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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서사모아
작가 : 갑주어
작품등록일 : 2020.9.22

1950년 7월 15일, 우리가 아는 대한민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전쟁에서 패한 이들이 망명한 곳은 다름아닌 남태평양 환상의 섬, 서사모아 제도.
그곳에서 50년 전, 태평양 깊이 잠들어있던 대한민국의 한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8화 - 바다
작성일 : 20-09-30 23:17     조회 : 295     추천 : 0     분량 : 1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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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이 묘하다.

 출국심사관 동무가 말하긴, 그건 서사모아라는 섬에서 온 이가 건네준 것이며, 그들의 이름은 광복군이라 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같은데,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난다. 무슨 독립투사 같은 느낌인데, 독립투사라면 남만주 반일유격대가 통합된 조선인민혁명군이 유일하니 그 당시 단체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광복군이라는 군대는 어디에 소속된 군대인가 궁금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출국심사관 동무 역시 자세히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들이 온 세상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곳에서는 본인이 뿌린 대로 거두어들이는 자유 시장이라는 경제체제를 통해 능력 있는 자는 그 능력을 이용하여 자유롭게 돈을 벌어들인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명의는 찾는 환자가 많으므로 인민을 살린 대가로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진료 안 하고 농땡이 부리거나 진료 실력이 형편없는 의사는 돈도 못 벌뿐더러 여차하면 내쫓긴다고 한다.

 그리고 공화국에선 성행하는 줄타기 낙하산 채용이나 임명 따윈 존재하지 않고 모두 공정하게 시험을 보고 경쟁을 치러 높은 점수를 기록한 자가 쟁취하는, 그야말로 즐거운 경쟁의 장이 발달 된 곳이라고 한다.

 공화국처럼 정부에서 일자리를 배정하는 게 아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하고 하고 싶은 직업이 있다면 공부하여 그 직업을 자유롭게 수행하는 곳이라고 한다. 또한, 대학도 가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갈 수 있는 사회라고 한다. 확실히 나도 통제된 로동현장 배치와 통제된 인민대학 진학은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강간범과 같이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은 사법의 심판을 통해 죗값을 치르게 된다고 한다. 법으로 인해 경찰들이 마음대로 잡아다 가둘 수도 없으며, 고문 같은 잔인무도한 짓은 없는 세상이라고 한다. 이 점이 너무나도 좋았다.

 이 말을 들은 나는 무척이나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출국심사관 동무의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공화국과 중국, 러시아, 베트남과 같은 우리 동맹국을 제외하면 미제의 손아귀에 사로잡혀 고통받고 있다고 하지 않던가? 이에 출국심사관 동무는 그건 공화국에서 정권 유지를 위해 7천만 인민을 무려 50년 동안 세뇌한 거라고 주장했다.

 

 내가 혼란스러워하자 그는 말을 잘랐다. 그는 그저 나에게 해 준 말을 믿고 공화국을 떠나 기회의 새 땅으로 의향이 있다면 거기 적힌 그대로 비밀리에 행하고, 의향이 없다면 본인을 신고하고 포상금을 얻어 잘 먹고 잘살라는 거였다. 본인은 이제 곧 죽으니, 보안대의 심문 중 죽나 병실에서 죽나 마찬가지라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출국심사관 동무는 진짜 문서라 말하고 있다. 본인을 보안국이나 보안대에 신고해도 좋다고 하는 걸 보면 이 문서는 분명 진짜라는 말이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가 짧게 인사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문서에 적힌 대로 공화국을 떠나기로. 기회의 새 땅에 가 나의 새 삶을 시작하겠다.

 

 그렇게 출국심사관 동무를 만나고 집에 와 보니 로동현장 배치명령서가 도착해 있었다. 집에 들어가 배치된 로동현장이 어딘가 하니 이럴 수가, 바로 인천항 앞의 인민보건소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출국심사관 동무가 준 문서를 따라 공화국을 벗어나자는 알 수 없는 의지도 마구 생겨났다. 인민보건소에 일하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필리핀 상선 미씨야에 접촉하면 딱 완벽하다. 마치 등 뒤에 날개가 달린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이사를 위해 주택관리국에 가서 퇴실처리를 넣고 인천 주택관리국에는 배치된 인민보건소 주변의 방을 신청했다. 다행히 빈방이 있었는지 금방 처리됐다. 새 보금자리가 될 집의 주소를 받아적었다.

 홍제동 인민납골당에 있는 아내와 아기에게도 인사를 했다. 평생 아예 못 만나게 될 것은 아니지만, 당분간 멀리 떠나기에 인사를 해 뒀다.

