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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뉴턴스쿨엔 뉴턴이 없다
작가 : Perpetua
작품등록일 : 2022.1.3

국내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대안 국제학교 뉴턴스쿨,
뉴턴 같은 수학자가 나올 가능성은 없지만, 사과나무 아래서 여러 사건을 만들 학생들은 많다. 헝가리 의대반을 제외하곤 공부에 열심인 학생도 없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는다. 대학에 갈 생각만 있다면 어느 대학이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낸다. 학생의 능력도, 선생의 능력도 아니다. 돈의 능력으로 보낸다.
윤태를 포함해 영호, 양이, 민준, 개화, 은경은 N반이다. N은 뉴턴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 정수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일상은 그리 나쁘지 않다. 바라보는 어른들만 답답할 뿐이다. 그들에게 변화가 찾아올까? 그들의 변화는 긍정적인 조짐일까?

 
7.
작성일 : 22-01-06 13:01     조회 : 192     추천 : 0     분량 : 8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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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마운틴과 상담 약속을 잡으려다 미루기로 했다.

 영호와 민준의 버릇없는 행동으로 분위기도 싸했지만, 미래가 다시 N반으로 돌아온 것이 문제가 됐다.

 문제는 수지가 만들었다. 수지에게 요즘 N반은 눈엣가시였다.

 거기엔 마운틴도 포함돼 있었다. 수지는 미래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걸어 N반의 문제점을 흘렸다.

 마운틴이 쪽지시험을 아침에 보지 않는 것은 학생들의 의견을 너무 우선시하는 행동으로 버릇만 나빠진다는 결론이었다.

 미래 엄마에게 수지는 소식통이었다. 공통분모가 많은 두 사람은 여러모로 소통이 잘됐다. 미래와의 소통에 문제가 많은 미래 엄마가 기댈 선생은 수지뿐이었다.

 미래 엄마가 마운틴에게 전화를 걸어 난장을 부렸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미래가 씩씩거리며 말하기 전까지는.

 

 “유난 떠는 학부형치고 교육관이 제대로 박힌 사람 없어. 언제부터 내 생각을 했다고 설치냐고! 자신의 전공에만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를 텐데, 갑작스러운 관심은 뭐니? 모든 게 과도한 인물이야! 사방이 쪽팔려서 살 수가 없다!”

 

 N반 아이들은 미래의 화가 누그러질 때까지 참았다. 그거 하나만은 예의를 잘 지켰다.

 

 “마운틴이 얼마나 기막혔겠냐? 내가 대학 못가면 책임지라고 했대. 내 대학 입학을 왜 마운틴이 책임지니? 엄밀히 말하면 엄마가 책임져야지! 새 남자가 바뀔 때마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공부? 분위기가 돼야 공부하지! 이번 인간은 최악이야. 곧 돈 가방 챙겨 달아날 거다. 그럼 또 울겠지. 반복, 반복, 도돌이표 인생이야!”

 

 쪽지시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양이는 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양이의 얼굴에 조바심이 가득했다. 엄지손톱을 긁으며 미래의 눈치만 봤다.

 계속 시계만 확인하던 양이가 미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려는 순간,

 

 “양이, 불 꺼라! 오늘은 역적모의 좀 해야겠다. 새 남자 퇴치법을 짜보자.”

 

 영호의 말에 개화와 민준이 손전등을 켰다. 미래 곁으로 모였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난 몰랐지. 영호오빠, 고마워.”

 

 양이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찾아왔다. 양이도 얼른 불을 끄고 모였다.

 

 그때 교실 문이 확 열렸다.

 

 “악!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은경이 우리의 모습을 보며 화들짝 놀랐다. 우리는 더 화들짝 놀랐다.

 은경은 정말 마술피리 밤의 여왕 같은 검은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손전등을 비추니 영락없는 분노 폭발 장면이었다.

 곧 밤의 여왕 아리아만 나오면 되는데,

 

 “아아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아아 아, 아, 아, 아, 아, 아~”

 

 이번엔 개화가 먼저 시작했다. 민준이 뒤를 이었다.

