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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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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27 16:49     조회 : 506     추천 : 2     분량 : 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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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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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누워서 자서 뇌도 온몸의 근육들도 깊은 잠에 빠졌다. 누군가 가까이서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얼핏 느꼈고, 목욕 후에 찜질방에서 흘린 땀 덕에 다시 쉰내를 풍기고 있었던 내 사타구니와 젖가슴에 나보다도 더 고약한 냄새가 나는 다른 사람의 손이 끈적하니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잠이 너무 달아 깨어나기가 싫은데도 ‘더럽다’는 세 글자가 머리를 휩쓸며 정신을 먼저 깨웠다. 가만히 누워있는데도 숨이 차고 심장이 떨렸다. 가위에 눌린 듯 내 몸이 일어나기를 거부해서 하마터면 그렇게 아침까지 잘 뻔했다. “너 뭐하냐?”하는 소리와 “철썩!”하는 소리를 못 들었으면. 내가 눈을 떴을 때 그는 배가 불뚝 나온 한 아저씨의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주위에 자고 있던 사람들도 다 깨어있었다.

 

 배불뚝이가 그를 밀쳐냈지만 아까운 자기 머리만 뽑혔고 그는 다시 배불뚝이의 목을 쥐어틀었다. 배불뚝이의 눈알이 시뻘게지고 침이 질질 흐를 때까지 그는 양손의 악력을 늦추지 않았다. “아니, 이 새끼가 미쳤나.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는 거야?” 당연히 모르죠. 나도 그도 아저씨 모르는데 아저씬 날 어떻게 알고 그렇게 가까이 와서 만져댔대요? 경찰서에 가자는 그에게 배불뚝이가 반색을 했다. 지가 누군데 자기한테 함부로 구냐며, 경찰서에 가서 자기가 누군지 알면 깜짝 놀랄 거란다. 저기요, 네까짓 게 누구든 방금 내 더러운 속옷 부분 만진 사람이란 건 달라질 게 없는데요.

 

 난 솔직히 배불뚝이가 국회의원이나 경찰청장 정도는 될 줄 알았다. 제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본새가 꼭 그럴 것 같았고, 나란 사람은 그 정도로 재수가 없을 수 있을 것 같아 불안했다. 경찰서에서 밝혀진 배불뚝이의 정체는 지방에 있는 한 이름도 못 들어본 대학의 미술과 교수였다. 자기 작품이 한 점에 천만 원도 넘게 팔린다는 제 자랑과 자기 동창 중에 검찰도 있고 법관도 있다는 남 자랑도 아끼지 않았다. 경찰이 주는 커피를 마시고 술이 조금 깬 듯한 배불뚝이는 경찰들이 자기가 누군지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게 보이자 쉬이 태도를 바꿔 머리를 굽신대며 마누라한테 제발 알리지 말아 달라고 빌었다. 그가 그 말에 분노하며 배불뚝이의 머리를 쳤다. 경찰이 말릴 새도 없이 재빠르고 간결하게.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잠시 감아두고 있던 눈을 떴다. 귀도 이렇게 감아두고 있을 수 있으면 참 편할 텐데. 그보다도 뇌 일부분을 영원히 재워두는 약 같은 걸 개발해야 해.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왜 눈을 떴는지 잠깐 까먹었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자기가 큰 잘못이라도 한 듯 힘들겠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사자의 진술이 필요하다고 애원했다. 입술을 구겨가며 최대한 자상한 표정을 짓는 경찰에게 잠시동안 집중해 주기로 했다. “몇 학년이야?” “고2이요.” 그가 내가 안양고생이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경찰의 머릿속에서 ‘에구구,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 안 됐네.’ 하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저 아저씨가 어떻게 했어?” “자고 있는데······, 만졌어요.” 가슴이랑 음, 뭐라고 해야 하지? 생식기? 성기? 거기? 거시기? 잠지? 보지? 세 살배기가 되어 대충 손가락질을 했다. “여기랑. 여기랑.” 경찰의 눈이 내 손가락을 타고 내 가슴과 다리 사이를 확인했다. 자판을 치는 경찰이 뭐라고 쓰는지 궁금했다. 여기랑 여기라고 쓰지는 않았을 텐데. 유방과 음부라고 썼으려나? 나도 그렇게 말했어야 했나?

