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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푸른 하늘 발 아래; 鱗
작가 : 동그라미네모선
작품등록일 : 2020.5.15

그의 존재는 악당이라는 말도 아깝다. 악당보다는 악마, 악마보단 포식자에 가까웠고. 그 포식 대상은 인간을 넘어선 무언가에 가까웠으니까.

 
3.통제(統制)// ※
작성일 : 21-01-15 18:11     조회 : 252     추천 : 0     분량 : 7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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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차.」

 

  그러자 방 안의 기류가 한 줄에 매여 있는 여러 가닥의 실이 움직이는 것처럼, 이리저리 요동치며 위아래로 늘어났다.

 

 「저거 갖고 싶어.」

 

  매대에 놓인 장난감을 보고 사달라고 조르는 천진한 소리. 그 소리를 따라 앙큼한 밤손님이 숨어든 거대한 대들보를 본 백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생각보다 기민하게 자신의 시선을 알아차린 암살자의 그림자가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 기척에 백작의 미소가 짙어지자, 평소보다 늦게 떨어지는 허락에 관중의 순수하고 욕망 짙은 채근이 이어졌다.

 

 「조금만 놀려주자!」

 

 「그냥 삼키면 안 돼?」

 

 「놀려주자, 응?」

 

 「논 뒤에 잘 청소할게. 아, 차차~」

 

  능숙하게 기척을 숨긴 암살자의 뒤로, 검은 배경 속에서 날카로이 벼려진 서슬처럼 입꼬리를 올린 무수한 입매가 야만스러운 아가리를 벌렸다.

 

 「저 팔도, 다리도, 몸통도, 내장도, 머리도 전부 다!」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전부 다!」

 

 「인형으로 만들자!」

 

  그 소란스러움에 아랑곳없이 대들보를 바라보는 레인의 시야는 회색과 검은색으로 이뤄져 있었다. 대들보에 있는 밤손님의 기척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느낀 그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보좌관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보좌관.”

 

 “예.”

 

  눈앞의 공간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알아채고도 담담한 표정을 한 미하엘이 백작의 부름에 응했다. 이윽고 이어진 상관의 물음에 성실히 답을 하였는데, 그 표정엔 자신이 원하는 대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한 지루함이 묻어 있었다.

 

 “그대는 내가 참을성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

 

 “그러니, 걱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은근한 심술이 느껴지는 레인의 태도에 눈썹 끝을 씰룩이던 미하엘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눈을 깜빡인 남자가 한 손을 올려 자신의 이마부터 뒤통수까지 느른하게 쓸어 넘겼다.

  그 대답에 단단한 손마디 사이로 부드럽게 빠져나오는 머리칼을 감상하던 레인이 책상에 기댔던 자신의 몸을 세워 앞으로 걸었다. 그렇게 걷던 백작은 두 걸음도 채 걷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꽤 거리를 두고 있던 보좌관의 앞에 금세 도달해 있었다.

 

 “카엘.”

 

 「빛과 같은 아이야.」

 

  자신의 부름에 움찔한 상대에게 바짝 다가간 레인의 검회색 속눈썹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살짝 감겼다 뜨였다. 그러자 수정과 같은 투명한 눈동자와 마주한 녹금색 눈망울이 기름을 먹고 사는 등잔불처럼 연하게 번들거렸다.

  자신을 빤히 보는 레인의 뒤로 어느새 자리 잡은 활등 문양이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들어왔다. 가짜 배경이 결국 본질에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활쏘기 전 항상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지.”

 

 “오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자신의 대답에 긍정하듯 레인이 눈을 느리게 깜빡이자, 그 눈짓을 응시하던 미하엘이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 자신의 허리를 숙였다. 그 간격은 서로의 숨결이 당장 느껴질 만큼이었다.

 

 “과녁을 명중시키기 위해선 그것을 항상 확인해야 하지.”

 

  자신의 신장에 맞춰 고개를 숙인 미하엘을 향해 목을 내어주며 입꼬리를 올린 그가 보좌관의 목덜미에 제 뺨을 가까이 대었다. 그렇게 미인의 반듯한 목선에 시선을 준 그가 나직이 속삭였다.

