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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로맨스, 그 찌질함에 관하여
작가 : 열해
작품등록일 : 2022.1.2

찌질한 과거를 청산하고 다시금 사랑을 시작하려던 나.
찌질함은 결코 벗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4화
작성일 : 22-01-08 00:11     조회 : 200     추천 : 0     분량 : 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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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슈퍼 히어로 영화에는 언제나 빌런들이 존재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빌런들은, 누가 봐도 빌런이다. 우린 영화를 보며 누가 히어로고, 누가 빌런이지 전혀 헷갈릴 필요가 없다.

  그런데 헷갈렸다. 학교에서 김준수의 이미지는 빌런과는 아무런 교집합이 없었지만, 내 어깨에 한쪽 팔을 걸친 채 날 내려다보고 있는 김준수는 분명 빌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한 번도 김준수에 대해 이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정확히는, 그동안 김준수가 어떤 아이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없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엮일 일이 전혀 없었으니까. 이제는 알기 싫어도 알아야 했다. 그런데, 녀석이 빌런이었다면? 두려웠다. 난, 슈퍼 히어로가 아니었으니까.

 

  “끝까지 대답을 안 하네.”

  “아, 정우랑 그냥 놀러 온 거야. 출출해서.”

  “정우? 혹시 박정우?”

 

  김준수는 순식간에 허리를 펴고 정우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같이 온 일행들에게도 정우의 얼굴을 확인시켰다.

 

  “너였구나.”

  “응? 나, 나 왜?”

 

  김준수는 계속 웃으면서 정우를 바라봤고, 정우의 얼굴엔 혼란과 당혹감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는 난 준수에게 정우를 소개해주었다.

 

  “준, 준수야. 정, 정우 몰랐어? 우리 다 같은 반이야.”

  “아, 그래? 야, 반장. 근데 새 학기잖아. 며칠 만에 애들 얼굴 내가 다 외워야 하는 거야? 그런 거냐고.”

  “아, 아니. 그런 건 아냐. 천, 천천히 알아가면 되지, 뭐.”

  “그렇지? 천천히 알아가면 되긴 하는데, 이상하게 정우랑은 좀 빨리 친해지고 싶네. 그래도!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 법이니까, 오늘은 이만 갈게. 맛있게 먹고 가라. 정우야 조만간 보자!”

 

  준수와 일행들이 가게 밖으로 나가자 한시름 놓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지려는데, 정우는 그렇지 않았다. 사시나무 떨듯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박정우! 왜 그래? 아까 김준수가 너 왜 찾은 거야? 너 뭐 잘못했어?”

  “백성……. 나 오늘 먼저 갈게. 미안.”

 

  정우는 갑자기 뛰쳐나가 버렸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지만, 도통 알 길이 없었다. 난 찜찜한 기분만 안은 채 혼자 맛나분식을 나서야 했다.

 

  다음 날, 무슨 일인지 정우가 등교하지 않았다. 연락이 도통 되질 않아 담임에게 찾아갔는데, 담임은 아파서 못 오니까 걱정하지 말라고만 했다. 평소 아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녀석이라 신경이 쓰였다. 전날 정우의 하얗게 질린 얼굴도 기억났고……. 그래도 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정우의 멘토링을 잘 기억하며 그녀와 오붓한 대화를 나누고, 나중에 기분 좋게 성공담을 들려주겠다고 다짐했다. 자신감을 가지고 향한 교무실에선 예상보다도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야말로 효과 만점이었다. 점심시간 내내 그녀와 웃으며 대화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대학에 사범대가 있고 그 안에 국어, 수학, 영어……. 과목별로 학과가 나뉘어 있는 거야.”

  “대학교마다 국어 선생님이 될 수 있는 학과가 다 있는 건 아니란 말씀이시고요. 그쵸?”

  “맞아. 그리고 임용시험을 봐서 공립학교에 갈 수도 있고, 나나 우리 학교 다른 선생님들처럼 사립학교 시험을 따로 치를 수도 있고.”

  “이제 완전히 이해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왜 선생님 하셨어요? 연예인 하셨어도 됐을 것 같은데.”

  “연예인은 무슨. 학생일 때, 국어쌤을 엄청 좋아했어. 국어쌤이 좋으니까, 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지 뭐.”

  “우와, 그럼 저도 국어 공부 잘 할 수 있겠네요?”

  “응?”

  “아, 아니에요. 국어 성적 올리는 것 꼭 보여드릴게요!”