 그리고 재빠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지체할 필요는 없다. 혹시라도 태만분자로 찍혀 귀찮은 일이 생기면 모든 계획이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 오늘 밤 짐을 다 챙겨 내일 곧바로 인천으로 이사 갈 준비를 해야겠다.

 

 “뭐야?”

 가구와 침대 등은 본래 주택에 있는 공용인 만큼 들고 가지 않는다. 옷과 책, 그리고 내 개인 짐만 챙겨 나가면 된다. 그렇게 가방을 바리바리 들고 나가려던 찰나, 문 앞에 무슨 편지가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편지를 벽에서 떼어 펼쳐보니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어디를 가든지 보고 듣고 있으니 보안유지에 만전 기할 것.’

 리황혼 대위 동무인지, 강간 마취전문의 병원장 동무인지 모르겠지만, 매우 기분이 불쾌하다. 나는 편지를 꾸겨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넣고 가방을 다시 바리바리 들고 걸음을 옮겼다.

 인천항 부근까지 가야 하기에 전철을 이용하는 게 좋겠다 싶어 가장 가까운 서울인민병원역으로 향했다. 오늘은 웬일인지 사거리에 박재성 경정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다. 지금 가방에는 출국심사관 동무가 준 서류봉투부터 시작해 200만 원의 현금 등 딱 봐도 수상하고 불온한 게 들어있어 자칫 시비라도 걸리면 큰일이 난다.

 “아니?”

 그렇게 서울인민병원역으로 걸어가던 때,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오늘따라 사거리에 경찰이 적다 했는데, 오늘은 전철역 검문검색을 위해 역에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재수가 없어도 이리 없을 수가 있나. 전철역 승강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전철을 타고자 하는 인민들과 서울인민병원역에 내리는 인민들이 일렬횡대로 선 보안국 경찰들에게 짐 검사를 받고 있었다. 때때로 고함소리와 사정하며 비는 인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기는 힘드니 그나마 제일 짬이 많아 보이고 상태가 피곤해 보이는 경찰이 있는 줄에 서서 기다렸다. 아무래도 내가 다른 인민들보다 짐이 많으니 대충 검사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사 줄을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됐다. 나는 인천항 부근으로 이사를 가는 날이라고 이야기하고 모든 짐을 경찰 앞에 내려놓았다. 그는 예상대로 한숨을 쉬며 가방을 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여~ 이게 누구십니까? 전 의사 동무 아니세요? 전철을 다 타시다니, 의외인데요?”

 지금 상황에서 가장 마주치면 안 되는 남자 1위, 종로보안국 안전과장인 박재성 경정이 나타났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경정님 뵙는 것도 마지막이군요.”

 “그러게요~ 다른 먼 데로 떠나시나 보네. 아쉬워서 어떡하죠?”

 “하하.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마지막일 테니 전 의사 동무 짐은 제가 검사하겠습니다. 야, 비켜봐. 이 동무만 내가 할게, 저기 가있어.”

 “아, 아니.”

 내가 말릴 새도 없이 박재성 경정 동무는 부하 경찰을 떠밀었다. 부하 경찰은 말없이 거수경례로 답하고 멀찍이 떨어졌다. 그리고 박재성 경정은 내 가방을 열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이 오고 있다.

 “이건 뭡니까, 동무?”

 박재성 경정이 서류봉투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나는 태연하게 의학 논문 및 연구집이라고 했다. 병원은 그만둬도 내 자료는 가져가야 하지 않겠냐는 농담과 함께.

 “흐음...”

 박재성 경정은 내 말을 귓등으로 흘려보내곤 혼자 서류봉투들을 하나하나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낡은 서류봉투, 출국심사관 동무가 준 서류봉투의 차례가 됐다. 박재성 경정은 그 봉투를 열어 안을 살펴보더니 조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도 연구 자료입니까, 동무?”

 “네. 그렇습니다만...”

 박재성 경정이 흐음 하며 살펴보는 중에 나한테 물었고,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박재성 경정이 러시아어는 분명 할 수 있을텐데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를 모르겠어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또, 이 문서를 통과한다고 해도 문제는 필리핀 돈과 내 다른 가방에 있는 공화국 현금 200만 원이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훗.”

 박재성 경정이 문서를 읽어보다 서류봉투에 다시 쓸어 넣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뭐지? 넘어 간 건가, 아니면 이대로 체포되는 건가?

 “외과 전문의셔서 그런지 여자 가슴에 관한 정보도 다 쓰여 있군요.”

