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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나의 유치찬란했던 시절(1981~1987)
작가 : 레빈
작품등록일 : 2020.9.8

제가 요즘 여러가지 일이 겹쳐 심신이 말이 아닌데 며칠 전 잠자리에 누워 지난 일들을 생각해보니 그래도 고등학교 다닐 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 '이걸 글로 한 번 써 보면 어떨까?, 쓰다보면 기분도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남들 앞에 내어놓기에 심히 부끄러운 글을 치기어린 고딩 때의 마음으로 낯짝에 철판을 깔고 한 번 써보려고 합니다. 본시 글 쓰는 사람이 아니니 재미없더라도 크게 나무라진 말아주세요.

 
제 28-2화 : 태풍 오는 날, 지리산에 오르다
작성일 : 20-11-10 06:24     조회 : 354     추천 : 0     분량 : 10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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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시외버스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들은 총무를 맡은 갑봉이가 진주 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 보기 위해 매표소로 가 있는 동안 밥부터 먹고 출발할 건지, 진주에 도착해서 먹을 것인지를 놓고 벌써부터 의견이 엇갈리는데...

 

  표를 사면서 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갑봉이가 돌아와서는 말없이 가방을 뒤적거려 뭔가를 끄집어내는데 아 글쎄 거기에 김밥이 무려 16줄이나 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평소에 짠돌이인 그가 생각지도 않게 이런 걸 준비해 오자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설마 니가 이런 걸 사 왔을 리는 없을 테고, 도대체 어디서 난 거냐?"라고 물었더니 "어제 공장에서 일하느라 밤늦게 돌아온 누나들이 내가 짐을 꾸려 둔 걸 보고서는 어디 가느냐고 묻길래 "공비 토벌하러 지리산에 간다"라고 했더니 " 뭐어! 태풍 오는데 지리산에 간다고! 이 미친놈들. 이젠 하다 하다 별 짓을 다 하는구나!"라고 구시렁대더니 아침밥도 못 먹을까 봐 걱정돼서 그랬는지 새벽부터 일어나 싸 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너 나 할 것 없이 폭소가 터지고 그러자 좀 전의 불안하고 좀스럽던 마음도 어느새 사라지고 온화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충무를 출발해 별 탈 없이 진주에 도착한 우리들은 곧바로 지리산 초입까지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 고개를 넘어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사실은 제가 길치인데다 버스 타고 오는 내도록 잠만 잤기 때문에 세세하게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ㅠ) 주위를 살펴보니 사람은 아무도 없고 양옆으로 산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앞뒤로 산길치고는 비교적 넓은 비포장도로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서둘러 올라가던 중, 아무래도 나중에 합류한 녀석들의 상태가 궁금해 살펴보니 명언이가 짊어진 가방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게 꼭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빈 가방 같아 보여 그에게 "니 집에서 아무것도 안 갖고 왔나?" 하고 물으니 "응. 뭐 갖고 올 게 있나? 와서 사모 되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 제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밤되모 추울 낀데 옷이라도 갖고 오지 그랬나?" 하니 "마 괘안타! 나 몸에 열이 많아서 할딱 벗고 잔다 아이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나누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을 재촉하는데 이번에는 명언이가 목이 말랐던 모양인지 물통을 꺼내 물을 마시느라 우리보다 약간 뒤로 쳐졌다고 느낀 순간, 갑자기 '쭈르륵 퐁' 하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물통을 놓친 명언이가 그것을 주우려고 계곡물속으로 막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을 본 기환이가 깜짝 놀라 다급한 목소리로 " 맹언아! 맹언아!, 나온 나! 빨리 나온 나!" 하는데, 그 소리를 듣고서도 명언이가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다시 들어가려 하자 기환이가 있는 대로 고함을 지르며 "야 이! 개새끼야! 나오라 카이! 퍼뜩 나오라 카이!" 합니다.

