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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뉴턴스쿨엔 뉴턴이 없다
작가 : Perpetua
작품등록일 : 2022.1.3

국내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대안 국제학교 뉴턴스쿨,
뉴턴 같은 수학자가 나올 가능성은 없지만, 사과나무 아래서 여러 사건을 만들 학생들은 많다. 헝가리 의대반을 제외하곤 공부에 열심인 학생도 없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는다. 대학에 갈 생각만 있다면 어느 대학이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낸다. 학생의 능력도, 선생의 능력도 아니다. 돈의 능력으로 보낸다.
윤태를 포함해 영호, 양이, 민준, 개화, 은경은 N반이다. N은 뉴턴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 정수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일상은 그리 나쁘지 않다. 바라보는 어른들만 답답할 뿐이다. 그들에게 변화가 찾아올까? 그들의 변화는 긍정적인 조짐일까?

 
6.
작성일 : 22-01-06 12:35     조회 : 184     추천 : 0     분량 : 8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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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왜 여기 있어?”

 

 N반을 떠났던 인물이 돌아왔다.

 

 “무슨 질문이 그러니?”

 

 미래가 새침한 모습으로 나를 흘겨봤다. 정리한 사물함에서 오늘 수업할 책을 점검했다.

 

 “돌아왔단다, 제자리로.”

 “여기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반이라고 했는데,”

 “여기가 제자리래.”

 “자신에게 알맞은 곳이 제자리라나?”

 “맞는 말이긴 하지.”

 

 미래의 행동을 지켜보며 민준과 개화가 주고받듯 보고했다. 나도 미래 지켜보기에 합류했다.

 

 “고맙다! 지켜보는 게 환영이라고 생각할게.”

 

 미래의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됐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정확하게 노려봤다. 우리는 쓰러지는 시늉을 했다.

 

 “그럼⋯ 나도, 지켜보고 있어⋯.”

 

 양이가 잠시 일어나 미래에게 함박웃음을 보냈다.

 

 “참으로 변함이 없다, 이 반은.”

 

 양이를 무시하며 미래가 주절거렸다.

 

 미래는 국제반에서 일본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국제반엔 모두가 영어권으로 유학 예정인 학생들만 있었다. 제2외국어도 중국어라 미래에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미래가 반을 옮긴 이유는 오로지 미래 엄마 때문이었다. 미래 엄마가 반을 옮기게 한 이유는 오로지 양이 때문이었다.

 그런 미래가 돌아왔다. 여러 의문 사항이 많았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일본인인 미래 아빠는 출장길에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셨다. 전원 사망인 사고였다. 집안도 부유했지만 보험금도 엄청 받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과정까지 일본에서 열성적으로 공부했던 미래는 귀국과 동시에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그래도 미래는 일본어나 한국어, 영어 능력이 뛰어났다.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엄마와의 소통에만 문제가 많았다. 남편을 잃은 미래 엄마는 외로움을 참지 못했고 잦은 파트너 교체를 했다. 연애가 동거까지 이어지자 미래는 기숙사 생활을 선택했다.

 기숙사는 지방에 집이 있는 학생만 사용했는데 미래처럼 심란한 학생도 가끔 애용했다.

 

 “미래 왔구나!”

 

 영호가 반갑게 맞았다.

 머리를 감았는지 젖어 있었다. 광고모델처럼 젖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양이의 얼굴만 물방울을 받았다.

 

 “역시 변함이 없네. 요즘도 혼자서 해?”

 

 영호의 과시적인 행동을 보며 미래가 물었다.

 

 “아니, 앤디가 고정멤버고, 날마다 다르지. 마이클도 가끔 끼고.”

 “앤디? 앤디는 못하는 게 뭐야?”

 

 앤디는 수학과 과학, 음악클럽을 담당하는 선생이다. 이 학교에는 밴드부가 있는데, 예배나 축제 때 도움을 컸다.

