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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마르카
작가 : JakeCello
작품등록일 : 2021.12.30

변방에 있는 작은 마을 ‘누주’의 대장장이 ‘마르카’가 마을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수도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2. 원탁
작성일 : 21-12-30 23:44     조회 : 76     추천 : 0     분량 : 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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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나무 의자에 앉은 흰 머리만 군데군데 남은 노인이 주전자를 기울여 자기 앞에 유백색 사기잔을 채우고 옆으로 주전자를 돌렸다. 그들은 잔에 담긴 물속을 떠다니는 흙 알갱이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처음 주전자를 기울였던 노인이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그는 케루비니라 불린다.

 “셈해 보니, 마르카가 요구한 노을차 한잔은 작년보다 더 큰 값어치를 한다오. 해가 거듭될수록 찻잎 수확이 줄고 있소. 여러분 몰래 밤마다 밭을 살피는 걸 용서하시오. 땅은 마르고 도적 떼는 밭에 들어와 부리를 쪼아대니 남은 생 불안해서 원.”

 안에서 가장 덩치 큰 노파가 주먹으로 둥근 탁자를 내리쳤다. 탁자에 둘러앉은 이들의 잔이 흔들렸다. 컵 바닥에 깔린 흙 알갱이가 살짝 떠올라 물을 흐렸다.

 “빌어먹을, 왜 제 동생을 죽인 거요? 하필이면 발미를. 난 발미가 우리 원로에 언제든 참여해도 좋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해왔지. 참 영특했고, 우리 마을 첫 의사였는데. 처참한 모양으로 땅에 묻힐 줄이야. 교수형이 아니라 그놈이 벌인 방식대로 갚아줘야 한다니까!”

 그 옆에 그중에 가장 앳된 원로 네오르가 어깨를 움츠린 채 조심스럽게 물로 입술을 적실만큼 한 모금 마셨다. 발언하기 전 물을 입에 대야 하는 회의 전통을 무시한 노파를 몰래 흘겨보았다.

 “한날한시에 한 배에서 나왔으니 누가 형이고 동생인지 부르기 나름이지요. 그들의 어미는 이름으로만 아들들을 구분했어요. 사달이 나고 나서 내내 푸줏간에서 고기 손질하느라 어느 자식도 보고 있지 않지만요. 장례식도 사형식도 고개를 들어 보려 하지 않지요. 듣자 하니 그분도 영문을 모른다죠. 아니, 영문을 물을 수 없었을까요? 우리는 이 불쌍한 어머니를 못 본 채 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게다가 우리는 아직 겨우내 지낼 수확량은 기대할 수 있지 않나…….”

 눈, 코만 겨우 드러나고 나머지는 수염으로 뒤덮인 대머리 남자가 빈 잔을 자기 머리 위로 뒤집어 보였다. 물 한 방울이 정수리에 떨어졌다. 그는 물기에 젖은 수염을 손바닥으로 훔치고 잔을 책상에 뒤집어 놓았다.

 “이빨로 흙 씹는 짓은 도통 적응 안 돼. 잇몸 더럽게 간지럽군. 자, 다 비웠으니 이 기회에 다 털어봅시다. 다 어느 대에서 내려왔는지 모를 전통탓 하고 싶지 않으냐 이 말이지. 사형수가 죽기 전 망할 소원을 뱉으면 들어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저주가 내린다. 이게 무슨 전통인지, 지랄인지, 법인지. 인정머리 없단 비난을 듣고 싶지 않은 건지, 정체 모를 화를 입기 싫단 건지. 아이 적부터 대머리에 수염쟁이로 살아온 나더러 무슨 저주를 받았냐고 주둥이 놀리는 놈들도 많았는데, 이 주먹 맛 보고도 그 따위 소리 다시 내뱉는 놈들은 없었소. 자, 그만 쉬쉬하고 내 손가락 좀 보슈, 어딜 가리키나. 저 권리만 따지는 사형수? 아니, 우리 적들? 주인들? 전혀. 우리 가족, 우리 마을 사람들이요. 저들이 한겨울 무사히 보내려면 사형수의 소원이나 저주 따위 무시할 줄도 알아야지!”

