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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푸른 하늘 발 아래; 鱗
작가 : 동그라미네모선
작품등록일 : 2020.5.15

그의 존재는 악당이라는 말도 아깝다. 악당보다는 악마, 악마보단 포식자에 가까웠고. 그 포식 대상은 인간을 넘어선 무언가에 가까웠으니까.

 
2.독배(毒杯).
작성일 : 20-12-09 18:04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14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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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 언제부터….”

 

  소름 끼치도록 맑은 그 눈동자에 거칠게 숨을 들이마신 요한이 브리텐슈와 가까이하던 자신의 왼발을 뒤로 주춤 물렸다.

 

 “그걸 궁금해하지 않는 게, 당신의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단정적인 어투로 요한의 의심을 확신으로 못 박아 버린 남자가 태양의 화신처럼 환한 미소를 보였다. 그 미소를 본 요한의 머릿속에 ‘처음부터’라는 말이, 그의 모든 사고 회로를 마비시켰다.

 

 “그럴, 리가 어어….”

 

  본능이 강하게 작동한 암살자의 몸이 위기에 반응하듯 오른발을 마저 뒤로 빼려하자, 그보다 먼저 뻗친 브리텐슈의 팔이 요한의 어깨를 내리누르듯이 천천히 감쌌다. 그 손길에 뒷길이 막힌 것을 감지한 암살자의 몸이 얼어붙었다.

  눈치챘을 땐 이미 올가미에 걸려서 조금만 움직여도 다리 하나가 금세 떨어져 나갈, 그런 불합리한 자리에 갇혔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무수한 훈련으로 다져진 그의 생존 본능이 제 목덜미에 닿는 공포에 먹혔다.

  그 공포에 잠식된 요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던 브리텐슈가 암살자의 손에 있던 쟁반을 제법 익숙하게 빼냈다. 암살자의 손에 위태롭게 들려 있던 것을 능숙하게 빼낸 보좌관은 그것을 냉랭한 표정의 제리에게 건넸다.

 

 “오늘 복장이 화려하군요.”

 

  마치 불꽃같습니다. 피로 울긋불긋 물든 제리의 업무복을 재차 확인한 보좌관이 입꼬리를 올려 보이며, 그를 향해 얄밉상스럽게 웃었다. 그 시선을 받은 제리의 눈초리가 점점 가늘어지며 여태껏 미미하게 드러내던 불쾌감을 가득 품었다.

  자신의 반응을 처음부터 계속 흥미로워하는 브리텐슈를 향해 눈을 흘긴 제리가 하얀 코트를 입은 사내와 강제적으로 어깨동무를 하게 된 침입자를 노려보았다. 브리텐슈의 두꺼운 팔 아래서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침입자를 노려보던 그는 제 앞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남자를 향해 또박또박 발음했다.

 

 “예~ 이게 다 그쪽이 데리고 있는 손님 덕분이지요.”

 

  ‘나는, 불쾌하다’란 감정을 글자마다 또박또박 새겨 넣던 제리의 미간이 보좌관의 능청에 좁혀졌다. 그가 자신이 입고 있던 정복을 훑어보더니, 진정으로 안타깝다는 시늉을 하며 속을 긁었기 때문이었다.

 

 “저런.”

 

 ‘저 새키가….’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자신을 놀리는데 더 성실한 남자를 보자니, 다시 머릿골이 아파 왔다. 가뜩이나 신장 차이가 있던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하는 것이 더욱 껄끄러웠다. 아니, 정확히는 보좌관보다 신장이 작은 제리의 부담이 컸다.

 

 ‘짜증나.’

 

  가까이서 미하엘을 노려보던 제리가 목의 통증을 느끼며 그 시선을 내렸다. 시선을 내린 그는 그나마 자신과 비슷한 키의 암살자를 바라봤다. 앞의 남자에게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본론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원래의 목적을 상기한 제리가 시선 처리가 불안정한 가짜를 향해 손을 뻗었다. 평소보다 거친 손길로 침입자의 턱을 붙잡은 그가 오들오들 떠는 가짜를 향해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러니, 변상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손님,”

 

  무의식에 떨리는 몸이 저절로 멈출 정도로 센 악력이 암살자의 피부를 타고 고스란히 느껴졌다. 단지 집게손가락만이 살갗에 닿았을 뿐인데도 단단히 고정된 자신의 얼굴에, 암살자는 자신의 힘을 크게 웃도는 상대의 악력을 느끼고 전율했다.

 

 ‘힘이….’

 

  자신을 향한 상대의 두려움에도 아랑곳없이 제 일을 망친 침입자를 향해 두 눈을 번뜩인 제리가 저와 같은 인두겁을 위로 들어 올렸다.