 앤디가 오고부터 밴드부의 수준이 확 달라졌다. 나는 아직도 앤디가 기타 연주한 딥 퍼플(Deep Purple)의 ‘4월(April)’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이태리 혈통으로 신부였다는 소문이 있지만 확인된 사항은 아니다. 이 학교의 교사들은 모두 아리송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앤디의 연주는 모든 학생을 열광시켰다. 앤디는 여학생들에게 더욱 인기가 많았다.

 은경이 그중 한 명이었다. 은경은 결혼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물론 혼자만의 계획이다. 짝눈만 자리 잡으면 본격적으로 구애할 것이다.

 성형만 문제없었다면 벌써 청춘 멜로드라마가 시작됐을 것이다. 은경은 여전히 지각이었다.

 

 “양이, 휴대폰 부탁해!”

 

 마운틴이 휙 교실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내게 잠깐 마운틴의 시선이 멈췄다가 금방 지나갔다. 아침마다 마운틴은 아이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눈을 맞추는 아이는 양이 밖에 없었다.

 교무실을 다녀온 양이가 문을 닫았다. 커튼을 쳤다.

 

 “야, 뭐 하는 거야?”

 

 미래가 소리쳤다.

 

 “어⋯ 우리⋯, 조용히, 대화하려는 거야.”

 

 양이가 조용히 하라며 입술에 검지를 세웠다. 나는 미래에게 N반의 바뀐 규율을 말해줬다.

 

 “깜찍한 것들, 그래서 난 N반이 좋아! 야, 불도 꺼!”

 “안 되는데⋯. 그럼 너무 어두워지는데⋯.”

 

 양이가 걱정했다.

 

 “양이, 괜찮아. 꺼!”

 

 영호가 비상용 손전등 두 개를 켜며 흔들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난 몰랐지⋯. 고마워, 영호오빠.”

 

 양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불을 껐다.

 우리는 모두 손전등을 들고 있는 영호 쪽으로 모였다. 대단한 즐거움을 발견한 아이들처럼 키득거렸다.

 

 “양이야, 너도 이쪽으로 와. 네 목소리가 잘 안 들려.”

 

 영호가 쭈뼛거리는 양이를 불렀다. 양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손전등 빛이 양이의 붉어진 얼굴을 더욱 붉게 만들었다.

 

 “빅 뉴스가 있어. 우리 마운틴이,”

 

 그러다 영호가 말을 삼켰다. 잠시 갈등했다.

 

 “뭔데?”

 

 내가 영호를 재촉했다.

 

 “일단 맹세부터 하자. 절대, 비밀이야! 출처 얘기하면 죽는다!”

 

 영호가 주먹을 세웠다. 우리는 모두 주먹 탑을 쌓았다. 양이의 주먹이 제일 늦게 올라갔다. 조명을 받은 아이들의 눈은 모두가 괴기했다.

 

 “마운틴 싱글이래! 결혼식 날, 사랑하는 남자와 미국으로 토낀 거야. 그 남자가 시한부여서 가족이 모두 반대한 거지. 미국에서 함께 살다가 죽었다네. 그래서 뉴욕 학위가 있는 거야. 두 사람의 사랑은 뉴욕에서도⋯.”

 

 영호가 소설 한 편을 얘기했다. 흔하디흔한 러브스토리였다. 뭉클한 부분도 있었고, 웃긴 부분도 있었다.

 

 “영호오빠, 아니야⋯. 오빠가 잘못 알았구나⋯. 담임선생님은, 그냥 싱글이야. 결혼을 포기한 거야. 자신이 없으면, 포기해도 괜찮아⋯. 실수로 크게 다치는 것보다, 나은 거야.”

 

 영호의 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양이가 말했다. 정확한 팩트만 간추렸다.

 

 ***

 

 “복지는 어떠니?”

 

 내가 미스터 성의 사업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자 정 여사가 다른 분야를 얘기했다.

 

 “복지는 봉사 아니야? 노인들 돌보는 거?”

 “광범위한 기획 분야지. 노인뿐만 아니라, 이젠 이민자의 복지까지 신경 쓸 시대야.”

 “단순한 거 없어? 머리 안 쓰는 거?”

