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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어떤, 세상의 끝에서
작가 : 어쩡
작품등록일 : 2020.9.23

점점 커져가는 세계의 부패.
그것이 빛을 집어삼키기 위해 올라오고 있었다.
한 세상에서부터 부패를 피해 다른 세계로, 또 다른 세계로.
그렇게 살고 싶어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세계의 끝자락을 찾았고…
그것이 이 땅이었다.

 
부패(2)
작성일 : 20-10-01 19:28     조회 : 215     추천 : 0     분량 : 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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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핸드폰에서 삐익삐익 시끄러운 기계음이 들렸다.

 [호 출]

 두 글자의 메시지가 혜원의 핸드폰 화면에 출력됐다.

 학교 전체에서 우르르 하며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무더기의 학생들이 학교를 벗어나 체육관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뭐야? 어디로 가야돼?”

 혜원이 엘에게 말했다.

 “너도 호출이야?”

 엘이 혜원의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며 말했다.

 “빨리 와, 네가 제일 먼저 움직여야 하는거 몰라?”

 어느 새 교실의 문앞에 새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나타난 보영이 말했다.

 “아니아니, 먼저 이걸 좀 봐봐.”

 엘이 핸드폰을 든 혜원의 손을 잡아 보영이 있는 쪽으로 쭉 내밀었다.

 “…이런 빈민가 얼뜨기를 데리고 뭘 하라고…!”

 보영이 한숨 섞인 외침을 뱉었다.

 *

 

 

 

 덜컹.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울렸다.

 염소같은 뿔이 돋은 새까만 인간이 노을이 비추는 방향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저건 어디서 튀어나온거야?”

 벽 뒤에 몸을 숨긴 진압대 하나가 검은 물체를 보고 말했다.

 그르륵거리는 숨소리가 공기를 채웠다.

 -베타 팀, 4구 도착했다.

 -현위치에서 대기하라.

 -오메가 팀, 현재 출격 준비중.

 “더 빨리는 안되나…”

 진압대의 남자가 헬멧의 바이저를 열고는 가래침을 퉤 뱉었다.

 끼이이익.

 멀리에서 쥐가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베타, 3번과 5번 수로로 적 개체들이 접근하고있다.

 퍼엉!

 끼야아아악!

 맨홀 뚜껑의 아래에서 폭발소리와 이상한 짐승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수십개의 다리가 물을 밟고 뛰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43번 지뢰 발파.

 -베타, 개체 수를 가늠해 볼 수 있나?

 -정확히 알 수 없다. 적어도 10마리가 넘는 것 같다.

 “여기에 있어봐야 별 방법이 없겠구만.”

 “알파 팀, 베타팀으로 합류하겠다.”

 흰 옷의 진압대들이 천천히 검은 존재에게서 물러나 뒤편의 맨홀 뚜껑으로 향했다.

 -교전까지 5, 4, 3, 2!

 타다다당!

 아아아아아악!

 무전의 노이즈 속에서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섞였다.

 “베타 팀, 현재 상황이 어떤가?”

 -후퇴, 후퇴!

 -베타 팀, 후퇴하겠다!

 “알겠다. 알파 팀, 랑데뷰 포인트까지 2분.”

 “잠깐!”

 4차선 도로 한가운데 검은 존재들이 우르르 모여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건 무슨…”

 

 [오메가 팀은 우리 인류의 최후의 발악이자 최고의 무기입니다.]

 빈 거리에 거대한 스크린에 나타난 영상 속의 지윤의 목소리가 울렸다.

 하수구 뚜껑을 열고 올라온 검은 존재들이 가만히 해를 쳐다보고 있었다.

 [구멍에서 올라오는 존재들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면서 다른 인류와의 화합을 기원하는 장치도 되지요]

 영상 속에서 귀가 뾰족한 인간, 뿔이 달린 인간, 땅딸막한 인간과 둥글게 손을 잡은 모습이 나타났다.

