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갈까?
가서 뭘 하지?
이 곳은 나의 방주다.
이 거대한 쓰나미 속에서 겨우 살아 남을 수 있는 방주 내가 숨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이다.
나는 공항장애 환자이다
특정 한 장소에 가서 드는 공포 심이 아니라 모든 것이 나의 공포심의 이유이다.
사람이 많은 곳 그리고 인간들의 욕망이 꿈틀대는 곳 그 모든 곳이 나에겐 공포이다.
이 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공포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죽을 것 같다는 공포 호흡이 멈추고 땅 아래에서 나의 호흡을 끌어 당긴다.
그래서 숨을 쉴 수가 없다.
호흡 곤란에서 공포는 시작 된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피부와 근육을 도려 내는 듯한 거부감 그러다 그 고통이 절정에 다다르면 사지에 마비가 온다.
그 고통은 언제 어떻게 어떤 경로로 오는지 알 수 없다.
병원에서는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준다.
그리고 명상법을 권한다.
하지만 그 의사 마저 도 나의 고통을 알지 못 한다.
적절한 운동 안정적인 생활 패턴 그것을 권한다.
나는 9시면 잠이 들고 6시면 일어 난다.
하지만 늦게 약을 먹고 자면 몸이 너무 무겁다. 그래서 다시 이불 속으로 의식을 뉘 인다.
그렇게 뒤척이며 이불 속에서 병원에서 말한 충분한 잠을 잔다.
약 때문에 술은 엄두도 못 낸다.
담배를 피웠던 기억은 없다.
하지만 요즘에는 가끔 피운다 담배는 잠시의 긴장을 풀어 준다.
쉽게 말하자면 나는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에 24시간 긴장 상태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호흡 곤란 나는 그것과 싸우고 있다.
왜 이런 병이 나에게 왔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TV는 보지 않는다.
그 속에는 온갖 자살 관련 사건들이 보도 되고 그리고 온갖 삶에 대한 회안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삶에 대한 회안을 가진 TV속의 인간들은 모든 걸 가진 듯 보였다.
건강 그리고 훤칠한 외모 재력 가족 드라마 속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없는 것에 대한 욕망으로 화면을 채운다.
나는 그것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나를 보고 어떤 자는 혀를 찰지도 모른다. 그런 것이 세상이다.
신경안정제 없이는 외출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의사는 외출을 권한다.
약을 먹고 어디든 가서 괜찮다는 걸 스스로 익히라는 것이다.
하지만 두렵다.
어떨 때는 찾아오는 고통이 약으로도 막을 수 없는 상태까지 간다.
그때는 떨리는 손으로 약 병을 열어 다시 약을 먹는다.
약을 먹고 약효가 나타날 때 까지는 5분 정도 5정도 만 지나면 약효나 타나 난다.
그 순간을 기다릴 때 까진 고통은 계속 된다.
약을 한번 먹으면 약효는 4시간에서 6시간 지속 된다.
의사는 나에게 하루에 두 번의 처방했지만 어떨 때는 하루에 서너 번 먹을 때도 있다.
의사는 늘 약이 남았는지 언제 다 먹었는지 체크를 한다.
정신과 약은 남용 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충분한 약을 얻기 원한다.
그래서 의사에게 외출 시는 한 두 번씩 더 먹을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지만 의사는 말이 없다.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의사가 말했다.
새로운 일 관심 나의 관심은 오로지 죽음을 피하는 법 밖에는 없다.
어떻게 하면 죽음의 공포를 벗어 날 수 있을 까 하는 것이었다.
가끔 자살 사이트를 들락거리곤 한다.
죽음을 직면하다 보면 면역이라도 생길까 해서 이다.
신의 트릭이라는 사이트이다.
신의 트릭이 도대체 뭔지 알 수 없지만 신이 존재 한다면 나에게 트릭을 쓰고 있거나 장난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나의 의식에 전반적으로 깔린 생각이다.
하루라도 내 속을 들여다 보지 않고 살수 있다면 아침에 눈을 떠서 내가 처한 현실을 둘러 보고 내가 조심해야 할 것들 그리고 공포에 대한 방패를 점검을 한다.
그래서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그렇지 않으면 약을 먹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하루의 시작이고 하루의 마무리이다.
신의 트릭이라는 사이트의 회원은 삼만 명 정도 되었다.
하루의 접속 자 만도 삼사천 명에 달했다.
그렇담 지속적으로 사이트에 접속하는 자들이 그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나는 그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했다.
여느 사이트와 다름없이 그들은 매일 출석첵크을 하고 하루의 보고를 했다.
그리고 운영자는 자살에 필요한 물품을 공동구매 하고 획기적인 자살 플랜을 짜주기도 했다.
내가 봐도 혹하는 방법들이 꽤 있다.
그 중에 복수에 대한 것도 있다.
자살과 복수 그것의 상관 관계는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나름 조회수도 높았다.
그리고 자살 실패 경험의 글도 올라 와 있었다.
그리고 허무맹랑한 글도 몇 가지 있었는데 몇 글자 읽다가 창을 닫아 버렸다.
어쩌면 나에게 필요 한 것은 자살하기 위한 무리들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자들의 모임일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그들에게 끌리는 것은 아마도 나 스스로도 삶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대로 시간은 잘 갔다.
