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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11.9

'문 여는 자'의 2권입니다. 글의 흐름 안에서 조금 더 박진감 있게 그려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재미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24
작성일 : 21-03-29 07:26     조회 : 369     추천 : 0     분량 : 8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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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오후로 넘어가는 시간, 표목사는 급한 전화를 받은 후 은지를 대동하고 밖으로 나섰다. 오래되어 보이는 자그마한 하얀색 승합차가 건물 옆 골목 안쪽에 세워져 있다. 차량 옆에는 교회의 이름과 연락처,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라는 글자가 눈에 잘 띄는 형광색으로 칠해져 인쇄되었다. 표목사가 운전석에 앉고 옆좌석으로 은지가 차 문을 열고 올라앉는다.

  “오늘을 넘기시기 힘드신가 봐요?”

  “최대한 빨리 와달라고 하는 걸 보니 그런 것 같구나. 연세가 많으셔서 오늘 내일 하셨는데 갑자기 악화되셨다는군.”

  차가 막히지 않는 시간이라 수월하게 병원주차장에 도착한다. 표목사가 뒷좌석에서 복장을 갖추는 동안 은지는 예배 집전에 쓸 몇 가지 서적과 도구를 챙긴다. 두 사람이 들어선 병실은 말기 환자용 일인실이다. 병실 안과 바깥 복도는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표목사를 알아본 사람들이 앞을 터주어 막힘없이 병실 안에 도착했다. 중년의 여자가 다가와 인사를 건네며 눈에 눈물을 글썽인다.

  “어머니가 자꾸 목사님을 찾으셨어요.”

  “잘 연락 하셨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제가 열 길을 달려서라도 옵니다. 연락 주길 잘 하셨어요.”

  침대에 누워있는 노인은 눈을 뜨기 힘에 겨운지 눈꺼풀을 반쯤 감은 채로 가쁘게 숨을 몰아쉰다. 표목사가 조심스레 노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리고 말을 걸어보지만 노인은 거칠게 호흡을 유지할 뿐 아무런 대답을 않는다. 이미 반쯤 의식을 잃었다. 표목사는 말을 조금 더 붙여보다 반응이 없자 은지에게 신호를 보내 준비를 시킨다. 곧 떠날 자를 위한 마지막 예배가 시작된다. 표목사의 집도에 따라서 성경구절이 읽혀지고 찬송가가 불려진다. 노인을 위한 단체기도를 할 차례가 되자 다들 고개를 숙이고 합장을 한다. 노인 주위로 모였던 가족들 중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자도 있다.

  표목사와 은지가 엄숙하게 예배를 치르는 동안 은숙과 상철은 외과병동을 돌며 모정식이라는 이름을 찾아 헤매는 중이었다. 어떻게든 찾아내겠다는 각오를 한 은숙과 달리 상철은 생각 없이 그저 은숙의 뒤를 따르기만 한다. 그런 상철이 신경 쓰이는지 은숙은 가끔 뒤를 돌아본다. 거의 복도 끝에 도달했을 즈음 찾던 이름을 확인한다.

  “아, 찾았어요. 그렇게 헤맸는데 이제 나타났어요.”

  굳게 닫힌 하얀 문에 압도됐는지 은숙은 선뜻 문을 열고 들어서지 못한다. 그런 은숙을 옆에 있던 상철이 의아하게 바라본다.

  “왜 그러세요? 안 들어가실 겁니까?”

  “모르겠어요. 의사선생님이 내가 이미 죽었다고 하면 그럼 어쩌죠?”

  그 말을 듣고 반쯤 초점을 잃고 있던 상철의 눈이 또렷해진다. 얼굴에 힘이 들어가더니 은숙을 대신해 힘껏 문을 열어젖힌다.

  “그럴 리 없다니까요! 죽긴 누가 죽습니까? 우리 집사람도 은숙 씨도 오래오래 건강히 살 겁니다. 말도 안 되는 걱정 하지도 마세요.”

  방문이 열리자 두 명의 간호사가 보인다. 한 명은 20대 중반의 앳된 얼굴이고, 그 맞은편 사람은 30대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은 모습이다. 서로를 마주보고 한창 얘기를 나누던 중 예기치 않은 방문에 적잖이 놀란다.

 “어떻게, 오셨죠?”

  고참으로 보이는 간호사가 일어서며 말문을 연다. 의시가 거주하는 곳은 문을 하나 더 열고 들어가야 하는 안쪽 방이다. 상철이 나서서 묻는다.