 박재성 경정이 중얼거렸다.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지? 못 읽으면서 읽은 척하는 건가?

 “에휴, 사람이 마지막 인사는 다정하게 하랬다고. 지금까지 놀려먹어서 미안합니다, 동무. 통과시켜 드릴게, 잘 가십시오.”

 박재성 경정이 왼쪽 눈만 빠르게 깜빡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경찰들에게 통과 신호를 보낸 후 내 가방을 닫았다. 나는 이상하게 일이 쉽게 풀려 어안이 벙벙해 멍한 얼굴로 가방을 주섬주섬 다시 들었다.

 “광복.”

 내가 떠나려던 찰나, 박재성 경정이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이에 나는 놀라 뒤를 돌아 그를 쳐다봤다. 그는 지금까지 본 적 없던,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동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가십시오.”

 “고, 고맙소, 경정 동무. 잘 있으시오.”

 나는 그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한 후 재빠르게 전차 승강장으로 이동했다. 무슨 소리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광복이란 글자를 박재성 경정이 그저 문서를 읽고 따라 한 건지, 아니면 혹시 이와 연관된 사람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좋으니 우선 짐 검사를 무사히 통과한 사실에 만족하며 나는 인천항까지 가는 전철에 탑승했다.

 

 “배치명령 기간까지 하루 남았는데 부지런한 동무군 그래.”

 인천항에는 오후가 넘어간 때에 도착했다. 배치된 인민보건소에 가니 보건소장 동무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곳 인천항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인민보건소는 나까지 포함해 총 여섯 명이 전부였다. 노인이나 다름없는 보건소장 동무와 세 명의 간호사 동무, 그리고 약사 동무 한 명과 보건소 잡무 역할하는 행정원 동무 한 명이 다였다. 즉, 진료는 나와 보건소장 동무만 한다는 점이며, 나에게 이러쿵 저러쿵 영향을 끼칠 만한 인물은 보건소장 동무 뿐이었다.

 그렇게 첫날은 인사를 마친 후, 새로 배정된 집에 가 짐을 풀었다. 집은 확실히 예전에 살던 집보다 좁고 낡았으며, 무엇보다 난방이 안 되는 듯, 방바닥이 차가웠다. 관리장 동무에게 들어보니 밤 10시부터 새벽까지만 난방을 가동한다고 한다. 대신 뜨거운 물은 점심부터 오후 중만 제외하고는 계속 나오니 안심하라고 한다. 물론 난 이 집에서 오래 살 맘이 없기에 큰 상관은 없었다.

 

 인민보건소는 생각보다 할 일이 없었다. 무엇보다 항구에서는 로동자가 늘 부족하기에 진료허가증이 잘 발급되지 않아 간단한 감기나 몸살은 그냥 항구에 비치된 상비약 먹고 넘기기에 보건소일이 오히려 없다고 한다. 간혹 오는 노인 동무들이나 어린 학생 동무들이 대부분이다.

 

 인천항은 항구로농자 기숙사를 제외하고는 전부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도 그럴게 우선적으로 공화국은 완전히 개방된 나라가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처럼 동맹을 맺거나 동남아 섬나라들처럼 무역협정을 맺지 않은 나라와는 일절 거래하지 않기에 입국이 까다롭다. 그리고 공화국을 시기하여 무너뜨리려 하는 세력들이 공화국으로 몰래 침입하는 것도 늘 감시해야 한다. 그래서 항구를 높은 벽으로 두르고 다신 로동자들이 답답해하지 않도록 기숙사 쪽만 철조망으로 세우고 보안국 경찰들을 세워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출국심사관 동무가 준 문서에는 여기를 뚫고 가는 방법을 설명하지 않았다. 배가 들어오는 것에 맞춰서 항구에 들어가야 하는데, 어떻게 들어가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인민보건소에서 로동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 인천항을 바라보며 뚫을 기회를 물색했다. 우선 목표 배편인 필리핀 상선 미씨야는 매주 화요일 오후에 오는 것으로 확인했다. 기상 상태에 따라 다르니 똑같지는 않지만, 보통 오후 4시쯤 정박해서 물건을 오르내리고 다음 날 새벽 일찍 출항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게 탐색전을 펼치던 어느 날, 눈이 오는 날에 내 손전화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출국심사관 동무였다. 그는 내가 결심했는가 아닌가를 물었고, 내가 결심했다고 대답하자 그럼 인천 제물포의 ‘광’이라는 술집에 가서 페드로란 사람을 찾아가라고 대답하곤 잘 가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마쳤다. 내가 다시 걸어보니 그의 전화는 해지된 상태였다. 아마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나는 그의 말에 따라 퇴근하자마자 눈발을 뚫고 제물포로 향했다. 제물포는 어부와 항구로동자들로 인해 사시사철 북적거린다. 나는 제물포 거리를 걸어 다니며 ‘광’이라는 술집을 찾아다녔다.

