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
 1  2  3  4  >>
 
자유연재 > 기타
뉴턴스쿨엔 뉴턴이 없다
작가 : Perpetua
작품등록일 : 2022.1.3

국내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대안 국제학교 뉴턴스쿨,
뉴턴 같은 수학자가 나올 가능성은 없지만, 사과나무 아래서 여러 사건을 만들 학생들은 많다. 헝가리 의대반을 제외하곤 공부에 열심인 학생도 없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는다. 대학에 갈 생각만 있다면 어느 대학이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낸다. 학생의 능력도, 선생의 능력도 아니다. 돈의 능력으로 보낸다.
윤태를 포함해 영호, 양이, 민준, 개화, 은경은 N반이다. N은 뉴턴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 정수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일상은 그리 나쁘지 않다. 바라보는 어른들만 답답할 뿐이다. 그들에게 변화가 찾아올까? 그들의 변화는 긍정적인 조짐일까?

 
4.
작성일 : 22-01-05 09:03     조회 : 188     추천 : 0     분량 : 10959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양이, 휴대폰 걷어서 교무실로!”

 

 마운틴이 교실 문 앞에서 학생들의 출석을 눈으로 확인했다.

 

 “네, 선생님!”

 

 양이가 휴대폰 상자를 들고 돌아다녔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함박웃음을 던지며 돌아다녔다.

 양이는 N반 반장이다. 원래 N반엔 반장이 없었다. 하겠다는 아이가 없었다. 양이는 즐겁게 반장 일을 했다.

 N반은 6명이 전부다. 처음엔 9명이었는데 2명이 국제반으로, 1명이 국내반으로 합류했다.

 N반은 인원이 적을수록 좋은 현상이다. 그것이 마운틴이 할 일이었다. 능력을 인정받는 길이었다.

 

 은경은 오늘도 늦게 등장할 것이다. 지난 학기에는 1교시 쉬는 시간에 등장했는데 이번 학기는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달랐다. 학기 초 몇 주는 나오지도 않았다.

 겨울방학 동안 한 쌍꺼풀 수술에 문제가 생겼다. 성형중독에 빠진 이모가 앞장서서 부모 몰래 감행한 수술이었다. 부기가 빠지니 짝눈이 돼 있었다.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라고 들었다.

 은경의 부모는 노발대발했다. 두 분도 성형외과 의사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빌딩 두 층을 사용할 정도로 대형 병원이었다. 곧 빌딩 매입을 앞둘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은경은 강남만 신뢰했다. 강남에서 자리 잡아야 제대로 하는 병원이었다.

 

 “사람들이 바보니? 강남으로 몰리는 이유가 있어! 강남에서 자리 잡았다면 분명 수준이 다를 거야.”

 

 은경은 부모의 재수술도 사양했다.

 강남의 다른 병원에서 재수술을 예약한 상태였다. 담당 의사의 출신 대학을 보니 은경 부모와 동창이었다.

 

 “선글라스 허용해줄 테니 학교는 빠지지 마라.”

 

 은경의 출석을 위해 마운틴이 여러 금지사항을 해제해줬다.

 은경은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것 같은 고급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났다. 케이스에는 장인의 사인까지 있었다.

 물론 강남의 유명 안경점에서 구매한 것이었다.

 은경의 첫 등장을 보고 나는 오페라 배우가 공연하러 온 줄 알았다.

 

 “뭘 봐?”

 

 은경의 눈치를 살피며 모두 웃음을 머금고 있는데 양이만 느낌 그대로 표현했다.

 

 “아⋯ 너무 멋지다⋯. 마술피리에 나오는 여왕 같아⋯. 밤의 여왕.”

 

 거기까진 괜찮았다.

 양이가 밤의 여왕 아리아를 부르기 전까진 괜찮았다.

 양이는 눈을 부릅뜨며 은경을 향해 환상적인 고음을 지르기 시작했다. 음도 정확했다.

 양이는 노래를 정말 잘했다.