  “모정식 선생님을 뵈려고 하는데요.”

  말을 하면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약속 잡고 오신 거세요?”

  어린 얼굴의 간호사가 한쪽 눈으로 고참 간호사를 보며 상철에게 묻는다. 말을 꺼내면서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눈치를 살피고 있다. 고참 간호사는 상철이 바로 문 앞까지 이르자 어렵사리 그 앞을 막아서며 다시 묻는다.

  “약속하셨어요? 예약 안 하시면 선생님 뵙기 곤란하세요. 이렇게 무작정 들어오시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은숙은 손가락을 들어 지그시 깨문다. 상철을 따르기도 그렇고 되돌아 나가기도 곤란한 상황이다. 이제 어린 간호사까지 합세해서 문 앞을 막아서자, 상철이 그들을 다급히 밀치며 문을 열어젖힌다.

  “아니, 이보세요!”

  정식은 앞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책상 위 서류에 필기를 하는 중이다. 벌컥, 열린 문에 자동적으로 눈이 돌아가더니 빠르게 들어서는 상철을 보고만 있다.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상철을 주시하는데 뒤로 들어선 간호사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한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이 환자분이 갑작스레 들이닥치셔서.”

  “모정식 선생님이시죠?”

  자신을 잡아끄는 간호사를 밀쳐내며 상철이 책상 바로 앞까지 다다른다.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

  손에 든 펜을 내려놓고 다른 손으로 안경을 고쳐 잡는다. 상철의 뒤에서 간호사가 원망스런 눈으로 노려본다. 상철이 문 밖에다 대고 외친다.

  “들어오세요, 은숙 씨. 여기 모정식 의사선생님 계시네요.”

  정식은 아직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방 밖에 있던 어린 간호사는 들어서는 은숙을 막아서야 할지 지나가도록 나둬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다. 천천히 은숙이 들어서자 고참 간호사도 딱히 앞을 막아선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함은숙입니다. 알아보시겠어요?”

  “누구, 시더라?”

  정식은 안경을 위로 올려 은숙의 얼굴을 자세히 살핀다. 그래도 확신에 서지 않는 표정이다.

  “제가 맡은 환자분이신가 보죠? 어쩐 일로 이렇게 급히 오셨는지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주저하며 안으로 들어선 은숙은 정식의 대답에 입매가 일자로 다물어진다. 한층 착잡해진 모습이다.

  “벌써 잊으셨어요? 선생님이 직접 집도해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맡은 환자들의 수가 워낙 많다보니 한 분 한 분 기억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디 아프셨지요?”

  은숙이 병명과 수술이 집도된 부위를 열거해도 정식은 기억해내질 못한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자료를 찾아봐도 될까요? 일일이 기억을 하기 힘들어서. 성함이 뭐라고 하셨죠?”

  정식이 컴퓨터에 연결된 마우스를 클릭하며 이름을 묻는다.

  “함은숙이에요. 함, 은, 숙.”

  정식이 저장된 파일을 찾는 동안 상철, 은숙, 두 명의 간호사 모두 정식을 보며 기다린다. 갑작스레 흐르는 정적에 다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난감하다. 상철이 은숙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파랗게 질린 얼굴로 정식이 은숙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성함이 정말, 함은숙 씨 맞습니까?”

  “네. 함자 은자 숙자입니다. 함은숙.”

  은숙을 봤다 다시 화면을 보는 정식의 행동이 부산스러워진다. 간호사들은 영문을 몰라 의사의 행동을 주시한다. 상철이 은숙의 손을 잡아주자 은숙은 힘을 줘서 마주잡는다.

  “이건, 어, 파일이 오류가 난 것 같은데. 잠시만요. 수술기록이 어디 있더라.”

  은숙이 천천히 말을 꺼낸다.

  “선생님. 그래서, ……, 확인하러 왔어요. 저, 수술실 들어가서 못 나왔지요?”

  간호사들은 은숙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서로 묻듯이 쳐다본다. 고개를 흔들어대며 수술기록을 내려다보던 정식은 갑자기 번개를 맞은 사람처럼 등을 꼿꼿이 펴더니 은숙의 얼굴을 뚫어져라 확인본다.

  “어, 어, 다, 당신은…….”

  은숙이 그 앞으로 다가가 팔을 잡고 흔든다.

  “선생님! 수술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이거 쉬운 수술이라고 하셨잖아요? 제가 왜? 왜?”