 휘날리는 눈 때문에 앞이 잘 안 보이고 너무 추운 데다가 길이 미끄러운 탓으로 광을 찾는 데에는 한 시간이나 걸렸다. 그 술집은 골목 안쪽에 위치한 허름한 술집이었는데, 안에 들어가니 외국인 몇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다들 힐끔 보더니 이내 본인들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술집 주인 동무는 공화국 인민인 듯했다. 조리실 앞 바에 앉으니 술집 주인동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공화국 인민이요?”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혹시 중화거리의 몇 가게처럼 공화국 인민이면 출입하지 못하는 가게인가 싶었으나, 술집 주인 동무는 씩 웃으며 나에게 뜨겁게 덥힌 술 한 잔과 땅콩이 담긴 작은 그릇 하나를 내어 줬다.

 “그렇다면 술 마시러 온 거요, 혹시 사람 찾으러 온 거요?”

 술집 주인 동무가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난 사람을 찾으러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술집 주인 동무는 누구를 찾느냐고 물었고, 나는 페드로라고 대답했다. 술집 주인 동무는 아직 그는 오지 않았으니 조금 기다리라고 말하곤 다시 조리실로 들어갔다. 나는 그 말에 멍하니 앉아 그가 내어 준 땅콩을 주워 먹고 뜨겁게 덥힌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예전에 2002년 조일 월드컵 때 마셔봤던 일본술 ‘아빠 힘내세요’가 생각나는 맛이었다.

 

 한 이십 분 정도 기다렸을까, 가게 문을 열고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들어왔다. 옷차림을 보니 공화국 인민은 아니라는 게 보였다. 로동복이 아닌, 파란색 바지에 털 달린 휘황찬란하고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 있으니까.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술집 주인 동무는 약속이라도 한 듯, 맥주 네 잔과 마른안주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그중 덩치가 큰 한 명에게 귓속말로 무언가 말하는 것이 보였는데, 그 후 곧바로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일행들에게 무어라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옆자리에 앉았다.

 “광복?”

 그가 물었다. 나는 사실 저 단어의 의미를 모르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반가워요. 내가 페드로입니다.”

 드디어 그를 만났다. 그는 나를 반가워하며 위압적인 덩치와는 달리 밝게 웃었다.

 

 페드로 동무. 그는 나처럼 공화국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돈을 받고 밀항을 시켜주는 사람이다. 필리핀 국적을 가지고 있는 필리핀 인민으로, 공화국과의 무역허가를 받은 공식 업자다. 하지만 이런 일을 왜 도맡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가 말하길, 돈이 되니까 한다는 거였다. 어차피 본인에게 해가 될 것도 없고, 필리핀에 도착해 내려주기만 하면 다음은 그는 모르는 일이고 나 알아서 하라는 거였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밀항하는 방식이다.

 “배는 나흘 뒤에 옵니다. 당신은 다음 주 배가 오기 하루 전 밤부터 여기서 만나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위험부담 없이 안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 말인즉슨 모레부터 인민보건소를 출근하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혹시라도 결근 때문에 조사가 들어오면 어떡하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주 필요한 최소한의 짐을 제외하고는 모두 집에 그대로 놓아야 해요.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죠. 집이 비어 있으면 당연히 의심을 받고 추격을 하겠죠? 그리고 짐이 많으면 우리랑 함께하기도 힘들어요. 딱 책가방 하나. 책가방 하나만 챙기세요.”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부모님을 같이 모시고 갈 수 있는지를 물었는데, 그건 딱 잘라 거절당했다.

 “잘 모르시는 거 같은데, 위험하고 또 고됩니다. 어린이와 노인, 임산부는 못 가요. 이건 돈을 더 줘도 우린 못 해요. 부모님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른 루트로 알아보시지요.”

 이 말에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 그리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두고 나만 간다는 게 조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페드로 동무 말대로 내가 필리핀으로 간 뒤에 광복군들을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여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으니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럼 주변을 정리하시고, 현금 10만 페소 또는 조선 돈으로 60만 원을 준비하세요. 인민증과 여권은 반드시 챙기시고, 우리나라는 더운 나라니 여름옷 한 벌만 챙기세요.”