 

 경찰서를 나서자 그가 겨우 씩씩거림을 멈췄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어차피 교복도 책가방 안에 있겠다, 학교로 곧장 가겠다는 나에게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가 정류장에 도착하자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 주겠다고 했다. 어쭙잖은 말을 건네지 않고 말을 아껴주는 그에게 고맙다고 느끼기가 무섭게 그가 “이······.”한다. 한참을 들인 뜸에 내 뇌가 익어갔다. “이런 일, 마음에 담아 두고 그러진 마. 그······,” “그냥 재수 없었다고 생각하라고?” 그가 ‘그건 아닌데.’하는 표정으로 입을 반만 열고 눈을 끔쩍댔다. “뭣 같은 상황에 사니까 뭣 같은 일만 일어나는 거 같아.” 나 혼자 지껄인 신세 한탄이었는데 날 뭣 같은 상황에 밀어 넣은 그가 자신이 불러온 뭣 같은 일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입술을 깨물어 뜯었다. 그를 달랠까 하다가 멀리서 오는 버스를 보고 일어섰다. 뒤도 안 돌아보고 버스에 오르면서, 그한테 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자괴했다. 텅 빈 교실에 오롯이 혼자가 될 때까지, 난 울지 않았다.

 

 야자가 끝나고 나오는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가 날 제법 좋은 모텔로 이끌었다. 가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양념 통닭도 샀다. 그로써 그의 노가다 일당은 고스란히 다 날아갔다. “부녀지간 맞죠? 부녀지간인 척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모텔주인의 심문 조 억양이 화를 돋웠다. “그걸 말이라고 해요?” 터무니없이 찢겨 나온 내 목소리가 어색한 연기라도 하는 오해를 살까 봐 두려웠다. 이맛살을 있는 대로 찌푸린 그는 내 손을 낚아채며 돌아섰다. 장사 할 줄 아는 모텔 주인은 작은 창문 사이로 고개를 쑥 빼선 “두 분이 똑같이 생기셨네. 내가 미안해요. 여기서 잘 안 보여서 그랬지.” 하며 접대용 웃음을 실실 날렸다.

 

 닭부터 먹으라는 그의 말을 뒤로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옷을 벗고 꼼꼼히 몸을 씻었다. 물기를 닦는데 몸에서 아직도 더러운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다시 샤워기를 틀었다. 모텔에 비치된 바디클렌저를 쭉쭉 짜서 몸에 처바른 뒤 박박 문질렀다. 때가 다 밀리고 살이 밀릴 때까지 때 수건을 쥔 손에 힘을 빡 주다가 다시 가슴과 사타구니 냄새를 맡아봤다. 여전히 술 냄새와 쉰 냄새가 섞인 구린내가 들이쳤다. 욕조에 물을 받고 바디클렌저를 풀어댔다. 거품이 퐁퐁 돋는 그 안에 몸을 누여도 계속 악취가 나 메스꺼웠다. 각종 허브 향이 나는 샴푸 겸 린스 통을 열어 코에 가져다 대도 내 몸의 역겨운 냄새를 이기지 못했다. 괜찮으냐며 문을 두드리는 그를 무시하며 잠이 들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경찰에 신고하면 다 끝나는 줄 알았는데, 경찰은 이리 와라, 저리 와라, 할 일을 시켜댔고, 배불뚝이는 자꾸 그에게 전화를 해서 합의를 해 달라고 애걸하다가 무고죄로 맞고소한다고 협박하다가를 반복하며 빈약한 협상 능력을 과시했다. 그는 완고하게 합의는 절대 안 된다고 했고 난 관심을 끊었다. 관심이 없는 척하기가 쉬웠다. 한국은 폴란드를 상대로 첫 월드컵 본선 승리를 했고 피시방에서도 학교에서도 축구 이야기만 했다. 길거리에서 삼천 원 주면 살 수 있는 빨간 옷만 입고 있으면 누구나 친구였고 세계 평화보다 월드컵 16강 진출을 더 간절하게 바랐다. 그렇게 붉은 기운에 파묻혀 있다가 잠을 자면 온몸에 뱀보다 큰 시뻘건 민달팽이가 기어 다니는 꿈을 꿨고 일어나면 달팽이 진액 같은 땀에 젖어있었다.

