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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달빛이 그린 나라
작가 : 서늘솔길
작품등록일 : 2021.2.15

신개념 설렘 가득 첫사랑 로맨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는 상처치유 로맨스!!!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엿 볼수 있는 가슴아픈 이야기!!!

17세기 우리나라역사에 실제로 존재했던 조선 제 16대 임금 인조의 아들인 소현세자와 그의 부인 세자빈 강 씨(강빈)의 삶과 사랑을 소설 속 가상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 소설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소현세자와 강빈 부부를 삶과 그들이 하고자 했던 꿈을 이야기 하는 동시에 그 시대에 사람들이 격은 고통, 삶을 들여다본다.

*이 소설은 실제 역사 속 인물을 모티브 한 소설로 실제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 등과 많이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제6화-내가 그대에게 다가갈 수 없는 이유
작성일 : 21-02-24 14:32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14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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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날 밤.

 

 매화나무거리에서 왈패들과의 일이 있은 후, 혜와 한빛은 으뜸이 데리고 온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 동궁을 호위하는 관청)의 호위를 받으며 궐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문은 왈패들에게 한 한빛의 말을 떠올리며 나오는 웃음을 꾹꾹 눌렀다.

 

 그 말이 거짓말이라고 해도 그저 순간적으로 나온 내뱉은 말이라고 해도 문은 그저 좋았다.

 

 다쳤던 곳이 고통을 주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반면, 한빛은 머릿속에서 수없이 이불을 걷어찼다.

 

 자신도 모르게 깊숙이 숨겨놓은 마음을 입 밖으로 나왔으니, 이불이 아니라 머리를 쥐어박아도 시원치 않은 한빛.

 

 궐에 도착했을 쯤.

 

 “이제 거의 다 와갑니다. 오늘 고마웠어요, 한빛 양.”

 

 “아, 예.”

 

 한빛은 문의 시선을 피했다.

 

 “늦었으니 그만 돌아가십시오. 이보게들 아씨를 댁까지...”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혼자갈 수 있습니다.”

 

 “그래도 밤이 어두운데...”

 

 “왈패들하고도 혼자 싸운 저인데 그깟 어두운 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빛의 호의가 어색하고 그와 있는 이 순간이 부끄럽고 불편하여 손사래를 쳤다.

 

 “그나저나 저하. 아까 제가 한 말은...그것이...”

 

 “무슨 말이요?”

 

 “저...그것이...아까 왈패들 앞에서 한 말. 제가...제가 저하를...”

 

 한빛은 도저히 입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아까 나도 정신이 없어 한빛 양이 무슨 말을 했는지 다 까먹었습니다. 그자들에게 무슨 말을 했습니까?”

 

 문은 한빛이 부끄러울 것을 염려하여 모르는 척을 했다.

 

 “아, 못 들으셨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문,

 

 다 잊었다는 문의 반응에 안도하며 마음속 깊이 숨을 내쉬는 한빛.

 

 하지만 그래도 문의 눈빛, 저 염려하고 배려해 주는 눈빛 때문에 뭔가 찜찜한 한빛.

 

 그리고 적막이 문과 한빛, 두 사람사이에는 적막이 흘렀다.

 

 두 사람의 적막은 으뜸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뻘쭘하게 만들었다.

 

 “그만 돌아가십시오.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예, 그럼 저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적막을 깨고 먼저 뒤돌아서 집으로 향하는 한빛.

 

 문은 한빛을 쉽게 보내준다.

 

 달빛에 비추어진 한빛의 그림자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을 미련이 남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문,

 

 “내가 그대를 많이 좋아합니다.”

 

 그리고 어렵게 입 밖으로 꺼내는 고백.

 

 차마 그녀 앞에서 망설였던 고백을 그녀를 쉽게 보내준 후에야 문은 마음에 감춰놓았던 진심을 어렵게 내비춘다.

 

 문의 진심어린 고백을 듣고 있던 으뜸과 주변 사람들은 뻘쭘함이 배가 되었다.

 

 오히려 고백을 들어야 할 당사자인 한빛보다 얼굴에 부끄러움이 묻어버린 한으뜸과 익위사군사들.

 

 익위사군사들은 애써 모른 척, 안 들은 척을 했다.

 

 하지만 으뜸은 달랐다.

 

 문을 한심하게 쳐다보는 으뜸.

 

 “깜짝이야!”

 

 으뜸의 시선을 온 몸으로 느낀 문은 으뜸을 보고 놀랐다.

 

 “뭐, 뭘 봐?”

 

 말을 더듬는 문.

 

 문의 당황스러운 반응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으뜸.

 

 그리고 궐 안으로 먼저 앞서 들어간다.

 

 “저게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게.”

 

 먼저 들어가는 으뜸의 뒷모습에 신경을 부리는 문.

 

 

 ***

 동궁전에 도착하여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누운 문.

 

 자리에 누운 문은 낮에 있었던 한빛의 말을 떠올렸다.

 

 ‘그래! 너희들이 건든 이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헤헤, 헤헤헤.”