 

 “비헤일리스 저택의 업무복이 좀 값비쌉니다.”

 

  암살자를 비웃듯 휘는 남자의 입매가 좀 전과는 달리 거침이 없었다. 자신의 한 손에 완전히 제압된 사내를 노린 제리의 눈망울에 섬뜩하리만큼 날것 그대로의 비명이 가득 채워졌다.

 

 “그 오만한 왕국과는 비견도 안 될 정도로.”

 

 

 ***

 

  비헤일리스에서 가장 긴 겨울을 나는 모드나드. 그 북부를 대표하는 백마성(白魔城) 언저리서 산울림처럼 희미하게 퍼지던 신음이 점점 땅으로 꺼졌다. 땅거미가 내리는 풍경 속에서 두 개의 저택 사이에 자리한 평야가 검붉은 빛을 머금으며, 자신의 위로 스치는 매서운 바람 따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잖아.”

 

  황혼을 어렵게 삼켜낸 설원 속에서 혈색이 어두운 팔 하나가 발악하듯이 위로 뻗어졌다. 그 손끝이 향한 곳에는 늦저녁의 노을을 등진 채 하얀 외벽에 그림자를 드리운 사람 하나가 서 있었다.

 

 “죽었었잖아.”

 

  너희.

 

  겨우 의식을 차리고 있던 침입자가 진이 빠진 나머지 뒷말을 삼켰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내지 못한 그 의미는 상대에게 충분히 전달됐으리라. 저물어가는 태양 빛을 붙잡으려는 듯이 뻗은 그의 손 앞으로 이리저리 꺾인 검은 가지들을 짓밟는 무리가 훤히 보였다.

 

 “그러…”

 

  그와 마찬가지로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던 침입자의 손이 인형을 향했으나, 앞사람을 향해 뻗어진 손은 딱총을 맞은 꾀꼬리처럼 바닥으로 픽 쓰러졌다. 작은 쇠공 같은 빛의 형태가 그 머리를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급격한 곡선을 그린 그 빛은 침입자의 몸통과 팔을 완전히 분리하기까지 했다.

  그 숨이 끊기는 것을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여인이 빛이 쏘아졌던 방향으로 고개를 틀자, 자신에게 손을 뻗던 침입자처럼 조각조각 난 암살자들의 잔해가 즐비했다.

  너른 평원을 지저분하게 더럽힌 잔해를 밟고 선, 검은 인형 중 하나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굵기의 가는 장검을 들고 정복 차림의 집사 근처로 다가왔다.

 

 “행수.”

 

  그렇게 집사 옆에 선 자는 엎어진 침입자의 목덜미를 검으로 내리 찔렀다. 예상대로 칼에 찔린 침입자의 몸통은 특별한 반응이 없었다. 그것을 확인한 그가 상대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모두 확인했습니다.”

 

 “이제 정리를….”

 

  보고를 받은 그가 옆에 선 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려 할 때였다. 땅거미가 내려앉는 머리칼이 아래로 쳐지지 않고 위로 살짝 들렸다. 백색 성을 바라보던 그의 시야에 그 최상층에서 무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창가에 비친 반월형의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잠시간 어른거리더니 금세 사라졌다.

  그 모양을 유심히 지켜보던 그가 시선을 내리자 어둠에 잠식되는 노을빛이 새하얀 벽면을 은근히 물들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얀 벽면을 따라 가장자리에 다다른 그의 시선이 깊은 골짜기와 같은 두 저택의 사이에서 머물렀다.

 

 “….”

 

  그런 그의 모습에 검은 인형이 자신의 손에 들린 장검을 반대편 손으로 옮기며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창가에 머물던 집사의 시선이 금세 인형에게로 돌아갔다.

 

 “처리할까요?”

 

 “부탁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그 말에 복종한 인형이 등에 차고 있는 칼집에 검을 집어넣으며 뒤를 돌았다. 뒤를 돈 그의 망토 사이로 하얀 정복이 언뜻 드러났다가 바람결에 다시 가려졌다.

  황혼을 향해 몸을 돌린 인형이 잔해를 한곳으로 모으는 이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그에게서 멀어지자, 부채꼴처럼 너른 들판을 끼고 백작 성과 마주하고 있는 공작 성에서부터 하얀 물체가 깡충거리며 집사를 향해 달려왔다.

 

 ‘…왔구나.’

 

  하얀 눈송이와도 같은 털 뭉치가 제 앞에서 멈춘 것을 확인한 그의 시선에 언뜻 반가움이 보였다. 그 소리에 백마(白魔)의 화신처럼 새하얀 빛깔의 짐승이 그를 향해 귀를 쫑긋거렸다.

