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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푸른 하늘 발 아래; 鱗
작가 : 동그라미네모선
작품등록일 : 2020.5.15

그의 존재는 악당이라는 말도 아깝다. 악당보다는 악마, 악마보단 포식자에 가까웠고. 그 포식 대상은 인간을 넘어선 무언가에 가까웠으니까.

 
2.독배(毒杯)
작성일 : 20-12-09 17:57     조회 : 270     추천 : 0     분량 : 15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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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푸른 1008년 3월 17일. 피안바스토 제국에서 비헤일리스로 차례차례 잠입한 암살단은 이벨리아스티아 공작과 함께 비헤일리스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레인슐레이츠만 백작 성에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저택에 잠입한 지 십여 분, 하얀 성 앞에 거칠게 멈춘 마차에서 그들이 고대하던 표적이 등장했다. 표적이 된 인물은 마차에서 살짝 비틀거리며 내려오더니, 빠른 걸음으로 건물 기둥을 지나쳐 성으로 들어왔다.

 

 “백작. 황성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그가 층계에 발을 올리던 차에, 그의 뒤로 빛을 등진 한 남자의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그 그림자에 자신의 어깨가 대번에 가려진 것을 눈치챈 백작의 눈동자가 대번에 가늘어졌다.

 

 “소식 한번 빠르군.”

 

  자신의 등장에 귀찮은 티를 내며 다음 칸에 발을 디디는 백작을 따라 줄지어 계단을 오르던 남자의 이름은 미하엘 브리텐슈. 백작의 두 번째 보좌관으로 국외에선 업무적 능력보다 화려한 미모와 분위기를 비롯한 소문으로 유명이 자자했다.

  계단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백작의 뒤를 쫓던 그의 시야에 여인의 얼굴이 거뜬히 들어온 나머지, 그를 향해 묻는 남자의 물음이 심히 조심스러웠다.

 

 “괜찮으신 겁니까.”

 

  밝은 조명에도 뒤지지 않은 화려한 금발을 가진 보좌관의 물음에 걸음을 살짝 늦춘 여인이 뒤를 돌았다. 마차에서 내리던 때와는 다르게 몹시 가벼운 발놀림이었다.

 

 “예.”

 

  좀 전과는 달리, 귀찮은 기색 하나 없는 무정한 얼굴로 입꼬리만 올린 그의 표정은, 마치 피륙에 그려놓은 인형의 미소와 같았다. 그를 흘긋 바라본 백작은 자신의 미소를 보고 몸을 굳힌 보좌관을 흘긋 보더니, 다시 몸을 돌려 층계참에 발을 디뎠다.

  그런 백작의 모습에 잠시 걸음을 옮기던 보좌관이 다시 움직였다. 괜찮다는 백작의 말이 역효과를 낸 것인지, 오히려 여인을 향한 남자의 시선이 집요해졌다.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암살자의 수는 줄어서, 최상층에는 정예로 뽑힌 셋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최상층에 자리한 이들은 성의 주인이 오기를 숨죽여 기다리는 통에 백작의 행적을 정확히 쫓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이들은 백작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서기 전에 걸음을 잠시 멈췄단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긴 복도를 지난 그가 문고리를 잡아당기자 어둑한 조명 빛이 슬금슬금 주인을 맞았다. 그 뒤로 들어온 보좌관이 문을 닫자, 상황 파악에 나선 세 쌍의 눈동자가 일제히 아래로 향했다.

  방안으로 성큼 들어온 백작을 따라 보좌관이 들어오자, 책상 앞에 막혀 막다른 곳에 다다른 백작이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들이 들어온 방은 북부 특유의 썰렁한 천장 아래 옷방 하나를 안쪽에 둔, 이 방은 다른 방과 달리 유독 넓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고 해서 당장 그 안의 분위기가 변하진 않았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자신을 마주한 백작을 따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걸음을 멈춘 보좌관이 습관처럼 상사의 상태부터 물었다.

  규모가 거대한 이 저택에서 최상층에 위치한 끝 방에 가서야 이런 것을 묻는다는 것은, 필히 은밀한 사담(私談)과 다를 바 없으리라. 이에 천장 바로 아래서 뻣뻣하게 몸을 눕힌 대들보 위에 자리한 세 쌍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나쁩니다.”

 

  비헤일리스 백작보다도 먼저 방에 들어왔던 암살단 수장 노엘 슈만은 그 대답에 쾌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유일해진 비헤일리스의 중추가 휘청이는 것은 자신의 조국에 더없는 행운이리라.

 

 “상처가… 더 벌어졌습니까?”

 

  쾌활한 노엘의 미소 아래로 백작을 향한 보좌관의 조심스러운 물음이 들려왔다. 그 앞에 선 백작의 안색이 기가 막힐 정도로 어두웠다. 탁한 얼굴빛의 백작과 그를 걱정하는 보좌관을 숨죽인 채 지켜보던 암살자의 시선 속에 자리한 여인이 잠시 고민하듯 미간을 좁혔다.

