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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달빛이 그린 나라
작가 : 서늘솔길
작품등록일 : 2021.2.15

신개념 설렘 가득 첫사랑 로맨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는 상처치유 로맨스!!!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엿 볼수 있는 가슴아픈 이야기!!!

17세기 우리나라역사에 실제로 존재했던 조선 제 16대 임금 인조의 아들인 소현세자와 그의 부인 세자빈 강 씨(강빈)의 삶과 사랑을 소설 속 가상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 소설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소현세자와 강빈 부부를 삶과 그들이 하고자 했던 꿈을 이야기 하는 동시에 그 시대에 사람들이 격은 고통, 삶을 들여다본다.

*이 소설은 실제 역사 속 인물을 모티브 한 소설로 실제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 등과 많이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제5화-내가...내가...그대를...
작성일 : 21-02-22 14:04     조회 : 245     추천 : 0     분량 : 1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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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이야기-

 12년 전, 매화꽃이 활짝 핀 어느 봄날.

 

 어린 한빛과 은금이 꽃이 만개한 매화나무가 일렬로 서있는 거리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놀고 있었다.

 

 술래는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이긴 기념으로 술래를 하는 것으로 정했다.

 

 “가위, 바위.”

 

 “가위, 바위.”

 

 “보!”

 

 “보!”

 

 한빛은 보자기, 은금은 가위를 냈다.

 

 은금이 이겼지만 규칙에 따라 기쁨도 잠시 은금은 자동으로 술래가 되었다는 사실에 좌절을 맛봤다.

 

 술래가 된 은금은 섭섭함 없이 숨도 쉬지 않고 순식간에 수를 읊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은금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은금아, 천천히 세. 여기 숨을 때가 마땅치 않아.”

 

 “그건 네 사정이고. 못 숨으면 나야 좋은 일이지.”

 

 “좀 봐줘.”

 

 “열하나, 열둘, 열셋, 열넷, 열다섯...”

 

 은금은 인정사정 따위 없었다.

 

 숨바꼭질에서 술래가 이길 수 있게 냉정하게 수를 읊었다.

 

 한빛은 그런 은금이 너무 얄미웠다.

 

 “...아흔 셋, 아흔 넷...”

 

 백까지 거의 다 읊자 한빛은 초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커다란 나무 앞에 선 한빛.

 

 한빛은 저기 위에 숨으면 은금이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빛은 거침없이 나무를 탔다.

 

 무섭기는 했으나 그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아흔을 넘어버린 은금 목소리.

 

 그 목소리는 한빛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사라지게 했다.

 

 “아흔 아홉, 백...뭐야? 어디 갔어?”

 

 수를 읊은 은금은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한빛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은금은 한빛이 어디 멀리 숨지 않았으니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나무들 뒤만 살펴봤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땅으로 꺼졌는지 아니면 하늘로 솟았는지 은금은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은금은 점점 지쳐갔다.

 

 “열심히 찾아 봐라. 내가 나무 뒤에 있나.”

 

 그 모습을 보며 나무위에서 소리 없는 웃음을 내는 한빛.

 

 “한빛아, 너 어디? 못 찾겠다, 꾀꼬리.”

 

 한빛이 나무위에 숨었을 거라는 상상은 아예 하지 않은 채 한빛에게 두 손 두 발을 모두 든 은금.

 

 항복을 한 은금 목소리를 들은 한빛은 흐뭇하게 표정으로 지쳐있는 은금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나무위에서 내려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한빛이 앉아 있던 나뭇가지가 나무와 갈라지더니 나무와 이별을 고했다.

 

 나뭇가지가 부러지자 한빛 눈동자 동공이 커지면서 소리도 낼 틈 없이 나무와 이별한 가지와 함께 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쿵!’

 

 나뭇가지와 같이 추락한 한빛은 무릎이 땅에 닿는 바람에 무릎에 상처가 나버렸다.

 

 무릎에서 피나 나오기 시작했다.

 

 한빛은 그 자리에서 울상을 짓더니 곧바로 고통을 호소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한빛을 찾고 있던 은금은 우는 소리가 들리자 허겁지겁 나무에서 떨어진 한빛을 발견하고 곁으로 다가갔다.

 

 “이를 어째, 이를 어째.”

 

 은금은 피가 난 한빛 무릎을 보고 무엇을 어찌할 줄을 몰라 방방 뛰기만 했다.

 

 그때, 집에 가기 싫어 이리저리 서성거리다 그 길목을 걷고 있던 문이 멀리서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두 사람에게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냐?”

 

 은금에게 묻는 문.

 

 “나무에서 떨어졌는데 무릎을 크게 다쳤나봐. 이를 어째, 이를 어째. 지나가는 사람을 없고.”

 

 “봐봐.”

 

 문은 은금의 말을 듣고 한빛 앞으로 다가가 한빛 눈높이에 맞게 앉았다.

 

 그리고 한빛의 상처를 보는 문.

 

 “아!”

 

 “괜찮아, 괜찮아.”

 

 우는 한빛을 달래는 문.

 

 “어이고, 무릎에 많이 까졌네.”

 

 문은 한빛의 상처를 보고 옷소매에서 약과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덫 나지 않게 상처 위에 약을 살살 바라주었다.