 

 “아아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아아 아, 아, 아, 아, 아, 아~”

 

 나와 영호가 따라하며 모두 합창하자, 양이가 마지막을 장식했다.

 “아~~~~~~~~~~~~~ 두 비스트 마이네 토흐터 니머 미어!(du bist meine Tochter nimmer mehr! / 넌 더 이상 내 딸이 아니야!)”

 

 미래가 뒤로 넘어갈 정도로 웃었다. 좀 전의 화가 단번에 사그라졌다.

 우리의 노래와 웃음소리에 다른 반 아이들이 몰려왔다. 은경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리도 환영을 해주다니 고맙구나. 이 드레스는 강남 A샵에서 산 거야. 무대의상 전문샵이거든. 너희들이 언제 이런 의상을 보겠니? 오늘 많이 신경 썼다. 아리아로 답례해야 완벽할 텐데, 아직 내가 그 수준이 못 되는구나.”

 

 은경이 연기하듯 말했다. 시커먼 손톱까지 붙이고 있었다.

 은경의 손톱이 학생들을 훑다 양이에게서 멈췄다.

 

 “양이, 넌 가사도 외웠느냐?”

 “아⋯ 난 오페라 듣는 거 좋아해⋯. 다는 모르고, 좋아하는 대목만 외웠어⋯. 수백 번 외웠어.”

 “역시, 넌 희귀동물과구나! 네 너를 눈여겨볼 작정이다.”

 

 은경이 양이를 향해 박수를 쳤다.

 은경의 박수에 내가 앙코르를 외쳤다. 아이들도 앙코르를 외쳤다. 개화가 다시 시작했다.

 

 “아아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아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아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아아 아, 아, 아, 아, 아, 아~”

 

 나와 민준과 영호와 미래가 따라했다.

 양이가 이어서 아리아를 하자 은경이 밤의 여왕 흉내를 냈다. 마치 은경이 노래하는 것처럼 연기가 완벽했다.

 

 “아~~~~~~~~~~~~~ 두 비스트 마이네 토흐터 니머 미어!(du bist meine Tochter nimmer mehr! / 넌 더 이상 내 딸이 아니야!)”

 지켜보던 아이들의 환호와 박수가 교실을 울렸다.

 

 

 5.

 

 “운동 가자.”

 

 샤워하고 나오기가 무섭게 미스터 성이 다가왔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머리를 털며 얼굴을 살폈다. 까칠한 털이 눈에 띄었다. 면도를 해야겠다.

 

 면도는 지난 학기부터 시작했다.

 정 여사가 일회용 면도기 한 세트를 선물로 건넸다. 만원도 안되는 선물 하나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며 건넸다.

 면도하는 행위는 성장한다는 의미와 동시에 자신의 무질서한 내면을 가다듬는 행위라나? 간단히 말해 어떻게 자신의 몸을 다스리느냐에 따라 성장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 어마어마한 숙제를 내게 주려고 서둘러 면도하는 법을 알려준 것이었다. 물론 사방에서 털이 두서없이 나오고 있었다.

 나 자신도 뿌듯했다. 정말 상남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정 여사가 면도하는 장면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 나는 미스터 성의 쉐이빙 폼을 얼굴 주위에 가득 발랐다. 광고모델처럼 폼을 잡았다.

 사진을 받은 미스터 성은 의미 없는 축하 이모티콘을 보냈다. 정 여사의 수고에 대한 답변일 뿐이었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는 내가 엄청난 일을 해낸 것처럼 축하했다. 축하 연설이 길었다.

 마지막에 덧붙인 말은 여자를 조심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의였다. 그 말에 나는 잠시 한 여학생이 떠올랐다. 여학생이 아닌 여자로 떠올랐다.

 

 나는 쉐이빙 폼을 털이 난 주위에 정성스레 문질렀다.

 미스터 성이 내가 쓰는 제품을 살폈다. 국산인 걸 확인하자 대단한 걸 발견한 사람처럼 소리쳤다.

 

 “왜 이걸 샀어? 내가 쓰는 메이커가 훨씬 좋아! 비싼 만큼 값어치를 한다니까.”