 

 “조금?”

 

  보좌관을 빤히 바라보던 여인이 곧게 접힌 옷깃을 올린 뒤, 접힌 사이에 맨 하얀 비단을 끌러냈다. 그 밑에 있던 단추까지 풀자 여태 감춰져 있던 상처에서 나온 역한 냄새가 무너진 둑에서 터져 나오는 강물처럼 주위로 빠르게 퍼졌다.

 

 ‘…!’

 

  그 냄새가 어느 정도였냐면, 대들보 위에서 그 광경을 방관하던 암살자의 몸이 떨릴 정도로 그 역한 냄새였다. 살 썩는 내와 철이 녹슨 내가 예고 없이, 동시에 풍겨오니 그들도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악취에 표정을 찡그리던 노엘의 시선에 순백의 크라바트를 손에서 빼낸 백작이 자신의 옷깃을 상대의 시선에 들도록 더욱 벌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그 속에서 목 언저리까지 살갗이 전부 벗겨진 여인의 목에 순백의 레이스 초커가 보였다.

 

 ‘상처 난 목에 목걸이라니….’

 

  자기에게 벌을 주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은 것이라면 몰라도, 이런 상처에 목걸이를 두진 않으리라. 그것도 서대륙 유일한 제국의 한 주축을 담당하고 있는 비헤일리스 백작께서 말이지. 대륙을 떨게 하는 카울로스 주인의 목에 개 목줄과 같은 초커가 채워져 있으리라고 감히 그 누가 생각했을까.

 

 ‘제법 심각하군.’

 

  그 초커의 중심부에 채워진 체인 아래 영롱한 보석이 짙은 녹색을 띠며 탐욕스럽게 빛나자,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한 보좌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백작의 상처를 훑어본 보좌관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되물었다.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그 물음에도 보좌관에게 보인 백작의 태도는, 보는 사람이 야속할 정도로 태연했다. 그런 백작을 바라보던 암살자의 발아래로 보좌관의 한숨이 언뜻 들리는 듯했다.

  의도치 않게 백작의 상태를 맨눈으로 확인하게 된 노엘은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입꼬리를 올리려던 것을 참고 입술을 씰룩였다.

 

 ‘하늘이 우릴 돕는군.’

 

  보좌관의 말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레인슐레이츠만의 상처는 고질적인 것이 분명하리라. 턱밑과 쇄골 사이에 넓게 퍼진 그의 상처는 자칫하면 곪아 썩을 수 있는 정도였다.

  전문적인 의학 상식이 없더라도 이 정도 상처라면 바로 소독하고 치료한 뒤 깨끗한 것으로 덮어놔야 했다. 그런데도 이에 관한 처치가 없다는 것은, 이 상처를 치료할 수 없는 환경에 놓였다는 말. 그게 무슨 이유였든, 처음부터 백작을 노리고 잠입한 노엘에게는 호재였다.

 

 ‘백마라더니.’

 

  저렇게 볼품없는 백마(白魔)라니. 제아무리 괴물이라 불리는 비헤일리스 백작이라 해도, 결국 인간은 인간. 초반부터 일이 잘 풀린다고 의심했던 그는 승리의 여신이 자신을 봐주고 있다는 뻔한 생각 따위를 품었다.

  그런 암살자의 생각 따위와는 다르게 기분이 저조한 듯한 보좌관이 백작의 목덜미를 조심스럽게 받치며 그 상처를 살폈다. 백작이 자신의 목에 맨 크라바트를 풀 때부터 다가가기 시작한 브리텐슈는 그 상처를 유심히 살폈는데, 그런 보좌관의 시선 속에 든 감정이 워낙 뚜렷해서인지 미남자를 보는 이들의 마음에 야릇한 기분이 들게 했다.

 

 “…전보다 심해졌군요.”

 

 “별거 아냐.”

 

  그 노골적인 감정 표현에도 자신의 상태에 관해 백작이 담담히 넘어가자, 그 행동을 고스란히 자신의 눈에 담던 보좌관이 한 걸음 물러나더니, 고개를 삐딱하게 넘겨 자신의 상사를 대놓고 내려다봤다.

  그 상황을 본 노엘은 백작 대신 백작을 대하는 보좌관을 유심히 살폈다. 원래 이럴 생각은 아니었으나 백작의 표정이 여인답지 않게 풍부하질 않아, 그 심중을 읽어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백작보다 얼굴을 보기 힘들지만, 그 대화에 있어서 감정을 잘 표현하는 남자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자신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백작에게 살가운 보좌관에게서만큼은 한결 수월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식으로.

 

 “이런 꼴을 보고도 걱정 안 하는 보좌관이 미친 겁니다. 백작.”

