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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로맨스, 그 찌질함에 관하여
작가 : 열해
작품등록일 : 2022.1.2

찌질한 과거를 청산하고 다시금 사랑을 시작하려던 나.
찌질함은 결코 벗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2화
작성일 : 22-01-04 00:29     조회 : 210     추천 : 0     분량 : 5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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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성적이 좋은 녀석들은 틈만 나면 공부를 한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가릴 것도 없다. 나 같은 평범한 학생이 이들을 넘어설 수 없는 이유는 단순히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유혹. 유혹을 이겨낼 정신력이 부족하기에 언제나 들러리 역할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유혹은 단연 휴대폰이다. 단어를 외우다가도 아까 깨지 못한 보스몹이 떠올라 다시금 게임을 켜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여학생들의 메시지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는 부류도 있다.

  나? 나는 이 두 부류는 아니다. 게임은 귀찮고, 아는 여학생은 아예 없다. 나에게 가장 매력적인 콘텐츠는 다름 아닌 유튜브. 세상 만물이 이 조그마한 화면 속에 다 들어있다는 것이 어찌나 놀라운지 모른다. 난 절대 먹방이나 연예인 영상을 찾아보지 않는다. 미스테리한 역사적 사건을 파헤치거나, 감동적인 이슈들을 접하면서 희열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나의 알고리즘은 유명인들의 명연설이라는 키워드로 안내를 해주었었다. 자신에겐 꿈이 있다고 외치던 마틴 루터 킹부터 두려워말고 신념을 가지라던 스티브 잡스까지, 모두 나의 우상 아닌 우상이었다. 그들이 김준수 대신 날 반장으로 이끌어줄 것이라,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주말에 정우를 만나 피시방비를 다 내주고, 내 원대한 포부와 계획을 알려주었다. 정우는 비교적 단순한 친구였기에 피시방에서 나와 맛나분식 세트를 사줬을 뿐인데도 자신의 인맥을 최대한 끌어다주었다. 덕분에 내 지지층을 확보함은 물론 강력한 맞수가 될 존재까지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아, 냄새 죽인다. 머리카락에서 맛나 세트 냄새나는 여자 있으면 나 무조건 꼬신다.”

  “그건 또 뭔 개소리야. 너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진짜 너 큰일 난다.”

  “알아. 다른 데서 이런 얘기했다가 무슨 꼴 날라고. 근데 있지. 너도 알겠지만 내가 후각이 진짜 예민하잖냐. 이게 남들은 진짜 정신병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갑자기 좋은 향수 냄새라도 나면, 자꾸 그쪽을 쳐다보게 된다니깐.”

  “정신병 맞네. 그냥 닥치고 먹어라.”

  “닥치고 어떻게 먹어. 벌리고 먹어야지.”

 

  음식을 거의 쑤셔 넣는 수준으로 먹고 있던 정우가 갑자기 휴대폰을 보더니 놀란 눈초리로 말을 했다.

 

  “백성. 근데 너 반장 하기 힘들겠는데?”

  “왜? 누구 다른 애 또 나온대?”

  “너도 알걸?”

  “그러니까 누구?”

  “우리 학교 최고 인기남.”

  “어차피 분반이라 여자애들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인기가 있으면 뭐, 어쩔 건데?”

  “그래도, 얘 이름을 들으면 너의 마음이 달라질 텐데.”

  “짜증 나게 좀 하지 말고 빨리 말해봐. 누구 말하는 건데.”

  “백성. 너야말로 답답하게 굴지 말고, 우리 반에 나올 만한 애가 누가 있을지 생각을 좀 해봐라.”

  “김준수겠지, 뭐.”

  “뭐야. 알고 있었네? 괜찮겠어?”

 

  김준수. 이름 그대로 모든 방면에서 준수한 능력을 가진 녀석. 성적은 늘 상위권인데다가 외모는 남자가 봐도 꽤 잘생겼으며, 심지어 축구를 해도 다들 서로 자기 편에 데려가려고 하는 실력자. 결코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나에게 삼심만 원, 정확히는 피시방과 맛나분식 세트 비용을 제외한 이십팔만이천 원이 남아있다는 것은 그래도 이 난관을 극복하기에 꽤 희망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왜, 너 햄버거 쏜다고 하게? 김준수네 집 완전 잘 살아. 네가 햄버거 얘기하면 걔는 피자 한 판씩으로 올릴 거다, 아마.”

