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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청조만리성
작가 : 수담.옥
작품등록일 : 201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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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말, 폭정의 왕도를 타도하고자 뭇 영웅이 저마다 일통 강호를 외치며 궐기한다.
이로써 천하는 사국쟁패의 각축장이 되니. 난세를 평정할 진정한 영웅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제 4 화
작성일 : 16-07-14 10:10     조회 : 601     추천 : 0     분량 : 6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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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철의 성행위가 절정을 향할 때 세 사람이 울었다.

 남철의 밑에 깔린 그녀가 울었으며, 침상 아래의 다섯 살 임주원이 그녀의 울음에 덩달아 울었고, 또 그 방 밖에서 서성이던 철우가 소리 죽여 울었다.

 “이제 널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 네가 불행하게 살고 있었다면 다시 거둘 생각도 있었으나, 오늘의 네 모습을 보니 더는 내가 필요없겠구나. 하면, 마지막으로 아이나 한번 안아보고 가겠다.”

 행위 이후 남철이 그녀에게 한 말이었다. 그녀는 그때 남철이 다시 찾아오지 않겠다는 그 말에 안도하고 있었다.

 “그놈 참 튼튼하게 자랐구나.”

 남철은 임주원을 안고 방 안을 한 바퀴 걸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시선이 잠시 아이에게 떨어졌을 때 약지와 중지, 검지로 아이의 척추 부분을 무자비하게 찔렀다.

 그리고 아이가 울자 그는 아이를 그녀에게 건네주며 앞으로 잘 살아가란 말을 남기곤 화청루를 떠났다.

 그녀는 남철의 행위를 짐작도 못했다. 혹여 보았다고 해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마도 문파의 독랄한 점혈수법을 알기엔 그녀의 강호 견문이 너무나 짧았다.

 삼첩중인지(三貼重印指).

 남철은 혹여 그 아이의 미래가 문제될까 염려해 사문의 점혈수법으로 기맥을 막아놓았다.

 즉각 해혈한다면 문제가 없으나 시일이 지나서 아이의 뼈와 몸이 굳어버린다면 그땐 상승의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임자석의 유일한 핏줄.

 임주원의 생은 그렇게 처음부터 뒤틀리고 있었다.

 

 

 

 第二章 잠룡(潛龍)의 나날

 

 

 

 세월은 무상(無常)하다. 열흘 붉은 꽃 없다는 말이 있듯 절대의 권력도 무적의 무력도 흐르는 이 세월 앞에는 모두 허무의 자취만 남긴다.

 대륙 통일의 시작을 알린 진시황도 그렇게 사라졌고, 동서양을 제패한 철목진의 초원전사도 그렇게 무상한 세월의 흐름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무림 인생도 예외가 아니다. 제아무리 천하제일의 고수라도 백 년 무적을 지속할 수는 없다. 따지자면 오십 년도 사수하기 버겁다.

 무인은 나이를 먹을수록 기력이 약해지며 더불어 가슴 뜨겁던 일검의 의지가 식어가는 것이다.

 노년의 고수는 지혜롭다. 그들은 퇴장할 시기를 안다. 그래서 불명예의 전적을 남기기 전에 이를 먼저 알고 스스로 은거를 한다.

 말년에 무당산에 은거한 장삼봉의 경우가 그랬고, 불패의 무인 대독검 독고휴가 소리 소문 없이 강호 활동을 접은 것도 바로 그래서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세월의 무상함만이 아닌, 강호무림에서 벌어진 어떤 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전격적인 세대교체가 단행될 때가 있다.

 대륙을 통일한 지상 최강의 무력 단체 무불련이 둘로 갈라지면서 발발한 전쟁, 역대 무림 최전성기에 벌어진 전날의 동서대전이 바로 그랬다.

 십주, 십제, 십병, 십마, 십정으로 대변되던 일당천의 고수들이 그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 전장의 고혼이 되었다.

