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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흡혈 퇴마사
작가 : 제이드Q
작품등록일 : 2022.1.2

빙하 속 바이러스, 우주로 부터 날아든 괴물질에 의해 초토화된 지구.
흡혈귀 출신 파로크는 지구 정화를 위해 인간으로 환생한다.
숨어 있는 사악한 영혼들을 퇴마하는 임무를 맡고 내려온 파로크의 앞날은..

 
날개잃은 천사 1
작성일 : 22-01-05 01:08     조회 : 171     추천 : 0     분량 : 5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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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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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인들 대부분이 죽었고, 그나마 남아 있는 인간들 또한 빙의 되어 좀비같이 변해버렸다는 얘길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꿈에서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근데 이 녀석은 어딜 간 거야?”

 

 에오는 고개를 휙휙 돌려 얼떨결에 퇴마사가 된 인간을 찾았다.

 

 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자신의 여자를 건드린 놈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있던 사냥꾼이 찌른 말뚝에 심장에 구멍이 뚫려 황당한 죽음을 맞은 못난 흡혈귀란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어이없는 죽음 이후 불구덩이 속에서 뜨거운 맛을 본 그 불쌍한 흡혈귀는 인간으로 환생을 했고. 박살 나 버린 지구에 떨어졌다. 인간, 왕초보 퇴마사가 되어서 말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인간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었다.

 

 “...하필이면 왜 피를 빨아 먹느냐고.”

 

 에오는 자신이 만나게 될 존재가 전생에 흡혈귀란 사실이 못마땅했다.

 

 -우웩!

 

 갑자기 비릿한 피 냄새가 느껴졌다.

 

 뱃속이 꿀렁거렸고, 신물이 올라왔다.

 

 -웁!

 

 에오의 입속에 침이 고였다. 도저히 도로 삼킬 수 없어 바닥에 침을 냉큼 뱉어냈다.

 

 “스읍.”

 

 손등으로 입가를 닦아낸 그녀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퇴마사란 녀석이 흡혈귀 생을 뒤로 하고 인간으로 환생했다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습성이 남아있을 수도 있었다.

 

 거의 대부분은 지워지긴 하겠지만 말이다.

 

 불만 가득한 얼굴로 그녀가 허공을 노려 보았다.

 

 투명한 보랏빛 눈동자가 차갑게 물들었다.

 

 “하필이면 왜 그런 망나니 같은 놈을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지요?”

 

 -정적

 

 “네? 대답 좀 해주시죠? 거기 높은 곳에 있는 고귀하고... 으...그만 하자.”

 

 에오는 투덜거리며 치켜들었던 고개를 내렸다.

 

 어쨌거나.

 

 건방진 흡혈귀 녀석은 아직 지구 도착 전인 것 같았다.

 

 그때까지 뭘 하며 지낼지 잠시 궁리하던 중이었다.

 

 갑작스레 시퍼런 번갯불이 쩍, 하고 하늘을 갈랐다.

 

 -쿠르릉!

 

 뒤를 이어 천둥이 요란스레 주위를 흔들었다.

 

 환영 인사치곤 매너가 꽝이란 생각이 들었다.

 

 달콤하고 향긋하고 부드러운 샴페인같은 인사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뾰로통한 얼굴로 그녀가 입술을 빼죽 내밀었다.

 

 다시금 요란한 소리가 그녀의 귀를 찢었다.

 

 ‘돌아가면 가만 안 둘 거야.’

 

 밑도 끝도 없이 그녀를 이곳으로 내던져 버린 살찐 돼지, 아니 얼굴이 하얗다 보니 살찐 만두가 더 어울리는 녀석이었다.

 

 아무튼 간에.

 

 살찐 만두 놈의 면상이 두둥실 떠올라 주위를 맴돌았다.

 

 “얼씨구?”

 

 똑같은 놈이 금세 수십, 수백, 수천으로 늘어났다.

 

 한 놈도 참을 수 없는데, 순식간에 늘어난 못생긴 만두 같은 놈들에게 휩싸여 있자니 더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꺄악!”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순간 살찐 만두가 퍽! 소리를 내며 찢겨 나갔고, 잘게 썬 고기와 부추, 버섯, 당면 같은 것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날 뭘로 보고. 이래 봬도 난.”

 

 그녀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

 

 맘에 들지 않던 살찐 만두 놈의 허연 얼굴이 머릿속에서 스르륵 사라졌다.

 

 10미터 쯤 앞.

 

 검은 개 한 마리가 그녀를 향해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에오의 약점 중 하나.

 

 ‘살찐 만두 놈이 보낸 건가?’

