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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뉴턴스쿨엔 뉴턴이 없다
작가 : Perpetua
작품등록일 : 2022.1.3

국내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대안 국제학교 뉴턴스쿨,
뉴턴 같은 수학자가 나올 가능성은 없지만, 사과나무 아래서 여러 사건을 만들 학생들은 많다. 헝가리 의대반을 제외하곤 공부에 열심인 학생도 없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는다. 대학에 갈 생각만 있다면 어느 대학이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낸다. 학생의 능력도, 선생의 능력도 아니다. 돈의 능력으로 보낸다.
윤태를 포함해 영호, 양이, 민준, 개화, 은경은 N반이다. N은 뉴턴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 정수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일상은 그리 나쁘지 않다. 바라보는 어른들만 답답할 뿐이다. 그들에게 변화가 찾아올까? 그들의 변화는 긍정적인 조짐일까?

 
5.
작성일 : 22-01-05 09:28     조회 : 195     추천 : 0     분량 : 7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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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먹고 싶어?”

 

 정 여사가 찬거리를 살펴보며 물었다.

 

 “식당에서 먹고 가자. 물건은 배달시키고.”

 

 첫날부터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정 여사가 아프면 내가 힘들었다. 미스터 성이 힘들었다.

 우리 부자(父子)가 힘들었다. 배달 음식도 싫고, 햇반에 달걀프라이도 지겹다.

 

 “괜찮아. 그동안 편히 쉬었어. 생선 구워 먹자. 따뜻한 밥해서. 어때?”

 

 나는 정 여사에게 엄지척을 했다. 우리는 저녁 찬거리만 들고 집으로 갔다.

 15평 아파트는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정 여사 집엔 오래된 책이 엄청 많았다.

 

 “TV 안 살 거야?”

 “컴퓨터 있잖아. 필요 없어.”

 

 정 여사의 컴퓨터 모니터는 미스터 성이 큰 것으로 바꿔줬다. 정 여사는 극구 사양했는데 미스터 성은 극구 배달했다.

 정 여사는 영화광이다. 특히 추리물과 공상과학물을 좋아해서 나와 취미가 맞았다.

 정 여사는 내가 재미있게 본 영화의 원본 소설을 잘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영화로 본 소설도 읽기 시작했다.

 

 “읽어볼래? 아주 재미있어. 곧 영화로 나온대.”

 

 정 여사가 돈 윈슬로의 『더 포스』를 내밀었다.

 

 “두 권이나 돼? 너무 길어. 영화로 나오면 보고 재미있으면 읽을래.”

 

 나는 책 두 권에 의욕이 나질 않았다. 글씨도 빽빽했다.

 

 “술술 읽혀. 영화가 소설만큼 표현하지 못할걸?”

 “병원에서도 내게 어떻게 책을 읽히나만 생각했지?”

 

 정 여사는 내가 병문안을 간다고 할 때마다 읽고 싶은 책의 제목을 메시지로 보냈다. 나는 정 여사 때문에 서점도 자주 들락거렸고, 신간에 관심도 가져야 했다.

 

 정 여사가 고등어를 구워 밥상을 차렸다. 명란젓을 넣은 계란찜도 만들었다.

 반찬이 올려지고 따뜻한 밥이 내 앞에 놓였다.

 순간 감사의 기도가 나올 뻔했다.

 

 “배고프겠다. 빨리 먹어.”

 

 정 여사가 고등어 살을 발라서 내 밥그릇에 올려놨다.

 꿀맛이었다. 나는 밥을 세 그릇이나 먹었다.

 

 “이제 아프지 마. 내가 잘할게.”

 

 내가 말했다. 정 여사를 바라보지는 못했다.

 

 “지금도 잘하는데, 뭘 더 잘해? 이젠 혼자서도 잘하잖아.”

 “아직 혼자서는 못해! 성년이 아니잖아.”

 

 나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밥그릇에 붙어있는 밥알까지 깨끗이 긁어먹었다.

 정 여사가 좋아하는 행동이었다.

 

 “성년보다 더 성년 같은 미성년자도 많아.”

 “난 아직 미성년 같은 미성년자야! 대학도 가야 하고!”