 살아남은 존재도 있으나, 그들은 전범이란 지울 수 없는 멍에를 안고 강호에서 쓸쓸히 도태됐다.

 당시의 절대 초인 십제. 그 십제 중에서 생존한 북도제, 독제, 장제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종전 후, 얼마 되지 않아 십제란 명호를 강호에 스스로 반납했다. 동서대전의 실질적 승자인 남화무제, 즉 남무제와 같은 명호를 공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비정한 면도 있지만 강호는 이를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삼제는 삼로(三老)로 명성이 격하되었고, 그들은 그 후로 각각의 텃밭에서 자숙하며 말년을 보냈다.

 명성 찬란하던 십제가 이런 생을 영위했거늘 다른 오십조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소림사를 비롯해 무당파, 화산파 등, 구대정파의 장문인들이 전부 교체됐으며, 오대세가, 마도십대문파 등 유수의 강호 거파들이 줄을 지어 수장을 바꾸었다.

 전격적인 세대교체. 이런 물갈이는 강호무림 전체에 파생되었고, 그리하여 종전 이십 년 무렵부터는 신무림 서열이 새로이 정립되기에 이르렀다.

 신무림 서열의 선두에 올라 있는 초인들은 당연히 전날의 오십조를 물리치고 현 시대의 일검 주자로 우뚝 선 중주오성(中主五星)이다.

 

 동검존(東劍尊) 유정.

 서독후(西獨后) 독고진.

 남무제(南武帝) 장소열.

 북천작(北天爵) 야달.

 중마불(中摩佛) 능와.

 

 특이한 점이라면, 삼로가 ‘제’라는 명호를 반납했듯 남무제를 제외한 중주오검 역시 아무도 ‘제’라는 명호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들꽃무인으로 출발해 무림 일인자에 올라선 남무제에게 보내는 강호인의 약속 같은 예의이다.

 앞으로도 남무제를 극복하지 않는 이상 어느 누구도 진정한 검제 선언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중주오성 다음으로는 무림육기, 무림칠룡, 무림십삼비로 정립된다.

 무림육기와 무림칠룡은 동서전란에서 전대의 거마들과 맞서 싸우며 일약 이름을 드날린 십삼 인의 영웅을 말함이다.

 육기는 주로 대문파의 후예들이고, 칠룡은 대부분 들꽃무인 출신들이다.

 무림십삼비는 전자의 영웅들과 조금 다르게 구분된다.

 이들은 동서전란과 그다지 연관이 없는, 즉 종전 십 년을 기점으로 무림에 출도한 신진고수들인 것이다.

 십삼비란 칭호는 동정호 일검쟁위에서 초운학을 꺾고 동검존에 올라선 유정의 입에서 처음 거론됐다.

 “동서대전의 여파로 무림은 이십 년도 넘게 퇴보했다. 나는 참전 용사로 무림을 되살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는 바, 이에 격년에 한 차례씩 신진 무림인들이 총망라된 신무쟁패를 열어 강호무림에 활기를 주고자 한다. 신무쟁패의 승자는 비(丕)란 영광스런 칭호를 받을 것이고, 이 쟁패는 이후로 십삼 인의 영웅이 나올 때까지 중단없이 진행될 것이다. 십삼 인의 신진이 완성되면 그땐 무림육기, 무림칠룡과 진검 대결을 벌여 최종 오 인을 선발하고, 그 오 인은 또 중주오성과 일검쟁위에서 최종 승부를 가리도록 하겠다.”

 육기와 칠룡은 모두 열셋.

 그들과 무림십삼비의 격돌.

 그리고 중주오성과의 일검쟁위.

 강호는 동검존의 이 선언을 열화와 같이 지지했다.

 그리하여 신무쟁패가 벌어졌고, 이후로 현재까지 아홉 번의 쟁패에서 구 인의 극강 고수 무림구비가 나왔다.

 남은 영웅은 넷.

