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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최강의 포식자
작가 : 솜덩어리
작품등록일 : 2021.12.13

마법과 마물들이 날뛰는 세계. 내노라 하는 마법사들이 많은 세상임에도, 그들은 입을 모아 한명의 마도사를 칭송한다. 유일무이한 명성의 마도사와 그를 따르는 혼혈의 천재 제자. 이 이야기는 엄청난 마도사이자 대단한 대식가인 그들이, 마법을 사용하기보다 식사를 즐기는 데에 더 열중하는 이야기이다.

 
01
작성일 : 21-12-13 12:43     조회 : 152     추천 : 0     분량 : 2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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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 1 스콘

 

 

 

  한가롭다라고 부르기에 딱 알맞은 오전의 티타임. 흰색 머리의 흄(사람)은 적당히 책상에 다리를 걸치고, 사용인이 타다준 연한 진홍색의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 옆의 소파에는 밤하늘처럼 시커먼 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귀가 약간 둥근 엘프(숲사람) 처럼 생긴. 하프엘프(혼혈 숲사람)가 찻잔에 바람을 불어 온기를 식히고 있었다.

  넓직한 방에선 흄 남성이 차를 마시고, 하프엘프의 여성이 차를 식히는 소리 뿐. 그 외의 잡담이나 소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차를 더 가져올까요?"

  그 침묵을 깬 것은 청소를 끝내고 온 가정부. 아무런 대화도 없이 그저 음료를 들이킬 뿐인 그들을 보고, 목이 말랐던 것이라고 추측한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자신은 고개를 돌려 소파에 앉은 그녀의 컵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 반도 못 비웠으니까. 아니다, 차라리 지금 가져와서 식히는 게 나을 수도 있겠어."

  "그정도로 고양이혀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나름대로 걱정해준다고 한 말인데, 굉장히 퉁명스럽게 맞받아치니 그래도 조금 서운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언제나 저랬던 것 같아, 다시 기운을 되찾는다. 어차피 하루이틀 볼 사이도 아니고, 이정도로 풀죽어서야 큰 사람이 못된다.

  "그럼 조금만 더 타올게요."

  연륜이 있어보이는 메이드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방을 나갔다. 기분이 좋은 것인지 복도에서 콧노래를 부르는 게 자신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방금의 대화에 좋은 부분이 있었나 생각을 해본다. 그러자 그냥 오늘 몸의 상태가 좋은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나왔다.

  아까부터 이런 자문자답을 몇번씩이나 할 정도로, 자신은 너무나도 한가했다. 같은 방에 있는 여성은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고, 그저 눈 앞에 있는 차를 음미 할 뿐이었다.

  "... 좋은 차네요."

  드디어 제대로 맛을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온도로 내려갔는지, 크게 한모금을 넘긴 후 그녀는 그리 말했다. 겨우 말할 마음이 들었나 싶어,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인다.

  "엘프의 숲에서 들여온 귀한 찻잎이랬나, 아무튼 아껴뒀던 소장품중 하나야. 더 소중하게 마시도록 해."

  "그런거라면 좀 식혀서 마시시지, 막 들이키던데."

  뜨거운 차는 입 안이 헐 정도로 뜨겁게, 차가운 차는 얼어붙을 정도로 차게. 옛날부터 지켜온 자신만의 규칙이다. 대충 눈빛을 보내자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몇번이고 귀가 닳도록 얘기한 것이라, 다시 한번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

  다시 한번 메이드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아무 말 없이 찻주전자와 스콘, 크림과 잼을 담은 접시를 내려 놓은 뒤 다시 떠나갔다. 자신과 자신의 조수를 바라보는 눈빛에 안도감이 보였던 것은 싸운 것을 걱정했기에 그랬을까.

  만약 그랬다면 정말 쓸데없는 고민이였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다. 애초에 말다툼 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 책상에서 일어나, 소파쪽으로 이동해 자신의 조수 앞에 걸터앉았다. 오른손을 접시로 뻗어 잘 구워진 스콘 한조각을 집어든다. 버터의 부드러우면서 또 진한 향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손에 닿는 빵은 강하게 쥐면 부서져 버릴 것 처럼 연약한 촉감이라, 자신도 모르게 조금 긴장을 하게 된다.

  손에 들린 것을 입 쪽으로 가져가 작게 한입 베어문다. 겉에 감돌기만 하던 강렬한 우유향기가 입 안으로 직접 들어와, 숨을 타고 온몸에 퍼진다.

  보슬보슬한 특유의 식감과 버터의 진한 풍미. 약간의 소금간이 조금 단조로운 맛에 특징을 준다. 가끔씩은 잼이나 크림같은 것 하나 없이, 스콘 그 자체만을 즐기고 싶을 정도다.

  그런 의미로 한개를 전부 입에 넣었다. 고소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혀를 강타하고, 목을 두드린다.

  … 목이 마르다.

  "그러게 누가 한개를 그대로 삼키래요? 여기 차."

  그녀의 얇은 손이 방금까지 식히던 찻잔을 자신에게 건네준다. 이럴 때에는 참 협조적이라, 하루종일 스콘을 목에 꾸겨넣고 사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정도다.

  이상한 생각은 일단 뒤로 제치고, 지금은 목을 축여야한다. 색처럼 투명하고, 그러면서도 진한 장미향이 나는 홍차를 입에 머금는다. 다과회 간식에 자주 나오는 만큼, 그 궁합도 확실히 좋았다.

  버터의 부담스러운 기름기를 씻어내주고, 남은 것은 상쾌한 향기. 기분이 막 좋아진다. 다음엔 크림과 잼을 얹어서 먹어야겠다고 정한다.

  "여기요."

  언제 가져갔는지, 그리고 언제 알아챘는지 그녀는 자신에게 하얀색과 붉은색의 병을 내밀었다. 나이프로 그것들을 조금 덜어낸 후, 감사를 표한다.

  그러나 그것을 무시하고 그저 스콘을 베어물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 스콘 맛있네요."

  "그래, 왠만한 가게에서 파는 것 보다 훨씬 더 나은 품질이지. 그 가정부가 이런 건 잘 만들더라고."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조금 끄덕인 뒤, 하프엘프는 다람쥐마냥 조금씩 빵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다시 허기가 져, 냉큼 받아 든 달콤한 과일과 우유를 빵의 중간에 바른다.

  한동안 또 정적이 흐르고, 과자를 갉아먹는 소리만 들려왔다. 달콤한 간식을 마음껏 즐기다 보니, 어제 한 실망스러운 식사가 다시 떠오르게 되었다.

  "그리폰의 고기도 이정도로 맛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렇게 말을 꺼내자 그녀도 얼굴을 찌푸리며,

  "겨우 잊었는데 다시 꺼내는 것은 매너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것도 그런가."