  간호사들은 은숙을 말리고 싶어도 정식의 태도가 이상해 주시하고만 있다. 은숙의 태도에 정식은 더욱 기가 질려 말을 더듬고 땀을 흘리기 시작한다.

  “아니, 저, ……, 그, 그게, ……. 그땐 말이죠. 그게 급작스레 출혈이 생겨서…….”

  말을 미처 끝맺기 전에 머리에 뭔가 충격을 받고 이제 깨어난 듯 소스라치며 일어선다.

  “아니, 이게 뭐야! 내가 지금 누구한테 설명하는 거야! 으아악!”

  그제야 은숙의 존재를 머리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팔을 잡고 있던 은숙을 밀어서 떼어내더니 상철의 어깨를 밀치고 나가 문 밖으로 나선다. 그 기세에 놀란 간호사들은 다급하게 벽으로 붙어 길을 내준다. 순식간에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난 후 엉거주춤 벽에 기대있던 은숙에게 상철이 다가간다. 이번에는 은숙이 상철을 밀어내고 나선다.

  “선생님, 저기요. 말씀해주세요. 선생님!”

  “이봐요, 은숙 씨!”

  “어머, 저기요! 병원에서 이렇게 뛰어다니시면 안 돼요!”

  고참 간호사의 말에 그 옆에 있던 간호사 머리에 문득 떠오른 문장은 ‘의사가 뛰어가는데 환자가 그 말을 듣겠어요’ 였다. 한편, 은지와 표목사는 준비한 과정을 끝마친다. 엄숙한 예식이 끝나고 표목사는 주변을 돌며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위로의 인사를 건넨다. 은지는 주변정리를 한 후 잠시 쉴 겸 복도로 나가 일렬로 길게 놓여진 의자를 발견한다. 어두운 색으로 통일한 복장 때문에 모두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여자가 의자 끄트머리에 앉아있다.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화사한 색감의 옷을 입었고 손에는 필기구와 수첩을 들고 뭔가를 적어가느라 바쁘다.

  수지는 써내려가던 동작을 멈추고, 이번에는 가방에서 얇은 태블릿 컴퓨터를 꺼내 검색을 시작한다. 웹사이트를 찾아 훑어보는 사이, 메모를 하며 손을 멈추지 않는다. 수지 혼자만 무채색 세상에서 도드라지는 컬러를 가진 존재 같다. 은지는 수지 곁으로 가서 앉더니 궁금했던지 했던지 슬쩍, 말을 건다.

  “많이 힘드시겠어요.”

  “네?”

  “가족 중에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건 무척 힘든 일이잖아요.”

  은지가 안쓰러운 미소를 짓는다. 수지는 그런 은지의 말투와 행동을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얼떨떨한 얼굴이다.

  “저, 무슨 말씀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수지는 손에 들었던 태블릿 컴퓨터와 필기구를 내려놓고 당황스런 표정으로 은지를 관찰한다.

  “저기 병실에 계시는 분 가족 아니세요?”

  “가족이요?”

  은지가 가리키는 병실을 보더니 어색한 웃음으로 답한다.

  “아닌데요. 잠깐 여기 자리가 나서 앉아있을 뿐인데.”

  “어머, 죄송해요. 저는 가족 분이신 줄 알았어요. 실례했네요.”

  “괜찮아요.”

  짧게 웃어준 수지는 금세 시선을 다시 태블릿 컴퓨터 화면으로 옮긴다. 은지도 가만히 그 방향을 따라서 눈길을 준다. 화면 위쪽에 ‘일파만파 사건사고’라는 큰 글자들이 자리한다. 은지는 태블릿 화면에서 눈을 떼서 밑에 내려놓은 수첩 위 글자들을 훑는다.

  “저기, 기자세요?”

  “네? 아, 예. 병원에 잠깐 취재하러 왔어요.”

  은지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영 마뜩찮은지 수지는 말을 섞을 의도가 없다는 티를 역력히 드러낸다. 그녀가 하던 일에 계속 몰두하는 와중에도, 은지는 호기심을 숨기지 못하겠는지 반복해서 힐끔, 거린다. 수지가 몸을 움직이면 다른 곳을 봤다 뭔가에 집중하는 것 같으면 은근히 눈을 돌린다. 쓰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고개를 쭉, 빼서 보려다 얼굴을 돌리는 수지와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친다. 무안해하는 은지를 향해 수지의 눈썹이 살짝 올라간다.

  “아프신 분한테 안 가보세요? 많이 위중하신 듯한데. 옆에 계셔야죠?”