 

 -톡!

 

 그녀가 그렇게 앞을 노려보며 서 있을 무렵.

 

 차가운 빗방울이 그녀의 하얀 이마 위로 떨어져 내렸다.

 

 지옥의 개, 라는 말이 떠올랐다.

 

 -철그락, 철그락.

 

 바닥을 질질 끄는 묵직한 쇠사슬. 목을 감고 있는 단단하고 굵은 쇠줄.

 

 여긴 지옥이 아니었다.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검은 개에게 목줄 따윈 없었다. 여기저기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며 상대가 맘에 들지 않으면 사납게 물어뜯는 사냥개처럼 느껴졌다.

 

 “짜증.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놈은 앞을 노려 보며 걷고 있었다.

 

 에오의 시선 따윈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검은 개의 눈동자에서 시퍼런 빛이 뿜어져 나왔다.

 

 뾰족한 귀.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코와 주둥이 사이로 보이는 날카롭고 뾰족한 이빨.

 

 -크르릉!

 

 “헉!”

 

 앙다문 그녀의 입술 사이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 임무는 이게 아니야. 그러니까 저리 가! 이 똥개야!”

 

 그녀가 소리쳤다.

 

 개. 특히 검은 개는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것들 중 하나였다. 싫어한다기보단 소름이 끼칠 만큼 마주치고 싶지 않은 짐승이란 표현이 더 적합했다.

 

 겨우 개 한 마리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렇게까지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오래전 경험 때문이었다.

 

 악마들이 주도하는 상상 초월의 지옥을 경험하기 직전, 우연히 전생에 인연이 닿은 선의 세력에 의해 구출되긴 했지만.

 

 “정말 싫다.”

 

 천사인 그녀의 영혼을 집어삼키려던 지옥 악령의 겉모습이 검은 개처럼 생겨 먹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직 까지도 그녀는, 그때 맞닥뜨렸던 놈과 비슷한 형체를 보면 절로 몸이 떨리고 욕이 튀어나오곤 했다.

 

 그 이후 그녀는 원래 가야 할 지옥에서 오랫동안 썩고 나서. 황당한 임무를 맡고 지구에 내려온 것이고.

 

 성실히 퇴마행을 잘 하고 있는지, 다른 곳으로 튈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예의 주시하며 흡혈귀에서 인간으로 환생한 초보 인간 퇴마사를 감독해야 하는 따분한 일을 맡은 에오의 마음속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처음 맞닥뜨린 지구별 생명체가 사나운 개새끼라니.

 

 “저리가!”

 

 그녀가 다시 소리를 내질렀다.

 

 에오가 살던 곳에서도 애완용 동물은 많았다.

 

 그것들 대부분 소리를 지르거나 몸집을 크게 부풀리면 겁을 집어먹고 도망을 치곤 했다.

 

 그게 정상적인 애완동물의 행동이다.

 

 하지만 눈앞에 서 있는 저놈은 그녀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사납게 노려보는 놈의 눈동자에서 포악함이 묻어났다.

 

 인간을 두려워 하기는 커녕 안중에도 없다는 것처럼. 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살짝 지루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쩍 벌렸다.

 

 벌린 입속으로 길쭉한 혀와 촘촘히 박힌 이빨이 드러났다.

 

 ‘기가 막혀라.’

 

 열 받은 그녀가 또 한 번 소리를 빽 질렀다.

 

 “야! 이 똥개 새끼야!”

 

 하지만 검은 똥개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좀 더 해보라는 듯, 혀를 쭉 내밀며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지금 너 따위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단 말이다!”

 

 -컹!

 

 “너 이자식!”

 

 에오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간에 말로 해선 안 듣는 놈들이 있긴 했다. 그것도 아주 바닥에 쫙 깔렸다.

 

 인간 세계뿐만 아니라 저기 위쪽, 영들의 세계, 천사들이 머물던 곳에서도 그랬으니 말 다 한 거다.

 

 그런 것들에겐 매운 매운맛이 필요했다.

 

 에오가 허공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빨갛고 뾰족한 손톱, 어느새 기다란 손가락 사이로 가죽 채찍이 뱀처럼 꾸물거리고 있었다.

 

 -촤라락!

 

 익숙한 솜씨로 채찍을 손에 움켜쥔 그녀가 씨익 웃었다.

 

 붉고 도톰한 입술 사이로 하얀 치아가 빛났다.

 

 아름답지만 한편으론 위험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녀가 눈을 깜박였다. 길고 짙은 속눈썹이 드리운 보랏빛 눈동자가 날카로운 빛을 내뿜었다.

