안겨 버둥거리는 레이디의 눈초리는 변태를 쳐다보는 얼굴이었다.

 

 “이거 놔!”

 

 에오가 격렬하게 저항했다.

 

 “내가 뭘 어쨌다고?”

 

 “어서 이거 놓으라니까!”

 

 “알았어. 놓으면 되잖아.”

 

 재빨리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은 후 뒤로 물러났다.

 

 한쪽 뺨을 가린 채 어깨 위로 길게 흘러내린 머리칼을 거칠게 뒤로 넘기면서, 그녀가 서둘러 옷차림을 정돈했다.

 

 종아리까지 아래로 길게 내려오는 꽉 끼는 차이나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몸의 굴곡이 더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꿀꺽

 

 물끄러미 그녀를 응시하던 중 절로 침을 삼켰다.

 

 설마? 이렇게 육감적인 레이디가 나와 동료?

 

 ‘그렇담 난 좋지 뭐.’

 

 소리 없이 웃음을 머금었다.

 

 그 순간 옷매무새를 살피고 있던 에오가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헉.

 

 재빨리 헤벌쭉 웃고 있던 표정을 감췄다.

 

 감사합니다, 란 소리가 절로 나올 만한 그녀의 몸을 감상하고 있던 눈동자는 슬그머니 옆으로 돌렸다.

 

 ‘난 순수혈통을 자랑하는 젠다르시아 흡혈가문 서열 1위 파로크야. 잘난 놈이라구. 아름다운 레이디를 보면서 흥분할 필요는 없어. 섹시한 몸매는 ...오래전에 실컷 구경했으니까 이젠 무덤덤해질 때도 됐지... 에... 그러니까.’

 

 미친 듯이 피가 요동치고 있다. 그걸 감추려 애쓰고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날아와 내 귀에 박혔다.

 

 “생존자인가?”

 

 대뜸 묻는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 보았다.

 

 짙은 속눈썹 아래 보이는 눈동자는 여신처럼 신비로웠고, 붉은 입술은 달콤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얗고 가느다란 목 아래 발목까지 길게 내려오는 드레스 사이로 보이는 매끈한 다리는 예술 그 자체였다.

 

 “오우”

 

 뜻 모를 말을 내뱉고 말았다.

 

 내 몸이 이미 흥분하고 있단 뜻이다.

 

 “뭐? 생존자 맞단 소리야? 말 할 줄 몰라?”

 

 “.......”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려 했지만, 꾹 참았다.

 

 첫 대면에 가벼운 남자로 보일 순 없으니.

 

 쿵쿵 뛰는 심장을 무시했다. 오래전, 그러니까 심장에 말뚝이 박혀 죽기 직전 기억을 떠올렸다.

 

 위대한 밤의 제왕처럼 힘이 넘치던 젠다르시아 흡혈귀이던 그 시절을 말이다.

 

 내가 입을 열려던 순간 그녀가 다시 물었다.

 

 “아! 혹시 초보 퇴마사?”

 

 “뭐...? 초보... 퇴마...사”

 

 어이없다는 얼굴로 내가 중얼거리자, 그제서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 입꼬리를 위로 말아 올렸다.

 

 자존심이 상했다.

 

 초보 퇴마사란 말이 맞긴 했지만, 그래도 ‘초보’ 라는 단어가 영 거슬렸다.

 

 담담한 얼굴로 서 있던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예쁘게 생겨서 부드럽게 대해주려 했건만.

 

 아무리 예뻐도 건방진 건 못 참는 성격인 나다.

 

 이 여잘 어떻게 혼내줄까, 궁리하던 중 대뜸 그녀가 한 발자국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좀 전엔 고마웠어.”

 

 하얗고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싱긋 웃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쿠쿵!

 

 심장이 바닥에 쳐박히고 말았다.

 

 ‘아 어쩔...’

 

 딱딱하고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주려던 난 이내 굳었던 얼굴을 폈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아름다운 레이디를 돕는 건 당연.”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에오라고 불러. 넌?”

 

 “... 파로크.”