 

  그제서야 위험을 알아차린 명언이가 물속으로 담갔던 발을 빼내려고 몸통을 돌리다가 그만 돌을 밟아 미끄러지며 한 쪽으로 기우는 걸 이 두 녀석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 뭐라도 해 보려고 바로 명언이 옆에 까지 가 있던 저 포함 친구 셋이 겨우 붙잡아 100킬로가 넘는 이 거구를 간신히 바깥으로 끌어냈습니다.

 

  아찔한 순간을 넘긴 우리 셋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명언이에게 각자 한마디씩 하려 하는데, 저기 위쪽에서 우릴 보고 있던 기환이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야! 뭐 하냐? 빨리 출발 안 하고. 이러다 늦어지면 텐트도 못 친 데이!" 하며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러자 모두들 그의 이런 리더다운 모습에 놀라워하며 서로의 손을 맞잡고 일어나 짐을 챙겨 그만이 알고 있는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갔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한동안 태풍의 눈에 들어서 그랬는지 맑기만 하던 날씨가 갑자기 컴컴해지며 마침내 비를 뿌리기 시작하자 선두에 서서 우리를 이끌던 기환이가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그러는지 뒤로 쳐지며 우리에게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앞만 보고 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을 쫓아 앞으로 뛰어가면서 도대체 뭘 하나 싶어 뒤를 돌아다보니 놀랍게도 잘 뛰지 못하고 후미로 처지는 친구들의 짐을 받아 혼자서 다 짊어지고 그들을 독려하며 뒤따라오는 것이 아닙니까? 이제 숨이 가빠 더는 못 뛸 것 같은 순간,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넓은 개활지가 나타나는데 아마도 거기가 뱀사골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먼저 도착한 우리가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사이, 낙오하는 두 친구 녀석의 짐까지 짊어지고 악전고투 끝에 뒤이어 도착한 기환이가 곧 비바람이 불어닥칠 것 같다며 숨돌릴 겨를도 없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더니 그만 한곳에 딱 멈춰 서서는 여기에다 텐트부터 빨리 치자며 서두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뭘 할지를 몰라 우두커니 서 있던 우리들은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와 정수가 가지고 온 4인용 텐트 두 개를 나란히 펼친 후 눈치껏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 나가기 시작하는데, 육중한 몸으로 뛰어오느라 힘들어서 그런지, 괜히 왔나 후회스러워서 그런지, 아니면 아까 계곡에서 급류에 휩쓸려갈 뻔한 게 쪽팔려서 그런지 명언이만은 우리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서서 연방 기침을 해대가며 애꿎은 담배만 태우고 있는데...

 

