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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푸른 하늘 발 아래; 鱗
작가 : 동그라미네모선
작품등록일 : 2020.5.15

그의 존재는 악당이라는 말도 아깝다. 악당보다는 악마, 악마보단 포식자에 가까웠고. 그 포식 대상은 인간을 넘어선 무언가에 가까웠으니까.

 
3.통제(統制)//// ※
작성일 : 21-01-15 18:16     조회 : 256     추천 : 0     분량 : 6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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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줘.」

 

 「모자라….」

 

  세 사람의 그림자를 해치우고도 모자랐는지, 아쉬운 채 입맛을 다신 푸른 입매들이 한 사람을 향해 돌아봤다. 그 기척에 자신의 손에 든 암살자의 목을 살짝 조인 그가 능청스럽게 눈썹을 올렸다.

 

 「치!」

 

  아 놀고 싶다며.

 

  푸른 입매들의 반응에 나름 억울했던 그가 수하를 앞에 두고 고개 숙여 앉아 있는 노엘 슈만을 바라봤다. 귀찮으니까. 조금만 놀려주고 가야겠다 싶던 참이었다.

 

 “컥….”

 

  그런 그의 손에 목이 조여 숨을 헐떡이던 암살자들이 창백한 살갗을 긁었다. 그 바람에 평평하게 유지되던 연분홍빛 입매가 살짝 비틀려 올라갔다.

  제 목줄을 잡고 있는 백작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서 살길이 급해 수장에게 급히 손을 뻗는 수하들의 용기가 가상했다. 용케 그 아둔한 머리로도 이 눈앞에 있는 괴물이 자신들을 당분간 살려둘 거라 판단한 듯했다.

  하긴 제 머리 위로 큰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래피어가 누구의 명령에 따르고 있는지 안다면, 바보라도 되지 않는 이상 모를 리가 없지.

 

 “사, 살려…!”

 

  생채기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회복되는 하얀 살갗을 보며, 암살자들의 발버둥을 방관하던 백작이 예고 없이 그들을 기절시켰다.

  ‘시끄러운 거, 딱 질색’이란 표정으로 시선을 돌린 그의 또 다른 손에 동그란 구체가 들어있는 투명한 포장지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무심하게 살피던 백작은 주인을 잃고도 혼자서 바삐 움직이는 눈동자를 바라봤다.

  원래 사람의 안구라면 이 형태를 유지하진 못했겠지만, 이건 그 위대하시다는 대마법사가 만든 아티팩트. 햇병아리의 몸에 들어있는 것치곤 내구성도 높았다.

  그렇게 노엘 슈만의 한쪽 눈에 박혀 있던 아티팩트를 유심히 살핀 백작의 입매가 씩 올라갔다.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감각을 가진 그가 자신의 놀잇감이 내는 인기척 따윌 놓칠 리가 없었으니까.

 

 “허억…, 헉.”

 

  그런 놀잇감의 기척과 동시에 요리조리 움직이는 연둣빛 눈망울을 응시하던 입꼬리에 생기가 돌았다. 한쪽 눈두덩이 함몰된 몰골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꼴이 처음과 너무 달라서 생각보다….

 

 「즐거웠다」

 

  어머나. 자신의 심중이 읽혔음에도 비틀린 미소를 보인 그가 혼란스러워하는 암살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와 아티팩트가 아직 연결된 것인지, 연둣빛 눈망울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내 눈….”

 

  그와 시선을 마주한 노엘 슈만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그제야 제 상황을 파악한 듯싶었다. 그러자 그에게 잘 보이게끔 들고 있던 수하들의 몸뚱이가 경련하더니, 곧 의식을 되찾은 그들이 다급하게 지껄였다.

 

 “다, 단장!”

 

 “사, 살려….”

 

  상관과 하관을 마주 보게 한 자신의 안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킥킥. 그의 심술에 동의한다는 듯 주위에서 개구진 웃음소리가 들렸다. 발버둥 치는 암살자들을 응시한 백작의 입매가 서늘했다.

  그 시선 끝에 도달한 암살자들의 발버둥이 그 손아귀에 가해지는 힘의 크기에 비례하여 거세지다가 곧 잠잠해졌다.

 

  그러게 왜 건드리냐고.

 

  예의를 차려도 좋게 봐줄까. 말까 한 잡것들이…. 처음부터 제 앞에서 아이를 죽이겠다고 설치지 않았으면 됐잖아.

 

 「그 아인 쓸데없는 부분에서 관용적이야.」

 

  화를 삭인 그가 손에서 힘을 빼자, 그 손아귀에 들려 있던 두 사람이 목덜미가 우그러진 채 금세 바닥으로 처박혔다. 바닥으로 떨어진 그들은 곧장 숨이 끊어질 듯 신음하더니, 마른 웅덩이에서 버둥거리며 죽어가는 금어처럼 입을 빠끔거렸다.

