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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뉴턴스쿨엔 뉴턴이 없다
작가 : Perpetua
작품등록일 : 2022.1.3

국내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대안 국제학교 뉴턴스쿨,
뉴턴 같은 수학자가 나올 가능성은 없지만, 사과나무 아래서 여러 사건을 만들 학생들은 많다. 헝가리 의대반을 제외하곤 공부에 열심인 학생도 없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는다. 대학에 갈 생각만 있다면 어느 대학이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낸다. 학생의 능력도, 선생의 능력도 아니다. 돈의 능력으로 보낸다.
윤태를 포함해 영호, 양이, 민준, 개화, 은경은 N반이다. N은 뉴턴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 정수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일상은 그리 나쁘지 않다. 바라보는 어른들만 답답할 뿐이다. 그들에게 변화가 찾아올까? 그들의 변화는 긍정적인 조짐일까?

 
2.
작성일 : 22-01-03 10:51     조회 : 192     추천 : 0     분량 : 11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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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토하듯 승용차들이 학생을 하나씩 내뱉었다.

 가끔 둘을 내뱉느라 시간을 끌기도 했지만 대부분 리듬이 비슷했다.

 웅- 끼익, 웅- 끼익. 영어로만 된 학교명과 함께 하얀 십자가가 있는 붉은 사과가 커다랗게 붙어있어 모르는 사람은 수입차 판매 건물로 오인할 정도다.

 똑같은 차는 드물었다. 사전조사 뒤에 구매하는지 각양각색의 수입차가 줄을 지었다.

 학교에서 국산 차를 이용하는 사람은 외국인교사들뿐이었다. 자가를 이용하는 한국인교사들은 수입차 중고라도 끌고 다녔다.

 

 ***

 

 입구 쪽을 보니 마이클이 민준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대가족인 마이클은 중고 카니발을 몰고 다니는데 조 이사장은 그의 차가 학교 앞에 주차된 걸 제일 난감해했다.

 그런데도 일찍 출근하는 마이클은 학교 앞에 당당히 주차했다. 세차도 하지 않아 미관상 좋지 않았다.

 결국 조 이사장은 방문자의 차를 제외하곤 학교 앞 주차를 금지했다. 교사들은 학교 건물과 거리가 있는 공용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와야 했다.

 

 오늘은 입구에 여선생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그 여자라면 분명 건물 안쪽에서 복장 불량인 학생에게 주의를 시키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내릴게. 옆으로 빠져나가.”

 “왜? 오늘은 마이클만 있네.”

 

 마주치면 피곤한 여자가 곧 나올 수도 있다고 말하려는 순간, 수지가 밖으로 나왔다.

 그럼 그렇지. 불길한 예감은 늘 적중한다.

 

 “수지잖아!”

 

 내 말에 미스터 성이 단번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역시 순발력은 뛰어나다. 여자로 인한 위험 감지 능력은 아직 쓸만했다.

 

 “뭐야? 그만둔다며?”

 “뭐야? 겁날 거 없다며?”

 

 나는 미스터 성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히죽거렸다.

 

 “겁날 건 없지. 무서워서 그렇지.”

 “이변이 없는 한, 한 학기는 더 있을 거야. 어쩌면 더 큰일을 도모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큰일? 그게 뭔데?”

 

 나는 아직 정확하지 않은 소문을 말하지 않았다.

 내가 내리자마자 미스터 성의 차는 방향을 틀었다. 그 소리가 격했다.

 학교 근처에선 허용되지 않는 속력으로 포르쉐 파나메라 터보가 달아났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교문으로 들어갔다.

 

 “헤이, 윤퇴이! 오늘 어때? 좋은 아침인가?”

 

 마이클이 주먹을 내밀며 기다렸다.

 

 “아직 아니야.”

 

 흘리듯 말하며 양손을 주머니 깊숙이 꽂았다.

 마이클이 양손을 비비며 웃었다. 늘 실속 없는 해맑은 웃음이다.

 

 “성윤태, 인사 좀 잘하자! 매너!”

 

 수지의 고음이 내 귀에 꽂혔다.

 나는 중지로 귀를 쑤신 뒤 후하고 불어 올렸다.