  “햄버거론 못 이겨. 다 수가 있지.”

 

  월요일 1교시. 담임은 교실에 들어와서 인사도 없이 칠판에 ‘반. 장. 선. 거.’ 네 글자를 새겨놓았다.

 

  “반장 할 사람 손 들어.”

 

  김준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번쩍 들었고, 이에 질세라 나 역시 손을 들었다. 예상외로, 더는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김준수란 이름이 갖는 위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모두의 손을 무겁게 만들어버렸으니.

 

  “김준수, 백성현. 둘이 다냐? 더 없어?”

 

  잠잠해지자 담임은 김준수부터 소견발표를 하도록 했다. 예상대로 별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반장이 되면 교실 내 학습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하겠다, 그러면서도 즐거운 학급이 되도록 하겠다, 끝. 김준수에게 백성현이란 존재는 우주의 먼지 같은, 별 의미 없는 존재였을 테니 당연한 승리를 예상하는 눈치였다. 반전. 식스센스나 유주얼 서스펙트급 반전이 필요했고, 난 분명 자신이 있었다.

 

  “다음, 백성현 나와서 소견 발표해라.”

 

  교실 구석에서 하찮다는 듯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정우에게서 시작된 응원의 박수 소리가 다행히 이를 덮어주었다. 그러는 가운데에도 나에게 가장 선명하게 들리는 건 내 침이 목구멍을 넘어 꿀꺽 삼켜 들어가는 소리였다. 긴장이 멈추질 않았다. 벌벌 떠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눈이 마주친 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밤새 준비한 멘트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저는 백성현이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생긴 것도 별로고, 성적도 별롭니다. 제가 참 별롭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반장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용기를 낸 성과가 있었다. 확실히 반 아이들의 이목을 끄는 데에는 성공한 것 같았다. 연설에서도 ‘시작이 반이다’라는 격언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첫 멘트에 아이들은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예상과는 다른 이야기 전개에 무관심하던 담임까지도 귀를 귀울이는 모습이었다.

 

  “저는 절대 여러분 위에 군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대학이요? 어차피 제 성적으로 반장 한 번 했다고 대학 간판이 바뀌진 않을 겁니다. 그만큼 전, 반장이라는 역할에 굉장히 진정성 있게 접근하고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내 입에서 쏟아지는 단어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살아 돌아와서 내 모습을 봤어야 하는 건데.

 

  “궁금하시겠죠. 제가 왜 반장을 하려고 하는지. 사실 별것 아닙니다. 나라는 사람이 대체 뭘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특별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고삼이라고, 공부만 하고 살 순 없잖아요? 제 목표는, 여러분의 한 해를 의미 있게 만들어드리는 겁니다.”

 

  연설에 있어 많은 이들이 실수하는 부분이 추상적인 계획과 목표만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최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시해야 설득력이 생기는 법. 거기에 솔직함이라는 연설의 기본 전략까지 한 숟갈 얹어주면 퍼펙트!

 

  “사실 부모님께 부탁드려서 삼심 만 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께 햄버거 세트를 쏘겠다고 할 작정이었죠.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이 삼심 만 원, 우리 학교 3학년 1반 이름으로 모두 기부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여러분의 하루에 의미를 더해드릴 작정입니다. 그러면 분명 올 한해가 우리에겐 큰 선물이 될 겁니다. 저를 믿고 맡겨 주시면, 확실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90도로 큰절을 했다. 예상보다 더 크고 긴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니, 멀리 있던 목소리가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이제 고지는 코앞, 투표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순식간에 모든 투표용지가 수거되고, 개표까지는 5분 남짓한 시간만이 걸렸다. 담임의 목소리엔 김준수와 내 이름이 번갈아 가며 불렸고 서른 표 중 열일곱 표를 획득한, 나의 승리로 반장선거는 막을 내렸다. 의외라고 해야 할지, 역시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게도 김준수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했다. 자존심이 상할 거로 생각했는데,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와 달리 난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설렘이 온몸을 휘감은 상태였다. 빨리 금요일이 왔으면 좋겠단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알려야 한다! 내가 반장이라는 것을!

