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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오리진
작가 : 시리홍
작품등록일 : 2019.9.23

세상의 상냥함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 안에 숨어있던 세상의 진실을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깨달아버린 주인공은,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에게 갑작스럽게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143화 오리진 (完)
작성일 : 20-11-01 21:44     조회 : 345     추천 : 0     분량 : 9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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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비어버린 방안에,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여전히 이곳에 사는 건, 자신 혼자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버릇처럼 그리 읊었다.

  힘없이 다니던, 과거와는 달리.

  시은이의 목소리엔 힘이 있었고, 어느 정도의 활기 또한 가득 담겨있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상쾌한 바람이 시은이를 맞아주었다.

  평소보다 훨씬 하늘이 높아 보였고, 화창한 햇살이 은근하게 기분을 들뜨게 만들어주었다.

 "시은아!"

  저 멀리서 자신을 향해 귀엽게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이.

 "안녕, 시야카."

  몸에 부드럽게 달라붙는 야상과 무릎 바로 위까지 내려오는 적당한 너비의 스커트, 그 아래로 길쭉하게 뻗은 새하얀 다리.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가 나올 것만 같은 모델 뺨치는 완벽한 비율을 가진 소녀가 자신을 향해 달려왔다.

  그리곤 가볍게 허그.

 "보고싶었어."

 "나도."

  시은이는 부드럽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가벼운 포옹이 끝나고, 그들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일찍 나왔네?"

 "고3 첫날이기도 하고, 시야카를 기다리게 할 순 없으니까."

 "헤헤. 난 좀 기다려도 괜찮은데."

 "내가 안괜찮아."

 "히!"

  주변이들이 보았다면, 닭살이 돋을 것만 같은 대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이 시간에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다들 바쁜 걸음을 재촉할 뿐. 다른 이들을 신경 쓸 여유는 없어보였다.

 "어때. 좀 적응 됐어?"

 "으음..솔직히 아직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은이랑 같이 다닐 수 있으니까 좋아!"

 "그래. 천천히 해. 내가 항상 도와줄 테니까."

 "헤헤. 그럼 조금만 더 늦게 해야지이~."

 "그래그래. 좋을대로 해."

  시은이는 귀엽게 미소짓는 시야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시야카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벌써 1년이 되어가는구나.'

  세계의 의지에 따라, 오리진과 베타가 합쳐진지 거의 1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은이의 바람대로, 지구의 태평양의 중앙 부근에 베타라는 대륙이 들어서면서 오리진과 베타의 세계는 완전히 합쳐졌다.

  당연하게도 베타에서 사용하던 기력이라는 것은 완전히 사라졌고, 자연스럽게 원래부터 태평양 중앙에 있었던 것처럼 역사가 조작되었다.

  시그리안이라는 나라로, 베타의 모든 마을과 도시는 하나로 합쳐졌고, 그들 나름대로의 고유어가 있었으나, 세계의 의지의 배려인지, 시은이의 출신인, 한국의 언어를 따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배려라.'

  배려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눈에 보이지 않게 자신의 몸에 돌고 있는 새하얀 기운.

  시은이가 이룩했던 하얀 기력의 다음 단계.

  이곳에 넘어오며, 세계의 의지가 얘기해주기를.

 [이미 내 수준에 이른 걸, 내가 어찌 할 수는 없없다. 뭐, 덕분에 나도 소멸하지 않고 살아있지 않은가.]

  그렇다. 지금 세계의 의지는, 시은이와 함께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처음엔 조금 어색했던 관계였으나, 점차 이곳의 삶에 익숙해져가고 있었고, 조만간 따로 분리하여 그의 의지를 담은 사람으로서 지낼 수 있는 수준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척이나 기대 된다네. 육신으로서 너와 함께 할 수 있지 않은가.]

  지금 또한, 열심히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었고, 시은이는 웃으며 답해주고 있었다.

  물론, 옆의 시야카는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지만.

  세계의 의지의 또 다른 배려.