 

 “안 미친 사람 있으면, 미친 사람도 있는 거지. 안 그래?”

 

  보좌관을 향해 개구쟁이처럼 웃는 여인의 모습에, 백작의 의외의 면모를 발견한 노엘은 알 수 없는 기분에 떨떠름함을 느꼈다.

  에녹 위고르 왕국에 있어 전쟁의 ‘머리 사냥꾼’이자, 피안바스토 제국을 굳건히 지키는 수호자인 그가 사실은 자신을 걱정하는 제 수하를 걱정시키고 놀릴 만큼 얄궂은 여자라는 사실이 뜻밖이었다.

 

 ‘마치 아이처럼….’

 

  물론 암살자인 그가 오늘 알게 된 것이 비단 청개구리 같은 백작의 성정만은 아니었지만, 얼음 마녀, 냉혈한으로 불리던 여자에 대한 의외의 면모를 본다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앞으로 죽일 대상에게는 더욱더, 그렇지 않은가.

 

 “후….”

 

  청개구리 같은 아이를 둔 부모처럼 보좌관의 입에서 짙은 탄식이 나왔다. 백작을 앞에 둔 그의 뒷모습은 금방이라도 ‘이거야 원, 사람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고양이 새끼를 낳았다니!’라는 한탄할 듯 침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도 태연하던 백작은 갑자기 무언가를 집중해서 듣는 것처럼 눈동자를 슬쩍 옮기더니, 잠시 고민하는 것처럼 고개를 갸울었다. 특정한 물건 따위보다 허공을 향한 것 같은 그 시선에 노엘의 표정이 어리둥절했다.

 

 ‘어딜 보는 거지...?’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사람처럼 귀 기울이던 백작이 이윽고 상대방을 바라봤다. 그 시선 속에 들어온 보좌관이 살짝 고개를 들어 백작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몇 번째지?”

 

  자신이 여태 해왔던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주제에 답답할 만도 하건만, 그 엉뚱한 물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 올려 보인 보좌관이 성실하게 대답했다.

 

 “일곱 번째입니다.”

 

 “아아.”

 

  대답을 들은 백작이 살짝 턱을 치켜들며 반응하더니, 곧 그 시선을 내려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손끝이 붉게 물든 손으로 자신의 검지를 만지작거리며 그곳에 시선을 둔 백작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자, 그것을 바라본 노엘은 그런 여인의 행동이 습관이라 판단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 사실을 넘겼다기 보단 그는 넘길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좀처럼 파악이 안 되니,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은 빨리 머릿속에서 지우는 것이 그로선 이득이었다.

 

 “그렇구나.”

 

  그렇게 그 행동을 넘긴 노엘이 시선을 내려 공작을 유심히 살피자 어딘가 모르게 몽롱해 보이는 백작의 눈동자가 보였다. 마치 몽롱세계에 빠진 듯한 여인의 중얼거림에, 그 무심한 태도를 타박하는 듯한 보좌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 좀… 해야겠네.”

 

 “또 말로만…”

 

  애정 어린 보좌관의 타박에 거울에 맺힌 인물의 표본처럼 인위적인 미소를 짓던 여인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 지며, 몽롱해 보이던 눈동자의 초점이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나름으로 노력하고는 있는데.”

 

  그러나 보좌관 앞에서 너스레를 떠는 백작과는 달리, 그 표정 변화를 위에서 지켜보던 노엘의 얼굴은 의미 모를 대화를 파악하기 위해 점점 굳어갔다.

 

 ‘일곱 번, 일곱 번….’

 

  무슨 뜻일까. 자신이 느끼는 불안은 기우일까, 혹은 백작이 자처한 광대놀음에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자라면 불행 중 다행이고 후자라면 지금이라도 자폭해야 마땅했다. 엉뚱한 백작의 말도 성실하게 귀 기울이는 저 남자가 사실은 주인이 계획한 ‘무대 놀이’에 동참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상급 술사로 이루어진 비헤일리스 저택의 고용인은 에녹 위고르 왕국의 궁정 마법사에 버금가는 힘을 갖고 있어, 과거부터 끊임없이 보내지던 암살단을 몰살한 유구한 전적이 있다. 그 때문에 비헤일리스와 견원지간이었던 왕국은 단 한 번도 암살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런 오점을 남기지 않고자, 백작이 홀로 남기를 바라마지 않던 암살단의 수장 노엘은 여전히 방에서 나가지 않는 미하엘 브리텐슈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무거운 직물 느낌이 나는 오버코트를 걸친 판판한 어깨가 노엘의 시선에 들어왔다. 노엘은 그의 판판한 등이 움직일 때마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암살에 능숙한 그에게 있어서도 백작을 향해 순순히 얼굴을 보인 남자에 대한 은근한 경외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모, 성격, 이력까지 모든 것이 화려해 보이는 그는, 비위까지 좋아 지난 왕국과 벌인 전쟁에서 ‘백의의 천사’라는 별칭까지 붙은 인물이었다. 이는 천사와 같은 그의 미모에 감탄 어린 찬사인 동시에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잔인한 성정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들어 있는,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에녹 위고르 왕국에서 나고 자라난 귀족의 관점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점이었다. 이는 결국 앙숙에 대한 별칭이자, 멸칭인 셈이다.