 

 아직 환자이니 목소리를 낮춰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괜히 어리광을 부렸다. 오랜만에 해 보는 어리광이었다.

 

 “정말? 대학 갈 거야?”

 

 정 여사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정 여사가 옆에 있으면 생각해 보고.”

 “나 때문에 대학 가니? 그럼 갈 필요 없어. 돈 낭비야.”

 “함께 연구해 보잔 말이지! 난 아직 잘 모르니까!”

 

 또 핏대가 났다. 정 여사는 내 말뜻을 알아들으면서도 모르는 척할 때가 많았다.

 

 “알았어. 근데 채 선생님이 잘 도와줄 거야. 선생님과 진로상담도 해.”

 “아, 정말 왜 그래? 집에서 가족과 먼저 의논하고 마운틴을 만나야지! 순서가 그렇잖아!”

 

 나는 정 여사가 깎아놓은 사과를 어적어적 씹으며 소리쳤다. 목소리를 낮추는 건 오늘도 실패다.

 

 ***

 

 주말 동안 나는 『더 포스』를 잡고 있었다.

 정말 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재밌었다. 영화로 어떻게 만들어질지 기대가 됐다.

 

 “야, 운동 가자!”

 

 미스터 성이 방문을 확 열고 들어왔다.

 

 “노크! 노크!”

 “유별나긴⋯.”

 

 미스터 성이 문을 열어 놓은 채 노크를 세차게 했다. 나는 무시하고 계속 책을 읽었다.

 

 “너 독서도 하니? 제법인데!”

 

 미스터 성이 내 침대에 뛰어들며 2편을 뒤적거렸다.

 

 “무슨 줄거리야?”

 “무슨 운동할 건데?”

 “스크린골프 어때?”

 “여자 친구 오기로 했어? 그럼 난 안 가.”

 “안 와.”

 “왜? 휴면기간이야?”

 “너는 내가 매일 여자나 끼고 사는 거로 보이니?”

 “그럼 뭐 끼고 사는데?”

 “이거 끼고 산다!”

 

 미스터 성이 달려들며 팔꺾기를 했다.

 

 “아파⋯! 스크린야구장 가자.”

 “뭐? 야구? 나한테, 감히, 야구를 도전해?”

 

 미스터 성은 야구선수였다. 야구선수 시절에 만난 여자와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야구를 그만둬야 했다. 사실 그만둔 게 아니라 퇴학을 당한 것이었다.

 

 우리는 스크린야구장으로 향했다.

 나는 간편한 추리닝에 모자만 눌러 섰건만, 미스터 성은 완전 야구선수 복장이다.

 

 “복장은 그 운동에 대한 예의야!”

 

 정말 창피해 죽겠다. 이래서 함께 어울리기 싫은 거다.

 

 “우리가 프로야? 대강 하고 나가!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부러워서 그래.”

 

 아무리 말려도 말을 듣지 않는다.

 어디서 구했는지 유명 야구단 유니폼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유전인자 때문인지 나는 골프보단 야구가 재밌었다. 스크린야구도 스크린골프만큼이나 볼의 속도부터 모든 기술을 확인할 수 있었다. 꽤 운동이 됐다. 아파트 근처 쇼핑몰 뒤편에 스크린야구장이 오픈해서 가끔 친구들과 어울렸다.

 

 주말이라 차들이 밀렸다.

 하얀 캡모자에 추리닝을 입은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횡단보도에 다다르자 자전거에서 내렸다. 신호를 기다렸다.

 잘 아는 얼굴 같았다.

 

 “마운틴이 자전거를?”

 

 나는 창문을 열고 확인했다. 마운틴이 맞았다.

 

 “마운틴? 담임? 어디? 누구야?”

 

 미스터 성이 주위를 살폈다.

 큰 실수를 했다. 옆에 미스터 성이 있다는 생각을 못 했다.

 미스터 성은 내 눈길이 머무는 곳을 눈여겨봤다.

 

 “민트색 추리닝? 하얀 캡모자? 자전거?”

 

 미스터 성이 정확히 찾아냈다.

 

 “불러! 인사하게.”

 

 말릴 겨를도 없었다.