 

  일주일은 매우 느리게 지나갔고, 겨우겨우 찾아온 금요일 아침에 난 일찌감치 눈을 떴다. 나름 꽃단장을 하고 학교로 향했다. 교실에 들어가 시간표를 보니 ‘5교시 문학’이란 글자가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막상 금요일은 왔는데, 또 5교시까지 기다리는 것은 너무도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골똘히 생각하던 중, 난 그녀의 교무실 자리를 가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오전 중에 한 번 교무실에 미리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연출하는 것이 아무래도 좋을 테니까.

 

  2교시가 끝나자마자 그녀가 있는 1학년 교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자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일주일 새 더 아름다워진 그녀는, 교무실 문 근처에 앉아있었다. 심장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알까? 내가 반장이 되기 위해 얼마나 힘겨운 노력을 했는지. 그녀의 얼굴은 본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며 돌아서려던 순간, 난 내 눈을 의심했다. 분명, 김준수였다. 김준수가 왜,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인가. 둘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떤 선생님 보러 왔니?”

 

  내 행동을 의심스럽게 쳐다보던 1학년 선생님 중 한 분이 말을 걸었다. 난 ‘아닙니다’라고 얼버무리고 급히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괜히 화가 났다. 김준수와 대화를 나누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해맑아 보였다.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여자란 말인가. 왜 하필 그 자식인 걸까. 내가 더 이상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닌데…….

  난 우울함의 호수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멍하니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느릿느릿 가던 시간은 이때다 싶었는지 날 제대로 괴롭히기 위해 훌쩍 도망가 버렸고, 결국 5교시는 다가왔다. 난 그녀가 있는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 문을 열자마자 내 시야에 바로 그녀가 들어왔다. 우울했던 감정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마법같은 사람이란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내 인기척을 느낀 그녀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내 얼굴을 바라봤다.

 

  “나 찾아온 거니?”

  “아, 네. 저, 저는…….”

  “알아. 1반 백성현이지?”

  “어? 네! 맞아요!”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게……. 제가, 제가 1반 반장이거든요.”

 

  그녀는 날, 알고 있었다. 심지어 이름 세 글자까지 완벽하게. 심장이 요동치다 못해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그녀는 정말 내 심장을 꺼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계속 말을 멈추지 않았다.

 

  “첫날부터 유일하게 깨어 있더니, 반장감이라 그랬구먼! 그래, 여기 스피커. 교탁에 올려놓으면 돼. 난 종 치고 갈게, 먼저 가!”

 

  나의 해맑음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었을까. 그녀가 나와의 첫 만남까지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었다니. 곧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 준수야. 또 어쩐 일이야?”

  “선생님 저희 반 수업이시잖아요. 모시러 왔죠.”

  “그래? 그럼 같이 갈까?”

 

  높이 올라갈수록 거꾸로 지상에 처박히는 물리적 힘은 강하지 않겠는가. 뒤통수에 들려오는 김준수의 목소리, 그리고 이를 받아주는 그녀의 다정함은 대기권 밖까지 치솟았던 나의, 양쪽 날개를 와그작 부러뜨리는 날카로운 칼날이었다. 불과 15초 전, 그녀는 날 먼저 교실로 올려보냈다. 그리고 김준수에겐 ‘같이 가자’라고 답했다.

 

  “준수야, 네가 너희 반 1등이라며? 공부 엄청 잘하나 봐?”

  “에이, 작년까지야 그랬는데……. 모르죠. 3학년 됐으니까 또 달라질 수도 있고.”

  “겸손하기는. 3학년 때 1등하는 게 더 중요한 거야. 그래서 정말 국어 선생님 하고 싶어?”

 

  계속 이어지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다간 난 들고 있는 스피커를 내동댕이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교무실 문을 나섰다. 그리고 멈춰 섰다. 김준수가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그런 거였어?

 

  십구 년 동안 단 한 번도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녀석이 드디어 등장했다. 꿈, 꿈이 생겼다.

 

  국어 선생님! 난, 그 순간 국어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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