  제게로 귀 기울이는 짐승이 이제는 작게 느껴질 만큼 자란 그가 숲의 문지기처럼, 그 앞에 나란히 자리한 백마성(白魔城)과 함께하는 수리성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 들어온 두 저택 사이로 드러난 숲을 크게 보듬는 북동풍이 때맞게 불어왔다.

  그 바람을 안은 그의 심상이 흐트러진 찰나였다. 붉은 성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그가 한적함과는 다른 적막을 지닌 홍갈색 외벽이 마치 자신 같다는 생각에 그가…

 

 「이빌린」

 

  적갈색 아지랑이를 잠시 보는 듯했던 그의 정신을 누군가가 현실로 끌어올렸다. 그 부름에 잠시 상념에 빠졌던 집사의 고개가 살짝 들렸다가, 자신의 발등을 누르는 조그만 기척에 다시 내려갔다.

  황금빛이 섞인 옅은 그의 갈색 눈망울에 반질반질한 구두 표면을 제 앞발로 꾹꾹 내리누르는 짐승이 담겼다. 그 몸짓을 알아차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긍정에 앞발을 올린 짐승이 흥에 겨워하며, 집사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흥을 돋우며 겅중겅중 뛰던 짐승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얌전해지더니, 자신에게 시선을 준 그를 향해 갑자기 돌진했다.

  그렇게 사람과 부닥쳐 땅으로 내동댕이쳐질 줄 알았던 짐승은 유리판이 갑자기 우그러드는 소리와 함께 들판에서 사라졌다. 그와 맞부딪칠 줄 알았던 집사 역시, 있던 자리서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

 

  공간이 잔혹하게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집사와 작은 짐승의 그림자가 층계를 밟았다. 그들이 앞으로 발을 뻗자 무언가가 찰박하고 밟혔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쌉싸름한 냄새가 그의 비강(鼻腔)에 가득 풍겼다.

  그들이 도달한 곳은 분명, 몇 분 전만 해도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던 백마성의 중앙 층계참이었는데 말이다.

 

 “끝났어?”

 

  그것은 몸에서 갓 꺼낸 피비린내였다. 그 비린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중심에 서 있던 남자가 이빌린을 보고 반색했다. 이중 거울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집사를 보고 놀라는 기색 따윈 전혀 없었다.

  익숙한 목소리를 향해 방향을 튼 이빌린의 시선에 바닥에 잔잔히 흩뿌려진 피를 밟고서 그를 향해 미소 짓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집사의 눈망울 속 남자는 과연 백의의 천사란 악명답게, 형체도 찾아볼 수 없게 짓이겨진 살점을 집요할 정도로 잘근잘근 밟아 짓누르고 있었다.

 

 심심해서.

 

  생글거리던 남자가 이빌린의 시선을 의식한 건지 괜히 변명 거리를 찾았다. 그런 남자의 변명에 귀를 쫑긋 세운 털 뭉치가 하얀 코트의 허리께 근처까지 방방 뛰어올랐다.

 

  ‘퍽이나.’

 

  짐짓 모른 체하며 변명 따위를 늘어놓는 미하엘을 본 제리의 표정이 싸늘했다. 그 옆에 계속 서 있었던 제리의 얼굴은 마치 애벌레가 든 사과를 크게 베어 문, 그런 떫디떫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처럼 이빌린을 향해 환히 웃고 있는 남자는 조금 전만 해도 악마도 경악할 비행(非行)을 저질렀고, 그것을 맨정신으로 지켜본 그의 심신은 심히 고단했더랬다.

 

 “오셨어요.”

 

  쟤 좀, 어떻게 좀 해주세요. 마치 그렇게 말하는 얼굴로 집사를 반긴 제리가 옆에 있던 남자의 곁에서 더욱 멀어졌다.

  그런 신호에 이빌린의 고개가 자신과 비슷한 눈높이의 보좌관에게로 향했다. 그 고갯짓에 비교적 형태가 남아 있던 덩어리를 집요하리만치 짓누르던 브리텐슈의 발놀림이 멈췄다.

 

 “알았어, 그만할게.”

 

  이빌린의 시선에 들어온 그가 그 또렷한 눈망울을 향해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집사에게 복종의 의미로 두 손을 보인 그는, 어느새 이빌린의 곁에서 자신을 경계하는 제리를 바라봤다.

  미하엘의 시선을 느낀 제리가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리자, 그 반응을 즐기는 듯한 보좌관이 뒤로 물러나며 들었던 손을 내렸다. 그러자 그 발아래에 있던 붉은 살덩이들이 하얀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허공에 뜨던 하얀 가루는 보좌관의 옆에 있는 짐승 등허리로 스미어 곧 사라졌다.

 

 “이제 괜찮죠?”