 창문을 열고 손을 쳐들며, 선생님! 채 선생님! 마운틴! 까지 연달아 불렀다.

 사람들이 모두 미스터 성의 차를 쳐다봤다.

 큰소리만큼이나 미스터 성의 차도 시선을 끌었다.

 마운틴도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이쪽을 쳐다봤다. 미스터 성이 상체까지 내밀며 손을 흔들었다. 환장할 노릇이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차에서 내렸다.

 그제야 마운틴이 나를 알아봤다. 마운틴이 웃으며 다가왔다. 밀려있던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잠깐만 기다리시라고 해!”

 

 미스터 성이 소리치며 차를 이동했다.

 

 “채 선생님! 잠깐만 기다리세요!”

 

 미스터 성이 또 소리를 질렀다. 마운틴이 고개를 숙이며 차 쪽을 향해 목례를 했다.

 

 “성윤태, 쇼핑 나왔어?”

 

 추리닝이 아주 잘 어울렸다. 캡모자까지 쓰니 한참 젊어 보였다.

 더덕더덕 화장한 수지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스크린야구장에 가는 길이에요. 선생님은요?”

 “서점. 쇼핑몰에 서점이 잘 돼 있어. 책보며 점심 때우려고.”

 

 내가 자주 가는 서점이었다. 정 여사 때문에 가게 된 서점이었다.

 

 “자주 오세요?”

 “주말에 한 번 정도?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근데 윤태야, 주말에 가족과 외출할 땐 선생님 봐도 모르는 척해주라. 추리닝 입고 인사드리는 건 좀 그렇잖아.”

 

 마운틴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요. 멋져요!”

 

 나도 모르게 엄지척을 보냈다.

 

 “윤태가 립서비스(lip service)도 할 줄 아네?”

 

 마운틴이 웃었다. 가지런한 치아가 돋보였다.

 

 “채 선생님!”

 

 하여튼 빠르다. 어느새 미스터 성이 다가와 마운틴을 보고 있었다.

 숨을 몰아쉬며 해맑은 미소까지 지었다.

 나를 보며 웃는 모습과는 판이했다. 갑자기 뒷골이 당겼다.

 

  4.

 

 “어디 가시는 길이래?”

 

 점심때까지 미스터 성이 궁금증을 참았다. 꽤 인내심을 보인 시간이었다.

 

 “누구?”

 

 내가 모르는 척 반문했다. 정 여사가 이런 맛에 모르는 척하는 모양이다.

 

 “마운틴. 추리닝 차림이시던데, 무슨 운동하시나?”

 “추리닝을 평상복으로 입는 사람도 많아.”

 “골프 좀 치시겠던데?”

 

 미스터 성이 자신의 소망을 말했다.

 만약 마운틴이 골프를 친다면 바로 약속을 잡을 남자다. 까다로운 자식을 핑계 삼아 상담시간을 만들 것이고, 감사함의 마음으로 무료 골프 레슨도 제안할 것이다.

 분명 미스터 성이 본 마운틴의 첫인상은 남달랐을 것이다.

 꾸밈없는 일상에서 마주친 마운틴의 모습은 내게도 기억에 남았다. 추리닝과 모자와 운동화와 자전거. 어느 하나 눈에 띄는 명품은 없었다.

 당당한 모습과 시원한 웃음, 목소리가 명품이었다.

 

 “사치스러운 분 아니야.”

 

 도가니를 다른 그릇에 골라내며 내가 말했다. 뜨겁지 않게 맛을 즐기는 방법이다. 정 여사가 알려줬다. 정 여사도 도가니탕을 좋아했다.

 

 “골프가 사치냐? 생활운동이지.”

 “우리나라에선 사치야. 족구로 시간 보내는 사람이 더 많아. 지금 쓰고 있는 골프채가 얼만지 알지? 직원의 기본급과 비교해 봐.”

 

 나는 학기 초에 시청한 노동자들의 생활상이 떠올랐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돈을 모으는 게 아니라 병을 모으고 있었다.

 터무니없는 노동자들의 사고가 끊임없이 보도되자 마운틴이 토론의 주제로 삼았다. 학생들은 자료조사를 위해 다양한 노동자들의 다양한 생활상부터 동영상으로 봐야 했다.