  저 소녀의 얼굴. 방금까지 미소는 아니지만, 어딘가 환하게 보일 정도로 즐거웠던 표정을 한순간에 망가뜨려 버릴 정도로, 어제의 기대했던 저녁은 비참하기 그지 없었다.

  임팩트도 있었고, 외형은 지금까지 보아온 그 어떤 음식보다 화려했다. 하지만 그 실체는…

  "씹지도 못할 정도로 질긴 고기. 은근 심한 잡내에 차에나 넣어 마셔야 할 것 같은 설탕범벅 잼 까지, 일류의 레스토랑에서 나올 만한 물건은 아니었어."

  실제로 좀 너무한 요리였다. 자신은 비록 조금 감성적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절대 무언가를 과장시켜서 말하는 사람이 아니였다. 그래서는 가게의 얼굴이 되어버린 목신(숲의 신)이 불쌍하네. 그렇게 생각 할 정도로, 끔찍했다. 최대한 남기지 않고 다 먹으러 했지만, 결국 반 이상을 남겨버리고 말았다.

  최강의 포식자로써는 굴욕적인, 동시에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순히 맛이 없어서 그런게 아니라, 남겼다는게 더 심각한 일이었다.

  "뭐, 그렇게 부담스러운 자리에 앉아있어서는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잘 몰랐지만요."

  잘만 먹더만. 이 말은 아무리 그래도 할 수 없다.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밀어내린다. 다시 목이 막혀와 홍차를 가볍게 흘려 내려보낸다.

  "그래, 어제 일은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오늘은 제대로 된 곳으로 데려가 줄게."

  "... 제대로 된 곳 맞겠죠?"

  의심을 하는 듯한 태도지만, 미식을 즐기는 그녀의 본성은 숨길 수 없다. 반푼이의 엘프 귀가 팔랑거리고 있으니까.

  생각해 둔 곳은 딱히 없었다. 저렇게 말해 놓고도 뭐하지만, 아직까지 좋은 가게의 소문을 듣지 못해, 오늘의 식사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중인 상황이다. 그래도 이번의 의뢰 내용대로 라면, 어떻게 해도 블랙베리를 곁들인 그리폰 스테이크 같은 것 보다는 나은 고기를 대접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촉이 항상 맞지는 않기에, 확답은 하지 않고 그저 미소만 짓는다. 하프엘프는 어정쩡한 기분을 표정으로 표현한다. 저 모습은 언제봐도 질리지 않는다.

  소녀의 얼굴엔 기대와 불안감이 적절하게 섞여있었다. 마치 잼과 크림처럼.

  "그럼 이제 슬슬 움직일까."

  나는 다시 채워진 두번째 찻잔을 전부 비우고 그리 말했다. 그녀도 겨우 한잔을 다 끝마치고, 숨을 내뱉으며 거의 일체화 되어있던 소파에서 그 몸을 일으켰다.

  벽에 걸려있던 겉옷을 한손으로 들어, 머리를 정돈하던 소녀에게 건낸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고 몸에 걸치는 모습을 구경한다.

  바라보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져,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방문의 문고리를 잡는다. 복도로 나와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가죠, 선생님."

  "그래."

  모자까지 얹고 나온 소녀를 호위하며 저택 바깥으로 나선다. 선선한 봄의 공기가 꽃향기와도 비슷한 향내를 풍긴다.

  두마리의 포식자들은 잠시 그 욕망에 자물쇠를 걸고, 이 나라 최고의 마도사와 그의 조수로 변신한다.

 

 

 

 

 

 

 

 

 01 - 2 하므 꿀 차

 

 

 

  "그러면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두배 정도는 보내본 듯한 연륜이 배어나오는 노인이, 새파랗게 어린 나에게 보며 고개를 숙인다. 매번 보는 광경이지만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더 공손하게 나갈 수도 없었다. 자신에게도 어느정도의 지위라는 것이 있기에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라고, 똑부러진 조수에게 몇번이고 잔소리를 듣는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따스한 온기가 깃들어 있던 방을 뒤로한다. 바깥에는 동신(겨울의 신)이 봄이 온 것도 모르는지, 화려하게 날뛰고 있었다.

  이곳은 인간들의 나라, 로렌하리아의 외곽에 자리잡은 작은 도시 아스렐. 오늘의 일거리는 이곳의 영주가 맡긴 의뢰를 시행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아주 오랜만에 찾은 것이다.

  부담없이 올 수 있는 거리지만, 그렇게 자주 찾게 되는 장소는 아니었다. 특유의 날씨가 몸과 정신을 갉아먹기 때문에.

  "여긴 여전히 춥네요. 귀가 얼어붙을 것 같아요."

  토마토마냥 빨갛게 달아오른 귀의 소녀가 몸을 부들부들 떤다. 아마 혼혈이긴 해도 엘프(숲사람)라서 더 추위를 잘 타는 것 이겠지만, 이렇게 날카로운 냉기는 흄(사람)도 버티기 힘들다.

  "이렇게 보면 아스렐 사람은 나랑 다른 종족인 것 같단 말이야."

  "저랑은 확실히 다른 종이지만요."

  시덥잖은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다리는 따뜻한 안전지대를 찾기위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눈폭풍이 왔을 때에는 온몸을 둘러싼 주민들 조차 밖에 잘 나가지 않기에 열려있는 가게는 극히 드물었다.

  운 좋게 열려있다고는 해도 종업원이 오지 않기에 영업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덕분에 자신들은 몇번이고 바깥으로 쫓겨나, 곧 있으면 빙과라도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추워서 의식이 흐려지는 듯한 기분이 들 때, 지난번에 찾아낸 분위기가 좋아보이는 식당을 기억해냈다. 폭풍에도 굴하지 않고 손님을 받을지는 불확실하지만, 호쾌한 성격의 주인이 관리하는 곳이니 가능성은 높았다. 직접 들어가 본적은 없지만.

  추워서 귀를 쥐토끼마냥 덜덜 떠는 소녀를 데리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하얀색으로 가득 채워진 시야에 따스한 불빛이 스며들어왔다.

  달그랑, 하고 문에 달려있는 종이 울린다. 얼굴에 미소를 잔뜩 머금은 흄 종업원이 나타나, 자리를 내어주었다. 얼어붙은 몸을 이끌고 자리에 앉으니 어딘가에서 말을 걸어왔다.

  "이렇게나 폭풍이 심한데 이런 곳 까지 오다니, 손님도 참 고생이 많았겠구만."

  순간 어디서 나온 목소리인지 혼란스러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탁자 밑에서 들려온 소리란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이 종업원은 소인족인 듯 했다.