  “그래, 쌤이 문제집 같은 거 알아봐 줄 테니까, 시간 될 때 교무실 한 번 더 와.”

 

  그녀는 조금씩 내게 마음을 열어주고 있는 듯했다. 수업 시간에 처음 들어왔을 땐 뭔가 여장부의 느낌이었는데, 단둘이 대화를 나눌 땐 이보다 다정할래야 다정할 수가 없었다. 난 반 아이들이 모르는 그녀의 다른 모습을 나만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신이 났다. 나만 볼 수 있는 그녀의 모습이라니……. 내가 내 모습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얼마나 행복해 보였을지 안 봐도 그림이 다 그려졌다. 세상을 얻은 듯한 기분이었으니까. 빨리 정우에게 이 기쁜 소식을 들려주고 싶었다. 게다가 그날 오후, 생각지도 못한 일이 펼쳐졌다.

 

  정우도 없고, 학교가 끝나고 따로 들를 곳이 없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국어 문제집을 사러 서점이나 가야겠다는 생각에 정류장에 가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사람 한 명이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녀였다. 그녀가, 내가 있는 정류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날 만나러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난 재빨리 그녀에게 가서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 어디 가세요? 여기서 버스 타세요? 원래 매일 버스 타고 다시니는 거예요?”

  “성현아. 하나씩 물어봐야지.”

 

  그녀는 귀엽다는 듯 미소 지으며 응답해주었다. 그녀는 늘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몇 번 버스를 타는지, 심지어 어느 동네에 사는지까지도 다 알게 되었다. 서점에 간다고 했더니, 놀랍게도 그녀는 나와의 동행을 제안했다.

 

  “우리 집 가는 길에 대형 서점 있는데, 거기 같이 갈래? 마침 나도 찾는 책이 있거든.”

 

  그렇게 운명적인 첫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버스 좌석에 나란히 앉아 서점으로 가는 동안 그간 잠잠했던 심장이 다시 요동치듯 쿵쿵거렸고, 머릿속에선 최대한 길이 막혀 느리게 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정우의 멘토링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너무 가까이 앉아있으니 긴장이 되어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다리도 좀 떨었던 것 같다. 그래도 어쨌든, 다시 못 올 꿈같은 시간이었다. 어색함이 불편하게 느껴졌는지,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내 주었다.

 

  “성현이 반장 하는 건 괜찮아? 할만해?”

  “네? 아, 아직 학기 초라 별 특별한 게 없어요. 그냥……. 조금 부담되는 건 있지만…….”

  “부담? 어떤 부담? 말해봐. 도와줄 수 있는 거면 도와줄게.”

  “반장인데, 제가 사실 성적이 좀 별로거든요. 사실, 공부를 안 했죠. 안 했으니, 별로겠죠…….”

  “그동안은 왜 공부를 안 했는데?”

  “뭐라 해야 하지. 하긴 하는데, 왜 하는지 몰랐던 것 같아요.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그럼, 이젠 잘할 거야. 성적도 오를 거고.”

  “네? 갑자기요? 그럼 좋긴 하지만…….”

  “그동안은 목적이 없었잖아. 선생님 되고 싶다며. 확실한 꿈이 생겼으니 공부하는 것도 재밌게 느껴질걸? 믿어도 좋아. 왜냐면, 나도 그랬으니까.”

 

  그녀는 말끝에 살짝 미소를 지어 주었다. 나에겐 그 미소가 응원이나 용기 같은 단어로 느껴졌고,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처럼 눈이 부셔왔다. 그녀가, 또 한 번 발광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홀려 정신을 거의 잃어버리기 직전에, 다행히 버스에서 내렸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대형 서점 안에서 함께 문제집을 고르고, 또 책 이야기를 하며 조금 더 그녀와 가까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난 분명히, 그녀 역시 나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쉬지 않고 미소를 지었으니까. 자신감이 부쩍 솟아올랐다.

 

  “선생님, 근데 배고프지 않으세요?”

 

  이 멘트는 계획적인 것은 아니었다. 즉흥적인 용기가 어디서 솟아난 건지. 말해놓고 나름 뿌듯하긴 했지만, 혹시나 거절하거나 부담스러워할까 걱정도 되었다.

 

  “어머, 시간 좀 봐. 고삼을 너무 오래 붙잡았네. 이제 슬슬 갈까?”

  “아, 그런 건 아니고요. 선, 선생님 배고프실까 봐…….”

  “왜, 나 맛있는 거 사주려고?”