 

 미스터 성의 유전인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세상에 단순한 건 없어. 머리 안 쓰는 건 더더욱 없고. 파출부 일조차 머리를 써야 해. 시간 내에 효과를 내야 하니까.”

 

 자동청소기가 커다란 벌레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정 여사는 오징어 찌개를 준비했다. 나는 옆에서 파와 양파를 썰었다.

 

 “요리는 관심 없니? 스위스로 유학 가면 좋을 텐데.”

 

 스위스에는 둘째 고모가 살고 있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도 2년째 머무르고 있다.

 CAAS 요리학교 제빵과 교수인 고모부는 ‘빵’이라는 단어를 얘기할 때마다 총소리를 냈다. 한국계 프랑스인이지만 한국말을 전혀 못 했다.

 요즘은 단어 몇 개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고 들었다.

 한국 욕설에 존댓말을 붙인 것으로 화가 날 때만 사용했다. 개새끼하세요, 환장하세요, 쌍놈하세요 등등인데, 친할아버지가 주로 썼던 욕설에 존대한 것이었다.

 물론 출처는 미스터 성이었다.

 어느 사람도 친할아버지가 그런 욕을 했다는 걸 믿지 않았다. 친할아버지는 부드러운 사람이다. 예의가 생활화됐다. 그런 분도 돌변할 때가 있었다. 미스터 성 앞에서만 그랬다.

 친할아버지가 자신에게만 퍼부었던 욕을 미스터 성이 고모부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사용설명서에 발음 녹음까지 첨부해서 보냈다고 한다.

 

 이제 친할아버지는 미스터 성에게 혈압을 올리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자신이 벌인 일에 책임을 지자 대견하게 바라봤다.

 물론 대견한 시선을 만든 중심인물은 바로 나다. 어느 날 친할아버지가 미스터 성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고모부가 집안을 돌아다니며 발음 연습을 하자 아들에게 퍼부었던 욕설이 기억난 모양이었다.

 내게는 절대 그런 욕설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자식마다 성장하는 시기와 방법이 다르니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라는 말까지 했단다.

 미스터 성은 그것을 친할아버지의 사과로 받아들였다. 미안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는데 그렇게 생각했다.

 

 둘째 고모 부부는 아직 아기가 없었다. 여러 노력을 해봐도 소용이 없자 입양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두 사람이 너무 사랑해서 하늘에서 시기한다는 구시대적인 표현을 썼다. 말도 안 되는 표현이었다.

 사랑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도 자식만 줄줄이 잘 생산하지 않았는가.

 둘째 고모는 한국 아이를 입양하고자 했다. 나는 아직도 한국 아이가 해외로 입양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출산율이 감소해 국가적인 문제라는 뉴스가 수시로 나왔다.

 아이 생산이 부족한 나라가 그나마 있는 아이를 다른 나라로 수출하고 있었다. 정 여사는 그것도 개선돼야 할 복지정책 중 하나라고 얘기했다.

 

 “꼭 유학을 가야 해?”

 

 유아기를 제외하고도 나는 이미 호주에서 2년을 살아봤다.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셋째 고모가 귀빈 대우를 해줘도 외로웠다. 나는 내 나라가 좋았다. 자유롭고 편했다.

 

 “그럴 필요는 없지⋯. 하지만 모두 그걸 바라시는 것 같더라.”

 “미스터 성도?”

 

 정 여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토막 낸 오징어를 넣고 있었다. 나는 두부를 썰었다. 정 여사는 모든 음식에 두부를 넣었다. 내가 콩을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두부는 잘 먹었다.

 

 “아빠야 아들이 옆에 있는 걸 좋아하지. 헤어지고 싶겠니?”

 

 거짓말이다.

 어린 나를 호주로 밀어낸 사람도 미스터 성이었다. 사고만 친다고 귀찮아했다. 그곳 학교에서도 포기하자 고모들도 두 손을 들었다. 미스터 성도 두 손을 들었다.

 모두가 두 손을 들고 있는 상황에 정 여사가 배턴(baton)을 받은 것이었다. 미스터 성은 내가 빨리 성년이 돼서 자신의 곁을 떠나주길 바랐다.