 

 태극전사들이 포르투갈을 무찌르며 사상 최초로 16강 진출을 이루어낸 날, 그와 나는 16강 진출 이벤트를 벌인 한 고깃집에서 일인분에 천원인 삼겹살인지 비곗덩어린지 모를 허연 것들을 익는 족족 입에 넣고 있었다. 돈 아깝다면서 술을 참는 그에게 내가 소주 한 병을 시켜줬고 그는 기분이 좋아져 자기 휴대폰이 울리는지도 모른 채 옆 테이블 사람들과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김대물씨 핸드폰입니다.” 하는데 그 개새끼였다. 기분이 확 잡쳐 끊으려고 하는데 배불뚝이가 “미련하게 왜 그래, 학생. 합의해주면 서로 좋잖아.” 했다. “아저씨 왜 나한테 반말이야?” “야, 아무리 어른이 실수를 했더라도 어른-” “얼마나 줄 수 있는데?” 배불뚝이가 당황했는지 잠시 헛기침을 했다. “변호사하고 검사 말이 보통 오백에서 천이면 많이 주는 거라고.” 에라이, 이 좆같은 놈아. 추행을 당한 건 난데 왜 변호사하고 검사가 내 찌찌하고 짬지 만지는 값을 매겨. 기가 차서 실소가 나왔다. “야 이년아, 너 이 기회에 한 몫 잡으려고 그러나 본데-”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대신 그 몰래 소주 한 잔을 집어삼켰다. 목구멍부터 위까지 가는 길 구석구석이 화하고 달아올랐다. 숨쉬기는 조금도 쉬워지지 않았다.

 

 온 국민이 본업을 잊고 16강전만 기다리던 날, 나도 본업을 잊고 피시방에서 미성년자 성추행을 검색해 보았다. 나만큼 구질구질한 사연들이 즐비했다. 세상의 모든 어른이 다 더러워 보였다. 그들의 추함이 랜선을 통해 컴퓨터를 통해 전염될까 봐 키보드와 마우스 만지던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사회보단 과학이 쉬워 이과를 택한 내 머리로는 법조문을 읽어도 뭔 말인지 정확히 이해가 안 됐지만 확실해 보이는 건 처벌은 경미할 거란 거였다. 나보다 더 심한 추행을 당하고도 제대로 된 처벌을 못 해 부들부들 떠는 사람이 인터넷에 득시글했다. 초범이고 돈 있으면 최소 처벌인 벌금 1000만 원에 풀리는 경우가 많아 보였고 실형을 받는다 해도 집행유예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니라 유전 무처벌 무전 유처벌이 정확한 표현이라는 걸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

 

 어차피 배불뚝이는 어른들이 어른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법 아래에서는 크게 처벌받지 못할 거다. 그러니 그냥 돈을 받을까? 그럼 나를, 내 몸을, 내 가치를 파는 거 아닌가? 난 좀 값싼 사람이 돼 버리는 게 아닌가? 몸은 파는 게 아니라고 들었다. 술집 여자에게 들은 이야기였지만 맞는 얘기라고 새겨들었었다. 엄마도 같은 말을 했을 거다. 근데 판다고 하기는 좀 이상한 게 무언가를 판다는 건 상식적으로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값을 받고 넘기는 것이다. 배불뚝이는 이미 내가 가진 것을 가져갔기 때문에 난 파는 입장이 못 된다. 난 팔 생각도 없었고, 거저 줄 생각은 더더욱 없었고, 내가 가지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했는데, 배불뚝이 그분께서 술에 취하셔서 당당히 가지고 가셨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몸을 파는 건 아니다. 절대로.

 

 그래도 ‘돈 천만 원 주시면 됩니다.’ 하기가 꺼려지는 건 그렇게 말함으로써 ‘내 유방과 음부를 만지는 값은 천만 원입니다.’ 하고 선언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난 그렇게 값싼 사람이 아닌데. 배불뚝이가 가지고 간 건 천만 원으로 때워지는 천만 원어치의 물건이 아닌데 말이다. 더군다나 배불뚝이가 가져간 건 물건이 아니었다. 나의 권리나, 내가 제공한 서비스도 아니었다. 내 몸은 닳지 않았고,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하지 않았다. 난 억울해졌고, 우울해졌고, 슬퍼졌을 뿐이다. 굳이 무언가를 가져갔다면, 배불뚝이는 내 정신을 가져갔다. 내 정신을 쑥 빼서 내 몸이 영혼과 맞닿아 있는 그 어떤 부분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손시키고, 그 파편들을 살아있지 못한 것들이 있는 세계로 떨구어놓았다. 거기다가 돈 천만 원을 넣는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마치 지구에서 산소를 빼앗아간 다음 그 위에 물을 붓고는 ‘이제 물이 있으니 괜찮지?’ 하고 묻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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