 

 “오늘 그 관혁을 보여줄 테니, 내게 살을 가져와.”

 

  상대에게 자신의 귀를 온전히 내어주고 그 속삭임을 듣던 미하엘의 눈이 보름달을 마주한 호수처럼 아주 동그랬다. 상대가 다시 멀어지는 것을 멍하니 쳐다만 보던 그의 주위로 이질적인 모습의 투명한 고리가 드문드문 모습을 보이더니, 두 사람을 둘러싼 공간이 마침내 역방향으로 천천히 비틀리기 시작했다.

 

 「꾼아, 휘파람을 불어주오.」

 

 「이리는 왜 이리도 덩치가 큰지.」

 

 「아이, 배고파라.」

 

  예상치 못한 레인의 발언에 미하엘이 잠시 넋을 놓은 사이, 어느새 제자리를 찾은 백작의 하얀 구둣발이 멈춰 섰다. 그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린 미하엘이 굽혔던 허리를 펴며 시선을 들어 올리자, 고개를 숙여 앞으로 흘러내린 짙은 금발 또한 제자리를 찾았다.

 

 “믿어도…”

 

 “돼.”

 

  순수한 금을 세공한 듯한 속눈썹이 가련히 떨리기 무섭게 반대편에서 칼 같은 대답이 들려왔다. 자신을 향한 목소리가 너무나 강렬하고 단호하여서, 그 앞에서 파르르 떨던 사내의 긴 눈썹이 떨림을 멈췄다.

 

 “…믿어보겠습니다.”

 

  레인의 대답에 안정을 찾은 미하엘의 시선이 서서히 안정됐다. 그런 미하엘의 곁으로 푸른 입매 하나가 다가가 얄따란 호선 사이로 소리를 꺼내 물었다.

 

 「고파….」

 

  그 소리는 마치 굶주림에 슬슬 눈을 뜬 짐승 새끼처럼 애처로우며 야성적인 울음과도 같았다. 바로 그 소리가 어둠에 잠식된 푸른 잇새 사이로 철철 흘러내렸다.

 

 「고프다, 꾼아….」

 

 「뻥 뚫린 내 입을 보아.」

 

 「우리는 성실한 파수꾼이자 신실한 사냥 지기임을 잊지 말렴.」

 

  그 푸르른 호선이 곡예를 선보이듯 춤을 추기 시작하자, 난폭한 짐승 무리처럼 날뛰기 시작한 푸른 입매들 사이로 활등을 감싼 무언가가 하얀 연미복을 입은 백작의 뒤로 드러났다.

 

 「자, 그러니 어서…」

 

 「불어.」

 

  그 순간 백작과 마주하던 보좌관이 본능적으로 그와 거리를 벌렸다. 그 반응에 어떤 짐승보다 단순하며 포악한 얇디얇은 아가리가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단 듯이 자신을 가로막은 투명한 막에 이빨을 박았다.

  그 살벌한 기척에도 태연하게 서 있던 레인이 창백한 낯을 띠며 눈을 느른히 깜짝였다. 그 부름에 잠시 흐트러진 생각을 정리한 보좌관이 눈을 깜빡였다.

 

 “보좌관.”

 

 “예.”

 

  거뭇거뭇한 눈 밑을 그대로 드러낸 레인이 전보다 푸석푸석해진 짧은 머리칼을 보좌관을 향해 보란 듯이 쓸어 올렸다. 조금 부어오른 듯한 손가락이 떨어지자 힘을 잃은 까만 머리칼이 아래로 스르르 내려앉았다.

 

 “나 피곤해.”

 

 「졸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미하엘이 한 발 더 물러났다. 힘없이 늘어지는 눈시울이 주인의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피로한 주군을 붙잡은 무례를 용서하시길.”

 

  그것을 외면할 수 없던 보좌관은 당신을 더 귀찮게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제 가슴에 손을 얹고 상대를 향해 살짝 허리를 숙였다. 그런 보좌관의 태도에 시선을 내리깐 백작의 입매가 살짝 휘었다.