 이제 몇 년 남았지? 라는 질문만 수시로 했다.

 

 ***

 

 환상적인 냄새가 났다.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빠에게 메시지 보내.”

 “놔둬. 먹고 올 거야.”

 “그래도 물어봐. 오징어 찌개하고 갈치 있다고.”

 

 하는 수 없이 미스터 성에게 문자를 보냈다.

 

 - 저녁 메뉴: 오징어 찌개와 갈치

 - 콜! 7시 30분 도착 예정. 정 여사님께 기다리시라고 해. 모셔다드린다고.

 

 미스터 성의 휴면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집에서 밥 먹은 횟수가 많아졌다.

 

 “와서 먹는데. 요즘 너무 일찍 들어와.”

 “좋지? 대화도 많이 하고.”

 “그게 대화야? 궁금한 것만 물어보는 거지.”

 

 마운틴과의 짧은 만남 이후, 미스터 성은 내 학교생활에 관심이 커졌다.

 이젠 N반 아이들이 몇 명인지, 이름은 무엇인지도 대강 알았다. 마운틴이 단어 테스트를 어떻게 하는지, 토론을 어떻게 이끄는지도 궁금해했다.

 각자 제자리로 돌아가자고 했건만 자꾸 선을 넘어왔다. 나는 마운틴에 관한 양이의 말은 전하지 않았다.

 

 “기다리래. 모셔다드린다고.”

 “괜찮아. 시간 맞춰 버스 타면 돼.”

 “말 좀 들어! 나한테만 명령하지 말고. 미스터 성이 와서 데려다주는 게 더 빠르고 안전해! 요즘 사이코패스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 밤길도 조심해야 해!”

 

 나는 신경질적으로 수저를 들고 밥을 먹었다. 오징어 찌개가 상에 오르지도 않았다.

 정 여사는 오징어 찌개가 가득 담긴 그릇을 내 앞에 놓았다. 맛이 기가 막혔다. 나의 폭풍흡입이 시작됐다.

 

 “천천히 먹어!”

 

 정 여사가 갈치 가시를 발라줬다.

 

 “정 여사도 빨리 드셔.”

 

 내가 물을 따라서 정 여사 앞에 내밀었다. 정 여사는 식사 전에 꼭 물을 마셨다.

 

 “더 포스 가져가. 다 읽었어.”

 “정말? 재밌지?”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입안 가득 음식이 차 있었다. 대강 씹고 빨리빨리 삼켰다.

 

 “영화를 더 재밌게 만들긴 힘들 것 같아.”

 “그렇다니까. 소설이 더 재밌는 게 많아.”

 

 정 여사는 소설을 영화화해서 실패한 작품을 나열했다. 그중 하나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고 했다.

 물론 이건 정 여사의 의견이다. 학교에선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더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거 청춘 로맨스 아니야? 그런 것도 좋아해?”

 “왜? 나이 든 사람은 역사물만 볼 것 같니? 나도 로맨스 좋아해!”

 “그런 뜻이 아니라, 나와 보는 영화는 달라서 그런 거지.”

 “넌 로맨스물이 간질간질 하다며?”

 

 나는 로맨스 영화에 흥미가 없었다. 솔직히 돈까지 주고 볼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 만드는 건 어려워?”

 “어렵겠지. 여러 기술도 터득해야 하지만, 일단 글을 많이 읽어야 할걸? 돈도 많이 필요하고.”

 “얼마 전에 영화감독이 강도질도 했지?”

 

 나는 돈이 없어서 택시강도까지 한 영화감독 뉴스가 기억났다.

 

 “예술이 배고픈 직업이지. 관심 있으면 시나리오 작법 좀 읽어. 섣불리 시작할 일은 아니야. 단편영화부터 시작하더라. 소액 자본으로 멋진 작품을 만드는 사람도 많아. 모를 일이지. 세계적인 성윤태 감독이 탄생할지는.”