 

 “아...아...”

 

 “괜찮아, 괜찮아.”

 

 아파하는 한빛을 다정히 달래는 문.

 

 약을 다 바른 후, 문은 손수건을 무릎에 살짝 묶었다.

 

 “이제 끝! 상처야, 상처야. 얼른 어여쁜 소녀 곁에서 멀리 멀리 날아가라.”

 

 문이 외치는 주문 때문에 훌쩍거리면서 살며시 웃음을 짓는 한빛.

 

 “그만 울어. 이제 나을 거야. 그만 뚝.”

 

 한빛 얼굴에 남아 있던 눈물을 따스한 손길로 닦아주는 문.

 

 그리고 한빛의 얼굴에 꽃잎 하나가 떨어지자 그 또한 손길로 떼어주는 문.

 

 문의 따스한 손길에 한빛의 심장이 간질간질하게 뛰었다.

 

 한빛은 얼음이 되어 버렸다.

 

 “이제 되었으니 난 이만 간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문.

 

 문을 붙잡고 싶은 한빛,

 

 “저, 저기. 약은 어디서 났어? 이거 손수건이랑.”

 

 “내가 많이 천방지축이라 몸이 성한 날이 없어서 날 낳아주신 분께서 내 상처는 내가 알아서 치료하라고 챙겨주신 거야. 손수건은 큰아버지께서 주신 거고.”

 

 “고, 고마워. 근데, 넌 어디 살아? 이거 빨아서 돌려줄게.”

 

 “됐어. 너 가져. 난 또 받으면 되니깐.”

 

 고맙다는 말에 쑥스러운 문.

 

 괜히 부끄러워 문은 어색한 걸음으로 뒤돌아 갔다.

 

 한빛은 문의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무릎을 보며 얼굴을 붉게 변했다.

 

 그날로 문을 자신의 눈에 담아버린 한빛.

 

 

 ***

 12년 후, 4월 15일 밤.

 

 동궁전에서 문이 거울을 보고 똑같이 생긴 갓을 번갈아 머리에 얹으며 어떤 것이 나은지 고민하고 있었다.

 

 혹시나 오늘은 한빛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어떠냐? 어떤 것이 괜찮으냐?”

 

 문은 으뜸에게 물었다.

 

 “...”

 

 “빨리 말해봐라.”

 

 으뜸 눈에는 아무리 봐도 모양이나 색이 똑같은 갓이었다.

 

 “소인 눈에는 똑같아 보이십니다.”

 

 “에이, 잘 보거라. 이게 똑같은 크기에 똑같은 색깔의 갓이라도 미세한 차이가 있어.”

 

 “소인 눈에는 다 비슷비슷해 보입니다, 저하. 갓이란 게 다를 것이 뭐 있겠습니까?”

 

 “그리 보는 눈이 없어서야. 하긴 궐에만 있는 네가 뭘 알겠냐.”

 

 입이 나올 대로 나오는 으뜸.

 

 “그래, 이걸로 정했다. 어떠냐?”

 

 문의 물음에 애써 웃으며 대충 고개만 끄덕이는 으뜸.

 

 “아무리 봐도 잘생겼어. 크윽, 넌 멋있어.”

 

 자신에게 취한 문을 보며 으뜸은 오글거려서 속이 매슥거렸다.

 

 먹은 것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눈을 질끈 감았다.

 

 으뜸은 문의 자아도취를 눈에 담기를 거부했다.

 

 “자, 이제 가보자.”

 

 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하, 오늘은 꼭, 꼭 해시(亥時 : 21시~23시)전까지는 반드시 돌아오셔야 합니다. 그때까지 환궁하지 않으시면 저와 박나인이 상선 어른께 혼이 납니다.”

 

 “알았다. 걱정하지 말거라.”

 

 “...”

 

 문은 으뜸에게 왼쪽 눈을 깜박거리며 나갔다.

 

 문의 잔망에 잠시 충격을 몸이 경직되고야 마는 으뜸.

 

 “한내관님, 한내관님.”

 

 복실이 으뜸의 팔을 흔들었다.

 

 “나, 오늘 세자하고 한 판 뜬다.”

 

 잠시 경직되었던 으뜸은 경직이 풀리자 잔망을 떠는 문을 더 이상 못 봐주겠어서 팔을 걷었다.

 

 그와 계급장을 떼고 한바탕 하기 위해.

 

 “아이, 한내관님이 조금 참으십시오.”

 

 으뜸을 막아서는 복실.

 

 

 ***

 정의영의 집.

 

 낮에 매화나무거리에 꽃이 만재했다는 은금의 소리를 듣고 한빛이 오랜만에 추억에 젖을 겸 집을 나섰다.

 

 “늦지 않게 오셔요, 아씨.”

 

 강일의 신신당부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빛.

 

 한빛은 매화꽃이 만개한 나무들을 볼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 한 구석이 설렘이 가득했다.

 

 

 ***

 매화나무거리에 도착한 한빛.

 

 그녀는 매화꽃 잎이 눈처럼 흩날리는 거리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한빛은 저절로 꽃잎이 흩날리는 거리 속으로 들어갔다.

 

 매화꽃이 만개한 매화나무들을 하나하나 지나치며 어린 시절 문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추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추억에 젖은 탓일까?