 

 “아아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아아 아, 아, 아, 아, 아, 아~ (⋯).”

 

 은경은 분노 폭발했다.

 검은 드레스만 입었다면 정말 밤의 여왕과 똑같았을 것이다.

 밤의 여왕 은경은 순수한 딸 양이에게 다가가,

 

 “너! 더 이상 까불지 마! 용서 못 해! 아~~~ 짜증나! 아~~~! 짜증나! 아~~~!”

 

 웃음을 참고 있던 아이들이 양이와 은경의 고음에 박장대소(拍掌大笑)가 터졌다.

 

 ***

 

 “근데 왜 마운틴이야? 마운틴이란 영어 이름도 있어?”

 

 정 여사가 입원한 후부터 미스터 성은 내 학교생활에 관심을 가져야 했다. 등록금만 냈지 나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었다.

 나를 키운 것도 팔 할이 돈이었다. 아니,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여사가 오고부터 정 여사의 점유 퍼센트가 점점 커졌다.

 그런 정 여사가 갑자기 자리를 비웠다.

 미스터 성과 내게는 재난 수준이었다.

 미스터 성은 관심 두기 싫은 부분에 관심을 둬야 했고, 나는 도통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해야 했다.

 서로에게 고통의 나날이었다.

 

 “수입업 하는 사람 맞아?”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잘난 척은. 야, 나도 웬만한 회화는 해!”

 

 맞다. 미스터 성도 영어는 배웠다.

 그것도 해외 연수까지 다녀온 인물이다. 큰고모가 있는 뉴욕으로 갔다.

 나도 한창 말을 배울 나이라 따라갔다고 한다. 내겐 기억이 흐릿한데 사진이 증거물로 있었다.

 미스터 성은 배운 만큼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하기야 공부만 했을 사람이 아니다.

 2년 만에 돌아온 나는 영어라는 언어가 제법 뇌 속에 남아있었는데, 미스터 성은 수료증 한 장만 남아있었다.

 그래서 사업상 통역이 필요했다.

 다행히 통역자의 능력 정도는 가려냈다.

 

 “이름에 산이 들어가.”

 “산? 아, 그래서 마운틴이구나. 성은?”

 “전화 통화했다며?”

 “내 휴대폰엔 마운틴이라고 저장돼 있지.”

 “그럼, 마운틴 선생님이라고 불렀어?”

 “내가 바보냐? 그냥 선생님이라고 했지!”

 “채산아. 이름 정도는 알고 통화하는 게 예의야!”

 

 나는 정 여사처럼 잔소리했다.

 미스터 성은 나처럼 무시했다.

 

 “산아? 산아 산아 푸른 산아⋯. 그런 노래 있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민중 노래다.”

 

 마운틴이 알려준 노래였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부터 ‘광야에서’까지 민중 노래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역사 선생도 아니면서 역사 공부의 중요성을 수시로 강조했다.

 

 “민중? 제법인데! 어려운 단어도 알고. 영어 이름은?”

 “없어.”

 “왜? 너흰 영어 이름 쓰잖아? 넌 브라이언. 내가 지어줬잖아.”

 

 이런 게 허풍이다.

 

 “지은 게 아니라 선택한 거지. 너무 흔한 이름이야.”

 “뜻이 좋잖아. 남자답고.”

 

 내 영어 이름 지을 때가 미스터 성이 제일 영어공부에 집중한 시기였다.

 브라이언(Brian)은 ‘용기(brave)’ 있다는 뜻에서 비롯됐다.

 미스터 성은 제임스(James)라는 영어 이름을 사용했다.

 분명 제임스 본드를 보고 선택했을 것이다.

 제임스는 ‘낡은 것을 대신’한다는 좋은 의미도 있지만, ‘탈취한다’라는 의미가 더 강했다.

 미스터 성에게는 후자가 어울렸다.

 여자의 마음만은 잘 ‘빼앗는’ 재주가 있었다.

 

 “영어 이름 안 쓴 지 오래됐어. 특히 N반은 한국 이름만 써.”