  "정말 그말대로야. 그러니까 따뜻한 물 두잔만 부탁하지."

  추위에 덜덜 떨며 부탁하자 눈에 반쯤 파묻혀서 도착한 손님에게 땅딸막한 드워프(난쟁이) 종업원이 주전자에서 펄펄 끓인 온수 두잔을 내주었다. 통이 큰 드워프의 가게라 그런지, 컵이 평범한 것의 배는 되어보였다.

  아직도 부들거리며 콧물을 훌쩍이는 제자에게 물을 건낸다. 그녀는 컵으로 손을 녹이고, 피어나오는 김을 난로삼아 얼굴을 덥혔다. 그리고 드디어 한모금 하려는 데, 너무 뜨거웠는지 혀를 삐죽 내밀고 잔을 내려놓는다.

  자신도 물을 들어올려 목 안쪽으로 부어넣는다. 손님과 바깥의 냉기를 생각한, 적절한 온도였다. 덕분에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얼어붙은 손도 어느정도 녹아 움직이기 편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허름하면서도 바람이 새지 않는다. 투박한 듯 섬세하게 모양이 잡힌 통나무 의자는 탄탄한 것이 속이 꽉 찬 줄기인 듯 하다. 아무래도 이 가게의 주인은 괜찮은 안목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옷차림이 여기 주변에서 볼만한 것은 아니군. 여행중인가?"

  어느새 잔을 다 비운 것을 보고, 나이가 있어보이는 드워프 여성이 새로운 온수를 대접한다. 이렇게나 퍼주는 걸 보니 아무래도 물은 공짜인 모양이다.

  "아니, 일 때문에 잠깐 들리게 된거야. 그나저나 날씨가 정말 살벌하군. 마치 눈의 신에게 미움이라도 받은 것 같아."

  "그랬을 지도 모르지. 나도 오랜만에 보는 장난 아닌 눈폭풍이야. 오래 머무르는 것은 추천하지 않아, 여기 주민들도 버티기 힘들 정도거든."

  아스렐 사람들도 일단은 비슷한 종족이긴 하구나 싶었다. 이런 냉기와 매일 마주하고도 멀쩡하다면, 그것은 이미 사람이 아닌 예티눈거인이나 눈사람 같은 것이다. 아니면 골렘암석거인이라도 되던가.

  그렇다고 해도 온수만 받아마시는 것은 이 가게에 대한 실례다. 적당히 벽의 목록에 쓰여져있는 하므 꿀 차라는 것을 두잔 시켜, 조금만 더 몸을 녹이기로 하였다.

  옆에 있는 하프엘프는 아직도 물을 식히고 있었지만 말이다.

  "마법으로 얼음이라도 만들어서 식혀줄까?"

  마시지도 못하고 물을 바라만 보는 그녀에게 권했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한 시선 뿐이었다. 바깥에 부는 폭풍만큼이나 냉정한.

  뜨거운 것을 잘 못 먹는다는 것이 그렇게 걸리는 걸까. 오랫동안 봐왔지만,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그녀의 생각도, 감정도.

  사실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다고 내 말을 반박하려던 순간, 탁자에 거대한 유리잔 두개가 놓여졌다. 팔을 얹고 턱을 괴고있던 자신의 머리까지 충격이 올 정도로, 안은 금색의 빛을 띄는 투명한 액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 도시에서 오래 머물러 본 적도 없고, 딱히 들어 본 이야기도 없었지만, 하므 꿀이라는 것은 들어본 적 있었다.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환경에서만 자라난다는 하므. 그 꽃에서 만들어 내는 꿀은 은은한 향기와 설탕에도 지지 않을 정도로 단 맛이 일품이라 한다.

  하지만 단 것을 자주 찾지 않기도 하고, 추운 곳은 조수가 싫어하기에 잘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원산지가 아닌 곳에서 먹기엔 느낌이 없다.

  뜨거운 물에 하므 꿀만 풀어도 풍부한 맛이 난다고 하던데, 이런 추운 상황이면 그 풍미가 배로 느껴질 것이다.

  "어쩌면 오늘은 하므 꿀을 접하기에 최고의 날이었을지도."

  그 말만을 남기고 나는 단 한줌의 주저도 없이 컵 안의 내용물을 들이켰다. 확실히 조금 뜨겁기야 했지만, 의외로 목에 부담을 주지 않을 정도로 미지근했다.

  드디어 접해본 하므 꿀의 첫 인상은, "생각보다 달지 않아"였다.

  달기는 했지만, 그것은 마치 과일의 달콤함과 비슷해, 목넘김이 부담없었다. 세간에 도는 설탕을 잔뜩 뿌린 고급 잼들과는 다르게, 부드럽게 감싸주는 포용력이, 이것에는 있었다.

  그렇다고 꿀 다운 느낌이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끈적하지만 달라붙지 않고, 적당한 밀도와 은은한 꽃 향기를 풍기는 것이, 어느 다른 종류의 것과도 다른 점이 없었다.

  하지만 잘 익은 베리의 농축액만을 마시는 것 처럼, 기분이 마구 좋아질 정도의 고귀한 달콤함은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는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반절 가량을 들이킨 것을 알아챘다.

  "꿀과 물 만으로 이런 맛이 난다니, 열심히 음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바보같아 보일 정도로 완벽하네."

  마음껏 꿀차를 즐기고 나서야, 같이 온 동행인이 아직 마시지 못 했다는 것을 알아채고 말았다. 그것도 모르고 먼저 마셔버리다니, 지금쯤이면 이쪽을 째려보고 있을게 뻔했다.

  긴장하며 고개를 서서히 돌리는데, 위협적인 시선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꿀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확실히 이런 맛이라면 다른 지역에서도 화제가 되는게 당연하겠어요"

  따뜻한 음료로 목을 덥힌 소녀가, 데워진 숨을 내뱉으며 만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아무래도 그녀도 이 고급스러운 맛에 눈을 떠 버린 것 같았다.

  "안 뜨거워?"

  확실히 식혀져 있기야 했지만, 평소의 그녀라면 앞으로 눈이 손등 만큼 더 쌓일 때 까지 후후 불고 있었을텐데. 조금 마시는게 빨랐다.

  오늘은 유난히도 추운 날이었으니 조금 더 자극적이라도 괜찮은 걸까. 그렇게 예상하고 있을 때 머쓱한 듯 그녀는 다시 혀를 바깥으로 내밀었다.

  "조금은요. 무슨 맛일지 궁금해서 조금 일찍 마셔버렸네요."

  "하긴, 이런 것을 앞에 두고 오래 기다릴 수는 없겠지."

