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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51구역
작가 : 바스트록
작품등록일 : 2022.1.1

화성. 군인. 그리고 그들. 돌아갈 수 없는 병사들을 엄습하는 미지의 감염체와 그 속에 얽힌 음모. SF 아포칼립스 미스터리.

 
12화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작성일 : 22-01-02 08:45     조회 : 166     추천 : 0     분량 : 5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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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우리는 어기적거리며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들 MBS 혹은 우주복을 입은 채라 속도가 마음처럼 붙지는 않았다.

 

  나는 내 뒤를 숨 가쁘게 따라오는 한수아의 손을 붙잡고, 혹여나 그녀가 낙오되지 않도록 이끌었다.

 

 “잘 잡고 있어요, 쓰러지면 제가 업어서라도 가겠습니다.”

 

  내 손에 이끌린 그녀가 벅찬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하아… 글쎄요. 저 무거울걸요. 아, 이미 들켰구나.”

 

 아직 농담을 할 정도의 여유는 있어 보여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그녀는 어딘가 걸리는 게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람이 더욱 거세졌다. 우리는 이미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리고 있었음에도 거대한 폭풍이 다가오는 속도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한밤중의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유일한 인도자인, MBS가 뿜어내는 빛줄기에 모래와 작은 돌멩이들이 빗발치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그것들이 슈트를 때리는 빈도와 그 세기가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매서워졌다.

 

 ‘이건 위험하겠는데.’

 

  거대한 입으로 우리를 집어삼키려 들고 있는, 사실 혓바닥 정도는 이미 우리에게 닿은 이 모래폭풍의 최고 속도는 시속 190km였다.

 

  그 말은 우리가 뛰는 속도가 조금만 느려지거나 모래폭풍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속도가 조금이라도 빨라진다면, 우리는 총알에 가까운 속도까지 가속되는 돌조각에 우주복이 관통당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램이 무색하게 모래폭풍은 실제로 더욱 빠르게 다가왔다.

 

  더 이상 앞을 달리고 있는 이새안과 양준혁 그리고 최 중위의 모습이 날리는 흙먼지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지금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내 MBS 슈트의 빛을 받은 희뿌연 먼지들과 마찬가지로 조금 앞에서 줄줄이 반짝이는 희뿌연 먼지 덩이 세 개, 그리고 맞잡고 있는 한수아의 손 정도였다.

 

 “내 불빛을 따라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최 중위가 소리쳤다. 모래폭풍이 거센 탓인지 헬멧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지직 거렸다.

 

  아마도 그의 위치는, 빛을 뿜는 먼지 덩이들 중 가장 앞에 있는 희미한 먼지덩이일 터였다.

 

 “조금만 더 힘내요!”

 

  그 뒤의 먼지 덩이인 이새안이 말했다.

 

 “지구의 미세먼지는 일도 아니었군.”

 

  이새안의 뒤, 내 앞의 양준혁이 말했다.

 최 중위의 말과는 다르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우주선까지는 아직 4km나 남아있던 것이다.

 

  4km는 우주복을 입은 채로 뛰면 한 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심지어 모래폭풍 때문에 균형을 잡고 서있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는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의 상태는 한 시간은커녕 수 십분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시야는 점점 흐려졌고 한 발자국을 내디딜 때 마다 다음 걸음이 휘청거렸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조금만.”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던 최 중위는 우리에게 절망감을 넘기지 않기 위해 애써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 분이 더 지나자, 우리는 이대로라면 우주선에 다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더 이상… 못 가겠어요.”

 

  모두가 느끼고 있던 절망감을 처음 말로 옮긴 건 한수아였다.

 맞잡은 한수아의 손에 힘이 빠졌다. 동시에, 바람이 싣고 온 모래에 다리가 깊숙이 빠졌다.

 

  잠깐 동안 잊고 있던 죽음의 냄새가 느껴졌다. 허무한 엔딩이었다.

 

 “손, 놓지 마세요. 업고라도 가겠다고 했잖습니까.”

 

  나는 그럼에도 한수아의 손을 놓지 않으려 손에 힘을 주었다.