 

 다시금 문에 대한 그때의 감정이 천천히 수면위로 떠오른 한빛.

 

 그로 인해 아팠던 감정들, 그 기억들이 잊혀져갔다.

 

 

 ***

 그녀가 추억에 빠져있는 사이 문 또한 그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혹시나 하는 그 기대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펼쳐졌다.

 

 늘 밤마다 눈에서 아른 거렸던 한빛이 있었다.

 

 문은 이게 꿈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꿈인지 현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볼을 꼬집은 문.

 

 아프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파악한 문.

 

 문은 그때부터 심장이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이 설레면서, 좋으면서, 두려우면서, 손이 떨리고 눈을 깜빡깜빡 거렸다.

 

 그러다 한빛이 뒤를 돌아보자 문은 잠시 주춤하다 주위에 있는 나무 뒤로 숨어버렸다.

 

 하지만 이미 한빛의 눈에 띈 후였다.

 

 “후, 후. 못 봤겠지? 못 봤을 거야.”

 

 나무 뒤로 숨은 문은 심장을 부여잡으며 심호흡을 크게 한빛이 다 들릴 정도로 크게 쉬었다.

 

 한빛에게 들킨 줄 모르고 안심하는 문.

 

 반면,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 봤을 때 누군가 나무 뒤로 숨는 것을 본 한빛.

 

 문의 얼굴은 보지 못한 것 같다.

 

 숨소리가 거칠게 들리기 시작하고.

 

 그 숨소리의 주인공이 문인 줄 모르고 두려움이 한빛을 감싸기 시작했다.

 

 “거, 거기 누구 있소?”

 

 한빛은 조심스레 물어본다.

 

 그런데 한빛의 물음을 못 들었는지 대답이 없는 문.

 

 한빛은 천천히 두려움이 가득한 걸음으로 문의 숨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한빛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발을 동동거리며 심호흡을 거칠게 내는 문.

 

 문과 점점 거리가 좁혀져 가는 한빛.

 

 그리고 문이 싸늘한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을 때.

 

 “깜짝아!”

 

 “깜짝이야!”

 

 두 사람의 시선은 서로를 향해 마주쳤다.

 

 문과 한빛, 두 사람은 서로의 모습에 놀라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서로에게 너무 놀란 탓인지 숨을 헐떡이며 놀란 심장을 부여잡는 문과 한빛.

 

 “세자저하? 아니, 여기서 무얼 하십니까?”

 

  사내의 정체가 문이라는 것을 안 한빛.

 

 한빛은 일어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문에게 물었다.

 

 “저, 저 그게...”

 

 문은 순간 더 털썩하고 다소곳하게 주저앉았다.

 

 “괘, 괜찮으십니까?”

 

 다소곳하게 주저앉아버린 문의 모습을 보고 방금 전 두려움은 다 지워버린 채 실소가 터져버린 한빛.

 

 한빛의 실소에 민망해버린 문.

 

 “저, 그게...그냥 지나가다가...”

 

 ‘아우, 쪽팔려.’

 

 재빨리 옷을 털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는 문.

 

 하지만 한빛에게 쑥스러운 모습을 들킨 것 같아 창피한 문.

 

 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함이 흘렀다.

 

 “하하, 오랜만이오. 저, 그러니깐 낭...한...”

 

 ‘뭐라 부르지?’

 

 문은 서먹함을 깨러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근데, 한빛의 호칭을 뭐라 부르지?

 

 ‘낭자?’, ‘아씨?’, 아니면 ‘한빛아?’ 등등 여러 가지 호칭을 두고 고민을 하는 문.

 

 한참을 고민하다 문은 한빛을

 

 “한빛 양.”

 

 이라고 불렀다.

 

 “예, 오랜만입니다.”

 

 다행히 한빛은 괴이치 않았다.

 

 “헌데. 여기서 무얼 하고 계셨습니까? 저를 따라오셨습니까?”

 

 “아, 아니오. 그저 우연히, 우연히 본 것입니다. 내가 오늘 여기 온 것은 날씨가 좋아 오랜만에 매화꽃 구경도 할 겸해서 온 것입니다.”

 

 “아...그럼, 더 구경하다 가십시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문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기도, 어색하기도 한 한빛,

 

 한빛은 먼저 뒤돌아갔다.

 

 “저, 한빛 양.”

 

 뒤돌아선 한빛을 붙잡는 문.

 

 “저기 혹시 괜찮으시면, 한빛 양이 날 싫어하는 건 아는데, 그래도 혹시 괜찮으면 같이 걷지 않겠소?”

 

 조심스러우면서 수줍은 문의 제안.

 

 “예, 그러시죠.”

 

 문은 한빛이 당연히 거절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외에 한빛의 답에 멍해지는 문.

 

 멍한 것도 잠시, 문은 한빛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색한 두 사람.

 

 두 사람은 매화나무 한 그루, 두 그루, 세 그루 지나갔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매화나무들을 지나 갈 때마다 숨소리만 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문과 한빛은 서로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몰라 서로 눈치만 봤다.

 

 “그날은 고맙습니다. 전하께서 아시면 불호령이 떨어지실 것인데.”

 

 한빛이 먼저 어렵게 입을 땠다.

