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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피해자의 이야기

 
제43화 <원점>
작성일 : 20-11-11 03:35     조회 : 342     추천 : 0     분량 : 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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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은 나른했다.

 바람이 한 점이라도 불어들 법했지만, 그마저도 없는 고요한 밤이었다. 긴장도, 불안도 모두 날려버린 어둠은 의외로 포근했다.

 

 경자는 조용한 창밖을 바라보며 차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문 밖에서도 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철의 영정 앞에 술을 따르는 소리였다.

 

 “칠칠치 못하게 뭔 소리를 저리 내누. 동네 귀신은 다 부를 셈임감.”

 

 들릴락 말락 한 작은 소리였지만, 경자는 그 속에서 용케 금속이 부딪는 소리를 잡아냈다. 그리고는 그 작은 소리에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사실, 그 불평불만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성혁이었다. 아무리 호적에만 오른 거라고 하나 명색이 아들인데, 낮에 나가서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것이 못내 괘씸했던 것이다. 그렇다곤 해도 이미 다 큰 아들, 잡아다 경을 칠 수도 없고, 애꿎은 경호원만 경자의 짜증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때, 창밖의 소리에 변화가 일어났다.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에 경자는 몸을 일으켰다.

 

 “애들 왔는가?”

 

 경호원이 눈이 침침한 경자를 대신해 창밖을 내다보았다. 대문으로 들어오는 자동차는 성혁의 자동차였다.

 

 “네. 의원님 오셨습니다. 그리고... 유진도 온 모양입니다.”

 

 

 

 “미안하다. 내가 좀 더 잘 관리했어야 했는데.”

 

 안 변호사는 면목이 없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명백한 자신의 실수였다. 급하게 서류를 정리해 가져온다고 가져왔는데, 그중에 하필, 절대 들켜선 안 되는 서류를 수연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뭐.”

 

 도현이 눈을 뜨지도 않고 조용히 내뱉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붙잡고 후회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뭔가 계획이라도 있어?”

 

 덤덤한 도현의 말에 안 변호사가 일말의 기대를 품고 물었다. 그러나 도현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수연이 병실을 나간 이후로, 도현의 머릿속에는 수백 개의 계획이 세워지고 무너졌다. 그러면서 점점 더 정교하게 구체화되어 갔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도현에게 계획이란 일종의 허세와 같은 것이었다. 마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을 부풀리는 동물과도 같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에서 도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생각하는 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생각 속에서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부모를 잃고 무서운 친척들 앞에서 벌벌 떠는 자신의 모습도, 머릿속의 계획 속에선 누구보다 당당하고 세련되게 그들을 상대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번 계획이 정교화되면 자기암시라도 하는 것 마냥,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그러면 그 계획으로 도착할 수 있는 길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현의 머릿속에서 완성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현실은 늘 그렇듯 변수로 넘쳤고, 그 변수는 늘 도현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다시 원점이었다. 절망 속에서 다시 계획을 짜고, 그 계획을 수없이 되뇌이고, 그걸 실현하고, 또 예상치 못했던 변수에 부딪혀 좌절하고. 그것이 지금까지의 도현의 삶이었다. 그 어떤 것도 도현의 계획대로 되었던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이것 저것...”

 “방법이 있어?”

 “... 있겠지...”

 

 명쾌하지 못한 도현의 답에 안 변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의욕이 상실된 도현의 모습은 그조차 처음 보는 것이었다.

 

 “도현아.”

 

 전에 없이 심각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안 변호사의 목소리에 도현이 그를 바라봤다. 날카로운 그의 눈빛이 도현에게 내리 꽂혔다.

 

 “그만둘 수 없는 거 알지?”

 “......”

 “30년이야. 자그마치 30년이란 내 인생을 너의 복수에 올인했어.”

 “......”

 “그 시간을 후회하게 만들지 마.”

 

 도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 한 들,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전이라면 그 막막함을 양분 삼아 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보겠지만, 이제는 그럴 의욕마저 없었다.

 

 사실 도현의 정교하고 치밀한 계획과는 달리, 도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변곡점들은 언제나 우연 속에서 즉흥적으로 일어났다.

 

 22년 전, 부모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기꾼의 가족이 학살 당한 곳에 불을 질렀을 때도, 계획 따윈 없었다. 저 멀리 도망가는 강경식과 피투성이로 누워있는 이진원, 그리고 그 옆에 죽어있는 자신의 동생을 보며 치밀어오는 울분을 가라앉히고 나니, 어느새 아파트는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품 속에는 범행현장의 흉기로 쓰였을 게 분명한 칼이 있었다. 강경식이 썼던 그 칼이었다.

