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미쳤어. 네가 뭔데, 사람한테 손지검을 해! 당장 사과해”

　“웃기지 마! 내가 왜! 사과를 하지? 제 주제를 모르고. 입 함부로 놀린, 저게 무릎을 꿇어야지.”

　“어떡해! 얼굴에 피가…죄송해요. 저 때문에 괜히…너도 빨리 사과해.”

　희주의 루비 반지에 긁힌 뺨을 대수롭지 않게 쓸어내린 총지배인이 차분하게 응대했다.

　“괜찮습니다. 홍 임수 대표님. 이 정도는 희주 대표님과 늘 있는 일입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표님.”

　별일 아니라고 웃어넘기는 총지배인을 보자,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그 속이 속이겠는가!

　“누가 들으면, 네가 공짜로 월급 주는 줄 알겠다! 막말로 네 회사도 아닌 주제에. 감히! 어디 와서, 감 타령을 해.”

　“언니, 머리에 총 맞았어! 나니까! 우리 회사라서. 저 모지리들을 데려와서! 일 시키고. 먹여 살려주는 거야. 뭘 알고 떠들어. 수준 떨어지게 왜 이래.”

　“하! 어디서 월급을 공짜로 주는 척! 해. 너처럼. 머저리 같은 상사의 삽질에, 골병들게 뒷수습한 우리의 정당한 대가야! 격 떨어지게, 헛소리를 지껄여.”

　당장이라도 희주의 머리채를 잡아채 바닥에 내동댕이칠 내 기세를 가라앉히듯, 총지배인이 날 뒤로 보내고 조곤조곤 반박했다.

　“H 모직 대표님 말씀대로, 평생 백수로 살 수가 없기에! H 그룹의 총수로 지명되신 홍 임수 대표님의 지시만을 받겠습니다.”

　“너! 너! 내가 반드시, 너 잡아 죽일 거야. 빈말 아니야. 감옥에서 빛 한 줄기도 못 보게 해줄 거야!”

　“여긴 크라운 호텔이라는 걸, 인지해주십시오. H 모직 대표이신 희주님.”

　“이 호텔에 먼지 한 톨까지 샅샅이 뒤져서, 반드시 너! 감옥 보낸다. 내가!”

　열패감과 모멸감에 악다구니치는 희주의 꼬락서니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시원하게 결정타를 날렸다.

　[그에 따른 H그룹의 모든 지분과 H.I.E 지분은 내 딸인 홍 임수에게 상속된다. 내 뒤를 이을 회장은 홍 임수다. 찬란한 너의 미래를 위하여!]

　또랑또랑한 아버지의 목소리에 절망하는 희주가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어떻게! 어떻게…나한테…이래! 아니야. 분명히 잘못됐어! 아닐 거야. 내가 H그룹의 총수라고!”

　현실을 부정하는 희주의 귓가에 또랑또랑하게 저장된 아버지의 음성을 비수로 돌려줬다.

　[H 푸드의 만연된 부실 경영에 따른 H 그룹의 전반에 걸쳐 개편하다]

　희주는 돼지 멱따는 소리로 미치X 널뛰듯 뛰었다.

　“H 푸드는 내꺼야! 내가 대주주고, 친아빠한테 물려받은 내 회사야! 그걸, 먹겠다고. 어림도 없지. 내가 두 눈, 뜨고 뺏길 것 같아! 이XX야 십XX 죽일 XXX야”

　핏발이 선 눈으로 악다구니 치는 희주와 말 섞기도 싫은 나는 녹음을 재생했다.

　[그에 따라, 크라운 호텔, H 건설, H 상사와 합병한 H 인터내셔날 에너지 그룹으로 H.I.E 주지사로 상장한다]

　“내가 물었지. 동의할 수 있냐고?”

　“동의 못 해! 안 해. 절대로 빼 길 수 없어! 원래부터, 다 내꺼야. 다~ 죽여버릴 거야! 부숴버릴 거야.”

　[당연하지, 아버지의 뜻인데]

　"기억하지. 딴소리 못 하게, 녹음했다. 그리고 크라운 호텔 대표로서 말할게. 내 호텔에서! 바람과 함께 꺼져 줄래. 당장 나가라!”

　망연자실한 얼굴로 광녀처럼 웃던 희주가 갑자기 좀비처럼 내 손을 물어뜯었다.