  가볍게 미소를 지은 후, 기다릴 것 없이 전부 목 안으로 부어넘겨 잔을 비운다. 부드럽게 넘어가서 덕분에 속은 조금 이른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기분 좋은 감각이다.

  아직도 조심스레 홀짝거리는 소녀를 내버려두고, 소지중인 돈과 도구들을 확인한다. 각종 마석들이 박힌 마도구들과, 아까 영주가 건내준 선금. 미리 주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한손에 다 쥐기도 힘든 양의 금화다. 확실히 이름을 알려두면 이럴 때 좋다.

  속이지는 않았겠지만, 무언가 착오가 있을 수도 있어 다시 금화를 세어본다. 그리고 도구에 이상은 없나 검사하고 나서야, 동행은 겨우 반절을 비울 수 있었다.

  "하므 꿀 차 한잔 더."

  "여기 나왔어."

  미리 대기하고 있었는지, 다시 한번 커다란 크기의 유리잔이 탁자위에 놓였다. 접객을 오래했다는 것이, 종업원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서 알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괜찮다면 이 꿀의 판매처를 알 수 있을까? 돌아갈 때 몇병 정도만 들고가고 싶은데."

  조금 무리한 부탁 일 수도 있지만, 이런 상황에는 식당이고 채집가고 돈이 급할 것이다. 중개비로 조금 낸다면, 못 알려줄 것도 없겠지.

  그런 식으로 대충 던져본 질문 이었지만, 의외의 대박을 건져올리게 되었다.

  "아 ~ 그 꿀은 우리 남편이 지난 가을에 찾아서 보관해둔거라, 팔 정도로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아. 요리에도 많이 쓰이니까 말이지. 꼭 원한다 하면 이름 난 사냥꾼이라도 소개시켜 줄까?"

  "아니, 그건 사양하도록 하겠어. 그리고 이런 날씨에 숲속에 나갈 광인도 없을테고 말이야."

  그건 그렇지, 라고 중얼거리며 그녀는 떠나갔다. 이 가게의 가장은 사냥꾼인 것일까. 혹은 사냥꾼을 겸하고 있는 자 인가. 어느 쪽이든, 호감이 가는 것에는 차이가 없었다.

  계속해서 관찰하며 차를 입에 대어 보는데, 아까만큼 뜨겁지는 않다. 온수로 덥혀졌으니 풍미를 느끼기 좋은 온도로 내는 걸까. 그렇다면 제자가 저렇게 큰 어려움 없이 마시는 것도 납득이 간다.

  정말 세심한 가게가 아닌가. 아스렐에 와서 대충 고른 첫 식당 치고는, 합격점을 넘어선지 오래다. 마침 일을 끝내고 나서도 배를 채워야 하는데 어디로 할지 고민 중이던 상황이다.

  여기로 할까.

  "다 마셨으면 일어나자."

  "네, 선생님."

  드디어 한잔을 다 마신 그녀를 보고, 질세라 남아있는 액체를 바로 들이킨다. 사례도 들리지 않고 컵을 비울 수 있었고, 탁자 위에 호쾌하게 돌려놓았다.

  제자의 코트를 벽걸이에서 떼어내 입는 것을 도와준다. 마도사의 옷에는 다소 입기 불편 할 정도로 단추와 끈이 달려있기에, 나도 혼자서는 잘 갈아입지 않는다. 전에 이 건에 대해 항의한 적이 있지만, 아직까지 바뀌지 않은 걸 보니 무산 된 듯 하다.

  유리잔들을 치우고 있는 드워프 여성에게 돈을 지불한다. 적당한 양을 주머니에서 꺼내, 통나무 탁자 위에 살포시 내려놓는다.

  그녀는 자신이 지불한 대가를 보더니, 미숙해 보이는 종업원을 불러 설거지거리를 대신 옮기게 한다. 그러더니 자신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이정도 돈은 받을 수 없어. 가격표를 잘못 본 건가? 혹시 팁이라고 할 셈이면 포기하는 게 좋아. 난 사람 등쳐먹는 짓은 하기 싫거든."

  자존심이 있다는 건가, 더욱 더 괜찮은 가게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순히 좋은 가게라고 돈을 더 낼 정도로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것은 아니야. 사실 조금 있다가 다시 돌아올 예정이라 말이지, 음료값을 제외하고 남은 돈으로는 두명 분 식사를 만들어줘. 이왕이면 따뜻한 걸로."

  "나참, 그렇다고는 해도 돈이 많구만. 대체 어떤 요리를 내야 할지 고민 좀 해봐야겠어. 이런 갑부들 상대로는 장사 해 본적이 없단 말이지."

  뭐, 많은 돈을 내밀면 갑부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재물이 많다는 뜻으로 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조금 왜곡되어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

  문고리를 잡고, 힘을 주어 차가운 바깥 세계로의 통로를 연다. 한기가 몸에 스며들 듯 들어와, 벌써 자신 옆의 혼혈은 덜덜 떨고 있다.

  물론 자신도 춥지만, 그래도 따뜻한 음료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이제 일하러 가야 할 시간이다.

  "맛있는 걸로 부탁해, 그리고 우리는 갑부가 아니야. 단순한 미식가다."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흘러나온 말을 무시하고, 우리는 실내를 떠난다. 눈보라는 약해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치 겨울의 여신이 마법이라도 건 듯이.

 

 

 

 

 

 

 

 01 - 3 사슴 통째로 수프

 

 

 

 

  "마법인가요?"

  "그래, 마법이다."

  만에 하나의 상황을 위해 다시 한번 허락을 받는 엘프(숲사람)의 혼혈.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며, 퉁명스럽게나마 두번째 허가를 내린다.

  그러자 반쯤 뾰족한 귀를 파들거리며, 추위 속에서 그녀는 마력을 모은다. 자신이 써도 괜찮았겠지만, 이런 환경에서도 제대로 마법을 쓰지 못했다간 마도사 실격이다. 이 녀석은 아직 등록도 하지 못했지만.

  "추위로부터 몸을 지켜라, [샐러맨더의 모포]."

  마법의 시전을 끝마치자, 마치 주변의 바람이 전부 두터운 벽에 막힌 것 처럼 사라져버렸다. 추위조차 봄날 눈 녹듯 스르륵 사라져, 계절을 착각할 정도였다.

  마법이란 편리하네, 라고. 몇년을 넘어 십몇년째 보고있지만서도, 그리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 마법 사용이 허가된 구역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나중에 처벌 받는 것은 아니겠죠."

  "혼날 짓을 시킬리가 없잖냐. 목적지까지 멀지도 않고, 이 정도는 봐주겠지."