 

 “돌아가 봐.”

 

 「돌아와.」

 

  피로로 지친 목소리와 겹쳐 들리는 그의 속내에 얼굴을 든 미하엘의 표정이 묘했다. 그 시선에 보좌관과 마주한 백작의, 채도가 각기 다른 한 쌍의 눈동자가 곱게 휘었다.

  그 시선을 헤아린 미하엘의 빛깔 고운 눈망울에 탐탁지 않은 기색이 얼핏 스쳤다. 분명 제 눈앞의 소년이 앞으로 벌일 망나니짓을 예감한 것이리라.

 

 “이만 집사에게, 가보겠습니다.”

 

  편히 쉬세요. 제 뜻을 헤아린 보좌관이 물러나자, 책상 모서리에 기대고 있던 백작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암살자의 예상과 달리, 천장으로 향한 그의 시야엔 그들의 윤곽이 보이지 않았다. 그 전경엔 은은한 빛이 감도는 천장을 지탱한 대들보만이 보일 뿐이었다.

 

 「여기! 꼭두!」

 

 「있어!」

 

 「우리 심심한데~」

 

 「언제 놀아줘?」

 

  그 고루하고 평탄한 시야와 달리, 천장을 바라보는 레인의 귓가엔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듯 조금 들뜬 소리, 그것 뒤에 또 무엇을 할지부터 고민하는 이의 호기심과 지루한 마음 따위가 바쁘게 교차하고 있었다.

  그 소리는 점점 쌓여 투명한 막에 박힌 이빨 사이로 점점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 흐름에 투명한 막이 빗물에 차츰차츰 침식되는 처마 밑의 웅덩이처럼 점점 파이더니, 그것에 곧 작은 균열이 일었다.

 

 「각시야~」

 

 「각시야~」

 

 「각시야~」

 

 「이제 좀 보아주지 않으련?」

 

  그 균열 아래 있는 밤손님을 향해 날렵한 입매가 호기롭게 입을 놀리자, 대들보에 자리한 밤손님이 그들의 부름에 몸을 조금씩 움츠릴 뿐이었다. 그 작은 몸짓에 조금 실망한 기색을 띤 입매 여럿이 암살자의 주위를 도깨비불처럼 빙빙 돌며 킬킬거렸다.

  그렇게 밤손님을 희롱하는 푸른 입매들 주위로 반질반질한 투명한 막이 늘었다가 줄어들길 반복하고 있었다.

 

 「거머리의 수족이 된 각시야」

 

 「네 귀를 베어 물어보고 싶구나!」

 

 「요놈, 요놈, 엉큼한 놈!」

 

 「네가 감히 뉘라고, 여기서 건방을 떠느냐?」

 

 「떠느냐!」

 

  그 킬킬거리는 소리 끝에 푸른 입매들 사이로 중심을 잡는 듯한 걸걸한 소리가 아래로 측은히 향했다.

 

 「어린 것이」

 

 「기어이 불러들였구나.」

 

  그 측은함을 담은 소리에 재잘거리던 소리가 뚝 끊겼다.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던 소리가 끊겨 침묵에 싸인 천장을 빤히 바라보던 백작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손께서는 참으로 수줍은 인물인가 봅니다.”

 

  그 가늘어진 눈초리를 따라 적막에 눌린 천장의 표면이 하얗게 뒤덮였다. 하얗고 불투명한 눈꽃이 촘촘한 돌기를 세워 자신의 세력을 넓히자, 그에 맞춰 장내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러나 암살자가 오늘을 위해 제 몸에 박아 넣은 아티팩트의 효과가 어찌나 훌륭한지, 사냥감을 응시하는 백마의 눈망울에 당황하는 양상군자의 모습은커녕 그가 내뱉는 입김 따위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밋밋한 정경에도 대들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레인이 손끝을 이용하여 반대쪽 손에 끼워진 가락지를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레인의 손이 닿자 투명한 표면을 지닌 가락지 안에서 균열이 일더니 그 내부가 탁해졌다.