　“아악!”

　바닥에 떨어진 내 핸드폰을 잽싸게 가로챈 희주가 던지고 발로 밟아 부셨다.

　“거짓말이야. 다 거짓말. 내가! 그 누구도 아닌, H 그룹의 회장 자리는 내꺼라고! 아빠도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나한테. 어릴 때부터. 엄마도!”

　희주의 광기 어린 괴성에 놀란 직원들이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그녀를 찍기 시작했다.

　호텔 직원의 소심한 복수를 응원하며, 은근슬쩍 눈을 감았다.

　제풀에 지쳤는지. 숨 고르던 희주가 자신을 찍고 있는 직원을 발견하고, 그녀의 머리채 잡고 흔들어댔다.

　“으악~놓으세요. 제발 놔주세요. 대표님.”

　“너 따위가 날 찍어! 벌레만도 못한 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호텔 직원이 몰래카메라를 찍어? 이건 영업방해죄로, 콩밥을 먹어야 정신 차리지! 이 버러지 같은 X들아.”

　바람에 힘없이 나부끼는 낙엽처럼, 희주의 손아귀에 잡힌 직원은 겁먹은 표정으로 애원했다.

　“살려주세요. 제발. 대표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울먹이는 직원을 아랑곳하지 않은 희주가 그녀를 질질 끌면서 폭언을 내뱉었다.

　“총지배인! 직원들 엉망으로 관리해 놓고, 감히 나한테 지껄여! 오늘부로, 니들 다~해고야! 퇴직금 받을 생각도 하지 마. 영업 손실로 싹 ~다 감옥 보낼 테니까.”

　날뛰는 희주의 꼬락서니를 두고 볼 수 없어, 손목을 잡고 소리쳤다.

　“그 손 놔! 당장! 내일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기 싫으면, 그 손 당장 놔! 경찰 불러요.”

　해고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발만 동동 구르는 직원들 대신해, 총대 매줄 총지배인에게 다그쳤다.

　“총지배인님, 크라운 호텔 대표로서! 말합니다. 앞으로 개찬 반 고객은 고객 같지 않은 것들은 안 받습니다."

　"내가 순순히 물러날 줄 알아! 주주들과 임원들이 다 내 편이야! 뭘 알고, 설쳐! 이 XXX야, 똘아이X아.”

　지랄탄처럼 씩씩거리는 희주를 밀치고, 우렁찬 목소리로 선포했다.

　"또, 내 직원에게 함부로 대하는 쓰레기도! 내 호텔에 한 발자국도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이게 나의 경영방침입니다. 이게 싫으며, 사표 내세요. 크라운 호텔 대표로서, 직원 여러분께 다시 지시합니다! 이 미친X을 호텔 밖으로 쫓아내세요.”

　“네. 대표님.”

　총지배인의 대답에 희주의 손과 발을 옭아맨 직원들이 번쩍 들어 끌고 나갔다.

　“야! 이거 안 놔! 내가 누굴 줄 알고! 이러고도, 너희들이 무사할 줄 알아! 홍 임수!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 다 쓸어버릴 거야. 두고 봐! 너 죽여버릴 거야.”

　처절하게 발버둥 치며 끌려나가는 희주를 보자, 애잔한 마음에 몇 마디로 대꾸했다.

　“그래. 네가 죽이지 않아도, 사람은 어차피 다 죽어. 괜히 힘 빼지 말고, 잘 가. 다시는 내 호텔에 오지 말고.”

　머리채 잡혀 겁에 질려, 넋을 잃고 앉아있는 직원에 다가갔다.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져주며 총배인에게 지시했다.

　“오늘 이분 조퇴시켜주세요,”

　행여 해고될까 싶어, 겁먹은 직원이 울먹이며 연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다시는 이런 일은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제발 해고만은”

　아무리 직장 생활이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고, 사과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해도.

　월급쟁이 노예로 살아가는 그 직원도, 홍 대리로 밥벌이하는 나한테도 이건 너무 참담했다.

　입에 풀칠한다고 벌벌 떨면서 사과하는 직원의 모습에서 비참한 내가 보였다. 그래서 울화가 더 치밀었다.

　“이름이 뭐예요?”

　“김이룸입니다. 대표님.”