 [뿔이 달린 사람들도, 귀 긴 사람들도, 키가 작은 사람들도 결국 우리와 함께 해야 할 존재입니다.]

 뿔 달린 인간의 모습에서 뿔이 지워졌다.

 귀 긴 사람의 귀가 사라지고 보통의 귀가 나타났다.

 땅딸막한 사람의 키가 커지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의 치료와 함께라면, 모두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이니까요.]

 

 탕탕거리며 마구잡이로 쏘아대는 총소리가 들렸다.

 -오메가 팀, 도착까지 5분.

 -여기는 알파 팀, 랑데뷰 포인트 도착에 차질이 생겼다. 도착까지 10분.

 -적 개체가 너무 많다! 폭뢰를…

 콰아아앙!

 무전기가 삐이이익 소리를 질렀다.

 붉은 빛의 폭발이 보였다.

 “22번, 응답하라.”

 무전의 노이즈가 울렸다.

 불꽃이 어둠 속을 천천히 밝혔다.

 동굴과 같은 세 개의 수로가 합쳐지는 가운데 흰 전투복의 베타팀이 서 있었다.

 “22번, 응답하라.”

 여섯 명의 사람들이 모두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여기는 베타, 지금부터 움직이는 모든 것을 적으로 간주한다. 전투가 가능한 인원은…”

 찰박거리며 사람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흰 전투복이 군데군데 찢어진 채 달려오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살려줘…살려줘!”

 달려오는 남자가 소리쳤다.

 “그 자리에 멈춰!”

 방독면의 남자 하나가 소리쳤다.

 “12, 다리를 쏴라.”

 “확인. 다리를 쏘겠습니다.”

 타당!

 찰박거리며 뛰어오던 남자가 쓰러졌다.

 “아으흐윽, 아아아아…”

 뛰던 남자는 이제 기어오기를 시작했다.

 “안전 확인까지 30초.”

 “움직이지마라, 제발.”

 방독면을 쓴 남자들이 말했다.

 기어오던 남자는 얼마 오지 못하고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자세를 취했다.

 “20초"

 “이렇게 죽이는구나. 알고 있긴 했는데 좀 무섭네.”

 주저앉은 남자가 소리치듯 방독면의 남자들에게 말했다.

 “10초"

 “어머니가 모르시게 해주라.”

 주저앉은 남자가 말했다.

 “5, 4, 3…”

 “어머니가 아시면…”

 뿌드드득.

 주저앉아 있던 남자의 팔이 무언가 이빨 같은 물건에 감싸였다.

 “이 시발…”

 단말마가 들릴새도 없이, 수십 마리의 새카만 형체들이 남자의 모든 부분을 하나씩 집어삼켰다.

 질겅거리며, 이따금 무언가 으스러지는 소리를 내며 남자는 이빨 같은 것 안으로 천천히 빨려들어갔다.

 “오메가 팀, 랑데뷰 포인트에 도착했습니다.”

 앞에 선 방독면의 남자들의 어깨 조금 안되는 키의, 흰 전투복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전부 구워버릴 수 있나?”

 키가 큰 사람들 중 한명이 말했다.

 방독면을 쓴, 유난히 통통한 흰 옷의 아이가 앞으로 걸어나오며 장갑을 벗었다.

 공기가 일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검은 형체들이 끼이익 거리며, 쉬이익 거리며 뒤로 조금씩 물러섰다.

 방독면을 쓴 작은 사람이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앞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이 일렁이며 흔들렸다.

 깡마른 소년의 몸이 나타났다.

 쓰고 있던 방독면을 천천히 벗어 던졌다.

 끼아아아아아악!!

 검은 형체들이 마구 달려오기 시작했다.

 팍.

 깡마른 소년의 몸에서 불꽃이 튀는 모습이 보였다.

 이내 포아아악 소리를 내며 파란 불꽃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검은 형체들이 불꽃에 닿을 때 마다 껍데기가 벗겨지듯 타올랐다.

 -잘 봐.

