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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11.9

'문 여는 자'의 2권입니다. 글의 흐름 안에서 조금 더 박진감 있게 그려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재미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7
작성일 : 20-12-21 09:05     조회 : 137     추천 : 0     분량 : 2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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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다리가 너무 무겁다. 그냥 아무데나 앉아 쉬고 싶을 뿐이다. 은지는 얼굴 위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보지만 반복해서 흘러내려 앞을 계속 가린다. 산발이 된 머리, 흐트러진 옷차림의 두 사람을 행인들이 한 번씩 넘겨보며 지나친다. 은지도 민호도 아무런 말이 없다. 터벅거리는 발소리만 아래서 튀어 올랐다 사라진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게 열린교회 앞에 도착했다. 은지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민호는 곁에서 하염없이 간판만 올려 본다.

  “다 왔네.”

  “응?”

  “들어가서 쉬어. 나 갈게.”

  돌아서는 민호를 은지가 부른다.

  “민호야.”

  “왜?”

  “배고프지 않아?”

  “배고프냐고?”

  “우리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 같이 들어가자. 내가 밥 차려줄게.”

  “밥?”

  “그래, 밥.”

  은지가 하는 말을 민호의 머리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뜬금없이 웬 밥?”

  은지가 앞장서며 계단 위로 한 발 올린다.

  “사람이 밥심으로 산대.”

  “밥심?”

  헤. 은지가 맥없이 웃는다.

  “마음씨 좋은 할머니 권사님이 계신데 그 분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야. 밥이 주는 힘으로 뭐든 한다는 거지. 제대로 못 먹으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뭐 먹을 기분 아닌데. 입맛이 있겠어. 민재가…….”

  위로 올라가던 은지가 돌아본다.

  “우리 민재 얘기 오늘은 하지 말자.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아. 오늘만은.”

  민호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은지가 조금 더 부드러운 인상을 지으려 애쓴다.

  “조금이라도 안 먹을래? 먹고 가라, 응?”

  민호는 은지가 그렇게까지 권유하는데 차마 거절하기 힘들다.

  “그럴까, 그럼?”

  민호가 따라서 오르자 은지가 성큼 위를 향해 내딛는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준비할 테니까.”

  “천천히 해. 배고픈 줄 모르겠어.”

  은지의 옥탑방 안으로 들어와 엉거주춤 자리를 잡고 앉으니 바삐 움직이는 은지의 등이 보인다. 그릇이랑 식기를 내서 앉은뱅이 상 위로 올리고 냉장고 문을 열어 반찬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찌개를 끓이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 ……, 잘 됐다. 이게 있었네.”

  검은 액체로 가득 채워진 네모난 반찬 통을 들어 보인다.

  “방금 말했던 그 권사님이 주신 거야. 이거 되게 맛있다.”

  뚜껑을 열고 그릇에 내용물을 옮겨 담는 손을 보며 묻는다.

  “그게 뭐야?”

  “간장 게장. 할머니 권사님이 제대로 담그셨거든.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아?”

  민호가 고개를 쭉 빼고 훑는다. 게들이 간장 국물에 푹 담겼다. 검은 물이 진하게 올라와 비린 냄새를 풍긴다.

  “냄새, 좋다.”

  “야, 너 입가에 웃음기가 돈다. 밥 맛 없다며.”

  “간장 게장이잖아. 밥도둑인데 거부할 수가 없지.”

  게장 냄새가 솔솔, 퍼져 주변을 가득 채운다. 은지가 반찬을 옮겨 담고 밥을 한 공기씩 퍼서 앞에 내놓는다. 민호는 게장을 하나 들고 등껍질을 뗀 후 그 안에 밥을 얹고 바로 입으로 가져간다. 간장이 입술에 묻어 나온다.

  “우와, 이거 진짜 제대로네. 식당에서 파는 것보다 더 맛있어.”

  “비교할 걸 해라. 권사님 손맛이 얼마나 좋으신데.”

  다른 찬에는 눈도 주지 않고 게장만으로 거의 밥 한 공기를 비운다.

  “밥그릇 줘봐. 밥 더 줄게.”

  “아니, 그게, 갑자기 허기가 도네.”

  “어이구, 그냥 보냈으면 가는 길에 쓰러졌겠다.”

  새로 받은 밥을 게장에 비벼서 입에 넣는다. 이제 아예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정말 맛있네. 입에서 녹는다, 녹아.”

  은지가 소리 내어 웃는다.

  “넌 안 먹어?”

  “너 먹는 거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진짜 잘 먹네.”

  “이거 완전 그 맛이야.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궁극의 맛.”

  “뭐어?”

  이번에는 은지가 대놓고 웃는다. 깔깔, 거리는 소리가 목을 타고 한껏 울려 나온다. 민호가 덩달아 같이 웃다 입에 든 밥풀이 튀어나오자, 민망해져 얼른 손가락으로 찍어 숨긴다. 눈에 눈물이 맺히게 웃어댄 은지가 눈가를 닦아낸다.

  “고마워, 민호야.”

  “뭐가? 오히려 밥 얻어먹은 건 나인데 내가 고마워해야지.”

  “웃게 해줬잖아.”

  “그런 거야 얼마든지.”

  입에 한껏 음식을 밀어놓고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자 은지가 또 한 번 크게 웃는다. 그만하라며 민호를 때리기까지 한다. 분위기를 타자 민호는 밥은 뒷전이고 은지 앞에서 익살을 떨어댄다. 실컷 웃으라고. 딴 짓을 하느라 밥이 목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몰랐지만 그래도 좋았다. 따뜻한 공기밥 만큼 맛있는 웃음으로 은지를 배부르게 할 수 있어서.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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