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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푸른 하늘 발 아래; 鱗
작가 : 동그라미네모선
작품등록일 : 2020.5.15

그의 존재는 악당이라는 말도 아깝다. 악당보다는 악마, 악마보단 포식자에 가까웠고. 그 포식 대상은 인간을 넘어선 무언가에 가까웠으니까.

 
2.독배(毒杯)/※
작성일 : 20-12-09 17:58     조회 : 260     추천 : 0     분량 : 14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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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설마 했는데…. 역시 괴물은 괴물인 건가.’

 

  대화를 유도하는 백작의 말에 얼추 뜻을 맞춘 암살자가 시선을 내렸다. 설마하니 대마법사께서 주신 아티팩트가 무용지물이 될 줄이야. 비헤일리스 백작에 관한 소식만큼은 직접 보고받던 그가 이해되는 바다.

  게다가 자신의 침입을 알아차린 뒤에도 외간 남자가 들어온 것을 알고 옷을 추스르는 것 없이 전혀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있었던 일을 감추기 위해 피 묻은 어깨를 감싸려는 행동조차 보이지 않는 태연함이 암살자가 원하는 방향과는 썩 달랐다.

 

 ‘너무 태연한데.’

 

  그저 피로한 얼굴로 느리게 눈을 깜짝이며 고개를 기울인 여인은 제 머리칼을 오른손으로 천천히 쓸어 넘길 뿐이었다.

 

 ‘무언가 있는 건가….’

 

  침입자를 두고 너무나 아무렇지 않은 백작의 모습에, 그를 응시하던 노엘의 연둣빛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괴물 백작, 백마(白魔), 효광군(曉狂軍)의 주인 등 그를 가리키던 무수한 별칭이 암살자의 뇌리에 스쳤기 때문이다.

 

 “오늘은… 상황이 좋지 않은데.”

 

  속이 시끌시끌한 노엘의 귓가에 아래에서 그의 대답을 기다리던 백작의 짧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그런 여자의 목을 비틀 수 있을 만큼 힘이 세 보였는데, 신중한 그는 섣부르게 결단하지 않고 이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얌전히 돌아가 주시겠습니까.”

 

  담뱃잎을 한데 모아 굳히는 얇은 화지(火紙)처럼 건조한 여인의 목소리가 이윽고 위를 향했다. 그런 건조한 목소리와는 달리 손님을 정중히 대하는 그의 입가엔 미소가 어려 있었다.

 

 ‘너넨 상대도 안 된다?’

 

  기척이 아닌 다른 것을 통해 자신을 보고 있을 백작의 시선에 노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으로도 모자라, 그 힘마저 은근히 무시하는 듯한 여인의 태도가 기가 막히면서도 그것이 허세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감히 우리를 무시하다니!’

 

  그는 마치 암살단을, 그저 예고도 없이 저택에 들이닥친 방랑객 정도로만 보고 있었다. 쓴웃음을 짓는 노엘의 뒤로 그 수하가 자신들을 얕보는 듯한 백작을 노려보며 속으로 분통을 터뜨렸다.

 

 ‘그 능력을 계속 사용하는 건가.’

 

  무성한 소문 중 하나인 그의 ‘읽는’ 능력을 생각한 노엘 슈만의 눈매가 또렷해졌다. 대마법사조차 탐내는 백작의 능력이 정말 존재하는지부터 의심하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 있어 창백하다 못해 거뭇거뭇한 낯빛의 키 작은 여인이 무서우면 얼마나 무서울까.

 

 ‘그렇다고 해도 백의의 천사도 없는 병든 여인네 따위인 것을.’

 

  그에 대한 보복이 골치 아픈 것이지. 고질적인 치기와 함께 트인 암살자의 입매가 건방지게 책상에 기대 선 백작을 향해 거칠게 호령하며 땅으로 떨어졌다. 부하를 남겨둔 채 홀로 소리 없이 바닥에 착지한 그의 눈동자는 잘 단련된 기사도 움찔할 만큼 살기등등했다.

 

 “어림없는 소리!”

 

  그 치기 어린 마음과는 달리, 밖으로 나온 암살자의 음성은 낮게 가라앉은 동굴과 같았다.

  이 일을 위하여 조국에 충성한 나날들이 얼마였던가. 가문의 빛내기 위하여 온갖 훈련을 마다하지 않고 머리를 숙여가며 배운 지식은 또 무엇이며 그로 인한 수고는 얼마였던가. 그를 위하여 받은 치욕은 또 어느 정도이며!