  "선생님 같은 사람이라면 혼날 짓도 거리낌 없이 시킬 것 같습니다만."

  다시 한번 이 제자가 자신을 신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을 정말 신랄하게 하는, 못된 제자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막상 그렇게 단정짓기엔 자신이 저지른 일들이 몇개 정도 기억나는 것이다.

  옆의 하프엘프는 너무 고지식한 면이 없지않아 있다. 정식 마도사들도, 견습 마도사들도, 마법 사용 허가서가 떨어진 장소에서 조금은 벗어나더라도 힘을 마음대로 사용하는데. 이 녀석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해진 법률만을 따르려고 한다. 나중에 사서로 취직하면 모를까, 너무 고지식한 녀석은 환영받지 못한다.

  제자에게 조금은 부드럽게 대처하는 법을 가르쳐야 할까. 하지만 그녀 특유의 완고함도 틀림없는 장점인데. 앞으로의 교육 방향을 결정하며, 의뢰받은 마도구를 고치기 위해 설원을 나아간다. 잡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다.

  "그러고보니까, 왜 마도구 정비사에게 말하지 않고 선생님에게 의뢰를 넣은 것일까요. 그쪽이 더 익숙할텐데."

  그런 의문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애초에 마도사라는 직종이 할 일은 전쟁때나 많을 뿐. 일상 생활에는 다른 마법직들이 더 활약한다. 이번에 부탁받은 눈보라를 막는 도구도, 원래의 정비사가 따로 있을 것이다. 매번 우리같은 비싼 몸값을 가진 마도사들이 왔다간, 무시못할 양의 돈을 보수로 내야 할 것이니까 말이다.

  "원래라면 그렇겠지. 고치는 것은 정비사가 하면 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엔 마도사만큼 적임인 자가 없을 걸."

  "어째서인가요?"

  항상 한마디가 더 날아온다. 질문이 많은 것도 그녀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승으로써는 전부 대답하기에는 너무나도 귀찮지만, 그녀가 성장하기 위해선 의문이 필요하다.

  어느 학문을 공부하더라도, 그 원동력이 되는 것은 궁금증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과 그 일들의 원인을 찾고 싶어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행위기에 선생으로써 아는 것들은 전부 알려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첫번째 이유는 날씨다. 옛날에는 그래도 잠잠했을 때 추위막이의 도구를 정비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늦장을 부리다가 눈보라가 와버린 듯 하네. 아마 정비사가 제대로 된 방한 마도구가 없어서 우리를 부른 거겠지. 마도사는 이런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어서 의뢰 1순위다."

  그녀는 코트의 안에서 한 손에 들어갈만한 작은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그렇게까지 수업을 진지하게 듣지 않아도 될텐데. 사실 한귀로 흘려도 되는 내용이라고 하기에는, 소녀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 미처 꺼내지 못했다.

  "그렇군요. 이것 말고 다른 이유도 있겠죠."

  "두번째 이유는 마수들이다. 이 주변에는 흉포한 짐승들이 넘쳐난다고들 하지. 아직 동면에서 깨어나지 않았다면 다행이지만, 잠들지 않았던 놈들은 한껏 사나워져 있을 거야. 정비사에게 호위까지 붙혀주는 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나가서 말이지. 우리들은 싸울 수 있으니 괜찮은 거다."

  오히려 마수들과 싸우는 것은 마도사의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호위를 데려가는 것이 아닌, 호위만 간다고 생각하면 더 알기 쉽다.

  그렇다고 해도 단순한 용병과는 대가가 크게 차이나지만, 그래도 효과는 확실하다. 마법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욱 더 중요한 문제다. 어지간한 어중이 떠중이가 아니라면 검 든 용병 열명 정도는 혼자 제압 할 수 있을 테니.

  비용도, 그렇게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다. 일단 마도사들은 방한도구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종이에 글 몇자 써주기만 하면, 혼자서 따뜻하게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굳이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그녀라면 대강은 눈치를 챘음에 틀림이 없었다. 일부로 눈치가 빠른 아이를 제자로 삼았으니, 알아차리지 못한 다면 같이 보내온 세월이 무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론…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정비사에게 압박을 주기 위한 일수도 있겠네. 나와 너처럼 이름이 알려진 마도사가 직접 고친다면, 그 도구를 강화시킨다는 명분을 대가며 쓸모없는 부품과 비용을 추가하지는 않을테니까. 한다면 그건 우리에 대한 도전이 되겠지."

  "어른들은 더럽군요."

  "당연하지, 마법에 관련된 일이면 더 더러워지는 법이야."

  어른들이 좋아하는 돈을 무한정으로 쏟아낼 가치를 가진 보물의 원석이, 마법인 셈이니까. 어느날 갑자기 마도왕 같은 것이 나타나서, 이런 문제들을 없애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만서도.

  시답잖은 소리와 수업을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눈앞에 탑이라고 하기엔 비실한, 그렇다고 막대라고 하기에는 두꺼운 철의 나무가 서있었다.

  푸른 빛이 감도는 철제도구에, 여러가지 마석들이 박혀 찬란한 빛을 내고 있었다. 지면에 가까운 쪽에 달린 반쯤 깨진 보석들만 제외한다면.

  "숲에서 낙오된 멧돼지가 머리를 부딪치기 라도 한건가. 아주 화려하게 망가져 있네."

  "시간이 좀 걸리겠네요."

  그녀의 말대로, 오래는 걸리지 않지만 빨리 끝날 일도 아니었다. 어차피 마법으로 추위도 해결했으니 한동안은 바깥에 나와도 상관 없었지만.

  하지만 워낙 쉬운 일이라 유능한 조수에게 맡길 것이 없으니, 제자가 무료하게 시간을 때워야 한다는 것이 조금 거슬리기는 하였다. 굳이 데려올 필요가 있었나 후회가 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아, 부서져버린 마석들을 손쉽게 교체해가며 수리를 계속해 나갔다. 빠르게 손상된 부품들을 교체해 나가다가 알아챈 것인데, 이 눈을 막는 마도구에는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수작질을 해놓은 듯이 모든 마법 각인이 어설프게 되어있던 것이었다.

  어쩌면 마도구 정비사가 돈을 뜯어내기 위해 하자를 남겨두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야생동물의 피해로 망가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조금 정교하게 만들어진 어설픔이었다.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그게 내가 받은 인상이었다.

  "선생님, 동물들이 몰려오는 것 같습니다."

  위화감의 정체를 확실히 하기도 전에, 제자의 보고가 공상중인 자신을 생각의 늪에서 끄집어냈다. 정신이 팔려있느라 알아채지 못했는데, 이제보니 멀지 않은 숲에서부터 수십마리의 마수들이 이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얼핏 보이는 모습으로는 덩치가 꽤 되는 녀석들 사이에 곰도 몇마리 섞여있는 것 같은 데. 숲속에서 엄청난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것은 낮게 깔린 짐승의 울음소리가 전부 설명해 주었다. 아무래도 상당히 미움받고 있는 모양이다.