 나는 페드로 동무에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나에게 가까이 붙으라고 하면서 손전화를 꺼내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나와 페드로 동무의 모습이 손전화의 작은 화면에 들어갔다. 그리고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페드로 동무는 손전화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날 신고해봤자 당신이 훨씬 더 큰 손해니 허튼수작은 부리지 마세요. 사흘 후 밤 열 시에 여기서 봅시다. 오지 않으면 결심이 안 선거로 하고 없던 일로 합니다.”

 그렇게 난 페드로 동무와 악수를 한 후, 내가 마신 술값 100원을 계산한 뒤 가게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이제 길이 보인다. 출국심사관 동무가 준비해둔 필리핀 돈은 페소라고 읽고, 20만 페소를 준비했다는 것은 2인분, 그러니까 본인과 아내와 함께 공화국을 떠날 계획이었던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순간 눈물이 돌았다.

 나는 그대로 달력을 확인했다. 오늘은 금요일. 그러니까 내일 토요일에 로동을 하고 일요일에 쉰 뒤, 월요일 밤에 술집 광으로 가면 된다.

 인민증과 여권은 미리 챙기고, 페드로 동무에게 줄 돈은 리황헌 대위 동무에게 받은 돈으로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아마 내가 귀신같이 사라지니 실종신고가 들어갈 텐데 놀라실 부모님을 위해 토요일 저녁에 바로 인사드리고 일요일에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뵙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약속한 월요일 저녁이 되었다. 오늘 퇴근하면서 보건소장 동무와 간호사 동무에게는 깍듯하게 인사했다. 그들과 인사하는 것은 오늘로 마지막이니까.

 어두컴컴한 하늘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을 흩뿌리는 바닷바람은 매우 추웠다.

 나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활용해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을 뵙고 인사드리고 왔다. 부모님을 찾아간 나는 많이 고민했지만, 거짓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사실대로 말했다. 공화국에서의 삶이 회의가 느껴 여길 떠나고 싶다고. 그러자 화를 낼 것 같았던 부모님은 오히려 나보고 잘 생각했다며, 예전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공화국에서 의사로 잘 자리 잡은 나에게 말하기가 어려우셨다고 한다. 그리고 서울인민병원 대화재 사건으로 아내와 아기를 잃고 부상당한 나를 보고 안쓰러워 공화국을 떠나라고 돈을 마련하셨다는데, 그건 차마 받을 수 없었다. 부모님께는 내가 필리핀을 통해 먼저 공화국을 떠난 뒤 반드시 두 분도 모실 테니 그때까지만 잘 버텨달라고 부탁드렸다. 두 분은 눈물을 흘리시면서도 내가 공화국을 떠나고 싶다는 말에 기분이 좋다고 나를 안아주셨다. 그리고 리황혼 대위 동무가 준 돈 중 일부와 내가 모아 놓은 돈을 합쳐 80만 원을 만일을 위한 비상금으로 드렸다.

 장인어른과 장모님께는 사실대로 말하긴 어려워 잠시 일이 있어 멀리 북쪽 지방으로 가는데, 혹시라도 보안국이나 보안대가 조사하러 오면 잘 모른다고 둘러대 달라고 부탁드리고 절을 한 뒤 리황혼 대위 동무가 준 돈 중 남은 100만 원을 생활비로 드리고 떠났다. 그가 입막음으로 준 돈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집 안은 마치 잠시 외출한 것처럼 꾸며놓은 뒤, 페드로 동무가 말한 짐만 챙겼다. 출국심사관 동무가 준 서류봉투와 언젠가 쓸 날이 있을 것 같아 조유광 소좌의 강간 행적이 담긴 비디오테이프 원본도 챙겼다. 그리고 내가 쓴 연구논문 중 가장 최신 것 한 권만 챙겼다.

 “돈, 가져왔어요?”

 열 시가 되기 전에 도착했는데 페드로 동무는 먼저 술집에 와 있었다. 술집에는 술집 주인 동무와 페드로 동무만 있었다. 나는 눈을 털어내고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페드로 동무는 페소로 주면 더 좋은데 라고 혀를 끌끌 찼으나 별다른 말이 없었다.

 “잠깐 시간이 좀 있으니까 몸 좀 녹이고 가죠.”

 페드로 동무가 앞자리 의자를 빼며 말했다. 나는 그곳에 가방을 끌어안은 채 앉았다. 그는 어묵이 담긴 컵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것을 받아 마셨다. 추운 겨울날에는 역시 어묵이 최고다.

 “무슨 일했던 사람이에요?”