 

 “저하께서는 오늘만 해도 그리 미덥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사고 치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

 

 “사고 치세요. 내가, 당신을 지지하는 이유니까.”

 

  제 어깨를 부러 으쓱해 보인 백작이 금발의 미남자를 보고 뻔뻔스럽게 대꾸하자, 그것을 듣고 있던 보좌관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백작을 향한 그의 믿음이 워낙 굳건했기에, 그 장면만 보아도 백작을 향한 보좌관의 헌신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러한 보좌관의 신용과는 달리 그를 향한 백작의 말은 다소 날카롭게 느껴졌다.

 

 “싫어.”

 

  무신경한 표정과는 달리, 보좌관의 말뜻을 금세 알아들은 듯한 백작의 목소리는 언뜻 냉랭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정적이었다.

  그 대답에 노엘은 자신에게 등을 보인 남자의 짧은 한숨이 느껴졌다. 짧은 한숨에 고개를 힘없이 주억거리는 남자의 등이 문뜩 공허해 보였다. 그런 브리텐슈의 모습을 의아하게 보던 노엘은 그 시선을 따라 백작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눈앞에 있는 여자를 안쓰럽게 여기는 듯한 보좌관의 분위기에, 그는 여자들이 입던 옷가지를 떠올리고는 유난이라 생각했다.

 

 ‘대체 뭐가 안쓰럽다는 거지?’

 

  그의 앞에 있는 백작은 그저 얇은 연미복만 입었을 뿐, 팔과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도 아니오, 그렇다고 목 언저리부터 깊게 파여 허리를 구부리면 그 안이 보이려 하는 얇은 셔츠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사자 또한 별일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는데, 왜 남 일을 본인의 일처럼 여기는 지, 그는 좀처럼 그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백작의 행색을 일일이 평가하던 암살자는 이번 일로 특별히 얻게 된 아티팩트를 이용해 뼛속까지 시린 강추위에도 몸을 자유로이 움직일 만큼 몸을 적절히 덥히고 있었지만, 타국의 백작 성도 무단으로 들어온 통에 그것을 고려하는 짓 따위, 할 리가.

 

 “백작.”

 

 “말해.”

 

  백작을 부른 보좌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목소리에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백작이 흔쾌히 허락을 구했다. 노엘은 그가 어떤 표정으로 여인을 보고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남자의 뒷모습을 보던 노엘은 –보좌관이 백작에게 취한 행동을 토대로- 그 목소리로 추측해 보건데 여인을 향한 애틋한 모습이라 상상했다.

 

 “…아프지 않으십니까?”

 

  막상 백작의 허락이 떨어지자 잠시간 머뭇거리던 보좌관이 복잡한 문제를 푸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보좌관의 말을 듣던 백작은 그가 자신에게 이러한 것을 묻는 것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왜 아파야 하지?”

 

  보좌관의 대답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하면서도 여전히 태연한기 짝이 없는 백작의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서로 전하는 감정의 차이가 굉장했다. 그 때문에 잔잔하던 공간의 분위기가 묘하게 틀어지는 것을 느낀 노엘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분명해. 뭔가 있다.’

 

  어쩐지 백작이 입고 잇던 옷의 상태가 이상하더라니. 그가 다녀온 황궁에서 분명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리라. 이런 몰골의 백작을 그들이 황궁에 그냥 보내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황궁, 황궁이라…. 사건의 구심점이 될 만한 단어 하나를 머릿속에서 되새김질하던 그가 이 시기에 일어날 행사 중 하나인 황태자 책봉식을 떠올렸다.

 

 ‘행사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제국 건립 이래로 황제와 혈연관계인 후계자가 선출됐고, 그렇게 선출된 황태자의 반려자로 알려진 레인슐레이츠만. 그런 그가 책봉식이 행해진 황궁에서 외투에 피를 묻히고 왔다는 것은, 필시 그 행사에서 자신의 행색을 미처 수습하지 못한 사건이 일어났음이 분명했다.

  그곳에서 백작에게 불리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리라. 아직 가정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확신이 있던 노엘은 임무가 성공한 후에 따로 조사 요청할 생각 따위를 하며 시선을 내렸다.