  이미 경계를 하고있는 소녀는 자신의 어깨를 가볍게 두번 두드리더니, 이곳을 바라보며 자신이 무언가 말하기를 바라는 듯 보였다. 그렇게 까지 딱딱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돌아가면 융통성을 제대로 가르쳐야 할 듯 하다.

  "어차피 이 주변에서는 마법 써도 되니까, 적당히 쫓아내기 만 해."

  "알겠습니다."

  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마자, 그녀는 마법의 영창을 시작했다. 수십마디는 더 되는 고난도의 영창문을 보니 저녀석들을 섬멸해버릴 기세라, 미리 양쪽 귀를 틀어막았다.

  붉은 빛과 흙먼지가 흩날리며, 주위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바뀌었다. 주위의 눈이 빠른 속도로 녹아갔고, 마수들 중에서도 몇마리 눈치가 빠른 놈들은 걸음아 나살려라 하며 도망갔다.

  … 아무래도 돌아가서 반성문을 쓰게 될 듯 하다.

 

 

 

 

 …

 

 

 

  어느새 해는 하늘의 정 중앙에 위치해, 점심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허나 아직도 눈폭풍은 사라지지 않아, 바깥으로 나오는 용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매서운 바람이 집을 흔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던 곳에, 작은 종이 딸랑딸랑 울리며 누군가의 방문을 맞아주었다. 그 소리의 근원은 드워프(난쟁이)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 반쯤 얼어붙다 싶이 한 사람 두명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였다.

  "생각보다 오는게 늦었구만. 일이 오래걸렸나봐? 이런 날에 밖에서 일을 하다니 참 딱하네."

  인심좋은 식당주인은 불쌍한 흄(사람)과 하프엘프(혼혈 숲사람)에게 따뜻한 물을 건내주며 걱정의 말을 건냈다. 나는 그 호의를 받아들여 그대로 목구멍에 들이부었고, 동행인 제자는 조금씩 혀를 담궈가며 몸을 녹였다.

  "일은 일찍 끝났는데 말이야, 좀 곤란한 일이 생겨서."

  나는 아직도 덜덜 떨리는 입술을 녹여가며 대답했다. 그런 자신을 보고 여성은 다 비워진 잔에 온수를 다시 채워주었다. 옆에 앉아있는 소녀는 애써 시선을 피하면서, 물을 홀짝였다.

  내가 말한 대로 업무는 상당히 일찍 끝났다. 마도구의 수리같은 것은. 특히나 이번 의뢰의 것과 같은 간단한 물건은 고치는데에 그리 긴 시간도, 힘도 들지 않는다. 짐승들이 이 도구의 소음에 몰려든다는 것도 알아내서 고쳤지만 큰 대수는 아니였다.

  그러나 자신의 자랑스러운 제자가 해낸 것이다. 고작 곰 몇마리 쫓는데에 거창한 마법을 사용해서, 그놈들이 숨어있던 산의 일부를 그냥 소멸시켜 버렸다. 인명피해가 없던 것이 기적이었다.

  덕분에 영주에게 한껏 혼이 났고, 반성문에 그치지 않고 피해보상까지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산을 원상복귀 시켜놔 돈을 쓰는 일은 없었지만서도.

  하지만 피해를 되돌리는 과정에서 불마법을 금지당해 추위를 버티게 해주는 마법을 쓸 수 없었다. 결국 두껍지도 않은 천쪼가리에 의지해 몇시간 가량을 버틴 것이다.

  "난 혼날 짓을 시킨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뭐라 대꾸를 할 수가 없네요."

  풀이 제대로 죽어 어색한 미소만을 띄우고 있는 그녀에게 격려를 해줄까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번에는 도를 넘었으니 괜한 말은 하지 않도록 하였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풀릴테니 상관 없겠지.

  그렇게 미묘한 공기만이 흐를 무렵. 식당의 부엌에서 흐르는 강렬한 향기가 정적을 일깨웠다. 고기와 각종 화끈한 향신료들이 섞여, 식욕을 돋구는 좋은 전채요리가 되었다.

  한껏 부풀려진 기대를 가지고 내 옆을 바라보니, 자신과 똑같이 흥분한 듯이 눈을 반짝이는 소녀에게 눈길이 닿았다. 그녀또한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자신을 바라보았다. 잔뜩 기대한 것이 들통나서 부끄러운지, 그녀는 멋쩍은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어쩐지 자신도 조금 우스운 기분이 되어버렸다.

  아까까지의 불편한 공기는 어디로 갔는지, 제자와 나는 앞으로 나올 요리의 정체를 유추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식 하나만으로 이런 분위기가 된다는 것이, 참 신기한 듯 하다.

  대화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점심이 준비되었는지 주인이 직접 쟁반 위의 그릇 두개와 함께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어, 우리 가게 명물인 사슴 통째로 수프야."

  그렇게 말하며 내려놓은 그릇 안은 야성미 넘치는 건더기들과 진득하고 투명한 국물로 가득 차 있었다. 강력한 향기와 끓어오르는 수프의 온기가 먹기도 전부터 만족감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두껍게 썰어낸 사슴고기. 하나 하나가 숟가락을 넘는 두께였고, 그럼에도 적당한 온도로 익혀냈는지 살짝 분홍빛이 돌았다. 겉은 직화로 가볍게 구워냈는지, 먹음직스러운 무늬가 인상적이다.

  그 다음으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통통하게 살찐 순무들. 국물을 잔뜩 머금었는지 조금만 건드려도 슬라임마냥 부들거렸다. 그 외의 채소로는 투박하게 썰린 감자, 붉은 고추, 얇게 썰어낸 생강과 마늘. 그리고 적당한 크기로 손질된 당근이었다.

  더이상 바라보기만 하는 것도 실례인 것 같아, 빠르게 숟가락을 들어올린 후 먹을 준비를 갖췄다. 제자의 스프도 적당히 식혀서 준 것인지, 그녀도 이미 돌입할 태세를 마친 모양이다.

  "잘 먹겠습니다."

  우선 국물의 맛을 음미하기 위해 숟가락을 두터운 건더기들 사이로 밀어넣는다. 오랜시간동안 끓여낸 육수인지, 끈적하게 달라붙는 감각이 제대로다.

