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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불행한 당신을 위하여
작가 : 김다윤
작품등록일 : 2021.12.28

성장물, 드라마, 판타지 요소가 섞인 현대 사건물, 여주 판타지, 워맨스 요소 있음, 남주...있긴있음

"이다온"
누가 들어도 뜻을 유추할 수 있을 만큼 뻔한 이름이다.
‘따뜻한 사람이 되어라.’
그래도 그는 그 이름이 퍽 맘에 들었다. 성, 이름. 모두 엄마가 만든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그 이름을 불러본다. 우울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그런 일상이었다. 어느 날 현관문 바깥에 있는 붉은 책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불행한 당신을 위하여."

누군가를 불행하게 한 자를 처벌할 수 있는 책을 손에 넣은 다온은 여러 사건에 휘말리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 간다. 어느 날 자신의 복수를 할 수 있게 될 그 날을 위하여.

친구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2. 피해자 구현아 (1)
작성일 : 21-12-28 11:42     조회 : 197     추천 : 0     분량 : 8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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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악!

 

  다온은 자신이 비명을 입으로 내뱉었던가, 아니었나 헷갈렸다. 순식간에 몸이 어딘가에 빨려드는 느낌에 다온은 정신이 쏙 빠져 공포에 몸부림쳤다.

 

  다온은 몸이 멈춘 것을 느끼고 나서야 간신히 두 눈을 떴다. 거의 실눈에 가까울 정도로 아주 조금만.

 

 정신과 약을 먹은 것이 방금 전인에도 호흡이 무척 거칠고 오른손과 오른발이 잔뜩 저렸다. 다온은 항상 그랬다. 긴장하거나 불안하면 왜인지 모르게 오른손과 오른발이 저리고는 했다. 그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려서 마음을 안정시키려는 뇌의 작용일까.

 

  어쨌든 이번에도 현명한 뇌의 작용 덕분에 다온은 저린 발목을 쓰다듬느라 잠깐 상황을 잊을 수 있었다. 어쩌면 일부러 외면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

 

  정말이지… 다온은 자신의 눈 속에 조금씩 들어오는 낯선 풍경을 외면하고만 싶었다. 그러나 어두운 조명 속,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방의 풍경은 다온의 방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아, 울고 싶어.

 

  다온이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너무 놀라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쪽이든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순 없었다. 다온은 발목 쪽만 바라보던 시선을 조심스럽게 올렸다.

 

  “악!”

 

  그리고 그대로 뒤로 주저앉아버렸다. 한 번 크게 소리를 질러버린 후에는 입술이 벌벌 떨릴 뿐 신음소리 조차 나오지 않았다.

 

  분명히 조명이 켜져 있는 데도 어두운 듯한 방 안, 푸른빛을 뿜어내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환한 빛도 아니고 방 안처럼 어둡고 푸르스름한 빛.

 

  심지어 앉아있던 그 존재가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을 때는 정말로 졸도할 지경이었다. 다온은 최대한 웅크리고 앉아 팔로 얼굴을 막고 벌벌 떨었다.

 

  의도치도 않은 심령 체험이라니. 애초에 그 수상한 책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무언가에 홀렸었나봐. 다온이 중얼거렸다.

 

  다온은 팔로 얼굴을 가리는 것도 모자라 눈을 꼭 감았는데, 시야가 확보가 안 되자 이내 더 큰 공포가 몰려왔다. 그래서 후들후들 떨리는 팔을 내리고 눈을 슬며시 뜨는데, 갑자기 푸르스름한 빛이 온 시야를 점령했다.

 

 그 순간이 지나서야 다온은 그 빛이 다온을 그대로 통과했다는 걸 알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식이 안 되어서 눈만 끔뻑거리던 다온은 뒤늦게 주저앉은 채로 팔을 움직여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어헉…제발…”

 

  다온은 누군가에게 하는지도 모를 소리를 내뱉고는 구석에 처박혀 눈으로 그 빛나는 존재를 쫓았다. 다시 한번 다온을 관통할까봐 무서운 탓이었다.