  그 시선 아래로 백작의 대답에 경직된 남자의 등이 보였다. 왜? 그렇게 묻는 듯한 미하엘 브리텐슈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

 

 “…알고 계셨군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잔뜩 긴장한 듯 경직된 모습을 보인 보좌관과는 달리, 그를 바라본 백작의 얼굴은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장단 맞추는 데 여념이 없어 보이기에, 어떤 수인가 하고….”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였던 금발 머리 사내를 따라, 똑같은 각도로 보좌관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운 여인의 입매가 물감을 머금은 섬유 조각처럼 서서히 번졌다.

 

 “한 번 놀아나 봤지.”

 

  그 건조하고 무미한 목소리에 위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훔쳐 듣던 암살단이 갑자기 닥쳐오는 한기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 급작스러운 추위 때문인지 어둑한 방 안을 은은히 밝히는 조명 속에 드러난 백마의 미소가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기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그저 어깨에 피를 묻히고 돌아온 여자 하나다. 왼쪽 어깨에 묻은 피를 닦아낼 생각도 없는지 책상에 걸터앉은 어린 여자. 그 사실만을 머릿속에서 상기한 노엘은 분위기가 달라진 백작을 살폈다.

 

 ‘살기는 아닌데….’

 

  좀 전까지 반사적으로 몸이 떨리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에 관해 고민하는 노엘과는 다른 목적으로 백작의 안색을 끊임없이 살피던 보좌관이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오늘 하루만 해도 백작의 앞에서 그가 등을 굽히는 것만 해도 몇 번이었더라.

 

 “알면서 그대로 두셨습니까.”

 

  그러면서 백작을 타박하듯 묻는 그의 목소리는 노엘이 자리를 옮겨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될 만큼 거칠었다. 아마 그 얼굴은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으리라. 아니면 그보다 더 격앙된 모습이었거나.

 

 “그럼, 언젠가 피부를 썩게 할 거스러미를 무시해야 하나.”

 

 “아니요.”

 

 “도대체 무엇이, 너를 그리 불쾌하게 해.”

 

  노엘이 백작의 방에 잠입한 이래로 가장 부드러운 얼굴을 보인 그 주인이 보좌관을 향해 짐짓 애정을 보이며 달래는 듯했다. 그런 목적을 따라 보좌관을 바라본 백작의 입술이 둥그스름한 반달처럼 그려졌다. 본판이 좋아 창백한 몰골에도 제법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 백작의 미소를 보던 노엘은 뒤에서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한심한 표정을 금치 못한 노엘은 자신의 것이 상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성미이기 때문에 부하들을 대들보에서 내려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들에게 ‘신호 내릴 때까지 무한 대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심한 새끼들, 대마법사께 바칠 것에 탐을 내다니.’

 

  분수에 맞게 탐낼 것을 탐내야지. 평소답지 않게 신경이 곤두선 그는, 부하의 작은 몸짓에도 그 의미를 파악하고는 속으로 혀를 찼다. 확실히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다만, 그것을 건드렸을 때 돌아올 대마법사의 분노는 제가 감당할 수는 없는 수준이니까.

  게다가 백작과 계속 거리를 두는 듯한 보좌관을 볼 때 저 여자의 몸에는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을 지도 몰랐다. 그 생각에 노엘의 시선이 다시 하얀 코트를 입은 남자에게로 쏠렸다.

  노엘의 시선을 받은 남자는 자신을 달래는 듯한 백작의 모습에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 남자의 목소리를 듣던 노엘은 그 소리에서 씁쓸함을 느끼고는, 어떠한 확신이 들었다.

 

 “저는 그저… 당신이, 자처해서 그들에게 놀아났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것은 배척에 가까운 상대의 태도에 대한 분노일 것이리라. 노엘은 보좌관이 얼굴을 찌푸린 것을 직접 보진 않았으나, 그럴 것이라고 확신했다. 자신에게 등을 보인 브리텐슈의 말에는 그냥 듣기에도 잔뜩 가시가 돋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의 사고방식이 소름 끼쳐.”

 

  키득키득. 자신의 주인에게 날을 세운 남자를 향해 비웃는 것처럼, 허공에서 희미한 웃음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그만 끊겼다.

 

 ‘…뭐지?’

 

  환청이라기엔 그 여운이 너무 심해서, 백작과 그 보좌관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있던 노엘의 집중력이 빗방울이 맺힌 나뭇가지 건들 듯 우수수 떨어졌다. 그 기이한 감각에 정예로 뽑힌 노엘의 수하가 주위를 살폈다.

 

 ‘방금….’

 

  멀리서 들리는 것 같으면서도 가까이 들리는, 동시적인 소음을 분명 자신의 귀로 똑똑히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시야에는 먼지 한 톨 보이지 않는 대들보의 판판한 일면이 휑뎅그렁하게 존재할 뿐이었다.

  그 밋밋한 나무의 표면을 목격한 수하들은 꺼림칙한 마음을 애써 누른 뒤, 이미 아래의 상황을 살피는 노엘을 따라 시선을 내렸다. 대마법사가 인정하는 인재답게 집중력이 좋은 노엘을 따라 책상에 걸터앉은 백작을 바라본 수하들이 숨을 죽였다.