  기환이와 남식이를 제외하고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야외에서 잠을 자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우리들(이전에 비진도에 놀러 갔을 때도 민박집에 묵었음)은 텐트를 치면서도 과연 이 안에서 잠을 잘 수 있을지 불안하기가 이를 데 없었는데,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내도록 구라와 허풍으로 불신의 대상이 되었던 기환이가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는 어디 판타지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활약을 보이는 것에 힘입어 텐트를 완성하고 나자 불안했던 마음도 어느 정도 가시고 다시 생기가 돋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회의가 열리고 날씨가 점점 더 험악해지면 밥도 해 먹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르니 웬만한 건 다 요리해 주먹밥 등으로 미리 만들어 두기로 의견을 모으긴 모았는데, 문제는 누가 이 일을 맡아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즉 남식이뿐이란 걸 모두가 다 알고 있었지만 (우리들 중 요리를 해 본 사람은 배 타느라 화장 보조로 일해 본 적이 있는 남식이 뿐이었고, 기환이도 한두 사람이 먹을 거라면 몰라도 그렇게 많은 양의 요리를 해 본 적은 없어 이 일마저 그가 다 하기에는 무리였음) 이제 배에서 갓 내린 사람에게 이 일을 맡아 달라고 요청하기도 어려워 다들 눈치만 보고 있자니까 한참만에야 이를 알아차린 남식이가 "그래. 그렇지. 요리해 본 사람이 나밖에 없지." 하더니 자기가 가지고 온 배낭에서 칼과 도마 등의 요리도구를 꺼내 양파, 감자, 대파 등의 식재료를 다듬어 나가는데, 우와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르던지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바쁘게 일하는데 우리도 마냥 쳐다만 보고 있을 수는 없어 쌀 씻으러 가는 사람은 냇가로, 도저히 배가 고파 안 되겠다며 라면부터 끓여 먹어야겠다는 사람은 바람이 안 닿는 곳으로, 또 뭘 해야 할지 얼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텐트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고정할 돌이라도 주워 오겠다며 각자 알아서들 떠나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명언이는 여전히 한 쪽 구석에 짱박혀 담배만 계속해서 피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정진이가 이제 더 이상은 이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인지 남식이를 돕다 말고 일어서서는 " 맹언아! 니 거서 뭐 하는데? 계속 그러고 있을 거냐? 할 일 없으면 일로 와서 텐트라도 지켜라!"라고 했더니, 그 소리를 듣고서는 명언이가 더 이상은 그러고 있기가 미안했는지 마지못해 담뱃불을 비벼 끄며 일어나서는 텐트 안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젠 허기에 지쳐 정신마저 흐릿해지는 것 같은 순간, 어딘가에서 라면 끓여 오겠다고 갔었던 녀석 둘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라면을 냄비째 받쳐 들고 부리나케 종종걸음을 치며 오는데 궁하면 통한다고 배가 너무 고팠던 이들 두 녀석이 큰일을 해낸 것이었습네다.

 

  이렇게 해서 허기진 배를 간에 기별 갈 만큼만 채운 우리들은 각자 맡은 일들을 마무리 짓고 마침내 텐트로 모여들어 본격적으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하는데...

 

 점점 험악해지는 날씨 탓에 별다른 놀이를 할 수도 없어 계속 그렇게 술잔만 기울이다 보니 하나둘씩 술에 취해 나가떨어지고, 이제 남아 있는 친구도 몇 안 되게 되자 말도 않고 뒤늦게 합류한 정진이가 그게 마음이 쓰였던지 남식이에게 "아무런 약속도 없이 아침에 불쑥 나타나 민폐만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하다"라고 하자 이를 들은 남식이가 "아이다, 오히려 미안한 건 나지. 괜히 내가 산에 가고 싶다고 해 모두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상황이 안 좋다 보니 혹시라도 서로 간에 반목이 생길까 봐 초조했는데, 이렇게 마음이 넓은 두 친구가 서로에게 미안함을 표현함으로써 그런 염려를 덜게 돼 흐뭇하다고 느낀 순간 또 다른 남식이의 질문이 이어지는데...

 

  "저기 그란데, 느그들. 맹언이는 도대체 와 그란 다는데?"

 그러자 명언이 집과 한 집 건너 맞은편 집에 살고 있었던 정진이가 "나도 아직 물어보질 않아서 단정 지어 말한 순 없지만, 아마도 이놈이 2대 독자인데다 시집간 고모들도 아들을 못 낳아 집안에 온통 여자들 뿐이라 받들어지기만 할 뿐 뭘 스스로 해본 적이 없어 할 줄 아는 게 없다 보니 미안해서 그런 것 같다"라는 것이었습니다.(나중에 알고 보니 진짜로 그렇더군요. 거기다 고모들 전부 식당을 해 밥도 집에서 먹지 않고 하루 세 끼를 모두 외식 아닌 외식을 하고 있었던 터라 더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정진이의 대답을 듣고서는 어느 정도 납득이 됐는지 고개를 끄떡이더니 이번에는 남식이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그라모 기환이는 우째서 저런 재주를 가졌는데?"라고 우리 또한 아는 것이 없어 궁금해하던 걸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질문한지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대답이 없자 이번에는 그와 제일 친한 평소에 말수가 워낙 적어 별명이 '침묵'인 정수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어 그에 대해 말하는데...