 

 ‘나의 노력은 그동안, 대체 어느 정도였던가!’

 

  명분으로 죽고 명분으로 사는 에녹 위고르의 풍토, 그것에 휩싸인 남자는 평소와 달리 애국심을 빙자한 명분에 점점 취하더니, 자신의 강점인 평정심을 잃어갔다. 그러나 몸에 밴 피 같은 상식은 그에게 남아 있어, 주인의 생명을 어느 정도 연장해 주었다.

 

 “반갑소, 레인슐레이츠만 백작. 내가 누군지는 그대의 능력으로 알아냈을 테지.”

 

  당당한 태도의 암살자와 마주한 백작의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었다. 백작과 마주하면서도 전혀 꿇리지 않는 노엘의 대범한 기색에, 그의 신호에 맞춰 지금까지 숨죽이던 수하의 눈이 반짝였다.

 

 “매번… 욕심이 과한 듯한데.”

 

  물론, 그들의 표적이 된 백작은 자신을 향한 암살자의 시선에 불쾌하다는 듯 그 창백한 미간을 좁혔다. 그 주위로 느껴지는 예민한 기운과 달리, 여인의 눈망울이 눈꺼풀과 함께 아래로 슬슬 내려갔다.

  그런 나른한 주인의 심중을 알아차린 것인지, 바람을 약하게나마 통과시키던 성의 창문이 완전히 닫혀 숲에서부터 거세게 불어오는 풍파를 모조리 차단했다. 그 때문에 어지러운 바깥 풍경은 풍경으로만 남고, 그 안은 고요하기 그지없는 어두운 심해와 같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센 풍랑처럼 저택 주위의 나무가 흔들리는 제 가지를 잡기에 바빴다. 그런 배경에서 백마성의 주인과 마주한 사내의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우리의 위대하신 왕께선 그대의 진실을 원하신다. 레인슐레이츠만!”

 

  그 외침을 듣던 새벽빛의 눈망울이 홍옥의 선명한 빛깔의 뺏어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투명한 눈동자의 중심부터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음.”

 

  백마의 눈이 깜짝였다. 그 몸짓과 함께 노엘의 귓가엔 부피가 제법 있는 얼음 조각이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뜬금없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노엘이 몹시 흥분하여 있자, 그 시선 속에 활시위처럼 당겨진 백마의 입꼬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대의 뜻이 그러하군.”

 

  도발하는 것인지,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미련이 없는 것인지 모를 여인의 초연한 모습에, 그를 지켜보던 노엘의 눈자위가 충혈된 실핏줄에 덮여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불안정하고 독한 눈빛의 암살자가 이윽고 칼을 빼 들었다.

  안광을 번뜩이는 제 주인만큼이나 그 손에 들린 칼도 번쩍번쩍 빛나며, 대담하게 휜 시퍼런 날을 자랑했다. ‘제 눈앞에 있는 여자는 반드시 자신의 손안에 들어오리라, 위대한 자신의 주인에게서 받아낸 임무는 필히 성공하리라!’ 하는 그 제멋대로인 사고가 암살자의 중추를 지배하여 멋대로 칼을 들게 했다.

 

 ‘위대한 에녹 위고르 제국 건국을 위해!’

 

  반드시 자신의 왕이 명한 것을 얻어 당당히 고국의 땅을 밟으리라. 이제는 왕국이 되어버린 옛 제국의 광영을 위해!

 

 “반드시 네 목을 가져가마!”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과 같이 무너져 내리는 배경을 뒤로하고 백작에게 돌진한 암살자가 자신이 자신하는 힘을 이용하여 날렵하게 휜 칼을 아래로 비켜 내리쳤다. 그 당당한 포부에 맞춰 하얗게 빛나는 칼날이 최소한의 방어조차 없는 여인에게로 곧장 향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열기를 마구 분출하는 남자의 손에 들린 칼날이 무언가와 강하게 부딪힌 것처럼 충격을 받고 멈췄다가 -암살자가 쥔 칼이 어쩐지 고정되는가 싶더니- 마침내는 누군가의 생살이 꿰뚫리는 감각이 그의 손을 타고 올라왔다.

  옛 제국의 광영을 다시금 꿈꾸는 암살자의 당당한 포부에, 분명 그들이 사랑스러워 마다하지 않을 여신의 은총이 내렸으리라.

 

 「내렸으리라?」

 

 「무엇을?」

 

 「寵을.」

 

  하얀 배경 위로 스미는 활자 너머에 자리한 백마의 등 뒤로, 모든 사물을 투영하고도 검은 빛을 내는 달이 완만한 호선을 그렸다.