 

 “그거야, 한빛 양은 죄가 없으니 풀어주는 것입니다. 전하께 용기를 내어 충언을 올린 것인데, 그것이 어찌 죄라고. 그래서 풀어준 것이지, 다른 이유는 절대, 절대로 없습니다.”

 한빛이 혹시라도 오해할까봐 격하게 반응 하는 문.

 

 “알겠습니다, 뭐 그렇게까지 반응할 것까지야.”

 

 문의 격한 반응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약간은, 조금은 섭섭한 한빛.

 

 다시 걷는 어색한 문과 한빛.

 

 그러다 문이 잠시 무엇인가 생각이나 걸음을 멈췄다.

 

 그 사실을 모르고 앞서서 걷는 한빛.

 

 “저기, 한빛 양.”

 

 한빛을 불러 세우는 문.

 

 문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한빛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기회.

 

 그리고 그녀와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

 

 문의 부름에 뒤돌아 그를 보는 한빛.

 

 “어렸을 때 내가 그대에게 심한 상처를 줘서 미안합니다.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변명할 여지없지 내 잘못입니다.”

 

 문은 용기를 내어 진심어린 사과를 건넸다.

 

 “갑자기요? 걷다가?”

 

 문의 갑작스런 사과에 당황스러운 한빛.

 

 그리고 잠시 잊고 있었던 아픈 기억들이 가장 설레었던 추억들을 집어 삼켰다.

 

 문이 깨트린 유리조작에 상처 받았던 기억.

 

 다시 떠오른 그 기억은 문과의 이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되었습니다. 덮겠습니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자신에게 사과하는 문이 무안할까 애써 덮기로, 잊어버리기 했다.

 

 하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다시 걸으시지요.”

 

 문과 한빛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그 손수건에 있는 꽃은 무슨 꽃입니까? 이 나라 조선에서는 볼 수 없는 꽃 같은데. 만든 이의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꽃인가요?”

 

 “내 큰아버지이신 폐주 유성군께서 내게 주신 것입니다. 예전에 서양 사람들이 조선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서양 사람들이 준 것이라며 내 생일날 선물로 주셨습니다. 손수건 수놓아진 연보라 꽃은 라일락이라는 서양 꽃입니다.”

 

 한빛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입을 닫아 버린 문과 한빛.

 

 한빛에게 다가가고 싶은 문.

 

 문이 불편하여 이제는 밀어내고 싶은 한빛.

 

 문과 한빛의 거리는 더 이상 좁혀지지 않았다.

 

 

 ***

 계속 걷다가 어쩌다보니 한빛의 집까지 도착한 문과 한빛.

 

 “저희 집 앞입니다.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 얼른 들어가시오. 저, 한빛 양.”

 

 문이 들어가려는 한빛을 붙잡았다.

 

 들어가는 발걸음을 멈춰 뒤돌아 문을 보는 한빛.

 

 문은 한빛에게 다가가 라일락이 수놓인 손수건을 한빛에게 다시 주었다.

 

 “이거는 저하의 물건이 아닙니까?”

 

 “그때 그대에게 준 물건이니 이제는 내 것이 아닙니다. 그대의 것이지.”

 

 한빛은 손수건을 받았다.

 

 “저, 그리고...”

 

 문은 한빛에게 고백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고백을 하려고 보니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고백을 받아주면 다행이지만 만약,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어서 고백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

 

 “저하?”

 

 “...”

 

 문은 주저했다.

 

 그의 입이 바짝바짝 말라 떨어지지 않았다.

 

 “저...”

 

 “내, 내가. 내가 그대를...그대를...사...사라...”

 

 입을 어렵게 여는 문과 문이 무슨 말을 할지 눈치를 챈 한빛.

 

 “그만,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저하께서도 그만 들어가 보십시오. 동궁전 궁인들이 걱정하겠습니다.”

 

 문의 고백을 막는 한빛.

 

 그리고 더 이상 문이 말을 잇지 못하게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저, 저기. 한빛 양...이 바보, 바보.”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차마 붙잡지 못한 문.

 

 문은 십여 분 동안 서있으면서 자책을 했다.

 

 

 ***

 문은 자시(子時 : 23시~1시)가 거의 되어서 궐에 도착했다.

 

 “저하, 이렇게 늦으시면 어쩝니까? 저는 이제 상선 어른께 혼이 날 것입니다. 저하...”

 

 “그래, 미안하다.”

 

 문은 으뜸의 말도 끝나기도 전에 힘없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 저하. 쯪쯪쯪, 결국 차이셨구나.”

 

 으뜸은 힘없이 환궁을 한 문을 보고 한빛에게 차였다고 생각했다.

 

 으뜸은 문이 안쓰러웠다.

 

 안으로 들어온 문은 자책을 하며 옷을 가라 입고 곧바로 자리에 누웠다.

 

 안에서 자책을 하는 소리가 들리자 으뜸이 방문을 살짝 열었다.

 

 “보고 있는 거 다 알아. 들어와. 묻고 싶은 것이 있으니.”

 

 당황한 으뜸.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다가 방안으로 들어갔다.

 

 “어찌 또 그리 자책을 하십니까? 뭐 차일 수도 있는 거지. 저하께서 그분께 차인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 않습니까. 한두 번도 아니고, 두 번째구나. 어쨌든...”