 

 ***

 

 수요예배가 끝나자 심 목사가 바자회와 봉사에 대한 공고를 슬라이드에 띄웠다. 그의 똥배는 날로 튀어나왔다.

 심 목사는 늘 똥배를 감싸 안고 기도했다. 슬라이드에 영문 성경을 띄우며 설교하는데 순수 콩글리시 발음이다. 일부러 그 발음을 고수하는 것 같았다. 콩글리시로도 외국교사와의 대화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물론 설교는 한국어로 했다. 외국인교사들은 설교 내용을 슬라이드로 읽었다.

 

 학교에서 기독교 정신을 가진 사람은 심 목사뿐일 것이다.

 기독교인 가정은 있으나 기독교인인 학생은 없는 것 같았다. 예배 시간에 조는 학생이 절반을 넘었다. 깨어있는 학생의 절반은 다른 책을 읽었다. 나머지는 나처럼 다른 공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교사들은 기독교 정신이 있어야 채용했다. 그런 정신을 무엇으로 판가름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정신은 어디에 숨겨놓고 다니는 것 같았다. 행동과 외모는 전혀 딴판이었다.

 이런 학교에서 왜 종교가 필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종교가 있는 학교가 더 안전하다고 믿는 거지. 자신들도 두 눈 뜨고 관리하지 못한 자식을 보이지 않는 조물주가 관리해줄 거란 착각, 어떻게 그런 기대를 하지?”

 

 영호의 설명을 간추리면, 학교에서 종교는 학부모의 신뢰를 얻고, 학부모의 신뢰는 돈을 얻는다고 했다. 그래서 조 이사장이 목사 채용에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자회에서 모인 돈으로 요양원 봉사를 할 예정입니다. 기부금도 받고 있으니 하나님의 이름으로 좋은 일에 동참합시다.”

 

 학생들은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래도 심 목사는 말을 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조용히 하라며 목소리를 키우지 않았다. 화도 내지 않았다. 인자함이 지나친 것 같았다. 어쩌면 무관심이 지나친 것일 수도 있다.

 

 “바자회는 축제입니다. 장기자랑도 준비해주길 바랍니다.”

 

 그때서야 반대하는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평화롭게 졸던 학생들도 깨어났다.

 

 “쓸데없는 시간 낭비 시작이네.”

 “됐어. 우린 안 해.”

 “물건은 미리 담임에게 갖다 주고 결석하자.”

 “여행 가야겠다.”

 

 사방에서 행사에 빠질 방법과 아이디어를 말했다. 분위기가 점점 어수선해졌다. 이쯤에 협박할 선생이 올라올 것이다.

 

 “조용! 조용! 바자회 행사나 봉사 활동에 빠지면 벌점 나갑니다!”

 

 수지가 심 목사의 마이크를 낚아채며 목소리를 키웠다.

 학생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심 목사가 단상에서 내려왔다. 외국인교사들이 먼저 교무실로 올라갔다. 수지는 할 말을 계속했다.

 

 “학생들의 참여도에 따라 담임선생님의 능력이 판가름 납니다!”

 

 학생들의 야유가 더 커졌다.

 

 “그래서 수지가 담임을 맡지 않는구나!”

 “귀, 신이시여, 어디 계시나이까? 잡아갈 사람은 여기 있습니다.”

 

 학생들이 쑥덕거렸다.

 

 “선생님의 능력은 학생들이 판가름하는 겁니다!”

 

 영호가 소리쳤다. 영호의 말에 전교생이 환호했다.

 나는 재빨리 민준을 찾았다. 된장, 내가 한발 늦었다.

 

 “담임을 맡지 않은 선생님의 능력은 누가 판가름합니까?”

 

 민준이 소리쳤다. 민준은 가끔 영호를 방패 삼아 쓸데없는 일을 저질렀다. 벌점을 받는 일이었다. 되도록 내가 옆에 앉아 막았는데 오늘은 민준이 화장실에 간 사이 개화가 옆에 앉았다.

 학생들의 환호와 야유로 분위기가 난장판이 됐다. 주보를 공중으로 던지는 학생들도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귀를 막으며 상급생들의 한심한 모습을 바라봤다.