 

 [보는 눈이 없어.]

 

 

 

 ***

 

 ‘죽였다….’

 

  내가.

 

 ‘백작을 죽였다.’

 

 ‘레인슐레이츠만 백작을, 조국을 벌벌 떨게 만든 백마를, 주인께서 원하시는 것을!’

 

  제국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이 여인을, 이 손으로 직접 죽였다. 그것도 아주 쉽게. 나의 명예를 드높일, 왕국의 영예를 드높일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노엘 슈만은 벌써 감격에 젖어 황홀경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아주 사소한 생명 따위를 연습 삼아 베어 죽인 것만큼의 그 가벼움, 그것이 그가 지금 느낀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저지른 명예로운 살인에 다소 얼떨한 상태였다.

 

 “성공…”

 

  너무도 쉽게 임무를 완료한 탓에 백작의 어깨를 짓누르던 그의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그러나 그 손에 잡힌 여자의 몸이 보통 몸은 아니었는지, 그의 예상과 달리 어떠한 소리가 들리진 않았다.

 

 ‘…일까?’

 

  자신의 손에 으스러지지가 않자, 그에 맨손으로는 표적에 어떠한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는 것을 안 그가 백작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노엘은 자신보다 앞서 백작을 습격했던 푸른 피의 암살단이 실종되어 사라진 것과 달리, 그들보다 수월하게 임무를 수행한 자신에게는 어떠한 보상이 내려질지 기대가 컸다.

  적어도 잿밥에는 관심 없으니, 주인께서는 섭섭지 않게 대우해주시리라.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은 남자의 시선이 조용한 여인의 눈두덩에 향했다가, 그 가슴에 박힌 날붙이로 향했다.

  그 시선을 따라 두 손으로 날붙이를 잡은 노엘이 인형의 가슴께에 박힌 칼날을 사방으로 휘저었다. 임무 완료를 명확히 결정하는, 그의 마지막 확인 작업이었다.

 

 ‘더는 움직이지 않는군.’

 

  그 손을 따라 여인의 몸체에서 튄 선혈이 암살자의 하얀 얼굴에도 튀었다. 살갗에 밴 피비린내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번 더 움직인 그는 귀족으로 계속 살아남으려 발버둥 친 나머지, 감정이 거세된 인형이 되어버린 게 틀림이 없었다. 혹은 이것이야말로 ‘반쪽짜리 귀족’의 정체성일지도 몰랐다.

  확인을 마친 그의 손이 붉게 부어올랐다. 탁상에 놓인 것을 보는 그의 시선은, 사람이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보는 사물 그 자체였다. 푸른 피에 종속되고 싶어 하는 남자의 눈동자가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자신이 보고 있는 자의 혈색과 훼손 상태, 살갗 아래 있을 눈동자의 유무까지 확인한 그는 눈앞에 있는 사람의 가치를 철저히 따져 계산했다. 그러한 암살자의 습관은 노엘 슈만이라는 귀족에게 있어 가장 자연스러운 습관과 같은 관습이었다.

 

 ‘가슴팍이 뭉개졌어도, 족히 상은 받겠군. 그나저나…’

 

  그의 예민한 감각이 쓰러진 표적을 앞에 두고도 끊임없는 경고를 남발하고 있었다. 주위의 모든 소리가 차단된 방에서 자신의 호흡이 더욱더 크게 와닿던 와중,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두근거림이 노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어처구니없는 자신의 본능에 노엘은 미소조차 지을 수가 없었다. 그 불편한 소리는 암살자의 이마에 땀방울을 송골송골 맺히게 하는 것도 모자라 온몸에 박하를 짓눌러 바르는 것처럼 싸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암살 성공에 관한 기쁨을 만끽해도 모자랄 판국에, 자신이 사냥한 사냥감을 마주한 것뿐인 그의 손은 점점 창백해졌다. 그러나 암살자의 뛰어난 생존 본능은 신분 한계에 사로잡힌 주인의 계층에 관한 집착을 이기지는 못했다.

 

 ‘이제 와서?’

 

  그 욕망을 그 누가 이길까. 왕국을 지탱하는 국교의 교리조차 그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만큼 그는 누구보다도 이번 일이 간절했다. 간절하고 간절했다. 이처럼 간절한 이가 또 있을까. 백작을 찔러 죽이는 무수한 예행만큼이나, 눈앞의 여인이 반드시 죽길 바라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 기회를 어떻게 얻었는데.’