 

 “아니거든.”

 

 “그럼, 뭐 때문에 그렇게 심각합니까?”

 

 “네가 저번에 그랬지. 내가 그녀에게 가지고 있는 마음이 연정이라고.”

 

 “그랬죠.”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내가 한빛 양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런데 고백을 못하겠어. 입에서 진심이 나오지 않아.”

 

 “왜요?”

 

 “부끄럽기도 하고 두려워. 우리 어마마마와 전하처럼 될까봐. 나중에 먼 훗날에 또 다시 한빛 양에게 상처를 줄까봐. 그때는 정말 용서받지 못할 텐데. 무섭고 걱정이 된다.”

 

 “너무 쓸데없는 걱정이십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일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옵소서. 사랑하는 이에 대한 걱정은 당연한 것이지만 너무 그렇게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때는 머릿속이 아니라 저하께서 걱정하시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 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가다듬고 좋은 일, 긍정적인 일들만 일어날 생각만 하십시오.”

 

 으뜸은 고민하는 문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해줬다.

 

 문은 으뜸의 조언에 따라 행복한 일들만 일어날 것이라 여기고 싶었으나 그게 쉬이 되지 않았다.

 

 

 ***

 같은 시각, 한빛의 집.

 

 한빛은 방안에서 문이 준 손수건을 만지작만지작 거렸다.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 책상을 ‘탁, 탁’치며 멍하니 있었다.

 

 “그래서 고백하려는 세자저하를 막아서셨다고요? 미쳤나봐. 아니, 왜요? 아직 감정이 조금 남아 있잖아요? 근데, 왜?”

 

 은금은 한빛이 이해가지 않았다.

 

 한빛을 오랜 시간 봐왔으니 단번에 그녀의 마음을 꿰뚫는 은금.

 

 아니, 그런다고 생각하고 있다.

 

 “몰라.”

 

 마음이 어지러운 한빛.

 

 “그냥 아씨가 먼저 고백을 확 해버리셔요. 고백을 꼭 사내들이 먼저 하라는 법이 있습니까? 경국대전에 그런 법이 있어요? 여인들이 선수를 치는 것도 멋있습니다.”

 

 “그런 문제가 아니야.”

 

 “그럼, 뭐가 문젠데? 무슨 세자저하랑 대결하십니까? 자존심 챙기다가 딴 여자들한테 세자저하를 뺏길 수도 있어요. 저하랑 백년해로 안 하실 겁니까? 그게 아니면 아직도 그때 일 때문에 그러세요?”

 

 “그건 잊기로 했어. 덮어버리기로.”

 

 “그럼, 대체 뭐가...뭐가 문젠데?”

 

 한빛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답답하기만 한 은금.

 

 “나도 몰라. 너 알아서해. 이 답답아. 이 바보, 멍청이 정한빛아.”

 

 한빛의 답답함에 더 이상 그녀와 한 공간에 있을 수 없어 자리를 박차고 사서는 은금.

 

 은금이 나가자 엎드리는 한빛.

 

 “마음속으로 잊기로 했어. 덮기로 했어. 그렇지만 지워지지 않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내 마음속이 잊는 다고해서, 덮는 다고해서 그때의 그 기억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지워지는 건 아니잖아.”

 

 울먹거리는 한빛.

 

 

 ***

 다음 날.

 

 명나라 사신들과 함께 건장한 조선의 두 청년이 말을 타고 저잣거리를 지나 궐로 향하고 있었다.

 

 명나라와 사신들과 함께 온 조선의 두 청년은 문조의 차남인 화경대군 이민(火景大君 李民)과 삼남인 순월군 이경(順月君 李景).

 

 두 사람은 지난 2년 동안 명나라 북경(北京)에 유학을 가있었다.

 

 그 유학생활을 지난해 1월에 다 마친 뒤 3월에 북경에서 출발하여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조선에 도착을 했다.

 

 도성에 도착을 하자 민은 그리웠던 고향에 다시 돌아오니 행복했다.

 

 그 행복함이 표정에서 다 들어났다.

 

 그 반면에, 경은 표정이 어두웠다.

 

 경은 고향에 돌아온 것이 썩 내키지 않은 것 같았다.

 

 “고향냄새.”

 

 민이 숨을 들이시며 말했다.

 

 “마마, 그리 좋으십니까?”

 

 경이 물었다.

 

 “당연하지. 몇 년 만에 오는 고향인데 당연히 좋을 수밖에. 근데, 너는 그렇지 못한 것 같구나.”

 

 경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닙니다. 저도 좋지요. 그리웠던 고향인데.”

 

 경은 애써 아니라고 했지만 표정에서 다 드러났다.

 

 민은 동생이 왜 그러는지 알고 있기에 경이 안쓰러웠다.

 

 

 ***

 잠시 후, 민과 경은 궐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명나라 사신들과 함께 궐 안으로 들어가 대전과 대조전에 들러 아버지인 문조와 현의왕후께 문안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아들 민이 올린 문안인사는 짧았다.

 

 명나라 사신도 있고, 민에게도 문조와 현의왕후는 그리 썩 반가운 부모님이 아니었기에.

 

 문조와 현의왕후는 섭섭하고 서운했다.