  “어, 아, 네! 제가 사, 사드릴게요! 뭐 드시고 싶으세요?”

 

  그녀는 갑자기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웃기 시작했다. 귀엽다는 듯, 아니면……. 아니, 귀엽게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밥은 내가 사줘야지. 그런데 오늘은 좀 어렵고, 공부 열심히 잘하고 있으면 언제 꼭 사줄게. 이만 갈까?”

  “네! 꼭 사주세요. 안 까먹고 있을게요!”

 

  난 단단히 약속을 받아놓았고, 기쁜 마음으로 그녀와의 첫 데이트를 마칠 수 있었다. 독서실에서도 계속 그녀만 생각했다. 그녀가 골라준 문제집을 겉표지를 보고 있으니 그녀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고, 혼자서 계속 실실대며 행복에 겨워하고 있었다. 앞으로 그녀와의 관계가 어떻게 펼쳐질까를 상상하기도 했는데, 문득 휴대폰 번호를 물어볼 걸 하는 아쉬움이 떠올랐다. 혹시 SNS라도 찾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는데, 놀랍게도 부재중이 15통이나 와 있었다. 그리고 그 부재중 전화의 발신지는, 다름 아닌 정우였다.

  그녀와 함께 서점에 가 있는 동안 수 차례 전화했던 것. 급히 독서실 밖으로 나가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무심한 연결음만 들릴 뿐이었다. 메시지라도 보내봐야지 하고 들어가 보니 정우가 보낸 장문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이 새끼, 그 여자랑 놀고 있냐?

  전화 졸라 안 받네. 그래도 친구니까 너한테는 뭔가 말해줘야겠더라.

  나 간다. 이제 학교는 안 갈 거야. 아니, 못 가.

  내가 얼마 전에 들이대던 여자애가 있거든. 우리 한 학년 후배.

  우연히 지나가는데 뭔 향수인지 확 꽂혀버렸네.

  그래서 SNS 뒤져서 연락도 해봤는데 전혀 반응이 없더라고.

  그래서 금방 접었지.

  내가 말했잖아. 반응 없으면 접는 게 맞다고.

  근데, 걔가 하필 김준수랑 잘 되는 중이었나 봐.

  김준수가 그걸 알고 나한테 빡쳤나보지.

  나 그날 맛나분식에서 나가자마자 끌려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더라.

  근처 폐건물에서 죽기 전까지 맞았어.

  근데 있지, 맞은 거보다 더 열받는 게 뭔지 아냐?

  김준수가 그러더라.

  찌질한 새끼가 어딜 넘보냐고.

  찌질하면 찌질한 대로 살지 나대지 말라고.

  솔직히 생각해보면 김준수 눈엔 내가 그냥 찌질한 새끼로 여겨질 수밖에 없겠더라고.

  내가 잘생기길 했냐, 공부를 잘 하냐,

  그렇다고 다른 뭐가 있어서 인기가 많은 것도 아니고.

  생긴대로 살았어야 하는데, 내가 너무 나댄 거 맞지.

  그래서 나도 나지만

  너 걱정이 많이 되더라.

  너 반장이잖아.

  김준수가 말은 안 했지만 엄청 열받은 거 같애.

  반장 선거에서 졌잖아.

  자존심이 상했겠지. 너한테 뭔 짓 할까 봐 좀 겁난다.

  그 새끼가 졸라 나쁜 놈이긴 한데

  걔 얘기 틀린 거 없어.

  기분 나빠 하지 말고 새겨 들어.

  너나 나나, 졸라 찌질한 거 맞아.

  찌질한 대로 사는 게 맞아.

  지금 어떻게 해보려는 그 여자가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아니다 싶으면 빨리 접어라.

  나처럼 된다.

  친구니까 진짜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잘 살고. 볼 수 있음 보자.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이해가 되질 않았으니까. 이성 문제를 전문가처럼 상담해준 자식이, 갑자기 찌질하다느니, 접으라느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다니. 정우한테 화가 났다. 갑자기 어딜 간다는 건지, 얼마나 맞았길래 학교도 못 나온 건지, 애초에 묻고 싶던 질문들은 머리에서 지워져 버렸다. 난 그녀와 데이트도 했고, 그녀의 번호도 알아낼 것이며, 조만간 같이 저녁도 먹을 계획이었다. 난 내가 찌질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보여줘야겠다고, 내가 어떻게 그녀와 사랑을 완성해나가는지 세상에 다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난, 내가 찌질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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