 

 “강영호, 박민준, 교무실로 와! 초등부 이동!”

 

 수지의 명령에 학생들의 휘파람과 박수가 뒤섞였다.

 

 “꼴좋다! 너희 덕분에 마운틴만 먼저 판가름 나겠다! 머리 나쁜 거 티 내냐?”

 

 몇 안 남은 12학년들이 빈정거렸다. 아직 국내 외국대학의 입학 확정이 되지 않은 선배들이다.

 국제반만 수준별로 세 반이 있는 12학년은 입학허가를 받은 학생들이 이미 국외로 빠져나간 상태였다. 졸업식 참여를 위해 잠깐 들어오는 선배도 있었지만 대학이 확정된 이상 졸업식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국내 외국대학에 입학을 원하는 학생들만 졸업식에 참여했다. 11학년 몇 명도 민준을 흘기며 이죽거렸다.

 영호를 놀리는 11학년은 없었다. 영호는 10학년과 11학년에서 실질적인 짱이었다. 과거의 화려한 경력 때문에 그를 우대하는 것 같았다.

 영호는 가끔 예의 상실한 말대답으로 몇몇 선생의 화를 돋웠지만 큰 사고를 치진 않았다. 웬만한 대형 사고는 이미 수료한 상태였다.

 말대답하는 것도 점점 흥미를 잃고 있건만, 요즘 수지가 자꾸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했다. 마치 학생들의 인내심 테스트를 하는 사람 같았다.

 

 마운틴은 영호와 민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초등부가 이동하고, 중등부가 이동하고, 고등부가 이동할 때까지 지켜보다 의자와 쓰레기를 정리했다. 강당 정리는 청소부 아줌마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개화가 마운틴의 눈치를 살피며 도왔다. 양이도 쭈뼛쭈뼛 도왔다. 나도 도왔다. 영호와 민준도 멀리서 도왔다.

 강당 밖으로 먼저 나갔던 미래가 다시 들어왔다. 아이들의 행동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여튼 변함이 없어요. 말썽도 빠르고, 후회도 빠르고.”

 

 미래의 말에 내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미래가 혀를 날름거렸다. 청소부 아줌마들이 들어왔다.

 

 “아휴, 채 선생님, 그냥 놔두세요. 얘들아, 고맙다!”

 

 그제야 마운틴이 우리를 향해 손뼉을 세 번 쳤다.

 

 “자, 영호와 민준은 빨리 교무실로 올라가. 영호, 네가 할 일이 뭐지?”

 “조용히 경청하겠습니다! 수지의 똑같은 잔소리!”

 

 영호의 큰소리에 청소부 아줌마들이 피식댔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다.

 벌점을 받지 않으려면 자필 반성문 10장을 써야 했지만, 영호와 민준은 벌점을 택할 것이다. 우린 모두 벌점 계산만은 상급이었다. 한 학기 커트라인(cut line)에서 정확히 멈췄다.

 

 “오늘은 누가 빈정대도 대꾸하지 마라. 수업시간엔,”

 “잠도 조금만 자겠습니다!”

 

 마운틴이 부탁할 말을 내가 먼저 소리쳤다.

 

 “화장실도 미리 다녀오겠습니다!”

 

 이어 개화가 말하자 마운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알았어. 잔소리 끝!”

 
작가의 말
 

 “빅 뉴스가 있어. 우리 마운틴이,”

 그러다 영호가 말을 삼켰다. 잠시 갈등했다.

 (...)

 “마운틴 싱글이래! 결혼식 날, 사랑하는 남자와 미국으로 토낀 거야. 그 남자가 시한부여서 가족이 모두 반대한 거지. (...)”

 영호가 소설 한 편을 얘기했다. (...)

 “영호오빠, 아니야⋯. 오빠가 잘못 알았구나⋯. 담임선생님은, 그냥 싱글이야. 결혼을 포기한 거야. 자신이 없으면, 포기해도 괜찮아⋯. 실수로 크게 다치는 것보다, 나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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