 

 “손가락이 중지밖에 없니? 성윤태! 너, 시험지 사인 오늘까지 제출하지 않으면,”

 

 수지의 말이 끊겼다.

 나는 힐끔 뒤를 보았다.

 마운틴이 수지를 붙잡고 있었다. 마운틴의 시선이 내게 짧게 머물다 수지에게로 갔다.

 

 “정말요? 너무 고마워요!”

 

 수지의 알랑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운틴이 빨리 사라지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머리카락을 넘기며 새끼손가락을 드는 신호였다.

 나는 재빨리 계단으로 올라갔다.

 마운틴만 아니었으면 사인 받은 시험지를 접어 날려 보내려고 했다. 물론 그런 행위를 하면 또 벌점을 받겠지만.

 

 아침에 일어나보니 사인 된 시험지가 내 방까지 배달돼 있었다.

 웬일로 미스터 성의 군소리도 없었다.

 아마 담당교사의 이름을 확인했을 것이다. 기겁하며 사인했을 미스터 성의 모습이 그려졌다.

 유난히 크고 또렷한 사인이었다. 미스터 성과 나는 각자 상쾌한 아침을 맞기 위해 수지와 시험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의 배려로 만든 기분을 교문 앞에서 잡친 것이다.

 

 “얼굴 보고 인사합시다!”

 

 수지의 고음은 계속됐다. 얼굴 맞추기가 겁나는 교사다.

 싱글인 남자 학부형에게 추파를 던진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나도 모르게 미스터 성과도 접선한 상태였다.

 상담을 빙자한 만남이, 회사 통역 알바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대형 사고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어른들은 절대라는 단어를 수시로 썼지만 절대 믿어선 안 되는 족속이니까.

 

 “절대, 그런 일은 없었어! 맹세해.”

 “확실해?”

 “확실하다니까! 야, 그리고 발단은 너 때문이잖아! 네가 나한테 큰소리칠 군번이냐? 정말 어이없다!”

 

 그래도 몇 번의 데이트는 했을 것이다.

 

 “하도 명품을 밝혀서 마무리 단계였어.”

 “서로 취미가 딱 맞네?”

 “나는 다르지! 내 능력으로 사는 거잖아? 그리고 꼭 필요한 것만 구매한다고.”

 

 한동안 수지는 갑부의 딸로 소문이 났다.

 볼보 XC60을 타고 다녔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명품으로 도배했다.

 아무리 이 학교의 한국인교사들이 유학파라고 해도 그런 고급스러운 생활은 불가능했다.

 일단 외국인교사에 비해 대우가 약했다. 게다가 유학으로 돈이 바닥난 선생들이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학교였다.

 수지의 본모습이 발각된 건 외국인교사 채팅방에서였다.

 제비가 박 씨를 물고 오듯 영호는 수시로 여러 소문을 물고 등교했다.

 

 “학교는 백퍼 여기고, 비슷한 인상착의는 수지뿐이야.”

 

 영호 엄마는 I항공대 운항과 영어회화 강사다. 강사지만 강사답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친정이 대학재단과 깊은 연관이 있는 집안이라고 들었다. 유학파인 영호 엄마는 이 학교에 적합한 교수자들을 몇 사람 소개해주기도 했다.

 엄마의 노트북을 잠깐 사용한 영호가 외국인교사 사이트를 보게 됐다.

 수지와 동창인 외국인교사가 명품 삶을 누릴 수 없는 수지의 명품으로 사는 현실을 부러워했다. 외관상으로는 부러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폭로였다.

 

 “N School only has red apples. (N 스쿨엔 빨간 사과만 있다.)라는 닉네임 특이해서 들어가 봤거든. 이 학교 수준이 그대로 나와. 온통 비방하는 글이야.”

 

 학교 수준은 창피할 일도 아니었다.

 말이 국제학교지 국내에서는 인정하지도 않았다. 해외 유학이 목표인 대안학교나 다름없었다.

 다행히 외국에서는 인정해서 유학 가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검정고시를 준비해야 한다는 게 번거로웠지만, 능력에 따라 공교육보다 빠른 진학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국내대학 진학반도 있다. 어디든 대학과 연결이 필요한 학생들이 주로 머물렀다. 몇 년 뒤 그들을 조사를 해보면 대부분 조금 더 수준 있는 국내외 대학으로 편입해 있었다.