  하아. 은지가 어색한 웃음과 섞어 얕은 숨소리를 낸다.

  “저는 가족이 아니라 교회에서 봉사하러 왔어요. 마지막 가시는 길 조금이나마 위로해 드리려고.”

  “봉사하러 오셨으면 더 열심히 하셔야죠. 가족들 힘들 때 도움이 되어야지 한 눈 파시면 되겠어요?”

  불쾌하게 쳐다보는 수지의 시선을 뒤로 하고 은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색한 듯 목을 쓰다듬던 은지는 병실 쪽으로 향하다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달려오는 것을 발견한다. 그 뒤에는 환자복을 입은 두 남녀가 뒤따른다. 맨 앞 남자 등에 대고 여자가 소리친다.

  “선생님! 잠시만요, 선생님!”

  여자의 외침에 선생님이라고 불린 남자는 대답 대신 입에서 이상한 신음소리만 흘린다. 환자복을 입은 남녀를 간호사 두 명이 거의 따라잡았다. 그들 앞을 남자가 막아선다.

  “이러지 마세요. 병원에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잠깐 얘기만 하겠다는데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환자를 피합니까? 우리가 무슨 죄 지은 사람이라도 됩니까?”

  상철이 간호사들과 몸싸움을 하는 사이 은숙이 저만치 사라진다. 수지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는 손에 든 태블릿 컴퓨터와 필기구를 그대로 가방 안에 집어넣고 은숙을 따라 나선다. 은지는 머뭇거리다 수지가 황급히 일어나 은숙을 따르자 그 뒤를 쫓아간다. 은숙에게 팔을 잡힌 정식은 하얗게 핏기가 가신 얼굴로 부들부들 떨어댄다. 안경은 위태롭게 코에 걸쳐서 자칫하면 바로 아래로 떨어질 듯하다. 자기 팔 위에 놓인 은숙의 손이 무서운 감염체라도 되는 듯 내려다보고 있다.

  “선생님, 잠깐만요. 제가, 제가 수술 받으러 들어가서 어떻게 됐는지 말씀해주세요. 그것만 알면 돼요. 제발, 말씀해주세요.”

  정식은 은숙의 손을 떨쳐내려 하고, 은숙은 어떻게든 그런 그를 붙잡으려 한다. 실랑이가 계속 되다 거의 놓여날 상황에서 은숙이 악을 쓰며 팔을 휘두른다. 허연 가래떡이 팔목 아래에서 튀어나오더니 정식의 허리께를 휘감아 두른다. 몸을 빼던 정식은 허리에 가해지는 압력에 등이 휘면서 바닥 위로 넘어진다. 은숙은 바닥에 널려진 가래떡과 손에 쥔 백설기를 보며 놀라 그 자리에서 멈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다. 손 아래를 훑어보지만 눈에 띄는 건 아무것도 없다. 정식은 바닥에서 잠시 퍼덕거리다 허리에 매달린 가래떡을 집어던지고 균형을 잡으려 몸을 일으킨다. 은숙이 멍한 표정으로 있다 일어나서 도망가려는 정식을 보고 손에 든 백설기를 던진다. 날아간 백설기가 어설프게 뒷머리와 목 사이를 치고 지나가자 정식이 뒤를 돌아본다. 숨 고르기가 힘에 겨운지 거칠게 몰아쉰다. 손을 들어 막듯이 앞으로 휘젓는다.

  “이제, ……, 이제, 그만 합시다. 아무래도 닮은 가족분이신가 본데요, 의료사고는, ……, 휴, 언제든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함은숙 환자분 상황도 그랬던 거예요.”

  정식의 말을 듣던 은숙은 손을 내린다. 툭. 찹살떡 두 개가 아래로 흘러내린다. 은숙은 주변에서 굴러다니는 떡들에 더 이상 괘념치 않는다. 정식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간다.

  “선생님이 그랬잖아요. 아주 쉬운 수술이라고. 이틀만 입원하면 된다고.”

  “그게, 쉬운 수술이라도 언제나 잘못될 가능성이…….”

  “저 똑바로 보세요! 제가 바로 함은숙이에요!”

  정식은 은숙의 고함소리에 흠칫, 놀라며 안경을 고쳐 잡는다. 은숙이 점점 다가올수록 정식은 조금씩 뒤로 물러난다.

  “그럴 리가. 함은숙 씨 사망증명서를 내가 작성했는데. 함은숙 씨라고요?”