 

 마운틴은 외국에서도 한국인은 한국 이름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국제학교이니 외국인교사가 한국 이름을 외워야 하는 건 당연한 예의라고 했다. 수긍하는 외국인교사가 많았기에 학교에서도 한국 이름을 허락했다.

 조 이사장은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쌍수 들고 환영할 부분이었다.

 

 “예뻐?”

 

 그럼 그렇지. 제일 먼저 물어볼 사항이었다. 나름 꽤 참았다.

 벌써 학교 웹사이트에 들어가 미모를 확인했을 것이다.

 

 “봤으면서 뭘 물어?”

 “학교사이트에는 그림이던데?”

 

 미스터 성에 대한 나의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건 나도 몰랐던 사항이다.

 나는 휴대폰으로 검색해 봤다.

 양이가 그려준 그림이 올라가 있었다. 양이는 마운틴을 비롯해 N반 아이들의 캐리커처를 다 그려줬다. 마운틴과 영호만 그림을 잘 보관하고 있었다.

 양이가 그린 마운틴은 외양만 조금 비슷할 뿐 지적인 부분까진 묘사하지 못했다.

 

 “그림보다 지적이야.”

 “미모는 그저 그렇단 얘기군.”

 “마음대로 생각해.”

 

 나는 미스터 성에게 마운틴에 대해 말하기 싫었다.

 두 사람은 수준부터가 달랐다.

 

 “목소리는 지적이던데, 몇 살이야?”

 

 미스터 성의 수컷 본능은 A급이다.

 목소리만으로도 한 여자의 수준을 파악했다. 어느 땐 외모까지 짐작했는데 대부분 맞았다.

 이번에는 추측이 빗나가는 듯했다.

 질문이 길어지는 걸 보니 뛰어난 본능이 돌아오는 중인가 보다.

 불길하다.

 

 “알아서 뭐하게? 이름만 알면 되지!”

 

 나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깜짝이야! 왜 그리 예민해?”

 “예민하지 않게 생겼어?”

 

 수지에 대해 말하려다 참았다.

 아무리 수지가 먼저 접근했다 하더라도 조심했어야 했다. 그런 종류의 여자는 구분할 수준이 된다고 믿었다.

 여자를 그렇게 많이 만나봤으면 선별법에 관한 책도 출간할 것이다.

 공부는 할수록 고급으로 올라가는데 연애는 할수록 저급으로 내려가는 모양이다.

 도대체 향상되는 게 없다.

 

 “제발, 예의 좀 지켜! 그리고 최가 아니라 채야! 미즈 채라고 부르지 말고, 채 선생님이라고 불러! 깍듯이!”

 “야, 난 젠틀맨이야! 특히, 여자한테는 예의가,”

 “그냥 여자가 아니야! 선생님이라고!”

 “아이고, 무서워라. 정 여사님 말대로 선생다운 선생이 들어왔나 보다. 네가 유난 떠는 걸 보면.”

 “내가 언제? 담임이니까 예의를 지키라는 거지. 집안 수준 들통 내지 말고!”

 “집안 수준? 야, 솔직히 말해서 우리 집안은 너희 학교에서 상위수준 아니냐? 돈 있지, 외모 있지, 젊지, 뭐가 빠져?”

 

 나는 미스터 성의 당당한 말을 막을 수 없다.

 내가 설명할 능력이 없는 게 아니다.

 설명해도 이해를 못 한다. 이건 수준의 차이가 아니다.

 생각의 차이다.

 생각의 차이는 이념만큼 무서운 것이다.

 단번에 바꿀 수 없다고 정 여사가 말했다.

 

  3.

 

 여전히 달걀은 없었다. 식용유와 우유도 없었다.

 시계를 보니 9시가 넘었다. 밥을 배달시키기엔 늦은 시간이다.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3시간을 잤다. 배가 고파서 깼다.

 시대별 세계사 정리 속에 한국 역사를 넣어 도표를 만드는 작업이 숙제였다. 상식적으로도 필요하다며 마운틴이 정리 잘한 학생에게 상을 주겠다고 말했다.