 

 “새삼.”

 

 “저하 당신은 정말, 하….”

 

  유령의 성에서 일어날 법한 그 기이한 현상에 내심 놀랐던 노엘은 자수정과 같은 투명한 여인의 눈동자가 휘자, 그 눈웃음에 빠져들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말 그대로 보석 같은 눈동자….’

 

  그가 몸을 기울여 자세히 보게 된 여인의 눈은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오묘한 빛을 띠었다. 어느 방향으로 보는지에 따라 색이 변하는 사람의 눈동자와 다르게, 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따라 광택을 내는 영롱한 보옥처럼 귀해 보였다.

  거기에 더해 비헤일리스 공작의 보랏빛 눈동자와 같으면서도 그 색이 수정처럼 투명하니. 빛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사물의 광택과 달리, 어떠한 빛도 바꾸지 못하는 그 고유한 빛깔에 노엘은 시선은 한곳에 완전히 고정되어 버렸다.

 

 ‘비헤일리스 공작과 비슷한 눈이라더니, 눈만 해도 값어치가 꽤 나가겠군.’

 

  흔하지 않은, 독특한 색깔을 지닌 동물의 눈동자는 왕국에서 –특히, 귀족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거래되는 품목이었다. 그러다보니 왕국 출신인 노엘에게 있어서 이런 사고는 극히 자연스러웠다.

  인간에게 나타나지 않는 보랏빛 눈동자는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 그 때문에 백작이 비헤일리스 출신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그 투명한 눈망울에 관한 수집가의 관심은 실로 엄청났다.

 

 “언제 끝나는 겁니까.”

 

  목소리가 다소 가라앉은 보좌관의 물음에 반대쪽 손으로 검지를 잡고서 그 살갗을 문지르던 백작이 시선을 들어올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보좌관을 향해 눈을 곱게 접어 보인 그는 한쪽 눈썹을 손가락으로 긁으며 입을 열었다.

 

 “곧?”

 

 “정말 추상적이군요. 저하.”

 

  아리송할 만큼 부정확한 기한에 백작을 비꼬는 기색이 역력한 브리텐슈의 대답이 금방 들려왔다. 그런 보좌관의 비꼼에 아래로 눈을 내리깐 백작이 눈썹을 살짝 움직였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여전한 그의 미소와 달리 마음이 조금 가라앉은 듯한 백작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들보에 숨어 있던 암살단의 호흡이 바닷속에 빠진 것처럼 턱하고 막혔다. 호흡뿐만 아니라 온몸이 조이는 듯한 감각에서 겨우 헤어 나온 노엘이 산 사람의 눈을 보며 감상 따윌 하던 것을 그만 두었다.

  비헤일리스 성까지 잠입한 주제에 그 눈동자 따위에 빠져서는 표적을 두고 딴생각을 하다니, 부하들은 데리고 적진 한복판에 있는 것과 다름없는 암살자 주제에 건실하지 못한 처사였다.

 

 ‘...!’

 

  그렇게 정신을 차린 그가 표적을 향해 시선을 내리자, 그 여린 녹색의 눈망울 속에 팔짱을 낀 채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어 보인 여자의 얼굴이 당장에 들어왔다.

  자신의 눈동자에 적확히 들어온 백작의 입꼬리가 버젓이 올라가자, 그 미묘한 기색에 흠칫 놀란 노엘이 앞으로 기울였던 몸을 반사적으로 틀었다. 자신이 가진 아티팩트의 효과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몸이 정직하게 반응한 탓이었다.

  마치 자신을 보고 놀라는 암살자를 본 것처럼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지은 여자가 위로 들어 올렸던 시선을 내렸다. 그렇게 고개를 내린 백작의 시야에 맞은편에 있는 녹금색 눈동자가 들어왔다.

 

 “보좌관.”

 

 “예.”

 

 “그대는 내가 참을성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

 

 “그러니, 걱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백작의 물음에 답하는 보좌관의 목소리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성정으로 비롯된 불안한 마음이 느껴졌다. 조금 힘이 빠진 목소리로 대답한 브리텐슈가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내리자, 주인의 몸짓을 따라 어깨가 유연하게 움직였다.

 

 “카엘.”

 

  앞에 있는 백작과 시선을 맞추듯 고개를 살짝 내려 보인 브리텐슈가 장난기가 다분한 목소리에 양어깨를 움찔거렸다.

 

 ‘방금….’

 

  그 반응에 위에서 지켜보던 노엘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그것이 애칭인지 호칭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백작 앞에 선 남자가 놀랄만한 단어라는 정도는 확실했다. 그렇게 판단한 노엘이 눈을 깜박이려는 순간이었다.

 

 “…?”