  갈색 빛을 띄면서도 투명한 액체를 입에 머금어 본다. 처음에 혀를 강타하는 것은 뼈 육수 특유의 구수한 맛. 녹진하게 녹아내린 고소한 풍미에는 잡내가 하나도 나지 않아, 동물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 후에 느껴지는 고기의 감칠맛과 표면의 불향이 어우러져 더욱 무거운 맛을 자아내고, 피를 조금 섞어 넣었는지 담백한 느낌이 깊이를 더한다.

  고기의 맛 만이 아니라 채소의 풍미또한 푹 고아져 자연스레 섞이고 있었다. 순무의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육수가 자칫하면 무거운 육수를 감싸주고, 마늘의 고소함과 생강의 산뜻함이 다채로운 맛을 선사했다. 알게 모르게 들어간 후추는 잡내를 완벽히 잡아주면서도 매콤하게 변화를 준다.

  이 모든게 녹아들어간 국물은 쫀득하다 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점성이 있는 수프지만, 그렇게 까지는 거슬리지 않아 부담감 없이 넘어간다. 한 모금 뿐이었지만, 충분히 혀를 즐겁게 해주었다.

  "스프가 정말 맛있네."

  "그렇지? 며칠동안 열심히 끓인거니까 말이야, 맛없으면 안되지. 돈을 많이 얹어줬으니 아끼던 후추도 조금 넣어봤어. 몸이 따뜻해 질거야"

  하긴 후추가 이제 가격이 내려갔다고 해도, 아직 그 가치는 다른 조미료 와는 비교가 안될 것이다. 그럼에도 특별히 넣어줬다는 것에, 어쩐지 훈훈함을 느낀다.

  충분히 국물을 즐겼으니 이제 내용물을 파고 들 차례다. 숟가락으로 수프의 건더기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가장 큰 고기덩어리를 들어올린다. 표면이 기름기로 반들거리며, 스푼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지만 그 모양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치 아름답게 세공된 보석을 보는 듯 하였다.

  입에 가져간 후 한입 크게 베어무는데, 이빨이 고기를 파고듬과 동시에 녹아내렸다. 푹 조려진 사슴은 표면만 아주 살짝 직화의 바삭함이 남아있을 뿐. 부드럽게 사그라드는 육질은 잇몸으로 씹을 수 있을 정도로 말캉말캉하게 변해있었다. 그 내부에서는 한껏 농축된 진한 육즙이 흘러나왔고, 씹을 때마다 고기의 결 사이사이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감칠맛의 원액이 터져나왔다. 지방이 그리 많지 않아 기름지지 않고 담백한 맛. 사슴 특유의 알게모르게 나는 숲의 향기. 그렇다고 거슬릴 정도로 짙은 냄새는 아니라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게다가 겉면의 그슬린 자국에서 불 향이 살아나, 겨울이지만 따뜻한 숲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 하다. 이 요리의 중심 답게 묵직하고 인상적인 맛을 자아낸다.

  이번에는 색이 변하다 못해 아예 주변과 동화되어있는 순무를 머금는다. 물을 빨아들여 한껏 퉁퉁하게 분 순무는 과일이라 착각될 정도로 단맛을 잔뜩 품고있었다. 이것또한 조금 건드린 것 만으로도 표면이 뭉개질 정도인데, 씹으면 또 아삭함이 남아있다. 절묘하게 끓여낸 솜씨에 의식하지 않아도 미소가 흘러나온다. 순무만의 아삭함과 약간의 아작거림. 식감이 단조로울 수도 있는 부드러움 사이에 의외성을 더한다. 사실 그렇게 기대하지는 않은 쟤료인데, 의외로 주연이 흔들릴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했다.

  "고기가 너무 강렬해서 묻힐 뻔 했는데, 순무가 정말 맛있네."

  생각보다 더 만족스러운 결과물에 한껏 웃음을 머금고, 옆의 동행인에게 감상을 전했다. 아무래도 그녀 또한 취향에 들어맞았는지, 겉으로만 봐도 행복해 보이는 기운을 발산하며 수저를 놀리고 있었다. 큼지막하게 썰린 감자를 입에 집어넣은 그녀는 뜨거웠는지 입을 끊임없이 움직이며, 자신에게 말해왔다.

  "감자도 포슬포슬한게 잘 익었네요. 그리고 맛이 아주 잘 배었어요."

  "그런 말을 들었는데 안먹어 볼 수가 없지."

  나는 바로 그릇의 중앙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노란 황금을 떠내 감상한다. 거짓말로라도 섬세하다고는 할 수 없이 투박하게 썰린 뿌리채소는, 오히려 그 적당한 모양이 요리의 분위기와 맞아 자연스레 섞인다. 아무리 뜨거운 것을 좋아한다고는 해도 입 안이 데이는 것은 좋아하지 않기에, 표면을 조금 불어 식힌 후에 먹었다.

  아직 그 온기를 중앙에 간직하고 있어, 제자가 한 것 처럼 하후하후 뜨거운 김을 뱉어내가며 씹는다. 정말 이상적인 감자의 정석처럼, 씹자마자 포근하게 부스러지며 부드러운 감각이 입안에 퍼져나간다. 겉은 짭쪼롬 하게 양념이 배어 적당한 간을 유지하고 있지만, 워낙 크기가 큰 탓에 중심은 감자 본연의 맛 그대로다. 하지만 그 특유의 달콤함이 순무와 수프의 것 과는 또 달라, 입안의 즐거움이 더욱 더 다채로워진다.

  이제 중요 쟤료들은 전부 하나씩 음미해 보았으니, 마음대로 퍼먹을 시간이다. 나는 한 숟갈에 양껏 건더기를 얹은 후, 입 안에 털어넣는다. 고기의 육즙과 순무의 식감, 감자의 달큰함이 자칫하면 너무 지나칠 고추의 매콤함을 잡아주고, 생강의 알싸함과 후추의 매운 맛이 균형을 잡아준다. 그러면서도 기본이 되는 뼈 육수는 한결같이 진하고, 또 깔끔한 맛을 자랑하고 있었다.

  한껏 음식을 만끽하고 있는데, 아까의 여주인이 다시 이쪽을 향해서 걸어온다. 이번에도 무언가를 접시위에 가득 담고 걸어오는 그녀의 눈빛에는 약간의 미안함이 섞여있었다.

  "화덕이 오늘따라 안 덥혀져 좀 늦었지만, 직접 구운 빵이야. 수프에 담궈먹으라고."

  그렇게 말하며 내미는 접시는 짙은 갈색의 빵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아마도 전부 밀가루로 만드는 대신에 다른 곡식을 같이 갈아넣어, 양을 늘리려 한 노력이 색깔로 드러나는 것이겠지. 그러나 불만을 말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빵은 방금까지 불길의 옆에 놓여져 있었음을 증명하듯이 뜨끈한 온기를 가득 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먹었다가는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만 같아서, 양손으로 부여잡은 후 천천히 반으로 쪼개갔다. 갈라진 빵 사이에서 구수한 향기와 함께 열기가 흘러나왔다.