 

 “커헉….”

 

 “허…억.”

 

  그 탓에 바닥을 덮은 핏물이 온몸을 벌벌 떠는 두 암살자의 입과 코를 통해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떨떠름한 듯 혀를 찬 푸른 입매가 백작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냥 둬도 돼?」

 

 「저거, 저거, 마시고 자빠졌는데….」

 

  무언가를 걱정하는 듯한 푸른 호선의 움직임에 백작이 태연하게 눈을 깜짝였다. 그 행동에 걱정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그에 관하여 더 묻는 말이 없었다.

 

 「저런.」

 

 「저런, 저런, 저런.」

 

 「불쌍한 피라미.」

 

 「하필이면.」

 

 「이 시간에 왔을까.」

 

  하필이면 그리했을까 싶던 푸른 입매가 탄식하는 것도 잠시, 백작의 손에 들린 것을 보던 여린 입매가 둥근 도형에서 빛나는 빛깔을 알아보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반짝반짝」

 

  그러자 선명한 색을 띤 푸른 입매들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그저 각시인 줄 알았더니」

 

 「뽀얀 날개의」

 

 「인형이었네?」

 

  여린 입매를 감싸고도는 푸른 입매들의 잇새 사이로 강한 경계심이 드러났다. 배척에 가까운 그들의 기세에 백작의 시선이 연둣빛 눈동자로 향했다.

  금방이라도 눈을 까뒤집을 듯이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가 아닌, 제 손에 든 아티팩트를 응시하던 그의 눈에 탁한 눈자위가 보였다. 그래, 너는 순수한 하양이 결코 되지 못을 테지.

  그 시선을 따라 여린 색을 띤 입매가 천진하게 물었다.

 

 「그럼 저건 무엇이야?」

 

 「세상엔 저것도 사람이라 부른단다.」

 

 「그럼 저건 인간이야?」

 

 「아니, 아니.」

 

  백작의 앞에서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굽힌 노엘 슈만을 가리킨 여린 입매가 대답을 재촉했다. 그 재촉에 못 이긴 것인지, 살짝 머뭇대던 푸른 입매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입을 열었다.

 

 「노리개」

 

  그 대답에 단단한 책 표지를 덮은 것처럼, 푸른 입매들의 소리가 탁 끊겼다. 소곤대는 잡소리 하나 없는, 적막이 찾아온 것이다.

  그 적막을 재료로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가 화르르 타버리는 풀꽃처럼 가늘어졌다.

 

 “너희는 참, 재밌는 걸 만들어.”

 

  백색 연미복 차림의 그가 노엘 슈만을 향해 시선을 내리깔았다. 제 앞에서 떠는 햇병아리뿐만 아니라 아티팩트를 통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쥐새끼에게 잠시 말을 전하기 위해서.

  그 시선을 따라 공중에서 원형을 그리던 래피어가 한 남자를 겨눈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하얀 광채를 뽐내는 그것은 시위를 놓으면 금방이라도 표적을 향해 쏘아질 듯한 화살처럼 날이 서려 있었다.

  이미 줄기가 꺾인 화두(花頭)는 가시가 없어 따내기 손쉬운 것이라, 붉은 별을 짓눌러 깨뜨린 듯한 안광의 주인이 밤손님을 희롱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나도 만들 줄 안다?”

 

  그 생생한 핏빛에 바르르 떠는 엉겅퀴가 서서히 먹혀들었다. 의지가 완전히 꺾여 버린, 마른 풀을 내려다본 그의 주위로 서서히 내려오는 서슬이 한순간 파훼 되었다가 도로 모습을 되찾았다.

  살기에 가까운 그의 기운이 검은 신형에서 순간 벗어난 탓이었다. 그렇게 흩어진 백작의 기운에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푸른 입매가 그림자가 사라진 암살자를 향해 살갑게 말을 걸었다.

 

 「각시야~」

 

 「각시야~」

 

 「나머지 눈도 주렴.」

 

 「그거 나 주렴. 응?」

 

  물론, 대답을 바라는 친절한 물음은 아니었다. 아, 몸을 떨던 그도 이제 때가 됐단 것을 알았는지 시선을 들어 올렸다. 푸른 입매의 희롱에 고개를 든 암살자는 이미 정신이 나간 듯했다.

  제가 알 수 없는 힘에 눌렸다는 공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 그의 외눈이 무참히 흔들렸다.

 

 “재밌는 거.”

 

 “으윽…!”

 

  사시나무 떨듯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가 암흑을 둘러싼 백색의 원형을 비췄다가 금세 타들어 갔다. 그것을 무심히 보던 백작의 뒤는 반원 모양의 활이 제 윤곽을 뚜렷하게 그려냈다.