 

 반면, 경은 달랐다.

 

 경은 아버지 문조와 모후인 현의왕후가 반가웠다.

 

 문조와 현의왕후는 민에게 받은 섭섭함을 경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

 대전과 대조전을 나온 경은 내키지 않았지만 친어머니 소의 권 씨가 있는 창경궁으로 향했다.

 

 경은 집복헌으로 들어가 어머니인 소의 권 씨에게 인사를 올렸다.

 

 소의 권 씨 옆에는 김자영도 함께 있었다.

 

 그런데 아들 경의 인사를 받는 소의 권 씨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어마마마, 그동안 편안하셨습니까?”

 

 경은 표정이 어두운 소의 권 씨에게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 어미가 그리 걱정이 되셨습니까?”

 

 소의 권 씨는 아들의 말에 비꼬듯 물었다.

 

 “예, 당연한 일이...”

 

 “그래요? 그리도 이 어미가 걱정이 되신 분께서 3년 전 인사도 없이 명나라에 가셨습니까?”

 

 “송구하옵니다.”

 

 “대전에는 갔다 오셨습니까? 아버님은 뵙고 오셨습니까?”

 

 “예.”

 

 어머니가 무서워 어머니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대답하는 경.

 

 “헌데, 왜 이리 일찍 오셨습니까? 더 있다 오셔야지요.”

 

 “명나라사신도 오신 터라.”

 

 “어허, 이리도 답답할 수가! 그럼 더 있다 오셨어야지.”

 

 소의 권 씨는 앞에 있던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경의 몸이 경직이 되었다.

 

 옆에 있던 김자영 또한 긴장을 했다.

 

 “소, 송구하옵니다. 정사일입니다. 제가 어찌...”

 

 “그러니 더 있다 오셨어야지. 군께서 명나라 사신 앞에서 정사를 관여를 하고 아버님께 힘이 되어드리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줘야 그들이 군을 화평군보다 더 세자의 자리에 합당한 자라고 생각할 것이 아닙니까.”

 

 경은 너무 떨려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세자와 마찬가지로 군 또한 이 나라 왕자입니다. 명국사신이 왜 조선에 왔는지, 명국이 또 무슨 이유로 전하를 옭아매는지 아버님 곁에서 세자보다 더 세자행세를 하며 전하를 지켜드려야 한다고 내 수 없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기억이 안 나십니까?”

 

 “기억납니다. 하, 하오나... ”

 

 “어허, 눈물을 그치지 못할까!”

 

 소의 권 씨는 더 힘차게 책상을 내리쳤다.

 

 마음이 여린 경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눈물이 차올랐다.

 

 “우십니까? 겨우 이 어미가 책상 몇 번 두드렸다고.”

 

 소의 권 씨는 여리고 여린 경을 보며 아들을 한심하게 여겼다,

 

 “마마, 그만 고정하시옵소서. 몇 년 만에 만나시는 아드님이신데 어찌 얼굴을 붉히십니까.”

 

 김자영은 외손자가 안쓰러워 딸을 말렸다.

 

 “아버님께서는 나서지 마세요. 저희 모자일입니다.”

 

 “예, 마마.”

 

 딸을 만류하던 김자영은 쏙 들어갔다.

 

 “한심하기는 저래서 왕 노릇을 어찌할꼬. 쯪쯪.”

 

 소의 권 씨는 경이 한심했다.

 

 소의 권 씨는 우는 경의 꼴을 보기가 싫었다.

 

 소의 권 씨는 문조의 뒤를 이어 경이 보위에 올리고 싶은 허황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욕망을 채워주기에 아들 경은 한 없이 마음 약하고 여렸다.

 

 “나가보세요.”

 

 경은 풀이 죽은 채로 일어나서 집복헌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온 경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

 

 경은 그대로 계단에 쭈그려 앉아 눈물을 쏟았다.

 

 어릴 적 사가에 있을 때의 경은 웃음이 많고 말도 많고 성격이 밝고 햇살 같은 아이였다.

 

 매일 덕순과 문, 민의 귀가 아플 정도로 웃음과 말이 많았다.

 

 덕성군(문조)과 군부인 권 씨(현의왕후)가 부부싸움을 할 때면 경의 밝은 성격덕분에 두 사람이 화해하는 일도 가끔 있었다.

 

 경은 덕성군(문조)의 집에 활력소 같은 존재였다.

 

 그랬던 경이 아버지 문조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고 궐에 들어온 뒤부터 점점 얼굴에 그늘이 졌다.

 

 아버지 문조 때문에 한 낯 종친의 첩이였던 어머니 숙향이 후궁의 첩지를 받고 소의 권 씨가 되더니 아들을 왕으로 만들겠다는 지나친 욕심이 생겨버렸다.

 

 소의 권 씨는 경의 숨통을 조이고 경에게 왕이 되어야 한다며 압박을 가하며 경을 괴롭혔다.

 

 그 때문에 경은 점점 웃을 잃어갔고 말수도 많이 줄었으며 몸과 마음이 약해서 쉽게 상처받는 아이가 되었다.

 

 한 번도 흘린 적이 없던 눈물이 생기고 무슨 일만 생기면 두려움에 몸을 떠는 어두운 아이가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알기에 현의왕후는 그를 감싸 안아줬다.