 

  제리. 자신을 향한 그 뻔뻔한 미소에 눈을 가늘게 뜬 제리가 자신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보좌관의 뻔뻔한 태도에 곧장 화낼 줄 알았던 그는, 타인의 혈액으로 어지럽혀진 바닥이 금세 빛나는 것을 보며 마지못해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그럼요.”

 

  당신께서 앗아간 제 시력만 빼고요. 웃는 남자의 가면을 응시한 제리가 작위적인 미소 지었다. 이미 자신의 손에서 반죽음된 암살자를 고문하듯이 산채로 갈가리 찢어버리다니.

 

 ‘미친놈.’

 

  웃는 낯에 비해 그렇지 못한 비위를 가진 제리가 떠오르는 기억을 거부하며 움찔거렸다. 집사가 직접 관리하는 곳인 것도 개의치 않고 그 난장판을 만들 줄이야. 타국에서도 피에 미친 놈이라 불리던 남자를 너무 얕봤다.

 

 “오.”

 

  그런 제리의 생각을 읽은 듯이 그를 바라보던 미하엘이 감탄하며 양 눈썹을 들썩였다. 그렇게 또 다시 제리를 괴롭힐 줄 알았던 미하엘은 의외로 금방, 그에게 두던 시선을 거뒀다.

  이빌린의 등장에 그에 대한 흥미가 당장 떨어졌으니, 더는 제리를 괴롭히지 않으리라. 그렇게 자신의 맞은편에 서 있는 이빌린에게 다가간 그는 상대방을 향하여 나긋나긋이 물었다.

 

 “갈까?”

 

  껑충 뛰어오른 짐승과 함께 미하엘의 눈매가 곱게 휘자, 그것을 지켜본 이빌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번들거리는 녹금색 눈망울에 이채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것을 알아차린 이빌린의 시선이 자신의 곁에 있는 제리에게로 곧장 향했다.

 

 “오늘은 제게 양보하셔야겠습니다. 제리.”

 

 “…어쩔 수 없죠.”

 

  집사의 부름에 조금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던 그가 자신이 들고 있던 쟁반을 이빌린에게 건넸다. 그것을 건네받은 이빌린이 아쉬워하는 제리를 위로하듯 옅은 미소를 보였다.

 

 “고마워요.”

 

 “뭘요.”

 

  이빌린의 호의에 상응하는 제리의 화사한 미소가 보였다. 미하엘에게 보인 작위적인 미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정다운 표정이었다. 정작 맞은편에서 그런 둘을 보고 있던 미하엘은 이런 일이 익숙한 것인지, 자신에게만 쌀쌀맞은 제리의 반응에 딴죽을 걸지는 않았다.

  평소처럼 심술궂은 표정을 숨기며 화사하게 웃는 미하엘과 그 속내를 진작 간파해 그를 강하게 꺼리는 제리를 살피던 이빌린의 시선이 자신의 손으로 향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쟁반에 올려진 유리잔의 내용물을 확인한 그는 곧이어 위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미하엘.”

 

  그 옆에서 목 근육을 푸는 시늉을 하던 미하엘이 계단을 오르는 이빌린의 부름에 고개를 들고는 멈췄던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네~에.”

 

  비헤일리스 백작을 상징하는 거대한 활이 겉으로 볼록하게 솟아 있는, 그 바닥을 밟고 지나는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던 제리가 짧은 한숨을 쉬었다.

 

 ‘며칠간 못 보겠네.’

 

  그런 제리를 위로하듯 하얀 털 짐승이 그의 발에 살갑게 몸을 비볐다. 그 재롱에 제리가 미소를 지으며, 활등 무늬의 투명한 조각을 밟고 있는 짐승의 이마를 살살 긁어주었다.

 

 “이제 가봐.”

 

  그 말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제리에게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이던 하얀 짐승이 위로 깡총 뛰어오르더니, 이내 있던 자리에서 사라졌다.

 

 

 ***

 

  층층을 잇는 계단을 밟고 최상층까지 올라온 두 사람이 복도와 층계를 단절시킨 중문을 열고 긴 복도로 들어섰다. 그들이 두꺼운 문을 열자마자 어느새 먼저 올라와 있던 하얀 짐승이 중문 안에서 깡충깡충 뛰며 두 사람을 반겼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짐승의 분위기에 복도로 들어선 두 사람이 하얀 털 뭉치를 따라 백작의 방으로 향했다. 포근한 짐승의 발소리처럼 조용조용한 그들의 발걸음이 안쪽에 있는 밋밋한 문 하나를 지나치자, 쌍으로 난 검정 여닫이문에 금세 도달했다.