 '나와 함께했던 이들의 기억을 유지시켜주다니.. 솔직히 좀 많이 편의를 봐준 거 같은데.'

  자신과 끝까지 함께 다녔던.

  시야카, 단보루, 젠, 시즌, 고리온 드, 과거의 김시은, 이튼, 진그.

  이들 모두, 자신과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세계의 의지에 따라 세상이 변한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여전히 그들과 교류를 하고 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이곳의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는 참이었다.

 '그렇다고, 전부 한국으로 올 필요는 없었는데.'

  자주 교류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전부 시그리안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상태였다.

  고리온 드는, 베타가 유지된 것은 좋았지만, 전처럼 기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듯 했지만.

 '어쩌겠어. 그래도 그리 나쁜 결과는 아니잖아.'

  실험대라는 이유로, 기억을 포함하여 여러 것들이 유린당하던 불완전한 베타의 세계가, 오리진과 합쳐지며, 원래의 세계로 흐르기 시작했으니.

  더 이상 그들은 그러한 것에 고통받지 않아도 될 터.

 '물론, 자연스럽게 이곳에 물들기 위해, 조금의 조작이 가해졌을 테지만.'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던 역사를 만들기 위해선, 지금 시그리안에서 살아가는 이들 또한, 그것에 대한 자연스런 기억과 이해가 있어야 했으니.

  그것말고는 그리 나쁜 결과는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다왔다!"

  1주년이 가까워가면서, 떠올랐던 생각들에 젖어들어가다보니, 벌써 교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용하네."

 "일찍 오긴했지."

  아무도 없는 교문을 지나, 빈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에 들어섰다.

  고3을 배려한 것인지, 1,2학년과는 떨어진 건물에 위치한, 오로지 3학년을 위한 건물.

 "..1반이었나?"

 "응, 맞아!"

  남녀공학인 고등학교이지만, 고3 때는 공부에만 집중하라고 처음엔 남녀를 갈라놓았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반발이 너무 심했기에, 오히려 학습능력이 저하되었고, 결국 다시 고3 또한 남녀를 섞은 반을 유지하기로 작년에 결정되었다.

 '이것도 배려야?'

 [다같이 있는 게 좋은 거 아니겠나?]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그래도 하나의 세계를 구한 자신이지 않은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10반이 넘어가는 반이지만, 세계의 의지의 배려로, 같은 반이 될 수 있었다.

  드르르륵.

  문을 여니, 역시 한 명도..

 "오, 좀 늦었네?"

 "뭐야뭐야! 왜 첫날부터 같이 오는 건데!"

  시은이와 시야카에게 반갑게 손을 흔드는 두 명의 여학생이, 이미 와있었다.

 "..정말 왔네. 시즌?"

 "뭐, 어때. 그 뭐야. 그 배려라고 했나. 그걸로 나도 열아홉살이 됐는 걸?"

  물론 베타에서도 시즌의 겉모습만 봐선, 그녀의 나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기는 했다.

  교복과 생체나이로도 감출 수 없는, 그녀만의 성숙하면서도 고혹적인 분위기.

  옆의 시야카가 있었고, 여전히 시즌을 마음속의 스승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을 뿐.

 "왜 나는 인사 안해줘요!"

  그 옆의, 살짝 루즈핏으로 멋들어지게 교복을 입은, 귀염상의 여학생.

  살짝 볼을 부풀리는 것이, 싫지않고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안녕, 젠. 이젠 존댓말 안해도 되잖아? 너도 열아홉살로 됐다며."

  젠 또한, 열아홉살일리 없었으나.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냥 받게.]

 '..그래.'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무척이나 배려심이 깊은 것만 같았다.

 "왜 쟤랑 같은 반이야?"

  시야카만이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즌은 괜찮았다.

  처음에 시은이가 남자였다는 부분에서 놀랐고, 그것 때문에 시야카와 젠 또한 긴장하고 있었지만.

  시즌은 처음부터 못을 박아두었다.

  사람으로서 좋은 거지, 사랑하고 그런 느낌은 아니라고.