  제자에게 접시를 내민 후. 우선은 스프를 건드리지 않고 빵 본연의 맛을 맛보기로 하였다. 적당한 크기로 찢어 베어무니, 다소 투박한 식감이 자신을 반겨주었다. 구수한 곡식의 맛이 씹을때마다 특유의 폭신하면서 조금 딱딱한 느낌과 함께 몰려와, 입안을 든든하게 채워준다는 감상이 들었다.

  스프도 상당한 맛을 자랑했지만, 식감에 관해서는 다소 일관적인 느낌이었다. 부드럽게 조려진건 좋지만 전부 부들부들하니 조금 씹을만한 것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욕구를 딱 알맞게 채워주는 빵이 있으니, 더욱 더 만족감이 부풀어간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얇게 뜯어내어 눅진한 국물에 듬뿍 담가 먹는다. 거뭇한 빵을 들어올리니 끈적하게 묻어나오는 스프가 식욕을 자극한다. 흘리지 않도록 잘 돌려 정리한 뒤에, 입 안 가득 쑤셔넣는다.

  아까 맛본 빵의 고소한 맛과 진하면서도 지나치게 달라붙지는 않는 육수의 맛. 맵싹한 맛이 은은하게 감도는 것이 아까보다 덜 자극적이어서 좋다. 빵 자체에는 약간의 소금 간 빼고는 들어있지 않을터인데, 곡물과 스프의 감자가 어우러져 달큰한 풍미를 자아낸다.

  기껏 열심히 만들어낸 진미의 액체가 희석되어 맛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조금 걱정했지만, 기우였던 듯 하다. 여전히 강렬한 맛은 남아있었고, 뭣하면 오히려 빵이 잡아먹힐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이곳의 빵은 곡식을 어느정도 남기고 구워, 향과 식감이 다채롭고 풍부하다. 만약 스프와의 균형을 생각 한 것이라면 주인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주고 싶다.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며 옆자리를 힐끗 바라보니 엘프소녀는 요령좋게 고기를 빵 위에 올려가며 먹고있었다. 정말 맛있다는 듯이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 상태로 우물거리는 그녀를 보니, 어쩐지 공복감이 더 심해졌다.

  나 또한 질 수 없지라며 다시 빵을 집어들고, 건더기들을 숟가락으로 건져 빵에 얹어먹기 시작했다. 고기의 불향, 감자의 달콤하면서 포근한 맛. 순무의 아삭거리는 달큰함. 모두 다 돌아가며 정신없이 먹었다. 국물은 식어가지만 후추의 덕분인지 몸이 점점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나와 조수는 손을 빠르게 옮겨가며 먹고, 머금고, 씹으며 또 먹었다.

  중간에 꿀물도 쉴세없이 시켜가며, 스프를 거덜내고. 또 빵이 남았으니 다시 사슴 스프를 시키고, 또 새로 시키고 먹기 시작하니 빵이 없어지고 말았다. 뭐 그러한 이유로, 배를 다 채우고 나니 탁자위에는 몇장의 큰접시와 그녀와 내 앞에 비어있는 세개씩의 그릇들이 남아있었다. 여주인도 이런 먹성을 자랑하는 손님은 많이 보지 못했는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 선생님은 비싼 식당에 가면 항상 허탕치시던데, 이런 곳은 잘 찾으시는 것 같네요."

  만족한 듯이 얇게 미소를 지은 조수는 배가 불러 나태해졌는지 식탁 위에 상체를 올린 뒤 이곳을 바라보며 그리 조롱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선 칭찬일 수도 있겠지. 특히 이런 식사를 하고 난 참이라면 말이다.

  "그건 터무니 없는 오해일 걸. 내 맛있는 음식을 찾는 눈은 정확해. 지난번에는 지인의 추천을 받아 갔을 뿐이야."

  "친구는 잘 골라 사귀셔야죠."

  "그러게."

  도란도란 식후의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드워프 여성이 다가와 계산서를 내밀었다. 역시 그만큼이나 먹었으니 아까 낸 돈으로는 부족하겠지 싶었는데 이게 왠걸. 오히려 잔돈과 함께 놓여져 있었다.

  확실한지 그녀의 표정을 살피니, 너무 많이 줬다는 듯이 불평하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은 상당히 싼 가격으로 장사하는. 이를테면 서민의 휴식소 같은 곳인 듯 하다. 다음에는 곤란하지 않을 만큼의 액수만 내도록 다짐하며, 나와 하프엘프의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벽에 걸린 코트를 떼어내고, 제자의 옷을 입혀준 뒤 문고리를 잡았다. 아까 이곳을 나설 때 와는 다르게, 훈훈한 온기가 온몸을 감싸 따스한 느낌이 감돌았다. 이러면 어느정도의 냉기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바깥으로 나서려고 하니, 뒤에서 자신들을 걱정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벌써 돌아가도 되겠어? 한참을 걸어가야 할텐데, 이런 추위에 나가는 건 추천하지 않아. 오늘은 가게에 사람도 없으니 눌러앉아 있다 가도 된다고."

  "걱정마. 이제 눈보라는 안올테니까 걸어가도 상관없어."

  아무래도 이 따뜻함은 스프 덕분만은 아닌 듯 하다. 그러나 자신을 걱정할 필요는 없기에, 나는 웃으며 답변했다. 의야해 하는 주인을 내버려두고 바깥으로 문을 열어 나가니, 서늘하지만 나름 버틸만한 겨울바람이 불어왔다.

  어느새 눈은 내리지 않고, 따스한 햇빛마저 비추고 있었다. 마치 해의 아이가 동신(겨울의 신)을 물리친 동화속의 이야기 처럼, 아까까지 내리던 눈은 거짓말이었던 것 마냥 사라져, 어느새 이른 봄의 풍경을 보여주는 듯 했다.

  추위에 떨던 아스렐 사람들도 이변을 눈치채 누구의 소행인지 궁금해 하면서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사방에서 눈을 치우는 사내들의 소리, 쟁여두던 빨래들을 꺼내 바깥에 말리며 나누는 아낙내들의 대화소리. 마냥 눈이 그친 것을 즐거워하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아직 겨울은 가시지 않았지만 모두들 눈보라를 없애준 이름모를 은인에게 감사하며, 조금 늦은 하루일과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 시각 동신을 물리친 두명의 젊은 마도사들은 소복히 쌓인 눈을 밟으며, 그들의 안식처로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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