 

 "아마도 기환이한테 저런 능력이 있는 건 저거 아버지를 닮아서 그럴 거야! 왜냐하면 당신께서 못 하는 게 없어셨거든. 어른들 말씀으로는 스물 남짓일 때부터 온 동네 씨름판이란 씨름판은 모조리 휩쓸고 다니셨대..

 

 그런데 당신께서 군대 가실 나이가 되자 어차피 가는 거 좀 고생스럽더라도 나중에 장사할 밑천이라도 마련해 보려고 하사관으로 지원해서 가셨는데, 워낙에 체력은 타고난 데다 대부분의 시골 출신들이 그렇듯 그 또한 군대에서 필요로 하는 자질이란 자질은 다 갖췄던 터라 가자마자 지휘관의 눈에 들어 진급도 빨리 되고, 하다보니 적성에도 맞고 해서 이럴 바에는 차라리 말뚝 박는 게 낫겠다 싶어 장기 복무를 신청해 직업군인의 길로 들어섰다고 해. 그런 후 생활이 안정되자 곧바로 첫사랑과 결혼해 남식이도 낳고 하면서 잘 사셨대...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베트남 전쟁에 개입했다 곤경에 빠진 미국이 우리나라에 전투부대 파병을 요청해 오고 이를 거절할 수 없었던 우리나라는 파병 갈 대원들을 차출해 월남으로 보내는데, 당연히 그 명단에 당신의 이름도 올라가 역시나 그답게 벌어지는 전투마다 혁혁한 공을 세워 훈장까지 받아 이제 최고의 하사관으로 정년퇴임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라며 칭송이 자자했다는데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어른이 월남에서 돌아오시자마자 곧바로 전역을 신청하더니 산속으로 들어가 집에도 잘 오시지 않는다는 거야.

 

  그러다 보니 그의 어머니와 불화하게 되고, 이 친구 또한 어릴 때 그렇게 좋아했던 아버지를 원망하게 됐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녀석 몸속에 남아있는 피가 어딜 가겠어? 극한 순간에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재즈를 좋아하고 씨름을 잘 하는 것도 결국 다 지 아버지를 닮아 그렇지 않겠냐?"라는 겁니다...

 

 

  이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저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만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는데 뭔가 등이 축축한 게 기분이 이상해서 깨어나 보니 텐트의 문이 약간 열린 채 그사이로 장대비가 들이쳐 제 몸 절반 이상이 물에 잠겨져 있는 것이 아닙니까?

 

  깜짝 놀라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보려고 밖으로 나갔더니 이곳저곳에서 저처럼 바깥 동정을 살피러 나왔다가 세차게 불어닥친 비바람에 짐이 들어 있던 텐트를 통째로 날려버린 사람들이 사색이 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흐느끼고 있질 않겠습니까?

 