 

 ***

 

 교실에 들어가니 영호의 가방만 보였다.

 영호는 제일 먼저 학교에 와서 제일 늦게까지 이 답답한 공간에 머무는 희귀종이다.

 그것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농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농구대에도 뉴턴의 사과가 그려져 있는데 영호가 하도 사과에 공을 튕기며 골을 넣어서 사과가 뭉개져 보였다.

 이 학교에는 농구부가 없다. 농구를 좋아하는 몇몇 학생과 외국인교사가 있을 뿐이다.

 사실 영호는 10학년이 아니라 11학년이어야 했다. 그러니 10학년 학생들에겐 형이었다.

 

 “너희만 이름 불러. 같은 반에서 불편하니까.”

 

 영호는 10학년 N반 학생들에게만 이름 호칭을 허락했다.

 

 한때 영호는 농구선수를 꿈꿨던 유망주였다.

 그랬던 아이가 명문 중학교 졸업식 때 농구 감독을 팼다.

 시력엔 문제가 없었지만 농구 감독은 쓰러지는 과정에서 짝눈이 됐다.

 농구 감독은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는 의료기록을 만들어 영호 엄마를 협박했다.

 가족의 만류에도 영호는 스스로 소년원을 택했다.

 몇 개월 별스러운 세계에서 심신단련을 한 뒤, 영호는 1년간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별보다 아름다운 곳에서 제대로 심신 수양을 한 영호는 몸과 마음이 동시에 성장해서 돌아왔다.

 

 물론 그건 또래들의 판단이었다.

 어른들의 판단 저울엔 늘 욕심 덩어리가 올라가 매번 기준치가 달랐다.

 영호의 말에 의하면 농구 감독에게 바칠 돈으로 다녀온 평온한 여행이었다고 한다.

 

 영호 엄마는 영호가 농구 대신 스포츠 매니저 공부를 하길 바랐다. 영호에겐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영호 엄마는 일단 학교라는 공간에 영호가 다시 들어선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눈치였다.

 

 “엄마의 1차 목표는 이루어준 셈이지.”

 

 영호는 마치 자신이 엄마의 목표를 달성해준 것처럼 말했다.

 

 “맞는 말이잖아? 난 아무 목표가 없는데 특출한 엄마가 만든 거니까.”

 

 특출한 엄마가 만든 2차 목표는 이 학교 졸업, 3차 목표는 미국행이나 영국행, 4차 목표는 대학 입학, 5차 목표는 대학 졸업이었다.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냐?”

 

 영호의 장황한 설명에 내가 웃으며 물었다.

 역시 세계 명문대 출신들만 있는 집안이라 남달랐다. 어떤 상황에서도 계획적이었다.

 

 “그런 계획도 있어? 그럼 이 몸은 제3차 강영호 개발 5개년 계획이다! 내가 우리 집에서 세 번째 골칫덩어리거든. 1차, 2차는 분리수거가 어느 정도 끝났어. 투자와 재활용을 적절히 잘해서 그런대로 성과를 보이더라고.”

 

 가족의 명문대 졸업장이 대부분 기부금으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영호를 통해 안 사실이었다.

 

 “이제 너만 재활용하면 되겠네.”

 “재활용하려면 얼마나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는 줄 아냐? 낭비야! 그냥 불량품은 폐품 처리하는 게 경제적일 수 있어.”

 “너희 집은 폐품도 정품으로 만든다며? 조용히 따라가. 폐품보단 정품이라는 단어가 멋지니까.”

 “뭘 나까지 정품을 꿈꿔? 그리고 정품 딱지 붙인다고 다 정품이냐? 화려한 단어에 속지 마라. 난 천천히 바뀌련다.”

 

 문제는 영호가 천천히 바뀌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늘 한결같이 같은 공간에서 농구공만 튕기고 있었다.

 

 국내에서 인정하지 않는 학교일지라도 실력까지 엉망인 학생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희귀한 개성들 때문에 일반 학교나 특목고를 가지 않았을 뿐이다.

 희귀함 속에는 자유로운 사고도 들어있었다. 어느 것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몰라도 이 학교엔 조금 창의적인 정신과 가족 관계를 맺은 아이들이 많았다.