 

 뭐지? 맘에 안 들면 인정사정없이 목을 물어뜯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흡혈귀인 내게 이렇게 당당한 이유가 뭘까? 내가 두렵지도 않나?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그녀가 다시 대꾸했다.

 

 “파로크. 흡혈귀였다는 얘긴 전해 들었는데, 설마 아직도 피를 빨고 뭐 그러는 건 아니지?”

 

 “뭐?”

 

 다짜고짜 무슨 질문을 이렇게 공격적으로 하실까.

 

 보이는 거라곤 짙은 회색 구름 덩어리들과 영혼들뿐인 이곳에 사람 목소리가 들려서 한달음에 달려와 바닥에 넘어지려는 걸 구해줬건만.

 

 ‘예쁘니까 봐준다.’

 

 처음 보는 남자를 무서워하고며 도망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몸매도 훌륭하니까 그깟 질문 좀 던지면 어떠랴.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진 나였다.

 

 비록 지금은 흡혈귀가 아닌 인간의 몸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 전생의 습성을 다 털어내 버리진 못했다.

 

 하지만 그런 대답을 했다간 그녀가 멀리 도망쳐 버릴지도 모른다.

 

 천천히, 최대한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얘긴 꺼내지 마. 이젠 인간이니까.”

 

 살짝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리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미안.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야. 너무 맘에 담진 말고.”

 

 에오가 손으로 머리칼을 매만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훗, 귀여운데. 향수 냄새도 나는 것 같고.

 

 그러고 보니 여자 냄새를 맡아 본지.

 

 ‘.. 3000년이나 흘렀구나.’

 

 “흠.”

 

 흐뭇한 표정으로 그녀를 흘끗 쳐다보았다.

 

 다시 봐도 헉, 소리가 튀어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육체를 가지고 있는 그녀와 함께 누워있는 상상을 하고 있던 그때.

 

 “퇴마는 좀 이따 하고. 우선 좀 씻어야겠어. 신발에 먼지도 묻고. 몸이 찐득찐득해.”

 

 “씻어? 어... 아... ”

 

 “음? 빨리 쉴 곳을 안내하란 말이야.”

 

 “따라와.”

 

 냉큼 대꾸한 난 좀 전에 한숨 돌렸던 주택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그녀에게 이것저것 더 묻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마음이 바뀔까 봐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는 것에만 집중했다.

 

 -또각또각

 

 그녀가 걸을 때마다 발자국 소리가 났다. 그때마다 내 심장도 쿵쿵 뛰었다.

 

 만 난지 10분도 안됐는데... 이름만 묻고 나서 바로 씻어?... 서로 마음만 통하면 됐지.. 날더러 초보 퇴마사라니. 용기라도 주려고 이렇게 서두르는 건가?

 

 ‘그런 게 뭔 상관. 일단...’

 

 마음 같아선 그녀의 손을 잡고 뛰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다 된 밥에 재를 뿌릴지도 모른다.

 

 최대한 느긋하게, 그리고 남자답게 강인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몸을 움직인 지 얼마 후.

 

 조금 전 잠시 눈을 붙였던 주택 앞에 이르렀다.

 

 그동안 이리저리 떠도는 부유령들이 눈앞을 휙휙 스치기도 하고, 어깨를 톡 건드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건 이제 안중에도 없었다.

 

 문 앞에 멈춰선 채 뒤를 돌아보았다.

 

 에오도 따라 움직임을 멈췄다.

 

 검고 긴 머리칼로 반쯤 가려져 있던 그녀의 하얀 목덜미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피를 입안 가득 베어 무는 상상만으로 온몸이 짜릿했다.

 

 무시무시한 상상을 하고 있던 나와는 달리.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차가운 문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문이 열렸다.

 

 에오가 그 안으로 들어섰다.

 

 -쿵.

 

 등 뒤로 문이 닫혔다.

 

 움직임을 멈춘 에오가 입을 열었다.

 

 “욕실이 어디? 저긴가?”

 

 “저기 왼쪽.”

 

 “아.”