 

  그래야 자신이 위로 올라갈 테니까. 그래야 자신을 무시한 직계 혈손들보다 방계의 피가 더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대마법사가 자신을 눈여겨볼 테니까. 그러니 그가 바라지 않는 일만큼은 절대로, 반드시 없어야 했다.

 

 ‘아니야, 성공한 거다….’

 

  원초적 욕망보다도 깊이 뼈에 새겨진, 계층에 관한 그의 원념은 생존에 직결된 그 예민한 감각을 짓씹을 정도로 이미 비대해져 버려, 노엘 슈만이란 남자가 이제까지 살아남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던, 자신이 갈고 닦은 생존 본능을 무시하기에 이르렀다.

 

 ‘드디어 에녹님께 내 충성을 보일 기회가 도래한 것뿐이야.’

 

  주인의 마음에 들기 위하여, 고대 의식까지 홀로 감행했던 암살자의 안광이 어둠에서 번뜩였다. 광기로 가득 찬 그의 눈동자는 제 주인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려는 듯이 번들거렸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주인에게 함부로 바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남자는 이제는 입에 붙어버린 소리를 머릿속으로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충성. 또 충성.

 

  나라의 충성이라는 말에 빗댄 개인을 위한 충성에 목을 맨 남자의 외침을, 번뜩이는 안광이 흘러들었다. 그의 연둣빛 눈동자는 피로 물든 표적을 살피기 바빠, 자신의 주인인 노엘의 충성 따위는 관심 없어 보였다.

  자기 생각과 달리, 연둣빛 눈동자가 표적에 계속 고정돼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노엘 슈만의 독백은 계속 이어졌다.

 

 ‘그래.’

 

  그가 ‘이것’을 위대한 자신의 조국으로 가져간다면 이 땅의 시민이라 자처하는 오만한 비헤일리스 백성 또한 왕국을 향해 다시금 경배하게 되리라. 이는 곧 옛 제국의 광영을 되찾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는 성공이다.

 

 ‘성공한 거다.’

 

  새빨간 피로 흠뻑 젖은 여인의 눈두덩을 쓸어 보던 노엘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그 시선에는 미묘한 태도로 자신을 착각하게 한 레인슐레이츠만을 향한 경멸이 섞여 있었다. 암살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못 볼 꼴.

 

 ‘성에가…’

 

  그 미묘하던 대응이 허세였음을 확신한 그의 주위로 레인슐레이츠만 백작의 정체성과 같은 새하얀 눈꽃이 빠르게 녹아 사라졌다. 양분을 줄 제 주인이 사라졌으니, 초겨울의 정원처럼 하얗게 물들던 방 안이 금세 본연의 색을 찾는 것은 당연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주인의 죽음을 인식한 것처럼 빠르게 몸을 숨기는 눈꽃을 보던 노엘은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본토에서 괴물 백작이라 불리던, 그의 명성과는 다른 이런 결말에, 과연 백마(白魔)란 호칭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백마 따위도 결국 실속 없는 허세.’

 

  역시나 그전에 있던 선발대와 그 표적인 백작의 명성은 하잘것없는 귀족 놀음에 부풀려진 소문이리라. 쉽게 죽어버린 그를 한껏 깔보던 노엘은 그래도 수장의 체면을 생각하여 무표정을 고수했다.

 

 “성공…”

 

  그렇게 이기죽거리는 암살자의 속내가 망자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 얌전히 누워 있던 백마의 메마른 입매가 둥글게 휘는 동시에 그 속에서 거친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야.”

 

  그 목소리에 충격을 받은 노엘의 눈동자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가차 없이 흔들렸다. 죽은 여자 하나, 천장에 있는 부하 둘,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자신까지, 그 누구도 이런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혼란에 빠진 노엘을 비웃기라도 하는지, 바다의 파랑처럼 일렁이던 목소리가 그 속으로 가라앉는 앙금처럼 점점 잠기더니, 더욱 또렷해진 소리를 꺼내 그를 지명했다.

 

 “너.”

 

  다시금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노엘은 코끝이 싸해지는 것을 느꼈다. 거친 표면을 가진 무언가가 싸각싸각 베이는 듯한 섬뜩한 소리를 바로 엿듣는 것과 같은 아찔한 기분이 썩 좋을 리 없다.

 

 “….”