 

 고등학교 과정은 헝가리의대 준비반과 A-1, A-2 국외반, K 국내반, 그리고 N반이 있다.

 N반은 10학년에만 있다. 학생을 놓치지 않기 위한 조 이사장과 전 교장의 꼼수마케팅이었다.

 좋게 말하면 ‘기다림’이 필요한 아이들의 반이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10학년이 돼도 정신을 못 차린 아이들의 반이다.

 뉴턴을 상징하는 이니셜 N을 쓴 건 전 교장의 아이디어였다. 골치 아픈 학생들을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거룩한 취지였다.

 전 교장은 단 한 번도 N반은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수학자인 그에게 N은 부정 정수(음정수)를 의미했다.

 앞에 마이너스가 붙은 부정 정수 같은 학생은 하나씩 사라져 주는 게 그의 희망이었지만, 학교 운영을 위해 잡아둬야 할 물주의 자식이었다.

 

 원래 헝가리의대반은 수학영재(MG)반이었다.

 전 교장이 사라지고부터 갑자기 헝가리의대반으로 바뀌었다.

 조 이사장이 유명 교육 카운슬러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진 반으로 헝가리의대까지 방문한 사진이 학교 한쪽 벽을 도배했다.

 누가 보면 마치 헝가리의대와 결연된 듯 오해할 소지가 많았다.

 수학영재반이 헝가리의대반으로 바뀌어도 학생들의 이동은 없었다.

 그건 내게 너무도 이상한 부분이었는데, 그 이유를 깔끔하게 알려준 것도 정 여사였다.

 

 “그저 특출났었다는 것만 알리게 목적인 거야.”

 

 그래서 헝가리의대반 학생들은 헝가리의대에 들어가면 정말 의사가 돼 돌아올 수 있는가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여기에서 서식하는 동안 의대라는 거창한 단어에 매달려 길을 찾고 있을 뿐이었다.

 이 학교에서 의사는 결코 멋진 직업이 아니다. 죽도록 공부만 해서 죽도록 노동만 하는 분야로 평가했다. 잘못하다간 본전도 뽑지 못하고 요절할 직업이었다.

 이곳엔 의사보다 더 부자로 편안하게 인생을 즐기는 가정이 많았다.

 

 헝가리의대반은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따로 모여 F층에 갇혀 지냈다.

 한동안 모든 반이 섞여서 공부했는데 일반 반 학생들이 그들의 공부에 방해된다는 학부모의 건의가 들어왔다.

 여기서 방해란 남녀학생 간의 교제를 말한다.

 유별난 학부모 때문에 헝가리의대반 아이들은 연애도 못 했다. 감정조차 발설하지 못했다.

 그에 비해 나머지 학생들은 자유로웠다. 연애와 감정 표현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금기와 자유의 결과가 확연히 반대라는 것이다.

 F층에서 벌어지는 연애는 애절했고 위험했다. 그에 비해 일반 반 아이들의 연애는 쿨(cool)했다. 만남과 헤어짐에 예민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이클의 조언 때문이기도 했다.

 

 “또래 친구들과 돌아가며 다 사귀다 보면 졸업할 시기가 온단다. 그게 진정한 동창이야.”

 

 여기서 N반 학생들은 제외돼야 한다.

 대부분 연애에 관심이 없는 종자들만 모였다.

 자의든 타의든 만남과 헤어짐에 오래전부터 학을 뗀 상태였다. 아마 그런 부분의 신경 선이 마비됐을 것이다.

 

 모든 학생이 강의실을 찾아가는 시스템이었지만 돌고 돌다 보니 결국 같은 반 무리가 모여서 공부했다.

 그래서 교사가 찾아오는 수업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학교에서는 영어로 말하는 게 학칙이다. 당연히 학칙을 따르는 학생들은 드물었다.

 오로지 수업에서만 영어를 썼다. 외국인교사들이 한국말을 못해 손발 짓을 섞어서라도 영어로 표현해야 했다.

 

 각 반은 10명 안팎의 소그룹이다. 그렇게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있다.