 

 에오가 널찍한 거실 안으로 발을 들여놓기 전이었다.

 

 고개를 숙이는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다리에 꽉 끼는 가죽 부츠 때문이었다.

 

 뭔가 망설이고 있는 그녀를 향해 물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이걸 어떻게 벗지?”

 

 “도와달라면 도와줄 수 있어. 뭘 벗으려고?”

 

 잔뜩 기대하며 물었다.

 

 “신발.”

 

 그제서야 나는 그녀가 난감해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여자 가죽 신발은 벗겨 본 적이 전혀 없었다. 흡혈귀로 활동하던 시대엔 다리를 꽁꽁 싸매는 신발 자체가 없었으니까.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사이 그녀가 허리를 굽혔다.

 

 기절할 만큼 아찔한 그녀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흠.”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온갖 자극적인 상상이 머릿속을 휩쓸었다.

 

 -휴우.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뜨겁게 요동치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내가 이곳에 내려온 목적은 단 하나였다.

 

 지구를 뒤엎은 기괴한 혼령과 악령들을 없애버리는 거. 그 일을 끝마치고 나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퇴마에 관련된 정보 자체가 거의 없었고, 얼핏 둘러봐도 쓰레기가 널린 바닥과 무너진 건물, 허공에 가득 차 있는 영혼들을 쓸어 버리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잘난 놈이긴 해도 혼자선 그 많은 숫자를 감당하는 건 무리였다. 게다가 나 혼자서 전혀 기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퇴마 일을 한다는 거 자체도 엄청 짜증 나고 웃기는 일이다.

 

 흡혈귀 능력을 돌려준다면 모를까. 지들 멋대로 연약한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만들어 놓고, 개박살나버린 지구로 날 뚝 떨어뜨려 버렸으니, 최소한 그럴듯한 일행, 동료쯤은 보내줘야 하는 게 예의다.

 

 그런데 오늘 기다리던 동료를 만났다.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레이디를 말이다.

 

 그 사이 에오의 신발 한 짝이 벗겨졌다.

 

 -끙차

 

 또 다른 신발을 벗겨내 버렸다.

 

 “아, 힘들어.”

 

 에오가 말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 뒤에 서 있던 내가 따라 걸음을 옮겼다.

 

 넓은 사각형 거실 가운데에서 고개를 홱홱 돌리던 그녀가 집게손가락으로 왼쪽 방향을 가르켰다.

 

 “저기?”

 

 “어.”

 

 짧게 대꾸했다.

 

 에오는 곧장 문을 열고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쏴아!

 

 물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털썩.

 

 소파 위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폴폴 풍기는 먼지. 손바닥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그래 봤자 별 도움 안 될 테지만.

 

 등과 머리를 소파에 기댄 채 기분 좋은 상상에 한껏 취해 있다가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침대가 있는 방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둘이 누우려면.

 

 그편이 훨씬 더 아늑할 테니까.

 

 나야 별 상관없었다. 흡혈귀란 존재는 원래 밤을 좋아했고, 밤에만 활동했으며 인간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곳보단 숲이나 높은 탑, 나무 위 같은 곳들을 좋아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인간의 골몰을 하고 있었다. 하늘을 날기는커녕 마법조차 먹히질 않는 육체다.

 

 “크흠.”

 

 맘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었다. 임무 수행을 버리고 도망쳐봐야 어차피 불지옥 행이니까.

 

 성큼성큼 긴 다리로 거실을 가로질러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오래된 흙먼지 냄새가 확 풍겼다.

 

 그래도 바닥에 쓰레기가 널려있거나, 부서진 물건 따위가 없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침대 위도 잘 정돈된 상태였다. 방 주인이 누군진 몰라도 꽤 깔끔한 인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대충 방을 살펴보고 나서 다시 소파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욕실에선 여전히 물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자들이란.”

 

 고개를 흔들며 엉덩이를 더더욱 깊숙이 소파에 파묻었다.

 

 지루했다.

 

 세상 지루했다...

 

 심장이 터질 만큼 지루해서 몸과 마음이 너덜거릴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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