  그래서 시야카와 젠은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어떻게 말해. 그냥 이런 관계만으로 지내야지..그래도 혹시..'

  알게 모르게 연심을 품고 있던 시즌이었다.

  이젠 나이도 같았으니, 가릴 것도 없지 않은가.

 "뭐! 나도 너랑 같은 반일줄은 몰랐거든!"

  젠 또한 시야카를 마음에 들지 않는 눈빛으로 째렸다.

  시야카는, 시은이가 젠에게 이성적으로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괜히 심술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좋은 거지?'

  으르렁대듯 시선을 교환하는 시야카와 젠.

  그 사이에서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는 시은이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점차 학생들이 들어차며, 어느새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번에 담임 선생님 누구야?"

 "몰라. 3학년은 첫 날에 알려주잖아. 여기 있는 애들 다 모를 걸?"

 "으으, 안좋은 선생님 걸리면 1년 내내 고생인데.."

 "에이, 여기 다 좋은 선생님들 밖에 없잖아."

 "안 그래! 성격 안좋은 선생님들이 얼마나 많은데!"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몇 년간 다닌 학교이기에, 서로 친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그럼에도 혼자 조용히 있는 학생이 있기도 했지만.

 "..이야. 대체 왜 쟤 주위엔 맨날 여자애들이 많냐?"

 "무슨 소리야? 여자애니까 여자애들 사이에 있지."

 "너야말로 무슨 소리야. 너 설마, 쟤 여잔줄 알고 있었어?"

 "아니야?"

 "야, 물론 여자애들도 바지 입고 다녀도 상관없으니까 헷갈릴수도 있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1년동안 몰랐다는 건 좀.."

 "..남자라고!?"

 "남자야. 저 얼굴로 왜 남잔지는 모르겠는데. 남자라고."

 "진짜?"

 "진짜."

 "..세상 참 불공평하네."

 "그렇지.."

  이렇게 성별이 헷갈릴 수 있을 법한 외모를 가진 학생도 있는 법이다.

  당연히 그 헷갈릴 법한 외모를 가진 건.

 '..이것도.'

 [배려다. 어차피 난 이쪽이 마음에 드니.]

  원래의 모습이 아닌, 숲의 여주인의 외모가 섞여들어간 외모.

  물론 몸도, 베타에서 활동했던 몸 그대로의 몸이었다.

 '그래. 뭐 어차피 예전의 모습에 딱히 미련이 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못생겼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었으니.

 [배려하는 김에 해줬네. 어차피 다들 이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그 말도 틀린 말이 아니기에.

  시은이는 잠자코 있었다.

  드르륵.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아무래도 1년간 함께할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려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드러난 이는.

 "..단보루?"

  검은 도복을 입고 다녔던 그는, 이제 깔끔한 양복을 입고 있었고, 머리는 시대에 맞게 짧은 스포츠 머리로 정갈하게 자른 상태였다.

 "어허. 누가 선생님의 이름을 그리 함부로 부르는가."

  여전히 심지 굳은 눈매는 그대로였고, 그의 손에 들려있는 머그컵엔 향긋한 커피가 담겨있었다.

  탁.

  호로록.

  교탁앞에 서서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단보루.

 "으음. 역시 이 맛이야."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탁탁탁.

  가볍게 칠판에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언제적 분필인지.

  옛것을 고수하는 그의 손짓에, 학생들은 묘하게 빠져들었다.

 "자. 내 이름은 단보루네. 앞으로 1년간 잘부탁하지."

  말투 또한, 사극적인 말투였고, 무척이나 시대착오적인 느낌을 풀풀 풍겼지만.

 "와! 단보루쌤!"

 "정말 단보루쌤이죠!"

 "아싸!"

  학생들은 그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래, 올해는 걱정말게. 내가 기필고 너희들 모두 원하는 곳에 전부 보내줄 테니."

  학생 하나하나 다 챙기며, 대학이면 대학, 취업이면 취업.