 

 「지루해~」

 

 「인제 그만 끝내자.」

 

  구경꾼의 재촉에 노엘 슈만의 머리를 겨누고 있던 래피어가 기민하게 몸을 틀었다. 관객의 호응이 어디에서 가장 잘 나오는지 아는 듯한 몸짓이었다.

  예상된 진로를 틀어 바닥에서 발발 떨고 있는 암살자들에게로 향한 래피어는, 겨우 입만 움직이던 노엘 슈만의 수하들을 야차처럼 이리저리 들쑤셨다.

 

 “으으ㅏ…!”

 

  입이 찢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두 남자의 비명이 터지자, 난폭한 검무를 따라 핏방울이 허공에서 너울거렸다. 그렇게 아래로 흩어지던 엷붉은 핏물은 백작을 감싸고도는 아찔한 열기에 금세 사라져버렸다.

  바닥을 함빡 적신 붉은 핏속에서 허우적대던 두 사람의 몸이 간헐적으로 움찔거리는 것도 잠시, 하얗게 질린 채 모든 동작을 멈췄다. 그러자 공중 곡예를 빙자한 투우를 선보이던 래피어가 움직임을 멈췄다.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을 터는 게, 제법 성깔 사나워라. 깔깔거리는 짐승의 웃음이 허공 전체를 장악했다. 허공을 유영하는 푸른 갈고리달 무리가 다음 표적을 가리켰다.

 

 「2」

 

  히죽히죽 웃는 모양새가 퍽 아름답던 탓인지, 그 유도에 이끌린 래피어가 다음 놀잇감을 향해 서슬을 겨눴다.

 

 “사…, 살려…!”

 

  제 위를 빙글 도는 래피어를 보며 자신의 처지를 예감한 남자가 다급히 빌었다. 제 낯을 보며 발발 떠는 남자의 애원이 잠시 먹히기라도 한 것인지, 서슬이 주인의 눈치를 살폈다.

  그 눈치에 진홍의 눈망울이 느리게 깜짝일 뿐이었다. 저 건방진 짐승의 소원이 분명 하잘것없었기 때문이리라. 그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던 래피어가 사내의 비명을 온몸에 두르며 피를 흩뿌렸다.

 

 「1!」

 

  마침내 비명을 멈춘 남자의 신형이 거센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백작이 눈을 굴려 그 위로 떠 있던 래피어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런 주인의 시선에 허공에 떠 있던 래피어가 바닥을 기듯 겹겹이 쌓여 있던 사체를 빠르게 꿰뚫었다. 윤이 하얗게 흐르는 신형에서 눈을 뗀 백작이 그제야 기분 나쁘다는 듯이 거친 목소리로 뇌까렸다.

 

 “그 노친네 뒤에서 수작 부리기는….”

 

  그나저나….

 

  놀잇감이 움직임을 완전히 멈춘 탓에 선연하게 빛나던 붉은 눈망울이 따분함을 보였다. 금세 흥미를 잃은 백작을 살피던 푸른 입매들이 아쉽다는 듯 제 몸을 갸웃거렸다.

 

 “가야겠어.”

 

  할 일을 다 마친 것처럼 굴던 그가 미련 없이 눈을 감았다. 그렇게 빠져나가려던 그 의식을 여린 입매가 겁도 없이 붙잡았다.

 

 「다음엔 뭐해?」

 

 「뭐할 거야?」

 

  영악하기 그지없는 물음들에 피식 웃던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선명하게 그려진 푸른 입매보다 앳된 목소리는 궁금증이 도진 것인지 연신 대답을 재촉했다.

 

 “잡아먹으려고.”

 

 「먹어?」

 

 「무엇을?」

 

  계속되는 재촉에 그가 잠시 머뭇거리니, 여린 색의 또 다른 입매가 슬쩍 그 근처로 다가왔다. 아마 그 맑은 눈망울을 반짝이고 있으리라. 그것을 보지 않고도 상상하던 그가 갑자기 포악한 짐승처럼 입을 벌리더니, 그들을 향해 강하게 무는 척을 했다.

 

 “너희.”

 

 「으아악!」

 

 「타, 타버릴 거야!」

 

  어리기도 하거니와 그가 진심으로 속이려 하면, 스스로 밝히기 직전까지 사실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여린 색의 푸른 입매들이 서로 왁다그르르 요란하게 부딪히며 헐레벌떡 도망쳤다.

  그 요란한 소리에 백작의 눈망울을 잠식하던 붉은빛이 그 동공 너머로 빠르게 사라지더니, 이내 투명한 눈망울에 보랏빛이 서서히 차올랐다.