 페드로 동무가 온화한 미소로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의사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감탄하며 필리핀에 가게 되면 자기 여동생을 좀 진찰해달라고 말했다. 나야 딱히 나쁘지 않으니 알겠다고 대답했다. 진찰 겸 잠시 묵자고 해야지.

 “근데 의사가 왜 공화국을 떠나려고 해요? 의사면 높은 직 아닌가?”

 페드로 동무가 물었다. 나는 그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내가 드는 칼이나, 술집 주인이 어묵을 썰 때 쓰는 칼이나 공화국에선 똑같아요.”

 내가 대답하자 듣고 있던 페드로 동무는 빵 터져 폭소했다. 뒤에서 듣고 있던 술집 주인 동무도 덩달아 웃어댔다. 한참을 웃던 둘. 그리고 먼저 웃음을 정리한 페드로 동무가 말했다.

 “떠날 만하네요.”

 

 그렇게 잠시 어묵 국물을 마시며 기다리다 보니 페드로 동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시간 됐습니다. 가시죠.”

 그리곤 페드로 동무는 술집 안쪽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술집 주인에게 1만 원을 건넸다. 아마 모종의 거래 유지를 위한 뇌물인 것 같다.

 페드로 동무를 따라 술집 안쪽으로 들어가니 이상한 향기가 나는 큰 창고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일전에 보았던 외국인 몇과 공화국 인민으로 보이는 자들이 무언가를 상자에 남아 포장하고 있었다.

 “자, 다 완료들 했지?”

 페드로 동무가 말하자 모두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한 외국인이 내 앞에 내가 쪼그려 앉을 만한 상자를 하나 가져왔다.

 “화장실 안 가도 되죠, 의사 선생님?”

 페드로 동무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페드로 동무는 나를 그 상자에 들어가라고 했고, 나는 무릎을 감싼 상태로 들어가 앉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긴 방한복 말고 짧은 거로 입을 걸 그랬다.

 “이 상태로 두 시간은 버텨야 합니다. 찍소리 하나 내지 마세요. 알겠죠?”

 내가 끄덕이자 그가 상자를 닫았다.

 

 나는 혹시 모르니 손수건을 꺼내 두건으로 착용했다. 혹시라도 숨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말이다. 페드로 동무 일행은 내가 들어간 상자를 포함해 여러 상자를 항구로 나르는 듯 했다. 상자의 뚜껑 부분에 작은 구멍이 하나 열 수 있어 이곳으로 숨을 편히 쉴 수 있었다. 다만, 페드로 동무 일행이 티 나지 않도록 하는 건 좋은데, 너무 상자를 거칠게 다루는 바람에 내 꼬리뼈가 박살이 날 뻔한 적도 있었다.

 

 불편한 자세로 오래 있다 보니 슬슬 고통의 신음이 흘러나올뻔할 때, 상자가 열리면서 페드로 동무의 방긋 웃는 얼굴이 보였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일어나 몸을 풀었다.

 “잘 버텼어요. 근데 이제 시작입니다.”

 페드로 동무가 내 어깨를 툭툭 쳐 줬다. 주위를 둘러보니 조명도 없는 철로 된 방, 그렇다. 이곳은 화물을 보관하는 철제 수송함의 안이다. 페드로는 나에게 여기 안에만 버티고 있으면 되는데, 알다시피 이 함은 사람이 타는 곳이 아니므로 매우 불편함은 참으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손전등 하나와 빵 세 개, 물병 하나, 화장실로 쓸 작은 드럼통 하나를 주고 여기서 열어 줄 때까지 버티되, 밖에서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 검문 온 것이니, 재빠르게 안 보이는 안쪽으로 들어가 상자 사이에 숨으라고 말했다.

 “이거 하나만은 꼭 지켜요. 그럴 이유도 없겠지만, 제가 문을 열고 광복이라고 말할 때까지 그 어떤 소리도 내어서는 안 돼요.”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고, 페드로 동무는 행운을 빈다며 손을 흔들어주고 나갔다. 그리고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있게 되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볼 것도 없는 데다가 손전등은 매우 작아 이거로는 계속해서 틀어놓지는 못할 것이므로 그냥 어둠 속에 누웠다. 지금은 배가 고프거나 목마르지 않기 때문에 만일을 대비해서 내 가방과 빵, 물을 미리 숨겨두었다. 그리고 상자들을 침대 삼아 올라가 누웠다. 고요한 어둠 속에 이러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었다. 이래서 어둡고 조용한 독방에 사람을 가두면 미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잠드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잠을 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철로 된 6면의 벽은 물론이고 상자에서도 찬 공기가 그대로 올라와 너무 추웠다. 바람 한 점 안 부는데도 불구하고 저절로 이가 딱딱거릴 정도로 추웠다. 어쩌면 누워있는 것은 위험할 것 같아 나는 상자에 등을 내고 몸을 웅크려 앉았다.