 

  여태 잘 가던 물길이 막힌 듯한 이 느낌, 노엘은 자신이 만들 수 있는 흐름을 막은 것이 켜켜이 쌓인 침전물이 아닌, 물속에서 떠내려온 거목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 사실은 암살자인 노엘에게 있어 가장 비참하고, 참혹한 참사였다.

 

 ‘…어째서?’

 

  분명 자신이 숨통을 끊어놓았던 여자의 목청에서였다. 그곳에서 나오는 깔깔한 소리에 짓눌린, 노엘의 연둣빛 눈동자가 긴박한 박동 소리를 안고 서서히 내려갔다.

 

 ‘어떻게?’

 

  끔찍한 것과 마주하기 싫으나 그것을 봐야만 하는 이의 눈동자가 처량하게도 아래로 향했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의 입술이 더운 공기에 살짝 풀어졌다가, 잔뜩 긴장한 근육에 살짝 경련이 일었다.

 

 ‘이상해.’

 

  그러고 보니, 혹한을 둘러싼 건물치고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를 훈훈함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처음 방에 들어섰던 정도의 싸늘함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방 안의 온도가 바뀌었다.

  이상하다고 한번 생각하니 모든 게 이상했다. 백작을 죽인 것이 확실했는지, 표적을 향해 무기를 확실히 활용했던 것인지, 혹은 자신이 처음부터 백작의 환영에 놀아났던 것은 아닌지 따위의 그런 의심들이 노엘의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언제부터였었지?’

 

 ‘언제 백작을 죽였었지?’

 

 ‘지금은 언제고.’

 

  지구에 속한 생물이라면 응당 중력에 순응하듯 암살자의 고개가 아래로 꺾였다.

 

 ‘이건, 누구지?’

 

  거칠게 파여 사방으로 흩뿌려진 선혈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여인의 턱 위로 비교적 깨끗한 눈가가 노엘의 시선에 곧장 들어왔다. 그러자 검회색의 또렷한 눈썹 아래로 유연하게 뻗은 속눈썹이 잔잔하게 움직였다.

 

 ‘움직…’

 

  눈시울이 보였다. 아래와 위, 그 사이로 보이는 눈망울이 붉은 별을 중심으로 모인 천체의 집합체처럼 빛났다. 풍성한 속눈썹이 눈썹에 닿자, 그 눈동자와 마주한 노엘이 크게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내가 누군지 알아?”

 

  충혈되어 눈자위까지 붉은 눈에 노엘이 뒤로 물러나자, 그것을 위에서 지켜보던 부하들이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가 뒤로 물러난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됐기 때문이다.

 

 ‘!’

 

  선명한 눈동자 아래로 송골송골 맺혔던 살갗의 핏방울이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비로소 확인한 부하의 호흡이 갑자기 가빠지더니, 그 흐릿한 시야 속에서 허공의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 기이한 현상과 함께 자신의 온몸에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듯한 감각이 수하들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 기이한 감각을 느낀 노엘 역시 흐트러지는 정신을 다잡기 위해 침묵을 택했다.

 

 “물었잖아, 내가.”

 

  그러자 그런 암살자의 반응이 답답했던 것인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금세 들려왔다. 순수한 빨강을 묻는다면 이러한 색이 아닐까 싶은 눈동자가 정신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노엘에게 향했다.

  그 또렷한 시선에 비교적 양호하게 유지되던 노엘의 표정이 슬슬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어째서. 어째서 그 전만 해도 만만하기 그지없던 백작의 분위기가 이렇게 한 번에 달라질 수 있는지, 어떻게 이미 끊긴 목숨이 되살아날 수 있는지. 눈앞에 닥친 이 절망적인 상황에 느긋하게 내려가던 암살자의 눈꼬리가 거침없이 올라갔다.

  죽은 것을 재차 확인하던 차였고, 분명 심장을 관통한 관통상으로 독이 들어갔음을 확인했는데.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남자의 눈꺼풀이 들어 올려졌다. 이상했다. 이상하다 하는 놈들은 제법 만나봤던 그의 기억 속에서도 표적이 되살아났던 적은 없었다.

  죽음과 거래하는 -괴기한- 마녀가 아닌 이상, 그럴 리 없다.

 

 ‘이럴 수 없어…,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여기 기초적인 상식이 있다. 사람이 죽는다. 시체가 된다. 시체가 된 것은 영혼이 없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간단한 개념이 손쉽게 무너졌다. 여자가 죽었다. 그리고 여자는 시체가 됐다. 그러니 그 몸의 주인은 자신임이 틀림없었는데, 아니 분명 그러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어, 어떻게….”

