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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로맨스, 그 찌질함에 관하여
작가 : 열해
작품등록일 : 2022.1.2

찌질한 과거를 청산하고 다시금 사랑을 시작하려던 나.
찌질함은 결코 벗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3화
작성일 : 22-01-06 00:04     조회 : 205     추천 : 0     분량 : 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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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일주일 전과 마찬가지로, 난 정우의 유혹을 뿌리치고 일찍 귀가했다. 6시 13분, 칼같이 퇴근하신 아버지 앞에 나는 중대 사안을 발표했다.

 

  “아버지, 저 꿈이 생겼습니다.”

  “오호, 반장 다음은 뭔데?”

 

  반장에 당선되고 우리 집엔 소고기 파티가 열렸다. 아버진 이틀 정도 퇴근만 하면 여기저기 일가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리곤 했다. 아들의 반장 당선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아버지는 십 년 뒤엔 사법고시 패스, 이십 년 뒤엔 국회의원 당선이라는 나도 몰랐던 나의 포부를 줄곧 떠들어대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진짜 나의 꿈을 말씀드리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성에 찰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자꾸만 시비를 걸어댔지만, 난 이미 불타오른 상태였다. 그녀에게 다가서기 위해 이제 막 첫걸음을 뗐는데,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선생님이요. 교사. 학교 교사요.”

  “선생? 학교? 네가?”

  “네. 저 국어 선생님이 되려고 합니다.”

 

  일부러 ‘국어’라는 단어에 힘을 꽉 주어 말했다. 아버지는 기가 찰 노릇이라는 듯 눈이 얼굴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커다랗게 부릅뜨고 노려보았다. 눈빛이 너무 강렬하여 결코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주먹이든 뭐든 날아올 것으로 생각하던 순간, 나의 구원자가 삭막한 결투 현장으로 난입했다.

 

  “아이고, 우리 성현이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네요. 여보, 선생님이래요! 우리 아들이 선생님이 된다잖아요! 얼마나 기뻐요, 글쎄.”

 

  어머니가 진심으로 기쁜 것인지 집안 분위기를 바꿔보려 연기를 하는 것인지 헷갈리긴 했지만, 그래도 나에겐 호재였다. 아버지의 분노가 당황스러움으로 바뀌었으니까.

 

  “뭐? 사법고시도 아니고, 선생해서 뭘 하는데?”

  “여보! 요즘 선생님 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선생님 되는 시험도, 그거 고시라고 불러요, 고시!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요!”

  “그, 그래? 선생 그거 아무나 하고 그러는 거 아냐?”

  “어머머. 당신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면 큰일 나요! 선생님이라고 하면 다들 부러워서 난리 칠 걸요? 정말이라니까.”

 

  어머니의 공격력은 낯설지만 꽤 강력했다. 아버지의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었고, 당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에겐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수 있는 활로가 열리었다. 그런데 나도 정말 몰랐었다. 선생님이 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아버지는 탐탁지 않은 듯했지만, 결과적으론 성공이었다. 용돈도 조금 올랐다. 이제 본격적으로 학업에 전념해야 하니 돈 없어서 배곯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두 분의 합의로 만 원의 인상안이 발표되었다.

  사실 탐탁지 않았던 건 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그랬다. 시간이 흘러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으나, 당장엔 확고했다.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 순식간이었지만 난 그녀에게 온갖 신경이 쏠려 있었으므로 그 결정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이고 또 되뇌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되는 방법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후 걱정이 몸집을 잔뜩 불려 나가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은 후, 아버지의 눈을 피해 설거지를 하고있는 어머니께 살짝 여쭤보았다.

 

  “어머니, 근데 정말 선생님 되는 게 그렇게 어렵나요?”

  “응? 너 그것도 모르고 얘기한 거야?”

  “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뭐, 그게…….”

  “선생님 되고 싶으면 선생님한테 가서 물어보면 되지, 그걸 나한테 왜 물어?”

 

  유튜브에서 누가 이런 말을 했었다. 신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할 수 없기에, 그래서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정답이다. 어머니는 내게 신적인 존재였다. 난 급히 방으로 들어가 그녀에게 물어볼 질문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와 대화하며 환하게 웃는 그녀의 미소를 떠올렸다. 눈을 감고 최대한 집중해서 그녀의 얼굴을 그려보고 싶었지만, 명확하게 잘 그려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리스트 질문들을 한 번에 하나씩만 써먹어서 매일 교무실로 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괜찮은 작전이었다.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난 질문 리스트를 거의 50개 정도 만들었고, 설렘으로 가득한 꿈나라를 여행했다.