 초등부 저학년은 학년별로 20명이 정해져 있지만, 정원을 채운 학년은 드물었다.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가 층을 나눠서 공부했다.

 수업시간에 허락 없이 다른 층을 오가는 건 규칙위반이다.

 예배나 행사, 식사시간에만 전교생은 만날 수 있었다.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어 학생들의 위반행위는 쉽게 적발됐다. 그러나 위반행위에 민감한 사람은 교사들뿐이었다.

 이 학교는 어떤 행위를 해도 학생을 퇴학시키지 않았다.

 조 이사장은 더 잡아놓는 방법을 최악의 벌칙으로 정했다.

 그래서 학생들은 위반행위를 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돈을 낭비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인원이 적은 만큼 등록금은 엄청 비싸다.

 등록금이 비싼 만큼 교육수준이 높은지는 확신할 수 없다.

 헝가리의대반만 제외하면 몸 바쳐서 공부하는 학생도 공부시키는 선생도 없다.

 솔직히 학생이 대학에 입학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학부형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학을 보냈다.

 학생이나 교사의 능력이 아니었다. 학부형의 능력이었다. 돈의 능력이었다.

 

 ***

 

 이 학교에서 내 가족사는 특별나지 않았다.

 오히려 미스터 성과 나의 생활은 미래지향적인 부자(父子)간의 멋진 모습으로 알려졌다.

 미스터 성은 17살 때 나를 얻었다. 아니, 얻게 됐다.

 유혹에 약한 시절, 미스터 성의 실수로 한 생명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내 앞에서 실수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은 없었다. 이른 감은 있었으나 미스터 성의 종족 번식은 일가친척이 바라는 사항이었다.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 데이트만 할게. 성인이 되면 혼자 살아도 되니까. 그때부턴 나도 정상적인 여자와 관계를 맺을 거야.”

 

 이것은 내가 사람의 언어를 알아들을 때부터 외운 문장이었다.

 나는 성인, 데이트, 혼자, 정상, 여자, 관계라는 단어부터 터득했다. 매우 고차원적인 단어를 이해한 천재였다.

 미스터 성의 말을 쉽게 풀이하자면,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의 자유로운 여자관계는 계속될 것이며 그런 저급한 행위를 나더러 용납하라는 뜻이었다.

 

 원래 미스터 성은 한 여자와의 긴 결혼생활이 어울리지 않은 수컷이다.

 그의 본성은 증조할아버지의 유전인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상인 집안 출신인 증조할아버지는 체격과 힘이 장사였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스모를 배웠고 그것으로 돈을 벌었다.

 그런 뒤 고국으로 돌아와 땅을 샀다.

 땅에 대한 원한이 많은 사람처럼 한동안 땅따먹기만 했다. 허풍을 조금 섞어서 표현하자면 지방 행정구역 하나 정도의 크기였다고 한다.

 대지주인 증조할아버지가 다처(多妻)를 거느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힘이 장사여서 여러 부인도 분쟁 없이 잘 다스렸다.

 불행하게도 남아선호사상이 큰 증조할아버지는 여아 생산만 했다.

 친할아버지는 힘들게 생산한 외아들이었다.

 

 친할아버지는 땅따먹기나 재산 증식, 보존 분야엔 관심이 없었다.

 대신 사랑을 보존하기 위한 열성은 대단했다.

 친할머니와의 러브스토리는 영화 ‘노트북’의 주인공보다 깊었다고 한다.

 그렇게 러브스토리만 생활화했던 친할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의 재산을 많이 날렸다.

 친할아버지는 그것을 사회 환원이라는 멋진 단어로 포장했다.

 아직까지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의 사랑은 현재 진행형이다. 서로 아름다운 추억만 되새기며 살아서 그런지 치매 걱정도 없어 보인다.

 두 분은 정신만큼이나 사고도 똑발랐다. 모든 일엔 두 사람이 우선이었다. 자식도 제 능력껏 살라는 주의였다.

 

 미스터 성과 고모들을 키운 건 팔 할이 돈이었다.

 증조할아버지의 재산이었다.

 세 명의 고모는 모두 제 나라를 버리고 전 세계에 퍼져 살고 있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의 바람이었다. 두 분은 이 나라 정치의 수준을 보며 수시로 혀를 찼다.