 

 한빛이 얼떨결에 내뱉은 말.

 

 그 말과 함께 한빛과 있었던 모든 장면들이 눈 속에 스쳐지나가며 문은 으뜸이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잊어버린 채 실없이, 바보처럼, 눈까지 반달이 되며 헤헤거렸다.

 

 한빛의 그 말이 얼떨결에 나왔든, 진심이 아니든 그저 좋고 행복에 젖은 문.

 

 실속 없이 웃는 문을 유심히 지켜본 으뜸은

 

 ‘드디어 정신이 나갔네.’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래도 초면인 문의 저런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은 으뜸.

 

 항상 자신이 모시던 세자의 모습은 무표정이고 웃음이라고는, 미소라고는 입 꼬리만 살짝 올렸다, 내리는 모습이 전부라 때로 걱정할 때가 많았는데 저렇게 눈까지 반달이 되면서 까지 행복에 젖은 문의 모습을 보고 낯설면서도 덩달아 기분이 좋은 건 당연했다.

 

 동궁전은 처음으로 행복과 설렘이라는 낯설면서도 좋은 감정으로 가득 찼다.

 

 

 ***

 한편, 한빛은 문과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아악! 미쳤어, 미쳤어! 재정신이 아니야!”

 

 라는 말과 함께 낮에 내뱉은 말 때문에 문에게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 꽁꽁 숨겨두었던 진심을 들킨 것 같아 어디론가 숨고 싶은 심정으로 방바닥을 이리저리 구르는 한빛.

 

 못 들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뭔가 찜찜한 한빛.

 

 문의 눈빛은 그게 아니었으니깐.

 

 뭔가 다 듣고 애써 모른 척해주는 눈빛이었으니깐.

 

 “미쳤어, 정한빛. 너 미쳤지? 그렇지? 그렇지 않고서야...”

 

 자책을 하는 한빛.

 

 한빛은 자책을 멈추지 않고 방바닥을 굴러다니다 방 끝에 이마는 박는다.

 

 그리고 일어나 눈을 감고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는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한빛.

 

 한빛은 애써, 어떻게든 그 일을 잊으려 노력하며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

 같은 시각, 대조전.

 

 대조전에는 현의왕후가 가례도감에서 올린 처녀단자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었다.

 

 현의왕후는 처녀단자를 하나하나 보면서 실망이 가득 찬 한숨을 쉬었다.

 

 현의왕후가 점찍어둔 며느리 감이 없었던 것이다.

 

 현의왕후가 일전부터 봐둔 며느리 감은 한빛이었다.

 

 현의왕후는 한빛이 딸 덕순과 벚이라 한빛을 잘 알고 있었다.

 

 사가시절 수줍음이 많아 벚이 없던 어린 딸 덕순에게 먼저 다가가 벚을 해준 따뜻한 성품을 가진 어린한빛을 보고 현의왕후는 한빛이 마음에 들었다.

 

 거기다 예의와 경우도 바르니 현의왕후는 그때부터 한빛을 아들 문의 배필로 점찍어두었다.

 

 그리고 평소 임금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진심을 다해 충언을 해 줄 수 있는 이가 왕실에 필요하다 여긴 현의왕후.

 

 지난 가을, 한빛의 당찬 행동을 보고 한빛이 그 이에 적합하다 느꼈다.

 

 그런데 일전에 문조와의 일 때문인지 정의영의 가문에서는 한빛의 처녀단자를 넣지 않았다.

 

 현의왕후가 한숨을 내뱉으며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밖에 조상궁있는가?”

 

 “예, 마마.”

 

 조상궁이 들었다.

 

 “자네는 지금 병조에 가서 병조판서가 아직 퇴청하지 않았는지 알아보게. 만약, 아직 궐에 있다면 중궁전으로 모셔오고.”

 

 “에, 마마.”

 

 조상궁은 곧바로 병조로 향했다.

 

 다행히 병조에는 병조판서 정의영이 퇴청하지 않았다.

 

 조상궁은 중궁전으로 정의영을 데려갔다.

 

 

 ***

 잠시 후, 정의영이 현의왕후의 부름을 받잡고 대조전에 들었다.

 

 “마마, 이 늦은 시각에 소인을 어찌 부르셨나이까?”

 

 “내 대감 댁 영애가 처녀단자에 보이지 않아 이리 불렀습니다. 혹, 따로 생각해 둔 혼처자리가 있으십니까?”

 

 조심스레 물어보는 현의왕후.

 

 “아닙니다, 없사옵니다.”

 

 아니라는 정의영의 말에 안도하는 현의왕후.

 

 “내 실은 그 댁 영애를 우리 세자의 배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한빛 그 아이가 심성이 따뜻하고 경우와 예의가 바른 아이라 내 사가에 있을 때부터 그 아이를 우리 세자의 배필로 점찍어 두었어요.”

 

 “제 딸아이를 그리 과대평가를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겸손한 정의영의 태도에 현의왕후는 흡족해했다.