 “이것도 괜찮아. 제 값어치를 하는 국산도 많아.”

 

 웬일로 장황한 제품 비교를 하지 않는다.

 확실히 이상해졌다. 사람이 변하면 죽을 때가 됐다는데, 혹시 건강검진에 이상이 생겼나?

 정 여사의 말대로 혼자 사는 준비를 슬슬 해야 하나? 날이 갈수록 생각해야 할 게 많아진다.

 

 미스터 성은 면도하는 내 모습을 세심히 지켜봤다. 이 또한 미스터 성답지 않은 행동이다.

 “점심 내기하자, 탁구로.”

 아직 죽을 때가 된 것 같진 않다.

 미스터 성은 변하지 않았다. 일방적인 요구만 하는 걸 보면 본모습 그대로다. 내 용돈이 얼마나 된다고 등쳐먹을 생각뿐이다.

 나는 면도에만 집중했다. 아직 면도기 쓰는 게 능숙하지 못했다.

 

 “옛날 실력이 나올까 모르겠네.”

 

 상대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폼만 잡는다. 모든 운동의 기본은 폼이라는 사람이다. 폼생폼사. 미스터 성의 모토이기도 하다.

 

 “돈 주고 매달려도 사양할 판에, 돈까지 걸고 봉사하라고? 황금 같은 주말에?”

 “알았어, 알았어. 점심 살게.”

 “다른 봉사자 찾아봐. 갈 곳 있어.”

 거절은 단호하게 하는 거다.

 이건 미스터 성에게 제대로 배웠다. 어린 나를 뒤로하고 자신만의 주말을 즐기기 위해 등을 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별한 약속 없다며? 어제 그랬잖아!”

 “특별한 약속은 없고, 특별히 갈 곳은 있어.”

 “얘가, 얘가, 말장난까지 하네. 어디?”

 “서점.”

 “서점? 요즘 서점도 가니? 특별한 걸 다 하는구나!”

 “특별한 걸 다 하는 사람은 따로 있지. 어장이 글로벌 수준이잖아. 파리녀는 돌아갔어?

 

 나는 얼굴을 닦으며 휴대폰 충전을 확인했다.

 

 “언제 적 얘기야?”

 

 내겐 그리 오래된 기억이 아닌데 한두 여자가 더 떠올랐다. 이전 타자인지, 이후 타자인지 모르지만, 미스터 성의 인생 경기에 함께 뛴 여자들임엔 틀림없었다.

 

 “그리고 사업 땜에 만난 통역자일 뿐이야. 벌써 파리로 돌아갔지.”

 

 파리녀는 한국어 발음이 제법 정확한 대학원생이었다. 동양계와 섞여 내가 봐도 인형처럼 예뻤다. Y대 한국어학당에 다니며 미스터 성의 통역을 도왔다. 한동안 그들의 만남은 잦았다. 미스터 성이 골프도 가르쳐줬다.

 어느 날부터 파리녀는 미스터 성에게 오빠, 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내겐 동생, 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개판인 족보였다.

 미스터 성은 파리녀가 비즈니스를 전공해서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분명 통역만 도움이 됐던 건 아닐 것이다.

 

 “불러낼 여자 없어?”

 “나도 좀 쉬어야지. 요즘 피로가 쌓였어.”

 

 나는 피식 웃었다. 피로를 풀기 위해 여자를 만났던 사람이다.

 

 “그럼 쉬어. 푹 자.”

 “어제 10시에 자서 오늘 10시에 일어났다! 12시간 잤다고!”

 

 하기야 불금인데도 일찍 들어왔다. 저녁도 나와 먹었다. 요즘 여자들의 취향이 변했거나 미스터 성의 취향이 변한 게 틀림없었다.

 

 “그럼 책 먼저 사고, 운동 같이하자. 혼자 가면 재미없어.”

 

 참 귀찮다. 내가 매달릴 때도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젠 조금 이해가 갔다. 미스터 성이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럼 조용히 집에서 연구나 해. 요즘 투기사업 한다며?”

 

 할 수 없이 미스터 성의 할 일까지 알려줬다.

 

 “야, 내가 무슨 부동산 투기꾼이냐? 투자!”