 사랑만 했던 두 분이 이 나라의 미래까지 점쳤다.

 오래 남아서 희생할 나라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루빨리 새로운 나라를 찾는 게 지혜롭다는 견해였다.

 고모들은 모두 두 분의 바람을 따랐지만 미스터 성의 생각은 달랐다.

 애국적인 일은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이 내 나라의 소중함을 항상 떠들어댔다.

 

 “돈만 없다고 거지인 줄 아니? 나라가 없는 건 국제적 거지야! 너 ‘터미널’ 영화 받지? 쿠데타로 망한 나라, 어디지? 크라⋯ 코리아.”

 “크라코지아. 그리고 그건 가상이야.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라고.”

 “그래? 동유럽국가 아니야?”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스터 성은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어쨌든, 가능한 이야기니까 영화로 만들지! 내 나라가 있어야 내 능력도 인정받는 거야! 도대체 요즘 사람들은 애국심이 1도 없어!”

 

 애국적인 일은 1도 않은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미스터 성의 당당한 말에 야유를 퍼붓고 싶었다.

 그는 건강한 육체에도 어찌어찌해서 군 면제를 받았다.

 수입업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다. 자동차를 비롯해 집에 있는 가전제품은 모두 수입품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수입품으로 도배하고 다닌다. 양말도, 팬티도, 국산은 없다.

 

 “네가 대신 애국하면 되지. 군 복무 기간이 엄청 짧아졌어. 이젠 갈 만해.”

 

 미스터 성은 자신도 면제받은 군 복무의 필요성을 내게 수시로 강조했다.

 

 “아직 여러 가지로 불안한 나라야. 국방 강화는 필수라고.”

 이 나라에서 도망치거나 신체 중 하나를 불구로 만들지 않는 한 나는 군대에 가야 한다.

 나는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하기 싫었다.

 그렇다면 통일이라도 빨리 이뤄내야 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관심도 없던 통일 지지자가 됐다.

 

 ***

 

 친할아버지와는 달리, 미스터 성은 사업수단이 뛰어났다.

 유학비 전액을 미리 받아낸 그는 몰래 사업을 시작했고, 스포츠용품 수입업으로 대박까지 터트렸다.

 뒤늦게 국내대학에서 경영학 학위는 따냈지만, 실무엔 전혀 도움이 안 됐다고 실토했다. 실속 없는 투자였다며 학비까지 아까워했다.

 그래서 미스터 성은 내 학벌에 예민하지 않았다.

 공부에 취미가 없다면 사회생활은 고졸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하기야 고졸도 어렵긴 하지? 우릴 보면.”

 

 미스터 성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다 도통 방향을 잡지 못하는 내 성장을 걱정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젊은 나이와 수려한 외모, 고수익은 어린 시절의 실수를 바로 덮어주는 시대가 왔다.

 게다가 요즘은 화려한 연애도 경력이란다.

 다행히 미스터 성의 연애관은 깔끔했다. 아직까진 눈물 흘리며 질척거리는 여자도 없었다.

 미스터 성의 여자 다루는 법을 책으로 묶었다면 분명 베스트셀러가 됐을 것이다.

 

 “참 이상하네. 그렇게 쉬운 일을 못 해내나? 연애도 사업이야. 아주 단순한 관계 사업이지. 관계 변환도 아주 간단해.”

 

 모양새는 달랐지만, 부모의 탈을 쓴 이런 생태의 사람들은 곳곳에 많았다.

 이 학교가 밀집 지역 중 한 곳이다. 그러니 감춰야 할 문제도 아니었다.

 특히 이 학교에는 태어남과 동시에 자유로움에 길들어져야 하는 영혼들이 많았다.

 본의 아니게 주어진 자유라서 다스리는 법도 몰랐다.

 나는 유독 자유로움에 민감했다. 내 자유를 박탈하는 걸 용납하지 못했다.

 정 여사는 그것을 방종이라고 표현했다.

 

 “자유엔 책임이 따르지. 자유로움과 제멋대로의 차이를 알아야 해.”

 

 내가 방종이란 단어를 어려워하자 정 여사가 쉽게 얘기해줬다.

 정 여사는 한 번에 전달할 수 있는 말을 꼭 두 번씩 했다. 매우 안 좋은 습관이었다.