 

  그는 저벅저벅 걸어서 현관문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래.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려. 그렇게 간절하게 빌고 있을 때, 그가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다온은 다시 한 번 푸드득 몸을 떨었다. 갑자기 들린 목소리가 너무 평범한 여자의 목소리라 더 무서웠다.

 

  -우체국 등기우편입니다! 구현아씨 안에 계세요?

 

  무척 평범한 대화가 이어지자 다온은 그제야 조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다온은 등 뒤의 벽에 손을 대고 주춤주춤 일어나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관문을 쳐다봤다.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는 여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현관문을 열었다.

 

  -누가 보낸...

 

  여자의 말보다 먼저 보인 것은 불그스름한 빛이었다. 순간적으로 불꽃이 문 안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했다.

 

  마치 그 때처럼…태양처럼 밝고 불길한 불꽃이 다온의 세상을 점령해버린 듯했다. 다온은 그대로 굳어 불꽃처럼 쏟아지는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대면해야만 했다.

 

  -컥

 

  순간 시간도, 공간도 그대로 멈춰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여자의 숨 막힌 작은 비명에 순간 세상이 다시 돌아갔다.

 

  퍼뜩 정신을 차린 다온의 눈에 여자의 입을 굳게 막고 있는 남자의 두꺼운 손과, 그리고…여자의 발치에 떨어지는 검붉은 빛의 액체가 보였다.

 

  “헉”

 

  다온은 너무 놀라 본능적으로 그쪽으로 뛰어갔다. 누군가가 다쳤다. 푸르스름한 빛이 바닥으로 스러지고 다온이 불꽃이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문밖으로 사라진다. 어둠 속으로.

 

  “저기요! 괜찮아요?”

 

  무의식적으로 쓰러진 존재를 향해 뻗은 손이 그대로 통과해버리자, 다온은 다시 흠칫 놀랐다.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 다시 와 닿았다. 다온은 숫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의 분노가 공포를 이기기 시작했다.

 

  “뭔데! 이게 다 뭐냐고! 나보고 어쩌라고!”

 

  다온은 작은 방안을 쩌렁쩌렁 울리며 소리쳤다. 말끝에 울음이 묻어나은 것 같았지만, 꿋꿋하게 서서 계속 소리쳤다.

 

  "이제 그만해! 나가게 해달라고!”

 

  그 스스로도 뭐라고 하는지 모를 울부짖음이었다. 그런데, 마치 텔레비전 화면이 지직거리는 것처럼 다온의 눈앞이 일그러진다. 그는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

 

  다온의 집이었다. 다온의 방. 다온의 침대. 다온의, 책상…그리고 그 위의 붉은 책.

 

  다온은 이제 모든 걸 외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모든 걸 던져버린 채 침대 위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이마 끝까지.

 

  그런데 평소에는 다온에게 달콤한 안식을 주던 어둠이 오늘은 달랐다. 자꾸만 그게 생각난다. 어둠속으로 사라지던 불꽃,그리고 흐르는 검붉은 피.

 

  젠장

 

  다온은 한숨을 쉬며 이불을 걷어내고는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잡념을 떨칠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휴대폰을 들고는 의미 없이 포털사이트의 화면을 훑어댔다.

 

  그 뿐이었는데, 이토록 마음에 걸리는 기사를 볼 줄은 몰랐다.

 

  [무연고 20대 여성, 살해당한 채 5일간 방치...]

 

  이 기사가 불편한 이유는 방금 전까지 한 여자의 목숨이 스러지는 모습을 정면에서 봤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다온은 인터넷 창을 닫았다.

 

  한국이란 나라에서 여자가 살해당하는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괜히 그 여자와 겹쳐 보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도,

 

  다온은 왠지 모를 꺼림칙한 기분에 계속하여 그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봤다. 약간은 집착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러다가 어느 구간에서 손이 멈칫하고 말았다.

 

  [무연고 20대 사망 구모씨, 가해자는 택배기사 등으로 추정 중]

 

  구모씨? 모든 것이 선명했던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분명히 여자를 보고 구현아라고 했는데….

  다온은 숫제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혹시나, 혹시나 했지만,정말로 그 이상환 환영이 현실이라면?게다가 택배기사라니…다온이 보았던 그 기묘한 환영이 더욱 생각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아냐.