 

 “마지막 기회야. 똥개야. 어서 도망쳐.”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컹!

 

 놈이 뭐라 지껄였다.

 

 “저런. ...훗.”

 

 혀를 쭉 내밀고 있던 검은 개의 눈동자가 채찍으로 향했다.

 

 태어나 처음 보는 물건을 접하고 있는 얼굴. 하지만 곧 눈앞의 채찍이 살가죽을 조각내고 뼈를 짓이겨 버릴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챈 듯.

 

 슬그머니 옆쪽으로 몸을 옮기기 시작했다.

 

 “비겁하긴. 한 대 정도는 맞아 줘야지?”

 

 에오가 검은 개를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빠르게 허공을 가로지른 채찍은 곧장 검은 똥개 놈을 향해 날아갔다.

 

 살아있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퍽!

 

 -캥!

 

 녀석은 조금 전 보였던 무시와 거만한 표정을 뒤로 한 채, 꼴사납게 뒤쪽으로 뛰어갔다.

 

 에오가 채찍을 더 움직였지만. 순식간에 벌어진 거리 탓에 우중충한 허공을 찢을 뿐이었다.

 

 그녀가 다시 무기를 거둬들였다.

 

 -스르륵.

 

 맹독을 품고 있는 살아있는 뱀처럼 느껴지던 채찍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쯧. 까불기는.”

 

 아쉽다는 얼굴로 그녀가 입맛을 다셨다.

 

 시건방진 검은 개의 모습은 이제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늑대가 나타났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재밌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톡!

 

 -토톡!

 

 하나둘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던 빗방울이 점점 더 많아졌다.

 

 “화끈하게 태풍으로 쓸어버리든가 하지, 왜?”

 

 그녀가 날카롭게 소리를 내질렀다.

 

 다시금 그녀를 이곳으로 내려보낸 살찐 만두 같은 놈의 얼굴이 떠올라 무심결에 등 뒤로 손을 가져갔다.

 

 아무것도 없었다. 날개도, 매일같이 쏘아 올리던 화살도.

 

 억울하고 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곧 우울한 감정으로 변했다.

 

 “흑... ”

 

 조금 전까지 보이던 도도하고 강한 이미지는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내 날개.. 내 활... 돌려줘. 이 나쁜 놈들아!”

 

 에오는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드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투명한 눈물이 그녀의 살구빛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에오의 작은 어깨가 떨렸다.

 

 “흐읍.”

 

 참으려 했지만, 자꾸만 솟아 나오는 눈물은 막을 수가 없었다. 짙은 속눈썹이 젖어 들었고, 흘러내린 눈물은 쉴 새 없이 볼을 적셨다.

 

 그러는 동안에도 에오는 연신 주위를 살폈다. 혹시라도 누가 볼까, 걱정이 됐다.

 

 날개와 무기를 몽땅 잃고 울음을 터뜨리며 척박한 지구 한가운데에서 우뚝 서 있는 꼴사나운 모습을 들키긴 싫었다.

 

 갑자기 살찐 만두처럼 생긴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그녀가 눈물을 뚝 그쳤다.

 

 ‘어쩌면 날 쳐다보고 있을 지도 몰라.’

 

 잠시 허공을 째려보던 그녀가 다시 고개를 내렸다.

 

 등 뒤, 날개가 있던 곳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매끄러운 비단 느낌만 있을 뿐. 잃어버린 날개는 다시 돋아나지 않았다.

 

 “너무 허전해, 슬퍼...”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다행히도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맡은 임무는 막중했다.

 

 흡혈 전생을 가지고 있는 인간 퇴마사. 사실 인간으로 부르기도 애매한 녀석을 관리하며 지구 정화 임무를 잘 처리하고 있는지 지켜봐야만 한다.

 

 “하. 말이 쉽지.”

 

 그녀가 얼굴을 찌푸렸다. 신경질적으로 어깨 위로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손으로 잡아 뒤로 휙 넘겨버렸다.

 

 -데구르르.

 

 그때, 바람에 굴러온 빈 깡통이 시끄럽게 소리를 내질렀다.

 

 “오우.”

 

 슬픔은 빠르게 사라졌다.

 

 그녀는 자신이 쓰레기가 널린 최악의 행성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입술을 깨물었다.

 

 주먹을 움켜쥐었다. 뾰족한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분한 마음을 삭히려 애썼다.

 

 부들부들 몸이 떨렸다.

 

 “이 일을 다 끝내고 나면, 다시 날개 달아 주실 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침묵. 고요. 적막.

 

 가슴속이 서늘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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