 나는 언제나 정 여사의 말을 무시했는데 언제부턴가 귀에는 걸고 다녔다.

 그건 참으로 이상한 변화였다. 정 여사는 나의 모든 변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실수조차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실수도 깨닫는 방법 중 한 가지야. 하나를 깨달으면 한 단계의 허물벗기에 성공한 거지. 인간의 성숙도 사마귀와 똑같아. 몇 번의 허물벗기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가능하지. 사마귀의 허물벗기는 자연의 빛깔과 모양을 몸속 깊이 받아들이는 행위야. 그래야 자연과 어우러져 살 수 있거든. 자연과의 조화란 자신 외의 다른 삶도 받아들인다는 거야. 인정(認定)하는 행위가 곧 성장이지. 너도 하나하나 인정하며 성장할 거야.”

 

 처음부터 내가 정 여사의 잔소리를 순순히 받아들였던 건 아니다.

 우리는 한때 원수지간처럼 싸웠다.

 어느 날부터 미스터 성은 원수 간의 싸움에서 빠졌다.

 정 여사에게 집안일뿐만 아니라, 내 원수의 상대까지 되도록 맡겼다.

 무던히도 속상했고, 무던히도 지쳤을 텐데, 무던히도 참아냈다.

 한동안 나는 정 여사의 인내가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가난은 창피가 아니야. 사람마다 타고난 형편과 재능이 다르니까. 그러니 치욕까지 참으며 너를 돌볼 이유는 없다. 예의를 지켜라. 그게 네가 동물과 구분될 수 있는 부분이야.”

 

 정 여사의 인내는 환경변화에 예민한 내게 안정을 주었다.

 정 여사가 오기 전까지 한 달을 넘긴 도우미는 없었다. 내게 갖은 악담을 하며 떠났다.

 나는 사립 초등학교에 다니다 3학년 때 그만뒀다. 그 후 두 번의 전학이 있었지만 한 학기도 버티지 못했다.

 그리고 유학 아닌 유학을 떠났다. 도피성 유학이었다.

 그곳에서도 모두에게 백기를 받아들고 귀국했다.

 나는 화를 잘 내는 성격이었다. 내게 과잉 친절을 보여도 화가 났고, 과소 친절을 보여도 화가 났다.

 나는 입으로 말하기보다 몸으로 말하는 게 수월했다.

 증조할아버지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받은 나는 또래보다 몸집도 커서 쉽게 상대를 넘어뜨렸다.

 미스터 성은 내게 싸우는 운동을 멀리하게 했다. 구기 종목만 허락했다.

 

 정 여사를 만나고부터 태권도와 검도는 물론이고 펜싱까지 배워야 했다.

 제대로 싸우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내가 배운 것은 대부분 예의를 갖춰 싸우는 법이었다.

 예의를 갖춰 싸우는 법을 터득한 나는 주먹질을 하지 않았다.

 대신 무시했다.

 아직 예의를 갖춰 무시하는 법까진 터득하지 못했지만, 몸으로 싸우고 싶은 마음은 사라졌다.

 내가 여러 변화를 보이자 미스터 성도 정 여사의 조언을 귀담아들었다. 사람 말 듣기능력이 점점 향상되고 있었다.

 물론 나와 함께 있을 때는 여전히 부족했다.

 여자와 있을 땐 어떨지 모르겠다. 아마 여자와는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친할아버지의 표현에 의하면 더럽게 말 안 듣는 자식이었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의 혈압을 수시로 조절하는 자식이었다.

 그랬던 미스터 성이 정 여사의 말엔 토를 달지 않았다.

 

 
작가의 말
 

 “이제 너만 재활용하면 되겠네.”

 “재활용하려면 얼마나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는 줄 아냐? 낭비야! 그냥 불량품은 폐품 처리하는 게 경제적일 수 있어.”

 “너희 집은 폐품도 정품으로 만든다며? 조용히 따라가. 폐품보단 정품이라는 단어가 멋지니까.”

 “뭘 나까지 정품을 꿈꿔? 그리고 정품 딱지 붙인다고 다 정품이냐? 화려한 단어에 속지 마라. 난 천천히 바뀌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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