  반질반질한 검정 문의 양쪽 문고리를 돌려 동시에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이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시원스러운 두 사람의 걸음을 따라 복도에서 어둑한 방 안으로 빛줄기가 서서히 들어왔다. 열린 문틈으로 들어온 빛이 두 사람을 등지고 선 이의 머리 위로 길게 뻗쳤다.

 

 “백작.”

 

 “부르셨습니까.”

 

  두 사람에게 보인 그의 뒤태가 마치 저울의 중심축처럼 또렷했다. 중심이 잘 들어맞아, 어떤 충격에도 거뜬히 버텨낼 듯한 그 특유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런 백작의 뒤태가 멈춰선 두 사람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상태가….’

 

  그 위압감을 느낀 이빌린이 시선을 내리자, 그 시선에 든 검은 윤곽 아래로 난잡하기 짝이 없는 세 인물의 구도가 드러났다. 우리를 탈출하는 야생 짐승처럼 제멋대로 고꾸라져 핏물에 박힌 몸통이 필사적이면서도 처절해 보였다.

  하나같이 거칠게 난도질 된 암살자를 본 집사가 착잡한 마음을 숨긴 채 짐짓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옆에 있던 보좌관의 표정은 가는 눈초리에 비해 그리 심각한 기색은 아니었다.

 

 ‘결국….’

 

 ‘나왔군.’

 

  한 상황을 두고 다른 생각을 하던 두 사람 사이로 붉게 물든 인형을 훑어보던 털 짐승이 기웃거렸다. 그것은 겹겹이 포개져 래피어에 나란히 꽂힌 암살자를 향해 겅중겅중 다가가더니, 제법 선선한 냉기를 느꼈는지 자신의 몸을 털었다.

  그러고서 다시 반짝이는 눈망울로 두 겹으로 포개진 시체를 이쪽저쪽 훑어보기 바쁘던 짐승은 순식간에 반대편 방향으로 자리를 옮겨 다른 주검을 살폈다. 포개진 시체와는 다르게 엎어진 채 잘못을 비는 사람처럼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쳐든 남자의 모습은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겠으나 긴박함이 절절히 느껴졌다.

  그런 남자의 관절 아래가 깊게 파훼 되어 있어, 그의 창백한 모습이 단번에 이해가 갈 정도였다. 그것에 다가가서 냄새를 맡던 짐승이 몸을 움찔하더니, 그 위에서 빠르게 내려오며 제 옆에서 반질반질 빛나는 하얀 구두 근처로 후다닥 달려갔다.

  설원 위로 사뿐사뿐 내려앉는 눈송이와 같은 그 가벼운 인기척에 아랫눈시울에 반이나 걸쳐 있던 새벽빛의 고요한 눈망울이 위로 향했다. 멈췄던 호흡이 되돌아오자 그의 하얀 등이 들숨에 서서히 차올랐다.

 

 “왔어?”

 

  피로 물들었던 얇은 비단과 거칠게 헤집어진 살갗은 물론이거니와 거무튀튀하던 창백한 안색까지 전부 반전된 행색의 레인슐레이츠만이 두 사람을 향해 몸을 돌렸다. 자신의 사람에게 얼굴을 보인 그의 눈동자는 밤손님을 희롱할 때보다 더욱 번들거렸다.

  그리고 두 사람을 향한 그의 밝은 목소리와는 달리, 그 얼굴에 드러난 감정은 딱히 두드러지는 것이 없었다.

 

 “레인.”

 

  그런 백작의 표정을 지켜본 집사가 앞으로 몇 걸음 다가섰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반듯한 정장 아래로 잘 손질된 구두가 윤기를 뽐내며 주인의 발과 합을 맞춰 움직였다. 보좌관과 마찬가지로 백작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집사가 상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명령하세요.”

 

  그 충성스러운 모습에 백작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암살자였던 남자가 있는, 왼쪽으로 시선을 내리깐 그의 표정이 싸늘했다. 암살자의 경멸과는 결이 다른 냉혹함이었다.

  그런 그의 오른손이 반대편에 있던 래피어를 잡아 들었다. 그러자 날붙이에 꿰어진 사내들의 몸이 그 힘에 거칠게 들썩이며 곧 바닥으로 추락했다.

 

 “재밌는 걸, 만들 겁니다.”

 

  바닥에 박힌 검을 뽑아 든 그가 천장을 향해 그것을 비스듬히 들어 살폈다. 검의 날렵한 선을 살핀 그의 입매가 시원스럽게 반원을 그렸다. 그 움직임을 따라 날카롭게 벼려진 서슬이 노을을 집어삼킨 월광을 머금고 절벽 아래 검푸른 물결처럼 반짝였다.

  자신의 손길을 따라 흐르는 백색의 광채를 시선으로 따라잡던 그가 한쪽 눈을 감자, 그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에 집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떤 게 필요하십니까.”