 

 “허면, 내 전하께 한 달 뒤에 다시 간택령을 내려달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다시 간택령을...”

 

 “송구하오나, 마마. 마마께서 우리 한빛을 어여삐 봐주신 것에 대해 너무 감사하오나, 마마의 제안은 거절하겠나이다.”

 

 정의영의 거절에 현의왕후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연유를 물어봐도 됩니까? 혹, 왕실과 사돈을 맺는 것이 싫으십니까?”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마마. 왕실과 사돈을 맺는 것은 소인의 가문에 크나큰 광영이온데, 그만한 광영이 또 어디 있겠나이까.”

 

 “허면요? 일전에 전화의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런 것이라면 내가 바람막이가 되어드리겠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오라, 제 여식의 혼사는 그 아이가 원하는 혼처와 짝을 맺어주고 싶사옵니다. 간택에 참여하여 세자빈이 되면 좋은 일지만 혹여나 떨어지면 저하의 후궁이 되거나 평생 혼자 살아야 합니다. 어찌 그것을 딸을 가진 아비 된 자로 지켜만 볼 수 있겠나이까. 처녀단자를 넣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러한 까닭 때문에 처녀단자를 넣지 않았사옵니다.”

 

 정의영의 마음은 딸을 가진 어머니로 현의왕후는 이해했다.

 

 그래도 내심 섭섭했다.

 

 “알겠습니다. 내 대감을 마음을 어찌 모르겠소. 허나, 그래도 부탁합니다. 지금 조정에 대감과 좌의정 대감, 대사헌뿐 말고는 바른 말을 할 이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헌데, 왕실은 더합니다. 모두들 입에 꿀이라도 발랐는지 종친들이 입을 닦고 있어요. 지금 왕실에는 대감의 여식처럼 바른 말을 하는 이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대감. 한 번만 더 생각을 해주세요. 내 이리 간곡하게 부탁을 합니다.”

 

 현의왕후의 간곡한 부탁에 한 번 더 생각해 보기로 한 정의영.

 

 정의영의 대답에 조금만한 기대를 하는 현의왕후.

 

 

 ***

 다음 날, 날이 밝았다.

 

 “전하, 세자저하, 공주마마, 대군마마께서 드셨사옵니다.”

 

 문이 덕순, 민과 함께 대전에 들었다.

 

 자식들이 들었다는 소식에 지난 밤, 악몽에 시달려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문조는 급하게 일어나 단장을 하고 세자와 대군, 공주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으흠, 들라.”

 

 문조는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밤새 평안하셨사옵니까.”

 

 문과 덕순, 민은 문조에게 아침문안을 드렸다.

 

 그리고 뭔지 모를 서막이 흘렀다.

 

 “그래, 너희들은 밤새 잘 지냈느냐?”

 

 정적을 깨고 최대한 환한 용안으로 입을 여는 문조.

 

 “예, 전하.”

 

 “...”

 

 “예, 전하.”

 

 문과 민은 짧은 대답 한 마디였고, 덕순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식에게 다가가고 싶으나 자식들은 아버지를 밀어내는 상황.

 

 또 한 번의 정적이 대전을 가득 메웠다.

 

 문조는 두 아들과 딸이 어색하고, 불편하고, 섭섭했다.

 

 그건 문과 민, 덕순 또한 마찬가지였다.

 

 

 ***

 잠시 후, 민과 덕순이 먼저 일어나 대조전으로 향했다.

 

 문도 대조전으로 향하려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태평관(太平館 : 명나라 사신들을 대접했던 장소)에 머물던 경대인과 영의정 윤제혁과 우의정 김혁이 들었다.

 

 문조는 불편하지만 혼자 경대인이 아들보다 더 불편하고 거북하여 문에게 무언의 부탁을 했다.

 

 문은 할 수없이 대전에 발이 꽁꽁 묶여버렸다.

 

 문은 정사를 나누는 이 자리가 불편했다.

 

 “전하, 결정을 하셨나이까?”

 

 경대인이 물었다.

 

 “그것이 아직은...한 달이라는 시간을 준다고 하지 않으셨소?”

 

 “그렇기는 하오만...”

 

 경대인은 조급했다.

 

 후금과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조선의 도움이 절실했다.

 

 황제가 한 달이라는 시간을 줬다고는 하나, 한 달은 명나라가 역사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조선이 파병만 해준다면 충분히 후금을 명나라로부터 몰아낼 수 있다.

 

 그런데 조선의 임금인 문조가 아직 파병을 결정 못했단다.

 

 경대인의 입장에서는 국제정세에 까막눈인 문조가 답답할 노릇이다.

 

 “전하, 페하께오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주셨다고는 하나, 저희 본국의 입장은 조급하옵니다. 빨리, 가능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결단을 내려주시옵소서.”

 

 경대인은 문조를 닦달했다.