 

  그가 쭉 지켜보던 여자가 갑자기 보이지 않다고 생각했더니, 어느새 자기 앞에 서 있던 브리텐슈의 앞으로 바짝 다가가서는 보좌관의 덩치에 제법 가려져 있었다. 언제 이동한 것인지 모를 정도로 자신의 시야에서 빠르게 사라진 백작은, 그 작은 신장으로는 최소한 다섯 걸음을 가야 들 수 있는 거리를 눈 깜짝할 시간 안에 기척도 없이 도달한 것이다.

  노엘의 시선이 자신의 덩치보다 좀 더 큰 미하엘 브리텐슈에게 닿으니, 보좌관을 향해 불쑥 찾아온 레인슐레이츠만의 머리가 그의 목덜미 사이로 언뜻 보였다. 그것을 바로 위에서 보고 있었으니, 두 사람은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서 바투 붙어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리라.

 

 ‘이게 바로…’

 

  레인슐레이츠만 백작의 주특기로 알려진 왜곡 마법(왕국 표기)이리라. 그의 소문에 관해선 워낙 여러 종류의 풍문이 많았기에 노엘 또한 그것을 믿거나 말거나 하는 것이 태반이었다. 애당초 대마법사가 그에 관한 정보를 주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특기를 이런 보잘 것 없는 상황에서도 남용하고 있을 줄이야. 이런 백작의 행동은 마법을 위해 마정석이나 마법진이 필수적인 왕국민에게 상당한 충격이리라.

 

 “활쏘기 전 항상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지.”

 

  대들보에 숨어든 암살자들이 그에 충격을 받거나 말거나 보좌관을 향해 시선을 들어 보인 백작의 보랏빛 눈망울이 네모난 조명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그러자 그 눈빛에서 무언가를 읽은 것인지, 얌전히 서 있던 브리텐슈가 고개를 숙여 백작의 입가에 자신의 귓가를 가져다 대었다.

 

 “오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과녁을 명중시키기 위해선 그것을 항상 확인해야 하지.”

 

  부드럽게 휘는 허리와 함께 그의 어깨가 내려가 레인슐레이츠만의 얼굴이 잠시간 보였으나, 좀 더 앞으로 몸을 기울인 백작이 미인의 목덜미를 향해 제 고개 틀어버리는 바람에 암살자의 눈동자엔 그 오른쪽 눈가만 언뜻 보일 뿐이었다.

  그것과 더불어 입맞춤하듯 하얀 목덜미를 파고든 백작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노엘은 레인슐레이츠만 백작이 자신의 보좌관인 미하엘 브리텐슈에게 무엇을 말하였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좌관의 등에 가려졌던 백작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자신의 보좌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뒤로 한 발짝 멀어진다 싶더니, 금세 책상 앞으로 돌아와 그 가장자리에 자신의 몸을 기댔다.

  그 모습에 노엘의 눈동자가 바쁘게 주위를 훑었다. 자신의 방에 누가 있는 게 아닌 이상, 그 방의 주인이 귓속말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백작의 행동에 대한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던 노엘의 바쁜 탐색은, 제 밑에 있던 남자의 허리가 천천히 펴질 때까지 계속됐다.

 

 ‘당한 건가?’

 

  설마…. 의심으로 가득 찬 눈초리로 주위를 살피던 암살자가 초조함을 속으로 삼켰다. 소문도 무성한 레인슐레이츠만에 이어 백의의 천사라 불리는 미하엘 브리텐슈까지 한꺼번에 상대할 깜냥 따위는 그들에게 없었으니 말이다.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릴까 두려운 암살자의 시선 아래, 숙였던 몸을 바르게 편 보좌관의 짙은 금발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윤슬처럼 선연한 빛이 흐르는 머리칼을 들어 백작과 마주한 브리텐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그 머뭇거림을 알아차린 듯한 여인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믿어도…”

 

 “돼.”

 

 “…믿어보겠습니다.”

 

  그 명백한 표현에 잠시간 말이 없던 보좌관이 백작에게서 한 발 멀어졌다. 레인슐레이츠만의 대답을 곧이곧대로 해석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노엘은 표적을 서둘러 해치우려던 계획을 접었다.

  그의 눈에 비친 두 사람의 거리는 수장과 수하라는 단순한 관계보다는 좀 더 긴밀한 연결고리가 있는 듯했다. 보좌관이 백작과 거리를 벌릴수록 두 사람 간의 분위기가 더욱 편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거리를 벌리는 건 신뢰의 표시인가?’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를 추측하는 노엘의 뒤로 넘어간 그림자가 조금 흐려졌다. 그의 그림자는 천장 중앙에 있는 조명의 영향 때문인지 꽤나 선명했는데, 그 경계가 조금씩 흩어지는 정도의 흐려짐이었다.