 

  집사의 물음에 늘씬한 선을 살피던 새벽 눈동자가 살포시 가늘어졌다가 원상으로 돌아왔다. 실 끊어진 마리오네트, 그것을 사이에 둔 주인공이 본심을 드러냈다.

 

 “없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되니까요.”

 

  그의 오른손에 있던 래피어가 어느새 반대편으로 넘어가더니, 위에서 아래로 수평을 그리며 떨어진 검이 바닥에 고꾸라진 인형의 고른 등을 툭툭 쳤다. 오른편에 있는 주검보다도 상대적으로 양호한 외관의 남자는 그 작은 충격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빳빳이 쳐들 뿐이었다.

 

 “준비물은 다 되었고.”

 

  그 손짓을 따라 황금빛에 녹아든 두 쌍의 눈동자가 핏기 하나 없는 인형을 향해 움직였다. 그들의 시선에 들어온 창백한 인형은 왼쪽 눈두덩이 심하게 함몰된 채 미동 없이, 처음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인두겁을 두 사람에게 보인 그가 잔잔한 미소를 보였다.

 

 “이제… 시간이 오길 기다리면 됩니다.”

 

  그 미소에 두 사람이 침묵했다. 자신의 말에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은 두 사람의 모습에, 제 결정에 관한 암묵적 동의가 있음을 알아차린 백작의 검회색 눈썹이 부드럽게 휘었다.

  그런 백작의 얼굴은 힘이 조금 빠진 것뿐인데도, 그 미묘한 차이가 분위기를 확 바꿔놓았다.

 

 “암살자 노엘 슈만의 몸에 있던 겁니다.”

 

  좀 전보다 차분한 얼굴의 백작이 보좌관과 집사를 향해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그가 손을 펼치자, 그 손안에 있던 투명한 포장지가 무언가를 감싸 똬리 틀어진 것이 보였다.

  그 투명한 포장 안으로 연두색 눈망울이 안구 채로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초점을 잡지 못한 눈동자처럼 그 겉껍질 안을 이리저리 굴러다니기 바빴다.

 

 “이건….”

 

  정신없는 그 움직임에 백작의 손에 있던 것을 보는 두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자 그들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발코니로 향했던 동공이 잠시 얼어붙었다가 제 눈망울에 비치지 않는 백작의 수족을 담으려 부단히도 움직였다.

  그러나 자신을 둘러싼 외피를 뚫지 못한 눈동자의 눈망울엔 여전히 비치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것을 빤히 보고 있던 백작이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과연, 귀족의 후손답다고 해야 할까. 처절한 이의 피를 빨아먹는 이 짓거리가 아주…”

 

  가소롭단 듯이 휘는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뚝, 빛을 떨어뜨렸다.

 

 “자연스러워.”

 

 「가증스러워.」

 

  그 경멸 어린 비웃음이 투명한 막을 타고 눈동자에 스미자, 옅은 새싹 같은 색소가 산들바람에도 흔들리는 잔디처럼 산들거렸다.

  백마의 손아귀에서 보잘것없이 잘게 떠는 그 모습에도 보좌관의 태도는 진지했다.

 

 “대마법사와 연결된 매개체의 아티팩트군요.”

 

  인공물. 사람이 만든 마법의 결정체. 암살자를 통해 위대한 마법사의 결정체와 마주한 백작의 수족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보좌관보다는 비교적 차분한 표정의 집사가 입을 열었다.

 

 “대마법사가 직접 움직인 걸로 봐, 배후가 있을 듯합니다.”

 

  백작이 자신들에게 보여주기 전까지, 그의 손에 이것이 있는지도 몰랐던 이빌린과 미하엘의 시선이 좋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의 감상에 동의한다는 듯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는 맞은편에 있던 보좌관에게 자신의 손에 있던 것을 던졌다.

  그것을 잡아챈 미하엘이 얇은 막에 가려져 여전히 볼 것을 찾아 헤매고 있는 암살자의 한쪽 눈을 유심히 살폈다가, 이내 심드렁한 표정을 보인 백작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미 저하에 관한 정보를 얻었을지도 모르고요.”

 

  백작의 상태가 예전 같지 않음을 항상 걱정하던 보좌관이 미간을 좁혔다. 그 심각한 표정을 빤히 바라보던 백작의 입술이 짧게 움직였다.

 

 “맞아.”

 

  보좌관의 의심을 순순히 인정한 그가 눈을 깜빡였다.

 

 “이 몸이 중독되었단 것을 알았지.”

 

  상당한 준비를 했던 것인지, 저택 고용인 대부분을 속인 아티팩트의 효과가 대단했다. 이제까지 백작 성에 찾아온 암살단 중 내부로 침입한 암살자의 수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았다.