 

 그렇게 추위에 몸을 떨며 어둠 속에서 버티다 잠시 잠들뻔한 사이, 갑자기 벽을 무언가로 세 번 치는 소리가 들리자 재빠르게 일어난 나는 손전등을 켜고 상자 사이로 들어가 숨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환한 빛이 들어왔다. 목소리 상태를 보니 인천항 보안국 경찰이 세관검사로 온 것 같았다.

 “오늘은 양이 적네?”

 보안국 경찰로 느껴지는 이가 함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쥐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겨울이라 그런가, 별로 없다고 하더라고요.”

 페드로 동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안국 경찰로 느껴지는 이는 가까이에 있는 상자 하나를 열어보며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는 듯했다. 두세 상자를 그렇게 검문했다. 그러자 페드로 동무가 무언가를 건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경위님 지갑 떨어뜨리신 거 아네요?”

 순간 정적이 잠시 흘렀다. 그리고 보안국 경찰로 느껴지는 이가 페드로 동무에게서 무언가를 낚아채어 손으로 열어보는 소리가 들렸다.

 “음, 내 지갑 맞네. 매번 고마워.”

 그리곤 전부 나가버렸고, 다시 문은 굳게 잠겼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자 뒤쪽에서 나가지 않고 그냥 거기서 숨은 채 있기로 했다. 추운 건 똑같은데, 아무래도 상자에 둘러싸여 있는 쪽이 조금 덜 추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용변이 마려워 페드로 동무가 준 드럼통에 볼일을 보고, 허기와 갈증이 느껴져 숨겨두었던 빵과 물을 조용히 먹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어둠 속에서 침묵을 유지했다. 가만히 웅크리고 계속 있다 보니 온몸이 쑤시기 시작했고, 어둠 속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무서운 기분도 들면서 추위는 계속되어 슬슬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생기기까지 했다.

 

 “아.”

 얼마나 지났을까. 어둠 속에서 조용히 몰래몰래 관절을 펴고 접고 하면서 버티던 중, 내가 들어있는 철제 수송함이 움직였다. 아무래도 미씨야 호로 옮겨지는 것이라 느껴진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때마침 엎어진 나의 화장실 때문에 수송함 안에는 똥과 오줌 냄새로 가득하게 됐다. 무슨 물건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되게 미안하게 됐다.

 

 또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흐른 뒤, 갑자기 쿠르르릉 하고 계속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건 배의 엔진 소리인 것 같았다. 배가 인천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공화국을 떠나 새로운 땅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 곧 파도 덕분에 생겨난 흔들림으로 나는 지옥문을 들어섰다. 조금 있으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사방이 막혀 어두컴컴 한데다가 흔들림은 계속되니 멀미는 점차 심해졌다. 이윽고 나는 급히 화장실을 찾아 구토했다. 그래도 멀미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외부가 보이지 않는데 계속해서 움직이니 멀미가 나을 새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이후 수십 시간을 멀미로 인해 고통받게 된다. 정말 차라리 죽여달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의 엄청난 고통이었다. 물을 마셔도 나아지지 않고, 앉아있던 누워있던 서 있든 간에 미칠 것 같았다. 비명을 지르고 싶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수십 시간을 고통받다 보니 어느덧 흔들림은 약해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처음에는 멀미 때문에 식은땀이 나는 줄 알았는데 점차 온도가 올라가 더워서 땀이 남이 느껴졌다. 나는 긴 방한복을 벗어서 개어 놓았다. 그리고 잠시 숨도 돌릴 겸 물을 마시고 빵 하나를 먹었다. 멀미 때문에 먹어도 또 토할 것 같았지만, 하도 토해서 이제 나올 토사물도 없을뿐더러 위에 부담이 갈 것 같아 어둠 속에서 억지로 꾸역꾸역 먹어댔다.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서러운 마음이 넘쳐나 소리쳐 울고 싶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러지 않았다.

 

 멀미로 인해 구토를 계속하다 보니 탈진 증세가 슬슬 나타나는 것 같았다. 물을 마시면 토하고 또 토하니 몸에 이상이 안 생길 리가 없다. 그리고 내 구토로 인해 생긴 토사물과 용변 냄새가 너무 역해 나 자신이 미칠 지경이 됐다.