 “투기와 투자가 뭐가 다른데?”

 

 골치 아픈 걸 물어보면 물러설 것이다.

 

 “어휴, 투기는, 시세 변화를 예상하며 차익을 보는 거고, 투자는, 이익을 얻기 위해 자본과 시간을 대는 거야.”

 “이익을 챙기는 건 똑같네.”

 “다르지! 결과만 챙기는 거와 과정에 정성을 쏟으며 결과를 만드는 건. 야, 너 지금 내 수준 테스트하냐?”

 “어쨌든 연구할 게 많잖아. 팅킹(thinking) 좀 해.”

 “근데 너, 내가 뭘 개발하는 줄 아냐?”

 “투자한다며? 개발도 해?”

 “어휴, 관심 좀 가져라. 스포츠 게임개발에 투자한다고!”

 “관심 없고.”

 

 내가 잘라 말했다. 여러 말로 포장해도 돈벌이에만 혈안인 사업일 것이다. 절대 손해 보는 투자는 하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나는 주야장천 앉아서만 하는 게임엔 흥미가 없었다. 활동적인 놀이가 즐거웠다.

 한때 미스터 성은 그런 나를 보며 골치 아프다는 표현을 썼다.

 정 여사는 천만다행이라는 표현을 썼다.

 미스터 성이 사 준 여러 게임기 중에 격투기게임을 잠시 즐기긴 했다. 실전만큼 이기질 못해 금방 흥미를 잃었다. 요즘은 삼국지 게임만 가끔 한다. 조조전에서 토탈워로 바꾼 상태다. 토탈워의 시작 배경은 후한 말 동탁이 권력을 잡게 되면서부터다.

 

 나는 삼국지를 만화로 읽었다. 정 여사가 집에 놔두고 간 걸 몰래 버리려다 읽게 됐다.

 정 여사와 말다툼이 잦던 시절이었다. 만화는 열 번을 넘게 읽었다.

 어느 날 정 여사가 만화책을 찾았다. 책표지가 꼬깃꼬깃했다.

 그다음엔 조금 긴 줄거리로 된 만화책 두 권을 놔두고 갔다. 세부적인 설명이 많아 더 재밌었다. 그 책은 수시로 읽었다. 화장실에도 한 권 놔뒀다. 순서와는 상관없었다. 내가 보고 싶은 곳만 찾아 읽었다.

 15살 생일 때 정 여사가 10권으로 된 삼국지 소설책을 선물로 줬다. 미스터 성의 입이 딱 벌어졌다. 나는 미스터 성만큼 입을 벌리진 않았다.

 삼국지는 내 방에 전시된 최초의 책이었다. 아니, 우리 집에 전시된 최초의 책이 됐다.

 

 “먼저 운동하고 나중에 가도 되잖아? 같이 놀자.”

 

 미스터 성은 커다란 몸까지 흔들며 칭얼댔다. 여자에게 저런 수법을 써서 요즘 휴면기간이 길어지는 건 아닐까? 하지만 걱정할 사항은 아니다. 미스터 성은 트렌드를 잘 파악했다. 특히 여자들의 성향 변화는 연구하는 수준이었다.

 

 “오전에 가야 해. 이것저것 찾을 게 많아.”

 

 주말이라 마운틴을 만날 수도 있다. 오전에 가서 점심을 때우고 온다고 들었다. 나도 그럴 계획이다.

 인터넷으로 조사한 시나리오 책을 찾아서 읽어 볼 예정이다. 그러다 마운틴을 만나면 상담도 할 것이다.

 나는 후드 추리닝을 입고 모자를 썼다.

 

 “뭐야? 그 스타일. 많이 본 것 같은데?”

 

 하여튼 촉은 국제적이다. 촉도 수입하는지 날로 발전한다. 나는 무시하며 가방에 노트를 넣었다.

 

 “서점에서 공부도 해?”

 “점심 먹고 올 거야.”

 “야! 그럼 나는 누구랑 먹어?”

 “혼자 먹어! 나도 혼자 먹었거든. 누구 데이트할 동안.”

 

 할 수 없다.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게 해야 포기할 것이다.