 이 넷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강호 거파의 무인들은 오늘도 내일도 사문의 연공실에서, 또는 심심산천에서 일검 수련에 맹렬 전진하고 있다.

 강호무림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측면에서 동검존의 이런 신무쟁패 선언은 십 할 그 이상의 효력을 올렸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한편으로 오성, 육기, 칠룡, 십삼비, 이렇게 나름 정립된 서열 구도가 있긴 해도 이런 것은 절대적으로 신봉할 게 못 된다.

 그 누가 알랴, 전날의 남무제처럼 어느 날 문득 무명의 신진고수가 강호에 출현해 이전의 무인들을 일약 고루한 세대로 도태시켜 버릴지.

 기실, 천변만화하는 강호에서 완전한 세대교체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고 보면 인위적 세대교체, 이 또한 무상한 세월의 여파이며 절대적 무력을 맹신하는 어리석은 무림인들에게 보내는 세월의 준엄한 경고이기도 하다.

 절대란 없다고, 영원이란 없다고.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장강의 뒷 물결은 앞 물결을 밀어낸다.

 이건 세상의 이치이며, 변하지 않는 역사의 진리이다.

 임자석의 손자이자 임하정의 아들.

 임주원의 치열한 삶이 또한 그렇다.

 

 ***

 

 어미의 인생이 그러했듯 임주원의 삶도 어린 시절부터 순탄하지 못했다. 당장 어미가 지어준 그의 이름부터가 그러했다.

 주(胄). 원(怨).

 주씨를 원망한다. 주씨는 너의 원수다.

 임주원이 글을 알 일곱 살 무렵 임하정은 그런 이름의 뜻을 아들에게 말해주었다.

 글자의 뜻은 알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아직은 어린 임주원이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렇게 말할 때의 비장했던 어미의 표정에서 임주원은 일곱 살 어린아이가 감내하기 어려운 막연한 부담감을 느껴야 했다.

 아들의 미래에 그 자신은 물론이요, 임씨 가문의 운명을 몽땅 건 임하정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녀가 자식에게 쏟아 부은 열정은 가히 눈물겹도록 대단하였다.

 갓난아이 때도 그러했듯 그녀는 재산을 쏟아 부어 영약을 구했고, 천금을 들여 능력있는 학사와 무인을 아이의 은사로 맞이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녀의 그런 노력은 임주원의 미래에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영약의 태반은 별로 효력이 없는 가짜였고, 천금을 들여 맞이한 은사들은 대개 그녀의 돈을 보고 접근한 이류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임주원 자신에게 있었다. 재능은 분명히 뛰어났다.

 성실함도 남들에 못지않았다. 무인이 되든 학자가 되든 기본 소질은 충분히 갖춘 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무엇을 하든 발전이 없었다. 특히 무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그의 그런 단점은 여실히 드러났다.

 그녀는 아들이 일당백의 용사가 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훗날 훌륭한 장군이 되어 폭정을 일삼는 주씨 제국을 처단해 주기를 진실로 소원하였다.

 그런 바람으로 그녀는 이름난 일급무인들을 청루로 초청해 임주원을 맡겼다. 그 과정에서 많은 돈이 들어갔음은 물론이다.

 가짜들이 태반이지만 개중에는 진짜 일류무인도 있었다. 산서의 오금박도(五金搏刀) 척호충은 그중 진짜 중의 진짜라 할 수 있는 실력자였다.

 그는 임주원의 자질을 첫눈에 알아보고는 임하정이 바치는 재물에 상관없이 제자로 맞이하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제자로 맞이한 삼 개월 후 그는 임주원을 다시 그녀에게 돌려보냈다.

 

 천생이 무골인 데 반해 아쉽게도 체력과 이해도가 뒤떨어집니다.

 아이가 나름으로 노력을 합니다만 이다음에 큰 무인이 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무인보다는 상인이 더 어울릴 것 같으니 차라리 일찌감치 셈을 가르치십시오.