 그게 내가 화성이라는 거대한 재앙에게 던질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었다.

 

  머리와 가슴이 시큰했다. 이렇게 누구에게도 발견되는 일 없는 무연고 시체가 되어, 붉은 모래더미에 묻히고 마는 것일까.

 

 

  나를 위로해준 사람도, 진심을 터놓은 동료조차도 이곳에서 빼낼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적인 무력감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크아아악!!!”

 

 양준혁의 비명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양준혁!”

 

 “양준혁, 대답해라!”

 

  나와 최 중위가 그를 불러봤지만 양준혁의 마이크에서는 그 이후로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귀가 아플 정도의 바람소리만이 그의 목소리를 대신했다.

 

  나는 바닥을 더듬으며 앞으로 그에게로 나아갔다. 결국 모두 죽을 운명이라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한수아도 그것에 동의했는지 아무 말 없이 기어가듯 하며 나를 따라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헬멧 바이저에 금이 간 채로 얼굴을 부여잡고 있는 양준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변은 온통 날카로운 모래바람에 휩싸여 있었기에 그의 헬멧 바이저 부분에서 나오는 빛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를 찾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봐, 괜찮아?”

 

 “!!!!”

 

 “공기가 새어나가고 있어요!”

 

  그는 대답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슈트 내부에서 공기가 빠르게 새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의 바이저 틈새를 매우기 위해, 등에 매어진 탈부착식 가방에서 지혈용 수지 스프레이를 꺼내는 동안 한수아는 양준혁의 슈트 틈새를 양손으로 눌렀다.

 

 “조금만 버텨요!”

 

 “!!!!!”

 

  나는 스프레이를 가방에서 꺼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대신에 가방을 닫기도 전에, 안에 들어있던 다른 물건들이 모두 모래폭풍에 휩쓸려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재빨리 모래폭풍을 등지고 양준혁의 바이저에 스프레이를 뿌렸다. 하지만 스프레이에서 뿜어져 나온 수지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이런 젠장!”

 

  나는 아예 내 손에 스프레이를 묻히고 그것을 양준혁의 헬멧 바이저에 문댔다. 수지는 급속도로 굳어 틈새를 매웠다. 하마터면 내 손까지 같이 붙을 뻔했다.

 

 “커헉… 허억.”

 

  공기가 다시 채워지기 시작했는지 양준혁이 쉰 목소리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설 수 있겠어?”

 

  모래폭풍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그를 억지로라도 움직이게 해야만 했다.

 

 “큭… 알았어 일어날게, 일어난다고.”

 

 양준혁이 휘청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나는 한 손으로는 양준혁을, 다른 한 손으로는 한수아를 붙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한 발자국이 버거웠다.

 

  이새안과 최 중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전파가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모두 죽는 건가.’

 

  솔직히 무서웠다. 아무래도 느릿느릿 한 걸음으로 폭풍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더 이상 강한 척을 하는 것도 한계였다. 적어도 마무리는 짓고 싶었다.

 

 “미안, 양준혁. 미안합니다 한수아씨 아무래도….”

 

  그때였다.

 정면에서 폭이 8m는 되어 보이는 벽이 다가왔다. 우리가 가까워진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바로 앞까지 다가오더니 벽면에 달린 문을 아래로 열었다. 문짝이 발판이 되어 우리 발밑까지 내려왔고, 그 발판 위에 최 중위와 이새안이 우리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제 손을 잡아요 서준성 일병님!!!”

 

 “조금만 가까이 와!”

 

  내 목덜미를 움켜잡던 죽음의 기운이 사라졌다.

 나는 남는 손이 없었기에, 한수아와 양준혁이 각각 최 중위와 이새안의 손을 붙잡고 벽 안으로 올라섰다.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문이 닫혔다. 문 안쪽에는 우리와 함께, 엄청난 양의 모래와 돌조각이 휩쓸려 들어와 있었다.

 

 “살았다….”

 

 안도감에 나도 모르게 본심이 나왔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이새안이 때마침 여길 지나던 이동식 기지의 전파를 잡아낸 덕분에 살아났다. 보이지도 않는 데다가 통신까지 끊겨서 하마터면 못 찾을 뻔했어.”