  사태는 더욱더 악화되고 급기야 하늘에서는 섬광과 함께 뇌성벽력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이제 더 이상 이곳에서 버티다가는 잘못하면 불어난 물에 모든 것이 쓸려 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 친구들도 하나 둘 깨어나고 비상사태임을 직감한 우리들은 서둘러 짐을 꾸려 하산하려 하는데, 저기 구석진 곳 어딘가에 배낭 하나가 그대로 남아 있어 확인해 보니 아이고!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명언이가 보이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정신이 몽롱한데 갑자기 정진이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간이화장실로 가보자고 해 도착해서 보니 아! 글쎄 이 녀석이 화장실 제일 구석진 칸에서 팬티도 반쯤 내린 채 코를 골아가며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이 녀석의 모습을 보곤 기가 막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는데,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어 본 게 아닌 듯 정진이가 "맹어나! 맹어나! 퍼뜩 일나라. 일나. 이제 고마 집에 가야지. 어머이 기다리신다" 하며 아주 능숙한 솜씨로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직도 잠이 덜 깨 해롱대는 명언이를 거의 밀다시피 해 다시 모이기로 한 장소에 집결한 우리들은 언제 준비했는지 기환이가 나눠주는 대형 비닐 한 장씩을 받아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판초 우의처럼 만들어 입고서는 줄줄이 하산하는데, 길 옆을 바라보니 우리가 잠들어 있던 사이 얼마나 비바람이 거셌는지 이곳저곳에 나무가 뿌리째 뽑혀 있었고, 계곡물도 엄청나게 불어나 도로를 침범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젠 웬만큼 큰 위기는 벗어났다는 생각이 든 순간, 길잡이를 하던 기환이가 걸음을 멈추며 아직 갈 길이 머니 배낭의 무게를 줄이자며 지금 바로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어치우자고 해 라면과 통조림 등 일부만 빼고는 어디 마땅히 앉을만한 자리도 없어 그냥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거나 서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빠르게 다 먹어치웠습니다. 그러고는 광활한 자연이 펼쳐놓은,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마치 우리가 앞으로 걸어야 할 삶을 예고하는 듯한 그 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이젠 지쳐 눈꺼풀이 내려와 앞도 잘 보이지 않고 발걸음도 무뎌져 한걸음 떼어 놓기도 어려운 순간, 어디선가 정오를 알리는 예배당의 종소리와 함께 마을 하나가 나타났는데 그 중앙에 마치 우리에게 밥 먹고 쉬었다 가라는 듯 느티나무 한 그루와 평상 하나가 놓여 있질 않겠습니까?

 

  이제 목적지에 다다랐음을 직감한 우리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마지막 식사를 하기 위해 각자가 맡은 일들을 해 나가는데, 역시나 명언이는 뭘 할지를 몰라 멀뚱거리고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모습을 본 정진이가 무슨 재미있는 생각이라도 떠올랐는지 빙그레 웃으며 "맹언아! 니는 뭐 딴 거 하지 말고 마을에 가서 김치 좀 얻어 온나?"라는 겁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분명 거절했을 텐데, 지도 염치가 있었던지 명언이가 마지못해 그릇 하나를 챙겨 들고 마을로 내려가려 하자 정진이가 "어데?" 하며 명언이가 들고 있던 그릇을 빼앗아 훨씬 더 큰 냄비로 바꿔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키득거리는 가운데 명언이가 툴툴거리며 길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정진이가 어딘가로 뛰어가서는 무언가를 가슴 한가득 품고 오는데, 그건 바로 커다란 돌덩어리였습니다. 그 순간, 모두의 웃음보가 터지고 다들 명언이를 골탕 먹이는 게 즐거운듯한데, 그때 시냇가로 물을 기르러 갔던 친구 두 녀석이 저쪽에서 명언이가 오고 있음을 손짓으로 알려옵니다. 그러자 들킬세라 정진이가 번개같은 속도로 명언이의 배낭에다 돌덩어리를 집어넣은 후 지퍼를 닫고는 오른쪽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쉿" 하는 시늉을 합니다.ㅋㅋ

 

  모두들 공범이 된 가운데 명언이가 얻어 온 김치로 찬을 삼아 라면에 밥을 말아 먹는 것으로 마지막 식사를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야! 근데 가방이 와 이리 무겁노?"

  "아! 그거. 내가 아까 전에 밥하고 남은 쌀 좀 니 가방에 넣었다 아이가."

  "어! 그렇나. 그래도 좀 무거운 거 같은데..."

  "자식! 무겁긴 뭐가 무거워. 덩치는 산만해 가지고. 하기 싫음 나 주든가?"

  "아이다! 아이다! 말 한마디가 했다가 본전도 못 찾겠네. 헐!"