 

 2년 전, 소의 권 씨의 권력욕이 극에 달았을 때가 있었다.

 

 권력에 정신이 팔린 그녀는 경을 더욱 압박했다.

 

 더 이상 동생을 압박하는 소의 권 씨를 볼 수 없었던 문은 그녀와 크게 다퉜다.

 

 원래 사이가 벌어져 있었던 두 사람은 이일로 더욱 악화가 되었다.

 

 할 수없이 문은 친동생 민이 명나라로 유학을 떠날 때에 제대로 숨을 쉬고 어렸을 때처럼 웃고 밝은 성격을 다시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경을 같이 보냈다.

 

 그런데 다시 돌아와 경이 저리 쭈그려 앉아 울고 있으니 경의 상황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민과 다르게 경은 조선에 돌아오는 것이 싫었다.

 

 

 ***

 대전에는 명나라 사신들이 들었다.

 

 명나라 사신들은 황제가 조선의 임금인 문조에게 전하라는 칙서를 문조에게 주었다.

 

 문조는 칙서를 펴서 읽었다.

 

 황제의 칙서는 다음과 같았다.

 

 

 「조선의 임금이여. 곧, 우리 대명국은 후금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후금의 수도인 심양을 공격할 것이다. 조선의 임금은 우리 대명국에 건장한 조선의 사내들을 바쳐 야 할 것이다. 만약, 이를 어길시 나 대명국의 황제가 군대를 이끌고 후금이 아니라 조선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조선의 임금은 이것을 머리와 가슴에 잘 새기도록 하라.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명나라 황제의 칙서에는 후금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조선의 사람들을 명나라에 바치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이는 조선의 백성을 총알받이로 쓰겠다는 말이었다.

 

 협박이나 다름이 없는 칙서였다.

 

 명나라는 수십 년 넘게 여진족이 세운 후금과 전쟁을 벌여왔다.

 

 후금은 수백 년간 이어온 명나라를 역사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명나라는 어떻게든 그전에 후금을 무너뜨려야만 했다.

 

 명나라는 선황제시절 당시 조선의 임금이었던 유성군에게 군사를 요청했다.

 

 유성군은 남의 나라 전쟁에 조선의 사람들을 총알받이로 보내고 싶지 않은 유성군은 명나라의 요청을 거절했다.

 

 유성군이 거절을 하자 당시 명나라황제는 후금이 아니라 조선을 공격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유성군이 용상에 있던 시절에는 조선과 후금화친을 맺은 상태였고 그로인해 내면과 외면이 강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명나라황제는 유성군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눈에 가시 같았던 유성군이 폐위되고 유성군보다 한참 능력이 떨어지고 자신들의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 수 있는 문조가 보위에 올랐으니 거기다 유성군시절 맺었던 후금과의 화친도 깨져버렸으니 명나라는 다시 조선을 만만히 봤다.

 

 문조는 칙서를 읽고 망설여졌다.

 

 “저희 황제폐하께오서 인정이 많으셔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주겠다고 하셨나이다. 그러니 전하, 전하께오서는 부디 올바른 결정을 하셔야 할 것이옵니다.”

 

 명나라 사신 경대인은 인정을 베푼다는 식으로 협박에 가까운 말을 했다.

 

 “알겠소. 황제폐하께 참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주시오.”

 

 경대인은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예조차 올리지 않고 대전 밖으로 나갔다.

 

 문조는 경대인의 무례가 불쾌했으나 황제를 대신하여온 사신에게 불쾌감을 보일 수 없었다.

 

 

 ***

 다음날, 밝은 대낮.

 

 문은 으뜸과 함께 또 다시 매화나무거리로 발걸음 했다.

 

 한빛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 두 시간이 지나도 한빛은 나타나지 않았다.

 

 문은 크게 실망을 했다.

 

 크게 한숨을 쉬는 문.

 

 그런 문을 보며 그를 위로하는 으뜸.

 “기분 좋은 날 어디서 뭣도 아닌 것들이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고 있어!”

 

 그때, 몸짓이 큰 왈패들이 문과 으뜸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시비를 건 이유는 자신들이 기분이 좋은 날 상심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이들은 문이 세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상상도 하지 않았다.

 

 “이봐, 왜 하필 우리가 지나가고 있을 때 한숨을 푹 내쉬고 지랄이야. 어!”

 

 그들 중 두목이라는 자가 으뜸의 어깨를 툭툭 밀쳤다.

 

 이에 겁먹은 으뜸은 문의 뒤로 숨었고 화가 난 문은 으뜸의 어깨를 툭툭 밀친 자의 팔을 붙잡으며 등 뒤로 팔을 꺾었다.

 

 “아, 악! 이거 안 놔? 안 놔?”

 

 “그냥 가던 길이나 가라. 괜히 우리 애한테 시비 걸지 말고.”

 

 문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대로 그를 땅바닥으로 밀쳤다.

 

 “애들아, 산송장을 만들어버려.”

 

 하늘같은 두목의 명에 부하들은 문과 으뜸을 둘러쌌다.

 

 무술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던 문은 왈패들이 두렵지 않았다.

 

 반면, 으뜸은 너무 무서워 문의 등을 꽉 붙잡았다.