 

  여기는 우리가 목적지로 하던 우주선은 아닌 모양이었다. 다만 우리 앞에 있는 에어로크의 크기만 보면 이곳은 우주선만큼 넓어 보였다.

 

  우리는 모래가 쌓인 입구를 넘어 에어로크로 들어서려 했다. 그러나 양준혁은 자리에 주저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상태는 어딘가 의심스러웠다. 우리는 그것이 공기가 일시적으로 부족해서 생긴 어지럼증 정도라고 생각했다.

 

 “쿨럭… 다행이야. 나 살리겠다고 다른 놈들까지 죽었으면 졸라게 찝찝했을 태니.”

 

  양준혁이 부르르 떨며 말했다. 나는 그의 농담에 웃어주려다가,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무릎을 꿇고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양준혁 일병님! 어디 다치신 게…!”

 

 이새안이 몸을 굽혀 다가왔다.

 

 “빨리 의무실로 옮겨!”

 

  최 중위가 양준혁의 등 뒤로 다가가 그의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집어넣으며 외쳤다.

 

 “쿨럭! 컥!… 어이 동생! 그거 치워.”

 

 양준혁이 바이저에 피를 토했다.

 

 “양준혁! 농담할 시간 없다!”

 

  그때였다.

 

 “…이럴 수가.”

 

  그의 부상을 찾던 한수아가 까무러치며 주저앉았다. 양준혁의 복부에는 커다랗고 날카로운 바위가 깊숙이 박혀있었다.

 

  그것은 뺄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 가장 긴 곳의 지름이 30cm는 되어 보였다.

 

 “가압하면 바로 죽을 거야…. 에어로크를 통과할 수는 없어. 뭐, 이대로 있어도 길어봐야 수 분이지만.”

 

  그는 환자의 죽음을 알리는 냉혈한 의사처럼 자신에게 닥쳐온 죽음을 담담하게 말했다.

 

 “그럴 수가….”

 

 “안 돼요, 양준혁 일병님…흐흑….”

 

  양준혁은 붉어진 입가로 시익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는 마치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 같았다.

 

 “어이 어리바리, 울지 마라. 맥주는 장례식에서 살 테니.”

 

 “그런 게 아니잖아요!!…”

 

  이새안은 눈물 가득 맺힌 얼굴로 화를 냈다.

 최 중위는 양준혁을 옮기려던 자세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이 최제호 자책하지 마라. 네 잘못 아니야 동생. … 쿨럭!”

 

 -비상. 비상. 사용자의 심박 수치가 위험 단계입니다.

 

  양준혁의 MBS에서 경고 메시지가 크게 재생되었다.

 

 “나도 잘 알아 조용히 해……. 최 중위, 다른 애들은 모두 살려서 돌려보내… 할 수 있지?”

 

 최 중위는 자신의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약속하지….”

 

  말을 잇는 양준혁의 눈가가 파래졌다. 죽음의 냄새였다.

 

 “준성, 그리고 한수아라고 했었나? 살려줘서 고맙다. 내가 만든 우주선 제법 쓸만하고 튼튼한 놈이야, 그거 타고 지구로… 무사히….”

 

 “…양준혁 씨는 마지막까지 멋진 사람이었다고 지구에 전할게요.”

 

  한수아가 양준혁의 흐려지는 말을 대신하여, 그의 안녕을 빌었다.

 

  결국 양준혁은 말을 끝맺지 못했지만. 그의 표정은 평온했다.

 한수아와 이새안은 한동안 자리에서 울었다.

 

  근 며칠 동안 죽음에 익숙해졌다. 그랬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죽음은 모두 같은 정도의 아픔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 감염자를 죽였을 때에는 약간의 죄책감이 느껴졌다. 죽은 연구자들과 병사들을 볼 때는 나 자신도 그렇게 될까 두려웠다. 연민은 그다음이었다.

 

 

  하 소령이 남겨졌을 때에는 존경심과 상실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양준혁이 죽었을 때가 돼서야 나는 순수한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앓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그의 얼굴이 평온한 만큼 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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