  학생들이 원하는 것들을 거의 무조건 적으로 이뤄주는 열성 넘치는, 인기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단, 언제나 말했듯. 스스로의 의지가 중요하네."

  부모님이나, 다른 분위기에 취해서 가고자 한다면, 절대 단보루는 그를 돕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스스로의 의지로 정한 길에 한해서 그는, 100%에 가까운 성공률을 보이는 사내였으니.

 "자, 진정들하게. 일대일 면담에 들어가기 전에, 오늘은 특별히 전학생이 두 명왔기에 먼저 소개부터 하도록 하지. 둘 다 들어오게."

  가볍게 문을 향해 손을 뻗는 단보루.

  그의 손에 이끌려, 두 명의 전학생이 천천히 걸어들어왔고.

  이번에도 시은이네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처억.

  교탁의 바로 옆에 멈춰 선, 두 인물.

  한 명은 덩치가 아주 거대했고, 한 명은 그에 비해 조금 말랐으나, 비율이 너무 완벽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둘 다 꽤나 큰 키에, 조금만 더 크면 천장에도 머리가 닿지 않을까 싶을 정도.

 "반 카르탄 이라고 하오."

 "..진시루다."

  베타에서 목숨을 잃었던, 두 명의 사내.

  반 카르탄과 실운이었다.

  여학생들의 갑자기 수줍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남학생들은 왠지 두 눈에 불길이 일정도로 타오르고 있었다.

  시은이네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저 멍한 시선으로 그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배려라네. 너와 연관된 이들을 찾다보니, 이 둘도 아주 진하게 연결되어 있더군. 이 정도의 의지를 비트는 건 아주 쉬운일이지. 게다가 죽은지도 얼마 안되서, 인과율에 얽매일 일도 없었네.]

  뭐가 대체 쉽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것 또한 배려란다.

  어쨌든 카르탄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에는 참으로 기뻤다.

  그 마음은 카르탄도 마찬가지인지, 학생들 틈에서 유난히 빛이 나는 시은이를 바라보곤 싱긋 미소지어주었다.

 '..잠깐. 근데 저 실운..아니, 진시루는 어떻게 해? 여기서도 죽인다고 난리치면 어떡해?'

 [그건 걱정말게. 그 뭐야. 너와 상당히 똑같이 생긴..그래 그 김시은이가 잘 타일러뒀으니.]

 '타일렀다고?'

 [타일렀네, 잘 알아듣도록.]

  무슨 소리인가 싶었으나.

  진시루와 시선이 딱 마주친 순간 알 수 있었다.

  여러 감정이 뒤섞인 묘한 시선이었으나, 절대 누군가를 해할 눈빛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척이나 이곳에 잘 적응한듯한 느낌.

 "자, 일단 아무데나 앉게. 이후에 다시 자리를 배치할 테니."

  단보루는 딱히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다 놀란 이후여서 그런 것인지.

  평범하게 그들을 대우했다.

 "어쨌든 1년 동안 잘 부탁하네."

 

 

 "지금 바로 갈 거야?"

 "시간이 좀 이르기는 한데, 오랜만에 시은씨 얼굴도 보고 싶고, 커피도 마시고 싶어서."

 "치. 어제도 갔잖아."

 "하하, 그렇긴 하지."

  학교를 마치고, 시은이와 시야카는 천천히 산책하듯 걷고 있었다.

 "시즌하고 젠도, 준비하고 바로 온다고 했으니.. 너도 옷 갈아입고 올래?"

 "아냐. 난 그냥 시은이랑 같이 있을래."

 "그래 그럼."

  자신의 팔에 꼭 달라붙어 있는 시야카를 데리고, 시은이는 숲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언제나 아늑한 분위기를 풍기는, 숲의 외관.

  천천히 온다고 했었는데, 어쩌다보니 이번에도 꽤나 이른 시간에 오게 되었다.

 "들어가서 먼저 마시고 있을까?"

 "그래!"

  시야카는 이렇게 단 둘이 있을 시간이 얼마 없을 거라는 생각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등교부터 하교까지 하루종일 붙어있던 그녀였지만.