 

 「…가, 갔어?」

 

 「피, 피아야?」

 

  갑자기 돌변하는 그가 무섭긴 했던 것인지, 선명한 입매들 사이로 잽싸게 도망쳤던 여린 입매들이 잔뜩 겁을 먹어 낑낑거리는 와중에도 백작을 살폈다.

 

 「힝.」

 

 「벌써 가버렸어.」

 

 「우리랑 놀아주지….」

 

  혼비백산하여 정신없이 도망친 후에 텅텅 비어 있는 보랏빛 눈망울을 확인한 여린 입매들이 곧 시무룩해졌다. 오랜만에 온 그의 방문을 내심 기대했던 눈치였다.

  그러나 보랏빛 눈망울 중 하나가 푸른빛에 휩싸이며 그 요요한 눈망울에 생기가 느껴지자, 그 기척을 느낀 여린 입매들이 다시 그에게 달려 들어갔다.

 

 「차차!」

 

 “…?”

 

  정신이 돌아온 그의 뺨에 다짜고짜 달려와 제 몸을 비비는 탓에 레인의 양쪽 뺨이 동시에 눌렸다. 그 포슬포슬한 감촉에 제 볼살이 격하게 밀리다 못해 시야가 차단되자, 아양스러운 여린 입매를 조심스럽게 밀어낸 레인이 주위를 살폈다.

  불과 수십 분 전만 해도 제 심장에 칼을 집어넣은 통에 제 목숨이 단숨에 끊어졌을 줄 알았는데, 낮잠에서 금방 깬 사람처럼 몸이 조금… 나른하기만 할 뿐이었다.

 

 “개운해….”

 

  눈을 동그랗게 뜬 그가 방에서 사라지는 열기를 느끼곤, 다시 자신의 몸을 살폈다. 그가 왔다 갔구나. 깜빡깜빡 눈을 깜빡이던 레인의 시선에 멀쩡해진 손가락이 제일 먼저 보였다.

  핏방울이 묽게 떨어지던 손끝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윤이 나며, 턱 언저리에선 피비린내가 가시고, 목의 생채기와 이어지던 가슴팍의 상처까지 말끔히 회복되어 있었다. 피부가 반질반질 윤이 나지 않더라도 제법 혈색이 돌자, 눈을 뜬 그가 이렇게까지 회복될 줄 몰랐다는 듯이 얼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입이 근질근질했던 푸른 입매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피아가 했어!」

 

 「아직 일곱 번이야!」

 

 「물론 독은 그대로야!」

 

 「그건 차차가 원하지 않으니까…?」

 

  대강 상황을 짐작하고 있던 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목에 깊이 박혀 반짝이던 빛의 세기가 확연히 줄어 있었는데, 그 근육을 쓰던 레인의 미간이 조금 좁혀졌다.

  증상이 나아졌다고 해서 그게 호전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간 벌기용’이었다.

 

 「화가 나 있던데.」

 

  그런 백마의 고집에 미간을 찌푸리는 듯한 입매 하나가 차분하게 읊조렸다. 마치 바람을 타고 흐르는 잎새 같은 소리에 레인의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

  붉은색, 붉은빛, 붉은 빛깔, 붉은 향 그것을 아우르는 그 사람의 표정이 단번에 그려지는 통에 검회색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낭자의 몸이 상할까 움직이지도 않고 내내 화를 삼키는 것이 안쓰럽더이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아시리라 믿소.」

 

  짙푸른 입매의 충고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 그가 몸을 돌렸다. 배배 꼬인 검은 신형을 가진, 커다란 반원 모양의 활대를 응시한 그가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려던 게 아닌데….’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그의 반응에 기운이 쭉 빠졌다. 아래로 처지는 검회색 눈썹에 그의 주위에 있던 푸른 입매들이 쩔쩔맸다.

 

 「풀 죽었어?」

 

  그럴지도. 조심스러운 물음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상태를 살피던 푸른 입매가 더욱더 당황했다.

 

 「차, 차차가 풀이 죽었다니...!」

 

 「껄껄」

 

 [너]

 

  그러나 그 소란스러움도 푸른 입매를 감싼 어둠이 움직이면서 금세 멈췄다. 레인의 그림자에서부터 길게 뻗어진 그것은 백작이 줄곧 응시하던 활대를 단숨에 가렸다.

 

 [이 감각에 너무 익숙해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의 경솔한 행동에 경고하듯 낮은 소리를 내는 어두운 형체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레인이 소리 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미소에 잠시 움찔하던 그것은 와르르 무너지는 고층 건물처럼 금세 아래로 꺼졌다. 그렇게 아래로 사라진 자신의 그림자를 보던 레인의 뒤로 또 다른 인기척이 느껴졌다.

 

 “백작.”

 

 “부르셨습니까.”

 

  문틈 사이로 하얗게 새어 나오는 빛으로 인해 길어지는 자신의 그림자를 응시한 새벽빛 눈망울이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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