 

  눈을 떠? 이건 말도 안 된다. 수천 명의 노예를 한꺼번에 죽일 수 있는 독이었다. 대마법사도 자신하던 것을, 십여 분도 안 되어 눈을 깜빡이다니….

 

 ‘마녀 같은 년.’

 

  왜 죽지 않아. 같은 인간인 주제에 왜? 너는 달라? 왜 너만 특별한 거야. 고작 자라난 곳이 달랐던 주제에, 이렇게 차이가 난다고?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그래… 이건.

 

 ‘거짓이다.’

 

  이건 환상임이 분명해, 틀림없다. 그것이 틀림없어. 너는 분명 죽었다. 나를 보는 시선과 함께 오르내리는 이 붉은 구덩이는 분명 환상인 것이 틀림 없….

 

 “너희가 상식을 따질 처지…”

 

 ‘뭐?’

 

  제멋대로 상황을 규정하려던 노엘의 어깨가 단번에 굳었다. 자신의 시선 아래서 누워 있던 백작이 더욱 나은 혈색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몸 깊숙이 박혀 박힌 칼로 인해 책상이 함께 들썩이는 것으로 동작이 금세 끊겼다.

 

 “뭐야?”

 

  그제야 자신의 가슴께에 박힌 칼을 본 백작이 짜증을 내며 자신의 몸과 함께 들린 책상을 내려다봤다. 그의 몸은 대마법사의 칼에 꽂혀 명치 부근과 그 근처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아나.”

 

  주인의 불편한 심기에 반응하는 것인지 장내가 더욱 훈훈해지며, 아지랑이가 피었다. 이리저리 휘는 공간 너머로 보이는 손이 붉은 웅덩이에 박힌 날 손잡이를 잡았다.

  자신의 가슴에 박힌 칼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인지, 잠시간 말이 없던 그가 손을 움직였다. 그렇게 손을 움직이던 백작의 눈동자가 깨어난 자신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노엘에게 향했다.

 

 “이 거머리 같은 새끼들, 별짓을 다 하네.”

 

 “…제길!”

 

  그 시선에 들어온 노엘은 표적을 관통한 칼날이 어떻게 될지 알아차리자마자 재빨리 몸을 던져, 제 가슴을 뚫은 검 손잡이를 잡고 있는 백작의 손에 자신의 손바닥을 포갰다. 그런 뒤 제 손가락보다 가는 손을 우악스럽게 감싸,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내리눌렀다.

 

 ‘뭉개자.’

 

  불길한 예감에 그의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그에겐 되살아난 표적을 더 확실히 처리할 무기가 필요했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죽여 버리자.’

 

  마녀를 처형하듯이, 짐승의 모가지만도 못한 멱을 따서 죽여 버리자. 그렇게 다짐한 암살자가 칼을 그 안으로 밀어 넣는 것에 정신 팔렸을 때, 한 손으로 그것을 저지하던 백작의 반대쪽 손이 그의 상체를 가볍게 밀었다.

 

 ‘…!’

 

  그 힘에 억지로 밀려 뒷걸음질하게 된 노엘의 정신이 얼얼했다. 백작이 민 방향으로 정확히 떠밀린 그는 겨우 균형을 잡고 멈춰 선 뒤에, 이것이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그의 시선에 금세 멀어진 백작과 부하가 대기하고 있는 대들보가 들어왔다.

 

 ‘내가 밀려났어?’

 

  대들보 뒤로 자신이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의 표정이 얼떨했다. 문가 근처로 밀려난 자신의 처지에 얼떨하던 그의 앞에서 비로소 자신의 몸에 박힌 가시를 뽑아내듯, 칼을 뽑아낸 백마의 몸 위로 휘어지는 그 궤적을 따라 흩어지는 선혈이 붉은 반원을 그렸다.

  그러나 시원스럽게 뽑힌 칼날은 섬세하지 못한 새 주인 탓에 석재 책상에 살짝 박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앞을 바라보는 그의 시야에 보는 사람마저 자지러지게 놀랄 몰골로 상체를 들어 올린 백작이 수월하게 일어섰다. 그러자 장식용 활의 활대가 언뜻 보이는 여인의 명치 부근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소낙비처럼 피가 쏟아져 내렸다.

 

 ‘…!’

 

  아래로 성급히 떨어진 피가 하얗게 빛나는 백작의 구두코를 흠뻑 적시고도 매끄러운 바닥을 타고 계속 흘러내렸다. 그렇게 아래로 흐르는 피의 양은 보통 사람이 가진 것의 곱절이었다.