 

 “내가 너한테 그런 취조까지 받아야 하니? 내가 벌어 내가 산 거야! 도둑질한 게 아니라고.”

 “돈은 벌수록 나누는 거래.”

 “너 자꾸 어려워진다. 어려운 거 싫어하잖아? 그래서 공부도 하지 않잖아?”

 

 미스터 성이 비꼬기 시작했다.

 대적할 말이 약해졌다는 의미다. 이토록 쉽게 속을 들키다니 영락없는 초딩 수준이다. 비즈니스는 어떤 머리로 하는지 걱정될 정도다.

 내가 어려운 걸 멀리하는 건 분명 미스터 성의 유전인자 때문이다.

 

 “그러게 좋은 DNA 좀 물려주지.”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좋은 DNA? 더도 말고 나만큼만 살아.”

 

 하기야 미스터 성은 열심히 놀고 열심히 일하는 타입이다.

 함께 노는 사람이 주로 여자라는 게 문제지만 양쪽의 균형이 정확했다. 그 부분만은 토를 달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세금도 꼬박꼬박 내는 애국자야.”

 

 문제는 언제 멈출 줄을 모른다는 거다. 좀 전의 잘난 척으로 끝냈어야 했다. 그때가 딱 알맞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마지막 일침을 가했다.

 

 “세금 납부는 의무야, 애국이 아니라고.”

 “아이고, 무서워라! 받들어 모셔야겠다. 누가 자꾸 그런 걸 알려주니? 학생은 국어, 영어, 수학, 과학을 공부하는 거 아니냐?”

 

 부자간의 대화 단절이 이런 것이다. 대화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미스터 성은 요즘 한국의 입시 과목조차 모를 것이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너희 학교 정말 공부하고는 담쌓은 거 아니야? 엉뚱한 것만 머리에 넣어두면 세상이 골치 아파.”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곧이어 학교 비판에 들어갈 것이다.

 요즘 미래 엄마가 학부형들에게 여러 소문을 퍼뜨린다고 들었다.

 수지가 보도국이라서 진실을 외면한 가짜뉴스가 많았다.

 귀찮지만 단번에 제압할 말이 필요했다.

 

 “토론시간마다 하는 거야.”

 “누가 담당인데?”

 “마운틴.”

 

 미스터 성이 잠시 조용했다.

 

 “뭘 토론하는데?”

 

 목소리의 억양이 부드러워졌다.

 “사회의 전반적인 이슈.”

 “와, 그래서 네가 어려워지는구나?”

 “칭찬 맞지?”

 “당연히 칭찬이지!”

 

 그럼에도 나를 칭찬하는 말처럼 들리진 않았다.

 미스터 성의 고개가 끄덕거리다 오므려진 입이 조금씩 밖으로 나왔다. 무언가 골몰히 생각할 때의 표정이다.

 

 “남다르게 보이긴 하더라.”

 

 이쯤 되면 주제 파악을 제대로 해서 아무나 넘보진 않을 것이다. 미스터 성의 백기 든 모습이 그려졌다.

 

 “여자나 남자나 똑똑해야 해! 빈 머리는 매력 없어.”

 

 미스터 성이 힘차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이건 또 무슨 제스처인지 알 수가 없다.

 

 ***

 

 “근데 결혼은 언제 하셨어?”

 

 도가니의 쫀득한 맛을 열심히 음미하고 있을 때 미스터 성은 또 마운틴을 대화에 올렸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사람이란 걸 아직도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누구?”

 

 내가 또 딴청을 부렸다. 정 여사에게 제대로 배웠다.

 

 “마운틴, 채 선생님, 반지 끼었던데?”

 

 끈질기게 떠올리는 걸 보면 금방 포기하긴 힘든 모양이다.

 아직도 아쉬움이 남아있는 얼굴이다.

 단걸음에 달려와 인사를 하던 미스터 성은 재빠르게 마운틴을 스캔했다.

 그의 시선이 잠시 마운틴의 반지에 머무르는 걸 나는 포착했다.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섞인 표정이 짧은 대화 내내 이어졌다.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 할 정도였다.