　메마른 입술로 눈치 보는 직원에게 읊조리듯 지시했다.

　“이룸 씨가 미안하다고, 사과할 사람은 저도. 쫓겨 난 미친X도 아닙니다.”

　“…….”

　그저 침묵만이 살길이라고 믿는 직원의 얼굴을 보며, 나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을 해줬다.

　“바로, 이룸 씨. 자신입니다!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3일 연차로 이룸 씨, 자신이 다독여주세요. 물론 정신적 피해 보상으로 휴가비용도 제공될 것입니다. 100만 정도. 총지배인님이 알아서 처리해주세요.”

　“네. 대표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동의 물결에 젖은 직원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보고, 내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렀는지 실감했다.

　‘아~씨! 된장. 무조건 생까자. 그것만이 내 살길이다! 그래, 당장 대표도 되는 것도 아닌데.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자.’

　어색한 미소로 VVIP 홀 쪽에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기자, 오리 새끼처럼 직원들이 따라왔다.

　등 뒤로 느껴지는 무언의 압박감에 못 이겨 뒤돌아봤다.

　“왜, 이러시는지?”

　부담스러운 백화점 인사는 사절이라는 표정으로 총지배인에게 물었다.

　총지배인은 당연한 걸, 왜 묻냐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홍임수 대표님이시니까요.”

　한치에 의심도 없는 믿음이 충만한 총지배인의 표정에 섣불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네.”

　사이비 교주 같은 오싹한 기분에 도망치듯 열리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고개 숙여 인사하는 직원들에게 겸연쩍은 표정으로 눈인사다.

　닫히는 버튼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올라탄 총지배인이 호텔의 꼭대기 층에 버튼을 눌렀다.

　총지배인이 누른 버튼을 취소하고, 1층 버튼을 눌렀다.

　보란 듯이 영업 미소 무장한 총지배인이 호텔 꼭대기 층의 버튼을 다시 눌렀다.

　총지배인과 눈치 게임 하듯, 엘리베이터의 버튼 가지고 실랑이를 벌였다.

　참다못해, 내가 소리쳤다.

　“1. 1층에서 내립니다. 1층이라고요. 총. 지.배.인. 님.”

　총지배인답게 웃으며 협박했다.

　“대표님이 직접 대표님이시라고! 천명하셨기에”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거 같은 총지배인의 입담에 잡혀가기로 했다.

　“내 입으로 뱉었으니, 책임지라는 소리네요.

　“총지배인으로서 업무 보고해야 하는 점, 넓은 아량으로 헤아려주십시오. 대표님.”

　“그래서요, 날 어디로 데려가실 작정이신지? 설마, 날 잡아서 아버지한테 갖다 바치시고, 승진이라도 하시게요?”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지만. 저는 크라운 호텔의 총지배인으로서, 대표님의 라인을 잡을 생각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표님.”

　“눈물 나게 고맙네요. 총지배인님.”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숨을 몰아쉬자, 고개 숙인 총지배인은 대단한 비밀을 발설하는 것처럼, 조용히 속삭였다.

　“참고로, H 그룹의 회장님께서는 이미 가셨습니다.”

　“아~예. 좋은 정보네요. 아주~감사드립니다. 하하하.”

　아재 개그에 진저리치는 얼굴로 엘리베이터에 내렸다. 뒤따라 내린 총지배인은 빠른 걸음을 선보이며, 대표실 사무실 문을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크라운 호텔의 사무실답게. 탁 뜨인 전망과 대표의 위엄을 과시하듯, 쓸모없이 널따란 책상이 날 사로잡았다.

　전체적으로 모던한 이미지만, 묘하게 권위적인 인테리어가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월급 노예로 길들어진 탓에 멋있다는 느낌보다는 대표실까지 끌려가 시말서를 제출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착잡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둘러보자, 이때다 싶은 총지배인은 조심스럽게 입을 떼다.

　“대표님의 취향에 맞혀, 리모델링하겠습니다. 특별히 선호하는 브랜드 가구나, 소품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대표님.”

　“내 발등을 내가 찍었지. 하~, 총지배인님.”

　총지배인이 촘촘히도 쳐놓은 거미줄에 걸린 나는 오기 부리듯, 어깃장을 놨다.

　“잘난 크라운 대표실도 구경했겠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출근하지 않을 텐데요. 신경 쓰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