 상에 군침 흘리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한국의 기본 역사를 외우면 볼링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제야 아이들이 머리를 굴렸다. 되도록 쉽게 요점 정리하는 게 중요했다. 각자 아이디어를 가지고 모여 하나의 도표를 만들기로 했다.

 평상시 머리를 쓰지 않던 나는 조사할 게 많았다.

 

 냉동실에 있는 전복 볶음밥을 꺼내 해동시켰다.

 한 번에 해동이 되지 않았다. 먹기 전에 미리 내놓으라는 정 여사의 말이 떠올랐다.

 한 번 더 해동 버튼을 눌렀다. 해동된 밥을 접시에 담았다. 랩을 씌우고 강으로 3분을 돌렸다.

 전복 볶음밥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완료 소리와 동시에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직 저녁 안 먹었어?”

 

 미스터 성의 손에 편의점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뭔데?”

 “네가 주문한 거.”

 “빨리도 배달한다.”

 

 나는 전복 볶음밥을 옆으로 치웠다.

 프라이팬을 꺼내 식용유를 두르고 달걀 4개와 스팸을 구웠다. 참치통조림도 꺼냈다. 전자레인지에 햇반 두 개를 돌렸다. 구운 김도 두 통 꺼냈다.

 

 “내 밥도 두 개.”

 

 미스터 성이 손을 씻고 나왔다.

 

 “전복 볶음밥 먹어.”

 

 나는 이미 준비된 밥을 내밀었다.

 

 “싫어. 느끼할 것 같아.”

 “난 매일 느끼한 것만 먹거든.”

 “누가 그러래? 맛있는 거 먹고 들어오면 되잖아!”

 

 매번 당당한 말에 대답하는 것도 지겹다.

 나는 햇반 큰 거 두 개를 더 돌렸다. 달걀과 스팸도 더 구웠다. 참치통조림도 하나 더 꺼냈다.

 미스터 성이 그릇에 김치를 담았다. 김치는 정 여사가 몇 달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다. 배추김치, 총각지, 파김치, 갓김치까지 다양했다.

 

 “김치 맛 죽인다!”

 

 미스터 성이 잘 익은 김치를 계속 맛보며 덜었다.

 

 “꼭꼭 눌러 덮어놔. 옆에 흘린 거 닦고.”

 

 내가 정 여사처럼 잔소리했다.

 

 미스터 성과 나는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우리는 늘 폭풍흡입 수준으로 밥을 먹었다. 밥 먹을 때마다 정 여사는 누가 밥 뺏으러 따라오냐며 내게 주의를 시켰다.

 나는 버릇이지만 미스터 성은 내 앞에서만 그러는 것 같았다.

 분명 여자 앞에선 저런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스팸 한 조각이 남았다. 내가 스팸에 젓가락을 꽂자 미스터 성이 재빠르게 숟가락으로 반 토막을 냈다.

 

 “나도 밥 남았거든.”

 “설거지해. 내가 밥 차렸으니까.”

 “김치는 내가 꺼냈다.”

 

 우리는 버릇처럼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내가 이겼다.

 미스터 성은 가위바위보에 소질이 없다. 항상 손 모양을 준비하고 있어서 무엇을 낼지 상대가 쉽게 간파했다.

 

 “대신 커피 좀 내려.”

 

 설거지보단 커피 내리는 게 수월했다.

 

 “금요일에 정 여사 퇴원한대. 알지?”

 

 냉장고에서 페트병 물을 꺼내며 내가 말했다.

 

 “알아. 이틀 남았네.”

 

 미스터 성은 사방에 물을 튀기며 설거지를 했다.

 

 “같이 갈 거야?”

 “당연하지. 이번엔 정말 퇴원이라 다행이다. 몇 번이나 응급실행이었냐? 퇴원도 두 번이나 미뤘잖아?”

 “앞으로 어떡할 거야?”