 멀미의 어지러움과 기진맥진한 느낌이 겹쳐져 나는 그만 상자 사이 틈에 쓰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추위가 느껴지기는커녕 오히려 안은 무더웠다. 그래서 토사물과 용변의 역한 냄새가 더 올라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손전등이 고장 났는지 더 이상 불이 켜지지 않았다. 문과 벽을 발로 차며 살려달라고 난 그냥 공화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서러움과 고통으로 인해 눈물이 계속 흘러나오고 신음 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왔다. 하지만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눌러 참았다.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서 태어난 나는 집 바로 뒤에 불암산이 있어 늘 친우 동무들과 함께 올라가 저 멀리 서울을 바라보곤 했다. 밝은 태양 아래 빛나는 서울의 모습은 그야말로 꿈속에서 등장할 하늘 구름 위 세상으로 보였다. 그래서 불암산 정상에서 서울을 바라보며 친우 동무들과 서울에 살면 무얼 가장 하고 싶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대부분이 비슷했다. 소고기 들어간 허여멀건 국에 밥 말아 깍두기랑 같이 배부르게 먹어보고 싶다는 소원,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마라탕이라는 걸 먹어보고 싶다는 소원, 조선로동당 간부의 딸과 결혼해서 신분 상승하겠다는 소원 등 어릴 적 순수한 마음에 가슴속 간직하고 살았다.

 어린 그때는 잘 모르기에 그냥 교사 동무와 정치장교 동무에게 잘 보이면 서울에 갈 수 있겠다 싶어 앞다투어 애국심 고취 웅변대회, 글짓기 대회, 공화국 시 쓰기 대회 등 나갈 수 있는 대회는 모두 나가 온갖 상을 휩쓸고 다녔다. 물론 무일푼으로 탈락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친우 동무 중 그 소원을 푼 사람은 나 혼자다. 남양주 인민고급학교까지는 함께 다녔는데, 유독 자녀 학구열이 높으셨던 부모님 덕에 나는 항상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 덕에 나만 졸업 직전 학교 정치장교 동무로부터 인민대학 추천서를 받았다. 그 추천서를 어디에 쓸까 고민하다가 부모님과 상의하여 의사가 되고자 서대문인민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서대문인민대학에 진학하고자 전철을 타고 처음으로 서울특별시 검문소를 통과하는 그때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공화국에 자랑스러운 인민대학 학생이 됨과 동시에 늘 가고 싶었던 서울에 가게 됐으니 그 벅찬 가슴은 얼마나 뜨거웠을까.

 그 후 서대문인민대학을 졸업하고 로동배치 심사에서 춘천인민병원에 배정될 때까지 나는 친우 동무들의 소원을 전부 대신 풀어줬다. 소고기 들어간 허여멀건 국은 설렁탕이라고 불렀는데, 참 맛있고 먹으면 먹을수록 뜨끈한 국물과 진한 고깃덩어리가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느낌이었다. 여의도 중화거리의 마라탕 역시 끝내주는 맛이었다. 처음 먹었을 때 너무 매워서 귀가 아파 진땀과 눈물을 섞어 흘리던 그때 그 시절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물론 그렇게 너무 서울 삶에 신나 놀다 보니 러시아와 중국 유학생 선발 심사에서는 탈락했었다.

 정식 의사가 되고 난 후에는 진정한 공화국의 어른 인민이 되어, 춘천인민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운이 좋아 서울인민병원으로 로동현장이 배치된 후, 예쁘고 싹싹한 여자친구를 처음으로 만들었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여자친구는 훗날 내 아내가 된다.

 하지만 그 사랑스러운 아내는 한 변태 강간범의 뻘짓으로 인해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게 됐다. 내가 사귀자고 했을 때, 얼굴 붉히며 나에게 안기던 그 얼굴, 내가 결혼하자고 했을 때, 기뻐하며 내 품에 안기던 아내의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혹시라도 아내가 살아 있었다면 내가 이런 칠흑 같은 어둠과 오물 냄새로 가득한 창고에 웅크려 눈물 닦고 질질 짜며 흐느끼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저기요, 살아 있죠? 죽은 거 아니죠?”

 죽을 지경으로 멀미를 해 거의 반 시체가 되어 탈진해 쓰러져 있던 찰나 깜박 잠이 들었었나 보다. 들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이내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밝은 빛과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며 페드로 동무의 말소리가 들렸다.

 내가 문 쪽으로 힘겹게 일어나 얼굴을 들자 페드로 동무가 엎질러진 내 용변과 토사물 등을 피해 다가왔다. 그리고 내 얼굴에 손전등을 비추며 방긋 웃었다.

 “필리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작가의 말
 

 조선공화국에서의 이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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