 나는 마운틴이 유부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마운틴만은 내가 꼭 지킬 것이다. 저 자유분방한 영혼으로부터 보호할 것이다.

 

 “확실히 결혼한 거 맞아? 방어책으로 반지 끼는 거 아니야?”

 

 역시 촉이 뛰어나다.

 어쩌면 마운틴의 가족사진까지 조작해서 내밀어야 할지도 모른다.

 

 “상관없는 부분까지 알 거 없고. 도가니탕 1인분 포장하자. 정 여사 집에 들러서 주고 가자.”

 

 내가 미스터 성의 말을 잘랐다. 집요한 추리에 수컷 본능까지 더해지면 골치 아팠다.

 

 “그래? 그럼 2인분 해. 몇 끼 드시게.”

 

 정 여사 집은 우리 집에서 20분 거리였다. 다니는 버스가 많지 않아 불편할 뿐이지 먼 거리는 아니었다.

 

 “월요일엔 오신다고 했지? 월, 목?”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설득했어?”

 “대학에 갈 거라고 했어.”

 “그걸 믿어?”

 

 미스터 성은 내가 거짓말을 한 거로 생각했다.

 “나, 대학 갈 거야.”

 “뭐?”

 

 마지막 국물에 깍두기까지 어적어적 씹어대던 미스터 성의 입에서 잡다한 것들이 튀어나왔다. 내 손등에 빨간 조각이 달라붙었다.

 

 “아, 더러워⋯!”

 “너 요즘 왜 그래?”

 “왜? 뭘? 내가 대학 가는 거 싫어? 돈 아까워?”

 “그 말이 아니잖아! 적응 안 되게 왜 자꾸 변하냐고? 여친 생겼냐? 공부 잘하는 아이야?”

 

 정말 성인이라고 다 성인이 아니다. 미스터 성은 꾸준하게 미성년의 수준을 고수했다.

 

 “뭘 전공할까 고민 중이야. 아직 관심 분야는 없어.”

 

 나는 물수건으로 손등을 반복해서 닦았다.

 

 “전공? 고민? 관심 분야? 너와는 먼 나라의 단어 아니냐? 할아버지가 아시면 놀랠 노자라고 하시겠다.”

 “할아버지를 놀라게 한 사람은 내 앞에 있잖아?”

 “너도 만만치 않았어.”

 

 미스터 성은 내가 잊고 싶은 부분을 들춰내는 게 취미다. 자신의 약점을 커버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친할아버지에게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을 들었고, 씨도둑은 못한다는 말까지 나오기 직전에 정 여사가 나타났다.

 그 뒤부턴 미스터 성과는 다른 인격체로 평가받았다.

 

 “먼저 정 여사와 의논해 보고.”

 

 나는 마운틴하고도 의논할 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마운틴하고도 해 봐.”

 “왜?”

 “담임이잖아! 진로상담은 담임하고 하는 거 아니야?”

 “신경 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어떻게 신경을 끄냐?”

 “왜 못 꺼? 여태까지 관심도 없었으면서.”

 

 미스터 성의 속이 훤히 보였다.

 내 진로상담을 빌미삼아 마운틴과 접선할 것이다. 자식의 앞날은 뒤로 하고 마운틴의 결혼 여부부터 확인할 것이다. 그런 뒤 자신의 진로 방향을 수정할 것이다.

 

 “이젠 나도 관심을 보여야지.”

 “정 여사가 돌아왔으니 관심 꺼도 괜찮아. 우리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서 각자 생활에 충실하면 돼.”

 

 내가 제일 평화로운 길을 미스터 성에게 알려줬다. 정확히 선을 그으며.

 
작가의 말
 

 미스터 성은 야구선수였다. 야구선수 시절에 만난 여자와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야구를 그만둬야 했다. 사실 그만둔 게 아니라 퇴학을 당한 것이었다.

 (...)

 주말이라 차들이 밀렸다. 하얀 캡모자에 추리닝을 입은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횡단보도에 다다르자 자전거에서 내렸다. 신호를 기다렸다. 잘 아는 얼굴 같았다.

 “마운틴이 자전거를?”

 나는 창문을 열고 확인했다. 마운틴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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