 

 수돗물을 조절해주며 내가 물었다.

 

 “글쎄⋯, 이제 일하긴 힘드실 거야. 사람 구하라고 하던데.”

 

 미스터 성이 싱크대 주변을 닦았다. 키친타월 한 통을 다 쓸 판이었다.

 나는 미스터 성이 버리려는 키친타월을 빼앗아 물이 떨어진 바닥을 닦았다.

 

 “우와, 살림꾼이네! 돈을 그렇게 아껴 써라!”

 “난 정 여사가 계속 왔으면 좋겠어.”

 

 나는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정도 하고 돈 받으실 분이냐?”

 

 미스터 성도 나만큼이나 걱정이 많을 것이다.

 그동안 특별한 걱정 없이 자유로운 영혼처럼 산 것도 정 여사의 도움이 컸다.

 내가 고등학교 교과목을 배우고 있다는 것도 정 여사의 입원 뒤에 안 사실이었다.

 10학년이 중학교 과정인지, 고등학교 과정인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일단 건강상태 확인해보고, 부탁드리자. 집 관리만이라도 가능하신지.”

 “가능해! 청소는 청소기 두 대 돌리고, 분리수거는 내가 할게. 빨래는,”

 “세탁기에 돌리고? 정리정돈은 각자 하고. 아주 쉽네! 진작 그렇게 하지!”

 

 미스터 성이 나를 향해 옆차기를 했다. 나는 손날로 숙달된 막기기술을 보였다.

 

 “어쭈구리. 잘 막는데!”

 

 미스터 성도 어렸을 때 태권도를 배웠다. 나는 검은띠까지 땄지만 미스터성은 품띠에서 그만뒀다.

 

 “정 여사는 네가 맡아. 너 때문에 오시는 거니까. 너 때문에 병났을 수도 있어! 이제부턴 좀 잘해! 성년이 될 때까지만 함께 있자고 해. 이제 몇 년 남았지?”

 

 ***

 

 10학년도 아침마다 단어 시험을 보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달됐다.

 11학년부터 하는 쪽지시험으로 하루에 10개씩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만드는 시험이었다.

 겉은 그럴듯해도 실력 차이가 있는 아이들에겐 시간 낭비였다.

 다른 반들은 씩씩거리며 난리가 났는데 N반만 조용했다. 아직 조용했다.

 

 마운틴은 조례나 종례를 하지 않았다. 대신 수업시간에 주요 전달 사항을 논했다.

 마운틴의 수업은 매일 있었다. 국내반에선 국어 시간이지만 A반과 N반에선 토론시간이었다.

 마운틴은 국내에서 디자인, 경영학 학사와 문예창작 석사, 뉴욕 주립대에서 미술과 영문학사를 받은 잡스러운 경력의 소유자였다.

 프로필에는 국문학 박사과정 수료라고 쓰여 있었지만 확인된 사항은 아니었다.

 6년간 뉴욕에서 체류하고 돌아오자마자 이 학교로 왔다.

 교육시스템에 획기적인 변화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새로 들어온 교사 대부분이 처음엔 똑같았다. 모두 획기적인 포부가 있었다.

 그러나 금방 사라졌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아마 혼자서 맨땅에 헤딩하면 머리만 빠개진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을 것이다.

 

 “잡다한 경력은 많지만 내세울 건 없어. 전문성이 떨어지잖아.”

 

 수지가 조용히 마운틴을 씹어댔다.

 한 가지를 집중해서 공부한 사람도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 학교 교사들의 문제였다. 그 예가 자신이라는 것을 수지는 몰랐다.

 수지는 영문학을 석사까지 전공했지만 문학적 소양은 전혀 없었다.

 국내외 학위는 분명 있는데 학문 대신 다른 걸 연구한 인물처럼 보였다. 외모부터 행동까지 학문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운틴이 싱글이라는 소문이 돌고부터 수지가 예민해졌다.

 마운틴은 결혼반지를 끼고 다녔고 수지보다 나이도 많았다.