 

  마치 '톰과 제리'같은 이들 두 녀석의 케미에 모두의 웃음보가 터지고 동행하는 내내 민폐만 끼치던 명언이를 탐탁지 않아 하던 녀석들도 그의 이런 모습에 본성이 나쁜 놈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다소 마음을 누그러뜨리는데...

 

  그렇게 둘이 티격태격하며 걷기를 얼마나 했을까?

 마침 그때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리어카에다 짐을 잔뜩 싣고서는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어딘가 모르게 그 모습이 위태로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배낭이 무겁다며 그렇게나 구시렁거리던 명언이가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달려가더니 리어카의 뒤를 받쳐 오르막길이 끝나는 곳까지 밀어다 드리고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가던 걸음을 재촉해 진주에 도착,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하룻밤 사이에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지 몰골들이 말이 아닌지라 어디 목욕탕에라도 가서 좀 씻고 가겠느냐 물어봐도 아무도 그러겠다는 사람이 없어 이제 곧바로 집에 갈 사람들은 가고 마지막이 궁금했던 사람들은 명언이 집으로 향했는데, 가던 도중 대청마루에 앉아 연신 보도되는 태풍 관련 뉴스를 들으며 이제나저제나 우리들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시던 갑봉이네 가족들이 우리 몰골을 보시고는 큰 누나가 "옴마나! 야들 행색 좀 보소. 얼매나 고생을 했으모 꼴이 이렇노"라고 하시자, 곧바로 둘째 누나가 "아따메! 공비 잡으러 간다더니 도망 다니다 온 것 같은데. 패잔병이 따로 없네."라며 우리들을 놀리십니다. 그러자 우리들하고 제일 잘 통하는 막내 누나가 다들 힘들 테니 빨리 집에 가라며 눈짓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그칠 것 같지 않은 누나들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갑봉이네 집을 지나 이제 길모퉁이만 돌면 금방인 명언이네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오랜 병치레에 장사 없다고 그 많던 재산을 남편 병원비로 다 날려먹고 살기 위해 길모퉁이 한편에서 술 도매상을 하고 계시던 명언이네 어머니는 메모 한 줄 달랑 남겨 놓고 태풍 속으로 떠나버린 자식 놈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계셨는데, 마침내 우리들이 나타나자 차마 나무라지는 못하시고 "야이! 이 사람들아! 이제 이만큼 키워 놨으면 부모 마음도 헤아릴 줄 알아야지 이 비바람 속에 대체 어딜 갔다 온단 말인가? 하고 원망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는 제가 "아이고. 어머이! 그기 아이고예. 맹어니는 2대 독자라 안듣고 갈라 캤는데 예, 우찌 알았는지 아침부터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는 지 안 데리고 가모 친구도 아니라 캐서 할 수 없이 데불고 갔다 왔심더. 근데예 어머이! 야는 도대체 어떻게 컷길래 뭐 하나 할 줄 아는 게 없심껴? 집안의 장손이라고 손 하나 까딱 않고 큰 저보다도 더 하데예!" 하며 너스레를 떠니, 아들을 디스 하는 그 말에 화를 내실만도 한데 오히려 맞장구를 치시며 "그래.그러체. 그기 다 지 고모들이 그리 만든 거 아이가. 2대 독자라고 그저 받들어 모시기만 했으니 쯔쯔..." 하십니다.

 

  그러는 사이 이 녀석 여동생 둘이 오빠가 가지고 온 배낭을 풀어헤쳤는데, 그 속에서 커다란 돌덩어리가 튀어나오자 깜짝 놀라며 "아이고야! 이기 뭐꼬. 돌 아이가. 돌! 오빠! 또라이가? 도대체 이 무거운 건 왜 갖고 왔는데..." 하는 겁니다.