 

 문은 으뜸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가 걸리적거렸다.

 

 그 사이 어느 누가 소매에 있던 작은 은장도를 꺼내어 문이 방심한 틈을 타 문의 무릎을 은장도로 그어버렸다.

 

 문은 다친 곳을 부여잡으며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저하, 저하.”

 

 으뜸 또한 같이 주저앉았다.

 

 그 광경을 누군가 멀리서 눈을 가늘게 하고 지켜봤다.

 

 한빛이었다.

 

 “저기 세자저하 아니십니까?”

 

 은금이 물었다.

 

 한빛은 문과 어떤 일이든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왈패들에게 당하고 있는 문을 보고도 모른 척하고 뒤돌아 집으로 되돌아 가러했다.

 

 “세자저하께서 쓰러지신 것 같습니다, 아씨. 다치신 것 같은데.”

 

 그런데 문이 다쳤다는 은금의 말에 한빛은 주춤했다.

 

 한빛은 어떻게 할까 하다가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일단 사람하나 구하자는 심정으로 치마를 걷고 목과 어깨를 푼 뒤 그들에게 달려갔다.

 

 그들에게 달려간 한빛을 바로 날라 차기를 하며 한 명의 등을 치며 쓰러트렸다.

 

 “뭐, 뭐야?”

 

 “하, 한빛 양?”

 

 갑자기 뒤에서 난데없는 여자가 공격을 해오니 왈패들을 물론이거니와 문 또한 어안이 벙벙하며 눈을 깜박거렸다.

 

 “뭐야, 네 년은? 어디서 나타난 년이야?”

 

 “그럼, 넌? 넌 어디서 나타난 놈이냐?”

 

 “참, 이 어처구니없는 계집보소. 뭐 저 새끼들이랑 아는 사이냐? 그냥 지나가라 계집이라고 안 봐준다.”

 

 “덤벼. 나도 사내랑 싸워서 져 본적이 없어.”

 

 한빛은 두목의 경고를 무서워하기는커녕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빛 양, 저 놈들은 한빛 양이 감당하기에 무리가 있는 놈들이오. 여긴 내 알아서 할 테니 한빛 양은 그만 돌아가세요.”

 

 문은 한빛을 만류했다.

 

 하지만 한빛은 들은 척도 안 했다.

 

 문은 한빛이 염려가 되어 으뜸에게 궐에 가서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 동궁을 호위하는 관청)를 불러오라 명을 내렸다.

 

 으뜸은 몰래 빠져나와 궐로 향했다.

 

 “난 분명 경고했다. 그냥 죽은 듯이 지나가라.”

 

 “아니, 그냥은 못가지. 사람을 건들인 대가는 치루고 가야 되는 거 아닌가?”

 

 “이 계집이 끝까지. 저 새끼가 뭔데? 네 년하고 아는 사이냐? 뭐 네 정인이라도 되냐?”

 

 “그래! 너희들이 건든 이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지금 내가 뭐라는 거야? 미쳤나봐.’

 

 한빛은 자신이 말해 놓고 속으로 멈칫했다.

 

 그러나 내색을 할 수 없었다.

 

 내색을 하면 왈패들에게 밀리게 될 테니.

 

 듣고 있던 문 또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너희 년, 놈들이 그렇고 그런 사이다 이거지. 아주 천생연분 나셨네. 그래 좋아. 우리가 선남선녀를 동시에 저승길로 보내주마. 애들...”

 

 “웃기고 있네.”

 

 두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격을 하려는 왈패들을 한빛이 먼저 그들의 팔을 꺾는 동시에 다리로는 돌려차기를 하며 그들을 한 번에 제압했다.

 

 왈패들은 속수무책으로 제압을 당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자신들을 한 번에 제압한 한빛을 보고 왈패들은 한빛에게 욕을 하고는 멀리 아주 멀리 도망갔다.

 

 그들이 도망간 것을 확인한 한빛은 문과 눈높이 맞춰 앉았다.

 

 그리고 한빛은 문의 상처를 들어다봤다.

 

 “괜찮으십니까, 저하? 그거니깐 왜 지난번부터 혼자 이리 궐 밖을 나오십니까?”

 

 한빛의 걱정스러운 말에 문의 심장이 간질간질하게 뛰었다.

 

 마치 어린 날 문을 첫 눈에 담은 한빛처럼.

 

 한빛은 옷소매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어린 시절 문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약을 발라주고 라일락이 수놓아진 수건을 살짝 묶어주었다.

 

 손수건까지 다 묶자 한빛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문과 눈이 마주쳤다.

 

 한빛과 눈이 마주친 문은 부끄러워 시선이 한빛의 인중으로 내려갔다.

 

 두 사람사이, 조금만한 틈에 살랑살랑 따뜻한 바람이 지나갔다.

 

 그 바람은 매화나무들을 한그루한그루 건들었다.

 

 바람이 건들자 매화나무에 있던 매화꽃잎들은 눈처럼 흩날렸다.

 

 눈처럼 흩날린 작은 꽃잎 중 하나가 문의 얼굴에 붙었다.

 

 한빛은 문의 얼굴에 붙은 꽃잎을 조심스레 다정한 손길로 떼어주었다.

 

 마치 어린 날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던 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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