 

 “데이트하는 거야?”

 

 진도가 그쪽으로만 나간다. 관심은 그 방면밖에 없는 사람이다.

 

 “노코멘트!”

 “알았다! 구차하게 안 매달린다!”

 

 구차하게 다 매달린 사람이 꼭 저런 말로 끝맺는다.

 

 “난 골프연습이나 해야겠다. 가는 길에 내려다 줄게.”

 “됐어. 알아서 갈게.”

 

 나는 자전거를 탈 계획이다. 버스는 오래 기다려야 하고, 걷기에는 먼 거리다. 오늘 날씨는 자전거 타기에 아주 좋았다. 미세먼지도 좋음 수준이었다.

 

 “몇 시에 올 건데?”

 “신경 끄고 각자 시간 보내자. 나중에 연락할게.”

 “아이고, 유세 떨기는. 내 신세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냐?”

 “그러게 아무 여자나 만나! 휴면기간이 어울려?”

 “이젠 좀 신중하라며?”

 “하루아침에 되겠어? 그냥 살던 대로 살아. 나도 적응 안 되니까.”

 “이런 네 행동이 더 적응 안 되거든!”

 

 미스터 성은 삐져서 욕실로 들어갔다. 이어 음악 소리가 들렸다. 딥 퍼플(Deep Purple)의 ‘하이웨이 스타(Highway Star)’였다. 미스터 성과 딱 어울렸다. 주제가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설거지하고 나가!”

 

 나는 소리치며 밖으로 나왔다. 하늘이 맑았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까지 둥실둥실 떠 있었다.

 

 ***

 

 나는 시나리오 책과 영화감독이 되는 길에 관한 책을 몇 권 골랐다.

 카라멜 마끼야토를 시켜 책을 휙휙 훑었다. 한국어로 쓰인 책인데 영어 단어가 수두룩했다. 두 층이 서점이지만 1층은 어린이 책이나 오디오 북, 이벤트 행사 제품 등으로 어수선했다. 2층이 문학과 전문서적으로 정돈돼 있었다. 한쪽 창가엔 기다란 스낵 코너가 있어 각종 음료수와 샌드위치, 샐러드 등을 팔았다. 각자 고른 책을 읽으며 판매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서점 안으로는 음식물 반입 금지였다.

 나는 주위를 꼼꼼히 둘러봤다. 11시 30분이 넘었건만 마운틴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오지 않을 모양이다.

 정여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 뭐해? 서점에서 시나리오 책 읽는 중.

 

 읽고 있는 책을 사진으로 찍어 전송했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본다면 분명 정 여사가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내가 고른 책들은 재미없었다. 상식적인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읽는 척만 할 뿐 글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미스터 성과의 운동을 거절한 게 후회까지 됐다. 정 여사는 여전히 문자 확인을 하지 않고 있었다.

 

 정 여사와 나는 N사이트에서 유명영화를 자주 봤다. 정 여사는 매번 한국어 자막이 필요 없다며 고집했다.

 정 여사의 영어 듣기능력은 나보다 부족했다. 나는 70퍼센트 정도 알아들었는데 줄거리 이해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정 여사는 모르는 부분을 수시로 내게 물었다. 아주 귀찮았지만 유일하게 잘난 척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집중해서 영화를 보고 들어야 했다.

 정 여사에게 설명해준 50퍼센트 이상은 추측이었다. 정 여사는 전혀 의심하지 않고 내 말을 경청했다. 정 여사가 돌아간 다음 나는 같은 영화를 다시 봤다. 정 여사가 질문한 부분만 눈여겨보며 확인했다.

 틀린 설명은 다음에 자연스럽게 고쳐서 알려줬다. 마치 내가 착각했던 것처럼.

 

 정여사가 답변을 보냈다.

 

 - 한 권 사!

 - 괜찮은 책이 별로 없어. 재미도 없고, 상식 수준이야.

 - 제일 괜찮은 거로!

 - 난 필요 없는데 정 여사 필요해? 돈 줄 거지?

 - ㅇㅋ

 

 하는 수 없이 본격적으로 책을 읽었다. 정 여사가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도움이 되는 책이어야 했다.