 

  다온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 역시 흔하디 흔한 일이다.

 

  '나는 왜 자꾸 내가 보았던 게 현실일 수도 있다는 망상을 하는 거지?'

 

  다온의 입에서 거한 한숨이 내뱉어졌다.

 

  다온은 진심으로 자신이 이 모든 걸 외면할 수 있는 성격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상하디 수상한 책도, 누군가의 덧없는 죽음도.

 

  그러나 다온은 도저히 떨칠 수 없는 찜찜함에 그 붉은 책을 다시 한번 펼쳐보았다.

 

  그리고 보이는 숫자 1.

 

  다온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손에 땀이 고여 책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온은 외면하지 못했다. 모두가 외면한 무연고 여성, 그의 죽음이 이 책과 관련이 있다면 그는 도저히 이 모든 것들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다온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시 그 방.

 

  다온은 멍하니 서서 다시 한번 푸른 빛의 여성이 칼에 찔려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아까와 한치도 다름없는 똑같은 풍경.

 

  그러나 다온은 이번엔 붉은 빛을 쳐다보았다. 붉은 빛을 뿜어내는 남자를. 그는....

 

  그는 울고 있었다. 역겹게도.

 

  울면서 사람을 찌르고 들고 있던 칼과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서둘러 택배 박스에 집어 넣은 뒤 빠르게 그 곳을 벗어났다.

 

  다온은 이번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그 남자의 뒤를 쫓아 현관 밖을 나갔다. 다온이 어둠이라고 생각한 공간은 불이 켜져 있지 않은 어둡고 긴 복도였다.

 

  그는 복도를 마구 뛰고 있었다. 어느새 그를 따라 헐레벌떡 뛰던 다온은, 환한 빛이 가까워지자 갑자기 침착한 척 걸음을 늦춘 그를 따라 잡을 수 있었다.

 

  다온은 헉헉대며 갑자기 속도가 늦춰진 그의 어깨를 무심코 잡아버렸다. 그 순간이었다.

 

  시간이 멈췄다.

 

  이번엔 다온의 손이 그 형체를 관통하지 않았다. 다온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채로 그자의 어깨에 손을 대고 있다가 문득 수상한 책의 구절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당신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이들이 받을 벌을 정해주시면 됩니다.’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이.

 

  다온이 잠깐 손을 떼자마자 시간이 움직였고 그 남자는 태연히 오래된 공동주택 밖을 나갔다. 다온은 그런 그를 쳐다보다가 무작정 다시 한번 달렸다. 그에게로.

 

  다시 한번 다온의 손이 그의 등에 닿았고, 그 순간 다온은 조용히 말했다.

 

  “너도 똑같이 당해.”

 

  다온은 숨을 들이키고 한번 더 말했다.

 

  “죽어.”

 

  인정한다. 다온은 다른 대상에 대한 분노를 이 자에게 분출하고 있다는 것을.

 

  이게 말도 안되는 환영이라는 것도 인식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람을 죽인 이가 태연히 걸어 다니는 꼴을 환영에서라도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언가가 변하지는 않겠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다니!

 

  다온은 인터넷 기사를 마구 검색했지만, 갑자기 무연고 사망사건의 범인이 잡혔다거나, 죽었다는 기사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아, 이게 뭐 하는 짓이람.

 

  그 공간에서 아까처럼 소리를 질러 빠져나온 다온은 한참을 휴대폰으로 기사를 검색해보다가 문득 허탈해져서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댔다.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된 이상, 모든 걸 덮어놓고 일상생활이나 해야 했다. 다온은 억지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수상한 사건은 이제 그만 모른 척 하자.

 

  안 그래도 곧 오후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다. 다온은 이제 대학교 4학년 2학기 과정을 밟고 있어서, 듣고 있는 과목은 딱 두 개 뿐이다. 그나마도 하다온은 온라인 수업이라 실질적으로 학교에 나가는 시간은 오늘이 전부이다.

 

  사실 오늘은 무기력에 잔뜩 젖어버린 날이라, 그 하나 있는 수업을 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이상 이 집에서 좀 나가고 싶었다.