 

 경대인의 닦달에 문조는 김혁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전하, 명국과 우리 조선은 사대관계에 있사옵니다. 당연히 신하의 나라인 우리 조선이 명국의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순리에 맞사옵니다. 하오나, 파병은 우리 조선의 백성이 먼 타국 땅에서 고초를 겪을 수 있는 사안이옵니다. 조선의 백성을 먼 타국 땅에 버릴 수는 없사옵니다. 파병은 아니 된다 사료되옵니다.”

 

 우의정 김혁은 파병에 반대했다.

 

 김혁은 사대주의자로 명국과의 의리를 그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명나라에 그들이 차, 금, 은, 인삼 등 원한다면 앞장서서 내어줄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한 나라의 백성, 사람 목숨이 사대보다 중하지 않다.

 

 한 사람의 목숨이, 한 가정의 평화가 그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모든 상황을 남일 인 듯 지켜보던 문은 김혁의 예기치 못한 답에 김혁이 달리 보인다.

 

 “이보시오, 우의정!”

 

 경대인이 분노했다.

 

 김혁은 당연히 찬성할 줄 알았던 경대인은 그에 대한 배신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영의정께서도 같은 생각이시오?”

 

 이번에는 윤제혁에게 물었다.

 

 “그, 그것이...”

 

 윤제혁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경대인과 문조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잇지 못하는 윤제혁.

 

 “영상! 내 묻지 않소! 답답하기는 왜 이리 뜸을 드리시오!”

 

 경대인의 예민함이 날카로워 졌다.

 

 “당연히, 당연히 그래야지요. 전하, 우의정의 말도 일리가 있으나 대명국의 황제폐하의 명이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백성들을 모으시지요.”

 

 윤제혁은 겨우겨우 말을 이었다.

 

 윤제혁의 답에 역시나라고 생각하며 절레절레 흔드는 문.

 

 문조는 망설여졌다.

 

 가뜩이나 사람들이 자신을 임금으로 생각지도 않은데, 이번 파병까지 받아드리면 민심이 불같이 일어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황제의 명을 거절하면 후금과의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폐위시킬 것 같았다.

 

 명나라가 조선 내정이 관여할 권한은 없다는 것을 문조도 잘 알고 있지만, 명나라 황제가 압박을 가하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두통이 밀러오는 문조.

 

 “전하!”

 

 경대인은 망설이는 문조를 압박을 했다.

 

 “그만 두시지요.”

 

 이를 지켜보던 문이 무례한 경대인의 태도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지금 내게 한 말이오?”

 

 경대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문.

 

 그렇다는 문에 어처구니가 없는 경대인.

 

 “세자께서 내가 누군지 모르시...”

 

 “그대는 명국 황제폐하를 대신하여 온 사신이 아닙니까? 헌데, 어찌 사신이 일국의 국왕께 이리 무례할 수 있습니까? 대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폐하의 용안에 먹칠을 하는 거라고 왜 모르시오.”

 

 경대인의 무례한 태도를 지적하는 문.

 

 문은 아무리 자신이 외교와 정사에 관심이 없고, 무지하다고 할지라도 경대인의 태도는 예의에 어긋나보였다.

 

 도저히 사신으로 온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문의 지적에 아무런 반박을 못하는 경대인.

 

 경대인은 문의 지적에 손을 모으고 공손해졌다.

 

 “무례했다면 용서하시옵소서.”

 

 ‘내 저놈을...’

 

 그리고 속으로 이를 악무는 경대인.

 

 문조는 아들이 낯설면서도 조금은 의지가 되었다.

 

 입꼬리가 올라 갈 듯 말 듯 한 문조.

 

 “그래, 어렵게 입을 열었으니 세자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리고 문의 생각을 묻는 문조.

 

 문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질문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저 경대인의 무례한 태도를 지적할 뿐이 없었는데, 생각을 묻다니.

 

 문조와 김혁, 윤제혁의 눈치를 살피는 문.

 

 문조와 김혁, 윤제혁, 그리고 경대인의 시선들이 문으로 옮겨갔다.

 

 “그, 그것이 소인의 생각은 우상과 같사옵니다. 우상대감의 말처럼 소인 또한 조선의 백성이 먼 타국 땅에서 고초를 겪을 수 있는 사안이라 사료되옵니다. 백성의 생존여부가 달린 문제이온데, 어찌 영상대감처럼 그리 쉽게 결정할 수 있겠나이까. 만약, 파병을 하여 백성들이 머나먼 타국 땅에 희생양이 된다면 어떤 한 가정에서는 아버지와 자식을 잃을 것이며, 우리 왕실과 조정은 그들의 마음과 신뢰를 잃을 것이옵니다. 하여, 소인 또한 우상대감과 뜻이 같사옵니다. 반대이옵니다.”

 

 문의 상식적인 답에 내놓았다.

 

 하지만 문조는 아들의 답이 탐탐치 않았다.

 

 문조는 문에게 생각을 물었을 때부터 이미 결정을 내렸다.

 

 파병을 해야겠다고.

 

 그리고 당연히 경대인의 무례함을 다그치며 아비의 편을 들어준 아들이니, 문 또한 자신과 뜻이 같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란다.