 

 “귀하신 양상군자께서 발걸음을 다 하셨는데, 이를 어쩌나….”

 

 “…”

 

  백작의 말뜻을 얼추 알아들은 침입자의 얼굴이 쓰다. 그들은 몸이 굳은 듯 움직임이 없었다. 그런 침입자의 주위를 연신 맴도는 푸른 입매와 그 움직임을 살피던 백마의 눈꺼풀이 중력을 거스를 수 없는 폭포처럼 힘없이 감겼다.

  의도를 갖고 행동한 것이라기엔 그 힘이 매우 미미했던지라, 하얀 비단이 미끄러지듯 눈꺼풀을 닫던 레인의 뒤로 어둠에 휩싸인 반월의 형태가 가늘어졌다. 그러자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서서히 내려가던 레인의 눈꺼풀이 검회색 눈썹과 함께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차차.]

 

 ‘아….’

 

  깜짝 눈을 뜬 그의 귓가에 잠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마비가 된 듯 주위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자신의 옅은 박동 소리만이 들려왔다.

  피로감인가. 그 소리에 익숙한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인 백작이 자신의 까만 머리칼을 한 손으로 쓸어 넘겼다.

 

 “오늘은… 상황이 좋지 않은데.”

 

  주인의 허락도 없이 침입한 암살자들에게 큰 관용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그들의 태도에 백작이 유감을 표했다. 그러자 그 틈을 파고든 푸른 입매 하나가 레인의 머릿속을 읽어내며, 지친 기색의 목소리로 한마디 뇌까렸다.

 

 「귀찮아.」

 

  레인은 제 심상을 흉내 내는 소리에 반응할 힘도 없는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거절에 흥미가 떨어진 푸른 호선이, 곧 놀릴 상대를 바꿔 자리를 옮겼다.

  그 대상은 바로 대들보에 숨어든, 속이 앙큼한 세 남자였다. 암살자 셋을 향한 푸른 입매가 입을 빠끔거렸다. 그들은 주인도 모르게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도둑놈들을 낭랑하게도 비웃었다.

 

 「이번엔 네놈들로 하자!」

 

 「이히히히힛!」

 

 「각시가 셋이다! 셋!」

 

 「요놈, 요놈 이 도둑놈!」

 

  시퍼런 비웃음이 떨어지는 천장 아래 대들보에 선 암살자 수장의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푸른 자국들 사이로 낱낱이 까발려졌다.

 

 “얌전히 돌아가 주시겠습니까.”

 

  그런 암살자의 생각 따위 안중에도 없던 레인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귀찮은 기색이 묻어났다. 그런 목소리에도 고개를 위로 쳐올린 레인의 미소는 전과같이 정중했다.

  침입자에게 꿍꿍이 없이 정중한 태도를 보인 그의 주위에 즐비하게 자리 잡은 푸른 입매 중 하나가 암살자의 움직임을 제일 먼저 알아차리고선, 그 가시 같은 입꼬리를 들썩이듯 움직였다.

 

 「각시다.」

 

 “어림없는 소리!”

 

  여태껏 대들보에 숨어서는 꽁무니 하나 보여주지 않던 양상군자께서 드디어 아래로 사뿐히 내려와 그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단단한 석재 바닥으로 내려온 암살자의 신장이 보좌관과 맞먹을 정도로 컸다. 자세히 보니 그보다는 좀 날렵하여 동작이 재빠르고 발소리가 나지 앉는 조용조용한 걸음걸이를 가진 자였다.

  그렇게 사뿐사뿐 걷는 암살자의 몸뚱이가 은밀하게 숨겨진 탓에, 레인의 시야에는 침입자인 노엘 슈만의 그림자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아하」

 

  그런 암살자를 단번에 알아챈 푸른 입매들이 갑자기 침묵하는 것도 잠시, 그 꼭대기에 있던 것 중 하나가 암살자의 정수리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너」

 

 「영원한 꽃을 원하는구나.」

 

 「너, 그 영원을 위해 주렴.」

 

 「그럼, 줘야지.」

 

 「네가」

 

 「주어야지.」

 

  수면 아래로 기는 뱀처럼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서늘한 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그 서늘한 소리를 듣지 못한 암살자는 자신의 주위가 점점 어둠에 먹혀 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백작을 오만하게 내려다봤다.