  어느새 옅어진 암살자의 그림자가 자리한 대들보 밑까지 들어온 보좌관의 얼굴이 보였다. 몇 걸음 안 되어 제법 뒤로 물러난다 했더니, 신장이 커서 그런지 그렇게 물러난 거리가 꽤 되었다. 그에 화려한 금발 미남을 볼 수 있던 노엘은 그 얼굴을 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감탄했다.

 

 ‘잘생겼군.’

 

  노엘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곁에서 멀어지던 브리텐슈를 가만히 지켜보던 백작이 자신의 짧은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여자치고 짧은 머리칼이어서 그런지 앞머리를 쓸던 그의 손은 금방 붉은 목덜미에 닿았다.

 

 “보좌관.”

 

 “예.”

 

  머리를 쓸어내리기 위해 숙인 고개를 따라 검회색으로 반짝이는 여인의 속눈썹 아래로 드러난 새벽빛 눈동자가 서서히 침몰했다. 그런 백작의 부름에 시선을 든 보좌관의 표정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나 피곤해.”

 

  뒷머리를 잡고 있던 그가 손을 내려놓자, 아래로 흘러내리는 까만 머리칼과 함께 거뭇거뭇한 눈가가 드러났다. 그 낯빛을 확인한 보좌관은 고민하는 것인지 잠시간 말이 없다가, 그 의견에 한 발 물러서는 자세를 취했다.

 

 “…피로한 주군을 붙잡은 무례를 용서하시길.”

 

  지쳐 보이는 백작을 향해 가슴에 손을 얹은 보좌관이 상대에게 허리를 숙였다. 더는 묻지 않겠다는 그의 태도에, 백작의 투명한 눈망울이 깜깜한 바닥으로 향했다.

 

 “돌아가 봐.”

 

  보좌관의 질문에서 해방된다는 것에 기뻤던 것인지, 브리텐슈에게 고개 들어 보인 백작의 미소가 자연스러웠다. 그 미소와 마주한 보좌관은 그런 백작의 심중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체념한 표정으로 얌전히 물러났다.

 

 “이만 집사에게, 가보겠습니다. 편히 쉬세요.”

 

  보좌관의 손에 문이 닫히자 복도에서 들어온 빛이 결국 사라졌다. 그러자 은은한 빛을 감싼 어두운 공간에서 성 주인인 백작의 숨소리만이 낮게 울렸다. 대화할 상대가 사라진 그의 표정은 밝지도 딱히 어둡지도 않았다.

  텅텅 빈 방에 탁상의 가장자리를 짚고 서 있던 백작은 보좌관의 말소리가 사라져 더욱 숨죽인 암살자의 열렬한 시선이 따가웠던 것인지, 정면을 바라보던 새벽녘과 같은 눈동자를 천장에 고정시켰다.

 

 ‘봤어?’

 

  시퍼런 안광과 함께 맞물려 냉랭함이 느껴지는 눈동자였다. 그 시선이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자신과 부하들이 있는 대들보로 정확히 향한 것이다. 노엘은 그 싸늘한 기운에 자신의 머리끝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그 시선에 터럭을 쭈뼛 세운 암살자를 향한 백마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그믐달처럼 가늘어진 백작의 눈시울이 번들번들 빛나자 그것을 보고 있던 노엘의 시선 또한 외풍을 삼킨 것처럼 당장에 싸늘해졌다.

 

 “손께서는 참으로 수줍은 인물인가 봅니다.”

 

  그 서슬 퍼런 낯에 본능적으로 숨을 토해낸 암살자의 입에서 숨이 하얗게 물들었다. 하얗게 물든 암살자의 숨이 허공에 살짝 떴으나, 그것이 백작의 눈에 비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자리한 대들보가 하얀 눈꽃에 살살 덮여서는, 결국 그것이 침입자의 발밑까지 몰려들었다.

 

 “귀하신 양상군자께서 발걸음을 다 하셨는데, 이를 어쩌나….”

 

 “…”

 

  자신의 발 언저리로 곧장 다가온 서릿발을 보던 노엘이 자신에게 정확히 꽂힌 새벽녘의 눈동자를 보고 당황했다.

  무려 대마법사가 만들어준 아티팩트였다. 그것도 제 몸속에 들어 있어, 그 사실을 미리 전해 듣지 않는 이상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며, 이미 타국의 왕성도 수월하게 넘나들 수 있음을 확인했었고, 조금의 과장을 보태어 이것을 만든 대마법사조차 자신의 기척을 완전히 알아차리기 힘든 인공물이었다.

 

 ‘…알아차리다니.’

 

  그 귀한 것을 이용하였는데,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으리라. 그렇기에 보랏빛 눈동자를 바라보던 노엘은 그가 자신에게 말한 양상군자라는 것이 ‘몰래 숨어든 자’라고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과거부터 동대륙과 자주 교류했던 비헤일리스인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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