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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49화 <진상>
작성일 : 20-12-31 00:46     조회 : 328     추천 : 0     분량 : 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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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나오던 영화가 갑자기 끊겼다. 한 순간 집안을 가득 메운 노이즈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당황한 수연이 TV를 살피기 시작했다. 우렁찬 노이즈 소리가 말해주듯, TV 전원에는 문제가 없었다. 셋톱박스의 전원도 그대로였다.

 수연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떠올려봤지만 뾰족하게 나오는 답이 없었다. 결국 수연은 생전 거들떠보지 않던 매뉴얼을 찾기 시작했다.

 

 “분명 어딘가 있을 텐데...”

 

 도현은 문서를 잘 버리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무엇이든 기록과 증거로 남기길 좋아하는 성격 덕에 컴퓨터에 이중 삼중으로 백업해 둔 파일도 반드시 하드카피가 있어야 한다며 죄다 출력해 금고에 보관해 두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전자기기 매뉴얼도 분명히 어딘가 있을 게 분명했다.

 문제는 수연이 무언가를 잘 찾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였다. 거실의 장식장 서랍, 신발장, TV대 아래의 수납장까지 분명 뒤질 만큼 뒤져본 것 같은데 영 나오지 않는 게, 진짜 없어서 없는 건지 수연이 찾질 못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수연은 매뉴얼 찾기를 포기하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인터넷에서 사용 매뉴얼을 찾아볼 요량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게 원래 수연의 스타일이었다. 도현의 집에 있다 보니 그 분위기에 눌려 자신도 모르게 아날로그로 돌아갔던 모양이다.

 편한 길을 놔두고 쓸데없이 삽질한 자신을 자책하며 수연은 검색창에 TV모델명을 입력했다. 결과는 만족스럽게도,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제대로 된 매뉴얼북이 나왔다.

 

 수연은 매뉴얼에서 제공하는 고장 점검 페이지를 훑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들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던 것이다. 뭘까?

 고개를 갸웃거리던 수연이 이내 위화감의 원인을 찾았다. 휴대폰 상태표시줄에 와이파이가 아닌 모바일데이터 아이콘이 떠 있었다. 집에 인터넷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수연은 TV리모콘을 들어 연결 상태를 확인했다. 역시나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았다. 영화가 끊긴 이유는 그것이었다.

 

 수연은 공유기를 찾았다. 연결문제인 걸 알았으니 다시 설정하면 될 것이다. 수연은 노트북을 가져와 랜선을 꽂고 설정 페이지를 이것저것 뒤져보았다. 그런데 생각처럼 되질 않는다. 아예 인터넷이 잡히질 않는 걸 보니, 소프트웨어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수분을 낑낑거린 끝에 결국 수연은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그리고는 인터넷 통신사 콜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수리기사가 수 분 안에 도착한다는 문자메시지를 확인한 수연은 햇볕이 잘 드는 소파에 웅크려 누웠다. 어쩐지 나른한 오후였다. 정신없이 휘몰아쳤던 며칠간을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특히 미순과 대면 이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던 걸 생각하면...

 조용히 눈을 감은 수연의 머릿속에 미순과 나눴던 대화가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제 패는 보여드렸어요. 그러니... 저한테도 들려주세요.”

 

 단도직입적인 수연의 말에 미순은 잠시 말을 고르는 듯 했다. 미순이 시선이 창밖 어딘가로 향했다. 그 눈빛이 너무나 쓸쓸하고 간절해 보여서 수연은 자신도 모르게 그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나 창밖엔 흐린 하늘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수연은 따라갈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듯, 미순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제였더라... 독일에서 개고생하다 귀국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지. 오랜 객지 생활로 한국에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고 혼자 살 번듯한 집을 구할 돈도 없었어. 그래서 별 수 있나. 겨우 하숙집 하나를 찾아서 들어갔지.

 

 낮에는 죽어라 일하고 밤에 겨우 기어들어와 쓰러져 자는 생활을 한 두 달 했나... 하숙집에 젊은 여자애 하나가 들어왔어. 별 시덥지 않은 걸로 까르르 웃던 애였지. 내가 그렇게 눈치주고 구박하는데도 매일 와서 치대고, 언니언니 거리면서 앵겨 붙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나도 걔를 이뻐하고 있었어. 뭐, 그게 아니었어도 너무 예뻤던 애라, 안 예뻐할 수가 없었지.

 먹을 거 안 먹고 입을 거 안 입어서 돈이 남으면 걔한테 맛있는 거 하나라도 더 먹여주고 싶고, 예쁜 거 하나라도 더 사주고 싶고. 진짜 가족은 아니었어도 이런 게 가족이겠구나... 그 애가 있어서 겨우 알았거든.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간 좋은 날이 올 거라고 굳게 믿었는데... 그때 그 사단이 났지. 이 기지배가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면서 결혼을 하겠다는 거야.