 내가 보기엔 수지는 참으로 광대한 질투심을 가졌다. 취향도 광대했다.

 수지는 세 번째 마누라와 사는 조 이사장을 꼬시는 중이었다.

 아직 소문이지만 그런 소문은 대부분 맞았다. 아무리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 해도 폭이 너무 넓었다.

 조 이사장이 마운틴을 잡다하게 부려먹을 때도 날카로웠다. 다른 선생들이 감사하는 부분을 수지는 전혀 감사하지 않게 생각했다.

 그렇다고 마운틴 대신 자신이 일을 맡아서 하지도 않았다.

 수지와 학생들이 닮은 게 있다면 땡 소리가 나자마자 튀는 것이다.

 수지는 수업과 근무시간을 엄수했다. 그 부분에서만은 올발랐다.

 

 오늘의 토론 주제는 쪽지시험이다. 물론 영어로 해야 하는 토론이다.

 

 “내 생각인데, 우리 반은 하루씩 걸러서 영어 단어와 한국어 단어 시험을 보면 좋을 것 같아. 물론 시험에 나올 단어와 문장의 예는 내가 만들어 줄게. 너희들이 만들면 좋겠는데 그것까지 하라면 시험도 싫다고 할 거지? 다른 의견이나 방법 있으면 말해 보자.”

 “전 못합니다!”

 

 마운틴의 말에 영호가 소리쳤다.

 

 “아직 결론을 말할 때가 아니야. 항상 이유 있는 의견부터 대라고 했잖아.”

 

 마운틴이 이유를 물었다.

 

 “농구를 해야 합니다.”

 “길어야 20분이야.”

 “시간 낭비예요. 외우지도 않을 텐데.”

 “그건 네 입장이지. 누구나 형편은 있어. 학교는 개인을 위한 공간이 아니야. N반을 위한 의견을 내며 설명해 보자.”

 

 마운틴의 말에 모두가 조용했다.

 은경은 연신 이탈리아 장인의 선글라스만 추켜올렸다. 성형은 쌍꺼풀이 아니라 낮은 코부터 해야 했다.

 민준은 시선을 천장에 고정하며 계속 머리를 돌렸다. 나름 이유를 찾는 시늉이다.

 개화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선생들이 귀찮게만 하지 않으면 순순히 따랐다.

 나? 나는 무례한 사견으로 사건을 저지르지 않기로 약속했다. 대형 사고를 치고 난 후에 한 약속이었다. 정 여사와의 약속이었다.

 미스터 성의 말대로 나 때문에 정 여사가 병이 났을 수도 있다. 그때의 일은 회상하기도 싫다.

 생각을 털어내기 위해 나는 뻔한 답변의 질문을 만들었다.

 

 “한국 학생이 한국어 단어 시험까지 봐야 해요?”

 “좋은 질문이야. 그런데 나눠주는 예문을 보면 알게 될 거야. 우리가 얼마나 한국어를 모르는지. 영어보다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한국어가 더 많을걸. 분명 도움이 될 거야.”

 

 사실 나도 한국어가 어려웠다. 맞춤법은 물론이고 매번 비슷한 단어를 오용했다.

 사자성어도 잘못 활용했다. 순우리말을 애용하자면서 그런 어려운 말을 왜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TV를 도배하는 높으신 분 중에 쉬운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자성어와 세계 각국의 속담과 명언을 짜깁기해서 말했다.

 나 같은 학생은 항상 통역이 필요했다.

 한국 사람이 한국말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말로 다시 통역해줘야 소통이 가능한 나라에서 나는 살고 있었다.

 

 “한자어 없이 순우리말로 대화할 시대가 올까? 쉽진 않다고 본다. 그러니 알건 알아야 해. 너희가 알아야 할 순우리말도 수두룩한 거 알지?”

 

 마운틴이 한자어를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얘기했다.

 

 “그럼 토론도 영어로 한 번, 한국어로 한 번, 하지요?”

 

 내 의견에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동의했다.