 

 문에 대한 문조의 기대감은 한 순간에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

 결국, 아무런 결정 없이 나온 김혁과 윤제혁, 경대인.

 

 문에게 당한 지적을 치욕이라 생각하며, 대전에서 나오자마자 문의 욕을 했다.

 

 그리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태평관으로 돌아갔다.

 

 경대인이 태평관으로 돌아가고, 대사헌 조치형이 대전에 들었다.

 

 어떠한 두꺼운 서책을 들고.

 

 그 서책의 정체는 장부였다.

 

 장부 안에는 포도대장 김자영, 좌의정 윤선호, 호조판서 이승복이 구휼미와 내탕고 재산, 명나라 황제가 내린 하사품들을 중간에서 갈취한 내용들이 담겨있었다.

 

 조치형은 증거가 없는 한 믿지 못하는 문조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 장부를 사람을 시켜 이승복의 집에서 남몰래 빼왔다.

 

 그리고 그 장부가 조치형의 손에 의해 대전 코앞까지 왔다.

 

 “전하께 고해...”

 

 “잠시 기다리시게.”

 

 조치형의 손에 든 장부를 발견한 윤제혁이 그를 막아섰다.

 

 윤제혁을 빤히 바라보는 조치형.

 

 윤제혁은 장부의 정체를 짐작하고 조치형의 곁으로 다가 갔다.

 

 “잠시만 기다리시게, 대사헌.”

 

 그리고 친근한 척 조치형의 어깨를 감싸는 윤제혁.

 

 “어찌 그러십니까?”

 

 윤제혁의 행동이 당황스러운 조치형.

 

 “잠시 우리 집에 가서 얘기를 좀 나누세. 내 자네에게 긴히 부탁할 것이 있네.”

 

 “되었습니다.”

 

 윤제혁의 행동에 의아해 하면서, 장부가 그의 아우의 치부가 낫낫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챘다는 것을 짐작한 조치형은 그의 호의를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지 말고 같이 가세.”

 

 “호의는 감사하오나 소인의 이 책을 전하께 올려야...”

 

 “허면, 우의정이 보는 앞에서 자네가 자네의 서자를 적장자라 속이고 과거를 봤다 떠들어 댈까?”

 

 말이 통하지 않자 조치형의 귓가에 대고 그의 약점을 건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윤제혁.

 

 윤제혁의 협박이 통했는지 조치형은 그대로 윤제혁과 함께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를 지켜 본 두 사람의 행동에 김혁은 의구심을 품는다.

 

 

 ***

 윤제혁의 집.

 

 조치형에게 차분히 차를 건네는 윤제혁.

 

 하지만 조치형의 목에는 윤제혁이 건넨 차가 넘어가질 않는다.

 

 “어찌 아셨습니까?”

 

 입을 떼는 조치형.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는 윤제혁.

 

 “내가 어찌 알았든 그것이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내 아우와 자네의 치부를 서로 알았다는 것이 중요하지.”

 

 얍삽한 미소를 보이는 윤제혁.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상대감.”

 

 “원하는 거라?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자네 손에 들어 있는 그 장부.”

 

 “만약, 제가 이를 거절한다면?”

 

 “허면, 난 전하께 이 사실을 모두 고해야겠지. 자네가 서자를 적장자라 속이고 그 서자에게 과거를 보게 했다고 말이야. 그럼, 자네는 물론 자네의 서자까지 사사를 피하지 못할 것이야.”

 

 자신은 어찌 되어 좋으나 서자도 자식이다.

 

 자식의 목숨을 두고 협박하는 윤제혁 때문에 머뭇거리는 조치형.

 

 진실이냐, 아들의 목숨이냐.

 

 “고민이 되시면 내 이틀의 시간을 주겠네. 차분히 잘 생각해 보게. 자네의 선택에 따라 나와 자네, 그리고 내 아우와 자네의 서자. 모두 살수도 있다는 것을. 하하하.”

 

 비열하게 웃는 윤제혁.

 

 윤제혁의 참 기가 막힌 너그러움 때문에 조치형의 속에는 분이 차올랐다.

 

 

 ***

 같은 시각, 한빛의 집.

 

 한빛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어린 시절, 문과의 설레었던 첫 만남을 꿈을 꾸고 있는 한빛.

 

 한빛의 입가에는 웃음이 번졌다.

 

 그린데 문이 무릎에 있는 자신의 상처에 손을 대는 순간, 그 설레는 꿈은 악몽으로 변했다.

 

 문이 자신을 ‘주근깨 애기씨’라고 놀리던 장면, 문조의 사거에서 머리를 당기며 괴롭히던 장면.

 

 한빛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마음으로 옮겨갔다.

 

 마음에 커다란 멍이 생겨 꿈을 꾸고 있는 한빛의 마음을 칼로 찔러댔다.

 

 한 순간이었다.

 

 첫 만남에 심장이 부풀어 올라 설레던 꿈이 다시는 잊고 싶은, 지워버리고 싶은 꿈으로 변한 것이.