  은숙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고 원망에 가득찬 시선이 정식의 얼굴을 향해 꽂힌다.

  “억울해서, 너무 억울해서, 저 땅 밑에서 따지러 왔어요!”

  흥분한 몸짓으로 정식의 어깨며 가슴께를 쳐대는데 그와 동시에 팥떡이 팔 아래에서부터 튀어나온다. 무수히 쏟아지는 팥떡들이 정식의 머리와 상체를 향해 사정없이 날아든다. 안경은 어느새 어딘가로 날아가서 보이지 않고 코는 정통으로 떡에 맞아 그 아래로 피가 흘러내린다. 입고 있던 가운은 팥투성이가 되어 검은 물이 들었다. 복도를 따라 정식의 비명소리가 울린다. 뒤따라오던 수지와 은지가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게 진동한다. 정식은 덮쳐오는 팥떡세례에 맞아 코와 입술에서 피를 흘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넘어진다. 수지가 먼저 멈춰서고 그 뒤로 은지가 도달한다.

  “어라, 저 아줌마였어?”

  “네? 아시는 분이세요?”

  “나도 저 떡에 당했거든. 도대체 어디다 넣어서 들고 다니는 거야? 내가, 세상에, 살다 살다 떡 테러는 처음 보네.”

  “떡 테러요?”

  말을 하면서도 은지는 자신이 보고 있는 상황이 실감나지 않는다. 은숙의 팔 아래에서 빠져나오는 팥떡에 맞아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정식이 땅 위로 거꾸러진다. 그 위로 계속 팥떡이 쌓인다. 허리 위 상반신은 거의 전체가 떡으로 뒤덮여서 사람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수지가 날카롭게 소리친다.

  “이봐요, 아줌마! 그러다 사람 잡겠어요. 그만해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정식을 내려다보던 은숙이 고개를 옆으로 든다. 손에서 쏟아지던 떡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수지를 보는 눈에는 적의가 가득하다.

  “이 사람이 그랬어. 아주 쉬운 수술이라고. 입원도 이틀만 하면 된다고. 그런데, 그런데, 결국 못 깨어났어.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놓고, 그래놓고, 내 얼굴을 기억도 못하잖아!”

  수지가 달래듯 고개를 끄덕인다.

  “억울하시겠어요. 부당한 일을 당하시고. 마취에서 제대로 깨지 못하셨다면? 부작용이 심했나요?”

  은숙은 수지가 하는 말을 받아들이느라 잠시 멈추더니 더욱 크게 고함을 지른다.

  “부작용이라니? 그래, 아주 심한 부작용이다! 너무 심해서 아예 숨을 멈췄다!”

  “숨을 멈추다뇨?”

  “나, 죽었다고!”

  수지의 앞에서 은숙이 양팔을 흔들어대자 이번엔 인절미가 나오고 그 뒤를 무지개떡이 따른다. ‘또 떡이야!’라는 비명과 함께 수지가 날아오는 떡들을 쳐내며 비켜선다. 뒤에서 보던 은지는 황급히 한쪽으로 몸을 숨긴다.

  ‘이건 정상이 아니야.’ 은숙의 뒤를 자세히 훑어보더니 결국 찾던 것을 발견했다. 황급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연결을 시도하자 곧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민호야. 빨리 여기로 와야겠어. 지금 당장.”

  “응?”

  민호의 목소리를 확인한 은지는 다짜고짜 자신이 있는 병원 안 위치를 알려준다. 예상치 못한 은지의 말에 민호는 당혹스러워 그저 어, 어, 하는 단절음만 뱉어낸다. 다급한 은지의 말투에 더 이상 묻지 않고 최대한 빨리 오겠다는 답과 함께 전화를 끊는다.

  바닥에 보이는 떡들의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 인절미, 무지개떡, 조랭이떡, 가래떡, 찹쌀떡, 백설기, 팥떡, 거기다 은지가 좋아하는 쑥떡까지. 은지는 상황이 이렇지만 않았다면 정말 반가운 마음으로 떡들을 반겼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은숙이 앞으로 나선다. 수지와의 거리가 아주 가깝다. 은지의 손에 땀이 맺힌다. ‘어쩌지’라는 단어만 머릿속에 계속 떠올린다.

  “민호야, 빨리 와.”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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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 2021 / 2 / 21 390 0 4769   
19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 2021 / 2 / 21 366 0 5361   
18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 2021 / 2 / 21 376 0 4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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