 

 척호충이 그녀에게 보낸 서신이었다.

 그녀는 그때 척호충이 내린 판단을 불신했다. 아들에게 건 희망이 그만큼 컸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 후 이름난 문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제자로 맞기 싫다는 그들에게 막대한 돈을 풀어 임주원을 맡겼다.

 결과는 매번 같았다. 임주원은 어느 문파를 가든 삼 개월을 넘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그녀는 점점 아들의 인생에 회의를 품었고, 그런 회의는 아들을 대하는 냉담으로 이어져 갔다.

 어느 날, 한 무인이 그녀에게 이런 말을 했다.

 “유수의 문파를 찾아갈 것이 아니라 또래들이 즐비한 무관에 보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때로는 경쟁심이 아이의 숨은 재능을 일으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그녀는 그 길로 임주원을 합작에서 백여 리 떨어진 이화촌의 학관, 감숙 정통의 명문 용무학관으로 보냈다.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고자 나중에는 아예 합작에서 이화촌으로 거주지를 옮겨 버렸다.

 그렇게 학관 생활 이 년.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지만 임주원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동기생들이 용무학관에서 중급반으로 진학할 때 임주원은 여전히 초급반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바보로다, 바보! 사지육신이 멀쩡한 바보 중에 상 바보로다! 임씨 가문에 어찌 저런 바보가 태어났을꼬. 이게 다 사내의 씨를 잘못 택한 어미의 업보로다, 업보!”

 임주원이 열두 살 되던 해 임하정은 철우와 아들 앞에서 통곡을 했다.

 그 후로 그녀는 아들과는 물론이요, 철우와도 일절 같은 자리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 나중에는 아예 방에 칩거해 사회 생활마저 하지 않았다.

 그녀가 실의에 빠져 가계를 돌보지 않자 그 피해가 고스란히 가족 생활로 돌아왔다.

 그녀의 방관에 화청루 기녀들이 너도나도 기방을 옮겼고, 그 탓에 화청루는 급속히 쇠락해 갔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 그 무렵 그녀는 상심이 하도 깊어 병석에 누워버렸다.

 화청루를 팔고 그도 모자라 남은 재산을 털어 그녀의 병구완에 몽땅 쏟아 부었지만, 원체 마음에서 얻은 병이 커 백약이 무효였다.

 병석에 누운 지 육 개월.

 합작 인근에서 현금 동원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던 그녀의 재산이 모두 동났다. 당연히 철우와 임주원의 삶도 고달파질 수밖에 없었다.

 임주원은 당장 그 달의 학관비조차 낼 형편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두 달 동안 학관비를 내지 못했다. 그 역시도 그런 학관에 가고픈 생각이 그다지 없었다. 무능력한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병을 얻었다.

 그는 학문이고 수련이고 다 무의미하게 생각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관에 가지 않고 외산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그는 생애 처음으로 화난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우우우, 이놈! 아무리 아비가 못났기로 어찌 네 멋대로 학관을 그만둘 생각을 하느냐! 내일부터 다시 학관으로 나가거라! 나가서 네 불쌍한 어미를 생각해 열심히 공부를 하고 또 수련하거라!”

 십삼 년 전, 임하정의 권유로 글을 깨친 철우는 예전의 그 열 살 지능의 저능아가 아니었다.

 워낙 과묵해 평상시에 그런 점을 내색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철우는 다음날부터 다시 예전처럼 소, 돼지를 잡는 백정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일은 고되지만 그는 이제야 가장의 역할을 한다는 생각에서인지 활력이 넘쳤다.

 임주원은 그런 아비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어미만 있던 그의 가슴에 아비란 존재가 비로소 스며들고 있었다. 그는 그게 싫지 않았다.

 그리고 아비의 원대로, 아니, 한평생 그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불쌍한 어미를 위해 학관으로 나갔다.

 자질이 있거나 말거나 이제 다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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