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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11.9

'문 여는 자'의 2권입니다. 글의 흐름 안에서 조금 더 박진감 있게 그려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재미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22
작성일 : 21-03-15 07:23     조회 : 363     추천 : 0     분량 : 2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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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밖에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마저 없다면 바로 앞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둡다. 건물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만이 희미하게 안을 밝혀줄 뿐이다.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기만 하던 남자는 무대 중앙으로 나서듯 앞을 향해 발을 뗀다. 병국과 가까이 붙어있던 은하는 그 거리가 어색해 훌쩍 뛰어오르더니 건너편으로 넘어가 사뿐히 착지한다. 아이들은 서로의 눈치만 본다. 주로 지시를 내리곤 하던 태영과 영수가 아무런 말이 없다. 주변을 훑어보던 남자가 모두에게 들릴 수 있게 큰 소리로 입을 뗀다.

  “이제 다들 차분해진 것 같군. 대화를 나누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병국과 은하를 포함해 주위 아이들 모두 남자만 바라본다. 숨소리를 제외하고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여러분을 도우러 온 겁니다.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에요. 언제까지 여기서 이렇게 숨어있을 생각인가요?”

  “숨어있는 게 아니라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인데요.”

  태영이 대답하자 남자는 그런 태영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나한테는 숨어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무엇을, 어떻게, 어떤 식으로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어요.”

  태영은 말없이 남자를 노려본다.

  “서로에게 득이 되는 방법을 찾으면 그게 최선이 아닐까? 각자 원하는 걸 얻을 수 있게 힘을 합치자는 거지.”

  “저희한테서 뭘 원하시는데요?”

  이번에는 영수가 끼어든다.

  “먼저 말할 기회를 주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이 뭐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재유가 냉큼, 대답한다.

  “맞아요. 집에 가고 싶어요. 아빠, 엄마가 많이 걱정하실 텐데.”

  “부모님 뵈러 갈 수 있게 도와주지. 그건 전혀 어렵지 않아.”

  영수가 재유를 향해 인상을 쓰자 얼른 입을 다문다. 영수는 심각한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천천히 입을 연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방법을 찾자고 하셨는데, 저희는 뭘 해드려야 하는데요? 우리 아버지가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고 했어요.”

  이번엔 남자가 조금 더 커다란 미소를 짓는다.

  “똑똑한 학생이네. 축구만 잘 하는 게 아니라 공부도 열심히 했겠어?”

  태영이 그를 노려보며 말한다.

  “저희가 축구부인 줄은 어떻게 아셨죠?”

  “복장이 그렇잖아. 신고 있는 신발도 축구화고.”

  광규가 태영의 뒤로 다가와서 말을 거든다.

  “아까 그건 어떻게 한 거죠? 덕남이를 이상한 잎사귀로 가둬서 꼼짝 못하게 했잖아요.”

  “우리 중에 마술사가 한 명 있긴 하지.”

  “아주 유능한 마술사.”

  병국이 오른손 엄지와 중지를 튕기자 장미 한 송이가 손에 잡힌다.

  “저거야. 저 장미꽃잎.”

  덕남이 미간에 힘을 주며 기분 나쁜 얼굴을 한다.

  “마술?”

  “더한 것도 할 수 있지. 마저 보고 싶어?”

  “애들 장난은 나중에 하도록. 지금은 하던 얘기를 마저 끝마쳤으면 하니까. 자, 서로 도울 의향이 있는지 알고 싶은데. 그럴 수 있겠어?”

  남자가 병국의 말을 자르며 빚진 걸 내놓으라는 듯이 집요하게 묻는다. 한참이 지나서야 태영이 답한다. 목소리에는 어떻게든 대화의 주도권을 쥐려고 노력하는 빛이 역력하다.

  “우리 도움이 왜 그렇게 필요하죠? 우릴 얼마나 안다고요?”

  “남다른 능력은 이 두 사람만 갖고 있는 게 아니야. 너희들의 능력을 높이 사고 그걸 빌리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으니까.”

  “우리가 가진 능력? 그걸 어떻게 알죠? 그 사람들도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왔는데.”

  “그 사람들?”

  남자의 표정이 홱, 달라지더니 의아한 눈길을 태영에게 고정시킨다. 정근이 태영을 대신해 답한다.

  “어떤 남자랑 여자랑 지나가다가 난데없이 따라오더니 우리보고 여기 있지 말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 사람들 정말 이상했어요.”

  은하가 흥미로운 얼굴을 하며 손을 들어 턱을 만진다.

  “우리 말고 영들을 찾아다니는 자들이 또 있나?”

  “나는 얘기 들은 게 없어. 다른 영들이 돌아다니는 건가?”

  병국은 팔짱을 끼더니 입술 위로 작은 미소를 올린다.

  “이거 점점 재미있어지는걸.”

  영수가 굳은 얼굴로 소리친다.

  “영이요?”

  “분, 분명 영이라고 했어.”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낸 재유가 다급하게 다른 아이들을 본다. 머리를 긁어대며 재찬을 부른다.

  “재찬아. 너도 기억이 난다고 했잖아. 버스를 타고 가다가, ……, 문제가 생겼다고.”

  “그렇지만 영이 뭐야? 우리가 영이라는 거야?”

  남자가 은하와 병국을 향해 눈썹을 살짝 들어올렸다 내린다. 은하가 남자의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한 발 뒤로 물러난다.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남자가 건네는 말을 태영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덮는다.

  “어떤 일이 생긴 건지 제대로 얘기해주시면 도와드릴게요. 저희에 대해 아시는 걸 말씀해주세요.”

  남자는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듯 하자 입을 닫고 잠시 생각에 빠진다. 태영이 그런 그를 재촉한다.

  “어떻게 저랑 다른 애들이, ……, 높이 뛰어오르고, ……, 생각지도 못하게 빨리 움직이는 거죠? 우리, ……, 정상이 아닌 건가요?”

  병국이 어깨를 으쓱거린다.

  “사실대로 말해줘도 될 듯한데요.”

  남자는 그런 병국을 불만스럽게 바라본다. 고개를 돌려 열 명의 아이들을 둘러보자, 눈을 맞추는 자도 있고 그 시선을 피하려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그때 너희들이 버스에 올라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모든 일이 벌어졌지.”

  남자의 설명이 끝날 때까지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다. 짧고 간략하게 요약된 설명이었지만 말이 끝날 때까지 아주 긴 시간이 흘렀다고 느낄 듯하다. 아이들은 작은 움직임 하나 없이 모두 집중해서 경청했다. 그의 설명이 모두 끝나고 각자 나름대로 전해들은 이야기를 소화해내기 위해 노력한다. 커진 눈동자가 보이고 입을 벌린 채 닫지 못하기도 한다. 다들 많이 놀라서 제대로 남자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게 역력하다. 덜, 덜, 떨어대는 아이도 있다. 마치 바로 지금 사형선고를 받은 듯이.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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