 

  다음 날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난 교무실로 향했다. 김준수 자식은 밖에서 공을 차고 있었기 때문에 방해받을 일은 없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그녀에게 향했다. 그녀에게 다가가는 단 열세 걸음을, 난 하나하나 소중하게 디뎠다.

  그녀는 옅은 갈색으로 염색을 했고, 딱 적당한 크기의 이마를 지니고 있었다. 반듯하고 매끈한 이마였다. 그 이마를 살짝 가리고 있는 앞머리는 그 길이가 딱 눈썹까지 내려와 있었고, 그 눈썹 아래 너무도 예쁜 두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다. 화려하지도, 밋밋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빛깔로 칠해진 쌍꺼풀이 유독 반짝였다. 그리고 그 사이를 지나는 그녀의 콧날은 누군가 빚어놓은 듯 완벽한 길이와 높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녀가 유럽 어느 나라의 고대 건축물이라면, 아마 유네스코에 지정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미의 기준이 그녀의 얼굴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열세 걸음을 다 걷고 난 뒤, 그녀가 나의 인기척을 느끼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 고개를 돌리는 시간은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느리게 지나갔고, 난 그녀의 모든 표정과 눈짓을 다 담아낼 수 있었다.

 

  “응? 성현이 어쩐 일이야? 오늘은 수업 없지 않나?”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심장의 두근거림이 다시금 거세게 일어났다.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고 쉽게 말하면 되는데, 그녀 앞에 서자마자 가슴 한편에서 ‘당신을 좋아합니다’라는 말이 일렁거렸다. 머릿속에서 온갖 단어들이 뒤엉켜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난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결국 조합하지 못하고 멀뚱멀뚱 서 있었다.

 

  “할 말……. 있어서 온 거지?”

  “선, 선생님!”

  “그래? 그게 뭔데?”

  “저……. 국어, 구, 국어가 너무 좋아요!”

 

  아……. 이런 멍청한 고백이라니. 단어들이 다 도망가고 머릿속엔 ‘망했다’는 말만 반복되었다. 물론 당장 뒤돌아서 나가버려야 하는지도 함께 생각하였다.

 

  “아, 정말? 반가운 얘긴데?”

 

  놀랍게도 그녀는 조그마한 의자를 내어 주었다. 그녀 옆에 앉으라는 의미였다. 순간 다시금 가슴이 진정되고 호흡이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난 정신을 차리고 원래의 계획대로 나의 꿈에 대해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 그래서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난 처음으로 그녀와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순간 그녀의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에 대한 걱정이 피어올랐다. 거울이라도 한 번 보고 올걸. 다행히 내 걱정과 달리 그녀는 나의 질문에 답하는 것에 모든 집중력을 다 쏟아주었다.

 

  “우선, 국어 선생님이니까 당연히 책을 많이 읽어야겠지? 평소에 책 좀 읽니?”

  “아……. 솔직히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 지금부터 하면 돼. 공부도 해야 하니까, 적당히 잘 균형있게 하면 되고.”

  “감,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까지 푹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대화의 주고받음이 너무 짧았다. 무언가 이야기를 더 꺼내야만 하는데, 머릿속에 ‘책 읽기’ 말고는 떠오르지가 않았다. 여자랑 대화를 해 본 적이 있어야지…….

 

  “최쌤, 회의 기억하지? 나 먼저 가요!”

 

  옆자리에 앉은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에게 일러주었다.

 

  “아, 어쩌지? 성현아, 내일 점심때 다시 올래? 내가 회의 있다는 걸 깜빡했다. 선생님이 내일 더 자세하게 알려줄게. 미안해.”

  “아니에요!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내일, 다시 오면 되죠. 가볼게요. 감사합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호재로 작용하다니. 난 될 놈이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만남을 하루 더 연장할 수 있게 된 것! 그동안 나는 대화하는 방법에 관해 고민할 시간도 벌게 되었으니, 이래저래 환상적인 흐름이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정우를 맛나분식으로 데려갔다.