  그 선명한 선혈을 피해 남자의 몸이 뒤로 물러났다.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는 붉은 빛깔에 잠시 시선을 빼앗긴 노엘이 고개를 들자, 자신의 눈에 들어온 표적의 상태에 몸을 굳혔다.

 

 ‘상처가….’

 

  자신과 마주한 표적의 끔찍한 상처가 꺾인 가지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것처럼, 척추골이 빤히 보이는 곳에서부터 새살이 점점 차올랐다. 그 모습이 마치 시간을 역행하듯 해, 솔솔 채워지는 거죽 안이 기묘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다.

 

 “아 삭신… 쑤셔. 으으!”

 

  족히 다섯 사람의 몸에서 빼내 올 양의 혈액에도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한 백작이 기지개를 켰다. 공격도 방어도 아닌, 단순한 생리적인 현상을 위해 자신을 죽인 암살자의 앞에서 두 팔을 올려 보이다니. 이 여자는 분명 제정신이 아니리라.

  노엘 앞에서 손끝까지 쭉 펴 보인 백작이 힘을 풀며 그 손을 내렸다. 그러자 그 손에서 반짝이는, 암살자의 팔뚝만 한 길이의 칼도 덩달아 바닥을 향했다.

 

 “하-암.”

 

  나른한 하품 소리와 함께 그 손에 들려 있던 칼날이 가마에 녹은 쇳덩이처럼 녹아 흐르더니, 용암처럼 밝은 주홍빛으로 자신의 몸을 반짝이며 한데 뭉쳤다. 이윽고 뭉친 그것이 길게 쭉 뻗은 판판한 가시처럼 아래로 뻗었다.

  새로운 모습으로 새 주인을 맞은 자신의 무기를 본 암살자의 눈가가 떨렸다. 에녹 위고르 출신이라면, 그것을 보고 모른 척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으리라.

  특히 그 검을 만져 본 일조차 드물었던, 반쪽짜리 귀족인 노엘 슈만은 그것을 자신의 앞에서 굳이 만들어낸 백작 노골적인 의도에 분노했다.

 

 ‘일부러 독이 든 칼을….’

 

  그 손에 들린 검은 손잡이에서 멀어질수록 검날의 폭이 좁고 끝이 날카로운 전투적인 무기였다. 본래의 취지에 맞게 얇은 원형을 그리며 검날과 이어진 손잡이에는 귀족의 손을 보호해주는, 둥그런 금속성 장식이 조명에 반짝였다.

 

 ‘래피어로 만들다니.’

 

  반쪽짜리 귀족의 정체성을 우롱한 그의 태도에 분노하는 것과는 별개로, 노엘은 대마법사에게서 받은 칼을 완전히 변형시킨 그의 마법에 혀를 내둘렀다. 공간을 왜곡하는 마법뿐만 아니라, 모든 마법을 대마법사처럼 아무런 조건 없이 똑같이 해낼 줄이야….

  노엘은 대마법사 이외에 이렇게 빠른 변형 마법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

 

  분노를 넘어선 감탄에 빠져 있던 노엘의 시야가 하얗게 갈라졌다. 반짝이는 검의 표면이 은은한 어둠을 가를 듯이 백작의 손에서 휘둘러지더니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유연하게 휜 검이 탄성을 얻어 소름 끼치는,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 예리한 검날을 본 노엘이 애써 침을 삼켰다. 눈앞의 표적에게 빼앗긴 칼 자체는 보통 검이 아닌데다가, 그의 변형 마법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감이 오지 않은 노엘은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범위를 생각했다.

  그와 더불어 굳이 래피어를 만들어낸 그가 왕국의 예도를 알고 있어, 앞으로 그것을 흉내 내는 것이라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결투.」

 

  ‘피의 회복, 명예의 복수’이라 불리는 과거의 전통대로 싸움을 예고한 자세, 그리고 그런 결투를 위해 쓰이는 검, 래피어. 이 검은 도저히 대화로 끝나지 않을 귀족의 복수를 위한, 오로지 귀족만을 위한 결투용 검이었다.

  타국의 백작이 그 검을 이용하여 반쪽짜리 귀족을 향해 검을 겨눴다. 삐딱한 자세에 윤기를 되찾은 그의 머리칼이 왼쪽으로 쏠렸다.

 

 “얼마나 대단한가 싶어서 봐줬더니, 같잖은 재주나 부리고 말이야.”