 

 그 소리에 모두가 폭소를 터뜨리고, 그제서야 자신이 속았음을 알아차린 명언이가 이미 문밖으로 도망치고 있는 정진이를 향해 "야! 이 자식아. 쌀이라메. 쌀! 잡히기만 해 봐라" 하며 그의 뒤를 쫓습니다. 그렇게 둘이 쫓고 쫓기느라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있던 친구들은 이제 그만 떠나고 집이 바로 옆인 친구들은 이 녀석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 둘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어깨동무까지 하고 나타나자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계시던 어머니가 미소 띤 얼굴로 정진이에게 "야이 이 사람아! 아무리 장난이라도 그렇지 친구 배낭에다가 돌덩어리를 넣으모 우짜노?" 하십니다. 그러자 정진이가 "아이고! 어무이. 그기 아이고 예. 맹언이가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 같이 갔던 친구들이 살짝 싫어하는 내색을 보여 이렇게라도 해서 그에 대한 미운 감정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그랬십니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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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 30화 : 훈련소에서의 첫날 밤 2022 / 4 / 25 157 0 4487   
31 제 29화 : 백수탈출,마침내 입대하다.그러나 2022 / 2 / 11 377 0 1961   
30 제 28-2화 : 태풍 오는 날, 지리산에 오르다 2020 / 11 / 10 355 0 10464   
29 제28-1화 : 태풍 오는 날, 지리산에 오르다 2020 / 10 / 31 351 0 4446   
28 제 27화 : 한산섬 수루에 앉아 느낀 소회 2020 / 9 / 30 340 0 1742   
27 제 26화 : 졸업식 날에 있었던 일 2020 / 9 / 29 338 0 2339   
26 제 25화 : 2000점 고수에게서 당구를 배우다 2020 / 9 / 29 331 0 4237   
25 제 24화 : 학력고사와 입학원서 2020 / 9 / 23 345 0 1656   
24 제23화 : 수영 시합 하다 죽을 뻔한 사연 2020 / 9 / 23 331 0 2285   
23 제 22화 : 괴짜친구가 낭만을 버리게 된 이유 2020 / 9 / 23 344 0 1353   
22 제 21화 : 시인 나태주와 제 고무부 박태주 2020 / 9 / 22 321 0 2507   
21 제 20화 :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던 친구 2020 / 9 / 22 337 0 4078   
20 제19화 :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었던 친구 2020 / 9 / 22 335 0 5163   
19 제18-2화 : 미모의 여학생의 등장과 추남(추파… 2020 / 9 / 20 346 0 2857   
18 제18-1화 : 미모의 여학생의 등장과 추남(추파 … 2020 / 9 / 20 341 0 3166   
17 제17화 : 자칭 '마산고 일진'과의 대결 2020 / 9 / 20 334 0 2154   
16 제 16화 : 유흥대장친구와 페스티벌 2020 / 9 / 20 333 0 2454   
15 제15화 : 19금 영화를 단체관람?하다 2020 / 9 / 20 338 0 1926   
14 제14-2화 : 촌놈들,난생 처음 서울 가다 2020 / 9 / 20 331 0 1775   
13 제14-1화 :촌놈들, 난생 처음 서울 가다 2020 / 9 / 18 341 0 2688   
12 제 13화 : 너의 장래희망은 무엇인가? 2020 / 9 / 18 339 0 1839   
11 제10화 : 친구녀석의 '죽지 못해 결혼'… 2020 / 9 / 18 331 0 3916   
10 제9화 : 나를 비추는 거울 2020 / 9 / 18 346 0 1830   
9 제8-2화 : 선생인가?, 깡패인가? 2020 / 9 / 18 337 0 1392   
8 제8-1화 : 선생인가?, 깡패인가? 2020 / 9 / 18 336 0 2386   
7 제7화 : 첫 소개팅의 아픈 기억 2020 / 9 / 18 355 0 2971   
6 제6화 : 내가 교회에 다니게 된 이유 2020 / 9 / 18 335 0 3147   
5 제5화 : '한산대첩축제' 때 있었던 일 2020 / 9 / 18 349 0 1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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