 

 그러다 조용히 눈을 떠 꿈에서 현실로 돌아온 한빛.

 

 그리고 한빛은 깨달았다.

 

 아직도 문을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동시에 문을 좋아하면 좋아 할수록, 그에 대한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에게 받았던 상처를 잊고, 덮으려고 해도 지워질 수 없는 그 기억으로 인해 다시 고통스럽다는 것을.

 

 문으로 인해 만들어진 상처는 잠시 잊혀 질 수 있으나, 그 기억까지는 지울 수 없다는 것을.

 

 한빛은 고통 받는 것이 두려워,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는 것이 싫어 문을 어떻게든 밀어내기로 결심했다.

 

 

 ***

 그날 밤, 동궁전.

 

 문은 아침에 대전에 있었던 일들을 으뜸에게 자랑을 하고 있다.

 

 그것도 하루종이 대전에서 나온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래서 말이야 내가 경대인에게 막 호통을 쳤더니 경대인의 굳어 가지고...”

 

 “예, 예. 우리 저하 참으로 멋있으십니다.”

 

 어쩐 일인지 문의 자랑을 다 받아주고 있는 으뜸.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반포기 상태다.

 

 “크윽, 역시 이문 넌 멋있어.”

 

 자신에게 취해도 너무 취해버린 문.

 

 문은 거울을 보며 잔망을 떨었다.

 

 그런 문을 보며 으뜸은 먼 산을 바라보며‘피식’거렸다.

 

 “저하, 박수현 들었사옵니다.”

 

 그때, 스승 박수현이 들었다.

 

 “스승님께서? 이 늦은 시각에?”

 

 문은 으뜸을 보며 어께를 으쓱거렸다.

 

 으뜸 또한 어떤 영문인지 몰라 어깨를 으쓱거렸다.

 

 “모셔라.”

 

 박수현이 안으로 들었다.

 

 “이 늦은 시간에 동궁전까지 어인 발걸음이십니까, 스승님?”

 

 늦은 시각에 동궁전에 든 것이 의아해 하며 문이 물었다.

 

 “저하께서는 제가 미래에 제가 모셔야 할 군주시면서 제가 가장 아끼는 제자이십니다.”

 

 뜬금없는 말에 고개만 끄덕이는 문.

 

 “제 저하께 숙제를 하나 내드리겠습니다.”

 

 “수, 숙제요? 어떤.”

 

 “석 달이라는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 석 달의 시간 동안 저하께서 앞으로 이 나라 조선에 어떤 군주가 되고 싶으신지, 또 어떤 군주가 되어 이 나라 조선을 어떻게 그리고 싶은 지 생각해 보십시오.”

 

 박수현의 숙제에 앞이 막막한 문.

 

 단 한 번도 상상하지도,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왜 이런 숙제를, 그것도 이 야심한 밤에 내주는 답답하기만 한 문.

 

 박수현이 이러한 숙제를 내주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난 해 가을, 시강원에서의 문의 대답을 듣고 박수현은 문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박수현은 자신이 사랑하는 제자 문을 위해서, 훗날 자신이 모셔야 할 군주 문과 조선을 위해서 문에게 목표를 가지라는 의미에서 이런 숙제를 내준 것이다.

 

 “그걸 어떻게 찾습니까?”

 

 칭얼거리는 문.

 

 “어떻게든 찾아 내셔야지요.”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생각입니다.”

 

 “그러니 소인이 일 년이라는 시간을 드린 것입니다. 어려운 것이니, 저하께서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한 것이니.”

 

 박수현은 이렇게 해서라도 문이 자신이 살고 있는 이유를 찾기를 원했다.

 

 반면, 문은 이 같은 숙제가 버겁기만 하다.

 

 

 ***

 박수현이 돌아가고 스승이 내준 숙제 때문에 골머리가 아픈 문.

 

 “그런 걸 어디서 어떻게 찾아.”

 

 문은 혼잣말로 칭얼거렸다.

 

 그러다 지난 번 한빛이 올린 상소문을 꺼내 읽었다.

 

 “아버지 같은 마음이라...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자식을 돌보아라...그니깐 그 아버지 같은 마음이 뭔데...내가 그리고 싶은 조선이라...”

 

 문은 눈을 감고 차분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박수현이 내준 숙제가 귀찮다 생각하여 귀찮은 것은 빨리 해치워버리겠다 심상으로 곧바로 동궁전 서고로가 이것저것 서책을 모두 살펴보았다.

 

 하지만 도저히 그 숙제에 대한 답이 나와 있지 않았다.

 

 골머리를 앓으며 동궁전 서고에서 밤을 지새우는 문.

 

 

 ***

 다음 날, 해가 중전인 오후 애정교.

 

 은금이 애정교 한 가운데 서서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해 봄, 자신을 구해준 파란 비단옷을 입은 사내를 생각하며.