 원탁을 둘러싼 다른 원로들도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탰고, 한 사람씩 내뱉는 언성마다 긴장감이 붙어 나왔다.

 “나로부터 고조부 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시오. 그럼 어느 사형수의 조소 탓에 그 해 차 농사를 망쳤다고 답하리다. 밭에 구덩이가 파헤쳐 있고 꽃 뿌리가 모두 잘려 나갔다는 말도 잊지 않겠소. 물론 그 친구도 죽기 전에 눈물로 후회했지. 정말 자기 말대로 될지 몰랐다고. 심지어 사형 날 전에. 여러분이 궁금해 하실까 봐 먼저 알려드리자면, 당대 주인들이 찻잎을 후한 값에 사기로 했으나 우리에게 큰 실망만 거두게 했지.”

 “염병하네! 새 주인이랍시고 세 번째로 점령한 놈들이 돈 대신 끌고 온 새 탓은 않고?! 날지 못 하고 두 다리로 달리는 그 놈, 그 희한한 종자가 땅굴 파서 뿌리만 쏙 갉아 먹었잖아! 마을 밖으로 내쫓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거 나도 먼저 알려드릴게. 하이고, 찻잎을 후한 값에 쳐준다고? 우리 차가 제값 받은 지는 얼마 되지도 않았어, 이 친구야!”

 이 마을에서만 노을차가 생산되는 바람에 이 지경까지 왔다, 엄밀히 말해 진짜 저주는 이 환경이라 탓하는 이도 나왔다. 반면에 모든 주인과 노획꾼들이 찻잎을 노리는 건 아니며, 실제로 차를 음미하기 위해 탐하는 무리는 많지 않았고 비료나 베개 속을 채우는 용도로 거두어가는 무식쟁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원로들도 있었다. 진정한 노을차의 미덕과 가치를 알아주는 주인은 지금 주인뿐이란 목소리도 들렸다. 내내 듣던 케루비니가 찻잔을 탁자에 몇 번이나 내려치고 나서야 목소리가 차차 잦아들었다.

 “곧 해가 지니 슬슬 정리해야지요. 이어서 눈도 다가오고요. 우리 마을이야 겨울이라도 눈이 쌓이지 않으나, 대부분 지역은 냉혹해집니다. 그래서 유독 이 즈음이면 적과 주인이 온기를 찾으러 이 작은 사막을 찾아오지요. 곧 겨울이고, 새로운 주인이나 적을 자칭하는 이들이 들어올지도 모르고. 더불어 말해, 그간 야만스러운 선조가 반성한 덕분에 본받을 만한 선례가 내려왔습니다. 덕분에 우리 원로들이 최대한 원로회의에서만이라도 주먹을 휘두르지 않고 논의하는 형태로 발전했겠지요. 다만 잊어선 안 되는 게 하나 있으니 머지않은 과거에 우리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겨우 억누르고 반성하는 일들도 있다는 걸요. 한때 이 사형수의 소송이라는 제도를 악용하느라 일부러 목숨을 걸고 죄를 짓고, 상벌을 모두 취하려는 이들로 마을이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그런데도 마을 전체의 명줄을 놓고 흥정하는 이는 없었으니. 이 결정이 선례로 남을 테지요. 따라서 저는 마르카가 내건 소송을…….”

 마침 밖에서 누가 문을 세게 두드리며 원로들을 불렀다. 노인의 허락을 받고 네오르가 문밖을 향해 들어오라고 지시했다. 소년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와 말을 꺼내려 했지만 마을회관의 규칙이 떠올라 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회의를 방해받아 성이 난 원로가 소년에게 그냥 말하라고 소리쳤으나 꼼짝하지 않았다. 젊은 원로가 천장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회의하면서 한 번도 입에 대지 않은 노파의 찻잔을 집어 소년에게 내밀었다.

 “마시거라. 마셔도 돼.”

 소년이 젊은 원로에게 다가가 찻잔을 건네받고 손을 떨며 잔을 들이켰다. 잔을 다 비우고 손등으로 입가를 닦고 나서 소년이 소리쳤다.

 “적들이 쳐들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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