 아무거나 들이밀면 책값을 받아내지 못했다. 집중해서 읽어보니 재미있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전혀 상관없는 분야의 사람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시나리오를 쓴 것부터 수십 번의 실패 뒤에 빛을 본 영화감독까지 다양한 경험이 실려 있었다.

 나는 몇 권의 책을 더 고르기 위해 일어났다.

 

 “뭘 그렇게 열심히 읽어?”

 

 마운틴이다!

 

 “방해될까 봐 아는 척도 못 했다.”

 

 이번에는 핑크 캡모자에 펄이 약간 들어간 하얀색 후드 추리닝을 입었다. 여전히 멋있었다.

 마운틴의 손에는 『그때 말할걸 그랬어(소피 블래콜)』동화책과 느린학습자(Slow Learners)에 관한 책이 들려있었다.

 

 “시나리오? 관심 있어?”

 “선물이에요. 언제 오셨어요?”

 “한참 됐지. 1층에서 동화책 보고 있었어.”

 

 1층은 세심하게 확인하지 않았다.

 

 “시나리오에 관심 있는 친구가 있구나?”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예요.”

 

 나는 정 여사보다 젊은 친구 하나를 만들었다.

 

 “좋겠다. 나도 영화 좋아하는데. 학교 친구야?”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학교에는 야동이나 주고받을 친구뿐이다. 거기엔 영호도 끼어있었다.

 

 “뭐 먹었어?”

 “음료수만⋯.”

 시계를 봤다.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점심 먹고 들어가도 돼?”

 

 나는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여기 참치 샌드위치 맛있어. 너도 참치 좋아하지?”

 “어떻게 알았어요?”

 “고모할머니께서 말씀하시더라. 건강하시지?”

 

 마운틴은 정 여사를 내 고모할머니로 알고 있었다. 정씨가 성씨의 고모 쪽이 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을 상식이었다. 마운틴은 정 여사가 입원한 사실도 알고 있었다.

 

 “퇴원하셨어요.”

 

 나는 정 여사의 근황을 길게 말하려다 참았다. 다른 할 얘기도 많았다.

 

 “알아, 병원에 계시는 동안 전화통화 했어.”

 

 마운틴은 정 여사가 내 학교생활에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아픈 사람이 마운틴과 통화까지 했다니, 그럴 시간에 빨리 몸을 추슬러 퇴원이나 할 것이지….

 

 “잠깐만 기다려. 책 한 권만 더 사 올게. 이 서점에 있을지 모르겠다.”

 

 마운틴은 주문과 계산만 하고 서점으로 들어갔다. 컴퓨터로 조회한 뒤 책을 찾으러 코너로 사라졌다.

 나는 주문한 샌드위치 세트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마운틴을 기다렸다.

 마운틴이 재빠르게 다가왔다. 하얀 술이 달린 운동화가 예뻤다. 디자인은 예뻤지만, 어느 회사 제품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떠한 로고도 보이지 않았다.

 

 “찾았다! 이거 사인 좀 받아다 줘.”

 

 마운틴이 시집 한 권을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누구한테요?”

 

 나는 시집을 훑어봤다. 『천천히 걸어오는 친구에게』란 제목이었다. 정유진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었다.

 

 “누구긴! 고모할머니지!”

 

 표지를 넘겨봤다. 젊어진 정 여사가 거기에 있었다. 정 여사는 시인이었다. 오래전 신춘문예에도 당선된 시인이었다. 7년 전에 두 번째 시집까지 낸 시인이었다.

 

 “고모할머니가 섭섭하시겠다.”

 

 마운틴이 내게 샌드위치를 권하며 말했다.

 
작가의 말
 

 

 “잠깐만 기다려. 책 한 권만 더 사 올게. 이 서점에 있을지 모르겠다.”(...)

 마운틴이 시집 한 권을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표지를 넘겨봤다. 젊어진 정 여사가 거기에 있었다. 정 여사는 시인이었다. 오래전 신춘문예에도 당선된 시인이었다. 7년 전에 두 번째 시집까지 낸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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