 

 “내 님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혼자만의 짝사랑이지만,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일지라도 은금 마음 한 구석이 아프지만 두근거리며 그 사내를 생각했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낯익은 얼굴이, 자신이 그토록 그리던 얼굴이 눈에 띄었다.

 

 바로 자신이 방금 전까지 기다리던 그 이름 모를 파란 비단 옷을 입은 그 사내가.

 

 오늘은 봄답게 분홍빛을 비추는 옷을 입었다.

 

 그런데 그 사내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김자영.

 

 ‘완판남 보다 꽤 높은 양반인가?’

 

 라고 생각하는 은금.

 

 은금이 마음속에 품은 그 사내의 정체, 그 상대는 바로 문의 동생인 민이다.

 

 지난 해 봄, 은금은 사람이 많은 운종가를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덩치가 고래만한 술에 취한 중년의 사내가 은금에게 시비를 걸었다. 은금은 곤경에 처했다.

 

 도와달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외쳤지만 그 중년의 사내의 덩치를 보고 도와주는 것을 꺼려했다.

 

 때마침, 명나라 유학생활이 지겨워 북경을 아무도 모르게 떠나 파란색 비단옷을 입고 검은색 갓을 쓴 채 잠시 조선으로 와 있던 민 또한 그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민은 곤경에 처한 은금을 보고 은금이 있는 쪽으로 달려가 고래만한 중년의 사내를 제압하고 은금을 구해냈다.

 

 그 후, 민은 은금에게 괜찮다고 말한 뒤 가던 길을 가버렸다.

 

 은금은 그날 민의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짐을 했다. 꼭 민을 다시 만나 사랑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백목련이 핀 나무아래에서.

 

 민의 정체를 모르고 있는 은금은 저 먼 곳에서 애기를 나누고 있는 민의 얼굴만 보였다.

 

 그리고 민의 얼굴을 보며 환한 미소로 멍해 있었다.

 

 그가 점점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민이 은금의 앞에 왔을 때, 민은 자신의 얼굴을 환한 미소로 뚫어지게 보는 은금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무슨 영문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서, 자신이 아는 사람인가 해서.

 

 처음에는 자신을 보는 줄 모르고 주변을 살펴보는 민.

 

 하지만 주변에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확실하게 알아차린 민은 은금의 어깨를 흔들었다.

 

 “저가, 야! 애야, 정신 차려.”

 

 민이 흔들자 정신이 돌아온 은금.

 

 그리고 민이 바로 자신의 코앞까지 왔다는 것을 알고 순간 발을 헛디뎌 넘어지려고 은금.

 

 그런데 그 순간, 민이 넘어지려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자신의 곁으로 당겼다.

 

 “괜찮으냐?”

 

 은금의 심장이 빠르게, 아주 빠르게 뛰었다.

 

 “어! 그러고 보니 너는 그때...”

 

 은금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는 그녀를 기억하는 민.

 

 민이 자신이 누군지 알아보자 은금의 얼굴이 붉게 변하면서 귀에 이명이 들렸다.

 

 그리고 심장이 멎은 한 감정을 느꼈다.

 

 

 ***

 같은 시각, 저잣거리에서는 문이 으뜸과 함께 잠행을 나왔다.

 

 지난 밤, 박수현이 내 준 숙제에 대한 답을 찾을 겸.

 

 문은 새벽녘에 서고에서 여러 책들을 살펴본 끝에 그에 알맞은 답을 찾았다.

 

 날이 밝고 박수현이 입궐을 하자 곧바로 그에게 달려가 찾은 답을 말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문이 찾은 답은 세종(世宗, 조선 제4대 임금)대왕이 꿈꾸는 조선, 문종(文宗, 조선 제5대 임금)대왕이 그리려던 조선, 성종(成宗, 조선 제9대 임금)대왕의 군주로서의 모습 등 문이 아닌 역대 열성조들이 꿈꾸는, 그리고 싶은 조선이었기에.

 

 퇴짜를 맞은 문은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찾은 것이 아쉬워 포기할 수 없었다.

 

 뭔지 모를 오기가 생겨버렸다.

 

 그런데 하루 종일 동궁전 마루가 닳도록 돌아다녀도, 창덕궁후원을 몇 시간을 걸어도, 지금 이 순간 저잣거리를 덜어도 도저히 스승이 원하는 답이 뭔지 알 수가 없다.

 

 답을 찾지 못하고 계속 같은 곳만 맴도는 문.

 

 문은 걷고 또 걸었다.

 

 어떤 군주가 될 것이며, 또 어떤 군주가 되어 이 나라 조선을 어떻게 그려 나갈 것인지.

 

 

 ***

 걷고 또 걸은 문.

 

 문은 걸음의 끝에 자신도 모르게 매화나무 거리에 와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한 한빛.

 

 문은 한빛을 보고 심란하고 고민에 빠졌던 아까와는 달리 얼굴에 환한 꽃이 피어났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이 전과 다르게 어둡다.

 

 툭 치면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매화나무에서 떨어지는 꽃잎만 보고 있는 한빛.