  그녀에게 그거는 당연한거고, 이 뒤에 시간은 별개였던 것이다.

 "어서오세요. 시은씨. 시야카."

 "오랜만이에요, 시은씨.'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곤, 풋하고 웃음지었다.

 "안녕하세요!"

  제일 걱정없는 여성 중 하나.

  그 이유는.

 "오, 시은이 왔나."

  그 옆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던 이튼이 반가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둘이 좋아하는 사이였을 줄은..'

  미묘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인줄은 몰랐다.

  이곳으로 넘어오자마자, 그 둘은 같아진 나이대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고백했고, 여지껏 잘 지내고 있는 중이다.

  이튼은 여주인에게 커피를 배우며, 같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고, 이제 이들도 1년이 되어간다.

 "저희 둘 다 핸드드립으로 한 잔씩 해주세요."

 "그래그래. 이번엔 내가 내려주지!"

  자신만만한 이튼의 모습에, 시은이는 피식 웃음지었다.

 "그래요."

  언제나 가던 자리로 시야카와 움직이려는 찰나, 여주인이 시은이에게 물었다.

 "모임은 7시인데, 좀 일찍 오셨네요?"

 "예, 뭐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그런 뜻이 아니라는듯 손을 휘젓는 여주인.

  그녀는 손가락을 펴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아뇨. 저기 봐봐요."

  자연스레 이동한 시은이와 시야카의 시선엔.

 "늦었다고. 날 얼마나 기다리게 할 셈이야?"

 "허허, 뭐 어떤가. 그럴 수도 있지. 자자, 이 현상에 대해 이어서 의견이나 나눠보세."

  고리온 드와 어느새 그의 절친이 된 진그가 보였다.

  둘 다 당연히 배려로 기억을 유지한 채 이곳으로 왔고.

  둘 다 1년만에 박사 학위를 따서는, 지금은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참이었다.

 "아니..일찍왔잖아."

  시은이가 어이 없다는 듯이 이야기했으나, 고리온 드는 코웃음을 쳤다.

  그리곤 턱짓으로 그의 오른쪽을 가리켰다.

 "오랜만이야. 시은."

 "오랜만이네. 시은."

 "오랜만이에요. 선택받은 소녀..아니..시은님..아니..시은씨!"

  의인화한 황금새와 페르도, 그리고 치교.

 '이것도 배려지.'

 [암. 그렇지. 오늘따라 자주 물어보는 구만.]

  황금새는 애초에 신이기에, 기억을 유지한 채 넘어올 수 있었으나.

  그 스스로가 의인화하기를 갈망했기에, 세계의 의지가 배려로 그를 의인화시켜주었다.

  페르도와 치교는 당연히 황금새를 따랐고, 그 덤으로 기억을 유지한 배려를 받을 수 있었다.

 "늦어늦어."

 "아아! 또 같이 있다!"

  그 옆의 시즌과 젠.

 "왔는가 시은. 학교말고 다른 곳에서 보니, 감회가 참 새롭구만."

 "..오랜만이오."

 "쳇..내가 왜 여길.."

  그들의 옆에는 또 단보루와 카르탄, 그리고 왠지 불만이 참 많아보이는 진시루.

 "아니..다들 약속시간까지 1시간이나 남았는데, 왜이리 빨리왔냐구.."

  이렇게 되니, 정말로 자신이 제일 늦은 것 같지 않은가.

 "봐, 늦었지?"

  쌤통이라는 표정을 짓는 고리온 드.

  그제야 시은이가 눈치챘다.

 "..너 또 우리한테만 시간 늦게 알려줬지."

  뜨끔.

  몸을 크게 움찔하는 고리온 드.

  은근하게 시선을 피하며, 진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도 열띤 열변을 토하던 진그가 은근슬쩍 시선을 피했다.

 "에휴..됐다. 됐어. 다 모였으면 됐지 뭐."

  이렇게 좋은 날에 화낼 필요는 없었다.