  다만 오늘은, 백작의 상태를 유념하여 만일을 대비한 이빌린의 계책이 빛을 발했다. 백작의 허락 아래 이뤄진 반동 마술은 정해진 대상의 상태가 일정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그것을 행하는 사람의 힘을 상당히 소모하게 하는, 썩 효율성 나쁜 마술이었다.

 

 “…더 하실 말씀이 있군요.”

 

  도감(圖鑑)에 수록된 그림 하나를 넘겨 보는듯한 백작의 무심한 반응에 이빌린의 표정이 미묘하게 경직됐다. 본인의 명줄이 여러 개인 줄…, 아차차. 그 지극한 일관성에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던 탄식을 참을성 있게 삼킨 금색 빛깔의 눈망울이 올곧게 뻗었다.

 

 “예.”

 

  그 눈망울과 마주한 백마의 눈초리가 기분 좋은 여우의 눈시울처럼 가늘어졌다. 보시시 보인 미소 아래, 단단한 표면을 꿰뚫는 난잡한 파열음이 들렸다.

  그 소리를 따라가니, 백작의 아귀에 있던 검이 매끈한 바닥의 표면을 깊이 그리고 가뿐히 뚫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래피어가 당장에 바닥으로 꽂히자, 그 판판한 표면 아래 잠들었던 보석의 일부가 파편이 되어 튀어 올랐던 것이다.

 

 “카울로스에 희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전해 주시겠습니까.”

 

  바닥에 엎드려 두 손을 빌고 있는 침입자의 윤곽이 하얀빛을 띤 서슬에 의해 반으로 나뉘었다. 그 검을 쥐고 있던 백작의 손에 힘이 풀리며, 그 시퍼런 날과 거리를 벌렸다.

 

 “듣겠습니다.”

 

  그림자도 갖지 못한 초라한 침입자의 말로를 또다시 제 눈으로 새긴 이빌린이 화려한 담쟁이 문양이 새겨진 칼자루를 슬쩍 내려다봤다.

 

 “일주일 뒤, 빗장을 풀 겁니다.”

 

  이빌린의 시선을 읽은 백작의 검회색 눈썹이 미미한 곡선을 그렸다. 웃는 듯, 웃지 않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의 그가 말을 덧붙였다.

 

 “당신이 준비해주세요. 이빌린.”

 

  부탁보다는 조금 더 살가운 그 의도에 갈색 눈망울이 흔들렸다. 최근 보이지 않던 유한 모습이었다. 백작의 말에 막힘없이 척척 대답하던 이빌린이 쉽게 입을 떼지 못하자, 그 옆에 있던 미하엘의 눈망울이 그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전하겠습니다.”

 

  광물로 이뤄진 어두운 바닥을 단번에 뚫은 래피어를 잠시간 담아내던 금색 빛깔의 눈망울이 서서히 올랐다. 그 대답을 기다린 백작의 고개가 살짝 움직였다.

  백마란 칭호를 드러내듯이 순수한 하양으로 꾸며진 백작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이빌린이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들고 있던 쟁반을 그에게 내밀어 보였다.

 

 “오늘 치입니다.”

 

 “예.”

 

  여전히 거리를 둔 채 서 있는 집사가 상대를 향해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런 집사에게 비교적 가까이 다가온 백작이 투명한 잔에 있던 내용물을 자신의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들어 올린 잔을 다시 내려놓을 때까지 백작을 향한 집사와 보좌관의 시선이 노골적이었다.

  그 시선을 받으며 잔을 내려놓은 백작이 그 옆에 놓인 하얀 손수건을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손수건을 꼭 쥐며 걸음을 뗀 그의 목울대가 마른 침을 삼키는 것처럼 심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집사와 다시 멀어진 백작의 안색이 점점 거무죽죽하게 변하더니, 그의 턱 언저리부터 반짝이던 미세한 가루가 숨이 죽은 것처럼 금세 탁한 색으로 변했다. 점점 느려지는 발걸음으로 의자에 앉은 그의 숨결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는 듯 잠시간 느려졌다.

  강중강중. 그 느린 숨결 아래로 축 늘어진 백작의 발 언저리에 하얀 털 뭉치가 자리를 잡자, 그 기척에 가는 눈초리로 아래를 살피던 백작이 습관적으로 아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

 

  자신을 비추는 큰 눈망울을 가진 짐승의 이마를 살갑게 쓰다듬던 그가 침을 한 번 삼키고서 말을 이었다. 겨우 말을 이은 그의 목덜미로 식은땀이 보였다.

 

 “안 죽어.”