 

 “한빛 양!”

 

 문은 한빛의 마음을 모르고 그녀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한빛을 불렀다.

 

 손을 흔들며.

 

 자신을 부르는 문의 목소리를 듣고 그를 발견한 한빛.

 

 문을 보는 순간 어두웠던 한빛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한빛은 더 이상 문을 보고 싶지 않았다.

 

 문을 보면 또 그가 또 좋아질 것 같아서, 좋아지면 그때의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를 것 같아서.

 

 한빛은 문에게 등을 보였다.

 

 “한빛 양!”

 

 그런 이유를 알 턱이 없는 문은 한빛에게 다가가 그녀를 붙잡았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시선도 피한다.

 

 내심 서운함과 섭섭함이 물든 문.

 

 “왜 나를 피하는 것입니까? 혹시, 내가 잘 못한 것이 있습니까?”

 

 한빛에게 서운함 가득 찬 목소리로 묻는 문.

 

 문의 물음에 답하지 않는 한빛.

 

 한빛은 조용히 그가 잡았던 손을 놓는다.

 

 또 한 번 그녀를 놓칠 수 없었던 문은 놓았던 한빛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이어진 고백.

 

 “좋아합니다.”

 

 문은 어렵게 전에 하지 못했던, 한빛이 모르게 했던 고백을 그녀가 들릴 도록 마음을 내비췄다.

 

 문의 고백에 가슴이 쿵하고 무너져 내린 한빛.

 

 한빛은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 문을 끊어내려 했지만 문의 고백에 다시금 흔들린다.

 

 한빛은 마음을 단단히 잡고 그가 또 다시 잡았던 손을 놓는다.

 

 그리고 미련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한빛.

 

 한빛에게 상처받은 문.

 

 문은 떠나가는 한빛의 뒤를 조용히 따른다.

 

 

 ***

 한빛을 따라 그녀의 집 근처에 당도한 문.

 

 집 근처에는 다섯 무리가 되는 아이들이 쭈그려 앉아 울고 있는 사내아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다섯 명의 아이들은 울고 있는 아이를 겁쟁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며 놀리고 있었다.

 

 놀리는 아이들에게 상처받은 사내아이.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문과 한빛.

 

 한빛은 그 아이의 모습이 마치 거울 같았다.

 

 어린 시절 문에게 상처받은 자신과 닮아 있었다.

 

 문 또한 놀린 아이들이 자신과 닮았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한빛.

 

 한빛은 놀리는 아이들을 사이를 뚫고 괴롭힘을 받고 있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애들아, 이 아이 우는 거 안보여? 너희들이 그럴 때마다 이 아이의 마음에는 새빨간 멍이 들어. 그리고 그 멍은 평생 씻을 수 없어.”

 

 “그저 재밌어서, 장난으로 그런 건데요.”

 

 “그 장난이 너희들에게만 재미있지, 이 아이한테는 재미가 없어. 그저 나를 괴롭히는 괴물과 같은 것이지.”

 

 놀리던 아이들을 조용히 타이르는 한빛.

 

 한빛의 타이름에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된 아이들은 괴롭히던 아이에게 사과를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빛의 타이름은 그녀가 그녀를 놀렸던 어린 시절 자신에게, 지금 현재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투영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운 문.

 

 아이들이 돌아가고 사내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앉은 한빛.

 

 한빛은 사내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아이의 등을 토닥거려주며 아이를 위로하는 한빛.

 

 아이는 한빛의 따뜻함을 느꼈는지 그녀의 품에서 울먹거렸다.

 

 한빛은 울먹거리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다시 일어나 아이의 머리카락을 만져주며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문이 자신을 따라왔다는 사실을 알고 뒤를 돌아 문을 보는 한빛.

 

 “보셨지요? 이게 제가 세자저하를 피하는 이유입니다.”

 

 “저기 한빛 양...”

 

 “더 이상 오지 마십시오.”

 

 다가오는 문을 막아서는 한빛.

 

 한빛은 점점 뒷걸음질 했다.

 

 한빛은 문과 거리를 두었다.

 

 아주 멀게, 문이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도록 아주 멀게.

 

 “저도 세자저하를 많이 좋아합니다. 헌데, 좋아하면 할수록, 사랑하면 할수록, 저하께 받은 상처가 같이 떠오릅니다.”

 

 “그때분명 내 사과를 받지 않았습니까. 분명, 그때 다 잊기로, 다 덮기로 했는데...”

 

 “예, 그랬지요. 허나, 잊는 다고하여, 덮는다하여, 상처받았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기억들이 다시 떠올라 저를 아프게 합니다. 저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습니다.”

 

 한빛에 말에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멈춘 문.

 

 문과 한빛, 한빛과 문.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처럼 멀어져갔다.

 

 하지만 문은 다가갈 수 없었다.

 

 한빛의 심정이 어떤 것인 줄 알기에.

 

 그녀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자신도 잘 아는 마음이기에.

 

 자신 또한 한빛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더 이상 다가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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