 

 “반갑소, 레인슐레이츠만 백작. 내가 누군지는 그대의 능력으로 알아냈을 테지.”

 

 “매번…”

 

 「지워버리고 싶게」

 

 “욕심이 과한 듯한데.”

 

  그 오만한 눈초리에 고개를 갸운 백작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하얗게 질린 그의 눈지방에 검회색 속눈썹이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그 가는 눈초리가 어리석을 정도로 맹목적인 남자에게 향했다.

  제 처지를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몹시 흥분한 목청에 백마의 낯이 싸늘했다.

 

 「거스러미.」

 

  보드라운 살결 속에서도 빳빳하게 굳어서는 그것을 뗀 이후에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존재. 굳은살도 되지 않고 그렇다고 여린 살로 돌아가지 않아서, 손톱에 뜯기고 날에 베여도 마침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것.

  백색 성의 백마가 제 앞에서 머리가 꺾인 거스러미를 향해 시선을 올렸다. 저를 거스르는 것을 본 그의 눈자위가 짐승의 송곳니처럼 번들거렸다.

 

 “우리의 위대하신 왕께선 그대의 진실을 원하신다. 레인슐레이츠만!”

 

 “음.”

 

  살수 주제에 용맹한 전사처럼 으스대는 꼴이라니, 퍽이나 흥미롭기도 하여라. 왕국도 어지간히 초조하지 않고서야 이런 햇병아리 따윌 보낼까. 양상군자나 돼서 뚫린 입이라고 지껄이는 암살자의 재롱에 백작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자 “달각”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왼손에 있던 가락지가 반대쪽 손에 의해 첫째 마디에 걸렸다.

 

 “그대의 뜻이 그러하군.”

 

  암살자의 반응에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든 백작의 뒤로 푸른 입매의 선명한 자국이 투명한 막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푸른 입매에 찢긴 그것은 썩어버린 양파의 표면처럼 검게 물들어 다시 이어 붙지 않고 아래로 떨어져 사그라졌다.

  제 발치에 떨어지는 난잡한 조각을 끝으로 핏빛에 잠식된 백마의 눈망울이 무섭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백작의 이상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충성심에 도취한 암살자가 표적을 향해 돌진했다.

 

 “반드시 네 목을 가져가마!”

 

  그 쩌렁쩌렁한 목청에 잠에 빠져드는 레인을 배웅하던 푸른 입매가 건방진 암살자를 향해 일제히 몸을 돌렸다. 푸르른 손톱자국에 국한되었던 그것은 길게 찢어진 아가리를 벌리며, 결국 본색을 드러냈다.

  미지의 포식자에게 둘러싸인 피식자가 어리석게도 그 무리의 중심을 향해 당당한 포부를 선언하다니. 감히. 중추가 녹아내리지 않고서야 그리 방종하게 지껄이지는 않았으리라.

 

 「감히.」

 

  지고의 땅을 지탱하는 백마의 앞에서 하릴없는 자만을 뽐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스스로 져버린 먼눈의 사내가 기뻐하는 것이 도무지 아니꼬운 짐승의 심술에, 붉은 눈초리가 장난스럽게 휘었다.

 

 「놀려줄 거야?」

 

  들려오는 물음에 말없이 히죽 웃은 그가 제 가슴께를 찌르는 칼을 사뿐히 잡아, 창백한 손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는 그 서슬을 제 심장에 단숨에 박아 넣었다.

 

 「쉬잇.」

 

  눈 깜짝할 새에 암살자를 도운 백마의 농간에, 으레 그렇듯 괴물의 심장이 서서히 멈췄다.

 

 「너만 알고 있으렴」

 

 「아가」

 

  이토록 괴물을 죽이기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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