 

  자신을 향한 끈질긴 시선에 본래의 무표정을 되찾은 백작이 상대방을 타이르듯 느린 호흡을 보였다. 그러나 바닥에 있는 짐승을 뜻대로 안아 들지 못한 그가 겨우 등받이에 몸을 붙인 것을 알고 있던 집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식은땀을 흘리는 그를 향해 차분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압니다.”

 

  꼼질꼼질 움직이는 바닥의 작은 기척이 곧 조용해졌다. 아마도 그의 발아래서 더는 올려 달라 조르지 않으리라. 그는 휴식이 필요했다.

 

 “당분간은 푹 쉬는 게 좋겠습니다. 레인.”

 

  그런 집사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인지, 한결 부드러워진 이빌린의 표정을 바라보던 백작이 잠시간 말이 없었다.

 

 “그동안 카울로스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

 

  끔뻑끔뻑 자신을 바라보는 백작을 향해 희미한 미소를 보이던 이빌린이 옆에 있던 미하엘을 향해 눈짓하더니, 이내 정중한 자세로 뒤로 물러나 상관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쉽게 자리에서 빠져나간 이빌린을 보던 백작의 거무죽죽한 눈꺼풀이 그제야 무겁게 내려앉았다. 잠시간 빛이 들던 문틈이 좁혀지며 어둑하게 변하자 백작의 아랫눈시울과 맞닿던 윗눈시울이 깊이 붙었다가 떨어졌다.

  찰칵. 원래 형태로 돌아온 문이 제때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 가벼운 소음이 백작의 귓가에 꽂혔다. 그에 도르르 눈동자를 굴리며 여태 조용하게 있던 보좌관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백작을 향해 양 눈썹을 씰룩였다.

 

 “역시 눈치가 빨라.”

 

  그 말에 닫힌 문을 멀거니 바라보던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고갯짓 끝에 요요한 새벽빛 눈망울이 드러났다.

 

 “일은.”

 

  어떻게 됐어? 그렇게 묻는 눈동자에 백작과 마주한 보좌관의 눈썹이 둥글게 휘었다. 입가의 근육을 잔잔히 움직인 그가 호기심 어린 눈초리에 화답했다.

 

 “원하시는 데로.”

 

  우주를 섬기는 천사처럼 신실한 보좌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하엘의 은은한 미소에 한쪽 눈썹을 쓱 올려 보인 백작이 그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반란도?”

 

 “예.”

 

 “데려온 아이들은.”

 

 “원래의 곳으로 무사히.”

 

 “대가는.”

 

 “원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군.”

 

  예상치 못한 대답에 보좌관을 응시하던 투명한 눈망울이 아래로 향하더니, 창백한 눈꺼풀에 살짝 숨었다. 생각을 정리하듯 잠시간 두 눈을 감고 있던 그가 왼쪽 관자놀이를 누르더니, 보좌관을 향해 다시 물었다.

 

 “공화국의 감시자는.”

 

 “전쟁이 끝난 후 3년간 정비의 시간을 가진 뒤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누구를 통해서.”

 

 “당시 저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에게.”

 

 “아아. 그래, 더 물어볼 필요가 없었군.”

 

  보좌관의 성실한 대답을 듣던 백작이 누군가를 떠올린 것인지, 무의식적으로 탄식을 뱉었다. 그렇게 비죽 올라간 백작의 입꼬리를 본 보좌관의 눈망울이 커졌다.

 

 “그에 대한 신용이 상당히 두텁군요. 저하”

 

  그 경탄 어린 탄식에 수정과 같은 백작의 눈망울을 한껏 응시하던 브리텐슈의 눈매가 곱게 휘었다. 그러나 그 온화한 미소와는 달리, 녹금색 눈망울엔 고움이라는 것과는 상당히 먼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샘이 나. 자신 앞에서 다른 이를 훌륭히 보는 백작의 편애에 천사 같던 남자의 얼굴에 심술이 드러났다. 그 손에 가장 가벼운 벌새 하나가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찢어발겼을 듯한, 그런 미소였다.

  그 심술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좁힌 백작이 그를 향해 이해를 구했다.

 

 “자력으로 제 정체까지 알아낸 위인을 무시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보좌관.”

 

  보좌관. 자신의 곁에 미하엘 브리텐슈가 있음을 상기시킨 그 말에, 백작을 응시하던 남자의 눈매가 갸름해졌다. 그 뻔한 속내를 알면서도 그는 곧 상관의 꼬임에 넘어갔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불순물처럼 남아 있던 감정을 씻어버린 브리텐슈의 눈망울이 유리알처럼 맑게 빛났다. 그렇게 맑은 눈을 반짝인 남자가 이윽고 고개를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자, 저하.”

 

  백작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그가 짐짓 충성스럽게 허리를 숙였다. 고개를 드는 그의 입매가 맞은편에 자리한 활등과 대칭되듯 활짝 휘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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