 

  쥐고 있던 검을 흔들어보던 백작의 눈빛이 설렁한 몸짓과 다르게 사나웠다. 먹잇감과 맹수인 자신의 거리를 대강 재 보는 듯한 자연스러운 그의 모습에, 붉은 눈망울에 들어온 노엘이 본능적으로 뒷걸음쳤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사자 무리에 잡힌 새끼 사슴처럼 얼어붙은 두 다리가 머리가 내리는 명령을 무시했다. 마치 신경이 마비된 것처럼, 뻣뻣하게 굳은 자신의 목덜미가 갑자기 싸하게 느껴졌다.

  파헤쳐졌던 가슴팍이 어느 정도 채워진 여인의 얼굴에 검날이 바투 붙었다. 표적을 앞에 둔 맹금의 발톱처럼 날카롭게 빛나는 그 눈동자에 노엘의 얼굴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가 방금 예상했던 것처럼 백작이 왕국 귀족의 예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알고 있었어.’

 

  두 다리까지 붙여 자신의 얼굴에 검을 들어 보인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귀족이었다. 그런 백작의 모습에 노엘의 심장 박동이 급격하게 뛰었다. 귀족의 결투에서 신분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곧 상위 귀족의 아량에 결정된다. 치사하더라도 그것이 법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 법에 종속된 반쪽짜리 귀족….

  그 시선을 받은 노엘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검을 내린 백작의 주위가 일그러져 보이기에 이르렀다.

 

 ‘위치가….’

 

  그 일그러져 보이는 배경 속에서 중심을 차지한 인형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성에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직계 자손만이 가질 수 있는 검을 들며 다가오는 인형이 서서히 하얀색으로 뒤덮였다.

  그렇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귀족을 피하지도 대항하지도 못한 그의 눈동자가 돌풍을 맞은 들풀처럼 사정없이 흔들렸다.

 

 ‘오ㅈ…’

 

  그러나 그의 위태로운 긴장 상태는 얼마간에 끝이 났다. 그에게로 다가오던 백작이 걸음을 멈추더니, 뜬금없이 제 머리카락을 만져보고는 손을 내렸기 때문이다. 긴장이 풀리자 확연히 드러난 노엘의 시야에 책상에 눌린 뒷머리를 터는 백작이 보였다.

 

 “머리 눌렸네.”

 

  섬뜩한 눈초리에 긴장한 암살자의 가쁜 숨이 민망할 정도로, 자신의 뒷머리를 매만지는 백작의 모습이 태연했다. 그런 그는 자신을 황당하게 바라보는 노엘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전까지 신경 쓰지 않았던 옷매무시를 단정하게 고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옷도 엉망이고.”

 

  속상함이 대번에 느껴지는 탄식에, 그를 멀거니 바라보던 노엘의 얼굴이 기이한 것을 본 사람처럼 구겨졌다. 그 앞에 있는 백작이 자신의 몸을 마치 다른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친… 건가?’

 

  두려움에 눌렸던, 표적을 향한 경멸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상식에서 충분히 비난받을 여자라 생각한, 노엘의 확연해진 시야가 상대방의 얼굴을 잡아냈다. 그러나 그 얼굴을 확인한 노엘은 점점 생기가 돋는 백작의 안색에 곧 얼떨한 표정이 되어, 자신이 성실하다 자부하리만큼 칼을 휘저었던 흔적을 찾았다.

  그가 열심히 해친 백작의 가슴팍이 금세 새살들로 메워져서는, 끊임없이 난도질당한 나머지 뚫렸던 몸통이 메워져, 더는 뛸 수 없을 거로 생각한 심장의 일부가 그 안에서 언뜻언뜻 보이며 끊임없는 세포 재생을 이루고 있었다.

  공포에 잠시 잊고 있었다만, 이 여자는 아직 심장을 밖에 드러내놓고 서 있는 중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혈색 좋은 얼굴로 서 있는 백작은, 그를 –죽이려 했고- 죽였던 암살자의 눈에도 충분히 기이해 보였다.

  죽었어야 할 자가 죽지도 않고 태연하게 인간 행세를 하는 것이 얼마나 역겨운 것인지, 이 마녀 같은 존재는 왕정 마법사의 말대로 정말 악마일지도 몰랐다.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창으로 내리 찌르고 불에 태워 죽여도 다시 살아난다는 마녀는 –듣던 대로- 어쩜 이리도 끔찍한지.

  죽으라고 해도 고분고분 죽지도 않고 자신 앞에 선 표적과 마주한 노엘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 아래에 난 눈동자에 극도의 혐오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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