 어쩐지 서운하고, 이게 잘해줬더니 다 컸다고 떠나가나 싶어서 배신감도 들고,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구나 싶고.

 그런데 뭐 어쩌겠어. 지 인생 살러 가겠다는데 보내 줘야지. 돈 없어서 식도 못 올리고 그냥 몸만 가서 살 거라 하는데, 그래도 그동안 쌓인 시간이 얼만데 맨 손으로는 보내나. 이 언니가 친정 대신이다 하면서 축의금이며 이것저것 다 들려서 보냈지.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그냥 알콩달콩하게 잘만 살아라 그러면서.

 

 그렇게 보냈지. 그래서 잘 사는 줄 알았는데....

 

 

 

 막았던 둑이 터지듯 쏟아져 나오던 이야기가 잠시 멈췄다. 미순의 눈에서 뭔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수연은 대략 감이 잡혔다. 그렇게 아끼던 아이를 잃었다면 얼마나 원통할까. 미순이 지독한 원한을 가질 만도 했다.

 

 “돌아가신 거예요?”

 “갔지.”

 “그분은 무슨 이유로...?”

 “이유랄 것 있나. 그냥 지 팔자대로 간 거지.”

 “네?”

 

 자신의 예상과 다른 대답에 수연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미순이 아꼈다던 그 사람은 당연히 살해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빚이든, 개인원한이든, 아니면 억울하게 휘말렸든. 그런데 팔자라고?

 

 “강경식에게 원한이 있으신 거 아니었어요?”

 “있지.”

 “근데 팔자대로 간 거라고... 살해당하신 거 아녜요?”

 

 수연이 어떤 오해를 하는지 파악한 미순이 피식 헛웃음을 터트렸다.

 

 “강경식은.. 그 기지배 남편이었다우.”

 “네?”

 “근데 뭐, 이름만 남편이었지. 호강시켜준다고 데려가 놓고는 혼인신고도 안하고 실컷 고생만 시켰으니까.”

 “......”

 “그렇게 고생하다 갔다우. 병에 걸렸는데도 변변한 약도 한 첩 못 얻어먹고... 그렇게 갔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것 때문에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풀지 못할 원한을 가진다고?

 

 당혹감에 연신 마른세수를 하던 수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풀리지 않는 의혹은 차차 풀면 된다. 오늘 해야 하는 것은 최대한 많은 단서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강경식이 Bz에서 뒤처리를 하고 다녔던 건 아세요?”

 

 수연의 질문에 미순이 입꼬리를 올렸다.

 

 “당연히 알지. 내가 그놈을 팔아먹은 건데.”

 “팔아... 먹어요?”

 “응.”

 “어디에요?”

 “어디긴 어디야. Bz 인 회장한테지.”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알 수 없는 이야기에 수연이 미순을 빤히 바라봤다.

 

 그런 수연을 보며 미순은 한동안 머릿속으로 말을 골랐다. 그리고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정말 미운 사람이... 애매하게 나쁜 놈일 때의 심정을 알아요?”

 

 미순의 눈동자가 크게 일렁이는듯했다. 그의 표정과 눈빛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달랐다.

 

 “나한텐 정말 죽이고 싶을 만큼의 원수인데, 세상 누구도 그 놈이 나쁜 걸 알아주지 않아. 나는 정말 그놈이 미워죽겠는데, 아무도 그 놈을 욕하지도 않고, 내 미움을 이해해주지도 않아. 그때의 절망감이 어떤 건지 알아요?”

 

 수연의 머릿속에서 마치 경고와도 같은 알람이 울렸다. 하지만 여기서 미순의 말을 끊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지. 이놈을 빼도 박도 못하는 나쁜 놈으로 만들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서 나쁜 놈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그래서 내가 그놈을 실컷 욕할 때, 모두 내 편에서 그놈을 욕할 수 밖에 없도록.”

 

 머릿속의 알람이 점점 커져갔다. 수연의 심장 박동이 점점 높아지는 듯했다.

 

 “그래서 팔아 넘겼어. 인 회장한테. 내가 당신이 막 써도 되는 쓰레기 한 놈을 소개해 줄테니 그놈한테 나쁜 일이란 나쁜 일은 죄다 맡겨줄 수 없겠냐고. 경찰에 잡혀도 되고 무기징역, 사형 나오는 일도 다 오케이니 그놈한테 뭐라도 좀 시켜달라고.”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슨. 마침 인 회장도 지저분한 일처리 할 놈이 필요했던 터라 냉큼 받아 먹더라고. 그때부터 시작됐지. 그놈의 개차반 인생이.”

 “그렇게 해서... 그놈이 처음 한 일이 뭐였는데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무슨 큰 기업 사장네 일이라는데, 나같은 사람이 알 게 뭐야.”

 

 수연이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원한이 바로 저기서부터 시작이었다.

 

 “그래서... 그 결과가 뭔지 알아요?”

 

 미순이 수연을 빤히 바라봤다.

 

 “아가씨에겐... 미안하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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