 

  “뭐야. 너 요즘 나한테 자주 쏜다. 돈 많냐?”

  “내가 너 말고 친구가 없어. 알잖아.”

  “크크크. 그렇지, 참. 뭔데? 말해봐. 이 몸이 다 들어주마.”

  “여자랑 대화하는 방법 좀 알려줘.”

  “어? 뭐야. 너 여자 생겼어? 누군데? 뭔데! 무슨 향수 쓰는데? 좋은 냄새라도 나디?”

  “또 냄새 타령이네. 생겼으면 너한테 물어보겠냐? 잘 되면 다 설명할게. 방법이나 좀 말해봐.”

  “오호라. 좋아. 근데, 방법 같은 건 없어.”

  “뭐? 날로 먹겠다는 거냐? 뭐야 그게!”

  “너도 알다시피 내가 여기저기 많이 들이대잖냐. 그러면서 느낀 건데, 막 꾸며대듯 하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어. 그냥, 있는 그대로 하면 돼. 상대 마음에 들면 내가 뭔 짓을 하든 다 받아준다고. 마음에 안 들잖아? 마찬가지로 내가 뭔 짓을 해도 안 받아줘.”

  “듣고보니 그럴 듯 하네. 경험담이냐?”

  “이 형님이 다 겪어보고 얘기해주는 거다. 얼마 전에도 살짝 들이대 봤거든? 영 아니더라고. 그래서 바로 발 뺐지. 답은 애초에 정해져 있는 거야. 그냥 편하게 해. 그게 정답이야.”

 

  정우는 분명 나보다 3센치미터 정도 작았지만, 그래도 늘 어른 같았다. 어른과 아이가 구분되는 것은 단순히 열아홉과 스무 살이라는 수치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경험이었고, 정우의 사람에 대한 경험은 웬만한 어른보다 훨씬 나은 편이었다. 난 정우의 말에 공감하며 자신감을 갖기로 했다.

 

  “그나저나 반장 되니까 어떻냐?”

  “뭐가?”

  “아니. 뭔가 좀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아직 그럴 만한 일은 없었는데. 왜?”

  “원래 반장 놈들은 공부를 무지 잘하잖아. 솔직히 김준수는 거의 전교권이니까, 걔가 되는 게 더 자연스럽긴 했지.”

 

  인정할만한 부분이었다. 반장이 되었으니, 그것도 김준수를 이기고 된 반장이니 아마 내 성적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생겨낼 법했다. 특히나 그녀는 국어 선생님이 되겠다는 말까지 들었으니 적어도 한 번은 들여다볼 테고, 그렇게 되면 아마 중간 정도밖에 안 되는 내 성적에 흠칫 놀라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큰일이었다.

 

  “맞네. 어떡하지. 공부를……. 해야겠는데?”

 

  갑자기 정우는 나를 보며 배꼽이 빠질 듯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황당해하는 날 보며 겨우겨우 웃음을 참고 말했다.

 

  “아, 너 진짜 웃기다. 공부야, 여자야? 한 가지만 해!”

  “그 두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있는 거야. 하나를 잘해야, 또 다른 하나를 잘 할 수 있지. 알겠냐?”

  “…….”

  “뭐야. 왜 말이 없어. 응?”

 

  정우의 시선은 내가 아닌, 내 어깨 너머 맛나분식 출입문 쪽을 향하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몸을 돌려 정우의 시선이 머문 곳을 찾아 나섰는데 그곳엔, 김준수가 들어서고 있었다. 자신의 무리와 함께.

 

  “어? 반장! 반장이 이런 누추한 곳까지 어쩐 일이야?”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김준수와는 말을 섞어본 적이 없었다. 김준수는 전교에서 손꼽히는 훈남에다 흔히 말하는 인싸였지만, 난 절대 같은 급이 아니었으니까. 급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코끼리와 개미의 크기를 비교하는 그런 느낌. 여하튼 처음으로 나를 보며 말을 거는 김준수의 말투는, 이상하게 공격적으로 느껴졌다.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김준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김준수는, 웃음기를 싹 뺀 채 내 쪽으로 다가왔다. 허리를 살짝 숙인 채, 내게 속삭였다. 난 김준수의 눈빛을 보자마자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렸다.

 

  “야, 백성현. 내가 묻잖아. 대답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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