 

  다온은 짧은 머리를 손으로 대충 슥슥 만지고 편한 바지와 티셔츠를 찾아 입은 뒤에 에코백을 어깨에 메고 현관문을 나섰다.

 

  띠리링-하고 문이 자동으로 잠기는 소리를 듣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왠지 모르게 가방이 아주 약간 무거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다온은 가방을 어깨에서 미끄러트리고는 가방 손잡이를 꾹 잡았다. ‘

 

  아니겠지. 무슨 진짜 공포영화도 아니고.

 

  아,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다온은 기본적으로 찜찜한 걸 그대로 내버려두는 성격이 아니다. 이게 정말 공포영화라면 다온은 제일 먼저 죽는 사람이 될 테지. 다온은 반쯤 체념하고는 가방을 들어 올린 뒤 그 안을 살폈다.

 

  역시.

 

  존재감이 대단한 붉은 책이 다온의 전공 책과 나란히 들어있었다.

 

  아, 스트레스 받아.

 

  다온은 두 손으로 얼굴을 마구 쓸어내리고 비벼댔다.

 

  우울해. 짜증나.

 

  무서워.

 

  다온은 이럴 때 자신의 감정을 어디에 배출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이런 얘기를 믿어줄지 않을지, 그런 고민도 필요 없다.

 

  의지하기 싫어서 혼자 해결하려 했지만,도저히 안되겠다. 다온은 휴대폰을 들어 올려 익숙한 이름을 검색했다.

  곧, 다온이 좋아하는 경쾌한 음악이 시작된다 싶을 때쯤, 바로 음악이 끊기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다온아 무슨 일 있어?]

 

  한껏 다정하게 말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다온은 말했다.

 

  “지금 카페 봄으로 와. 기다릴게.”

 

  상대방이 무슨 일을 하고 있든 상관없었다. 적어도 이 애 한정으로.

 

  다온은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은 뒤에 오피스텔 바로 옆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학교는 이제 됐다. 어차피 안 가려고 했던 수업 따위, 도저히 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카페 안에 들어서자 조용한 듯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다온을 감싼다. 그제야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벗어난 기분이 들어 조금 안도감이 들었다.

 

  다온은 다시 한번 기사를 뒤적거리며 길지 않은 시간을 기다렸고, 이내 카페 문에 달린 종이 딸랑딸랑 거센 소리를 내는게 들려서 고개를 들었다.

 

  역시 그였다. 서연우. 다온의,

 

  친구.

 

  연우는 다온을 보자마자 헐레벌떡 달려왔다. 평소에 다온이 먼저 연락을 잘 하지 않는 터라,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나 보다.

 

  아니, 실제로 무슨 일이 생기긴 했지…다온은 연우 얼굴을 보자마자 한숨을 푸욱 쉬었다.

 

  “괜찮아?”

 

  무슨 일이냐는 말보다 괜찮냐는 말부터 던진 다온의 친구는 그의 바로 앞자리에 앉아서 연신 다온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다온은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은 많았지만, 연우를 알아본 사람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누가 연예인이 이런 동네 카페에 불쑥 나타나리라고 생각할까.

 

  서연우. 여자 연예인으로서는 드물게 짧은 머리에 큰 키로, 희소성을 뽐내며 현재 여자들에게 인기를 잔뜩 얻고 있다. 팬만큼 안티팬도 많지만, 명실상부 탑 연예인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렇게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내게 쏟고 있는 멍청한 애였고. 다온은 그렇게 속으로 빈정거렸다.

 

  “다온아?”

  “아, 응.”

 

  솔직히 말하자면 다온은 충동적으로 연우를 불쑥 불러내 놓고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딴생각에 잠겨 있었다.

 

  다온은 뭐라고 말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다짜고짜 붉은 책을 보여줬다.

 

  “이게 뭐야?”

 

  아. 얘한테도 책이 보이긴 하는구나. 다온은 내심 자신에게만 보이는 심령현상 같은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정말 자신의 환각은 아닐까 하고 마음을 졸였다가 안심했다.