 

 “그것도 생각해 볼 사항이다. 그건 다음 시간에 토론하자. 일단 오늘의 문제부터 해결하고. 상대를 설득시킬 합당한 이유가 필요해.”

 

 조금 긴 침묵을 깬 건 양이였다.

 

 “선생님⋯, 저는⋯ 아침에 하는 대화가 즐거워요⋯.”

 양이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양이는 영어와 독일어로도 대화할 수 있었다.

 그런 능력이 왜 제대로 된 능력으로 보이지 않는지 모르겠다.

 

 “누구와 어떤 대화를 하는 게 즐거워? 그 즐거움이 N반 아이들에게 무엇을 만들어 주지?”

 

 마운틴이 양이의 대답을 유도했다.

 

 “아침마다, 친구들과, 일상을 얘기하는 게 즐거워요. 대화는, 반가운 시간을 만들어요⋯. 모두가, 즐거워해요.”

 

 양이가 차근차근 대답했다.

 

 “고양이, 말은 똑바로 해. 언제 네가 대화를 했어? 일방적인 얘기지.”

 

 은경이 손가락으로 선글라스를 고정하며 양이를 비웃었다.

 

 “참, 영호는 대꾸해주지. 그건 대꾸야, 대화가 아니라고. 제대로 알고 말해.”

 

 은경이 진정한 대화가 무엇인지 길게 설명했다. 모르는 단어는 마운틴에게 물어가며 양이를 가르쳤다.

 토론시간이라 지난번처럼 악을 쓰진 않았지만 양이의 오페라 아리아 사건 때문에 여전히 마음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와, 은경은 역시 똑똑해! 대화가 무엇인지도 잘 알고. 그러니 이제 대화 좀 하자. 일방적으로 너만 말하지 말고.”

 

 영호가 은경의 말을 잘랐다.

 

 “아⋯ 그거였구나⋯. 난 몰랐지⋯. 고마워, 은경아.”

 

 양이가 은경의 설명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언제나 양이의 답변은 이렇게 끝났다.

 

 “근데, 나도⋯,”

 

 양이가 말을 계속했다.

 

 “매일 너희와 대화를 해⋯. 그림을 그리면서도, 너희의 말은, 계속 듣고 있어⋯. 너희가 웃으면, 나도 웃고, 너희가 화나면, 나도 화나⋯. 나도, 내 생각을 얘기했는데, 내 목소리가 작아서, 못 듣나 봐⋯. 나는 목소리가 좀 커야 해. 그게 단점이야⋯.”

 

 양이가 함박웃음을 친구들에게 보냈다. 어눌한 말투로 하고픈 말을 끝까지 한 건 처음이었다.

 침묵.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침묵은 묵념으로 이어졌다.

 

 “오케이, 양이는 목소리를 좀 더 키우자. 다른 친구들은 양이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잘 들어봐. 안 들릴 때는 크게 말하라고 해. 그래야 대화할 수 있으니까.”

 

 마운틴이 우리에게 대화법을 알려줬다.

 

 “만약 우리 반만 놀고 있으면 문제가 될 거야. 물론 나도 윗분들에게 말을 들을 거고. 아침에 다른 반을 방해하지 않아야 하고, 쪽지시험 증거물이 필요해. 꼭 아침에 시험 볼 필요는 없어. 목적은 실력 향상이니까. 규칙위반은 안 돼. 자, 여러 아이디어를 모아보자.”

 

 마운틴의 말에 다시 토론이 시작됐다. 아침 시간이 아니어도 된다니 이전보다 의견이 많았다.

 결국 N반은 토론시간 시작 전 쉬는 시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다 풀지 못한 학생은 토론 중간에 주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 끝마치기로 했다.

 아침에는 교실 문을 닫고 20분간 대화하거나 옥상에서 아침 운동을 하기로 했다.

 물론 전원이 행동을 같이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

 

 의사는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무리가 없는 정 여사의 소일거리를 허락했다.