 "자자, 커피도 다됐으니까요. 다들 모여보죠."

  어느새 핸드드립을 다 내린 여주인과 이튼 또한 이쪽으로 넘어왔다.

  오늘 하루만큼은 전세를 낸, 숲의 카페.

  그곳에, 베타에서 인연을 맺었던 모든 이들이 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정말 감회가 새롭네.'

  단보루의 말대로, 감회가 새롭다.

  강제로 맺어진 인연따위는 없는, 순수한 인연.

  물론, 시작은 여주인의 계획에 의해서 일어나게되었지만.

  그들 각자와 인연을 쌓은 건, 오로지 시은이가 스스로 해낸 것.

  오리진에서 겪었던, 세상을 증오할 정도의 슬펐던 기억은.

  이제 언제 그랬냐는듯 까마득하게 잊혀진지 오래였다.

  자신보다 먼저 이승을 떠나, 저승 길에 올랐던 가족들 또한, 이제야 한을 풀었을 것이다.

  홀로 남겨져 온갖 부정적인 생각으로, 슬픔에 젖어들어갔던, 오리진에서의 삶.

  이들을 통해 치유받고, 진정한 삶의 모습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불완전한 것이 완전한 것이다.'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기쁜 일, 슬픈 일, 가지각색의 일들이 넘쳐날 테지만.

  시은이는 이제,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자신이 생겼다.

  삶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항상 좋은 일만 생길 수는 없는 법이니까.

  불완전하기에, 완전한 삶을 꿈꾸며, 매일매일을 지겹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거니까.

 [어떤가, 내 배려가.]

  왠지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있는 것만 같은 세계의 의지.

 "너무 좋다. 이렇게 다들 모이니까."

  시은이는 여기있는 모두의 혼을 빼놓을 정도의,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작가의 말
 

 제가 준비한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정리되는대로, 후기까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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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138화 천 년의 대회 (20) 2020 / 10 / 17 320 0 5543   
137 137화 천 년의 대회 (19) 2020 / 10 / 16 305 0 5356   
136 136화 천 년의 대회 (18) 2020 / 10 / 11 327 0 4705   
135 135화 천 년의 대회 (17) 2020 / 10 / 11 323 0 5576   
134 134화 천 년의 대회 (16) 2020 / 10 / 9 297 0 5275   
133 133화 천 년의 대회 (15) 2020 / 10 / 4 344 0 6236   
132 132화 천 년의 대회 (14) 2020 / 10 / 4 316 0 5205   
131 131화 천 년의 대회 (13) 2020 / 10 / 3 341 0 4925   
130 130화 천 년의 대회 (12) 2020 / 9 / 28 325 0 6501   
129 129화 천 년의 대회 (11) 2020 / 9 / 26 311 0 5255   
128 128화 천 년의 대회 (10) 2020 / 9 / 25 321 0 4731   
127 127화 천 년의 대회 (9) 2020 / 9 / 20 323 0 6194   
126 126화 천 년의 대회 (8) 2020 / 9 / 19 309 0 4745   
125 125화 천 년의 대회 (7) 2020 / 9 / 18 328 0 5394   
124 124화 천 년의 대회 (6) 2020 / 9 / 13 337 0 5184   
123 123화 천 년의 대회 (5) 2020 / 9 / 12 311 0 4430   
122 122화 천 년의 대회 (4) 2020 / 9 / 12 313 0 5148   
121 121화 천 년의 대회 (3) 2020 / 9 / 6 327 0 5003   
120 120화 천 년의 대회 (2) 2020 / 9 / 6 300 0 4750   
119 119화 천 년의 대회 (1) 2020 / 9 / 6 317 0 6386   
118 118화 왕과 함께 (3) 2020 / 8 / 30 321 0 4127   
117 117화 왕과 함께 (2) 2020 / 8 / 30 322 0 4839   
116 116화 왕과 함께 (1) 2020 / 8 / 29 314 0 4686   
115 115화 참가자들 (11) 2020 / 8 / 23 310 0 6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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