 오메가 팀의 제일 뒤에 선, 흰 옷을 입은 혜원의 귀로 지윤의 무전음이 들려왔다.

 -이게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하는 일이야.

 벽의 곳곳에 붉은 그을림을 남기고 깡마른 소년은 다시 제 옷을 찾아 입었다.

 검은 형체의 시체들이 곳곳에 눌어붙어 찌든 기름때 같았다.

 마지막으로 방독면을 확실히 쓴 소년은 다시 조금 통통한 몸집으로 돌아왔다.

 -부상자 보고하라.

 -알파 팀, 전원 무사.

 “오메가 팀, 전원 무사합니다.”

 보영의 목소리가 무전으로 들렸다.

 -27번을 찾을 수 있겠나?

 베타팀의 무전이 들렸다.

 보영은 방독면을 벗었다.

 “27번……”

 보영이 귀를 양손으로 덮고 말하기 시작했다.

 보영의 양 눈이 검게 물들었다.

 “사망. 회수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거리는 어느정도인가?”

 “3시 방향으로 20m정도에 상반신, 나머지는…”

 보영의 말이 멈추었다.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이미 먹힌 것 같네요.”

 보영의 눈에서 검은 색깔이 천천히 빠져나갔다.

 -잘 했다. 베타 팀, 오메가팀을 도와 회수 가능자들을 데려오도록. 이후 알파팀에게 합류하라.

 지윤의 무전이 들렸다.

 혜원은 숨이 쉬기 힘들었다.

 이게 다 뭐지?

 괴물들과 싸우는 괴물들?

 나는 여기에 왜 있는거지?

 “저기 잠깐…”

 혜원이 자리에 쓰러졌다.

 “뭐야, 왜 그래!”

 방독면에 흰 옷의 환희가 혜원을 부축했다.

 “다리에 힘이 안들어가…”

 혜원이 말했다.

 *

 

 

 

 “저쪽 일이 끝난 모양인데…”

 알파팀의 남자가 말했다.

 검은 개체들은 진압대를 아직 눈치채지 못한 채 멍하니 지고 있는 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하나씩 제거하는 건 어떨까?”

 “아니, 오메가팀이 훨씬 효율적이야.”

 검은 개체들과 사이에 벽 하나만을 둔 진압대의 남자들 사이로 말소리가 오갔다.

 “아까 위치에 있던 거대한 개체는 다시 우리 몫이 되겠구만…”

 “빛을 쏴 주면 좋아서 멍해지는 놈들이니 다행이지, 아니면 여기도 금방 끝났어.”

 -오메가 팀, 랑데뷰 포인트까지 5, 4, 3, 2…

 무전으로 보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꽃놀이다!”

 진압대의 남자가 소리쳤다.

 파아아앙하는 소리를 내며 검은 존재들의 가운데서 불꽃 기둥이 일었다.

 검은 개체들이 뒤로 돌아 불꽃을 바라보고 섰다.

 끼이이익 신음하며 불꽃에 타들어가는 개체들을 무시하고 멍하니 그 불꽃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발포!”

 진압대의 남자의 목소리에 진압대 전체가 벽에서 숨기던 몸을 꺼내 총구를 검은 개체들에게로 향했다.

 불꽃놀이처럼 파바방 터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렸다.

 *

 

 

 

 “한심하긴…”

 유리창 밖으로 들리는 소리에 머리를 한껏 뒤로 넘긴 남자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여기까지 들어올줄이야.”

 01이라 새겨진 자리에 앉은,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흘러트린 남자가 말했다.

 “들어온게 아니라 들여보낸거지. 여기가 어떤 곳인데!”

 머리를 뒤로 넘긴 남자가 말했다.

 “나중에 따질 일이야. 지금은 앞으로의 대책이 중요해.”

 붉은 머리칼의 여자가 말했다.

 “…부패한 자들이 너무 많이 올라오고 있어.”

 휠체어에 앉은 깡마른 남자가 말했다.

 “여기가 마지막이니까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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