글을 읽고 그리고 댓 글을 달고 다들 한결 같은 그들이었다.
왜 자살하고 싶은지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글들 그들은 아마도 서로서로 위안 같은 것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죽고 싶은 것 보다는 나를 봐줘 하는 식의 말들이었다.
그 중에서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인 세상의 한탄 같은 글도 있었다.
시답잖은 글들이고 시답잖은 말들이지만 그래도 성실이 댓 글을 달아 줬다.
그래요? 그렇군요. 참고가 되었습니다.
하는 식의 댓 글 의사가 하듯 처방을 내려 주는 것도 비난을 하는 것도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 열심 회원이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 씩 접속을 하고 댓 글을 달고 했더니 말이다.
그러라고 했던 일은 아니었는데 나는 열심 회원이 되었다는데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에게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다는 두 개의 쪽지가 왔다.
하나는 운영자의 것이었고 하나는 성냥 하나라는 별명의 회원이었다.
운영자의 쪽지는 언제나처럼 공지나 정모에 대한 통고 일거라고 생각 해서 열어보지도 않았다.
성냥 하나라는 회원은 내가 댓 글을 단 글을 쓴 자였고 그는 나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쪽지를 보면서 떠 오른 생각은 ‘밖으로’ 라는 단어였다.
병원 가는 것 말고는 ‘밖으로’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일 따위는 생각 해보지 않았다.
병원에서 명상 센터를 추천 해 줘서 큰 맘 먹고 나갔다가 큰 금액을 제시 하면서 가입을 강권하는 바람에 명상센터에서 호흡 곤란이 오고 정신적 압박이 와서 명상센터의 실장이라는 자가 나를 광견병이라도 걸린 양 당황해 하고 나는 나 대로 그 곳을 뛰쳐나왔었다.
그런 기억이 있어서 명상센터를 찾는 것도 그만 두었다.
그 기억 때문에 ‘밖으로’ 라는 단어는 나에게 공포심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 쪽지에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이트에 접속을 하는 횟수도 점점 줄었다.
하지만 꺼진 모니터도 나를 향해 손을 휘 젓는 거 같은 환영에 모니터를 켜는 것도 꺼려 졌다.
그래서 몇 일을 사이트에 접속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 동안 그 속에서 쌓은 신뢰 같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 사이의 소통이 그리웠다.
괜히 청소를 하면서도 혼자 살고 할 일도 없고 그래서 나의 집은 꽤 깨끗한 편이었다.
그래도 쓸고 닦고 하는 것은 움직이기 위한 소일로 어김없이 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마치 몸을 닦는 것처럼 컴퓨터 책상 아래에 낀 정확히는 본체 밑에 낀 먼지들을 면봉으로 닦아 내고 있을 때 무심결에 본체의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무심결이라고 는 하지만 그것은 움직이다 팔꿈치로 툭 하고 눌렀던 것이다.
발가락으로 꾹 눌러야 켜지던 컴퓨터는 나의 팔꿈치의 힘이 그리도 강했던 건지 윙 하고 소리를 내고 돌아가고 나는 그것이 켜지는 것을 보다 의자에 앉았다.
검은 모자를 쓴 듯한 면봉을 아무렇게 던져 두고 나는 사이트에 접속을 했다.
그 후로 쪽지가 몇 통 더 와 있었다.
여전히 나에게 소통을 원하고 있는 성냥 하나였고 운영자 소리 샘이었다.
운영자의 이름이 왜 소리 샘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소리 샘의 쪽지를 아무렇게 던져 놓은 면봉처럼 흘깃 보고 성냥 하나의 쪽지를 열었다.
같은 내용이었다.
만나고 싶다. 연락을 달라. 어떤 미사어구도 없는 단순한 내용 뼈대만 있는 건물 같았다.
나는 그에게 답신을 보냈다. 몸이 안 좋아서 만나러 가는 것을 좀 힘들 것 같다는 내용으로 마침표를 찍으려다 백스페이스를 눌러 지웠다.
나는 내 의지가 아닌 다른 의지에 이끌리듯 나의 전화번호를 찍고 약속 장소로 나가겠노라 고 답했다.
잠시 보내기 버튼에서 멈춰서 그 이후에 올 고통을 가늠 해 보려다 그냥 꾹 하고 눌러 버렸다.
그러고 나니 왠지 맘이 편해 지는 것 같았다. 미뤄놓은 숙제를 한 듯한 그래서 콧노래까지 불렀다. 밖으로
나 같은 병을 가진 자들은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고 스트레스 때문에 죽고 살고 한다고 들 하지만 그것은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 않는다.
나 역시도 직접적인 죽음의 원인이 되진 않겠지만 최대한 스트레스를 줄여야 하는 극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비를 해야 했다.
나가지만 않으면 문제 되지 않을 것들 그러니까 날씨라든가 교통 체증이라든가 많은 인파라든가 혹은 배고픔 그리고 수분 부족 같은 것들을 스트레스의 빌미로 주지 않기 위해서 물을 챙기고 약을 챙기고 때를 놓치면 먹을 거리 찬 수건 찬 수건을 얼려다가 비닐에 넣어 두는 것이다.
썬 크림 챙 넓은 모자 챙기다 보니 가방이 한 짐이었다. 운전은 엄두도 못 내고 택시를 불러서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