 

 “무거운 건 절대 들지 말고, 옆구리가 뻐근해지면 자주 누우세요. 호흡곤란이 오면 바로 병원으로 오셔야 합니다. 과다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될 수도 있어요. 즐겁게 사세요.”

 “들었지? 즐겁게 살자.”

 

 의사의 말에 정 여사가 내 옆구리를 툭 쳤다.

 의사는 나를 정 여사의 손자 정도로 알고 있었다. 정 여사와 정 여사 자식이 모두 이른 나이에 사건을 저질렀어야 나올 수 있는 손자였다. 미스터 성의 모습을 보자 그는 마음대로 정 여사의 가족사를 상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 여사는 싱글이다. 결혼은 했어도 자식은 없었다.

 정 여사의 남편은 6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찌 된 이유인지 가난도 이겨내야 할 처지였다.

 

 미스터 성이 정 여사와 나를 정 여사 집 근처 마트 앞까지 태워줬다.

 회사 일이 남았다는 이유를 댔지만 불금이라 데이트가 잡혀 있을 것이다.

 

 “매사 조심해. 사건 저지르지 말고.”

 “내가 할 소리다!”

 

 불금마다 내가 하는 잔소리고, 미스터 성이 하는 대답이다. 미스터 성의 차는 신나게 달아났다.

 

 “넌 좋겠다. 아빠가 젊어서.”

 

 정 여사가 미스터 성의 날렵한 차를 쳐다보며 말했다.

 

 “젊은 거야, 어린 거야? 성장 멈춤이야! 도대체 발전이 없어.”

 

 신나게 달아나는 미스터 성의 차는 마치 나로부터 달아나는 것 같았다. 이젠 서운하지도 않았다.

 

 “성장은 네가 하는 거고. 아빠는 다 큰 성인이야.”

 “성인이라고 다 큰 건 아니야. 미성년자 같은 성인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아이고, 이젠 멋진 말도 하시네. 왜 이리 멋져?”

 

 정 여사의 말에 나는 머리를 정 여사 쪽으로 내밀었다.

 정 여사의 따뜻한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드디어 정 여사가 돌아왔다!

 
작가의 말
 

 “선생님⋯, 저는⋯ 아침에 하는 대화가 즐거워요⋯.”

 양이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양이는 영어와 독일어로도 대화할 수 있었다.

 그런 능력이 왜 제대로 된 능력으로 보이지 않는지 모르겠다.

 (...)

 “매사 조심해. 사건 저지르지 말고.”

 “내가 할 소리다!”

 불금마다 내가 하는 잔소리고, 미스터 성이 하는 대답이다. 미스터 성의 차는 신나게 달아났다.(...)

 신나게 달아나는 미스터 성의 차는 마치 나로부터 달아나는 것 같았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1 20. (1) 2022 / 1 / 9 222 0 2903   
20 19. 2022 / 1 / 9 183 0 2884   
19 18. 2022 / 1 / 9 192 0 6502   
18 17. 2022 / 1 / 9 198 0 4789   
17 16. 2022 / 1 / 9 185 0 4877   
16 15. 2022 / 1 / 9 201 0 3587   
15 14. 2022 / 1 / 8 185 0 4700   
14 13. 2022 / 1 / 8 197 0 4749   
13 12. 2022 / 1 / 8 186 0 5665   
12 11. 2022 / 1 / 8 180 0 6864   
11 10. 2022 / 1 / 7 183 0 8068   
10 9. 2022 / 1 / 7 191 0 5626   
9 8. 2022 / 1 / 7 184 0 6469   
8 7. 2022 / 1 / 6 193 0 8947   
7 6. 2022 / 1 / 6 185 0 8676   
6 5. 2022 / 1 / 5 196 0 7047   
5 4. 2022 / 1 / 5 189 0 10959   
4 3. 2022 / 1 / 3 172 0 6681   
3 2. 2022 / 1 / 3 193 0 11070   
2 1. 2022 / 1 / 3 194 0 4879   
1 0. 2022 / 1 / 3 295 0 1789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