 그 어떤 설명할 수 없었다. 자신이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하지만 그러고 나서 생각했다. 지금 강경식이 잡히면 그가 치를 대가는 오늘의 살인죄에 대한 것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가 치러야 할 댓가는 그보다 더 크지 않았던가? 안평그룹을 망하게 하고, 자신의 부모님을 살해한 놈이었다. 그 모든 댓가를 치르게 하려면 지금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이 한 번 떠오르고 나니, 모든 명분이 생겼다. 방화는 더 큰 진실을 밝히기 위해, 흉기는 죄값을 치러야 할 범죄자를 몰아넣기 위해.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잃어버린 안평을 다시 재건하고 부모님의 오명을 벗겨드리며 모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그렇게 정신없이 현장을 빠져나오던 중 수연과 마주쳤다. 자신의 가족을 몰락하게 한 사기꾼의 딸이었다. 그 아이를 잡아 끌었던 것은 정말 순간적인 분노였던 것 같다. 혹은 사건 현장에 자신도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목격자가 두려웠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되었든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그냥 무작정 수연을 끌고 밖으로 빠져 나왔다.

 당연히, 울다 지쳐 혼절하는 수연을 안나의 이름으로 병원에 입원시킨 것도 계획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계획이 없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저지른 일이었으니 어떻게든 수습은 해야 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수습을 해가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꽤 괜찮은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바로 수연에게 안나의 이름을 주고, 자신을 대신해 Bz와 강경식, 그에 동조한 인물들에게 복수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니 그동안 잊고 있었던 온갖 감정들이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복수 때문에 자신의 손이 더러워지는 것은 너무 억울했다. 그러니 내 손 대신 저 아이의 손을 더럽히자. 어차피 저 아이도 우리 집을 몰락시킨 원수의 자식이었다. 그 정도의 댓가는 치러야 마땅했다.

 

 기나긴 복수의 대장정은 그렇게 시작되었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지금 이것이었다. 뭐 하나 시원하게 이룬 것도 없이 모두 변죽만 올리다 끝났고, 수연은 모든 것을 알아버렸다. 이런 상황에 무슨 방법이 더 있을까?

 

 그때였다. 병실의 문이 벌컥 열린 것은.

 도현과 안 변호사의 시선이 모두 문으로 향했다. 거기에 서 있는 것은 수연이었다.

 

 수연의 태도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안 변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도현과 수연을 번갈아 쳐다봤다. 여차하면 바로 뛰쳐나가 수연을 막든 도현을 막든 할 예정이었다.

 긴장 속에 수연의 발이 움직였다.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에는 도현이 있었다. 안 변호사가 기겁하며 몸을 일으켰고, 수연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도현의 멱살을 잡았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그래서 이제 뭘 하면 돼요?”

 

 수연에게서 나온 뜻밖의 말에 도현과 안 변호사가 모두 수연을 바라봤다.

 

 “당신, 계획 다 짜놨잖아. 거기 최종 타겟이 Bz의 인경자와 인성혁이잖아. 아녜요?”

 

 숨 넘어갈 듯한 질문이었다.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의 멱살을 쥔 수연의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지금 당장 말해요. 장기판의 말이든, 일 끝나서 팽 당하는 개가 되든, 상관없어, 뭐든 해줄 테니까. 그러니까, 내가 지금 뭘 하면 되는 거죠?”

 

 

 

 

 “아이고, 아가. 혹시 울었니?”

 

 터덜대며 안으로 들어서는 유진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누가 봐도 펑펑 운 아이의 몰골이었다. 유진은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가가 왜 울었을까? 뭐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었니?”

 “할머니가 미워서요?”

 

 그 와중에도 제법 당돌하고 개구진 대답이었다. 경자는 유진의 볼을 꼬집었다.

 

 “그래? 이 할머니가 왜 밉던?”

 

 경자의 물음에 유진은 짐짓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대답을 꺼냈다.

 

 “오늘이 작은 할아버지 제사라면서요.”

 “그렇지.”

 “그럼요, 할머니... 우리 아버지 제사도 같이 지내주시면 안 돼요?”

 

 상상도 못했던 대답에 경자와 성혁의 표정이 모두 굳어졌다.

 

 “뭐라고?”

 “우리 아버지요. 강, 경자, 식자 되시는 분. 아무리 그래도 제가 아들인데... 너무 도리를 못한 것 같아서요.”

 “......”

 “그래서 말인데... 같이 지내주시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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