 

  “잘 봐.”

 

  다온은 붉은 책을 들고는 저벅저벅 걸어서 카페 쓰레기를 버리는 곳에 둥글게 말아서 버렸다. 텅-하고 책이 플라스틱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는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연우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정확히는 연우 앞의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책을 보고 말이다.

 

 ***

 

  분명히 눈앞에서 버린 책이 제 앞에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있다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연우에게 다온은 차근차근 설명했다. 오늘 하루 동안 겪은 일을.

 

  그래서 학교도 안 갔다는 얘기는 빼서. 그렇다고 해도 연우는 다온의 시간표를 꿰고 있으니 뻔히 알고 있겠지만.

  아무튼 연우는 언제나 그렇듯 다온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일단 책 한번 자세히 볼 게.”

 

  연우는 다온의 말이 끝난 뒤 신중한 태도로 책을 자기 앞으로 가져오려고 했다.

 

  “응?”

  “너 뭐 하냐?”

 

  다온은 책에 손을 올려 둔 채로 꼼짝 않고 있는 연우에게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아니, 책이 전혀 안 움직여서.”

  “그게 무슨 소리야?”

 

  다온은 책을 다시 들어 올렸다. 그러고 보니 꽤 두꺼운 책인데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워낙 이 책과 관련해서 혼란스러운 일이 많아서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온은 아무렇지 않게 책을 연우의 손 위에 올려주었다. 연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번에는 책을 열어보려고 했다.

 

  “어? 안 열려”

 

 이번엔 다온도 보였다. 분명히 손이 부들거릴 정도로 힘을 주고 책을 열어보려고 하는데 끔쩍도 안 하는 책이.

 

  “도대체 이게 뭐야. 나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인가?”

 

  연우와 다온의 당황스러운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이 책의 수상한 점은 정말 끊이지 않았다. 다온은 온갖 기현상에 이제는 거의 체념한 채로 연우에게서 책을 가져와 페이지를 열어서 보여주었다.

 

  “어?”

 

  이상했다. 분명히 숫자가 적힌 것 말고는 일반 책과 다를 게 없는 페이지였는데, 숫자 1이 적힌 페이지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게 뭐지?"

 

  다온은 다른 페이지도 그런가 싶어 다음 페이지를 넘겼는데, 분명히 아까 까지만 해도 없던 숫자 2가 적혀 있었다.

  하얀색의 배경색으로.

 

  “진짜 미치겠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대체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책은 이상하게 변해 있는데, 막상 현실은 변한 게 없다.

 

  …변한 게 정말 없나?

 

  “이거…빨간색으로 변한 페이지 말이야. 혹시 처리 완료 됐다는 표시인가?”

 

  다온은 붉은 빛을 내뿜는 사람의 어깨에 대고 명백한 저주를 퍼부었던 것을 기억하고는 말했다.

 

  “음, 죽으라는 말을 했다고 했지?”

 

  연우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실 말이야. 정말 죽었다고 해도 우리가 그 사실을 알 수는 없잖아. 아직 범인이 안 잡혔으니까. 그러니 정말 이 책 대로 그 사람이 죽은 건 아닐까?”

 

  맞는 말이다. 현실이 변한 것 없어 보이지만, 그건 그저 내 시야 속 이야기다.

 

  정말 그 사람이 죽었을까? 그 살인마가?

 

  전부 비현실적인 얘기들이지만, 진지하게 같이 고민해주는 사람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니 어쩐지 정말로 가능한 이야기 같았다.

 

  “어떻게 이 사람 소식을 알 수는 없나?”

 

  어느새 잔뜩 몰입한 다온은 답답함에 연우한테 토로하다가 순간 무언가가 생각나 “아!”하고 소리쳤다.

 

  “야,야! 서연우! 나 네 인별 좀 써도 되냐?”

 

  ‘내가 소식을 모른다면, 알 수 있도록 하면 되지!’

 

  그리고 그러려면 일단 그 사람이 범인으로 체포되어야 한다. 다온은 그 사람의 얼굴을 알고 있는, 어쩌면 유일한 목격자니까.

 

  다온은 할 수 있다. 다온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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